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이야기

2015년 10월 13일 화요일

영화음악 모음집 ‘시네마’ 출반하는 안드레아 보첼리




“음악보다 음성을 더 사랑해 가수가 돼”


팝 부를 땐 내가 테너란 것 잊어
안그러면 우스꽝스런 노래 나와
나의 현재는 이미 내 꿈을 초과
난 행운아로 매일 하늘에 감사



클래시컬 뮤직과 팝뮤직을 넘나들며 노래 부르는 이탈리아의 맹인 수퍼스타 크로스오버 가수 안드레아 보첼리(56)와의 인터뷰가 지난달 23일 웨스트할리웃에 있는 할리웃 외신기자협회(HFPA) 본부에서 있었다. 인터뷰는 보첼리가 오는 23일에 내놓을 영화음악 모음집‘시네마’(Cinema) 출반을 기념해 마련됐다. 음반에는‘마리아’(웨스트사이드 스토리),‘라라의 노래’(의사 지바고),‘문 리버’(티파니에서 아침을) 등 모두 15곡이 수록됐다. 그는 이 음반을 위해 9월18일 할리웃의 돌비극장에서 노래를 불렀다. 이 콘서트는 11월27일 하오 9시 PBS를 통해 방영된다. 잿빛이 섞인 머리와 큰 키에 색깔 있는 안경을 쓴 보첼리는 카리스마가 있었는데 유머와 위트를 섞어 약간 서툰 영어로 질문에 길고 자세하게 대답했다. 가끔 영어로 설명하기 힘든 부분은 통역의 힘을 빌렸다. 보첼리는 이탈리안답게 여자 얘기가 나오면 신이 나서 활기차게 대답했다.  

-왜 당신은 제니퍼 로렌스와 셀린 디온 같은 팝가수들과 함께 노래를 부르는가.
“나는 음성을 사랑한다. 그것이 내 첫 번째 정열이다. 내가 가수가 된 것도 음악보다는 음성을 사랑했기 때문이다. 따라서 나는 훌륭한 음성들과 무대를 함께 하는 것을 영광이요 기쁨으로 여긴다.”

-그렇다면 당신 같은 출중한 음성과 다른 가수들의 음성에 차이가 없다는 것인가.
“차이는 음성의 질에 달려 있다. 음성의 질이 대단치 않은 가수들보다는 그것이 훌륭한 가수들과 노래를 부르는 것이 물론 더 낫다. 왜냐하면 그에 의해 내가 고무되기 때문이다.”

-왜 오페라 가수가 다른 가수들보다 월등하다고 인식되는가.
“그것은 오페라 창법이 오랜 세월을 통해 기술적으로 발전해 왔기 때문이다. 오페라 가수는 오케스트라의 벽을 뛰어 넘어 음정을 고르게 지키면서 극장 맨 끝 좌석에까지 들리도록 노래를 불러야 하기 때문이다. 그러기에 오페라가 수백 년에 걸쳐 지금까지도 존재하는 것이며 또 직접적으로 청중의 내장에 침투해 들어가는 것이다.”

-크로스오버 가수로서 당신은 클래시컬 뮤직에 더 가깝다고 생각하는가 아니면 팝뮤직에 더 가깝다고 생각하는가.
“난 크로스오버 가수라는 말이 정확히 무엇을 뜻하는지 모르겠다. 내 생각으로는 그들은 클래시컬과 팝뮤직 사이에 새 스타일을 만들려고 시도하는 사람들이다. 그러나 난 다르다. 나는 오페라를 부를 때는 오페라 언어로 최선을 다하고 팝을 부를 때는 내가 테너라는 것을 잊는다. 그렇지 않으면 우스꽝스런 노래가 나온다. 카루소와 질리와 델모나코 그리고 파바로티 등 많은 유명 가수들도 다 가요를 훌륭하게 불렀다. 그러니 왜 나라고 하지 말라는 법이 있는가. 팝을 불러 오페라를 싫어하는 사람들을 극장으로 데려갈 수 있다는 효과도 있다.”

