영화 이야기

2019년 7월 18일 목요일

‘토이 스토리 4’(Toy Story 4)


우디(중간)와 보 피프(우디 왼쪽)와 로켓맨 버즈 라이트이어 등은 새 장난감 포키(맨 앞)와 함께 액션과 모험을 즐긴다.

새 장난감 캐릭터 등장… 더 신나는 액션과 모험


만화영화를 만드는 픽사(디즈니 소유)가 ‘토이 스토리’ 제1편을 만든 것이 24년 전인 1995년이고 제3편이 나온 것이 근 10년 전으로 이 시리즈는 제3편을 끝으로 할 얘기는 다 했었다. 그런데도 제4편을 만든 것인데 새 내용과 함께 새 인물(장난감)들을 등장시켜 야단스럽고 신나고 활기 왕성한 온 가족이 즐길 작품을 내놓았다.
영화에서 카우보이이자 셰리프인 우디 역을 음성 연기한 탐 행크스와의 인터뷰에서 “제5편에도 돌아올 것이냐”고 물었더니 “물론이지”라고 대답을 한 것을 보면 제5편을 만들 것임에 분명하다.
속도 빠르고 아이들이 장난치듯이 시끄럽고 요란하며 쫓고 쫓기는 액션과 모험이 가득하고 우습고 위트 있고 상상의 날개를 활짝 편 영화로 교훈적이기까지 하다. 두 번째의 기회와 세상에는 쓸모없는 것이 없다는 것을 강조하고 있는데 아이들에겐 좋은 가르침이다.
우디와 로켓맨 버즈 라이트이어(팀 알렌 음성) 등 구면인 주인공들 외에 새 장난감들이 많이 소개되는데 그 중에서 가장 재미있는 것이 캐나다의 ‘이블 크니블’인 모터사이클 스턴트맨으로 나르시스트인 듀크 카붐. 키아누 리브스가 음성 연기를 아주 우습게 잘 한다.
우디와 버즈 및 둘의 동료들의 첫 주인인 앤디는 이제 대학에 가고 이들의 새 주인은 유치원에 막 들어갈 바니(매들렌 맥그로 음성). 그런데 바니는 유치원 들어갈 생각에 매달려 우디 등에 영 관심이 없다. 이로 인해 우디와 그의 동료들은 맥이 빠졌지만 낙천적인 우디는 자신들의 때가 오리라고 확신한다.
그런데 바니가 유달리 애착을 가지는 인형이 쓰레기통에서 꺼낸 플래스틱 포크로 만든 포키(토니 헤일 음성). 이 포키가 실종되면서 우디 등이 이를 찾느라고 난리법석이 일어난다. 그런데 필자가 보기엔 얘기의 중요한 역인 포키가 별 흥미로운 주인공이 되지 못하는데 여하튼 영화는 포키로 인해 액션과 속도를 갖추게 된다. 포키는 자기가 장난감인줄도 모르고 “나는 쓰레기야”라며 자꾸만 쓰레기통으로 들어가는데 이에 우디는 “너는 이제 쓰레기가 아니고 장난감이야”라며 교육을 시킨다. 그러니까 이 세상에 쓸모없는 것은 없다는 말씀.
바니가 유치원에 들어가기 전에 바니의 부모가 바니와 우디와 그의 동료들을 차에 싣고 마침 카니발이 열리고 있는 옛 서부마을 그랜드 베이신으로 놀러간다. 가다가 실종된 포키를 찾으러 차를 떠난 우디 등은 중고품 장난감들이 있는 가게에 들러 옛 친구인 양치기소녀 보 피프(애니 파츠 음성)와 재회한다. 이와 함께 새 인형들로 오래 방치된 말하는 인형 개비 개비(크리스티나 헨드릭스 음성)와 살인 인형 처키를 연상시키는 4개의 기분 나쁘게 생긴 신사복으로 정장한 인형들과도 만난다.
우디와 보 피프 간의 재회의 기쁨과 함께 둘이 티격태격하며 주고받는 대사가 즐거운데 둘 사이에서 로맨스 기운마저 느껴진다. 영화는 카니발이 열리고 있는 그랜드 베이신에서 본격적으로 추진력을 갖추면서 마치 롤러코스터를 탄 것처럼 어지러울 정도로 고속으로 돌아간다. 음성연기들이 일품이다. 신예 조쉬 쿨리 감독. G등급. ★★★★ (5개 만점)
                                                                  <한국일보 박흥진 편집위원/ hjpark1230@gmail.com>

‘레토’(Leto)


아름다운 나타샤를 둘러싸고 두 록가수인  나타샤의 남편 마이크(왼쪽)와 빅토르가 삼각관계를 이룬다.

구 소련 젊은이의 해방구였던 록뮤직, 빅토르 최의 음악·사랑 흑백필름에 담아


1980년대 소련 록뮤직의 개척자로 러시아 록에 지대한 영향을 미친 밴드 ‘키노’의 창설자 중 하나인 한국계 록가수이자 작곡가요 배우였던 빅토르 최에 관한 기록영화 식의 흑백 드라마로 빅토르로는 독일 태생의 한국인 배우 유태오가 나온다. 빅토르와 유태오가 매우 닮았다. 
빅토르는 공산체제 말기인 1980년대 레닌그라드를 무대로 서방세계의 록뮤직을 들여와 소련 젊은이들의 열화와 같은 인기를 받았을 뿐 아니라 자신도 서방세계의 록뮤직에 러시아적 분위기를 가미한 록뮤직을 작곡, 노래해 러시아 록에 지대한 영향을 미친 사람이었다. 1990년 교통사고로 28세로 요절했다. 
영화는 빅토르와 처음에 그를 자기 그룹 안에 받아들인 록그룹 주파크의 리드싱어 마이크 나우멘코(로만 빌리크)의 우정과 마이크의 아름다운 아내 나타샤(이리나 스타쉔바움이 광채가 난다)를 둘러싼 3각 사랑을 실화와 허구를 섞어 얘기한다. 제목은 러시아어로 여름을 뜻한다.
플롯은 없다시피 하다. 공산체제의 억압된 분위기 속에서 록뮤직으로 자유와 해방을 찾으려는 젊은이들의 반항과 음주파티 그리고 이들의 우정과 노래와 공연을 다소 에피소드식으로 보여주고 있다. 가끔 환상적인 내용을 만화로 묘사했다.
때가 때이니만큼 빅토르의 밴드는 공연할 노래의 가사를 미리 정부의 검열관에게 보여주고 허락을 받는데 공연장에도 검열관이 참석해 청중이 박수를 치거나 몸을 흔드는 것을 중지시킨다. 박정희 정부 때를 연상케 한다. 영화에는 데이빗 보위와 이기 팝의 노래 뿐 아니라 빅토르가 작곡한 노래도 나온다. 
그러나 영화는 정치성을 별로 띠진 않았다. 그보다는 러시아 록뮤직의 자초지종과 함께 젊은이들의 록에 대한 갈망과 열광을 통해 구소련의 잘 알려지지 않은 단면을 보여주고 있다. 특별한 플롯이 없다시피 하니 만큼 내용이 반복되고 후반 들어 진행이 처지는 감이 있지만 유태오의 카리스마 있는 연기를 비롯해 소련의 언더그라운드 록세계를 들여다 볼 수 있는 흥미 있는 작품이다. 어느 정도 기시감이 느껴지는 작품으로 향수감이 짙은 청춘 찬가라 하겠다.
영화의 감독 키릴 세레브렌니코프는 영화 제작 종료 직전에 예술지원금 횡령혐의로 가택연금에 처해졌는데 그의 동료들은 이 조치를 푸틴 정부의 비판자인 키릴에 대한 보복으로 간주하고 있다. 따라서 이 영화가 작년에 칸영화제서 상영됐을 때 키릴은 참석하지 못 했다. 
★★★★ (5개 만점) 
                                                                <한국일보 박흥진 편집위원/ hjpark1230@gmail.com>



‘죽은 사람들은 죽지 않는다’(The Dead Don‘t Die)


클립(왼쪽부터), 민디와 로니가 산송장들의 습격에 대비하고 있다.

