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이야기

2018년 10월 29일 월요일

용서해 줄 수 있겠어?(Can You Ever Forgive Me?)


유명 작가의 편지 위조범 이즈라엘(왼쪽)과 그의 공범 잭이 바에서 스카치를 마시고 있다

유명작가의 서명위조 사기 벌이는 매카시 연기 일품


1990년대 초 유명 스타들과 작가들의 편지와 서명을 위조해 팔아먹은 뉴욕의 여류 작가 리 이즈라엘의 실화로 코미디언 멜리사 매카시가 가발을 쓰고 비루먹은 개처럼 초라하고 누추한 모습으로 나와 드라마 배우로 변신한 흥미 있는 작품이다.
뉴욕 출판계에 대한 비판과 함께 작가의 창작력의 원천을 다루면서 아울러 유명 인사의 것이라면 사족을 못 쓰는 풍조도 더불어 조소하고 있는데 매카시의 연기는 벌써부터 상감이라는 평을 듣고 있다. 
매카시의 연기와 함께 볼만한 것이 이즈라엘의 사기행각의 동료 잭으로 나오는 영국배우 리처드 E. 그랜트의 연기인데 변화무쌍하기 짝이 없다. 그리고 매카시와 그랜트의 콤비네이션도 일품으로 둘의 우정과 티격태격을 보는 것만 해도 즐겁다. 
리 이즈라엘(매키시)은 완전히 한물 간 작가로 자기 책을 출판한 회사 편집자(베테런 TV 코미디언 제인 커틴)에게 전화를 하면 받아주지도 않는다. 렌트가 몇 달씩 밀렸지만(편집자의 집에 열린 파티에 가서 화장실의 남은 휴지를 가방에 쓸어 담을 정도로 궁색하다) 단골 바에 가서 스카치를 니트(얼음 안 탄 것)로 거푸 마시는데 유일한 위로라면 애주중지하는 고양이.
*최근 매카시와 가진 인터뷰에서 실제로도 스카치를 그렇게 니트로 미시느냐고 물었더니 요즘에는 옛날과 달리 얼음과 함께 마신다면서 “난 스카치를 즐긴다”고 대답해 “나도 스카치를 즐긴다”고 스카치 예찬에 동조했다.
이즈라엘은 어느 날 도서관에 가서 자료를 연구하던 중 책 속에 있는 유명작가의 서명이 적힌 친필 편지를 발견, 자기 가방에 숨겨 빼낸다. 이를 계기로 이즈라엘의 유명인사 편지와 서명 위조 작업이 시작되는데 편지 한 장에 수백달러씩 팔리는 바람에 렌트비도 조달되고 술값도 넉넉해진다. 
이즈라엘이 위조하는 작가들은 노엘 카워드와 도로시 파커 등이 있고 연예인으로는 패니 브라이스가 있다. 이즈라엘의 필적 위조 솜씨가 어찌나 좋은지 책방에서는 의심하지 않고 사는데 편지 내용은 다 이즈라엘의 창작이다. 
어느 날 이즈라엘은 바에 들렀다가 과거 출판 기념파티에서 잠시 대면한 날건달 잭(그랜트)을 만난다. 둘 다 술꾼으로 즉석에서 죽이 맞아 잭은 이즈라엘의 위조 작업의 파트너로 참여한다. 그러나 한 동안 잘 나가던 사기행각이 꼬리가 길면 잡힌다고 FBI의 수사망에 떠오른다. 그래서 이 때부터 위조편지 판매는 잭이 대행하는데 결국 이즈라엘은 체포돼 재판에 회부된다. 
재판에서 이즈라엘은 판사가 선고를 하기 전 “나는 위조작업 하는 일이 너무나 행복했다”면서 “가짜 편지의 내용은 다 내 창작의 산물”이라고 고백한다. 이즈라엘은 집행유예를 받았는데 후에 자기 경험을 쓴 책 ‘Can You Ever Forgive Me?’는 뉴욕타임스에 의해 칭찬을 받았다. 이즈라엘은 2014년 75세로 사망했다. 매리엘 헬러 감독. R. Fox Searchlight. ★★★½ (5개 만점) 
                                                               <한국일보 박흥진 편집위원/ hjpark1230@gmail.com>


‘길티’(The Guilty)


아스가 홈이 경찰서에서 납치된 여자가 건 비상전화를 받고 있다.

