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이야기

2014년 10월 9일 목요일

‘왓 이프’대니얼 래드클리프



“해리 포터 떠나 성인역… 언젠가는 감독이 꿈”


로맨틱 드라마‘왓 이프’(What If)에서 동거애인이 있는 샨트리(조이 카잔-‘워터프론트’와‘에덴의 동쪽을 감독한 엘리아 카잔의 손녀)를 사랑하면서도 이 여자와 친구 사이로 있겠다고 한 약속 때문에 속을 태우는 의대 중퇴생 월래스로 나온 대니얼 래드클리프(25)와의 인터뷰가 베벌리힐스의 포시즌스 호텔에서 있었다. 월래스 역은‘해리 포터’ 시리즈로 성장하고 또 이로 인해 수퍼스타가 된 래드클리프의 본격적인 첫 성인 역이다. 소매가 짧은 짙은 회색 셔츠 차림에 얼굴에 잔 수염을 기른 래드클리프는 동안이었는데 질문자에게“서”라고 깍듯이 존칭을 써가면서 액센트가 있는 어투로 속사포식으로 대답했다.                                                              
―당신은 남자와 여자가 친구가 될 수 있다고 생각하는가.
“난 남자와 여자가 친구가 될 수 있다고 확신한다. 거기서 그 관계가 연인 사이로 발전할 수도 있고 또는 친구 사이로 남아 있을 수도 있다. 나의 아버지와 어머니도 2년 정도 친구로 지내다가 연인이 돼 결혼해 지금까지 30여년 간을 잘 살고 계신다. 그러나 영화의 주제는 남자와 여자가 친구가 될 수가 있느냐는 것보다는 자신이 느끼는 감정을 부인하는 것이 과연 현명한 일이냐 하는 것이다.”

―영화에서 월래스는 누나의 아이를 돌봐 주는데 당신도 아이들을 돌볼 줄 아는가.
“난 아이들을 좋아해 잘 돌볼 줄도 안다. 나는 두 명의 대자도 있다. 아이들은 어른들보다 훨씬 더 함께 있기가 즐거운데 왜냐하면 그들은 아무 거리낌 없이 자기가 생각하는 대로 얘기를 하기 때문이다.”         

―월래스처럼 실연해 고통해 본 적이 있나.
“월래스처럼 애인에게서 배신을 당해 고통해 본 적은 없다. 따라서 내가 겪은 상심이나 상사병은 남에 의한 것이라기보다 순전히 자해와도 같은 것이라고 하겠다.”    

―당신에게 사랑이란 무엇인가.
“특별한 누군가와 함께 있을 때 느낄 수 있는 행복한 감정이라고 생각한다. 그러나 사랑이란 각자가 다 다른 것이어서 하나의 정의로는 말할 수가 없다. 사랑이란 멋있고 혼란스러운 것이 아닐까.”

―작년에 당신은 ‘킬 유어 달링스’에선 남자를 사랑했고 이번에는 여자를 사랑하는데 두 역이 다른 점이 무엇인가.
“다를 게 뭐가 있는가. 남자이건 여자이건 간에 매력적인 사람에게 사랑에 빠진다는 것은 다 같은 일이다. 남자와 어떻게 사랑하지, 아니면 여자와 어떻게 사랑하지 하고 생각하는 것이 아니다. 남자냐 여자냐가 문제가 아니다. 배우는 모든 장면에 똑 같이 접근한다.”

―길에서 아이들이 당신을 보고 ‘해리 포터네’하고 말하는 것을 들으면 기분이 어떤가.
“나이를 불문하고 사람들이 내게 다가 와 해리 포터에 대해 흥분해서 얘기를 할 때면 그들을 충분히 이해한다. 그들은 나를 그 영화로 인해 알게 됐으니까. 그런데 사람들이 요즘에는 내게 다가와 해리 포터라기보다 내 본명을 부른다. 대니얼 래드클리프라고 부르는 소리를 듣는 것은 기분 좋은 일이다. 내가 뉴욕에서 연극에 나왔을 때 팬들이 매일 밤 무대로 통하는 문에서 기다리다가 날 만나면 ‘해리 포터’가 자기들 인생에 있어서 얼마나 중요한 의미를 지녔는지에 대해 얘기를 했다. 그것을 듣는 것은 참으로 환상적인 일이었다. 그러나 이와 반대로 주정꾼들이 날 보고 ‘해리 포터’하고 소리를 질러대는 것을 듣는 일은 짜증나고 힘든 일이다. 좌우지간 그 이름을 들을 때마다 깊은 향수감에 젖곤 한다.”