셀레나 고메스 출연 화제… 좀비영화에 바치는 헌사


영화 끝에 숲속의 은둔자 밥(탐 웨이츠)이 산송장들이 마을 사람들을 씹고 뜯어먹는 것을 보면서 “인생은 X판이네”라고 한 말씀하는데 필자가 보기엔 이 영화가 그렇다. 여유만만하고 시치미 뚝 떼면서 은근히 비꼬고 웃기는 얘기를 잘 만드는 짐 자무쉬 감독이 산송장 영화에 바치는 블랙 코미디로 그가 각본도 썼다.
이와 함께 트럼프와 미국의 물질위주의 사고방식을 풍자한 작품인데 지나치게 끔찍하고 어둡고 절망적이며 또 비관적이어서 코미디가 맥을 못 추고 말았다. 어떻게 이런 영화가 올 칸영화제 개막작으로 선발되었는지는 알다가도 모르겠지만 필자가 칸영화제를 크게 신뢰하지 못하는 이유도 영화제 측이 이런 불상사 같은 일을 종종 저지르기 때문이다.
산송장에 관한 헌사이니만큼 과거 이 종류의 영화들이 언급되는데 영화 첫 장면부터 조지 로메로의 ‘산송장들의 밤’을 연상케 만든다. 그리고 F. W. 무르나우의 ‘노스페라투’와 함께 산송장 영화는 아니지만 이 영화에 나오는 모텔이 베이츠모텔을 닮아 ‘사이코’도 거론된다.
영화는 자무쉬의 은근한 자기 자랑이기도 한데 그것이 자기비하와 은근을 지나쳐 지나치게 자의식적이어서 나중에는 희롱당하는 기분마저 느껴진다. 질척거리는 설익은 밥과도 같은 영화로 이름이 잘 알려진 배우들이 무려 20명 정도 나오는데 대부분이 산송장과도 같은 어색한 연기를 하면서 소모됐다.
인구 700여명의 마을 센터빌의 경찰서 직원은 3명. 서장 클립(빌 머리)과 그의 부하들인 로니(애담 드라이버)와 민디(클로이 세비니). 셋이 다 안경을 썼다. 처음부터 자무쉬는 트럼프를 비웃는다. 동네 다이너의 손님 중 하나인 농부 밀러(스티브 부세미)가 쓴 빨간 모자에는 ‘미국을 다시 하얗게’라는 문구가 적혀있다. 그가 옆에 앉은 철물점 주인인 흑인 행크(대니 글로버)와 나누는 ‘블랙’ 농담이 웃긴다. 
클립과 로니가 라디오에서 흘러나오는 컨트리송 ‘죽은 사람들은 죽지 않는다’를 들으면서 차를 타고 순찰을 하는데 이상한 일이 생긴다. 전파가 방해되면서 셀폰 등이 작동을 안 한다. 이어 뉴스로 심각한 환경오염으로 인해 지구가 궤도를 이탈했다는 보도가 나온다. 그리고 어두워질 때가 됐는데도 낮이 밤으로 변하질 않는다.
산송장들의 때가 온 것이다. 이 때부터 영화 끝까지 동네 무덤에서 깨어난 산송장들이 주민들을 뜯어먹고 씹어 먹는데 첫 희생자들은 다이너의 웨이트리스와 여자 청소원. 영화 끝에 가면 동네 사람들이 하나도 살아남질 못한다. 산송장들이 인육을 먹는 장면들이 너무 끔찍해 무섭다기보다 역겹다. 그런데 산송장들은 “커피” “샤도네” “와이-파이”라고 한 마디씩 하면서 살아 있었을 때의 문명의 산물들을 그리워한다.
클립과 그의 두 부하 그리고 사무라이검을 휘두르는 외계인(무슨 소리냐고 필자에게 묻지 마시길) 여자 장의사 젤다(틸다 스윈턴이 돋보인다)가 엽총과 정글용 큰 칼 그리고 검을 쏘고 휘두르면 산송장들의 목이 덜컹 덜컹 날아가면서 피가 튀는데 가관이다. 로지 페레스, 이기 팝, 캐롤 케인 및 셀레나 고메스 등도 나온다. R등급. Focus. ★★½ (5개 만점)
                                                              <한국일보 박흥진 편집위원/ hjpark1230@gmail.com>


‘존 들로리안 함정수사’ (Framing John DeLorean)


존 들로리안으로 분장한 알렉 볼드윈이 들로리안이 고안한 차 본넷에 앉아있다.

자동차산업의 풍운아 들로리안의 성공과 몰락… 스릴 있게 담은 다큐영화


영화 ‘백 투 더 퓨처’에 나온 양쪽 문이 마치 비상하는 갈매기의 날개처럼 올라가는 자동차를 고안한 자동차산업의 풍운아로 이상가요 야심가였던 존 들로리안의 기록영화이자 실제 인물들의 역을 배우들이 재연한 드라마이다. 
자동차 산업의 메카였던 디트로이트에서 태어난 절세 절세미남의 들로리안은 자동차산업에 혁명을 일으키면서 자동차산업의 골든 보이로 찬양 받았지만 과도한 야망으로 인해 스스로 몰락을 자초한 극적인 인물이었다. 
영화는 들로리안의 아메리칸 드림의 추구와 성공과 실패와 몰락의 과정을 그의 TV인터뷰와 기록필름 그리고 FBI가 들로리안을 잡으려고 펼친 마약거래 장면을 담은 흑백 필름 등을 통해 상세히 해부하는 식으로 만들었다. 영화와도 같은 그의 실제 삶이 허구보다 훨씬 더 재미있는데 마치 스릴있는 전기영화를 보는 것 같다.
영화는 들로리안으로 분장한 알렉 볼드윈의 해설로 진행된다. 들로리안은 탁월한 디자이너요 기술자로 제너럴 모터스의 간부로 있을 때 기존 폰티악을 개조한 차를 만들어 베스트셀러가 됐었다. 
지나치게 자신만만한 나르시스트였던 그는 당연히 제너럴 모터스의 사장이 될 것으로 기대됐지만 그의 아이디어가 보수적인 경영진의 눈에는 지나치게 위험부담이 커 오히려 해고당했다.
그러나 들로리안은 이에 좌절하지 않고 신·구교도간에 유혈폭력이 자심하던 북아일랜드의 벨파스트에 들로리안 모터스를 설립한다. 영국정부의 자금지원을 얻어냈으나 공장은 얼마 못 가 문을 닫으면서 들로리안의 몰락이 시작된다.
재기의 꿈을 버리지 못하면서 반드시 자기의 아이디어가 꽃을 피우리라고 믿는 들로리안은 자금조달에 혈안이 되면서 FBI에게 정보를 제공하는 전과자 짐(마이클 리스폴리)의 유혹에 넘어간다. 콜럼비아의 마약딜러들과의 거래 흥정인데 이는 FBI가 들로리안을 잡으려고 파 놓은 함정이다. 그러나 들로리안은 재판에서 무죄로 풀려났다. 
영화는 들로리안의 아들과 딸, 벨파스트의 공장 근로자, 들로리안의 변호사 및 연방마약단속국의 형사를 비롯해 그를 알았던 사람들과의 인터뷰를 통해 들로리안의 파란만장했던 삶을 생생히 보여주고 들려준다. 그러나 모델출신의 그의 아내 크리스티나 페리리(모레나 바카린)는 인터뷰에서 빠졌다. 크리스티나는 들로리안이 무죄 판결을 받은 얼마 후 이혼했다. 단 아곳과 쉬나 M. 조이스 공동감독. ★★★★(5개 만점)
                                                                  <한국일보 박흥진 편집위원/ hjpark1230@gmail.com>



'레이트 나잇' (Late Night)


캐서린은 자신의 토크쇼의 시청률이 하락하면서 궁지에 몰린다.

엠마 탐슨과 민디 케일링‘콤비’
TV 토크쇼 뒷얘기 다룬 코미디


두 여자가 주인공인 코미디 드라마로 보고 즐길 만은 하지만 내용이 다소 비현실적이고 끝도 만사형통 식으로 마감돼 어딘가 맥이 빠진다.
요즘도 논란거리가 되고 있는 남성과 백인 위주의 직장(특히 연예계) 내 여성과 소수계의 권리와 균형을 다룬 점이 돋보인다.
오스카상을 탄 영국의 연기파 엠마 탐슨과 인도계 미국인 코미디언 민디 케일링이 좋은 콤비를 이루며 호연을 한다. 탐슨이 의기양양하게 뽐을 내면서 화면을 주름 잡으면 케일링이 조심스럽고 기죽은 듯한 모습으로 탐슨의 뒷바라지를 한다.
각본은 케일링이 썼고 감독은 ‘걸스’와 케일링이 주연하는 ‘민디 프로젝트’ 등 TV작품을 연출한 여류 니샤 가나트라. 영화 내용이 TV쇼에 관한 것이어서 TV통인 가나트라에겐 잘 맞는 작품이다.
무대는 맨해탄. 인기 야간 코미디 토크 프로 ‘투나잇 위드 캐서린 뉴베리’의 사회자는 영국 태생의 위풍당당한 캐서린(탐슨)으로 나이는 56세. 캐서린 밑에는 10여명의 쇼 대사를 써주는 미 명문대 출신의 사람들이 있는데 모두 백인 남자들. 이들이 찧고 까불고 농담하는 부분이 너무 많은데 시간 낭비일 뿐 아니라 천편일률적이며 별로 우습지도 재미있지도 않다. 캐서린은 이들 위에 여왕처럼 군림하는데 수틀리면 즉석에서 해고를 하면서 힘을 과시한다. 그러나 캐서린의 이런 행동은 설득력이 부족하다.
캐서린의 문제는 한때 드높던 시청률이 자꾸 하락하는 것. 특히 젊은 층이 TV 대신 소셜 미디어 등 다른 매체로 이동하면서 낡고 구태의연한 캐서린의 쇼를 외면하는 바람에 캐서린은 궁지에 몰린다. 그래서 캐서린은 궁여지책 끝에 유튜브로 센세이션을 일으킨 젊은 남자를 고용하나 대재난이나 다름없는 결과만 낫는다.
이와 함께 캐서린의 쇼 대사를 써주는 팀이 백인 남자 일색이라는 비판을 받으면서 캐서린은 마지못해 여자 작가를 모집한다. 이에 응모하는 사람이 브루클린의 동네 클럽에서 스탠드업 코미디언으로 활동하는 몰리(케일링). 
유색인종 여자가 백인 남자 일색의 팀에 합류했으니 그 대우가 어쩔지는 명약관화한 일. 그리고 캐서린도 마지못해 뽑은 몰리 알기를 우습게 안다. 그러나 몰리가 서서히 실력발휘를 하면서 팀의 동료들과 캐서린으로 부터 인정을 받기 시작하나 잘 나가던 과정에서 문제가 발생, 몰리는 해고를 당한다.
시청률의 계속되는 하락과 함께 캐서린이 과거 잠깐 저지른 불륜행위가 밝혀지면서 캐서린과 파킨슨병을 앓는 남편(잔 리트가우)과의 갈등이 생기고 캐서린은 쇼무대에서 내려온다. 죽을 지경인 캐서린이 찾아가는 곳이 몰리가 쇼를 하는 클럽. 그 다음은 어떻게 될지는 삼척동자도 아는 일.
현실적인 얘기를 다뤘는데도 사실적이라기보다는 TV 코미디 프로 같지만 여자팬들에게 어필할 영화다. R등급. ★★★ (5개 만점)
                                                              <한국일보 박흥진 편집위원/ hjpark1230@gmail.com>