비상전화 받는 경찰과 납치된 여인의 대화… 시공 넘은 긴장감 예술적 표현


영화 전체가 경찰서 비상전화 접수실에서 일어나는 얘기로 주인공도 전화를 받는 경찰 한 사람인 협소감 가득한 덴마크 스릴러다. 별로 넓지 않은 사무실에서 전화를 받는 경찰과 그에게 구조를 요청하는 여인의 대화로 이어지는 드라마여서 답답한 것도 사실이나 영화는 이런 제한을 정신적 감정적으로 뛰어 넘고 예술성이 강한 긴장감으로 보는 사람을 유인하고 있다. 어떻게 해서든지 위험에 빠진 여자를 구하려고 온갖 수단방법을 동원하는 경찰의 노심초사에 동반해 화면 안으로 몰입하게 된다. 구스타브 묄러는 대단한 재주를 지닌 감독으로 이 영화가 데뷔작이다 
아스거 홈(야콥 세데르그렌)은 업무수행 중 사건용의자를 사살, 조사 진행 중에 비상전화 접수실 근무령을 받고 근무 중이다. 약물에 취해 응급차 보내달라는 젊은이와 홍등가에서 창녀에게 강탈을 당한 남자의 전화 따위를 받는다. 이어 이벤이라는 이름의 여인으로부터 다급한 음성으로 도와 달라는 전화가 걸려온다. 전 남편에 의해 납치를 당해 지금 차에 실려 가고 있다는 것.
홈은 어떻게 해서든지 차의 위치 등 이벤에 관해 보다 자세히 알기 위해 이벤에게 집에 있는 딸과 전화를 하는 척 하라고 지시한다. 그리고 이벤이 흰색 밴에 타고 있으며 차는 고속도로를 타고 북쪽으로 달리고 있다는 것을 비상대기 차량에 통지한다. 그러나 이벤의 전화가 끊기면서 다급해진 홈은 법규를 무시하고 혼자 지혜와 경험 등을 이용해 사건을 수사하기로 한다.
그야말로 볏단 속에서 바늘 찾기 식인데 홈은 옆 자리에 동료 경찰이 있는 자기 자리를 떠나 옆방에서 혼자 전화와 컴퓨터를 사용, 이벤 구조에 열을 올린다. 
다시 이벤과 통화가 연결된 홈은 여인과 그의 전 남편과의 관계 그리고 둘의 가정생활 내용 및 궁극적으로 그들이 가고 있는 목적지를 알아내려고 이벤에게 유도 질문을 한다. 그리고 이 과정에서 서서히 이벤의 실제 상황을 알게 된다. 감독은 홈이 이벤을 구원함으로써 자기가 저지른 행위에 대한 속죄를 하게끔 했다.
영화는 좁은 공간에서 느끼게 되는 홈의 고독과 갇힌 상태 그리고 시각적 제한을 홈의 전화를 통해 들리는 외부의 여러 가지 음향으로 해소하면서 보는 사람으로 그와 함께 하여금 감정적 여정을 하게 만든다. 세데르그렌이 혼자서 영화를 짊어지고 순전히 얼굴 표정과 음성으로 시종일관 긴장감을 풀어주지 않는 뛰어난 연기를 한다.★★★½ (5개 만점) 
                                                                 <한국일보 박흥진 편집위원/ hjpark1230@gmail.com>



‘불릿’


사람을 깔보는 듯한 새파란 눈동자의 시선과 매력적으로 인색한 미소를 지녔던 쿨 가이 스티브 맥퀸을 액션 스타로 신격화한 영화는 형사스릴러 ‘불릿’(Bullitt^사진)이다. 갱스터 범죄영화의 금자탑과도 같은 ‘불릿’이 이달로 개봉 50주년을 맞아 요즘 미 전국 대도시에서 재상영 되고 있다.
‘불릿’하면 대뜸 생각나는 것이 형사 불릿으로 나온 맥퀸이 복잡한 샌프란시스코 시내를 초고속으로 질주하는 자동차 추격 장면이다. 맥퀸이 차를 타고 도주하는 킬러를 쫓아 포드머스탱 390GT를 모는 장면은 자그마치 10분간 계속되는데 대부분 스피드광인 맥퀸이 직접 시속 120마일로 차를 몰며 찍었다. 나도 이 장면 때문에 ‘불릿’이 TV에서 방영될 때면 다시 보곤 한다. 
자동차 추격의 전설이 되다시피 한 이 장면을 찍는데 총 3주가 걸렸는데 맥퀸은 샌프란시스코의 자동차 경주장에서 옆에서 달리는 스턴트 드라이버를 따라 맹연습을 했다. 맥퀸은 이렇게 위험한 장면을 직접 하겠다고 우겨 배급사인 워너브라더스가 전전긍긍했다고 하는데 맥퀸은 영화의 제작에서부터 영국인 감독 피터 예이츠의 선정에 이르기까지 영화 전반에 걸쳐 철저히 주도권을 행사했다. 제작비 550만 달러가 든 영화는 빅히트, 총 4,230만 달러를 벌었는데 이는 현 시가로 3억 달러에 이른다.
로버트 본과 재클린 비셋이 공연한 ‘불릿’은 후에 나온 액션영화들인 ‘프렌치 커넥션’과 ‘히트’ 및 ‘제이슨 본 ’시리즈 등에 큰 영향을 미쳤다. 특히 오스카 작품과 감독 및 남우주연상을 탄 ‘프렌치 커넥션’에서 형사 포파이(진 해크만)가 고가전철을 타고 달아나는 헤로인 밀수범을 쫓아 복잡한 뉴욕시내를 초고속으로 차를 모는 장면은 ‘불릿’의 추격 장면을 연상시킨다.
맥퀸은 온 몸에서 허위란 찾아 볼 수 없었던 생생한 실물이었다. 과묵하고 섹시한 야생동물과도 같은 남성다움으로 팬들의 사랑을 받았던 우상과도 같은 존재였다. 맥퀸은 온순해 보이기까지 하는 마초기질과 카리스마가 가득한 분위기로 인해 생전에는 물론이요 죽은 지 40년이 가까운 지금까지도 웬만한 살아 있는 배우들 보다 더 유명한 배우다.
맥퀸은 폐암으로 1980년 50세로 사망했는데 당시 아내는 범죄영화 ‘겟어웨이’에서 공연하다 사랑에 빠졌던 알리 맥그로였다. 공연 시 맥그로는 패라마운트 사장 로버트 에반스의 부인이었다. 신문들은 맥퀸과 맥그로의 로맨스를 놓고 ‘미녀와 야수’의 결합이라고 대서특필했었다.
1980년은 내가 미국에 온 해로 그 때 맥퀸이 암치료를 위해 일종의 비법치료를 한다는 의사를 찾아 멕시코에 갔다는 신문보도를 읽었던 기억이 난다. 그는 병을 못 고치고 귀국했는데 그 후 수술을 받기 위해 다시 멕시코에 갔다가 수술 후유증으로 사망했다. 그에 관한 기록영화에 의하면 맥퀸은 죽음과 필사적으로 다투다가 지쳐 마지막에는 “대츠 잇”하며 싸움을 포기했다.
거칠면서도 상냥한 양면성을 지녔던 맥퀸은 늘 변두리를 밟으며 스릴을 좇아 산 국외자였다. 그가 나온 ‘주니어 보너’ ‘탐 혼’ ‘신시내티 키드’ 및 ‘헌터’ 등은 다 이런 변두리 인물이 주인공이다. 맥퀸의 국외자 생활 스타일은 그의 불우했던 어린 시절과 관계가 있다고들 한다.
그는 아버지를 모른 채 태어나 어렸을 때 알콜중독자인 어머니로부터도 버림받고 인디애나주의 농부인 삼촌 밑에서 자랐다. 불량아였는데 그는 이렇게 배드 보이가 될 소지가 충분히 있었는데도 오히려 배드 보이의 어두운 매력과 장난기를 십분 발휘해 자기 인기형성에 이용했다. 맥퀸은 자기주장이 강해 할리웃에서 다루기 힘든 배우로 딱지가 붙었었는데 그래서 자기를 스타로 만들어준 ‘황야의 7인’과 ‘대탈주’를 감독한 스승과도 같았던 존 스터지스와도 결별하고 말았다. 
해병대 출신으로 G.I. 빌로 뉴욕의 액터스 스튜디오에서 연기공부를 한 뒤 무대와 라이브TV로 배우생활을 시작한 맥퀸은 많은 웨스턴에 나왔다. 배우 초기 시절 나온 TV시리즈 ‘원티드:데드 오어 얼라이브’를 비롯해 ‘황야의 7인’, ‘네바다 스미스’ 및 ‘탐 혼’ 등이 다 웨스턴이다.
맥퀸은 ‘황야의 7인’ 영화 전편을 통해 불과 20여 줄의 대사(그는 대사를 싫어했다)밖에 구사하지 않았는데 그는 여기서 공연한 선배 빅스타 율 브린너에게 집중되는 시선을 자신에게 돌리기 위해 자기 멋대로 독특한 행동을 해 브린너의 심기를 크게 건드렸다는 일화가 있다. 맥퀸은 자동차만 잘 탈 뿐만 아니라 ‘대탈주’에서는 모터사이클을 ‘황야의 7인’에서는  말도 잘 탔는데 그의 자동차 질주 실력이 과시된 또 다른 영화는 그랑 프리를 다룬 ‘르 만스’다.     
맥퀸은 생전 “나는 연기하는 사람이 아니다. 나는 반응하는 사람이다”라고 자신의 본능적인 연기관을 피력했다. 그의 연기는 생경할 정도로 사실적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맥퀸이 오스카상 후보에 오른 영화는 캔디스 버겐과 공연한 ‘샌드 페블스’ 단 한편이다. 
                                                               <한국일보 박흥진 편집위원/ hjpark1230@gmail.com>