―아침에 혼자 일어나면서 자의식이라도 하는가.
월래스(대니얼 래드클리프·왼쪽)와 샨트리(조이 카잔)가 식당서 대화하고 있다.
“오 노. 그런 생각하면서 일어나지 않는다.”

―해리 포터의 작가 J.K. 롤링이 새로운 작품을 쓴다면 거기에 나올 생각이 있는가.
“그것에 대해서는 우리들 간에 어떤 논의도 없었다. 롤링은 최근에 신작 단편을 냈는데 아마도 이 때문에 영화 얘기가 나온 것 같다. 그러나 내게 영화 제의가 온 적은 없다.”

―당신은 최근에 마법의 세계 속의 어른에 관한 영화에 나올 용의가 있다고 말한 것으로 아는데 사실인가.
“아니다. 각본은커녕 아무 것도 아는 것이 없는 일에 관심을 가질 수가 없다. 나는 곧 다리 건설에 관한 영화 ‘무너진 다리’의 촬영을 시작하는데 이것도 각본을 읽고서야 출연에 응했다. 내가 할 말은 나는 다양한 역을 찾아서 부지런히 일하겠다는 것이다. 그냥 과거와 다르다고 해서 각본을 선택한다기보다는 내가 즐길 수 있는 역을 찾을 것이다. 모든 가능성에 대해 저는 문을 열어놓고 있다.”

―당신의 애인에 대해 말해 줄 수 있는가.
“그럴 수가 없다.”

―조이 카잔과의 관계는 어땠고 그에게서 무엇을 배웠는가.
“우린 사실 같이 자란 사이다. 그리고 우리의 부모들도 서로 비슷하다. 조이와 나는 서로 아주 어렸을 때부터 영화계에서 자라 관계가 더 돈독한 것 같다. 그리고 우린 서로 비슷한 점이 많다. 그래서 영화에서 우리의 화학작용이 대단히 좋았던 같다. 우린 책벌레들인 데다가 유머감각도 비슷하다.”  
        
―영화에서 당신은 샨트리를 놀라게 하려고 예고도 없이 비행기를 타고 토론토에서 더블린으로 날아갔는데 실제로도 그런 적이 있는가.
“내가 과거 아일랜드 태생의 애인이 있었을 때 영국에서 아일랜드로 예고 없이 찾아간 적이 있는데 비행시간은 달랑 45분밖에 안 걸려 별 스릴이 없었던 것 같다.”

―사랑에 빠지려면 서로 반대되는 성격을 지녀야 하나 아니면 비슷한 사람들이 돼야 하나.
“어딘가 서로 공통되는 바탕은 있어야겠지만 보통은 서로 상반되는 사람들이 사랑에 빠지기가 쉽다고 본다. 그래서 서로가 상대의 균형을 맞춰줄 수 있으면 좋을 것이다. 나는 매우 다혈질이어서 자연 나보다 침착한 사람에게 마음이 간다.”

―남녀 간 친구지간에도 정열이 타오를 수가 있다고 생각하나.
“친구로 지내면서 서로 함께 성장하고 사귀다 보면 경우에 따라 정열이 서서히 솟아날 수도 있다고 본다.”

―요즘 많은 영화배우들이 TV 작품에 나오고 있는데 당신도 그럴 생각이 있는가.
“언젠가 한 번 흥미 있는 TV 작품의 각본을 읽고 관심이 있었는데 한 번 계약하면 7년은 매어달려야 한다는 바람에 포기했다. 그러나 언젠가는 TV 작품에 나오고 싶다. 단 7년씩은 못하겠다.”