보첼리가‘시네마’ CD 출반 기념 콘서트에서 노래하고 있다.

-영화음악은 어떻게 선정했으며 왜 할리웃에서 노래했는가.
“LA가 영화와 영화음악의 본거지이기 때문이다. 선정은 영화음악의 걸작들이라고 생각하는 것들로 했다. 나는 어렸을 때 시나트라가 부르는 ‘문 리버’와 ‘올드 맨 리버’ 그리고 마리오 란자가 부르는 ‘비 마이 러브’ 등을 자주 들었는데 이 노래들은 모두가 걸작이다.”

-이틀 후 가질 파바로티 추모 콘서트에 관한 소감은.
“마에스트로 파바로티는 내게 있어 아주 중요한 사람이다. 우리는 같이 노래에 관해 많은 것을 자주 얘기했다. 내가 해외여행 할 때도 난 그에게 전화를 걸어 얘기를 오래 나누곤 했다. 그래서 나는 그에 대해 달콤한 기억을 갖고 있다. 나는 그를 인간과 가수로서 모두 좋아한다. 내 아이폰에는 그의 노래 전곡이 담겨 있다. 그런 예술가의 특권은 레코드를 통해 결코 죽지 않고 우리의 삶에 남는다는 것이다.”

-파바로티는 테너는 자연 음성이 아니고 스스로 찾아 얻어야 하는 것이라고 말했는데 그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는가.
“테너는 처음부터 공부해 갖춰야 하는 기술이다. 오페라 가수의 창법은 아기가 소리 질러 우는 것과 같은 것이다. 아기처럼 오페라 가수도 목소리를 잃지 않고 하루 종일 울 수 있다. 문제는 말을 할 줄 알게 되면 노래의 기술을 잊게 된다는 것이다. 말하는 것은 노래 부르는 것의 적이다. 따라서 오페라 가수가 할 일이란 자연이 그에게 준 것을 다시 배우는 것이다. 갓난아이가 우는 것을 보면 그의 입이 테너가 고음을 부를 때와 같은 것을 보게 될 것이다. 이 것은 정말로 진실이다. 내 아이 에이모스가 아기 때 울면 나는 가끔 그의 목 속에 손가락을 집어넣고 목이 움직이는 것을 공부했다. 한 번은 아이가 토하기까지 했다.”

-목소리의 힘이란 어떤 것인가.
“예술은 인간이 말로 할 수 없는 것을 서로 대화할 수 있게 하는 수단이다. 목소리에는 말로는 표현할 수 없는 감정과 느낌을 전달할 수 있는 특별한 언어가 있다. 가수의 노래를 듣고 청중의 누군가가 눈물을 흘린다면 바로 그것이 목소리의 힘이다.”

-러시아 음악을 좋아하는가. 
“러시아는 노래의 오랜 전통을 지닌 나라다. 따라서 가수들이 많은데 특히 베이스와 소프라노들이 많다. 노래 외에도 나는 톨스토이와 도스토예프스키를 좋아하는데 나는 그들이 쓴 책을 다 읽었다. 곧 톨스토이의 무덤을 방문하기를 꿈꾸고 있다.”

-당신은 여러 나라 언어로 노래하는데 어떻게 다른 언어에 적응하는가.
“듣는 귀가 좋으면 어렵지 않다. 각 언어는 각기 소리가 달라 좋고 또 아름답다. 영어는 매우 음악적이다. 그러나 그것의 문법은 질색이다.”

