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이야기

2015년 7월 28일 화요일

왼손잡이 (Southpaw)


피투성이가 된 빌리가 링에서 짐승처럼 소리지르고 있다.

“딸을 위하여”몰락한 챔피언의 최후일전


주인공 역의 제이크 질렌한을 비롯한 배우들의 연기와 권투액션 신을 박진하게 찍은 촬영 그리고 튼튼한 각본과 연출 등 모든 것이 제대로 된 가족 드라마이자 권투영화인데 문제는 예전에 이런 영화는 많이 봤다는 기시감이다. 언더독의 당연한 최후의 승리와 자기 구제의 얘기가 주제로 액션이 있는 권투보다 앞서 가는데 따라서 처음과 마지막의 피가 튀는 두 경기 사이의 드라마가 너무 길고 느린 느낌이다.
안톤 후콰 감독(‘이퀄라이저’)은 마치 이 영화는 권투영화가 아니라는 점을 강조라도 하려는 듯이 드라마 부분에 역점을 두고 영화의 상당부분을 장황하게 끌고 가 권투액션을 기다리느라 좀이 쑤신다. 왕년에 만든 권투영화들인 ‘챔피언’ ‘상처뿐인 영광’ ‘레이징 불’ 및 ‘로키’를 연상케 하는 장면들이 많은 것도 영화의 신선미를 감소시키는 큰 이유. 그러나 보고 즐길 만한 영화다.
첫 장면은 뉴욕의 매디슨 스퀘어가든에서 열린 라이트헤비급 챔피언전에서 얼굴을 알아볼 수가 없을 정도로 피투성이가 된 빌리 호프(질렌할)가 고함을 지르면서 상대방을 공격, 챔피언 벨트를 따는 것으로 시작된다. 이어 라커룸에 들어온 빌리는 섹시한 아내 모린(레이철 맥애담스가 잘 한다)이 보는 앞에서 의사로부터 찢어진 왼쪽 눈을 치료 받는다. 이 왼쪽 눈이 빌리의 결정적 핸디캡이 된다.
11세난 영리한 딸 레일라(우나 로렌스)와 함께 거대한 저택에서 호사를 누리면서 사는 빌리와 모린은 서로를 극진히 사랑하는데 모린은 빌리가 완전히 망가지기 전에 은퇴할 것을 원한다. 이어 얘기는 이런 영화의 정석대로 빌리의 급격한 몰락으로 이어진다(이 부분이 너무 급작스럽다).
남편과의 갈등으로 빌리의 매니저 구실을 하던 모린이 떠나고(영화의 후반부 대부분 모린은 스크린에서 사라진다) 빌리는 자신의 벨트를 노리는 젊고 오만한 미구엘 에스코바르(미구엘 고메스)와 언쟁을 벌이다가 둘이 주먹싸움을 하면서 빌리는 왼쪽 눈을 크게 다친다.
빌리는 여기서부터 빚더미에 올라 앉아 가산을 몽땅 차압당하고 알거지가 되고 레일라까지 뺏겨 레일라는 아동보호소에 들어간다. 물론 빌리는 재기를 하는데 폐인이 되다시피 한 그가 죽음을 각오하고 링에 오르기로 결심하는 까닭은 오로지 딸을 되찾기 위해서다.
빌리가 찾아간 체육관은 왕년의 명 박서 틱(포레스트 위타커)이 경영하는 동네 불우아동과 아마추어 선수들을 위한 후진 장소. 빌리는 프로는 안 받는다는 틱의 거절에도 불사하고 집요하게 틱에게 자기 트레이너가 돼 줄 것을 요구, 둘은 일치 합심해 맹훈련에 들어가 돈에 눈이 먼 경기 알선책(며칠 전 파산신청을 한 커티스 ‘50센트’ 잭슨)의 주선으로 베이가스에서 미구엘과 한판 붙는다.
올해 ‘나이트크롤러’로 오스카 주연상 후보에 올랐던 질렌할의 피비린내 나면서도 민감한 연기가 돋보이는 영화로 얼마 전 비행기 사고로 사망한 영화음악 작곡가 제임스 호너의 유작인데 음악이 무드가 짙다. R. Weinstein. 전지역. ★★★(5개 만점)
                                                 <한국일보 박흥진 편집위원/ hjpark1230@gmail.com>

삼바 (Samba)


삼바(왼쪽)와 알리스는 국경과 피부색깔을 초월해 사랑에 빠진다.

‘불체자와 로맨스’ 코믹·슬픔 교차


프랑스를 비롯한 서 유럽국가의 현재 당면한 큰 문제 중 하나인 불체자의 얘기를 진지하면서도 유머와 감상적 비감을 고루 섞어 만든 프랑스 영화로 프랑스 시민들의 외국인 기피증과 함께 인종차별을 다루고 있다. 
그러나 영화는 이런 메시지를 뚜렷이 제시하면서도 핏대를 세우는 식이 아니라 불체자들에게 연민과 이해심을 보여줄 것을 상냥하게 설득시키고 있는데 그런 메시지 전달의 수법으로 국경과 피부 색깔을 초월한 몸 사리는 로맨스를 선택했다. 로맨스와 사회문제의 좋은 배합인데 영화가 후반에 들면서 얘기가 처지고 이에 따른 불필요한 긴 상영시간이 흠이다. 
파리의 식당 접시닦이인 세네갈 태생의 불체자 삼바(오마르 시-빅 히트작 ‘인터처블스’ 주연)는 셰프가 꿈인데 10년간 몸조심 잘하다가 최근에 단속에 걸려 추방절차를 밟기 위해 수감된 신세. 거구에 호인이요 생명력과 개성이 강한 남자로 그를 담당한 소셜워커가 수줍고 가녀린 알리스(샤를르 갱스부르).
알리스는 사무직 생활 15년에 넌덜머리가 나 신경쇠약 증세로 한 동안 치료소에 있다가 최근에 나왔다. 그녀가 동료 직원의 만류에도 불구하고 삼바에게 개인적 감정을 느끼고 그의 문제를 마치 자기 것처럼 다루기 시작하면서 삼바와 알리스는 피치 못하게 감정적으로 연결된다. 물론 삼바의 문제를 쉽게 해결하는 방법은 알리스와 결혼하는 것이지만 영화는 그렇게 쉽게 상투적인 길을 택하지 않는다. 
삼바와 알리스의 관계를 둘러싸고 여러 에피소드가 엮어지는데 그 중 하나가 수감상태에서 일단 풀려난 삼바가 약속대로 동료 수감자의 미용사 애인을 찾아내 서로가 외로운 중에 하룻밤을 함께 보내는 것.
이와 함께 영화의 다소 심각한 분위기에 코믹 터치를 가미하기 위해 등장하는 사람이 삼바와 그의 알제리 태생의 불체자 친구(타하르 라힘이 호연한다). 이 친구는 알제리 산이면서도 여자를 보다 잘 유혹하기 위해 자신을 브라질 사람이라고 속이는데 그와 삼바가 고층건물 유리를 닦다가 불체자 단속반을 피해 달아나는 장면은 우스우면서도 가슴을 파고드는 아픔을 느끼게 한다. 
‘인터처블스’에서 보여준 대로 시는 카리스마가 가득한 연기를 하는데 그와 프랑스의 명 연기파 갱스부르의 호흡이 아주 잘 맞는다. 불체자의 문제를 다룬 점에서라도 한국인들에게 권하는 썩 괜찮은 작품이다. 에릭 톨레다노와 올리비에 나카쉬 공동감독. R. 일부 지역. ★★★(5개 만점)
                                                                <한국일보 박흥진 편집위원/ hjpark1230@gmail.com>



정창화 감독의 ‘노다지’