―당신은 얼마 전에 25세가 됐다. 이제 진짜 어른이 된 것인데 앞으로의 계획은 무엇인가.
“계속 글을 쓰고 언젠가는 감독을 하고 싶다. 먼저 뮤직 비디오를 감독한 뒤에 보다 큰 작품을 연출하고 싶다. 내가 과거에 한 일들을 보다 공고히 하면서 새 것을 찾을 것이다. 계속해 연기를 하고 연극에 나오고자 한다. 궁극적으로는 가정을 꾸리겠지만 아직은 생각이 없다.”

―남자와 여자 중에 어느 쪽이 더 당신의 마음 문을 열고 대화가기가 쉽다고 여기나.
“남자들은 친구지간에도 서로 약점을 안 보이려고 심각한 얘기를 하기를 꺼려한다. 그러나 여자들은 안 그래서 그들과 대화하기가 더 편하다.”

―요즘 남자배우들이 수염을 기르는 경향이 있는데 그렇다면 나처럼 말끔히 면도한 남자는 이제 더 이상 핸섬하지 않다는 것인가.
“전연 그렇지 않다. 당신 아주 핸섬한데 어리석은 소리 하지 마라. 난 단지 너무 동안이어서 좀 어른스럽게 보이려고 수염을 기르는 것이다. 당신은 면도한 얼굴이 멋있으니 절대로 수염 기르지 말라.”

―이 역이 앞으로 당신의 성인 역의 디딤돌이 될 것이라고 생각하나.
“그렇다. 해리 포터와 나를 쉽게 떼어 놓을 수야 없겠지만 나는 이 역이 광범위한 관객에게 어필할 수 있다고 믿는다. 하여튼 나는 나를 흥분시키고 또 정열적으로 만드는 일을 계속할 것이다.”
                                                                          <한국일보 편집위원/hjpark1230@gmail.com>

곤 걸(Gone Girl)

닉(벤 애플렉)이 실종된 아내의 행방에 대해 대중에게 도움을 청하고 있다.


