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이야기

2017년 11월 2일 목요일

예비수녀(Novitiate)


캐슬린은 신에 대한 사랑을 확신하고 수녀가 되기로 결심한다.

예비 수녀들의 갈등·고뇌 사실적으로 묘사한 수작


1960년대 초 수녀원의 기성 수녀들과 예비 수녀들의 관계와 갈등과 우정을 깊이 있고 지적으로 해부한 탁월한 드라마로 신성하면서도 세속적이다. 신병 훈련소 소장처럼 엄격하고 혹독한 수녀원장과 이에 맹목적으로 헌신하는 나이 먹은 수녀들 그리고 원장의 독주에 저항하는 젊은 수녀의 얘기와 함께 이들의 밑에서 고된 훈련을 받는 예비수녀들의 종교적 인간적 정열과 신에 대한 믿음과 회의를 질서정연하고 아름답고 또 스타일 멋있게 묘사한 작품이다.
신에 대한 사랑과 믿음 그리고 회의와 함께 이 가운데서 시달리는 예비수녀들의 육체적 영적 갈등과 고뇌가 절실히 가슴을 파고드는데 이런 갈등에 서스펜스 스릴러 분위기마저 감돈다. 신인배우들의 뛰어난 연기와 함께 흥미진진한 내용에 함몰하게 만드는 수작이다. 
1964년 장소를 알 수 없는 곳의 한 수녀원. 주인공인 예비수녀 캐슬린 해리스(마가렛 퀄리)가 어떻게 해서 수녀원에 들어오게 되었는지가 회상식으로 얘기된다. 어린 캐슬린은 무신론자인 어머니에 끌려 동네 성당미사에 참석하는데 어머니가 딸을 이 곳에 데려온 이유는 종교란 허망한 것이라는 점을 알려주기 위해서다. 그러나 캐슬린은 부부싸움이 잦은 집안 분위기와 정반대인 성당의 평화로운 분위기에 사로잡힌다. 이어 캐슬린은 장학금을 주는 지역 가톨릭학교에 입학하고 17세가 되면서 신에 대한 사랑 때문에 수녀원의 예비수녀 후보로 들어간다. 
자신을 신의 대리인이라고 말하는 인정사장 없이 엄격한 원장(멜리사 리오가 과장됐을 정도로 신나게 열연한다) 밑에서 후보생들은 기혹할 정도로 모진 훈련을 받는데 이에 여러 명이 세상으로 돌아가고 12명 정도만 남는다. 다양한 후보생들의 모습과 성격이 골고루 묘사되는데 한 후보생은 오드리 헵번이 나온 영화 ‘파계’를 보고 수녀가 되기로 결심했다고 고백한다. 
이어 바티칸에서 획기적인 개혁안이 채택된다. 미사를 라틴어에서 일상어로 하고 자신에 대한 체형을 금지하며 타종교에 관대하며 아울러 수녀들이 지닌 권위를 대폭 위축시킨다는 내용이다. 이에 결사반대하는 것이 원장과 고참수녀들. 그런데 실제로 이 조치 이후 전 세계서 90,000여명의 수녀가 파계했다고 한다. 
이런 가운데서도 캐슬린은 신에 대한 확고한 믿음으로 신부복을 입고 수녀가 되기 전의 한 의식인 신과의 결혼식을 치른다. 수녀들의 성적 욕망과 자위행위 그리고 동료 간의 육체적 접촉과 이에 대한 죄의식 등이 민감하고 절제 있게 묘사되면서 작품을 사실적이면서도 고상하게 격상시킨다. 
캐슬린과 원장과 함께 중점적으로 얘기를 이끌어 나아가는 사람이 진보적인 수녀 메리 그레이스(다이애나 애그론). 그레이스는 고집불통인 원장의 횡포에 강력히 반발하면서 원장의 적이 되다시피 한다. 마침내 캐슬린이 정식 수녀가 되는 의식이 열린다. 라스트 신이 강한 인상을 남긴다. 
그림자와 빛을 잘 사용한 촬영과 고전 합창곡과 현대음악을 고루 쓴 음악도 좋다. 그러나 이 영화에서 무엇보다 빛나는 것은 배우들의 연기다. 고참 리오를 비롯해 신인 배우들의 연기가 깊이가 있고 엄숙하며 고요하게 빛을 발한다. 여류 매기 베츠의 감독 데뷔작으로 그가 각본도 썼다. 적극 관람을 권한다. 성인용. ★★★★ (5개 만점)
                                                           <한국일보 박흥진 편집위원/ hjpark1230@gmail.com>