-아까 말한 말하는 것은 노래의 적이다 라는 것이 정확히 무슨 소리인가.
“말을 많이 하면 음성을 빼앗기기 때문에 가수는 침묵을 종일토록 지켜야 한다. 모든 위대한 가수들이 다 그랬다”

-여자의 아름다움이란 무엇인가.
“여자들이 내게 가장 강한 인상을 주는 것은 그들이 갖춘 여성적인 면이다. 여자로서의 욕망과 기쁨을 말한다. 남자가 갖고 있는 것을 여자는 갖고 있지 않기 때문에 둘은 늘 이끌리는 것이다. 따라서 나는 여자가 보다 여성적일 경우 더 좋아한다. 그밖에도 음성과 피부 등 좋아할 점이 많다.”

-여성적이란 무엇인가. 
“그것은 아주 어려운 질문인데 다음과 같은 일화로 답을 대신하겠다. ‘여자들에 관해 내가 이해한 모든 것’이라는 책을 쓴 천재가 있다. 300쪽 짜리인데 열어 보니 전부 백지라는 것이다. 기찬 아이디어다.”

-당신이 지금 가진 것 외에 더 갖고 싶은 것이 있는가.
“특별히 기대하는 것이 없다. 이미 내 현실이 내 꿈을 초과했기 때문이다. 더 이상 바란다는 것은 지나친 일이다. 난 행운아로 매일 하늘에 감사한다.”

-집에선 어떻게 지내는가.
“하루가 매일 다르다. 칸트처럼 매일 똑같은 일상을 살았으면 좋겠다. 난 거의 매일 다른 도시에 살면서 침대와 식당과 음식을 바꾸어가며 산다. 여자만 안 바꾸는데 그것을 바꾼다면 재미있을 것이다.”(인터뷰에는 그의 부인 베로니카도 참석 옆에서 지켜봤다)

-당신이 예전에 돈 호세로 나온 ‘카르멘’ 음반지휘는 한국의 마에스트로 정명훈이 했는데 그와 친한가.
“난 그를 잘 안다. 우린 아주 중요한 두 번의 녹음을 했는데 하나는 ‘신성한 아리아’(Sacred Arias)다. 아마 내 클래시컬 음반 중에 가장 많이 팔렸을 것이다. 그 때 내 음반회사는 누가 그런 것을 듣겠느냐면서 취입을 원치 않았었다. 그런데 500만장이 팔렸다. ‘카르멘’은 파리에서 녹음했다.”

-멋쟁이인데 옷은 누가 골라주는가.
“내 스타일리스트와 베로니카다.”

-당신은 프란치스코 교황을 만났는데 인상이 어땠는가.
“내가 그에 대해 말할 자격은 없지만 그는 신의 사람이라는 것이다. 겸손하고 지적이며 총명하고 강하다. 그가 교황이 되고 TV에서 말하는 것을 처음 듣고 나는 울었다. 그의 음성 속에서 매우 심오한 것을 느꼈기 때문이다. 그와 같은 사람을 가진 것은 우리 모든 인류에게 행운이다.”

-언제 노래를 잘 부른다는 것을 알았는가.
“어렸을 때 기숙사학교에 다닐 때다. 그 때 연말 쇼가 열렸는데 누군가 나보고 노래를 부르라고 앞으로 밀어냈다. 그런데 청중이란 것이 온통 내 또래의 아이들어서 장내는 아수라장이었다. 나는 ‘오 솔레 미오’를 불렀는데 아이들이 계속해 떠들어 첫 부분은 아마 듣지도 못했을 것이다. 그런데 내가 노래의 첫 고음을 부르자 장내가 쥐 죽은 듯이 고요해졌었다. 노래가 끝나자 아이들이 우레와 같은 박수환호를 보냈다. 그것이 내가 내 안에 무언가 사람의 마음을 움직일 수 있는 것이 있다는 것을 알게 된 첫 경우다. 그 후 나의 선생님이 내게 ‘네 음성은 네 특기가 아니라 신의 선물이라는 것을 기억해야 한다’고 여러 번 말했다. 그 후 나는 지금까지도 그 말을 내 신념으로 삼고 있다. 지금은 옛날보다 더 그 말이 내 속에 깊이 뿌리를 내리고 있다.”