아내의 실종… 한꺼풀씩 벗는 부부의 딴 모습


아내가 살해당하거나 실종되면 제일 먼저 용의선상에 오르는 사람이 남편이다. 이 영화도 이런 내용을 바탕으로 부식해 가는 결혼의 모습을 파헤친 멜로물이자 서스펜스 스릴러다. 뛰어난 감독 데이빗 핀처(‘소셜 네트웍’)도 이 영화는 겉으로는 단란해 보이나 안으로는 썩어 문드러져 가는 결혼생활을 다룬 진지한 작품이라고 말하나 그렇게 깊이가 있는 작품은 아니고 다분히 오락성 위주의 선정적인 영화다.
총천연색 필름 느와르라고 하겠는데 배신과 음모와 살인이 있는데다가 ‘남편 말이 맞아, 아니면 아내 말이 맞아’라는 식으로 얘기를 알쏭달쏭하게 이끌어가 재미는 만점이다. 남편 측과 아내 측의 얘기를 병행식으로 나열하면서 현재와 과거가 오락가락하는데 완벽하게 뽑은 주ㆍ조연 배우들(닐 패트릭 해리스 빼고)의 눈부신 연기와 나무랄 데 없는 구조와 연출력과 촬영과 음악 및 프로덕션 디자인 등 여러 면에서 훌륭하다.  
그러나 얘기가 자연스럽다기보다 조작한 느낌이 들고 종결부를 다소 엿가락 늘이듯이 늘인 점과 일부 믿어지지 않는 장면 등은 옥에 티라고 하겠다. 9월25일에 시작된 뉴욕영화제 개막작인데 상감은 되지 못한다.
원작은 연예주간지 엔터테인먼트 위클리의 TV 담당기자로 일하다가 경기침체 때 해고당한 길리언 플린의 베스트셀러인데 내용의 일부는 이런 자기 경험을 담았다. 아주 고약하고 사악하며 냉소적인 영화인데 그래서 더 재미가 있다.     
미주리주 노스카테이지의 천편일률적인 교외 주택지에 사는 닉 던(벤 애플렉)이 이른 아침 집 앞에서 어딘가 불안하고 수상쩍은 모습으로 서 있는 장면으로 시작된다. 그는 이어 쌍둥이 여동생 마고(캐리 쿤이 잘 한다)와 함께 경영하는 자신의 바에 들러 동생과 함께 이른 버본을 마시면서 오늘이 아내 에이미(로자문드 파이크)와의 결혼 5주년이 되는 날이라고 말한다.
그리고 닉은 집에 돌아와 리빙룸의 커피테이블이 박살이 난 것을 발견한다. 그리고 에이미가 실종된다. 영화는 여기서부터 닉의 얘기와 에이미가 자기 일기를 읽는 형식으로 두 갈래로 진행된다.   
닉과 에이미는 몇 년 전만해도 뉴욕에 살던 여피 부부로 둘 다 잡지기자였는데 경기침체와 함께 모두 해고당한다. 그리고 닉의 어머니가 암에 걸리면서 둘은 시골로 이사를 온 것이다. 에이미의 부모는 유명한 아동소설 작가로 소설의 주인공은 에이미다. 
닉이 에이미의 실종을 신고하면서 여형사 론다(킴 딕킨스가 빼어난 연기를 한다)와 파트너 짐(패트릭 휴짓)이 수사를 맡는다. 그리고 닉의 집에서 에이미의 혈흔이 발견된다. 이어 닉은 미디어를 통해 아내의 실종을 알리고 대중의 도움을 요청한다. 
경찰이 우선 닉을 심문하면서 도시인을 별로 안 좋아하는 동네 사람들과 미디어가 닉을 아내 실종의 주범으로 몰아붙인다(영화는 작은 마을 사람들의 편협한 생각과 미디어 서커스도 싸잡아 비판하고 있다). 여기에 닉이 어린 여자와 바람을 피웠다는 사실이 밝혀지면서 그는 완전히 살인자로 찍힌다. 이에 닉은 뉴욕의 유명 변호사 태너(타일러 페리도 잘 한다)를 고용한다.    
한편 에이미가 읽는 일기는 따분한 시골에서 백수로 지내는 닉과 자신의 관계가 갈수록 상하면서 점점 닉으로부터 심각한 위협을 받는다고 말한다. 그리고 영화가 시작된 지 1시간(상영시간 2시간 반)쯤 지나 플롯이 충격적으로 변전하고 에이미의 대학시절 애인 데지(닐 패트릭 스미스)가 에이미가 두는 장기판의 말로 등장한다. 그런데 도대체 에이미는 어디로 사라졌는가. 영국 배우 파이크의 과거 이미지를 깨어버릴 영화로 독성이 있는 백합과 같은 모습으로 강인한 연기를 한다. R. Fox. 전지역.  ★★★½(5개 만점)  <한국일보 편집위원/hjpark1230@gmail.com>

해방자(The Liberator)

시몬 볼리바(에드가 라미레스)가 독립군을 이끌고 진격하고 있다.

