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이야기

2014년 7월 29일 화요일

‘트랜스포머: 사라진 시대' 마크 왈버그




“모든 역은 늘 도전… 날 키울 수 있는 작품 찾아”


비평가들의 혹평에도 불구하고 전 세계서 빅히트를 한 마이클 베이 감독의 소음과 파괴의 난장판 블락버스터 액션영화‘트랜스포머: 사라진 시대’의 주인공 마크 왈버그(43)와의 인터뷰가 베벌리힐스의 포시즌스 호텔서 있었다.‘트랜스포머’는 하스브로 장난감을 모델로 만든 영화. 왈버그는 시리즈 3편에 모두 주연한 샤이아 르부프에 이어 제4편에 주연으로 발탁됐는데 비록 얼굴에 잔 수염이 나긴 했지만 나이에 비해 소년티가 났다. 왈버그는 서민적인 모습과 자세로 위트와 농담 그리고 때론 상소리를 서슴없이 섞어가면서 질문에 솔직하고 직선적으로 대답했다. 사람이 매우 겸손해 질문자에게“네”라고 깍듯이 존댓말을 썼는데 도무지 수퍼스타 티를 내지 않아 마치 친구와 대화를 나누는 듯이 편안했다. 그런데 왈버그의 아버지는 한국전에 보병으로 참전한 용사다.  

―지금까지 보면 당신과 금발미녀가 공연할 경우 그들은 다 당신의 애인으로 나왔는데 이번에는 당신 딸로 나왔다. 소감이 어떤가.
“난 너그럽게 아버지 역을 맡기로 했다. 금발미녀들이 다 내 애인이었던 것이 바로 어제 같은데 이제 그들의 아버지가 됐다는 것이 우습다. 하기야 내 큰 딸도 지금 11세로 곧 데이트할 때가 됐다. 그리고 난 실제로 아버지 노릇을 즐긴다.” 

―당신은 영화에서 자동차 정비공으로 나오는데 실제로 차를 고칠 줄 아는가. 자동차를 몇 대나 가지고 있는가.
“캬부레터가 있는 차는 다 고칠 줄 안다. 식구들이 다 각기 차를 갖고 있어서 집에 차가 몇 대가 있는지 잘 모르겠다. 내 첫 차는 1971년산 폭스바겐 버그였다. 15세 때 50달러 주고 친구로부터 샀는데 면허도 없이 차를 몰고 동네를 다니다가 견인 당했다.”

―이 영화가 전편들과 다른 점은 무엇인가.
“영화를 속편이 아닌 독립적인 작품으로 만든 것이다. 새 인물들과 악인들이 나오는 신제품이라는 말이다. 그래서 위험부담이 더 크다. 내 역은 보통 사람이 비상한 경우를 만나 불가능한 일을 하려고 노력하는 것이어서 사람들이 공감할 수가 있다. 그리고 마이클은 늘 새로운 것을 고안하는 사람이어서 이 영화에서도 전편들과 다른 혁신적인 것들이 많다.”

―영화에서 당신은 딸을 과보호하다시피 하는데 당신의 두 딸에 대해서도 그런가.
“더 할 것이다. 내가 옛날에 데이트할 때 난 아주 망나니여서 난 그런 남자 녀석들을 잘 안다. 난 내 딸과 데이트하려는 녀석들을 모두 망나니로 본다. 그런 녀석들 안 만났으면 좋겠지만 그것은 불가피한 일이겠다.”

―당신의 드림 카는 무엇이며 속도위반 딱지를 얼마나 받았는가.
“난 제너럴 모터스의 옛날 차들을 좋아한다. 그러나 그것들은 멋은 있을지 모르나 실용적이지 못해 보다 실제적인 차를 선택한다. 최근엔 별로 딱지를 안 받았다.”