                                     

2018년 10월 12일 금요일

퍼스트 맨(First Man)


닐 암스트롱(맨 앞)이 동료 우주인들과 함께 아폴로 `11호에 탑승하기 위해 걸어가고 있다.

암스트롱의 역사적 달 착륙과정
영웅담 탈피 인간적 내면세계 조명



난 아직도 인간의 달 착륙이 왜 인류를 위한 승리인지 그 까닭을 못 깨달았지만 이 영화는 그 승리의 장본인인 닐 암스트롱의 달 착륙을 그린 준수한 영화다. 뮤지컬 ‘라라 랜드’로 오스카 감독상을 탄 데이미안 차젤과 ‘라라 랜드’에 나온 라이언 가슬링이 다시 콤비가 돼 만든 수고와 열정과 정성이 가득한 기품 있는 작품이다. 
차젤은 무슨 영화든지 잘 만드는 뛰어난 재능의 소유자임이 여실히 증명된 영화로 연출과 연기가 지나치게 차분한 것이 흠이라면 흠이지만 그의 작품에 대한 접근이 매우 지적이요 진지하고 신중해 거의 경외감마저 느끼게 된다. 확신에 찬 연출력이다. 
암스트롱의 가족의 얘기와 그의 테스트 파일롯으로서의 활동 그리고 달 착륙을 위한 준비 과정이 차분하게 서술되는 작품의 절반 정도까지는 분위기가 너무 착 가라앉아 심심하게 느낄 사람들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차젤은 흥분하기 쉬운 영웅담이라는 내용에 결코 부응하지 않고 매우 사적인 암스트롱이라는 개인의 충실한 업무수행을 보여주고 있을 뿐이다. 그가 영화에서 암스트롱이 달에 성조기를 꽂는 장면을 안 보여주는 것도 이런 맥락에서 보면 이해할 수 있다. 이로 인해 차젤은 비애국적이라는 비판을 받았다.
처음에 대뜸 1961년 테스트 파일롯 암스트롱이 캘리포니아의 모하비 사막 공중에서 비행하는 격렬한 장면으로 시작된다. 같은 해 그의 세 살 난 딸 캐런이 암으로 죽으면서 암스트롱의 내면의 일부가 죽는다. 그러나 절대적으로 자기 감정을 죽이는 암스트롱은 겉으로 슬픔을 표시하지 않는다. 딸의 죽음은 암스트롱을 달 착륙에 도전케 하는 계기가 된다.
암스트롱의 아내 재넷(클레어 포이가 알찬 연기를 한다)은 땅에 발을 굳건히 디딘 믿음직스러운 집안의 기둥으로 어린 두 아들을 돌본다. 이어 암스트롱은 달 착륙을 위한 제미니/아폴로 프로그램에 선발돼 휴스턴으로 이사를 한다. 그의 앞집에 사는 사람이 같은 우주인 에드 와잇(제이슨 클락)으로 둘은 친구가 된다. 와잇은 시험 비행에서 사망하는데 그 외에도 여러 명이 희생된다. 
아폴로 11호가 발사되기 전까지 고되고 치열한 훈련이 계속되고 마침내 암스트롱과 버즈 알드린(코리 스톨) 등이 탑승한 우주선이 하늘로 치솟는다. 여기서부터 달 착륙과 이륙에 이르기까지 숨이 답답할 정도로 팽팽한 긴장감이 감돈다. 아폴로가 달에 접근하는 모습을 카메라가 천천히 포착하는데 이 때 서정적인 음악(저스틴 허위츠)이 여유롭고 아름답게 흐르다가 달 착륙에 이르면서 영화는 무성이 된다. 침묵이 황금이다. 
우주가 경탄을 금치 못하도록 신비하고 아름답게 묘사되는데(촬영이 훌륭하다) 암스트롱이 달에 죽은 딸이 차고 있던 구슬 팔찌를 남겨 놓는 장면이 가슴을 감정으로 복받치게 만든다. 가슬링의 연기가 맥이 빠진다고 볼 수도 있겠지만 그것보다는 훌륭한 내면연기로 봄이 옳을 것이다. PG-13. Universal. ★★★★ (5개 만점) 
                                                           <한국일보 박흥진 편집위원/ hjpark1230@gmail.com>