나는 며칠 전에 한국 영상자료원이 처음 내놓은 정창화 감독(사진)의 ‘노다지’(Bonanza·1961)를 보면서 “야 이건 할리웃영화 뺨치게 잘 만들었네”하면서 혀를 내둘렀다. 그야 말로 호랑이 담배 태우던 시절의 영화인데 속도 빠른 서술과 잽싼 편집 그리고 플래시백과 긴 세월의 얘기를 자막으로 처리하는 수법을 비롯해 박진한 액션 등이 장인의 솜씨 그대로였다.
황금을 둘러싼 인간의 탐욕이 주제인 이 영화는 정 감독 특유의 액션영화라는 장르 속에 가족 멜로드라마와 갱스터의 필름느와르 및 코미디에 로맨스까지 다양한 요소를 연금술사의 솜씨로 절묘하게 섞어 재미 만점이다. 내용과 연기와 기능 등 모든 면에서 훌륭한 작품이다.
캐스트도 보통 화려한 것이 아니다. 한국의 스크린의 별이란 별은 다 떴는데 주연 김승호를 필두로 황해, 엄앵란, 허장강, 윤인자, 조미령, 박노식, 장동휘, 주선태, 전영선, 정애란, 김칠성, 장혁, 최성호, 남미리 및 장훈 등 당대 내로라하는 배우들은 다 모였다. 음악은 한국 가요계의 거성 박춘석이 작곡했고 임권택이 조감독으로 정 감독을 도왔다.
금에 미쳐 산으로 들어간 운칠(김승호)과 달수(허장강)에 의해 버림받고 성장한 운칠의 딸로 갱단원인 영옥(엄앵란)과 달수의 아들인 갱스터 출신의 선원 동일(황해) 등과 함께 이들을 둘러싼 잡다한 군상들이 황금을 둘러싸고 서로들 감나무에 연줄 얽히듯 얽히면서 드라마와 액션이 일어난다.
이 영화의 황금에 대한 욕망은 존 휴스턴의 ‘시에라마드레의 황금’과 에릭 본 스트로하임의 ‘탐욕’을 연상시키는데 물질에 대한 욕심과 그것의 부작용에 대한 강력한 메시지를 담은 영화이기도 하다.
정 감독은 드라마와 액션을 적절한 순간에 맞춰 교체, 자칫하면 느슨해질 수도 있는 서술에 활기를 주고 있다. 특히 재미있는 것은 둘 다 콧수염을 한(김승호도 역시 콧수염) 구봉서와 김희갑이 날사기꾼들로 나와 웃기는 모습으로 이는 자칫 살벌해질 수도 있는 영화의 내용에 쉼표 구실을 하고 있다.
또 하나 파격적인 것은 운칠과 과거 자기를 버리고 돈 많은 사장에게 달아났으나 지금은 몰락해 바 마담이 된 운칠의 옛 애인 연옥(윤인자)이 오래간만에 재회, 나누는 러브신. 카메라가 둘의 키스 신을 클로스업으로 잡더니 이어 운칠의 등과 침대의 이불을 꽉 부여잡는 연옥의 손을 포착하면서 둘의 정염을 불사른다.
운칠이 연옥에게 배신당하고 홧김에 결혼한 아내로 나오는 조미령과 아역배우로 유명한 전영선 그리고 스크린의 터프 가이의 대명사였던 박노식과 장동휘의 얼굴을 보자니 옛날이 무척 그리워진다.
아기자기하고 다정하고 아이들 장난처럼 귀엽고 코믹하기까지 한 것이 마도로스 캡을 쓴 동일과 점퍼에 몸에 꼭 끼는 바지를 입은 영옥 간의 사랑의 줄다리기 놀음. 영옥이 “키가 작아서 흠이지만 멋쟁이야”라고 호감을 보이는 동일과 그가 말썽꾸러기 소녀 다루듯 하는 영옥과의 콤비가 묵직한 분위기의 영화를 아늑한 감정으로 채색하고 있다.
영화의 클라이맥스는 사금이 있는 계곡의 산에서 벌어지는 동일과 갱 두목 황돼지(박노식) 간의 주먹대결. 속도감 있고 박력 있는 편집이다. 연기들도 좋은데 특히 대한민국의 국보급 배우였던 김승호의 무게 있으면서도 민감한 연기가 돋보인다.
이 영화는 ‘대중영화 감독’으로서 재미있는 영화를 만들겠다는 것이 모토인 정 감독이 또 다른 액션영화 ‘햇빛 쏟아지는 벌판’으로 흥행감독의 대열에 올라선 뒤 만든 그의 초기 걸작 중 하나다. 한국 영화계에 액션장르를 정립한 정 감독은 1960년대 한국서 활동하다가 1970년대 들어 홍콩의 명제작자 쇼브라더스의 초청으로 홍콩으로 건너가 많은 쿵푸영화를 만들었다. 그 중에서 정 감독의 이름을 세계적으로 알리게 된 것이 ‘죽음의 다섯 손가락’(1972). 이 영화는 미국에 수입돼 개봉 첫 주말 흥행 1위를 하는 쾌거를 이뤘다.    
나는 현재 남가주 샌디에고에 거주하는 정 감독과 가끔 전화로 영화 얘기를 나누고 있다. 늘 현역임을 자처하는 정 감독의 변치 않는 영화에 대한 열정에 영화를 사랑하는 사람으로서 고개가 숙여진다. 정 감독과는 부산영화제에도 두 번이나 함께 참석해 감독의 소개로 한국 영화계의 원로들인 김기덕(젊은 김기덕이 아님)과 김수용 감독 등을 만나 영화 얘기를 나누면서 즐거운 시간을 보내기도 했었다.
정 감독은 ‘노다지’ 출반에 맞춰 내게 DVD와 함께 짤막한 소감을 보내왔다. ‘1950년대 암울했던 우리 한국 사회의 단면을 그리고 탐욕스러운 인간의 욕망을 필름느와르로 속도감 있게 새로운 시각으로 그려 봤다.’ 한국 영화계의 대부인 노익장 정창화 감독의 건투를 빈다.
                                                   <한국일보 박흥진 편집위원/ hjpark1230@gmail.com>

2015년 7월 20일 월요일

‘트레인렉’ 에이미 슈머




“여자들이 웃기지 않다는 것은 여성 모독”


체중 나가도 언제든 아름답고 욕망의 대상 될 수 있어
르브론 제임스는 겸손한 사람, 랜달 박의 재능에 감탄


17일 개봉된 스크루볼 로맨틱 코미디‘트레인렉’(Trainwreck-영화평 참조)에서 한 남자에게 마음을 주는 것을 꺼려해 이 남자 저 남자와 원나잇 스탠드만을 즐기다 얌전한 남자를 만나 사랑에 빠지는 잡지사 기자 에이미로 나온 에이미 슈머(34)와의 인터뷰가 6월26일 샌타모니카의 한 호텔에서 있었다. 토실토실 살이 찐 몸에 소매 없는 드레스를 입고 긴 금발을 한 슈머는 나이와 달리 소녀처럼 귀엽고 꾸밈이 없어 대하기가 편했다. 슈머는 테이블에 놓인 샴페인 잔을 들어 마시면서 상소리와 성기와 섹스를 섞은 농담을 천연덕스럽게 하면서도 다소 쑥스럽다는 듯이 얼굴에 홍조를 띠기도 했다. 슈머는 자신의 체중을 의식하는 듯이“나는 160파운드”라면서 모든 질문에 진지하고 솔직하게 대답했는데 유머와 위트가 대단한 배우로 자기보다 한 발 앞서 스크린의 빅 스타가 된 동료 여자 코미디언들인 크리스틴 윅과 멜리사 맥카시의 뒤를 이어 대성할 배우라는 느낌을 받았다.                

-당신은 스스로 각본을 쓰는데 때로 관객이 농담이 너무 지나치다고 생각할까 봐 걱정하진 않는가.
“그렇게 염려하진 않는다. 난 글을 쓸 때 지나치게 흉측하거나 또 미친 소리 같은 것은 쓰려고 하지 않는다. 그래도 내 농담을 싫어한다면 할 수 없다. 사과할 생각은 없다. 언제나 내 농담을 즐길 줄 아는 사람들이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난 도를 너머 지나치게 과격한 소리는 하고 싶지 않다.”

-당신이 영화에서 말한 대로 당신은 실제로 모든 남자들의 꿈이 모든 여자와 자는 것이라고 생각하는가. 
“사람마다 다르다고 본다. 어떤 남자들은 자기 씨를 사방팔방에 뿌리려고 하는가 하면 또 어떤 남자들은 자기 아내와 자는 것만이 최고라고 생각한다. 어떤 사람들은 이 영화를 보고     남자 역과 여자 역이 바뀌었다고 말하는데 그것은 잘못된 생각이다. 내가 아는 여자들 중에는  에이미와 같은 여자들이 더러 있다.”

-당신은 최근 한 모델쇼에서 “난 160파운드이지만 언제든지 자×를 취할 수 있다”고 말했는데 남자들이 당신을 무서워한다고 생각하는가.
“난 내 체중을 스스로 재지는 않으나 그 정도 나간다. 그것은 예쁜 모델들이 너무 말라서 한 말이다. 체중이 좀 나가더라도 얼마든지 자신의 몸을 편안하게 느끼고 스스로의 정체를 지킨다면 아름답고 건강하며 또 욕망의 대상이 될 수가 있다는 것을 말한 것이다. 내가 그런 말을 했다고 해서 진짜로 원하기만 한다면 언제나 남자와 잘 수가 있다는 것은 아니다. 난 그런 여자가 아니다.”

-당신의 성장에 큰 영향을 준 사람은 누구인가.
“학교의 배구코치였다. 그로부터 결단력과 근면과 생의 목표설정을 배웠다. 그리고 내 가족이다. 난 어렸을 때 부자였는데 아버지가 중병에 걸리면서 집이 망해 큰 집에서 아주 작은 모텔방과도 같은 곳으로 이사를 갔다. 내가 세 아이들 중 둘째로 그 때부터 난 집안일을 도와야 했다. 따라서 그 같은 어려움이 나의 성격 형성에 큰 영향을 미쳤다.”