―배우로서 컴퓨터 특수효과가 요란한 영화와 대인관계에 치중한 영화 중 어느 것을 더 선호하나.
“처음엔 컴퓨터로 만든 인물과 연기를 한다는 것에 놀라 자빠질 것 같았다. 그러나 하고 보니 재미있더라. 물론 훌륭한 배우들과 함께 일하는 것이 더 좋지만 가끔 이런 ‘쓰레기’ 같은 영화에 나오는 것도 괜찮다. 나 혼자서 독불장군 식으로 설치는 것도 좋았다.”

―아이들이 좋은 길을 걷도록 어떻게 모범을 보이는가.
“충고와 조언을 해도 아이들이란 말을 잘 안 듣게 마련이어서 학교 가기를 싫어들 한다. 좌우간 말은 싸기 때문에 행동으로 모범을 보여줘야 한다. 여덟 살짜리 내 첫 아들은 풋볼만 좋아하고 교회 가기를 싫어한다. 난 가톨릭 신자여서 아들에게 왜 그가 내 신앙을 가지는 것이 중요한지를 역설한다. 따라서 아이들에게 중요한 것은 내가 바른 길로 가고 바른 일을 하며 또 모범을 보이는 것이다.”

―가난하게 자란 당신으로서 아이들의 꿈을 대신 이뤄주려는 생각이라도 하는가.
“내가 못 가졌던 것을 전부 아이들에게 주고 싶은 생각이 있다. 그러나 또 한편으로는 아이들이 근로의 윤리를 깨닫기를 바란다. 스스로 무언가 창조하면서 가능한 대로 최선의 인간이 되기를 바랄 뿐이다. 내 아이들은 다 착하다.”  
마크 왈버그(오른쪽)가 트랜스포머 로보트와 대화를 나누고 있다.

―과거에 애인 아버지에게 잘 보이려고 무슨 일을 했나.
“처음으로 본격적인 데이트를 할 때 애인의 아버지에게 잘 보이려고 온갖 감언이설을 사용했지만 영 먹혀들지가 않았다. 내가 애인 오빠의 친구여서 더 마음이 상했다. 하여튼 애인의 아버지는 진짜 심술첨지였다.”

―역을 위해 운동은 얼마나 했는가.
“새벽 2시30분에 일어나 체육관에 가서 운동을 했다. 5개월 반 동안 하루에 15시간씩 촬영을 하면서 뛰고 달리고 치고 박기 위한 맹훈련을 했다.”      

―당신은 배우로서 이렇게 성공하리라고 생각했으며 당신에게 도전적인 역은 어떤 것인가.
“가끔 꿈이야 꾸었지만 이렇게 될 줄은 상상도 못했다. 난 그저 꾸준히 일을 했다. 늘 도전적이요 날 키울 수 있는 역을 찾으려고 했다. 대단한 여정이었지만 난 과거보다는 현재와 미래에 대해 더 생각한다. 모든 역은 다 나름대로 도전이다. 이 영화도 마찬가지로 만드는데 재미있었고 또 내 아이들이 볼 수 있는 영화라는 것이 마음에 들었다.”  

―비평가들은 이런 특수효과 위주의 영화들은 내용이 부실하다고 비판하는데 그에 대한 당신의 의견은 어떤가.
“이 영화는 아주 재미있다. 난 언제나 인간적인 요소에 신경을 쓴다. 그리고 가능하면 사실적이요 또 감정적으로 만들려고 애쓴다. 어떤 영화건 어디에 초점을 맞추느냐가 중요하다. 비평가들의 말에 걱정할 필요 없다.”     

―당신의 작고한 아버지는 한국전 침전용사인데 생전에 당신에게 어떤 무용담이라도 들려주었는가.
“전부 거짓말로 허풍이었다. 사실은 하나도 없다. 보병이었던 아버지는 앉아서 맥주를 마시면서 내가 얘기해 달라고 조르면 무용담을 들려주었는데 갈수록 뻥이 더 심해졌다. 어머니도 내게 아버지가 하는 얘기는 다 뻥튀기한 것이라고 말했다.”

―당신은 이제 와서 과거 칼빈 클라인 속옷 광고 모델 한 사실이 잊혀지길 바라는가.
“그런 적 없다. 그 건 그거니까. 난 사람들이 나의 과거가 아니라 내가 현재 하는 일에 따라 날 평가해 주길 바란다. 난 그저 겸손히 좋은 작품을 찾아서 배우로서의 나를 입증하고 그것으로 존경을 받고자 한다.”