‘7월22일’(22 Jul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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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르웨이 여름캠프‘우토야 살육’
살인자와 살아 남은 자, 재판…
브레이빅 역의 리에 연기 볼 만


2011년 7월22일 노르웨이의 여름캠프 섬 우토야에서 일어난 극우파 인종차별주의자 안더스 베링 브레이빅의 살육사건을 다룬 스릴러 드라마로 ‘블러디 선데이’와 ‘유나이티드 93’ 등에서 북아일랜드의 유혈폭동과 9/11 테러를 다룬 영국의 폴 그린그래스 감독(각본 겸) 작품이다. 우토야 사건에서 사망한 사람은 총 77명으로 절대 다수가 어린 학생들이었다. 부상자는 이보다 더 많았다. 
그린그래스는 액션과 스릴을 긴장감 가득하게 다룰 줄 아는 감독인데 이번에는 박력감이 다소 약하다. 거의 기록영화 식이어서 뉴스필름을 보는 것 같은데 이런 영화가 갖춰야 할 통렬하고 열정적인 감정을 느끼기가 힘들다. 그러나 볼 만은 하다.
영화는 세 갈래로 나뉘어 서술된다. 
첫째는 브레이빅(안더스 다니엘슨 리에)의 살육, 둘째는 여기서 큰 부상을 입고 살아남은 고등학생 비야르 한센(요나스 스트란드 그라빌)의 후유증 그리고 마지막은 브레이빅의 재판. 
먼저 7월21일 브레이빅이 무기와 폭발물을 밴에 싣는 장면으로 시작된다. 그는 밴을 오슬로의 수상 사무실과 정부청사가 있는 지역에 주차한 뒤 폭파시킨다. 이는 우토야 살육을 위한 교란작전이다.
이어 브레이빅은 우토야에 도착해 학생들과 지도교사들을 무차별 사살하는데 그가 무감정한 얼굴로 총기를 난사하는 모습이 마치 사냥꾼이 짐승을 사냥하는 장면을 연상시킨다. 이 장면이 끔찍하긴 한데 너무 도식적으로 묘사해 안으로 격한 기분을 느끼게 되진 않는다.
여기서 한센은 동생을 구하고 자기는 뇌를 비롯해 온 몸에 총상을 입는다. 중간 부분이 다소 지루할 정도로 한센의 회복과정과 좌절감과 분노와 살아남았다는 회한 및 가족과의 관계로 이어진다. 그린그래스는 인종화합을 그리기 위해 한센과 살육에서 살아남은 아랍계 소녀와의 사이에 로맨스 기운까지 가미했지만 잘 어울리지 않는다.
마지막은 브레이빅의 재판. 그는 자신의 소신을 세상에 알리기 위해 법정에 선다. 브레이빅은 자기가 악몽 속의 괴물이 아니라 전쟁에 나간 군인이라고 주장하면서 다인종화 하는 노르웨이의 현실을 냉정히 비판한다. 그리고 증인으로 한센이 출두한다. 그의 증언이 감동적이다. 볼 만한 것은 리에의 연기다. 차갑게 생긴 얼굴에 감정을 일체 숨기고 마치 살육을 사무 보듯이 하는 그의 연기는 겁이 날 정도다. 그라빌도 차분하다. Netflix. ★★★½ (5개 만점) 
                                                            <한국일보 박흥진 편집위원/ hjpark1230@gmail.com>