-목소리를 어떻게 돌보며 그것을 잃어 본 적이 있는가.
“특별히 돌보지는 않는다. 술 안 마시고 담배 안 피우고 많이 안 먹는다. 난 아마 단 한 번도 대마초를 피워본 적이 없는 몇 안 되는 사람 중 하나일 것이다. 목소리는 불행하게도 여러 번 잃어버린 적이 있다. 테크닉이 안 좋았을 때다. 그 때 너무 스트레스를 많이 받아서 그랬다. 그리고 한 번은 이탈리아가 축구경기 챔피언이 됐을 때 밤새 소리를 질러 콘서트 스케줄을 재조정해야 했다.”     
                                                            <한국일보 박흥진 편집위원/ hjpark1230@gmail.com>        

스티브 잡스(Steve Jobs)


스티브 잡스(마이클 화스벤더)가 자신의 신제품을 구상하고 있다.

이기적 천재, 잡스가 이룬 업적과 삶


둘 다 오스카 수상자들인 대니 보일(슬럼독 밀리어네어)이 감독하고 아론 소킨(소셜 네트웍)이 각본을 쓴 애플 컴퓨터의 공동 창립자인 스티브 잡스(마이클 화스벤더)의 전기인데 말의 홍수요 언어의 범람이다.
소킨 특유의 속사포 같은 대사가 2시간 내내 쏟아져 나오면서 극적 전개나 정경을 무시해 영화 내용과 인물들에게 전연 감정이입이 안 된다. 연극 같은 영화로 기능적으로는 우수하나 재미는 없다. 마치 보는 사람의 지능 테스트라도 하겠다는 듯이 기술용어를 포함한 무수한 단어와 언어를 들으면서 과다한 영양공급을 받는 듯한 거북한 포식감에 빠지게 된다.
각본이 연출을 앞선 영화로 화려한 스타일의 보일을 이런 고도의 지적인 영화감독으로 선택한 것이 잘한 일이 아니다. 영화는 잡스를 둘러싸고 몇 명의 주요 인물들이 들락날락하면서 대화하고 언성을 높이는데 잡스의 세 번에 걸친 새 컴퓨터 소개가 작품의 주요 플롯의 시발점이 되고 있다.
맨 처음 1984년 잡스가 자신이 고안한 맥을 대중에게 소개하기 전의 준비과정으로 시작된다. 그리고 두 번째는 애플 회장 존 스컬리(제프 대니얼스가 잘 한다)에 의해 회사에서 쫓겨난 잡스가 1988년 자기 회사 넥스트를 설립한 뒤 역시 자신이 만든 새 컴퓨터를 소개하기 전의 준비과정으로 이어진다.
마지막은 1998년 다시 애플사로 돌아온 잡스가 혁명적인 신제품 i맥을 소개하기 전의 준비과정이 얘기된다. 그러고 보니 이 영화는 애플제품 선전영화가 된 셈이다. 이 과정에서 등장하는 사람들이 잡스의 충신과도 같은 일벌레 마케팅 책임자 조앤나 호프만(케이트 윈슬렛이 실팍한 연기를 한다)과 존 스컬리와 잡스가 성공하기 전 그와 함께 차고에서 컴퓨터를 고안한 프로그래머 스티브 워즈니액(세스 로건의 역은 아주 미약하게 개발돼 아까운 배우가 소모품이 된 셈) 그리고 맥의 소프트웨어 디자이너 앤디 허즈펠드(마이클 스툴바그).
잡스와 이들이 마치 스크루볼 코미디처럼 요란하게 대사를 겹쳐가면서 떠들어대는데 도대체 그런 말의 헛된 성찬에 관심이 가질 않는다. 그나마 영화의 진행 속도는 배우들이 말하는 속사포식 대사의 속도처럼 빨라 크게 지루하진 않지만 이 영화는 아이폰을 물신 숭배하듯 하는 골수분자 아이폰 사용자들의 것이라고 하겠다.
재미보다 지적인 것에 치중한 영화로 페이스북 창시자인 마크 저커버그의 얘기를 그린 ‘소셜 네트웍’과 같은 부류의 영화이지만 재미는 ‘소셜 네트웍’에 크게 못 미친다. 영화는 잡스를 이기적인 천재로 묘사하면서 그의 내면 묘사를 상세하게 보여주려고 했지만 충분치 못하다.
냉정한 인간으로 천재이자 기인인 잡스도 감정을 지닌 인간이라는 것을 보여주려고 서브플롯으로 잡스와 그의 전 애인 크리산(캐서린 워터스톤) 그리고 둘 사이에서 난 조숙하고 똑똑한 5세난 딸 리사(매켄지 모스가 깜찍한 연기를 한다)와의 관계, 그 중에서도 부녀관계를 영화의 나머지 부분과는 다르게 감정적으로 그렸으나 너무 늦었고 또 충분치도 못하다. 무슨 역을 맡아도 잘 해내는 화스벤더가 확신에 찬 연기를 하는데 연기파 배우들의 연기는 볼만하다. R. Universal. 전지역. ★★★(5개 만점)  <한국일보 박흥진 편집위원/ hjpark1230@gmail.com>