-언제 당신이 우습다는 것을 알았는가. 
에이미와 르브론 제임스가 농구 경기장에서 나란히 앉아 대화를 나누고 있다.
“난 어렸을 때부터 남을 잘 웃겼다. 세 살인가 네 살 때부터 노래 부르고 사람들을 웃겼다. 타고난 것이라고 본다.”

-당신의 섹스 농담은 단순한 섹스 외에 다른 의미를 내포하고 있는가.
“난 섹스를 마케팅 도구로 이용해 왔다. 섹스 농담처럼 우습고 흥미 있는 것도 없다. 그러나 섹스는 내 농담의 30% 정도다. 그런데 사실 여자보다 남자들이 더 섹스 농담을 하는데도 여자라는 것 때문에 여자들은 조금만 섹스 얘기를 해도 주목의 대상이 된다. 남자들이 지나친 섹스 농담을 하면 마치 생각이 깊은 사람대접을 받지만 여자는 경우가 다르다. 남자들은 이 여자 저 여자와 자도 별 탈이 없지만 내가 그랬다간 화냥년 취급을 받을 것이다. 난 우린 다 같고 누가 누구보다 특별히 낫지가 않다는 것을 상기시키기 위해 섹스 농담을 하는 것이지 결코 충격을 주려고 하는 것은 아니다.”

-당신은 피부가 두꺼운가.
“그렇다. 난 굉장히 어렵게 살았기 때문이다. 고생하는 가족을 웃기는 일이 내 임무였다. 내게 있어 우습다는 것은 하나의 방어체계다. 난 생명의 위협도 받았고 맥주병 세례도 받았고 또 관객들이 다 공연장을 떠나는 경험도 했지만 여전히 여기 서 있다.”

-명성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는가.             
“어젯밤 내내 그것에 대한 악몽을 꾸었다. 내 명성의 오직 단 하나 장점은 난 언제나 사람들을 웃게 하려고 원했는데 그것을 할 수가 있다는 것이다. 그러나 그밖에는 명성이 주는 플러스가 없다. 한 번 공짜로 냉장고를 받은 것 외에는. 난 명성이 뭐가 좋은지 모르겠다. 내가 부담으로 느끼는 명성에도 불구하고 심지가 굳은 것은 가족과 내 주위의 솔직한 친구들이 있기 때문이다. 난 예스맨을 싫어한다. 난 늘 정직을 좋아했다.”

-여자들은 우습지도 않고 또 그럴 수도 없다는 말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는가.
“그것이야 말로 이상한 말로 주이시(유대인)들은 오렌지주스 냄새가 나는가 라는 말이나 같다. 여자들은 우습고 늘 그래 왔다. 캐롤 버넷과 루시와 래번 앤 셜리를 봐라. 내가 가장 좋아하는 여배우도 골디 혼이다. 내 농담에 대한 반응도 여자들이 더 뜨겁다. 여자들이 우습지 않다는 것은 여성 모독이다. 날 가장 많이 웃기는 사람들도 여자다.”

-돈의 의미는 무엇이며 또 그것을 어떻게 쓰는가.
“그것은 매우 터무니없는 것이다. 난 버는 돈의 상당을 가족에게 준다. 난 자전거 외엔 소유물이 없었다. 그런데 지금 난 뉴욕에서 활동하기 때문에 아파트를 샀지만 도어맨도 없는 방 하나짜리다. 대학교 이후 자동차도 없고 여전히 운동용 바지를 입고 산다. 돈에 대해 현명하려고 한다. 내 주위의 사람들이 아프거나 일이 났을 때 쓰기 위해 돈을 갖고 있을 필요가 있다.”

-일부일처제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는가.
“모르겠다. 내가 데이트를 할 때면 한 사람하고만 한다. 내가 가장 오래한 데이트는 4년짜리다. 한 번 영원히 살기로 약속한다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난 아직 함께 가족을 이루고 싶은 남자를 만난 적이 없어서 그 질문에 대답하기가 어렵다.”

-영화에 프로농구의 수퍼스타 르브론 제임스가 나오는데 그를 평소 알았는가.           
“내가 각본에 그를 사용한 것은 르브론이 내가 아는 유일한 농구선수였기 때문이다. 난 스포츠에 관심이 없는데 다행히 그가 출연에 응했다. 그는 아주 우스운 사람이다. 한 번도 잘난 체 하지를 않더라. 세트에 함께 있기가 정말로 즐거웠다.”

-여권신장의 선두로서 부담을 느끼진 않는가.
“자랑스럽게 여긴다. 사실 그것은 내 목표는 아니었는데 이제 내가 그것의 대명사처럼 됐으니 자랑스럽고 적극적으로 이 기회를 사용하겠다. 아직도 난 그것에 적응하고 있으나 그것을 위해 적극 헌신하려고 한다. 내 영웅은 늘 여권신장 선구자들이었는데 이제 글로리아 스타이넴과 같은 그들 중 일부를 만나게 돼 멋있다.”

-대법원이 내린 동성결혼 합법화에 대한 의견은 어떠며 코미디가 대중의 의견 형성에 도움이 됐다고 보는가.
“그 결정에 대해 흥분하고 있다. 그 소식을 듣고 ‘아이구 하느님 굉장하네요’하고 놀랐다. 큰 감동을 받았다. 코미디가 살짝 대중의 뒷문으로 들어가 그들의 의견 형성에 도움을 줄 수가 있다고 본다. 내가 아는 많은 코미디언들은 동성결혼에 대한 농담들을 많이 갖고 있다.”

-이 영화가 당신의 첫 메이저 영화인데 소감은.
“내 생애 최고의 시간이었다. 난 이 영화를 내 TV 쇼로 여기고 그대로 했다. 사실 TV 쇼보다 쉬웠다. 난 길고 크게 보질 않고 오늘 할 연기만 생각했다. 내가 쉽게 해 낼 수 있었던 것은 저드 애파토 감독 때문이다. 그는 마치 아버지와 같은 사람으로 활짝 개방된 분위기를 만들어 일하기가 편했다. 내가 필요로 하는 것은 다 그로부터 받았다.” 

-영화에서 당신의 라이벌 기자로 나온 랜달 박과 일한 경험은 어땠는가.
“난 전에 그를 몰랐는데 저드가 그의 코미디 비디오를 내게 보여줬다. 그리고 난 ‘아니 이게 누구야’ 하고 그의 재능에 감탄했다. 세트에 함께 있는 것이 정말로 즐거웠는데 그는 아주 우스운 사람으로 즉흥적 연기를 해내면서도 감독의 지시를 잘 따랐다. 참 상냥한 남자로 난 그를 좋아했다.”    
                                                               <한국일보 박흥진 편집위원/ hjpark1230@gmail.com>

트레인렉 (Trainwreck)


에이미(왼쪽)와 아론이 바에서 즐거운 시간을 보내고 있다.