스페인으로부터 해방전쟁 이끄는 영웅 일대기


남미를 300여년 간의 스페인의 혹독한 통치에서 해방시키는데 초석이 된 베네수엘라의 영웅 시몬 볼리바의 파란만장한 30여년 간의 삶을 그린 전기영화로 허우대는 멀쩡하고 볼만은 하나 감정적으로 개입이 안 되는 영혼이 부족한 작품이다. 이 영화와 엘리아 카잔이 만든 멕시코의 영웅 사파타의 인생을 그린 ‘비바 사파타!’를 비교해 보면 과연 전기영화는 어떻게 만들어야 하는가를 알게 될 것이다.
베네수엘라 태생의 알베르토 아르벨로가 감독하고 에드가 라미레스(‘칼로스’)가 주연한 이 영화는 역시 베네수엘라 태생으로 현 LA 필의 상임지휘자인 구스타보 두다멜이 처음으로 영화음악을 작곡해 화제가 됐는데 음악 역시 교과서적인 영화처럼 평범하다.
영화는 1828년 볼리바가 자신에 대한 암살시도를 모면한 1828년부터 시작해 1800년대 초기로 거슬러 올라가 베네수엘라 지방 부농의 아들인 볼리바가 스페인 궁정을 방문하는 장면으로 변전한다. 여기서 그는 아름다운 마리아-테레사 델 토로(마리아 벨베르데)를 만나 사랑에 빠지고 둘은 결혼해 볼리바의 고향으로 간다.
그러나 신혼 6개월 만에 마리아-테레사가 황열병에 걸려 사망하면서 볼리바는 파리로 가 방탕한 삶에 탐닉한다. 이런 그에게 남미 해방의 소명을 심어주는 사람이 급진보주의자요 인간적인 볼리바의 옛 스승 시몬 로드리게스(프란시스코 데니스).
볼리바는 집의 부를 사용해 소규모의 독립군을 조직하고 그의 군대는 서서히 동맹군을 얻게 된다. 영화는 독립군과 막강한 스페인군 간의 전투 액션과 볼리바의 개인적 삶과 그의 주변 인물들과의 관계를 번갈아가면서 엮었다.
남미의 영웅이 된 볼리바는 1819년 스페인으로부터 해방된 대륙의 북쪽지방을 통틀은 그랜 콜롬비아의 대통령으로 취임하나 독립군의 내분과 스페인의 집요한 공격으로 그랜 콜롬비아는 볼리바가 음모에 말려들어 암살된 후 수개월 만에 해체된다.
극적인 요소를  모두 갖추었으면서도 그것을 제대로 요리 못한 혁명영화로 혁명얘기가 에너지가 모자라고 불꽃이 튀질 않는다. 
라미레스의 연기는 좋지만 이 역시 피와 살이 있는 실물이라기보다 그림 같다. 
R. 일부 지역. ★★★(5개 만점)         <한국일보 편집위원/hjpark1230@gmail.com>

존 윌리엄스 축하

(Mathew Imaging)