서버비콘(Suburbicon)


가드너(오른쪽)와 로즈의 평온한 삶은 심야강도에 의해 파괴된다.

코엔 형제 각본·클루니 감독… 치정살인 미스터리·인종차별 섞인 블랙코미디


유혈 낭자하고 사체가 쌓이는 블랙 코미디의 장인들인 코엔 형제가 각본을 쓰고 조지 클루니가 감독을 한 치정살인을 둘러싼 미스터리와 인종차별을 다룬 드라마인데 완전히 다른 두 영화를 잘못 섞어놓은 것처럼 생경하다. 
겉으로는 멀쩡한 백인들의 인종차별과 우월의식을 넌센스 코미디 식으로 가차 없이 우습게 풍자한 내용과 치정을 둘러싼 보험금을 노린 살인극이 물에 기름 탄 것처럼 서로 겉돌고 있다. 빅 스타들이 나와 그들의 이미지와 다른 연기를 하는 희한한 영화다. 
1959년 미국의 어느 급조한 스필버그 영화의 마을 같은 교외의 백인 동네. 하얀 담장에 새로 지은 집들이 나란히 줄지어 선 이 동네에 어린 아들을 둔 흑인 부부가 이사 오면서 평소 이웃에게 친절하고 상냥하던 백인들의 타 인종에 대한 증오심이 타오른다. 
이들과 다른 가족이 라지 가족. 다소 비만하고 안경을 쓴 가장 가드너 라지(맷 데이먼)는 회사 재무담당 사원으로 겉으로는 선하게 보이나 속은 검다. 그의 부인 로즈(줄리안 모어)는 윌체어에 의지해 사는데 둘 사인엔 어린 아들 닉키가 있다. 이 집의 또 다른 구성원이 로즈의 쌍동이 자매 마가렛(모어). 진보적인 라지 가족은 닉키를 이웃인 흑인 가족의 아들과 놀도록 한다.
어느 날 밤 두 명의 괴한이 라지 집에 들어와 로즈를 살해하고 달아난다. 졸지에 어머니를 잃은 닉키를 자기 아들처럼 극진히 돌보는 것이 마가렛. 로즈의 생명보험금이 지불되기 전 보험회사로 부터 로즈 죽음에 대해 조사를 하려고 버드 쿠퍼(오스카 아이작)가 라지네 집을 방문한다. 이어서 유혈 낭자한 폭력과 살인이 일어난다. 끔찍한데도 킬킬대고 웃게 되는데 이런 설정이 코엔 형제의 ‘화고’를 연상시킨다. 
이런 살인 미스터리와 함께 백인 주민들의 흑인 이웃에 대한 증오심이 폭발하면서 방화와 폭력이 자행된다. 그리고 여기에 남군기가 등장한다. 클루니는 평소에 내면에 잠복해 있다 때가 되면 고개를 드는 점잖은 중산층 백인들의 위선과 인종차별을 다소 젠체하면서 비판하고 있다. 
시사성이 있는 내용과 흥미 위주의 다크 코미디를 범벅했으나 가상한 뜻만큼 내용이나 연출이 따르질 못한다. 볼만한 것은 데이먼과 1인2역의 모어의 연기로 특히 데이먼이 겉은 순진해 보이나 속에 감춘 불만과 한이 있는 남자의 연기를 능청맞게 잘한다. R등급. ★★★(5개 만점)
                                                            <한국일보 박흥진 편집위원/ hjpark1230@gmai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