한 남자만? 여러 상대랑?… 문제는 사랑


일부일처제가 과연 현실적이냐 라는 명제를 내건 로맨틱 코미디로 불경스럽고 음탕하고 야한 것과 솔직하고 현실을 직시하는 통찰력을 함께 구사해 우습고 매력적인 영화를 만드는 저드 애파토(‘40세 숫처녀’)가 감독했다. 여자가 주인공인 그의 첫 영화다. 
각본은 주연을 겸한 요즘 한창 떠오는 살이 토실토실 찐 귀엽게 생긴 코미디언 에이미 슈머가 썼는데 지금까지는 주로 TV로 잘 알려진 그녀가 본격적으로 빅 스크린에 등장한 영화다. 이로 인해 또 하나의 빅 스크린 여자 코미디언이 탄생했다고 봐도 된다.
폭풍 같은 삶의 에너지를 지닌 입 건 여자와 조용하고 무리 없는 남자가 만나 사랑하다가 갈등을 빚고 다시 화해한다는 연애영화의 전형적인 틀을 지닌 관계에 관한 스크루볼 코미디다.
영화는 심술첨지요 술꾼인 고든(칼린 퀸)이 이혼해 짐을 싸들고 집을 나가기 전 어린 두 딸 에이미와 킴에게 “일부일처제는 비현실적이다”라고 일장 훈시를 하는 장면으로 시작된다. 그로부터 20년 후 아직 미혼인 에이미(슈머)는 뉴욕의 센세이셔널 위주 남성 잡지 ‘스너프’의 기자가 됐고 킴은 결혼해 아이 낳고 모범주부가 됐다. 그런데 둘은 아버지가 있는 요양원의 비싼 월세를 놓고 다툰다. 요양원의 또 하나의 입주자로 히치콕의 친구로 그의 영화에 나온 100세인 노만 로이드가 나와 웃긴다.     
에이미가 아직 미혼인 까닭은 어렸을 때 아버지로부터 훈시의 영향 탓으로 깊은 관계 공포증 환자다. 에이미는 무수한 남자들과 섹스(섹스신이 요란하다)를 하지만 그들은 다 단 1회용 소모품들이다. 예외로 섹스를 운동경기로 여기는 근육질인 스티븐(레슬러 존 세나)과는 드문드문 만난다.
이런 에이미에게 그녀의 요란스런 영국 액센트를 구사하는 편집장 다이애나(틸다 스윈튼-화장을 짙게 해 알아볼 수 없을 정도다)가 르브론 제임스와 뉴욕 닉스의 스터드마이어 등을 돌보는 한창 떠오르는 스포츠 의사 아론(빌 헤이더)을 인터뷰하라고 지시한다. 이를 질시하는 것이 동료기자들인데 그 중 한 명이 ‘인터뷰’에서 김정은으로 나온 랜달 박이다.  
그런데 아뿔사 에이미는 직업윤리를 위반하고 아론에게 반해 둘이 함께 침대에 든다. 아론도 생활력 강하고 화끈한 에이미가 좋다. 그런데 에이미는 하룻밤 정사 후에도 아론에게 자꾸 마음이 가면서 깊은 고민에 빠진다. 과연 한 남자와만 관계를 지속하는 것이 현명한 일인가 아닌가 그것이 문제로다.                         
슈머가 코믹한 연기를 기차게 잘하는데 대사와 제스처와 표정이 일품이다. 귀엽고 순진하면서도 상스럽기 짝이 없는 연기를 활짝 연 공작의 날개처럼 보여준다. 그녀와 침착한 헤이더의 콤비도 찰떡궁합이다. 영화에서 진짜로 놀란 것은 르브론 제임스의 천연덕스런 연기. 기성 배우 뺨친다. 이밖에도 크리스 에버트와 달라스 카우보이스의 쿼터백 토니 로모도 캐미오로 나온다. 중간 중간 플롯을 돌려가면서 시간을 끄는 것이(상영시간이 좀 길다) 흠이지만 재미있고 매력 삼삼한 영화로 우디 앨란의 ‘맨해턴’에 잠깐 경배를 보내고 있다. R. Universal. 전지역. ★★★½(5개 만점)
                                                          <한국일보 박흥진 편집위원/ hjpark1230@gmail.com>

새들 (The Birds)


멜라니가 새 떼의 공격에 비명을 지르고 있다.


새떼의 무차별 습격… 히치콕의 스릴러


서스펜스의 거장 알프렛 하치콕이 감독한 1963년 작 스릴러로 까마귀와 갈매기를 비롯해 온갖 잡새들이 인간을 무차별 공격해 살상하는 공포영화다. 왜 새들이 인간을 공격하는지 그 이유는 밝혀지지 않는다. 영국의 여류작가 다프네 뒤 모리에(‘레베카’)의 소설이 원작으로 히치콕은 1961년 8월 캘리포니아 캐피톨라에서 발생한 새들의 떼죽음을 참고로 삼았다. 
히치콕 특유의 연출기법인 서서히 서스펜스를 조성해 가면서 사람 간을 조이게 만드는 흥미진진한 영화로 이 영화를 보고나면 새에 대한 경계심이 생길 것이다. 금발미녀로 눈이 따가울 정도로 아름다운 티피 헤드렌(배우 멜라니 그리피스의 어머니)의 데뷔작으로 그녀는 이 영화로 어슐라 안드레스(‘닥터 노’의 본드 걸)와 독일여우 엘키 소머와 함께 골든글로브 신인상을 탔다. 
그런데 헤드렌은 이 영화와 함께 역시 히치콕의 만든 1964년작 심리 스릴러 ‘머니’(션 코너리 주연)에 출연하면서 히치콕과 충돌이 심해 그 이후 심술첨지 히치콕의 방해로 연기생활이 단명되고 말았다. 히치콕은 자신의 많은 영화에서 금발미녀들을 학대했는데 이 영화에서도 때로 살아 있는 새로 하여금 헤드렌을 공격케 하면서 못살게 굴었다.       
캘리포니아의 그림 같이 아름다운 해변 마을 보데가 베이가 무대. 처음에 사교계 여성인 멜라니 대니얼스(헤드렌)와 호남형의 변호사 비치 브렌너(얼마 전 작고한 로드 테일러)는 처음에 서로 샌프란시스코의 새를 파는 가게에 들렀다가 만나면서 서로에게 호감을 느낀다. 영화 첫 장면에서 두 마리의 개를 데리고 길을 걷는 사람이 히치콕으로 그는 자기 영화에 캐미오로 나오기를 즐겼다. 
보데가 베이에서 미망인인 어머니 리디아(제시카 탠디)와 11세난 어린 여동생 캐시와 함께 살고 있는 미치는 멜라니를 가족에게 소개시키면서 서서히 둘 간의 관계가 깊어진다. 모든 것이 평화로운 이 마을에 갑자기 새떼들이 인간을 공격, 마을은 온통 공포의 도가니로 변한다.
닥치는 대로 인간을 공격하는 새떼들에 의해 미치의 전 애인으로 교사인 애니(수잰 플레셋)가 살해되고 이어 아이들을 공격한다. 미치는 자기 집의 창문을 모두 나무판자로 봉하나 새들은 굴뚝을 통해 이 집을 공격한다. 그리고 혼자 이상한 소리가 나는 다락에 올라간 멜라니가 새떼들의 공격을 받고 쓰러진다. 특수효과는 디즈니 스튜디오에서 했고 새떼들이 내지르는 소리는 전자악기를 사용해 만들었다. 이 영화와 스필버그의 ‘조스’가 17일과 18일 뉴베벌리 시네마(7165 베벌리 블러버드 323-938-4038)에서 동시 상영된다.  ★★★★(5개 만점)
                                                            <한국일보 박흥진 편집위원/ hjpark1230@gmail.com>