샤를르 아즈나부르


내가 대학생 때 자주 들른 음악다방들은 미 팝송뿐 아니라 샹송도 제법 많이 틀어댔었다. 나는 이 때 프랑스가수들이 비음을 섞어가며 체념이라도 한 듯이 중얼중얼 대는 노래들을 들으며 괜스레 심각해지곤 했었다. 안개가 낀 감상적인 콧소리로 노래해 듣는 사람의 가슴을 사로잡는 샤를르 아즈나부르의 노래를 처음 들은 것도 이 때였다. 지금도 기억에 생생한 것이 그가 “이자벨 이자벨 이자벨”하면서 떠나간 님 이자벨을 몸살 나게 찾던 노래 ‘이자벨’이다.
아즈나부르가 10월 1일 남불 프로방스의 자택에서 94세로 타계했다. 그의 사망에 엠마뉘엘 마크롱 프랑스 대통령은 “샤를르 아즈나부르는 심오한 프랑스인이자 그의 아르메니안 뿌리에 깊이 연결된 세계적으로 인정받은 사람이었다. 그는 세 세대에 걸쳐 기쁨과 슬픔을 동반한 사람이다. 그의 걸작들, 그의 음색, 그의 독특한 소리의 광채는 그와 함께 길이 살아남을 것이다”고 조의를 표했다.
‘세기의 엔터테이너’로 불린 아즈나부르는 에디트 피아프, 질베르 베코, 쥘리엣 그레코 및 모리스 슈발리에 등과 함께 활약한 샹송의 마지막 전설이자 역사였다. 가수요 작곡가이자 배우이며 인도주의자였던 그는 아르메니아계 부모 밑에서 파리에서 태어났다. 11세 때 학교를 그만두고 연예계에 투신했는데 처음에는 파리의 술집 물랭 루지에서 피아프가 노래하기 전 무대분위기를 달구는 가수로 일했다. 그는 20대 초 피아프와 함께 미 순회공연을 마친 뒤 솔로로 전향했는데 피아프는 아즈나부르의 성공을 뒤에서 적극적으로 밀어준 은인이었다.
그러나 생애 8개국어로 총 1,200여곡의 노래를 불러 모두 1억8,000만장의 음반을 판 아즈나부르는 처음에 음성코치로부터 카리스마도 없고 노래도 부를 줄 모른다는 평가를 받았었다. 키가 5피트 3인치에 체중이110파운드 밖에 안 되는 것도 핸디캡이었다. 그러나 그는 이런 평가를 극복하고 목이 쉬도록 노래했는데 그의 노래들은 대부분의 샹송들처럼 주로 사랑에 관한 것이었지만 그는 이 밖에도 결혼과 시대를 앞서간 동성애에 관해서도 노래했다.         
나는 20년 전 아즈나부르가 LA의 윌셔와 라 시에네가 인근의 윌셔극장(현재 사반극장)에서 공연했을 때 참관했었다. 검은 옷을 입은 그는 작달막했지만 그윽한 분위에 카리스마가 있었는데 애매하게 매혹적인 음성으로 자기 히트곡들을 노래하는 것을 보면서 황홀무아지경에 빠졌던 기억이 난다. 그의 히트곡들로는 ‘라 보엠’ ‘라 마마’ ‘나를 포옹해주오’ ‘아베 마리아’ ‘눈이 내리네’ ‘그녀’ ‘파르스 크’ ‘함께’ 및 ‘기억해야 하리’ 등이 있다.   
1950년대 초반 그의 인기가 절정에 이르렀을 때 프랑스의 한 신문은 “프랑스는 아즈나부르에 의해 점령당했다”고 찬양했는데 아즈나부르는 이런 명성과 콘서트를 열 때마다 표가 매진되는 인기에도 불구하고 매우겸손한 사람이었다고 한다. 그는 죽기 2주 전까지 도쿄에서 공연할 정도로 노래에 살고 노래에 죽은 사람으로 생전 “노래를 포기한다는 것은 내겐 죽음이다”라고 말한바 있다.
아즈나부르는 영화배우로서도 유명하다. 스크린에 나서면 화면이 꽉 차는 스타 파워를 지닌 사람이었다. 그는 ‘10명의 작은 인디언들’과 오스카 외국어 영화상을 탄 ‘양철 북’ 등 총 60여편의 영화에 나왔는데 그 중에서도 가장 유명한 것이 그를 세계적 스타로 만들어준 프랑솨 트뤼포 감독의 느와르 ‘피아노 연주자를 쏴라’(Shoot the Piano Player^1960^사진)이다.
트뤼포가 할리웃 갱스터영화에 바치는 헌사와도 같은 작품으로 범죄스릴러이자 희비극이다. 실험정신이 가득한 인간미 넘치는 로맨틱한 영화로 흑백촬영과 음악도 아름답다. 파리의 싸구려 카페의 피아니스트 샬리(아즈나부르)의 영광과 몰락과 여인과 사랑에 관한 얘기로 입을 꽉 다문 무표정한 얼굴의 아즈나부르의 연기가 볼만하다.   
프랑스 서민들의 노래인 샹송은 길바닥 노래다. 처음 가수들은 길가에서 자기가 쓴 노래들을 부르며 행인들에게 악보를 팔아 입에 풀칠을 했다. 가슴이 터져라 노래하던 ‘작은 참새’ 피아프도 길바닥 가수출신이다.
샹송은 곡조나 가사가 다 격렬히 감정을 부추기는데 멜로드라마 같은 거리 인생의 얘기가 우수와 감상과 동경에 찬 멜로디와 무드 속에서 흘러나와 멜랑콜리하기 짝이 없다. 초창기 가수들은 고등교육을 받지 못한 사람들로 이들은 자신들의 경험인 사랑의 아픔과 이별의 후유증 그리고 욕망과 유혹과 회한 등을 노래해 그 사실감으로 인해 노래 부르는 사람과 듣는 사람이 느낌을 공유하게 된다.     
아즈나부르는 인터뷰에서 “나는 술과 에이즈와 교통사고, 이혼과 전쟁의 아이들과 귀 먹고 말 못하는 여인을 사랑하는 남자에 관해 노래 부른다”고 말했다. 그에게는 노래가 철학이었다. 아듀 아즈나부르!
                                                              <한국일보 박흥진 편집위원/ hjpark1230@gmail.com>                                 

스타 탄생(A Star Is Born)


잭슨(왼쪽)과 앨리가 새벽까지 공연장에서 기타를 치고 노래를 부르면서 콘서트 준비를 하고 있다.