―이 영화를 만들면서 기술적인 면에서 당신을 놀라게 한 것이라도 있는가.
“전부 다이다. 놀라운 것은 그 모두가 마이클의 머리에서 나왔다는 점이다. 물론 나도 내 역을 위해 기여한 점은 조금 있지만 이 영화는 순전히 마이클의 머리에서 나온 것이다. 그와의 경험으로 나도 감독하고 싶다는 야심이 생겼다.”

―도스토예프스키의 소설을 원작으로 만든 ‘도박사’에 주연했는데 언제 나오나.
“크리스마스에 나온다. 시간과 장소는 현재의 LA로 나는 도박과 또 다른 것에 중독된 문학교수로 나온다. 각본은 ‘디파티드’를 쓴 빌 모내핸이 썼는데 멋있는 영화라고 자신한다.”

―이 영화는 일부를 홍콩에서 찍었는데 홍콩 방문 소감은.
“처음 갔는데 좋았다. 하루에 여덟 끼는 먹었을 것이다. 음식 정말 맛있더라. 어떻게나 먹어댔는지 마이클이 나보고 절제하라고 조언을 했다. 너무 먹어 살이 찌는 바람에 점점 옷이 몸에 꼭 끼더라.” 

―할리웃은 배신과 음모의 협잡꾼들의 세계로 알려졌는데 당신은 이에 대해 어떻게 대처하는가.
“난 배우라는 직업을 진짜로 사랑한다. 이 일을 사랑하지만 쉬운 일은 아니다. 모두들 우정과 관계에 바탕을 두고 일을 해주기를 바란다. 따라서 모든 것을 개인적으로 받아들이지 않는 것이 중요하다. 나는 모든 것을 긍정적으로 보려고 한다. 너무 부정적인 것에 신경을 쓰면 일하기가 힘들다.”          <한국일보 편집위원/hjpark1230@gmail.com>
             

앤 소 잇 고즈(And So It Goes)

고약한 늙은이와 이웃 여자의 느지막 사랑 웃음터치


오렌(마이클 더글러스·왼쪽)과 레아(다이앤 키튼)가 담소를 즐기고 있다.