카를로비 바리




카를로비 바리는 ‘늘 낯선 사람들의 친절에 의지해 온’ 도시다. 베토벤과 괴테와 쇼팽이 그 낯선 사람들이었고 요즘에는 한국인 관광객들이 그 중 큰 몫을 차지하고 있다.
체코공화국의 엄지손가락 끝 부분만한 휴양지 카를로비 바리에서 열린 제50회 국제영화제에  다녀왔다. 프라하 공항에 내리니 안내문이 체코어와 영어에 이어 한국어로 쓰여 있다. ‘한국인들이 온다. 한국인들이 온다’라는 말이 실감이 났다.
보헤미안 스메타나가 ‘나의 조국’에서 유려하게 스케치한 몰다우강으로 흐르는 청계천 규모의 테플라강이 도심을 관통하는 카를로비 바리는 동화 속 마을처럼 곱다. 시내는 왕복 30분이면 구경을 다할 만큼 작다.
프라하 서쪽 81마일 지점 서부 보헤미아에 있는 이 도시는 14세기 후반 보헤미아왕 찰스 4세가 세웠는데 300여개의 온천이 있어 옛날부터 휴양지와 질병 치료지로 유명하다. 독일어로 칼스바트라 부르는데 이는 ‘찰스의 온천’이라는 뜻이다.  순전히 타인들인 관광객에 의지해 먹고 사는 도시여서 강 양 옆으로 호텔과 식당과 보석상들이 줄을 섰다. 특히 관광객들이 몰려오는 때는 영화제가 열리는 7월 초순이어서 거리는 인파로 도떼기시장을 방불케 했는데 영화제가 끝나면 관광객들도 썰물 빠지듯이 몰려나간다고 우리를 안내한 즈덴카가 알려줬다.
때마침 유럽을 강타한 폭염 속에 자갈길을 걷는 관광객을 태운 마차의 말밥굽이 고전의 소리를 내는 거리를 가다가 괴테가 묵은 모차르트 호텔 앞에 섰다. 독일어로 ‘Hier wohnte Goethe 1786’(1786년에 괴테가 여기 살았노라)라고 쓰인 호텔 정문 옆에 괴테의 초상이 걸려있다(사진). 모차르트 호텔이 있고 모차르트 공원도 있는 것으로 봐 ‘프라하’ 교향곡을 짓고 오페라 ‘돈 지오반니’의 초연도 프라하에서 한 모차르트도 프라하에 온 김에 여기를 찾아와 목욕을 했을 법하다.
손바닥만 한 도시를 정찰하듯이 헤집고 다니다가 보헤미안인 드브로작과 칼 막스가 묵었던 집과 베토벤 호텔과 쇼팽 호텔도 목격했다. 숙소인 사보이 호텔 바로 옆의 쇼팽 호텔은 쇼팽이 묵었던 곳임에 분명한데 시내 쪽에 가까운 베토벤 호텔은 그의 초상까지 달았지만 어딘지 가짜 냄새가 났다.
숙소 앞에 있는 대형 칼 막스의 앉은 조각상이 이 나라의 과거를 상기시키는데 전신이 공산주의 국가답게 주민들이 너도 나도 끽연을 한다. 주민들은 영어는 못해도 과거 지배국인 러시아어와 독일어는 다 한다. 호텔 종업원도 나보고 “켄넨 지 도이치 슈프레헨”(독일 말 할 줄 아세요)라고 묻고 택시 운전사도 내가 서투르게 말한 “바르텐 지 드라이시히 미누텐”(30분만 기다려 주세요)을 알아듣고 고개를 끄덕거렸다.
호텔마다 스파요 길 곳곳에 탄산수 수도가 있어 사람들이 컵을 들고 다니면서 건강하겠다고 물을 받아 마시는데 나도 손으로 받아 마셔보니 찝찔하다. 걷다 피곤하면 강가 노천카페에 앉아 맥주를 마셨는데 그 맛이 버드와이저는 저리 가라다. 한국인 관광객들이 떼를 지어 다닌다.
영화제 본부는 공산정권 시대 세운 회색 콘크리트 건물 테르말 호텔인데 그 몰골이 주위의 예쁜 집들에 비해 더욱 꼴불견이다. 여기서부터 스타들이 머무는 18세기에 세운 그랜드 호텔 풉(호텔 이름치곤 고약하다)까지 왕래하면 시내 구경은 다한 셈. 그랜드 풉 호텔은 웨스 앤더슨 감독의 ‘그랜드 부다페스트 호텔’의 모델이 된 곳으로 둘이 모양이 많이 닮았는데 여기서 007시리즈 ‘카지노 로얄’도 찍었다고 한다.  
원수는 외나무다리에서 만난다고 이번 여행서 할리웃외신기자협회(HFPA)를 극도로 미워하는 여기자 샤론 왝스맨을 만나 와이트와인을 함께 마신 것이 지금도 믿어지지 않는다. 왝스맨은  연예전문 인터넷 사이트 ‘랩’의 창간자로 오래 전부터 HFPA의 별로 아름답지 못한 가십거리를 미주알고주알 보도, HFPA의 ‘페르소나 논 그라타’가 된 사람. 우리를 안내한 반 체코 반 한국인 피가 섞인 타티아나의 소개로 만나 식사를 함께 했는데 왝스맨이 산 포도주를 마시면도 우리와의 악연 탓에 신포도주 맛이 났다.
영화제에는 한국 영화도 몇 편 출품돼 ‘간신’과 김기덕의 ‘스톱’(Stop)을 봤다. ‘간신’은 준 포르노영화여서 보다 나왔다. ‘스톱’은 세계적으로 알려진 김기덕의 영화여서 극장은 기자들로 초만원을 이뤘다. 후쿠시마 원자력발전소 방사능 누출사고의 후유증을 다룬 작품으로 블랙 코미디풍의 메시지 영화다.    
하루 틈을 내 몰다우강이 흐르는 프라하를 찾았다. 더위와 습기가 이를 갈 듯이 치열한 속에 카프카의 발자국 소리가 들릴 것 같은 미로들의 자갈 골목길을 걸으면서 저 멀리 언덕 위에 있는 공사 중인 대통령궁을 바라보자니 자연 카프카의 ‘성’이 생각났다. 프라하는 몇 년 전에 처음 들렀었는데 그런 탓인지 기시감이 있어 이 고도의 품위와 아름다움이 옛만 못했다. 사람의 마음이 참으로 간사하구나 하며 혀를 찼다.                 <한국일보 박흥진 편집위원/ hjpark1230@gmail.com>

2015년 7월 13일 월요일

빌리 와일더 감독의 고전걸작 2편


치정 살인극의 두 주인공 요부 필리스(왼쪽)와 보험외판원 월터.

■이중배상 (Double Indemnity)


냉혹하게 아름다운 요부의 탐욕과 파멸


얼음장처럼 차갑게 아름다운 요부가 돈과 욕정에 눈이 멀어 외간남자를 유혹해 자기 남편을 살해하는 치정극으로 빌리 와일더 감독의 1954년 작이다. 역대 최고의 필름느와르 영화 중 하나로 꼽히는 이 영화는 유명 범죄소설 작가 제임스 M. 케인이 실화를 바탕으로 쓴 소설이 원작으로 와일더와 또 다른 유명 범죄소설 작가 레이몬드 챈들러(‘우체부는 항상 벨을 두 번 누른다’)가 함께 각색했다.
빙하의 냉기 속에 불길의 열기를 간직한 살인에 관한 어두운 걸작으로 연기, 각본, 연출, 흑백촬영 및 음악 등 모든 면에서 찬탄을 금치 못하게 만드는 작품으로 에누리 없이 사실적이다.
자기 정부의 총에 맞아 피를 흘리는 보험회사 세일즈맨 월터(프레드 맥머리)가 어둠이 깔린 LA 거리를 거칠게 차를 몰아대는 장면으로 시작된다. 이어 월터가 자기 회사 사무실에 들어가 녹음기에 자신의 범죄사실을 고백하면서 얘기는 플래시백으로 진행된다.
월터는 어느 날 보험을 팔러 LA 북쪽 로스펠리츠의 한 집에 들렀다가 결국은 자기를 잡아먹고 마는 이 집의 주부인 암거미 같은 필리스(바바라 스탠윅)의 싸늘하도록 치명적인 선정 미와 치밀한 살인계획에 휘말려 든다.          
돈 많은 남자와 결혼하기 위해 방해가 이 남자의 병약한 아내를 살해하고 결혼한 뒤 남편의 딸의 애인까지 가로 챈 필리스는 내면의 살기를 외면의 아름다움으로 위장한 음모자요 살인녀.
그녀는 젊은 월터를 만나면서 나이 먹고 무미건조한 남편 살해계획을 짜고 남편으로 하여금 생명보험과 사고보험에 들게 한 뒤 월터를 공범자로 유인한다. 역시 냉혈한이요 탐욕스런 월터는 필리스의 맹독성 아름다움에 취해 그녀의 살인계획에 가담, 사고사를 위장해 필리스의 남편을 살해한다.
그러나 보험상환액 조정자인 바턴(에드워드 G. 로빈슨)이 필리스의 남편의 죽음이 사고사가 아니라고 판단, 필리스에게 혐의를 두고 사선을 캐내 가기 시작하면서 두 간부의 범행의 전모가 한 꺼풀씩 벗겨진다. 물론 악인들은 모두 지옥으로 간다.
와일더는 긴장한 힘줄처럼 팽팽하면서 일체의 감정을 배제한 연출로 냉소적인 이야기를 어둡고 아름답게 서술하고 있다. 모든 것이 공백처럼 허무하고 차가운 영화로 특히 사악한 목적을 위해 남자를 이용하는 스탠윅의 싸늘한 비정과 성적 매력은 영화사상 역대 요부들 중에서도 으뜸이라고 할 만하다.
‘이중배상’이 19일과 20일(하오 2시와 7시) 이틀에 걸쳐 할리웃의 차이니스 극장을 비롯해 LA와 인근의 일부 극장에서 상영된다. 필견의 명화이니 놓치지 마시도록 권한다. ★★★★★(5개 만점)


노마(오른쪽)가 조 앞에서 왕년의 자기 영화를 보면서 으스대고 있다.

■선셋대로 (Sunset Blvd.)


환상 위에 세워진 할리웃의 실상 고발


빌리 와일더가 감독한 1950년작 흑백 걸작 ‘선세대로’는 환상과 미혹 위에 세워진 할리웃의 실상과 허상을 통렬하게 고발하고 또 그것을 병적으로 웃어 제친 블랙코미디 드라마다. 죽음으로 시작해 광기로 끝나는 이야기 속에서 죽은 남자와 미친 여자는 다 환상을 쫓던 할리웃 사람들로 이들은 신화와 전설과 영광을 국화빵 찍어내듯 하는 할리웃이 뜯어내버린 상처의 딱지 같은 것이다.
영화는 시작부터 충격적이요 야유조다. 무성영화 시대의 수퍼스타로 자기 과거에 파묻혀 살면서 재기를 꿈꾸는 노마(글로리아 스완슨)를 버리고 떠나는 안 팔리는 각본가인 젊은 기둥서방 조(윌리엄 홀든)가 노마가 쏜 여러 방의 총알을 등에 맞고 저택 풀에 빠진다. 여기서 영화는 죽은 조의 내레이션과 함께 과거로 돌아간다. 
조는 월부금을 못내 자기 차를 회수하러 온 사람들을 피해 선셋대로로 내빼다가 노마의 집에 숨는다. 그리고 노마의 기둥서방이 된다. 조는 노마의 재떨이나 치우는 신세가 되는데 어떻게 해서든지 좋은 각본을 써 성공하려고 애를 쓰나 뜻대로 안 돼 할리웃을 떠나 귀향할 생각마저 한다.      
이런 그에게 힘을 주는 것이 패라마운트 스튜디오에서 일하는 아름답고 착한 베티(낸시 올슨이 오스카 조연상 후보에 올랐다). 베티를 사랑하게 된 조가 정신을 차리고 노마를 떠나려고 하면서 그는 노마의 총을 맞은 것. 그리고 노마는 미쳐버린다.
이 영화는 로맨틱하고 우아했던 1920년대 무성영화 시대를 그리워하는 향수감 짙은 작품이기도 하다. 영화에는 무성영화의 거장 에릭 본 스트로하임이 노마의 하인 겸 운전사로 나오고 이밖에도 역시 무성영화 시대의 명 코미디언 버스터 키튼과 당대에 명성을 떨쳤던 가십 칼럼니스트 헤다 하퍼와 명장 세실 B. 드밀도 실명으로 나온다. 영화는 작품과 감독상 등 총 11개 부문에 오스카상 후보에 올라 각본상과 미술상 및 음악상(프란츠 왝스만)을 탔다.
‘선셋대로’ 개봉 65주년을 맞아 21일 하오 7시 Royal 극장(11523 샌타모니카)에서 영화를 상영한다. 스티븐 화버 LA 영화비평가협회 회장의 소개로 상영되고 상영 전 낸시 올슨이 참석해 관객의 질문에 대답한다. (310)478-3836  ★★★★★(5개 만점)
                                                           <한국일보 박흥진 편집위원/ hjpark1230@gmail.com>