레이디 가가 주연 뮤지컬 러브스토리
남녀 가수의 사랑, 야망, 비극 그려


브래들리 쿠퍼가 감독으로 데뷔하고 가수 레이디 가가가 첫 주연을 맡은 이 영화는 1937년에 나온 동명영화의 세 번째 리메이크로 전성기에 술과 약물에 빠져 인기가 추락하는 남자 가수와 그가 발굴해 빅스타가 되는 여자가수의 야심과 사랑과 비극을 그린 뮤지컬 러브 스토리다.
원작과 첫 번째 리메이크의 주인공들은 할리웃 스타들이었으나 두 번째 리메이크의 주인공들로는 바브라 스트라이샌드와 크리스 크리스토퍼슨이 주연하면서 가수로 바뀌었는데 쿠퍼의 영화는 이것을 모델로 삼은 것이다.
두 가수의 사랑과 개인적 야망과 심리적 문제 그리고 미 가요산업계의 내막을 살펴보고 있는데 쿠퍼의 연출력은 살 만하나 노래가 너무 많아 극적 강렬성이 모자란다. 가가가 작곡에 참여한 노래들이 끊임없이 나오는데 마치 가가의 CD 선전물이나 자전적 영화 같다. 그러나 둘의 콤비는 잘 어울린다. 쿠퍼는 직접 노래를 불렀다. 이 외에도 그는 제작과 공동으로 각본과 가사까지 썼다. 그의 작품에 대한 정열과 성의를 느낄 수 있다.
빅 스타 록가수 잭슨 메인(쿠퍼)은 술과 마약에 빠져 산다. 청각 장애까지 있어 좌절감이 심한데 게다가 자기 매니저인 형 바비(샘 엘리옷)와 불화가 일면서 더 약물과 술에 의존한다. 잭슨은 어느 날 코아첼라 축제에서(직접 공연이 열리는 현장서 찍었다) 노래를 부른 뒤 차를 타고 가다가 한 바에 들른다. 여기서 그는 웨이트리스로 일하면서 노래도 부르는 앨리(가가)가 열창하는 ‘라 비 앙 로즈’에 감탄, 앨리에게 데이트를 청한다. 둘은 거리에서 밤을 새워가며 노래와 자기들의 삶에 대해 얘기한다.
얼마 후 잭슨은 자가용 비행기를 보내 앨리를 자신의 콘서트에 초청하고 노래 중간에 앨리를 무대로 불러내 앨리가 작곡한 노래를 부르게 하면서 관중들의 큰 호응을 받는다. 둘은 사랑에 빠지고 앨리의 가수로서의 성공의 문이 열린다. 그리고 둘은 결혼하는데 앨리의 인기가 부쩍 오르는 것과 달리 내면의 개인적 악마와 다투는 잭슨은 술과 약물을 물 마시다시피 하면서 인기도 빨리 추락한다. 이런 잭슨을 앨리는 어떻게 해서라도 고쳐보려고 애를 쓰나 뜻대로 되지 않는다.
앨리의 노래 실력을 발견한 영국의 스타메이커에 의해 앨리는 화려한 변신을 하면서 인기 절정에 올라 ‘새터데이 나잇 라이브’에 까지 출연하는데 이에 대해 잭슨은 앨리가 원래 지니고 있던 진짜 가수의 본질을 잃어버렸다고 비판한다. 그러나 둘의 사랑은 여전한데 잭슨은 자기  문제 때문에 앨리의 장래가 위협 받는 것을 깨닫고 극단적인 조치를 취한다.
쿠퍼의 피와 땀의 결정체 같은 영화로 연기도 잘 하는데 자기가 감독이라고 본인 얼굴 클로즈업이 심하다. 가가도 열심히 하긴 하나 아직은 어색하다. 그러나 마치 오페라 가수의 가창력을 지닌 가가의 노래는 정말 일품이다.
이 영화는 벌써부터 여러 부문에서 수상 후보감이라는 말이 나돌고 있다. R. WB. ★★★½ (5개 만점)
                                                                <한국일보 박흥진 편집위원/ hjpark1230@gmail.com>


2018년 10월 4일 목요일

노인과 총(The Old Man & the Gun)