빅토리아 (Victoria)


빅토리아가 존네(왼쪽) 친구의 등에 거꾸로 업혀 클럽에서 나오고 있다.

대마초·은행강도… 방황하는 베를린의 청춘


현대 베를린의 방황하는 청춘들의 은행강도와 그 후유증을 다룬 독일제 소품으로 상영시간 2시간을 손에 든 카메라 한 대로 단 한 번의 휴지도 없이 찍은 실험성 강한 흥미 있고 스타일 좋은 영화다.
특히 밤의 베를린 시내를 샅샅이 누비고 다니면서 찍은 버려진 듯한 도시의 적막과 소외감이 절실한데 이런 분위기 속을 서푼짜리 젊은 아마추어 범죄자들이 헤집고 다니면서 별 뜻도 없는 대사를 나누고 술을 마시고 대마초를 태우고 또 클럽에서 전자음악에 맞춰 광란의 춤을 추는 얘기를 매우 사실적으로 그렸다.
이들의 이런 행각을 보여주는 첫 부분은 다소 지나치게 제멋대로여서 보면서 빠져 들기에 인내심이 필요하나 이어 후반에 접어들어 은행강도와 그 후의 실수와 죽음이 있는 재난이 전개되면서 역동적인 스릴러로 변한다. 살벌한 것 같으면서도 감정이 있는 영화다.
스페인에서 온 처녀 빅토리아(라이아 코스타)는 베를린 시내 카페 종업원으로 밤에 혼자 클럽에서 춤추다 새벽에 카페로 돌아가려던 중 자기에게 접근하는 청년 존네(프레데릭 라우)와 대화를 나눈다. 이어 빅토리아는 존네와 그의 친구들인 박서(프란츠 로고브스키), 블링커(부라크 이기트) 및 푸스(막스 마우프) 등과 함께 행동을 같이 한다.
이들은 아파트 지붕에 올라가 술 마시고 대마초를 태우면서 얘기를 나누는데 빅토리아가 스페인 사람이어서 대사는 대부분 서툰 영어로 주고 받는다. 말이 많은데 이들을 따라 다니면서 역동성 있게 젊은이들의 모습을 포착한 촬영이 상당히 아름답다.
이어 직업 갱스터 안디(안드레 헤닉케)가 박서에게 은행강도를 지시한다. 박서는 감옥에 있을 때 안디의 보호를 받아 그 빚을 갚아야 한다. 새벽 강도에 가담하는 것이 빅토리아인데 빅토리아는 순진한 것인지 아니면 무모한 것인지 알쏭달쏭하게 어느새 정이 든 존네의 잠깐이면 된다는 말에 순순히 응해 범행용 자동차를 운전한다.
은행강도는 순탄하게 성공하고 이들은 자축하기 위해 다시 클럽엘 들러 신나게 춤을 춘다. 그러나 곧 이어 경찰이 골목에 주차된 이들의 차를 발견하면서 도주와 추격 그리고 총격전이 일어난다. 마지막 부분은 비감하고 아름다운 러브스토리처럼 그렸는데 마음이 싸하니 아프다.
연기들이 다 좋은데 특히 코스타와 라우가 좋은 콤비를 이루면서 튼튼하고 감정적인 연기를 한다. 새벽 4시 반에 촬영을 시작해 2시간 동안 쉬지 않고 시내 22곳을 다니면서 촬영했다. 세바스티안 쉬퍼 감독. 성인용. 일부지역. ★★★★(5개 만점)
                                                            <한국일보 박흥진 편집위원/ hjpark1230@gmail.com>