‘로맨스 영화의 전설’프랭크 보제이지 감독 회고전


   해머뮤지엄 내 빌 와일더극장서 9월13일까지

찰스 패럴과 재넷 게이너가 주연한 꿈을 꾸는 듯한 로맨스 영화‘제7의 천국’(1927)으로 제1회 오스카 시상식에서 감독상을 받은 프랭크 보제이지(1894~1962·사진)의 영화 23편이 10일부터 9월13일까지 해머뮤지엄 내 빌 와일더극장(웨스트우드와 윌셔 310-206-8013)에서 상영된다. 철두철미한 로맨티스트로 배우로 할리웃 생활을 시작한 보제이지의 영화를 관통하는 주제는‘사랑은 모든 것을 것을 정복하다’였다. 내용뿐 아니라 그의 시각 스타일도 화사한 로맨티시즘을 뽐냈는데 많은 영화들이 역경과 난관에 직면한 젊은 연인들의 감정을 드러내고 있다. 그는 영화에 찰스 패럴과 재넷 게이너를 자주 사용했는데 1931년‘나쁜 여자’로 두 번째 오스카 감독상을 탔다. 그의 전성기는 1910년대 중반부터 1930년대까지로 주옥같은 로맨스 영화들을 만들었는데 전 생애를 통해 만든 105편의 영화 중 절반 정도가 분실됐다. 이번 회고전은 보제이지의 여러 편의 영화들을 복원한 UCLA 영화 & TV 아카이브가 창립 50주년을 맞아 마련하는 것으로‘릴리옴’(9130)을 비롯해 UCLA가 복원한 10편과 함께 다른 많은 명작 클래식들이 포함됐다.                                        

■ 10일(하오 7시30분)
*‘제7의 천국’(7th Heaven)-파리의 거리 청소원(찰스 패럴)과 홈리스 여인(재넷 게이너)이 후진 아파트의 고미다락방에 사랑의 보금자리를 마련하고 자신들만의 천국을 꾸민다. *‘무기여 잘 있거라’(A Farewell to Arms·1932)-헤밍웨이 소설이 원작. 1차 대전에 참전한 구급차 운전병(게리 퍼)과 간호사(헬렌 헤이즈)의 비극적 사랑.

■ 11일(하오 7시30분)
*‘게으름쟁이’(Lazybones·1925)-농부가 강물에 빠진 모녀를 구해준 뒤 자기 집에서 돌보면서 오랜 세월 후 성장한 딸을 사랑하게 된다. *‘비밀’(Secrets·1924)-나이 먹은 아내(노마 탤마지)가 병든 남편을 돌보다가 잠이 들면서 자신들이 공유했던 비밀들을 꿈꾼다.  

■ 17일(하오 7시30분)
*‘거리의 천사’(Street Angel·1928)-가출한 나폴리의 여인(게이너)과 이 여인을 자신의 뮤즈로 삼는 화가(패럴)의 파란만장한 사랑. *‘릴리옴’(Liliom·1930)-자기를 사랑하는 줄리를 학대하고 그 사랑을 무참히 짓밟아 놓은 순회흥행단의 유객담당자(패럴)가 죽었다가 천국에 들어갈 수 있는 한 가지 선행을 하기 위해 환생한다.

■ 20일(하오 7시30분)
*‘러키 스타’(Lucky Star·1929)-농촌 처녀(게이너)와 부상당한 1차 대전 참전병사(패럴)의 애틋한 사랑을 그린 전원 멜로드라마. *‘강’(The River·1929)-혼자 강을 타고 모험하는 남자(패럴)가 요부를 만나 뜨거운 사랑에 빠진다.

■ 26일(하오 7시)
*‘나쁜 여자’(Bad Girl·1931)-경제공황 때 젊은 남녀가 만나 사랑에 빠지면서 어려움을 극복하기 위해 애를 쓴다. *‘비밀’(Secrets·1933)-뉴잉글랜드의 선박회사 사장의 딸(메리 픽포드의 마지막 영화)이 회사 사무원(레슬리 하워드)와 함께 캘리포니아로 사랑의 줄행랑을 놓은 뒤 어려움 속에서도 사랑을 지켜 나간다.

■ 8월7일(하오 7시30분)
*‘남자의 성’(Man’s Castle·1933)-홈리스 여인(로레타 영)이 달동네 터프 가이(스펜서 트레이시)의 집에 들어가 살면서 마다하는 남자와 진정한 관계를 맺어보려고 애쓴다. *‘젊은 미국’(Young America·1932)-사회와 법의 테두리에 사는 두 학교 동창생의 드라마.

■ 14일(하오 7시30분)
*‘내일 이후’(After Tomorrow·1932)-경제공황 때 뉴욕의 달동네에 사는 두 젊은 연인이 결혼하려고 하나 이기적인 주변사람들 때문에 시련을 겪는다. *‘내 마음의 노래’(Song O’ My Heart·1930)-사랑에 실망하고 고향인 아일랜드 시골로 은퇴한 콘서트 가수(아일랜드 태생의 테너 존 맥코맥)가 뜻밖에 자기를 찾아온 과거의 연인으로 인해 재기를 시도한다.

■ 29일(하오 7시30분)
*‘리틀 맨, 왓 나우?’(Little Man, What Now?·1934)-경제적 도덕적으로 붕괴되어 가는 독일 바이마르공화국 시절 생존을 위해 몸부림치는 젊은 부인(마가렛 설래반)의 드라마. *‘노 그레이터 글로리’(No Greater Glory·1934)-1914년 헝가리. 두 라이벌 소년 거리의 갱이 빈 땅을 서로 차지하기 위해 대결한다. 반전영화.

■ 9월9일(하오 7시30분)
*‘역사는 밤에 이루어진다’(History Is Made at Night·1937)-불행한 결혼에 시달리는 여인(진 아서)이 파리의 멋쟁이 헤드웨이터(찰스 봐이에)와 뜨거운 사랑에 빠진다. 타이태닉 비극을 빌려온 비극이자 코미디. *‘욕망’(Desire·1936)-순진한 미국인 사업가(게리 쿠퍼)의 주머니에 자기가 훔친 보석을 집어넣은 유럽 태생의 우아한 보석도둑(마를렌 디트릭)이 보석 회수를 꾀하면서 둘이 사랑에 빠진다.

■ 12일(하오 7시30분)
*‘세 전우’(Three Comrades·1938)-1차 대전에 참전한 세 전우(로버트 테일러, 로버트 영, 프랜초트 톤)와 몰락한 귀족가문의 젊은 여인(마가렛 설래반)의 관계.    *‘치명적인 폭풍’(The Mortal Storm·1940)-히틀러가 집권했을 때 서로 이념이 다른 두 가족 출신의 연인(제임스 스튜어트와 마가렛 설래반)이 겪는 시련.

■ 13일(하오 7시)
*‘유머레스크’(Humoresque·1920)-성공한 달동네 출신의 유대인 바이얼리니스트가 연인과 결혼 후 1차 대전에 참전, 비극적 일이 벌어지나 사랑의 힘으로 이를 극복한다. *‘Nth 코맨드먼트’(The Nth Commandment·1923)-백화점 여직원이 야심만만한 멋쟁이 남자의 구애를 거절하고 폐병을 앓는 동료 직원 남자와 결혼, 시련을 겪는다. 두 영화에 앞서 보제이지의 감독 데뷔작인 웨스턴 ‘피치 오 챈스’(The Pitch O’ Chance·1915)가 상영된다.                                                  
                                                <한국일보 박흥진 편집위원/ hjpark1230@gmail.com>

터미네이터: 제니시스 (Terminator: Genisys)


막강한 파괴력을 지닌 액체 금속 터미네이터 T-1000역의 이병헌.