‘로켓맨’(Rocketman)


깃털로 장식된 야단스런 의상을 입고 커다란 안경을 쓴 엘튼 존이 공연장에서 노래 부르고 있다

록가수 엘튼 존의 파란만장한 삶을 뮤지컬로


‘로켓맨’을 노래 부른 영국의 수퍼스타 록가수 엘튼 존(72)의 전기영화로 과도하고 과장되고 과격하도록 화려하고 요란하며 야단법석을 떠는 뮤지컬이다. 작년에 나온 록그룹 퀸스의 리드싱어 프레디 머큐리의 삶을 그린 ‘보헤미언 랩소디’와 비교하면 사람의 감정을 휘몰아 감는 감동이 미흡하다.
엘튼이 생각하고 말하는 내용을 노래와 춤을 섞어 환상적으로 묘사한 뮤지컬인데 이런 환상적인 장면이 자주 등장하면서 파란만장한 삶을 산 엘튼의 생애를 극적으로 서술하는 것을 방해하고 있다. 이로 인해 영화는 시각적으로는 눈부시지만 극적으로는 소외감을 갖게 만든다.
그러나 이 영화는 에너지 충만하고 흥분되고 대담무쌍하며 엘튼의 수많은 노래들과 눈이 어지럽도록 화려하고 다채로운 의상 등 보고 듣고 즐길만한 작품이다. 특히 영화에 활화산 같은 불길을 일으키는 것이 엘튼 역을 맡은 영국배우 태론 에저턴(29·‘킹스맨’)의 연기다. 변화무쌍하고 정력적인 연기로 노래도 자신이 직접 불렀다. 
붉은 악마를 연상케 하는 세퀸으로 장식하고 깃털로 만든 날개가 달린 붉은 의상에 커다란 안경을 쓴 엘튼이 약물과 알코올 중독자 치료소에 보무당당하게 걸어 들어와 치료소의 다른 환자들에게 자기 신세타령을 하면서 영화가 시작된다. 영화는 가끔 이 장면으로 돌아와 엘튼의 여러 문제들인 술과 약물과 섹스와 쇼핑과 비만 그리고 성적 정체성에 대한 고뇌와 고독과 불안과 소외의식 등이 노래와 춤으로 된 뮤지컬 형식으로 얘기된다. 
전후 영국의 미들섹스 교외에서 레지날드 드와잇(엘튼의 본명)으로 태어난 엘튼은 어렸을 때부터 피아노와 음악에 천재적 재능을 지녔으나 헛된 꿈에 사로잡힌 어머니 쉴라(브라이스 댈라스 하워드)와 냉정한 아버지의 사랑을 못 받고 자라 커서도 사랑에 갈급하고 자신감을 잃은 사람이 된다. 음악적 재능으로 인해 어린 엘튼은 로열 음악아카데미에서 클래식 뮤직을 공부한다. 
이어 청년이 된 엘튼은 동네 술집에서 밴드를 구성해 활동하다가 한 매니저의 눈에 띠어 영국을 순회공연중인 미국 소울 보컬그룹의 백업가수로 활동하면서 소울뮤직에 젖는다. 엘튼의 가수로서의 생애는 작사자인 버니 터핀(제이미 벨)을 만나면서 꽃 피우기 시작한다. 엘튼과 버니는 오랫동안 함께 활동하면서 많은 히트곡을 내는데 둘의 오랜 우정이 불안정한 엘튼의 삶을 붙들어준다.
엘튼의 미국 첫 공연은 1970년 현재도 샌타모니카 블러바드와 베벌리힐스가 만나는 곳에 있는 클럽 ‘투르바두어’에서 시작된다. 여기서 엘튼은 빅히트곡인 ‘크로코다일 록’을 부르는데 엘튼과 노래에 열광하는 팬들이 공중으로 떠오르면서 환상적으로 처리된다. 이를 보는 사람도 흥분해 하늘로 떠오르는 기분이다. 여기서부터 엘튼은 세계적인 수퍼스타가 된다. 
이어 열린 개인 파티에서 엘튼은 오만방자하고 멋진 음악 매니저 존 리드(리처드 매든)를 만나 그를 자신의 매니저로 고용하는데 지금까지 고뇌하고 의문하던 자신의 성적 정체성 문제도 동성애자인 존과의 관계를 통해 해결된다. 그러나 이기적인 존은 결코 엘튼의 감정적 필요를 충족시켜주지는 못한다. 
엘튼의 자살미수를 비롯해 그가 겪는 개인적 문제들이 산만하게 묘사됐고 LA 다저스구장에서의 공연을 비롯해 여러 공연 장면들이 견본 식으로 그려지는 등 결점도 있는 작품이지만 에저턴의 연기와 노래 및 의상과 촬영 등 볼만한 것도 많은 작품이다. 덱스터 플레처(‘보헤미언 랩소디’ 촬영 종료 얼마 전 해고된 브라이언 싱어 감독의 대타로 영화를 마무리 지었다.) 감독. R등급. Paramount. ★★★★(5개 만점)
                                                                 <한국일보 박흥진 편집위원/ hjpark1230@gmail.com>




‘미 제국의 몰락’(The Fall of the American Empire)


피에르-폴(왼쪽)이 자기 애인 아스파시와 훔친 돈의 처리 문제를 놓고 고민하고 있다.

박사 배달기사와 창녀 “굴러온 돈 어떻게 쓰지”… 자본주의에 대한 냉소와 비판


제목은 미국이지만 영화의 내용은 몬트리올에서 일어나는 얘기로 자본주의의 병폐를 신랄하게 비판하고 있다. 프랑스계 캐나다인 감독인 드니 아르캉(각본 겸)의 위트와 비웃음과 사회주의적 이념이 담긴 멜로드라마요 필름 느와르이자 코미디다. 온순한 영화가 가끔 과도한 폭력을 휘두른다. 
다소 믿기 힘든 동화 같은 얘기로 끝이 할리우드 영화 식이지만 아기자기한 내용과 좋은 연기가 있는 다양한 장르를 뒤섞은 재미있는 작품이다. 돈 없는 서민들이 대리만족을 느낄 수 있는 소원 성취와도 같은 작품으로 현대판 우화라고 하겠다. 
안경을 쓴 샌님 형의 철학박사 학위를 지닌 피에르-폴 다우스(알렉상드르 랑드리)는 배달차 운전사. 그는 말끝마다 철학가 이름을 들먹이면서(첫 장면에서 자기와 헤어지려는 애인 앞에서도 철학을 운운한다) 트럼프를 비롯한 잘난(?) 사람들과 세상만사를 비웃지만 인자해 거지에게 돈을 주고 빈민급식소에서 봉사활동을 한다. 
피에르-폴이 어느 날 배달을 갔다가 갱의 돈을 보관한 건물에서 일어난 강도총격사건을 목격하게 된다. 사건관계자들은 다 죽고 거액의 현찰이 든 두 개의 더플백이 건물 앞에 놓였다. 이를 들어 자기 차에 싣는 피에르-폴. 
이어 등장하는 인물이 고급창녀 아스파시(마리피에르 모랑). 피에르-폴이 이 여자를 자기 아파트로 부른 이유는 섹스 때문이라기보다 여자의 광고문구가 라신느의 말을 인용했기 때문. 둘은 서로 마음이 통해 곧바로 공범이요 애인이 된다. 거액의 현찰을 처리할 방안에 고민하던 둘은 막 교도소에서 나온 투자전문가 실뱅(레미 지라르)을 찾아가 ‘투자’상담을 한다. 한편 두 명의 형사가 피에르-폴을 뒤쫓는데 이들은 그가 돈을 가졌다고 확신하지만 물증이 없어 어쩌질 못한다. 
실뱅은 피에르-폴의 현찰을 국내에서 소화할 수가 없음을 알고 해외로 빼내 돈세탁을 하기로 한다. 그래서 찾아간 사람이 이 부문의 전문가 윌브로 타쉐로(피에르 쿠르지). 윌브로는 아스파시의 전 고객이다. 윌브로가 컴퓨터 두 대를 자기 앞에 놓고 전 세계를 무대로 돈을 세탁하는 장면이 근엄하게 보이나 아주 우습다. 
빈부차이와 돈 많은 탈세자들의 돈 세탁 그리고 갈수록 약화하는 사회 안전망 및 경찰과 정치가들의 무능과 부패를 시큼한 맛이 나게 비판하고 조소한 영화로 재미가 솔솔 난다. 연기들도 좋은데 특히 지라르와 쿠르지 그 중에서도 말쑥하니 정장한 쿠르지의 연기가 일품이다. R. 프랑스어 대사에 영어자막. ★★★★(5개 만점)
                                                             <한국일보 박흥진 편집위원/ hjpark1230@gmail.com>



‘존 윅: 챕터 3-파라벨룸’ (John Wick: Chapter 3-Parabellum)


존 윅이 킬러들을 피해 교통이 혼잡한 맨해탄 거리를 말을 타고 달리고 있다.