마치 중세 기사영화의 나팔수들처럼 기를 단 트럼핏을 들고 무대 좌우의 객석에 서있던 14명의 미군 헤럴드 트럼핏 팀은 LA필과 함께 존 윌리엄스가 1984년 LA올림픽을 위해 작곡한 ‘올림픽 팡파르와 주제’를 요란하게 불어댔다.
30일 LA 다운타운의 디즈니 콘서트홀에서 구스타보 두다멜의 지휘로 열린 LA필의 시즌 개막 연주회는 오스카상을 5번이나 탄 영화음악 작곡가 존 윌리엄스(82)를 축하하는 행사로 진행됐다. 연주곡은 모두 그의 것으로 발췌곡식으로 연주됐다. 그런데 나는 발췌곡을 별로 좋아하지 않는다. 짜깁기 형식이어서 완성된 음악적 만족감을 느끼기가 쉽지 않다.
팡파르에 이어 무대 위에 설치된 대형 화면에 디즈니 홀의 모습을 담은 비디오가 영사되고 윌리엄스가 이 콘서트홀의 개막을 축하하기 위해 지은 현대 음악풍의 ‘사운딩스’가 연주됐다. 이어 바이얼리니스트 이츠학 펄만이 등장, ‘쉰들러 리스트’의 음악과 윌리엄스의 첫 오스카 수상 음악인 ‘지붕 위의 바이얼린’의 카덴자를 연주했다. 아름답고 섬세하면서도 힘 있는 연주다.
윌리엄스의 녹음된 육성이 “난 어렸을 때 칼싸움 영화를 좋아했다”고 과거를 회상하면서 스필버그의 만화영화 ‘틴 틴의 모험’ 중 결투장면을 그린 음악이 “휙 휙”하고 칼바람 소리를 내면서 홀을 메웠다.
화면에는 진 켈리, 타이론 파워, 버트 랭카스터, 스튜어트 그레인저, 에롤 플린 등 왕년의 펜싱영화의 스타들과 요즘의 해리슨 포드와 안토니오 반데라스 등이 나온 ‘스와시버클러’의 장면들의 몽타주가 쏜살같이 지나갔다. 이 날 영화장면이 영사된 것은 이 때 뿐인데 아마도 음악이 연주될 때마다 영화장면을 보여주면 청중들이 음악에서 멀어질 것을 염려해서인 것 같다.
윌리엄스와 스필버그는 단짝이어서 이 날도 여러 편의 스필버그 영화의 음악이 연주됐다. 이어 연주된 오케스트라 단원들의 손가락 튕기는 소리를 곁들인 장난기 짙은 재즈풍의 음악이 있는 ‘캐치 미 이프 유 캔’도 스필버그의 영화다.
두다멜이 마이크를 집어 들더니 오케스트라 석에 부인과 함께 앉아 있는 윌리엄스를 향해 “우리는 음악하면 바흐와 말러 그리고 쇼스타코비치를 생각하지만 오늘 바로 여기에 존 윌리엄스가 있다”면서 “그는 위대한 음악가이자 위대한 인간”이라고 윌리엄스를 찬양했다.
그런데 두다멜도 3일 개봉된 남미 해방의 영웅 시몬 볼리바의 삶을 그린 영화 ‘해방자’(‘위크엔드’판 영화평 참조)의 음악을 작곡, 영화음악 작곡가로 데뷔했다.
이어 두다멜은 “여러분이 잘 아는 음악”이라더니 ‘스타 워즈’의 음악을 전신운동 하듯이 활발한 제스처를 써가면서 힘차게 연주했다. 화면에는 애니메이션으로 된 영화장면의 스케치가 음악에 맞춰 우주선의 속도로 맹렬히 달려갔다.
앙코르는 LA 아동합창단과 엔젤레스 코랄이 부른 서정적이요 아름다운 ‘아미스태드’의 노래 ‘너의 눈물을 말려라 아프리카.’ 음악이 갑자기 분위기를 바꾸더니 두다멜이 ‘조스’의 겁나는 첫 소절을 짧게 연주했다. 무대 위에 있던 아동합창단원들이 “악 악”하고 비명을 지르면서 퇴장했다. 이날 연주회는 이렇게 쇼 기분이 다분했다.
이어 만면에 미소를 머금은 두다멜은 윌리엄스에게 다가가 그를 무대 위로 안내하면서 바톤을 넘겼다. 윌리엄스는 ‘스타 워즈’의 유명한 ‘제국의 행진’을 위풍당당하게 연주했다(사진). 음악 속에 영화에 나온 백색제복의 ‘제국의 스톰트루퍼’들과 함께 흑색망토에 흑색헬멧을 쓴 다트 베이더가 적색 광선검을 휘두르면서 무대에 등장, 클라이맥스를 장식했다. 천장에서 색종이가 떨어져 내리는 가운데 청중들이 기립박수로 노 음악가의 업적을 치하했다.
원래 이런 갈라 스타일의 음악회는 진짜 음악과는 다소 거리가 있다. 보기엔 화려한데 내실이 아쉽게 마련이다. 뭘 먹긴 먹었는데 여전히 허기가 지는 느낌이다.
연주회 내내 기다린 것이 ‘E.T.’와 ‘잃어버린 성궤의 약탈자’ 그리고 ‘제3 세계와의 조우’의 음악인데 이들과 함께 ‘스타 워즈’와 ‘조스’의 음악을 조곡식으로 연주했더라면 훨씬 더 즐거웠을 텐데 하는 아쉬움이 남았다.
작년에 ‘책 도둑’의 음악을 작곡한 존 윌리엄스를 인터뷰했다. 인자한 미소를 띤 윌리엄스는 자상하고 친절한데다가 매우 겸손해 절로 존경심이 우러났다. 윌리엄스는 그때 “내가 작곡한 음악은 다 내 자식과 같아 모두 사랑스럽다”면서 “그 중에서 특별히 고르라면 ‘스타 워즈’와 ‘제3 세계와의 조우’”라고 말했다.
연필로 종이 위에 작곡을 한다는 그는 “8순에도 여전히 작곡을 할 때면 도전과 흥분을 느끼곤 한다”면서 “밤 9시에 작곡을 시작해 새벽 3시에 끝낸다”고. 그래서 이제 그에게 가장 중요한 것이 건강이라고 덧붙였다.
나는 음악가들을 만날 때면 늘 영감이 어디에서부터 오는가 라고 묻는다. 윌리엄스는 이 질문에 “번뜩 악상이 떠오르는 것이 아니라 수주간에 걸친 노력 끝에 나온다”면서 “작곡은 내게 하나의 발견의 과정”이라고 말했다. 윌리엄스의 무병장수를 기원한다.  
                                     <한국일보 편집위원/hjpark1230@gmai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