액션도 스토리도 다 어디서 본듯한데…


‘터미네이터’시리즈 제5편… 내용도 연기도 참신성 실종

1984년 그의 나이 37세 때 자기를 수퍼스타로 만들어준 ‘터미네이터’ 제1편에 나와 “아이 윌 비 백”(나 돌아올 거야)이라고 말한 뒤 속편을 통해 자꾸 돌아오고 있는 전직 가주 지사 아놀드(아니) 슈워제네거가 관객에게 상의도 없이 또 돌아온 ‘터미네이터’ 시리즈 제5편으로 과거 보고 들은 얘기를 재탕 5탕한 영화다.
아니는 주지사 자리를 떠난 뒤 스크린에 컴백, 지금까지 총 6편의 액션영화에 나왔지만 모두 흥행서 실패했는데 과연 제작비 1억7,000만달러짜리 이 난장판 영화를 관객이 어떻게 받아들일지 매우 궁금하다. 
아니는 67세이지만 아직도 신체 건강한데 그렇다고 7순이 다 된 나이에도 계속해 소음과 파괴의 불협화음과도 같은 영화들에 나와 체면을 구기는 것을 보면 “이제 그만 은퇴하세요”(적어도 또 같은 액션영화에서만 이라도)라는 말을 해 주고 싶은 심정이다. 
이 영화는 내용과 액션이 모두 지난 영화들을 마구 뒤섞어 잡탕을 만든 것으로 모든 것이 보고 들은 것이어서 구태의연하고 식상하다. 도무지 참신성이라곤 없는 나태한 영화로 배우들의 연기가 다 1차원적이요 음악도 단조롭고 귀에 거슬린다. 상영시간 125분이 길기도 한데 액션영화가 왜 그렇게 플롯이 복잡한지 알다가도 모를 일이다.
한국 팬들에게 있어 이 영화에서 하나 볼만한 것은 이병헌이 파괴가 거의 불가능한 모양을 자유자재로 바꿀 수 있는 액체 금속 킬러 터미네이터인 T-1000로 나온 것. 그는 시리즈 1편에서 T-1000으로 나온 로버트 패트릭의 바톤을 받아 무표정으로 날렵한 연기를 한다. 인터뷰에서 만난 아니도 이병헌을 ‘터미네이터’ 시리즈의 좋은 새 식구라면서 “그의 정확성과 속도감에 감탄했다”고 칭찬했다.
제5편은 특히 제1편의 내용과 장면을 여러 면에서 베껴 먹었다. 1997년 핵폭탄이 터져 30억 인구가 멸살된다. 이어 2029년. 스카이넷 휘하의 터미네이터들과 존 카너(제인슨 클락)가 지휘하는 인간들 간에 치열한 교전이 벌어지면서 인간의 승리가 목전에 다다랐다. 그런데 마지막 순간에 적이 인류의 구원자인 존을 낳을 어머니 새라(에밀리아 클락)를 죽여 존이 태어나지 못하도록 하기 위해 막강한 파괴력을 지닌 터미네이터 T-1000을 1984년으로 보냈다는 것이 알려진다.
이에 존이 T-1000을 처치하기 위해 자기가 터미네이터들로부터 구해 전사로 키운 카일(자이 코트니)을 역시 1984년으로 돌려보낸다. 과거로 돌아간 카일이 새라를 만나는데 새라의 새로운 동지는 새라가 팝스라 명명한 나이 먹은 터미네이터(슈워제네거). 이들 셋이 집요하게 자기들을 죽이려고 쫓아오는 T-1000을 맞아 보고 또 본 요란한 액션이 벌어진다.
그리고 여차여차해 카일과 새라는 인류의 세상종말이 올 2017년으로 미래여행을 해 비극을 막으려고 필사의 노력을 한다. 영화 끝에 또 속편이 나올 것 같은 기미를 보이는데 “아니, 플리즈 돈 에버 컴백 어겐”이다. 앨란 테일러 감독. PG-13. 전지역. ★★★(5개 만점)             
                                                           <한국일보 박흥진 편집위원/ hjpark1230@gmail.com>

매직 마이크 XXL (Magic Mike XXL)


마이크(오른쪽서 두 번째)와 ‘킹스 오브 탬파’팀이 춤을 추고 있다.

몸짱 남성들이 펼치는 로드무비


스티븐 소더버그(그는 이번에는 촬영과 편집만 맡았다)가 감독하고 매튜 매코너헤이와 채닝 테이텀이 나온 남성 스트리퍼들의 우정과 춤에 대한 열정을 그린 히트작 ‘매직 마이크’의 속편으로 얘기가 지극히 빈약해 도무지 드라마의 재미를 못 느끼겠다.
그냥 신체 건강한 남자들이 몸 자랑하면서 철딱서니 없는 애들처럼 장난하는 영화로 잘 생기고 육체미 좋은 남자들을 볼모로 여성 팬들에게 관람을 구걸하는 영화다. 그런데 사실 이 영화는 여성을 비하하고 모독하고 있다.
주인공들의 몸처럼 무지막지할 정도로 내용과 서술방식이 서툰데 그럴 줄 알았는지 전편에서 달라스로 나온 매튜 매코너헤이는 속편에 안 나온다. 천박한 영화로 보고 있자니 몸이 찌뿌드드해 질 정도로 지루하다.          
전편에서 친구들과 함께 스트리퍼 팀 ‘킹스 오브 탬파’를 만들어 빅 히트를 했으나 은퇴한 마이크(테이텀-이 영화는 실제로 댄서였던 그의 경험을 참고했다)는 애인과도 헤어지고 시작한 가구제조업도 잘 안 돼 실의에 빠져 있다. 그리고 옛 친구들과의 액션과 모험 또 춤에 대한 정열이 그리워 몸살이 날 지경이다.
친구들은 켄(맷 보머)과 빅 딕 리치(조 만자니엘로)와 타잔(케빈 내쉬)과 티토(애담 로드리게스) 그리고 팀의 MC인 토비아스(가브리엘 이글레시아스). 이들은 팀을 해체하기로 결정하고 해체 전 마지막으로 사우스캐롤라이나주의 머틀비치에서 열리는 남성 스트리퍼 챔피언전에 나가기로 한다. 그리고 여기에 마이크를 초청한다.
그래서 이들이 탬파에서부터 머틀비치까지 가는 로드무비로 가다가 여차여차해 잭슨빌과 사반나에 들르면서 과거의 지인과 관계를 새로 하고 또 새 사람들과 만난다. 팀이 가다가 들르는 곳은 마이크의 애인이었던 롬(제이다 핑켓 스미스-윌 스미스의 아내)이 경영하는 흑인여성 전용 남성 스트리퍼 클럽과 빅 딕 리치가 탬파에서 만났던 젊은 여자의 사반나에 있는 집.
그런데 팀이 사반나의 집에 들어서니 젊은 여자의 중년의 어머니 낸시(앤디 맥다월이 어쩌자고 이 지경인가)와 그녀의 친구 4명이 포도주를 마시면서 시간을 죽이다가 신체 건강한 남자들을 보고 너무 좋아 어쩔 줄을 모른다. 이들은 다 혼자 사는 여성들로 남자의 몸이 갈급해 몸을 비비 꼰다. 이어 팀은 목적지에 도착해 발가벗다시피 한 몸으로 원맨쇼를 과시한다. 그레고리 제이캅스 감독. R. WB. 전지역. ★★½(5개 만점)
                                                               <한국일보 박흥진 편집위원/ hjpark1230@gmail.com>

‘매드 맥스: 분노의 도로’ 샬리즈 테론




“남자보다 강한‘진짜 여자’보여주려 했죠”


넉달간 매일 14시간 촬영 배우생활 20년간 가장 힘들어
속편 위한 속편이 아닌 바른 이유 있는 속편엔 출연할 것


황폐화한 미래 세상에서 벌어지는 액션 모험영화 ‘매드 맥스: 분노의 도로’에서 흉악한 독재자의 생식을 위한 젊은 여자 노예들을 대형 트럭에 숨긴 채 이상향을 향해 도주하는 여전사 퓨리오사로 나온 샬리즈 테론(39)과의 인터뷰가 할리웃에 있는 사이렌 스튜디오에서 있었다. 이 영화는 멜 깁슨 주연으로 1979년에 개봉된‘매드 맥스’의 제4편 격으로 감독은 제1편을 만든 호주의 조지 밀러가 다시 맡았다. 주인공은 매드 맥스(탐 하디)라기보다 왼 팔이 금속 팔인 퓨리오사라고 해야 옳다. 따라서 여권신장의 영화이기도 하다. 뒤로 딴 금발에 하이힐을 신은 장신을 짧은 스커트로 더욱 강조한 테론은 얼음처럼 차가운 미를 뽐냈는데 자세가 아주 당당했다. 처음에는 다소 긴장한 듯이 뻣뻣한 태도를 보였으나 시간이 가면서 제스처와 함께 몸을 흔들면서 농담까지 섞어 질문에 차분하게 대답했다.  