킬러와 킬러들 대결… 키아누 리브스 특급 액션


가공할 액션과 살육과 유혈이 장장 130분 동안 난리법석을 떨면서 보는 사람을 초죽음이 되도록 피곤하게 만드는데도 온 몸의 피가 끓어오르는 흥분감을 어찌할 수가 없다. 터무니없는 비디오게임 같은 영화로 액션이 지나치도록 오만방자하고 또 잔인하고 끔찍한 장면이 많아 때론 눈을 감게 되면서도 그 과도한 허풍에 깔깔대고 웃게 되는 액션 코미디라고 하겠다. 
얻어터지고 총에 맞고 칼에 찔리면서도 결코 죽지 않는(못하는) 수퍼맨과도 같은 초특급 킬러 존 윅(키아누 리브스)의 액션 시리즈 제3편으로 ‘파라벨룸’은 ‘평화를 원한다면 전쟁을 준비하라’는 라틴어에서 따온 것이다. 
필자는 시리즈 첫 번째부터 세 번째 까지 매번 존이 처치하는 악인들의 수를 세다가 포기하고 말았는데 얼마 전 뉴욕에서 리브스를 만나 인터뷰 할 때 “당신이 전 3편의 영화에서 처치한 악인들이 모두 몇 명이나 되는지 아느냐”고 물었더니 “모른다”고 대답했다.
영화는 제2편이 끝난 직후부터 시작된다. 전 세계적 킬러집단의 규칙을 어겨 집단에서 퇴출당할 위기에 처한 존이 데드라인인 오후 6시까지 자기를 보호해줄 킬러들의 숙박호텔인 컨티넨탈의 주인 윈스턴(이안 맥쉐인)을 찾아 맨해탄을 뛰어 달리면서 액션이 시작된다. 존의 목에 1,400만 달러의 현상금이 걸려 온갖 킬러들이 그를 뒤쫓는다.
먼저 책들로 가득 찬 도서관의 비좁은 공간에서 존과 거구의 킬러 간에 치열한 격투가 벌어지는데 여기서 두꺼운 장정이 된 책이 살인무기로 쓰인다(책 제목이 무얼까 하고 궁금하다). 이어 존은 골동품상점 안에서 또 다른 킬러들을 맞는데 여기서는 수십 개의 단도들이 피바람을 내면서 연속동작으로 쏜살같이 나른다. 영화 내내 이어지는 액션 안무가 장관으로 아름답기까지 하다. 
오도 가도 못하게 된 존은 자기에게 신세를 진 디렉터라 불리는 여자(앤젤리카 휴스턴)의 도움을 받아 모로코로 피신, 역시 자기에게 신세를 진 소피아(할리 베리)에게 도움을 요청한다. 소피아는 맹견 훈련사로 남자의 중요한 곳을 물어뜯는 두 마리의 독일 셰퍼드를 갖고 있다. 존을 여기까지 쫓아온 킬러들이 개들로부터 어디를 물리겠는가. 여기서 얘기가 좀 산만해진다. 
존은 다시 뉴욕으로 돌아오는데 자기가 없는 사이 ‘하이 테이블’이라 불리는 범죄집단이 ‘심판관’을 파견해 존을 도와준 사람들인 윈스턴과 거지대왕(로렌스 피시번) 등에게 1주일 안에 존에 대한 일처리를 제대로 하지 못하면 현 위치를 지키지 못할 것이라고 통보한다. 물론 이는 죽음을 말한다. 
이어 존과 ‘심판관’이 고용한 포장마차 스시맨과 그의 졸개들간에 스시칼이 동원된 격투가 벌어지는데 볼만한 것은 이들과 존 간의 거울의 방에서의 액션신. 마치 이소룡의 ‘용쟁호투’와 오손 웰스의 ‘상하이에서 온 여인’의 거울의 방에서의 장면을 연상시키는데 아찔하다. 온 육체와 온갖 무기가 동원되면서 존은 비좁은 맨해탄을 말을 타고 달리기까지 한다. 액션팬들이 박수갈채를 치면서 볼 영화로 흥행서도 빅히트할 것이 분명하다. 그러니 제4편이 나오지 말라는 법 없겠다. 채드 스타헬스키 감독. R등급. Lionsgate. ★★★½ (5개 만점) 
                                                                <한국일보 박흥진 편집위원/ hjpark1230@gmail.com>




‘사진’(Photograph)


밀로니가 라피(왼쪽)가 찍은 자기 사진을 보면서 라피의 사정을 듣고 있다.


가짜 약혼자 행세하다 싹트는 애잔 로맨스


외로운 홀아비와 행복하지 못한 결혼생활을 하는 부인과의 서신교환을 다룬 데뷔작 ‘도시락’(2013)과 이 영화로 할리웃의 부름을 받고 만든 로버트 레드포드와 제인 폰다가 나온 황혼기의 로맨스 얘기 ‘밤의 우리의 영혼’(2017)을 연출한 인도 감독 리테쉬 바트라의 영화로 부드럽고 애잔하고 아름다운 러브 스토리다. 
바트라는 결코 서두르지 않고 차분하게 서서히 인물들의 성격과 배경 그리고 이들 주위 사람들의 얘기와 인도의 사회적 문화적 문제들을 서술하는데 연출 스타일이 티가 나지 않고 작품에 대한 배려가 매우 인간적이어서 고요한 감동을 느끼게 된다. 정이 가는 솜씨로 간간 유머를 양념식으로 섞어 넣어 가라앉은 분위기에 자극을 준다.
이 영화도 ‘도시락’처럼 알게 모르게 은근하게 지속되는 두 남녀의 로맨스를 다뤘는데 두 사람이 배경과 계급이 다른 걸맞지 않는 짝이어서 둘의 로맨스가 결실을 맺을 것인가 아닌가하고 시종일관 궁금하게 만든다. 끝에 가서도 시원한 대답은 없는데 그 게 더 매력적이다.
뭄바이의 판자집에서 여러 명의 거리 행상들과 함께 사는 라피(나와주딘 시디키)는 거리 사진사. 어느 날 침울한 표정의 밀로니(사니아 말호트라)의 스냅사진을 찍으면서 모든 것이 서로 다른 두 사람의 관계가 이어지게 된다. 
라피는 시골 고향에 사는 할머니(화룩 자파르)에게 번 돈을 꼬박꼬박 보내는데 그가 할머니를 그토록 생각하는 이유는 후에 밝혀진다. 할머니가 라피가 장가를 안 가 먹던 약을 중단했다는 편지를 받은 라피는 궁여지책으로 밀로니의 사진을 자기 약혼자인 누리라고 속여 할머니에게 보낸다. 이에 할머니가 누리를 보려고 뭄바이에 오겠다고 하면서 라피는 수소문해 밀로니를 찾아내 자기 사정을 털어놓고 누리 노릇을 해달라고 부탁한다. 그런데 라피는 이미 고적한 표정을 한 밀로니의 사진을 보고 마음이 이끌린 상태. 
밀로니는 중산층의 온순한 성격의 여자로 회계사 공부를 하고 있는데 부모가 결혼하라고 종용하면서 마련한 상대방 남자와의 만남에도 순순히 참석한다. 
그런데 밀로니의 성격 묘사가 좀 애매모호하다. 라피의 할머니가 올라오고 라피와 밀로니는 가짜 약혼자로서 할머니를 만난다. 그러다가 이 만남은 서서히 라피와 밀로니 둘만의 만남으로 변화한다. 둘이 영화를 구경하고 데이트를 하면서도 둘은 결코 사랑의 말이나 행동은 취하지 않는다. 장래가 암담한 라피로서는 자기와 계급과 생활 여건이 판이한 밀로니에게 자기 마음을 표시한다는 것이야말로 언감생심이다. 
하나 변화를 보이는 것은 얌전한 밀로니가 라피를 만나면서 보다 적극적이 된다는 점이다. 조용하면서도 할 말은 다 하는 웅변적인 영화로 연기들이 다 좋은데 특히 자파르의 흙냄새 나는 강인한 연기가 일품. 촬영도 좋다. Amazon Studios. ★★★½
                                                                <한국일보 박흥진 편집위원/ hjpark1230@gmail.com>


‘스코틀랜드여왕 메리’의 시어샤 로난


“동작·생각·액센트까지 메리와 한몸 되려 노력”


‘스코틀랜드여왕 메리’(Mary Queen of Scots)에서 영국의 통치권을 놓고 겨루다 라이벌인 영국여왕 엘리자베스 1세(마고 로비 분)에 의해 처형당한 스코틀랜드여왕 메리로 나온 시어샤 로난(24)과의 인터뷰가 할리우드의 런던호텔에서 있었다.
창백할 정도로 하얀 피부를 지닌 로난은 아직도 귀여운 소녀 모습이었는데 질문에 액센트가 있는 콧소리로 야무지도록 똘똘하게 대답했다. 아역배우 출신인 로난은 뉴욕의 브롱스에서 태어났으나 부모와 함께 세 살 때 아일랜드로 이주해 현재 더블린에서 살고 있다. 로난은 ‘레이디 버드’를 비롯해 모두 세 차례 오스카상 후보에 오른 연기파다.