정장에 중절모를 쓴 터커(로버트 레드포드)가 범행을 저지르기 위해 은행 안으로 들어서고 있다

연쇄 은행강도 벌이는 7순 노인 역
로버트 레드포드‘마지막 작품’관심


헤밍웨이의 ‘노인과 바다’가 아니라 노인이 총을 차고 은행을 계속해 터는 이 영화는 어쩌면 로버트 레드포드(81)의 배우로서의 마지막 작품이 될지도 모르는 담담하고 차분한 드라마다.
마치 레드포드의 머리와 모습처럼 황금빛 기운이 감도는데 조락의 분위기와 체념의 쓸쓸함이 가득해 마음이 고적해진다. 허구를 많이 섞었지만 믿어지지 않는 실화다.
총은 있지만 총 소리는 안 들리는 아름다운 강도영화로 강도라는 액션에 초점을 맞췄다기보다 강도를 하는 노인의 성격과 그가 뒤늦게 만난 여인과의 로맨스를 그린 작품이다.
이 영화는 레드포드의 연기 생활을 마감하는 ‘스완 송’이 될 것이라는 소문이 파다하게 나돌았으나 막상 최근 토론토에서 만난 그는 “반드시 그렇지는 않고 60년이 넘는 배우 생활을 한 내게 이 작품이 마지막 작품으로서 잘 어울릴 것 같다고 생각했다”고 말했다. 레드포드의 말대로 그의 은퇴작품으로서 잘 어울리는 영화다.
서두르지 않고 편안하게 서술되는 매력적인 영화로 레드포드의 여유와 카리스마를 갖춘 연기가 일품이다. 7순 나이의 포레스트 터커(레드포드)는 타고난 범죄자. 양심의 가책이라곤 전연 느끼지 않고 작은 동네 은행을 터는 것이 직업(?)이다. 혼자 범행을 저지르거나 때론 두 명의 동료(대니 글로버와 탐 웨이츠)와 함께 은행을 터는데 터커는 늘 정장에 중절모를 쓰고 강도를 한다.
옷 속에 총을 감추고 위협용으로 쓰지만 총 한 번 안 쏘고 일을 끝내는데 은행 매니저나 텔러에게 자기가 강도라는 것을 알릴 때에도 미소를 지으면서 공손하고 상냥하게 현찰을 요구한다. 그래서 텔러들은 경찰에 신고할 때에도 터커에게 반했다는 듯이 나쁜 말을 안 한다. 그런데 터커는 턴 돈을 다락에 숨겨 놓고 쓰지도 않는다. 강도질 중독자다.
터커를 수사하는 사람이 젊은 형사 존 헌트(케이시 애플렉). 그런데 그도 터커를 쫓으면서도 터커라는 인물에 매력을 느끼고 오히려 연민의 마음을 갖는다. 헌트는 몇 차례 간발의 차이로 터커를 놓치는데 이 부분은 좀 억지다.
어느 날 강도 후 도주하던 터커가 길에서 차가 고장 난 주얼(시시 스페이섹이 빼어나게 잘한다)을 도와주다가 둘이 마음이 맞는다. 터커는 주얼에게 자기 직업을 알려주나 주얼은 이를 믿지 못한다. 두 사람은 짙은 로맨스로 맺어진다. 한 동안 직업을 쉬던 터커가 주얼에게 잠깐 나갔다 오겠다고 말 한 뒤 집을 나선다.
실제로 터커는 76세 때인 1981년 텍사스와 미주리주의 작은 은행들을 털다가 체포됐다. 레드포드의 영화로 유유자적하면서 역을 즐기는 그의 모습이 보기 좋은데 그와 스페이섹의 콤비도 완벽하다. 마음이 가는 미풍과도 같은 영화로 마치 악동의 미소와도 같은 레드포드의 미소를 맞는 기분이다. 데이빗 라우어리 감독. PG-13. Fox Searchlight. ★★★½ (5개 만점)
                                                            <한국일보 박흥진 편집위원/ hjpark1230@gmail.com>



마지막 옷(The Last Suit)


아브라함이 파리의 기차 역무원에게 독일 땅을 거치지 않고 폴란드로 가는 길을 묻는다,

홀로코스트서 구해준 은인 찾아
남미서 유럽으로 떠나는 노인
유머·인간미 가득한 로드 무비


일종의 홀로코스트 영화이지만 어둡고 참혹하게 나치의 유대인 학살을 다룬 것이 아니라 유머 가득한 로드 무비 코미디이자 심각한 드라마다. 학살에서 살아남은 뒤 죽음에 이른 자기를 구해준 옛 친구이자 생명의 은인을 찾아 남미에서 유럽까지 혼자 여행을 떠난 팔순 노인의 여정을 정감 있게 그렸다.
여행 하는 도중에 만나는 사람들과의 관계가 훈훈하고 인간적이며 재미있는데 마지막 장면에서 눈물을 흘리지 않는다면 가슴을 검사해봐야 할 것이다. 영화는 특히 심술첨지이나 예지가 가득한 주인공 아브라함 역을 맡은 미겔 앙헬 솔라의 변화무쌍한 연기가 돋보인다.
부에노스 아이레스에 사는 88세난 은퇴한 양복 재단사 아브라함 버즈스타인(솔라)은 폴란드 태생의 유대인으로 나치의 유대인 수용소에 갇혔다가 생존, 전후 아르헨티나로 이주했다. 그는 수용소에서의 삶으로 인해 한쪽 다리를 전다. 부에노스 아이레스에서 양복점을 차려 성공한 아브라함은 자식들과 손자 손녀들이 많다. 그런데 자식들이 자기를 양로원에 보내기로 하고 집을 팔아버리면서 아브라함은 전에 자기가 살던 로즈의 친구를 찾아 가기로 한다. 70여 년 만으로 아브라함은 그동안 간직했던 신사복 한 벌을 챙긴다.             
먼저 도착한 곳이 마드리드. 가는 비행기 안에서 마드리드에 사는 젊은이 레오(마틴 피로얀스키)를 만나고 아브라함이 마드리드 공항에서 곤경에 처한 그를 도와주면서 후에 그의 도움을  받는다. 여기서 묵는 호스텔에서 아브라함은 호스텔 주인이자 파트타임 가수로 시니컬한 마리아(앙헬라 몰리나)와 아름다운 인간관계를 맺는다.
이어 파리에 도착한다. 파리에서 폴란드까지 가는 열차가 독일을 경유한다는 것을 깨달은 아브라함은 역 안내원에게 독일을 거치지 않고 폴란드로 가는 기차가 없느냐고 묻는다. 독일 땅을 밟지 않겠다는 것. 이를 듣고 기차가 독일에 도착했을 때 아브라함이 독일 땅을 밟지 않도록 도와주는 사람이 독일 여자 잉그리트(줄리아 비어홀드).       
마침내 로즈의 과거 자기 집에 도착한 아브라함은 수용소에서 나와 다 죽게 된 자기를 돌봐 준 친구를 찾아 문을 두드린다. 친구는 과연 아직 살아 있을까. 아브라함이 들고 온 옷은 그가 친구에게 주려고 가져왔다. 파블로 솔라즈 감독.  ★★★½ (5개 만점)
                                                            <한국일보 박흥진 편집위원/ hjpark1230@gmail.com>



네 번째 ‘스타 탄생’