60대 말의 심술첨지 홀아비가 있는 줄도 몰랐던 손녀와 자기 나이 또래의 착한 이웃 과부로 인해 대인기피적이요 냉소적인 마음이 눈 녹듯 녹아 좋은 할아버지와 로맨스의 대상이 된다는 새로울 것이 없는 틀에 박힌 얘기.
이런 뻔한 내용과 결말을 지녔지만 두 베테런 배우 마이클 더글러스와 다이앤 키튼의 누워서 떡 먹기 식의 연기와 찰떡궁합 그리고 온건하고 무해한 코미디와 드라마를 잘 만드는 로브 라이너 감독의 스무스한 연출력에 의해 그냥 편안히 보고 즐길 만한 영화가 됐다. 
제임스 L. 브룩스가 감독하고 잭 니콜슨과 다이앤 키튼이 주연한 ‘애즈 굿 애즈 잇 게츠’와 라이너가 감독하고 역시 잭 니콜슨이 나온 ‘버켓 리스트’를 두루 뭉실 짬뽕한 기운이 느껴진다. 60세 넘은 사람들을 위한 느지막하게 사랑을 찾아 불태우는 조부모의 러브 스토리로 늘 먹어 그 맛을 잘 아는 디저트 같은 영화다. 
그림엽서처럼 아름다운 코네티컷주의 해변 아파트에 사는 오렌 리틀(더글러스)은 먼저 간 아내를 그리워하는 부동산 업자. 이기적이요 고집불통이며 인종차별주의자인 고약한 성격의 소유자다. 그는 지금 자기와 아내가 살던 고급주택이 팔리면 타주로 이사를 갈 예정이다.
그런데 어느 날 느닷없이 통 소식이 없던 마약중독 전력이 있는 오렌의 아들 루크(스캇 셰퍼드)가 10세난 딸 새라(스털링 제린스)를 데리고 오렌의 아파트를 찾아온다. 마약관계로  실형을 선고 받고 9개월간 옥살이를 하는 동안 새라를 돌봐달라는 것이다.
생전 처음 보는 손녀를 느닷없이 맡아 키우게 된 오렌은 어쩔 줄을 모르고 공포상태에 빠진다. 그리고 오렌은 새라를 자기 옆 아파트에 사는 미망인으로 늙었지만 아직도 아름답고 신선하면서 약간 말괄량이 기질이 있는 라운지 가수 레아(키튼)에게 거의 반강제적으로 떠맡긴다.
착하고 영리하고 조숙한 새라와 마음이 고운 레아는 시간이 가면서 정이 들어 할머니와 손녀 같은 관계를 맺게 된다. 사실 오렌과 레아는 만나기만 하면 사사건건 시비가 붙는 사이인데 이런 앙숙과도 같은 관계는 결국 새라로 인해 사랑으로 변화하고 오렌의 마음도 달라진다. 
이런 중심 얘기를 에워싸고 오렌의 자기 집을 사러온 각 인종에 대한 편견과 부동산 회사의 고참 할머니 직원(프랜시스 스턴헤이건이 깨물듯이 우스운 대사와 연기를 구사한다)과의 관계 그리고 그와 아파트 이웃과의 관계 등이 에피소드 식으로 묘사된다.
그 중에서 보기 좋은 것은 레아의 라운지 공연과 오디션. 언제나 멋있는 의상을 입을 줄 아는 키튼은 여기서도 산뜻하게 아름다운 의상을 입고 노래하는데 흘러간 무드 짙은 로맨틱한 노래들이 듣기 좋다.               
대머리 라이너가 잘 어울리지 않는 가발을 쓰고 레아의 피아노 반주자로 나오고 ‘빅 걸즈 돈 크라이’ 등 1960년대 빅히트 곡을 양산한 ‘포 시즌스’의 프론트맨 프랭키 밸리가 레아를 고용하는 라운지 주인으로 캐미오 출연한다. 더글러스와 키튼의 화학작용이 일품이고 꼬마 제린스도 아주 잘한다.  PG-13. 일부지역.  ★★★(5개 만점) <한국일보 편집위원/hjpark1230@gmail.com>

카니벌(Cannibal)

아름다운 여인들의 인육을 즐기는 엽기 스릴러


칼로스(왼쪽)와 니나가 눈 덮인 산정에서 깊은 감정에 젖어 있다.