-역사극의 여왕 노릇하기가 힘들었는지.
“감정적으로 도전적이었던 것은 내가 여왕 역을 한다는 것을 머릿속에 각인시키는 것이었다. 왜냐하면 여왕이라는 것은 하나의 개념이지 사람이 아니기 때문이다. 이어 메리에 관한 역사책들을 통독했다. 이와 함께 나의 이런 접근 방식을 때론 내려놓고 내가 과거에 맡았던 다른 허구의 인물을 대하듯이 메리 역에 다가갈 필요도 있었다. 그리고 액센트와 의상, 분장과 헤어스타일 및 메리의 동작 등을 갖추고 배워가면서 메리와 한 사람이 되려고 노력했다.”

-가장 최근에 당신이 감정적으로 깊은 감동을 받은 예술작품은 무엇인가.
“얼마 전에 처음으로 본 마이크 리가 감독하고 레즐리 맨빌과 짐 브로드벤트가 공연한 ‘어나더 이어’다. 레즐리의 연기는 지금까지 내가 본 연기 중에서 가장 눈부신 것이었다. 그런 강렬한 연기를 본 적이 없기 때문에 보면서 마치 바늘방석에 앉아 있는 기분이었다. 난 지금 ‘리틀 위민’(오는 12월 개봉 예정)을 찍고 있는데 레즐리의 연기가 내 역을 표현하는데 큰 도움이 되고 있다.”

-당신은 연기뿐 아니라 용모도 메릴 스트립과 닮았다고들 하는데 이에 대한 느낌은 어떤가.
“그렇게 재능 있는 사람과 연기와 용모가 닮았다는 말을 듣는 것은 참으로 멋진 일로 그보다 더 나를 행복하게 만들어주는 것도 없다.”

-엘리자베스 역의 마고 로비와의 관계는 어땠는지.
“우린 리허설 중에도 서로 멀리 떨어져 있기로 결정했다. 촬영 전에 잠깐 몇 차례 만났을 뿐이다. 그래서 분장한 마고의 모습이나 그녀가 어떻게 역을 해낼지에 대해서도 전연 몰랐다. 그건 그 쪽에서도 마찬가지다. 서로를 모른 다는 것이 내 역에 큰 도움이 되었다. 따라서 우리가 거의 영화 마지막 부분에 가서 처음으로 만났을 때의 우리의 표정은 연습한 것이 아니라 실제의 것이었다. 우린 한 달 만에 처음으로 만나 감정적이 되지 않을 수가 없었다. 너무 격해 몸이 떨렸을 지경이었다. 그것은 내가 영화 세트에서 겪은 가장 강렬한 경험 중의 하나다.”

-분장한 마고 로비의 모습을 보고 얼마나 놀랐는가.
“인상이 너무 강해 대단히 놀랐다. 혹독하도록 엄격한 모습으로 실제 엘리자베스의 모습을 그대로 닮았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내가 원래의 마고의 얼굴을 잘 알고 있었기 때문에 그토록 달라진 모습에 충격을 받았을 정도였다. 그에 반해 내 모습은 너무 누추해 우린 서로 극과 극에 서 있는 셈이었다.”

-역사적 관점에서 메리라는 여자를 어떻게 생각하는가.
“스코틀랜드 역사에서 매우 중요한 인물로 지금도 메리는 스코틀랜드 문화와 독립성을 대변하면서 스코틀랜드인들의 사랑을 받고 있다. 영국이 아닌 순수한 스코틀랜드의 상징으로 그것은 매우 귀중한 사실이다. 그리고 메리는 강한 사람이었다. 난 사람들 기분을 상케 하기를 꺼려하는 약골인데 그런 내가 배짱 대단한 메리 역을 하면서 나도 모르게 강해지고 또 결단력이 있게 되는 것을 알 수 있었다. 메라는 자신의 본능을 믿은 사람이었다. 그리고 우리가 무언가를 결정하려면 메리처럼 자신의 배짱을 믿는 수밖에 없다는 것을 깨달았다. 이 역은 젊은 여자인 나를 고무시켜 주었으며 또 직업인으로서도 내가 할 일을 결정하는데 큰 힘이 되었다.”

-메리 얘기는 그동안 영화와 TV작품으로 여러 차례 만들어졌는데 그것들을 참고로 봤는지.
“아니다. 내가 할 일을 다른 사람이 한 것과 비교하지 않기 위해서 안 봤다. 메리에 관한 책과 그 시대에 관한 책들은 많이 봤다. 그러나 어느 순간에 가서 나는 책에서 배운 것을 다 접어놓고 배우로서 느끼는 바를 역에 투입해야 했다. 그것은 내가 다른 영화의 역을 맡았을 때에 했던 자세와 마찬 가지다.”

-젊은 여자로서 연기한 역사적 인물이 당신에게 직접 어떤 영향이라도 미쳤는가.
“그것이 실제 인물이든지 아니든지 간에 어떤 인물을 연기하려면 그 사람을 실제 인물로 취급해야 한다. 그래서 그 인물에 대해 알아야 한다. 그 사람이 잘났건 못났건 또 똑똑하건 멍청하건 간에 그 사람은 본질적으로 연기하는 사람의 다른 한 변형이 될 수 있기 때문이다. 그것은 마치 새 사람을 친구로 맞아 그로부터 새 아이디어나 의견을 취하는 것이나 마찬 가지다.”

-메리는 ‘그 누구에게도 머리를 숙이지 말라’고 말하는데 이 말을 어떻게 생각하는가.
“그것은 자신을 잘 알아서 타협할 때와 아닐 때를 판단할 수 있어야 한다는 말로 해석할 수 있다. 남의 말을 전연 무시하고 내가 하고 싶은 대로만 하겠다면 그 사람은 매우 고독한 존재가 될 수밖에 없다. 따라서 중간지점에서 사람을 만나 그의 얘기를 듣고 타협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그러면서도 그 무엇보다도 자신의 입지를 지켜야 한다. 타협은 하면서도 자신을 아는 것과 함께 자신에게 중요한 것을 버리지 말아야 한다는 것이다. 난 집에서 그런 교육을 받으면서 자랐다”

-메리는 당신과 같은 24세에 아들을 낳았는데 본인도 아이를 낳고 싶은가.
“지금 당장은 아니지만 난 아이들을 낳고 싶다. 언젠가 아이들을 낳고 싶다. 그것이 내가 늘 바라는 바이다. 그러나 지금 당장은 개를 갖고 싶다.”

-개는 있는지.
“프랜이라는 개가 있지만 나보다는 엄마의 것이나 마찬가지다. 엄마는 프랜을 마치 자기 자식처럼 사랑한다. 내가 프랜에게 내 자리를 빼앗긴 셈으로 난 이제 엄마에게 두 번째 것에 지나지 않는다.”

스코틀랜드여왕 메리는 친척인 영국여왕 엘리자베스와의 권력다툼의 제물이 된다.

-이 영화에 나오기 전에 메리에 대해 잘 알고 있었는지.
“학교에서 역사를 공부할 때 다소 들은 바 있다. 그러나 그것들은 다 단편적인 것으로 완전한 내용이 아니었다. 역을 맡고나서야 본격적으로 메리에 관해 파고들었는데 그러면서 메리에 관한 많은 문서들이 얼마나 허위이고 불공정한지를 알게 되었다.”

-메리에 관해 공부하면서 가장 놀랐던 것은 무엇인가.
“가장 놀랐던 것은 메리가 정치적으로 상당히 기민한 사람으로 훌륭한 정치인이었다는 사실이다. 메리는 스코틀랜드로 돌아오기 전까지 프랑스 왕비로 어렸을 때부터 궁정에서 자랐기 때문에 그 안에서 돌아가는 일에 정통했다. 그런데도 역사가들은 메리를 그렇게 묘사하지 않았다.”

-휴가는 가는지.
“갈 수 있는 대로 자주 가려고 한다. 최근에는 이탈리아에 갔다 왔다.”

-최근 전 세계적으로 여자들이 집권자가 된 나라들이 많은데 그런 면에서 이 영화가 현재 국제 정세를 어떻게 반영한다고 생각하는가.
“역을 맡으면서 내가 깨닫게 된 것은 이 영화가 정치인들과 왕실 사람들을 보다 인간적으로 그렸다는 것이다. 우린 그들을 신문이나 TV로 보면서 그들이 사람들이라는 것을 잊곤 한다. 이 영화가 그들의 막후 얘기를 들려주면서 사람들이 형식적으로만 알던 정치인들이나 왕실 사람들의 인간적인 면을 보여줬다는 점에서 우리가 실제의 그들을 보는 시각을 새롭게 해주었다고 생각한다.”