다친 영혼들을 위한 음악



지난 주말 모두 실화가 원전인 ‘스파이들의 다리’와 ‘스티브 잡스’의 프레스 정킷차 뉴욕엘 다녀왔다. 습기가 축축하니 배인 잿빛 하늘 아래 센트럴파크 앞 숙소를 나서니 시내트라가 부른 ‘오텀 인 뉴욕’이 생각났다. 토요일 저녁은 자유로워 얼마 전 알게된 줄리아드 음대의 강효 바이얼린 교수와 한국의 체임버 오케스트라 세종 솔로이스츠의 총감독 강경원씨 내외와 함께 저녁을 하면서 음악과 영화와 책에 관해 환담을 했다.
자연히 대화는 음악 얘기로 이어졌는데 토요일은 강효씨가 줄리아드 예비학교의 꼬마 천재들을 가르치는 날이었다. 이 예비학교를 ‘오! 캐롤’을 부른 닐 세다카가 다닌 얘기와 줄리아드의 전설적인 바이얼린 여교수 도로시 디레이 그리고 현재 LA의 디즈니 홀에서 LA필과 시몬 볼리바 심포니가 돌아가면서 연주하는 베토벤 교향곡 사이클 등에 관해 얘기를 했다.
우리는 과연 베토벤 사이클을 잘 지휘할 사람으로 누가 가장 적합할까 하는 질문을 하다가 클라우디오 아바도가 좋을 것 같다는데 동의했다. 두 사람은 다 매우 겸손하고 조용하고 따스하며 평화스러워 보였다. 두 사람을 만나기 전만해도 줄리아드 바이얼린 교수라는 생각에 공연히 위압감을 느꼈었는데 함께 하기가 너무 편해 시간 가는 줄을 모르고 얘기를 나눴다.
그들과 헤어진 뒤 호텔로 돌아오면서 얼마 전 월스트릿 저널에서 감동 깊게 읽은 저명 콘서트 피아니스트 바이런 재니스의 글이 생각났다. 그는 ‘다친 영혼들을 위한 음악’이라는 제하의 글에서 음악은 아름다운 것 외에도 육체적 정신적 문제를 치유하는 능력이 있다면서 잘 치고 못 치고는 문제가 되지 않으며 한 손가락으로 음 하나를 튕기어내는 것만으로도 행복할 수 있다고 말했다.
재니스는 이어 다음과 같은 자신의 경험을 적었다. 1960년 냉전의 분위기가 고조에 다다랐을 때 나는 소련과의 첫 번째 문화교류의 사절로 모스크바에서 리사이틀을 가졌다. 내가 무대에 오르자 청중들은 “U-2, U-2”와 “클리번, 클리번”을 외치면서 야유를 했다. U-2는 소련이 그 때 막 격추한 미 스파이기의 이름이고 ‘클리번’은 2년 전에 국제 차이코프스키 피아노 경연대회서 우승한 밴 클라이번이다. 그들에게는 클라이번만이 미국의 유일한 훌륭한 피아니스트인 것처럼 보였다.      
청중이 조용해진 뒤 나는 모차르트의 소나타(G장조)와 슈만의 ‘아라베스크’ 그리고 쇼팽의 ‘장송행진곡’ 소나타를 연주했다. 연주가 끝나자 귀가 먹을 것 같은 박수와 환호가 터져 나왔고 청중들이 무대로 몰려왔는데 많은 사람들이 우는 것을 보았다.