고독하고 과묵한 고급 양복 재단사가 젊고 아름다운 여인들의 인육을 즐기는 식인종으로 나오는 무드 짙고 스산한 기분을 자아내는 스페인 영화로 화면구성과 롱샷을 즐겨 쓴 촬영이 아찔하게 아름답다.
주도면밀하고 서행하는 작품으로 식인의 얘기이지만 센세이셔널 하지 않고 끔직한 장면은 화면 밖에서 벌어진다. 주인공이 정성껏 만드는 옷과 같은 고급 공포 스릴러이자 종교적 상징이 많은 드라마인데 주인공의 가라앉는 듯한 연기와 함께 치밀하고 신중한 연출 그리고 유혹적인 분위기가 보는 사람을 화면 속으로 깊이 빨아들인다. 
스페인의 그라나다. 처음에 카메라가 극단적인 롱샷으로 밤의 외딴 주유소에서 두 남녀가 차에 주유를 하는 장면으로 시작된다. 이어 칼로스(안토니오 데 라 토레)가 자기 차로 이들이 탄 차를 길 밖으로 떨어지게 한 뒤 죽은 여자의 사체를 자기 차에 옮겨 싣고 눈에 덮인 산 위에 있는 자신의 별장인 오두막집으로 간다.
여기서 칼로스는 여인의 옷을 벗겨 테이블 위에 누인 뒤 사체를 절단할 도구를 고른다. 그리고 테이블에 패인 곳으로 선혈이 흐른다. 그라나다의 자기 아파트로 돌아온 칼로스는 플래스틱으로 싼 고기를 냉장고에 넣는다. 칼로스가 고기를 프라이팬에 살짝 데친 뒤 포도주와 곁들여 먹는 장면이 몸서리를 치게 한다.
칼로스의 식인은 그와 여자와의 성적관계이자 일종의 종교적 의식처럼 묘사되지만 그가 왜 식인을 즐기는지에 대해선 설명이 없다.  
칼로스는 낮에는 자기 아파트 앞의 양복점에서 마치 명화가가 그림을 그리듯이 정성껏 양복을 재단한다. 대인관계가 전연 없다시피 한 칼로스에게 이층 아파트에 새로 이사 온 섹시한 루마니아계 금발미녀 알렉산드라(올림피아 멜린테)가 접근하면서 그의 시간표를 짜 사는 듯한 생활의 리듬과 공간이 침해를 당하게 된다.
알렉산드라가 칼로스에게 도움을 요청하고 또 그의 비밀에 참견을 하면서 실종된다. 이어 알렉산드라의 여동생 니나(멜린테의 1인 2역)가 언니의 행적을 알기 위해 칼로스를 방문하면서 니나와 칼로스 간에 미묘한 감정적 관계가 서서히 형성된다. 그리고 칼로스는 니나를 자기 오두막집으로 초청한다. 
데 라 토레가 마치 양복을 정성껏 재단하듯 빈틈없는 연기를 하는데 침통한 그의 모습과 연기에 반해 밝고 신선한 모습의 멜린테의 모습과 연기가 좋은 대조를 이룬다. 마누엘 마틴 쿠엔카 감독. 성인용. 일부지역.  ★★★½(5개 만점) <한국일보 편집위원/hjpark1230@gmail.com>

‘제임스 가너’