-요리는 하는지.
“주로 엄마가 한다. 난 요리 솜씨가 아주 서툴다. 그러나 먹긴 잘 한다.”

-현대의 군주제를 어떻게 생각하는가.
“그들은 원해서 왕족으로 태어난 것이 아니다. 그들이 원하건 원하지 않건 간에 왕족으로 태어났을 뿐이다. 흥미 있는 생활 스타일이라고 생각한다. 이 영화와 함께 TV 드라마 시리즈 ‘크라운’과 같은 작품들은 나로 하여금 그들이 갖고 있는 인간적인 면을 알게 하는데 큰 도움을 주었고 다른 사람들도 그렇게 느꼈으리라고 생각한다.”

-메리와 엘리자베스는 사촌간으로 서로를 존경하면서도 경쟁적인 관계인데 본인도 친척간에 그런 경험이 있는가.
“내 사촌들은 다 나보다 나이가 위인데다가 하는 일도 각기 달라 그런 경험이 없다.”
                                                         <한국일보 박흥진 편집위원/ hjpark1230@gmail.com>




지하실의‘기생충’


봉준호 감독이 올 해 칸영화제서 최고작품상인 ‘황금 종려상’을 받은 ‘기생충’(Parasite)은 지하실에서 시작돼 지하실에서 끝난다. 지하실에는 지지리도 궁색한 김기택(송강호) 네 네 가족이 살고 있는데 이들은 기를 쓰고 지하에서 지상으로 올라오려고 안간힘을 쓰지만 그 게 어디 그리 쉬운 일인가. 질식할 것만 같은 비좁은 지하실의 셋방에 사는 김 씨네를 보자니 한국의 빈곤한 사람들에게는 결코 탈출구가 없다는 것처럼 느껴져 참담한 심정이 된다.
‘기생충’은 봉감독의 여느 다른 영화들보다 훨씬 오락성이 강하고 재미있다. 가족 및 사회비판 드라마요 공포스릴러이며 블랙 코미디이자 비극으로 앙상블 연기도 매우 훌륭하다. 특히 봉감독은 ‘헬 조선’ 한국의 심한 빈부격차를 거의 분노에 찬 심정으로 신랄하게 비판하고 있다. 김 씨네가 모두 신분을 위장한 사기꾼들이어서 지난 해 칸영화제서 대상을 받은 일본의 히로카즈 코레-에다 감독의 도둑 일가족 드라마 ‘어느 가족’을 생각나게 한다.
기택과 그의 욕 잘하는 아내 충숙(장혜진) 및 대입시험에 네 번이나 낙방한 아들 기우(최우식) 그리고 미술에 뛰어난 재질을 지닌 딸 기정(박소담)은 모두 백수들로 현 직업(?)은 집에서 피자 상자 접는 일.(사진)
어느 날 미국 유학을 가게 된 기우의 친구가 기우에게 자기가 가정교사로 영어를 가르치는 박동일 사장(이선균)의 딸 고 2년생 다혜(정지소)를 자기 대신 가르쳐 달라고 부탁한다. 이에 기우는 기정이 위조한 연세대 재학증명서를 들고 박사장의 집엘 찾아가 박사장의 부인 연교(조여정)를 만난다. 면접에서 연교는 “이즈 잇 오케이 위드 유”라며 영어를 쓴다. 그리고 기우를 케빈이라고 부르겠다고 영어 작명까지 해준다. 
박사장 네는 유명 건축가가 설계한 초현대식 건물에 살면서 벤츠를 타고 다니는 엄청난 부자로 어린 외아들 다송(정현준)의 장난감도 미제다. 대사 간간이 영어가 툭툭 사용되면서 미국 물 먹은 한국인들의 풍토를 보여준다.
기우가 박사장 집에 고용되면서 김씨네 일가족이 한 사람씩 차례로 박사장 네 집에 스며들어 본격적인 기생충 노릇을 시작한다. 먼저 기정이 일리노이대학서 미술심리치료를 전공했다며 아주 어렸을 때 귀신(?)을 보고 경기를 낸 다송의 미술선생 겸 치료사로 고용된다. 기정의 영어이름은 제시카. 이어 기정은 자기가 입고 있던 팬티를 사용해 박사장의 운전사를 쫓아내고 그 자리를 기택이 차지한다.     
그리고 김 씨네는 오랫동안 박사장네 살림을 맡아온 가정부 문광(이정은)의 복숭아 앨러지를 이용해 그를 몰아내고 그 자리를 충숙이 차지한다. 타고난 사기꾼들인 김씨네 일가가 꾸며내는 간계가 발칙하면서도 경탄스럽다. 물론 이들은 자기들이 한 가족임을 숨긴다.
이렇게 해서 지하에서 지상으로 올라온 김 씨네 네 마리의 기생충들은 박사장 네에 기생하면서 모처럼 태평성대를 누린다. 그러나 박사장 네가 여름 캠프를 간 사이 어느 폭우가 쏟아지는 날 밤 문광이 챙기지 못한 물건을 가지러 왔다고 대문을 두드리면서 영화는 본격적인 공포 스릴러 식으로 변한다.
박사장 네는 자기들보다 못한 사람들에게 갑질을 하는 나쁜 사람들이 아니다. 김 씨네에게도  존대 말을 하면서 깍듯이 예의범절을 지키는 착한 사람들이다. 그러나 비록 박사장과 그의 부인은 갑질은 안 하지만 김씨네를 완전히 하류인간들로 여긴다. 김 씨네 같은 사람들에게서는 행주 삶는 냄새가 나고 저들처럼 지하철 타는 사람들에게서도 특이한 냄새가 난다고 부자 대 빈자의 서로 다른 냄새론을 펼친다. 이를 엿듣는 기택과 충숙. 이 대사 듣고 지하철 타는 사람들의 속이 다소 언짢았겠다.                   
그러고 보면 표면상으로는 김 씨네를 자기들과 같은 인간으로 대하는 듯이 보이는 박 씨네의 친절과 예우는 그런 척하는 것이나 마찬 가지. 김 씨네도 전부 자기들 신분을 위장하고 척하는 사람들이니 만큼 이 영화는 ‘프리텐드’(척하는) 영화임에 진배없다. 결국 기택은 인간으로서의 존엄성을 철저히 멸시 당하면서 증오심에 눈이 뒤집혀 유혈참극이 일어난다.
그러나 김 씨네를 두둔할 것도 아니다. 이들은 전형적인 사기꾼들로 입심들도 좋고 상소리들도 잘 한다. 이들이 가난에 지쳐 사기꾼들이 된 것을 환경의 탓이라고만 보기엔 어딘가 석연치 않은 점이 있다. 아무리 살 길이 막막하고 가난에 쪼들리면서 남의 집 지하실 방에 세 들어 산다고 하지만 모두 사지가 멀쩡한 사람들이 별로 힘 안들이고 사기와 거짓을 해서라도  편하게 살아보겠다는 마음가짐을 정당화 할 수는 없다. 그 것은 부자의 것은 빨아먹고 살아도 좋다는 기생충적 사고방식이다. 김 씨네는 모두 건강들 하던데 막노동이라도 해볼 생각을 했는지 궁금하다.               
지하실에서 나온 기택 네는 잠시 지상에서 햇볕을 즐기다가 다시 지하실로 내려간다. 특히 기택의 모습은 기생충의 끈질긴 생명력을 보는 것 같다. 영화는 기우의 “돈이 최고다”라는 말로 끝난다. 그다지 좋은 메시지는 아닌 것 같다. ‘기생충’은 현재 한국에서 1,000만 관객을 향해 빅히트 중인데 미국에서는 10월에 개봉된다. ★★★★1/2(5개 만점) 
                                                               <한국일보 박흥진 편집위원/ hjpark1230@gmail.com>




‘사랑아 나는 통곡 한다’