10월 5일에 개봉되는 브래들리 쿠퍼의 감독 데뷔작으로 그와 가수 레이디 가가가 공연하는 뮤지컬 비극적 사랑의 이야기 ‘스타 탄생’(A Star Is Born^사진)은 1937년에 만들어진 동명영화의 세 번째 리메이크다. 쿠퍼는 이  영화를 자신의 감독 데뷔작으로 고른 이유를 “마음속 깊이로부터 애착이 가면서 나의 창작 혼에 불을 지펴줬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쿠퍼의 ‘스타 탄생’의 두 남녀 주인공은 모두 가수들이지만 원작의 두 사람은 할리웃의 스타들이다. 윌리엄 웰만이 감독하고 재넷 게이너와 프레데릭 마치가 급부상하는 신성 에스터 블로젯과 하락세로 접어든 빅스타 노만 메인으로 각기 나온다.
시골 처녀 에스터가 스타의 꿈을 안고 할리웃에 와 알코홀 중독자인 노만의 눈에 띠면서 배우로서의 길이 열리고 이름도 비키 레스터로 바꾼다. 둘은 사랑에 빠져 결혼하는데 노만은 술에 절어 팬들의 인기를 잃고 연기생활도 급추락하는 반면 비키의 인기는 급상승, 오스카 주연상을 받는다.
노만을 극진히 사랑하는 비키의 자비로운 마음으로 인해 노만은 한동안 금주하지만 배우로서의 자기 처지를 비관, 다시 술에 손을 댄다. 폐인이 되다 시피 한 노만을 돌보기 위해 비키가 인기정상의 자리에서 연기생활을 포기하기로 결심하자 이를 안 노만은 아내의 미래를 위해 태평양 물속으로 걸어 들어가 자살한다.
그 후 베키가 할리웃의 차이니즈극장에서 열린 자기 영화의 프리미어에 참석, 방송국 마이크를 통해 “안녕하세요 여러분, 저는 노만 메인의 부인입니다”라고 팬들에게 인사하는 장면이 눈시울을 붉게 만든다.
재넷과 마치의 연기가 좋은 훌륭한 드라마로 오스카 감독, 남녀주연 및 각본상 등 총 7개 부문에서 후보에 올랐으나 각본상(윌리엄 웰만이 공동 수상)만 탔다. 이 영화의 프리미어도 영화 속 내용처럼 차이니즈극장에서 열렸다.
이 영화 못지않게 잘 만들고 흥미진진한 것이 1954년에 나온 조지 큐커가 감독하고 주디 갈랜드와 제임스 메이슨이 나온 첫 번째 리메이크다. 내용은 원작과 거의 같은데 주연남녀를 비롯해 주제가등 총 6개 부문에서 오스카상 후보에 올랐으나 상은 못 탔다. 이 해 여우주연상은‘갈채’(The Country Girl)의 그레이스 켈리가 탔다. 갈랜드의 영화는 골든 글로브 남녀주연상(드라마 부문) 수상작이다.
갈랜드는 당시 약물중독과 체중문제 및 질병에 시달려 할리웃에서 ‘불안정한 배우’라는 딱지가 붙었을 때였다. 당초 노만 역이 제의됐던 케리 그랜트가 역을 거절한 이유 중 하나도 갈랜드의 이런 평판 때문이었다. 노만 역은 그랜트 외에도 험프리 보가트와 프랭크 시내트라에게도 제의됐으나 제작사인 워너 브라더스(WB)의 사장 잭 워너가 둘을 퇴짜 놓았다.
제1편과 제2편은 비평가들의 호평과 함께 흥행서도 성공했는데 서로 우열을 가리기가 힘들 정도로 준수하다. 다만 규모와 화려한 면에서는 WB의 첫 시네마스코프작인 갈랜드의 것이 앞선다. 그러나 나는 정감 있고 보다 인간적인 게이너의 것을 좋아한다.                     
1976년에 나온 ‘스타 탄생’의 두 번째 리메이크는 주인공이 배우가 아니라 가수들로 두 수퍼스타 가수이자 배우인 바브라 스트라이샌드와 크리스 크리스토퍼슨이 나온다. 두 사람의 극중 이름도 에스터 호프만과 존 노만 하워드로 개명됐다. 쿠퍼의 영화는 이 영화를 모델로 했음에 분명한데 촬영 시 스트라이샌드와 크리스토퍼슨이 세트를 방문 했다고 한다. 
스트라이샌드가 부른 주제가 ‘에버그린’은 오스카상을 탔고 빅히트를 했다. 이 영화는 골든 글로브 작품, 남녀주연(뮤지컬/코미디 부문) 및 음악과 주제가상을 탔다. 당초 남자주연으로 말론 브랜도와 가수 닐 다이아먼드 및 엘비스 프레슬리등이 물망에 올랐는데 프레슬리가 역에 큰 관심을 보였으나 크레딧에 자기 이름을 스트라이샌드 것 위에 올려달라는 등 요구 사항이 지나쳐 무산됐다. 프랭크 피어슨이 감독한 이 영화는 비평가들로부터 “두 가수의 허영의 산물”이라는 혹평을 받았으나 그렇게 나쁜 영화는 아니다.
세 번째 리메이크는 사실 2007년에 클린트 이스트우드가 감독할 예정이었으나 무산됐는데 이번에 쿠퍼의 집념에 의해 완성된 것이다. 처음에 쿠퍼가 레이디 가가를 주연으로 쓰려고 했을 때 제작사인 WB는 그의 연기력에 회의를 품어 가가는 자택에서 여러 시간에 걸친 스크린 테스트를 받고나서야 발탁됐다. 그런데 가가는 TV시리즈 ‘아메리칸 호러 스토리:호텔’로 골든 글로브 상을 탄바 있다. 
쿠퍼와 레이디 가가가 영육을 바치다시피 한 흔적이 역력한 이 영화가 과연 팬들의 얼마나 큰 호응을 받을 것인지 자못 궁금하다.                             
                                                              <한국일보 박흥진 편집위원/ hjpark1230@gmai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