모든 것이 너무 무던해도 탈인 것이 17일 86세로 LA서 타계한 배우 제임스 가너의 경우라고 하겠다. 가너는 생긴 것도 무던하고 연기도 무던하고 음성마저 무던한 바리톤으로 철두철미하게 무던했던 배우였다.
그가 자기 또래의 배우로 모가 났던 스티브 매퀸과 클린트 이스트우드 같은 수퍼스타가 못된 것도 바로 이 무던함 때문이다. 가너가 나온 코미디 ‘헬스’를 감독한 로버트 알트만도 “가너는 연기를 너무 쉽게 해서 인정 못 받은 사람”이라고 말한 바 있다.
생전 근면 성실했던 가너는 배우라는 직업을 심각하게 생각하지 않은 배우 같지 않은 배우로 그의 연기는 마치 숨 쉬는 것처럼 자연스러웠다. 케리 그랜트를 닮았다.
반세기 배우 생애에 80여편의 영화와 TV 작품에 나온 가너는 웨스턴(‘총의 시간’), 드라마(‘그랑프리’) 및 전쟁 액션영화(‘위대한 탈주’) 등 여러 장르에 나왔지만 특히 코미디에 능했다. 도리스 데이와 ‘무브 오버 달링’ 등 2편 그리고 줄리 앤드루스와 ‘빅터/빅토리아’ 등 역시 2편의 로맨틱 코미디에 나와 누워서 떡먹기 식의 경쾌한 연기를 했는데 그의 유일한 오스카상 후보작으로 샐리 필드와 공연한 ‘머피의 로맨스’도 삼삼한 로맨틱 코미디다.
내가 본 첫 가너의 영화는 2차 대전 때 미 해군 잠수특공대의 액션을 다룬 ‘잠망경을 올려라’였다. 그러나 이보다 내게 좋은 인상을 남겼던 그의 영화는 시드니 포이티에를 이색적으로 쓴 웨스턴 ‘디아블로의 결투’와 가너가 와이앗 어프로 그리고 제이슨 로바즈가 닥 할러데이로 나온 ‘총의 시간’이다.  
가너는 영화보다 TV로 더 유명한 배우였다. 가너가 수퍼스타가 된 것은 영화가 아니라 1957년에 시작된 ABC-TV의 코믹터치의 웨스턴 시리즈 ‘매버릭’에 의해서다. 여기서 가너는 ‘쉽게 쉽게 삽시다’는 식의 떠돌이 도박사건 맨으로 나와 총과 주먹보다 조롱기가 섞인 자기 비하적인 말로 상대를 처리한다.
이로 인해 터프하면서도 유머를 잃지 않는 ‘마지못한 영웅’이 가너의 상표가 되었는데 가너는 이런 자기 풍자적 기질을 코미디 웨스턴 ‘당신 동네 보안관을 지원하라’와 이의 속편격인 ‘당신 동네 총잡이를 지원하라’에서도 잘 써 먹었었다.
가너는 후에 시리즈 ‘매버릭’을 바탕으로 만든 멜 깁슨 주연의 동명영화에서 나이 먹은 보안관으로 나왔다.
빅히트한 ‘매버릭’ 만큼이나 크게 성공하고 가너가 에미상을 받은 TV 시리즈가 1974년에 시작된 ABC-TV의 탐정물 ‘록포드 파일즈’(사진)다. 귀에 익은 가너의 전화녹음 메시지가 나오는 오프닝 크레딧 장면으로 잘 알려진 시리즈에서 가너는 LA 인근 말리부 해변의 트레일러에 사는 빈털터리 사립탐정 짐 록포드로 나온다. 그는 여기서도 총과 주먹 대신 말로 상대를 제압한다.
큰 키에 떡 벌어진 체구의 록포드는 폭력을 싫어해 남을 때리기보다 얻어맞는 경우가 흔했다. 그런데 언젠가 한 번 가너가 할리웃에서 어떤 남자로부터 구타를 당한 사건이 있었다. 나는 당시 이 뉴스를 들으면서 ‘아니 록포드가 얻어맞다니’하면서 혀를 찼었는데 아마 가너는 실제로도 평화주의자였던가 보다.      
록포드나 매버릭이나 시대만 달랐지 사실은 같은 반영웅으로 가너는 쉽게 친근감이 가는 터프가이였다. 영어대사를 제대로 이해는 못했지만 나도 한국에서 ‘록포드 파일즈’를 AFKN-TV로 보면서 즐겼었다.
가너의 또 다른 유명한 TV 출연은 매리엣 하틀리와 부부로 나온 폴라로이드 카메라 광고다. ‘록포드 파일즈’는 몰라도 이 광고 안 본 사람은 아마도 없을 정도로 유명한 광고였다.
오클라호마 태생인 가너는 4세 때 생모를 잃고 계모에 의해 학대를 받으면서 자랐다. 16세 때 고교를 중퇴하고 선원, 유정 노동자 및 카펫 까는 일 등 온갖 잡일을 하면서 살았다. 가너는 현재도 있는 라나 터너도 다닌 할리웃 고교에 잠시 다닐 때 잡지용 수영복 모델로 나오기도 했다. 1950년 한국전이 나면서 가너는 군에 징집돼 전선에서 싸우다 두 번이나 부상을 입고 퍼플하트 훈장을 받은 한국전의 영웅이기도 하다.
가너가 처음 연기를 한 것은 헨리 폰다가 나온 무대극 ‘케인호의 반란’으로 말 한마디 없는 단역이었다. 그란데 가너는 무대공포증이 있어 그 후 무대를 기피했다. 가너는 이브 몽탕과 토시로 미후네가 공연한 자동차 경주 영화 ‘그랑프리’를 찍으면서 이 경기에 빠져 그 후 세 번이나 인디 500에 출전해 직접 차를 몰기도 했다.      
제임스 가너는 여자는 한 번쯤 사랑하고 싶고(줄리 앤드루스의 말) 남자는 친구로 사귀고 싶은 매력적이요 편안한 사람이었다. 그는 어쩌면 할리웃의 이지고잉 스타일의 마지막 배우일는지도 모른다.                 <한국일보 편집위원/hjpark1230@gmai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