5피트 3인치의 단구에 동그란 얼굴과 사슴의 눈을 가진 할리웃 황금기스타 올리비아 디 해빌랜드 하면 선 듯 생각나는 사람이 외유내강한 여인의 전형인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의 멜라니다. 디 해빌랜드는 단아한 모습에 착한 인상이어서 편한 이웃집 아주머니 같아 보이지만 고요한 위엄과 내적 힘을 지닌 여인으로 불과 27세 때인 1943년 막강한 워너 브라더스사를 상대로 부당고용 소송을 제기해 승소한 강한 의지의 소유자다. 7월 1일로 103세가 되는 디 해빌랜드는 현재 파리에서 살고 있다.
온순한 모습 속에 강철 같은 의지를 지닌 해빌랜드의 특성을 잘 보여주는 또 다른 영화가 일본어 제목을 그대로 따온 것 같은 ‘사랑아 나는 통곡 한다’(The Heiress^1949)이다. 이 영화는 헨리 제임스의 소설 ‘워싱턴 스퀘어’(Washington Square)를 원작으로 연출한 연극 ‘상속녀’(The Heiress)를 바탕으로 패라마운트사가 만든 흑백 명작이다. 부녀간의 갈등과 비극적 사랑의 이야기로 명장 윌리엄 와일러가 감독했는데 빈틈없이 직조되고 절제된 연출과 연기가 돋보이는 성격탐구이자 통렬한 심리극이요 쓰라린 러브 스토리다.
와일러는 브로드웨이에서 연극을 본 뒤 영화화를 제안한 디 해빌랜드의 권고로 연극을 보고 연출을 결정했는데 물론 디 해빌랜드는 와일러에게 연극의 주인공인 소심한 노처녀 캐서린 역을 자기에게 달라고 요청했다. 와일러가 “방 안에서의 두 사람간의 감정의 충돌과 갈등이 총격전보다 더 흥분되고 긴장감이 있을 수 있다”고 말했듯이 영화는 대부분 실내에서 진행되는 가정 드라마인데도 서스펜스마저 느껴지는 쓴맛 나는 치열함을 품고 있다.     
19세기 중반. 뉴욕의 워싱턴 스퀘어에 사는 유복한 의사 오스틴 슬로퍼(랄프 리처드슨)에게는 소심하고 수줍음 타는 장성한 딸 캐서린이 있다. 오스틴은 딸을 무미건조하고 매력도 없는 여자로 치부하면서 혹독할 정도로 엄격하게 대한다. 이에 캐서린은 주눅이 들어 집에서 수나 놓으면서 두문불출한다. 이를 안타깝게 여기면서 어떻게 해서라도 캐서린을 시집보내려고 안달이 난 사람이 캐서린과 한 집에 사는 숙모 라비니아(미리암 합킨스).
어느 날 모처럼 라비니아와 함께 한 파티에 참석한 캐서린은 여기서 자기에게 호감을 표하는 미남 모리스 타운센드(몬고메리 클리프트)에게 마음이 이끌린다. 이를 눈치 챈 라비니아는 둘을 짝지어주려고 적극적으로 나선다. 둘의 관계가 서서히 가까워지면서 캐서린은 처음으로 사랑에 젖어 어쩔 줄을 모른다. 
그러나 오스틴은 백수건달인 모리스가 캐서린의 재산을 노린다고 확신하고 딸에게 “네가 만약에 상속녀가 아니더라도 모리스가 널 좋아하리라고 생각하느냐”고 힐문한다. 이에 캐서린은 평소 자기를 멸시하던 아버지가 이번에는 모처럼 찾은 자신의 사랑마저 비웃는 것에 격분, 부녀간에 살벌한 감정 대립이 일어난다.
그리고 캐서린은 모리스와 함께 야반도주를 약속한다. 캐서린은 짐을 챙겨 약속시간에 오겠다는 모리스에게 자기는 아버지와의 관계를 끊기로 했다고 말한다. 모리스가 떠난 뒤 캐서린은 가방을 챙기고 모리스가 오기만을 기다리나 모리스는 끝내 나타나지 않는다. “오, 모리스”‘하며 통곡하는 캐서린. 
그로부터 몇 년 후. 사망한 아버지의 재산을 물려받은 캐서린 앞에 여전히 백수인 모리스가 다시 나타난다. 모리스는 약속시간에 자기가 오지 않은 것은 자기로 인해 캐서린이 아버지와의 관계를 끊으면 캐서린이 빈털터리가 될 것이 두려웠기 때문이라고 변명한다. 그리고 자기 사랑은 변치 않았다고 다짐한다.
이에 캐서린은 모리스에게 과거 실행하지 못한 야반도주를 하자고 제의한다. 그날 밤 짐을 챙겨 약속시간에 캐서린의 집에 도착한 모리스가 문을 두드리자 캐서린은 하녀에게 빗장을 지르라고 지시한다. 모리스가 문을 두드리면서 “캐서린, 캐서린‘하며 울부짖는 소리를 뒤에 남긴 채 등불을 손에 들고 계단을 올라가는 캐서린의 표정(사진)이 목석의 그 것처럼 차갑고 단호하다.
아버지로부터 잔인에 관해 한 수 배운 캐서린의 모리스에 대한 복수가 통쾌할 정도다. 그런데 몬티는 내가 가장 좋아하는 배우로 그런 탓이어서인지 나는 영화를 볼 때마다 ‘사랑에 통곡’하는 그에게 다소 동정이 가곤 한다. 여인의 해방과 독립 그리고 자존회복에 관한 드라마이기도 한데 디 해빌랜드가 엄격할 정도로 절제된 연기를 해 오스카 주연상을 탔다. 이 밖에도 음악(아론 코플랜드)과 의상 및 미술상 등을 탔다. 
디 해빌랜드는 작년에 할리웃 황금기의 라이벌 스타들인 베티 데이비스와 조운 크로포드의 경쟁의식을 다룬 미니 시리즈 ‘불화:베티와 조운’(Feud:Bette and Joan)을 제작, 방영한 케이블 TV FX를 상대로 LA법원에 명예훼손 등의 이유로 소송을 제기해 큰 화제가 됐었다. 시리즈에서 디 해빌랜드 역은 캐서린 제이타-존스가 맡았는데 디 해빌린드는 시리즈가 자기 허락도 없이 자신을 가십이나 재잘대며 라이벌 스타였던 여동생 조운 폰테인을 욕하는 천박한 여자로 묘사했다고 고소한 것. 그러나 1심과 항소심에서 모두 패소했다. ‘사랑아 나는 통곡 한다’가 Criterion에 의해 새로 프린트된 DVD로 나왔다.   
                                                             <한국일보 박흥진 편집위원/ hjpark1230@gmail.com>



‘기생충’


봉준호(49)가 감독한 자본주의 병폐를 파헤친 가족 드라마 ‘기생충’(Parasite·사진)이 최근 폐막된 칸영화제서 대상인 황금종려상을 탔다. 올해로 100주년을 맞는 한국영화로선 최초의 수상이다. ‘기생충’과 함께 경쟁부문에 오른 작품의 감독들로 이미 대상을 탄 테렌스 맬릭, 쿠엔틴 타란티노, 켄 로치 및 다르덴 형제들을 물리친 쾌거다.
한국영화는 그동안 칸영화제서 감독상(‘취화선’의 임권택), 여우주연상(‘밀양’의 전도연) 및 각본상(이창동의 ‘시’) 등을 탔는데 경쟁부문에 16번이나 도전했으나 번번이 고배를 마셨다. 봉감독은 2년 전 ‘옥자’로 경쟁부문에 오른 뒤 두 번째 도전으로 경사를 맞았다.
‘기생충’이 대상을 타면서 벌써부터 작년에 같은 상을 탄 일본의 히로카주 고레-에다 감독의 ‘어느 가족’이 오스카 외국어영화상을 탔듯이 ‘기생충’도 그럴 가능성이 있지 않겠느냐는 다소이른 예측이 나돌고 있다. 그러나 비록 ‘어느 가족이’ 오스카상을 타긴 했지만 10명 안팎의 칸영화제 심사위원들과 8,000여명의 아카데미회원들의 취향은 현격한 차이가 나 섣부른 낙관론은 금물이다.
칸영화제 대상 수상작들은 종종 지나치게 예술성에 치중해 대중성이 희박하다는 비판을 받는다. 대상을 받았으나 타작수준에 머무르는 재미라곤 자취를 감춘 영화들이 한 둘이 아니다. ‘나, 대니얼 블레이크’ ‘코끼리’ ‘전생을 회상할 수 있는 분메삼촌’ ‘댄서 인 더 다크’ 및 ‘와일드 앳 하트’ 등이 그런 것들. 그러나 봉감독은 예술성과 대중성을 잘 조화시킬 줄 아는 감독으로 ‘기생충’은 현재 한국에서 빅히트 중이다.
나는 봉감독을 LA에서 몇 차례 만난 적이 있다. 9년 전에 그의 영화 ‘마더’와 2년 전에 ‘옥자’ 홍보차 왔을 때다. 떠거머리 총각 모습에 나이보다 훨씬 젊어 보이는 그는 사람이 내적으로 든든하면서도 소박하고 겸손해 정이 갔다. 그는 각본을 쓰고 감독을 겸하는 작가주의 감독으로 역시 이 범주 안에 드는 박찬욱, 이창동, 홍상수 및 김기덕 등과 함께 세계가 알아주는 감독이다. 
봉감독은 장르를 뛰어넘으며 다양한 작품을 만들지만 특히 스릴러에 능하다. 그래서 서스펜스 스릴러의 장인인 히치콕을 좋아한다. ‘살인의 추억’ ‘괴물’ ‘마더’ 등이 다 스릴러로 이로 인해 할리우드에서 스릴러각본이 많이 온다고 한다.
그의 작품이 비평가들로부터 찬사를 받는 이유 중 하나가 장르를 선택하면서도 그 것을 있는 그대로 따르기보다 변형을 시키기 때문이다. 이렇게 장르의 변형적 연출을 통해 오락성과 개인적 색채가 강한 예술성을 잘 결합할 줄 아는 감독이다.
봉감독이 ‘마더’로 LA를 방문한 것은 주연인 김혜자가 필자가 속한 LA영화비평가협회에 의해 2010년도 최우수 주연여배우로 뽑혔기 때문이었다. 시상식에 김혜자와 동석한 그는 “처음에 소식을 들었을 때 충격을 금치 못했지만 참으로 당연한 일”이라고 소감을 털어놓았다.
이어 봉감독은 “아직도 영화가 무엇인지 잘 모르겠다. 현재 내 자신의 스타일을 찾아가고 있다”면서 ‘마더’까지가 자기 영화생애의 초기가 될 것이라고 내다봤다. 그의 말대로 봉감독은 ‘마더’ 이후 만든 ‘설국열차’로 세계적 감독의 대열에 참여했고 ‘옥자’에 이어 ‘기생충’으로 명실공한 일급 세계감독의 반열에 올라섰다.
그래픽 디자이너인 아버지로 인해 집안 분위기가 봉감독을 초등학생 때부터 영화 쪽으로 몰고 갔다고 한다. 어려서부터 방안에 처박혀(다소 대인 기피증이 있다고) 주한미군 방송 AFKN-TV에서 방영하는 영화를 보면서 영화인의 꿈을 키우게 됐다. TV가 그의 시네마테크였다.
그 때 본 영화 중 깊은 충격과 감동을 받은 것이 프랑스의 앙리-조르지 클루조기 감독하고 이브 몽탕과 샤를르 바넬이 나온 서스펜스 스릴러 ‘공포의 보수’. 꼬마 때 이런 영화를 좋아했으니 상당히 조숙한 사람이다. 영화를 보면서도 대사를 몰라 상상으로 내용을 그리곤 했는데 그 뒤로 헛것을 자주 보는 버릇이 생겼다고. 이 헛것이야 말로 예술가의 비전이겠다. 그가 좋아하는 또 다른 감독들로는 김기영, 쇼헤이 이마무라(‘뱀장어’로 칸영화제 대상 수상) 그리고 조나산 데미. 
봉감독은 필자와의 인터뷰 끝에 “제작비에 대한 예의로라도 많은 관객의 사랑을 받는 영화를 만들고 싶지만 돈을 추구한다거나 내용을 타협하지는 않을 것”이라고 힘주어 말했다. 결의가 단단해 보였다.
‘기생충’은 그가 만들겠다고 다짐한 작은 영화에 속한다. 백수가족의 가장 김기택(봉감독과 함께 4편의 작품을 만든 송강호)의 장남 기우(최우식)가 자기 신원을 속이고 부잣집 박사장의 큰 딸의 과외공부 교사로 입주한 뒤 기우의 가족들이 하나씩 박사장의 집으로 진입해 기생한다는 내용. 빈부격차가 심한 ‘헬 조선’의 어두운 이면과 탐욕과 계급 간 갈등을 그린 블랙코미디이자 비극이요 스릴러 기운마저 감도는 현대판 우화라는 평을 받았다. ‘기생충’은 미국에서는 네온(Neon)사에 의해 10월 11일에 LA와 뉴욕 등 대도시에서부터 개봉된다. 이 때 개봉하는 이유는 시상시즌에 맞추기 위해서다.         
                                                             <한국일보 박흥진 편집위원/ hjpark1230@gmail.com>