재니스는 음악은 이렇게 적대감을 눈물로 바꿀 수 있는 능력을 지녔다면서 음악은 영혼 치유의 능력뿐 아니라 육체적 문제도 극복하는데 도움이 된다고 덧붙였다. 11세 때 사고로 새끼손가락이 영구히 마비됐고 지난 40여년 간을 관절염에 시달리면서도 늘 음악이 치유의 힘이 되었다고 한다. 재니스는 피타고라스가 음악의 치유 능력을 말한 ‘음악적 약’이 자기 생애의 시도동기가 되어 왔다고 말했다.
음악은 참으로 다치고 피곤한 영혼을 위한 명약이다. 나도 마음이 힘들 땐 클래시컬 음악을 들으면서 위로한다. 우리나라와 아일랜드의 노래가 슬픈 것이 많은 까닭은 둘 다 어려운 역사를 지닌 탓인데 두 민족이 다 그런 슬픔을 슬픈 노래로 달래고 있다.
피곤한 직장의 하루가 끝나고 귀가 길에 술집에 들러 음주 방가하는 것도 같은 이치다. 모차르트도 작곡한 ‘타펠무직’은 귀족들의 저녁식사 소화제 구실을 했고 낯선 사람들끼리 탄 엘리베이터 안의 긴장을 풀라고 트는 것이 엘리베이터 음악이다. 또 태아에게 모차르트 음악을 들려주면 IQ가 좋아진다는 ‘모차르트 효과’도 있다.
음악의 질병 치유능력은 과학적으로도 증명됐다. 오스트리아 잘츠부르크의 파라셀루스의대 여교수 베라 브란데스는 음악을 처방약으로 제공하는 프로그램을 개발했다. 프로그램은 환자의 문제에 따라 그에 맞는 음악을 처방해 주는데 4주간 주 5일 매일 30분씩 이 음악을 들었더니 질병치료에 큰 효과를 보았다는 것이다. 그런데 브란데스가 다루는 질병은 주로 정신적 불안정과 통증과 같은 문명병으로 음악처방은 전연 부작용이 없다는 것이다(뉴욕타임스).
런던에서는 음악을 각종 지하철 범죄 퇴치용으로 써 효과를 봤다. 지하철 스피커로 비발디와 헨델과 모차르트의 음악을 틀었더니 날치기 퍽치기 및 낙서 등 각종 범죄가 크게 줄었다고 한다. 그런데 트는 음악은 후기 낭만파 이전의 바로크나 고전파 음악이라고 한다(LA타임스).
‘오디세이’의 사이렌은 그 노래 소리로 인간의 혼을 홀려 사람 잡는 능력을 지닌 반면 음악은 죽어가는 사람의 영혼을 위로하기도 한다. 공상 과학영화 ‘소일런트 그린’에서 에드워드 G. 로빈슨이 안락사 침대에 누워 있을 때 침대 앞 대형 스크린에 산과 들과 바다와 태양과 전원풍경이 펼쳐지면서(사진) 흐르는 음악이 베토벤의 ‘전원’교향곡 제 1악장이다. 그는 이 음악을 들으며 평화롭게 ‘고향으로 돌아간다’. 가능하다면 나는 말러의 ‘부활’교향곡을 들으며 이 세상과 작별하고 싶다.
                                                             <한국일보 박흥진 편집위원/ hjpark1230@gmai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