‘케이 세라 세라’


나는 아직도 내가 중학생 때 서울 남영동에 있던 성남극장에서 본 히치콕의 ‘나는 비밀을 알고 있다’에서 도리스 데이(사진)가 부르는 노래 ‘케이 세라, 세라’를 들으면서 노래가 참 좋구나하고 감탄하던 기억이 생생하다. 그런데 데이가 제임스 스튜어트의 아내로 나온 이 영화는 스릴러의 거장 히치콕의 영화치곤 타작이다.
노래의 원제는 ‘왓에버 윌 비, 윌 비’이지만 ‘세상만사 다 필연적이다’라는 뜻을 지닌 ‘케이 세라, 세라’로 더 잘 알려진 이 노래는 데이의 상표가 된 곡으로 오스카 주제가상을 탔다. 이 노래는 한국에서도 크게 유행했는데 ‘될 대로 되라’하면서 신세 한탄하는 사람들이 후렴처럼 빌려 쓰기도 했다.
배우이자 가수요 동물애호가로 미국의 국보급 존재였던 데이가 13일 캘리포니아주 카멜에서 97세로 타계했다. 데이하면 연상되는 모습이 깨끗하고 단정하고 착한 이웃집 아주머니의 그 것이다. 배우와 가수로서 데이의 인기가 절정을 이룬 1950년대 태평성대를 누리던 아이젠하워 시대에 딱 맞는 사람이었다. 데이는 이렇게 현모양처 형이면서도 야릇한 성적매력을 발산했는데 그의 목소리도 감칠맛 나게 달콤하면서도 어딘가 관능적이었다. 
그런데 내가 보기엔 가수로 연예계 생활을 시작한 데이는 연기보다는 노래가 더 낫다는 생각이다. 데이의 연기는 무던한 편으로 그가 나온 많은 영화들이 로맨틱 코미디여서 보기엔 즐거우나 탁월한 연기력을 발휘할 장르가 아니었기 때문인지도 모르겠다. 1950년대와 1960년대에 걸쳐 미국인들의 사랑을 한 몸에 받으며 흥행몰이를 했던 데이는 생애 39편의 영화에 나와 록 허드슨과 공연한 로맨틱 코미디 ‘필로 토크’로 딱 한번 오스카 주연상 후보에 올랐다. 데이와 허드슨은 이 영화 외에도 또 다른 로맨틱 코미디 ‘러버 컴백’과 ‘센드 미 노 플라워스’등에서 좋은 콤비를 이뤘었다.
데이가 나온 또 다른 로맨틱 코미디들로는 클라크 게이블과 공연한 ‘티처스 펫’ 리처드 위드마크와 공연한 ‘터널 오브 러브’, 데이빗 니븐과 공연한 ‘플리즈 돈 이트 더 데이지스’및 제임스 가너와 공연한 ‘무브 오버, 달링’ 등이 있다. 데이의 마지막 영화는 역시 로맨틱 코미디로 브라이언 키스와 공연한 ‘위드 식스 유 겟 에그롤’이다. 이들은 다 그저 기분 좋고 따스한 무공해 영화들이다. 
그게 그거 같은 이런 영화들을 제치고 데이가 십분 연기력을 발휘한 영화가 웨스턴 뮤지컬 ‘컬래미티 제인’이다. 데이는 여기서 서부시대 실제 인물이었던 총 잘 쏘는 괄괄한 남자 스타일의 컬래미티 제인으로 나와 맹렬한 연기를 한다. 여기서 데이가 부른 주제가 ‘시크릿 러브’도 오스카 주제가상을 탔는데 이 영화는 데이가 가장 좋아하는 자기 작품. 데이의 상대역인 전설적인 서부의 총잡이 와일드 빌 히칵으로는 하워드 킬이 나온다.
그리고 뮤지컬 드라마 ‘러브 미 오어 리브 미’에서는 1920년대 시카고의 실제 갱스터였던 마틴 스나이더(제임스 캐그니)의 가수 연인 루스 에팅으로 나와 호연했다. 또 스릴러 ‘미드나잇 레이스’에서는 스토커에 시달리는 부잣집 아내(남편 역은 렉스 해리슨)로 나와 자주 비명을 질러대면서 색다른 모습을 보여줬다.
데이는 ‘케이 세라, 세라’와 ‘시크릿 러브’ 외에도 수많은 히트곡들을 냈는데 그 중에서 내가 좋아하는 것들은 ‘센티멘탈 저니’와 ‘이츠 매직’ 그리고 ‘바이 더 라이트 오브 더 실버리 문’이다. ‘센티멘탈 저니’는 1945년에 나와 2차대전 참전 미군들의 큰 사랑을 받았다. 데이는 생애 뒤 늦게 2011년 자신의 히트곡 모음집 ‘마이 하트’를 출반했는데 이 음반은 나도 갖고 있다.
데이는 2011년 LA영화비평가협회에 의해 생애업적상 수상자로 뽑혔다. 그러나 2012년 1월에 열린 시상식만찬에는 참석치 않고 대신 집에서 전화로 보낸 고맙다는 메시지를 들었던기억이 난다. 데이는 할리웃 외신기자협회(HFPA)가 매우 사랑한 스타였다. 생애업적상인 세실 B. 드밀상을 비롯해 무려 세 차례나 인기상을 탔다.
온화하고 상냥한 모습으로 가정생활도 평탄할 것 같았던 데이는 뜻 밖에도 결혼생활은 불행했다. 모두 네 차례 결혼했는데 세 번째 남편 마티 멜처는 데이가 벌어놓은 돈 2,000만달러를 아내 몰래 투자해 탕진하고 50만달러의 빚까지 남기고 죽었다. TV출연을 싫어하는 데이가 1968년 CBS의 ‘도리스 데이 쇼“의 호스트를 수락한 까닭도 파산에서 벗어나고 죽은 남편의 동업자를 상대로 제기할 소송비용을 마련하기 위해서였다. 데이는 1970년대 초 은퇴해 카멜에서 동물애호가로 활동했다.
신시내티에서 출생한 도리스 데이(본명 도리스 카펠하프)는 처음에 10대 때부터 재능을 보인 댄서로 활동하려고 했으나 교통사고로 다리를 크게 다쳐 포기했다. 이어 라디오쇼에서 노래하는 데이의 음성을 들은 신시내티의 밴드리더 바니 랩이 데이를 자기 나이트클럽 쇼에 출연시키면서 가수의 길로 접어들었다. 데이는 생애 총 30곡의 탑20를 기록했다. 미국의 스윗하트라 불리던 데이는 이제 저 세상으로 ‘센티멘탈 저니’를 떠났다. 페어웰 도리스!         
                                                             <한국일보 박흥진 편집위원/ hjpark1230@gmai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