당신은 첫 차는 무엇이었나.
“1980년제 갈색 닷선이다. 난 운전하기를 좋아하지만 신제품이나 멋진 차보다는 편한 차를 몰고 다닌다.”    
     
일을 안 할 때는 어디서 무엇을 하는가.
“난 여러 다른 것들을 좋아한다. 사막과 해변을 좋아하고 산과 정글도 좋아한다. 등짐을 지고 하이킹과 산길을 따라 걷는 것도 좋아한다. 여러 곳을 찾아가 탐험하기를 좋아한다.”

이 영화는 정신적으로나 육체적으로나 강력한 여자를 찬양하고 있는데 그것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는가.
“조지 밀러는 현 세상이 어떻게 돌아가고 있는지를 잘 알고 있다. 그리고 영화는 세상 종말 후의 얘기지만 사실 우리의 현재 얘기라고 해도 좋다. 조지는 여자들은 어려운 환경과 재앙 속에서 남자만큼 잘 견뎌내지 못한다는 통념을 이 영화로 지워버렸다. 난 영화에서 사회적으로 쓸모없는 여자로 나오지만 결국 장한 여자임이 드러난다. 조지는 그런 나를 통해 어느 것이 진짜 여자인지를 보여주려고 했다고 본다.”

퓨리오사 역을 하면서 무슨 생각을 했는가.
“조지는 영화를 매우 통렬한 것으로 만들고자 했다. 아울러 그는 영화를 몰고 가는 동력을 감정에 두고자 했다. 따라서 우린 대사를 별로 많이 필요로 하지 않았다. 이 영화에 감정이 없었다면 단순한 자동차 추격영화로 끝나고 말았을 것이다. 그래서 나는 퓨리오사를 단순히 여전사로만 표현하지 않으려고 애썼다. 감정적으로 갈등을 겪는 살아 있는 여자로 만들려고 노력했다.”

부모와의 관계는 어떠한가.
“우리 가족은 어머니날이나 아버지날 또는 생일과 같은 어느 하루에 특별히 가깝게 지낸다는 것은 일년의 나머지 날들은 소홀히 하는 것이나 마찬가지라는 생활철학을 가지고 있다. 물론 그 날들도 지켜야겠지만 어머니는 내가 자랄 때 내게 매일이 다 귀중하다는 것을 가르쳐 주셨다.”

퓨리오사는 여자 모세라고 봐도 좋겠는데 그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는지.
“일리가 있다. 퓨리오사가 하는 일을 보면 모세의 행동과 일맥상통하는 점이 있다.”

왜 퓨리오사는 목숨을 내걸고 핍박 받는 젊은 여자들을 구한다고 생각하는가.
“나는 그것이 퓨리오사가 자신을 구하고자 하는 행동이라고 생각한다. 세상 종말 후의 지구는 지극히 혹독한 지경으로 생존만이 중요한데 그런 환경에서 자신을 돌본다는 일은 참으로 잔혹한 일이다. 내가 맥스와 퓨리오사를 좋아하는 이유는 그들은 그 누구도 상관 않고 자기의 생존법칙에만 따라 행동하는 이단적인 전사들이라는 점 때문이다.”

당신은 남아프리카공화국 태생으로 그 곳에선 여자들이 강하고 그들이 생활의 근본이라고 아는데 그 점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는가.
“우리는 삶에 있어 유연성을 지니고 스스로 모든 일을 하도록 배우며 자랐다. 그러나 때론 가족이나 친구들이 자신들이 남에 의해 필요한 사람들이라고 느끼게 하는 것도 중요하다고 본다. 난 한 동안 이것에 대해 달가워하지 않았는데 이젠 그것을 즐길 줄 알게 됐다.”

당신의 유머감각에 대해 말해 달라.
“나 아주 이상한 유머감각을 갖고 있다. 긴장을 하면 터무니없는 소리를 하고 크게 후회를 하곤 한다. 몇 주 전에 오바마 대통령을 만났을 때도 그랬는데 대통령에게 너무나 터무니없는 소리를 해 이 기회를 통해 사과를 하는 바이다. 그러나 내가 무슨 말을 했는지는 밝힐 수가 없다.”
왼팔이 금속 팔인 퓨리오사가 총을 들고 적과 맞서고 있다.

당신은 퓨리오사가 쉽게 남을 믿으려 하지 않는 사람이라고 말했는데 실제로는 어떤가. 
“아까도 말했지만 남아공에선 어렸을 때부터 자립하고 독립하도록 교육을 받아 나도 남의 도움을 요구하지 않는 편이다. 누군가에게 도움을 요청하려면 우선 그 사람을 믿어야 한다. 타인에 대한 진정한 믿음이란 자신을 완전히 무방비상태로 두었을 때에서야 가능하다. 그런데 그런 것이 내겐 자연스럽지가 못하다. 그래서 난 요즘 그런 나를 고쳐 보려고 노력중이다.”

아이의 어머니로서 당신은 인류의 미래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는가.
“일단 아이를 갖게 되면 책임감이 강해진다. 난 내 아이에게 이 세상을 보다 나은 곳으로 남겨주고 싶다. 자식은 부모에게 삶의 추진력과 영감을 고취시켜 준다. 내 아이는 내가 하고 있는 에이즈퇴치 운동에 큰 활력소가 되고 있다.”

당신은 곧 40세가 되는데 느낌이 어떤가.
“기분 좋다. 여자들이 40세가 되면 피부의 탄력성을 비롯해 잃어버리는 것들만 생각하고 얻는 것은 생각하지를 않는다. 나이를 먹으면서 보다 차분한 이해력을 갖게 되고 아울러 자신을 보다 잘 이해하게 됐다. 20대엔 느껴보지 못한 자신에 대한 편안함을 감지하게 되더라. 건강하게 살아 있다는 것에 감사할 뿐이다.” 

이 영화 속편에 안 나오겠다고 했다는데 사실인가.
“그것은 과장된 보도다. 난 단지 속편을 위한 속편이 아니라 바른 이유가 있어야 나오겠다고 말했을 뿐이다.”

션 펜이 당신에게 주는 기쁨에 대해 말해줄 수가 있는가.
“션이 나를 사랑하게 된 이유는 내가 삶을 사랑하고 행복하며 또 충족된 인생을 살고 있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나는 우리가 서로의 삶을 보다 나은 것으로 만들어주고 있어 션을 사랑하고 또 그와의 관계를 사랑한다. 그렇다고 우리가 서로 상대방의 공허를 메워주고 있는 것은 아니다. 우리는 둘 다 아주 건전한 사람으로 둘이 함께 아주 멋있는 삶을 누리고 있다. 이 나이에 아름다운 아들의 어머니가 되고 그리고 내 인생의 사랑을 만나고 또 영화를 만들 수 있는 나는 참으로 운이 좋은 사람이다.”

맡은 역을 위해 신체단련을 얼마나 했는가.
“영화의 스틸을 보고나서야 내 목이 풋볼선수의 것처럼 굵어졌다는 것을 알았다. 팔 굽혔다 펴기와 역기를 들었는데 따라서 상체는 튼튼해진 반면 하체는 게을리해 꼭 포파이처럼 몸이 변했다. 신체훈련과 영화촬영 모두가 너무나 힘들었다. 130여일간을 매일 14시간씩 촬영을 했는데 매일 힘을 유지하기 위해 45분간 훈련을 받았다. 배우생활 20여년간 이렇게 힘들어 보긴 처음이다. 특히 무게가 10파운드가 넘는 금속 팔을 영화 내내 목과 어깨와 몸에 달고 액션을 하느라 기진맥진 했었다.”           

퓨리오사는 수퍼우먼이라고 보는데 수퍼우먼 영화에 나올 생각이 있는지.
“난 퓨리오사가 수퍼우먼이라고 보질 않는다. 난 그런 아이들 영화에는 관심이 없고 의사 역이 하고 싶다.”

탐 하디와 육박전을 벌이는 장면은 얼마나 힘들었나.
“그는 인정사정없더라. 그 앞에선 결코 약골이 될 수가 없었다. 매우 힘들었는데 스턴트 책임자의 도움을 많이 받았다.”

- 당신이 하고 있는 자선사업에 관해 말해 달라.
“아프리카와 아시아에서의 에이즈 예방이다. 그 곳에 사는 아이들이 사춘기가 돼 첫 성경험을 할 경우 50%가 에이즈균에 감염될 수 있다는 사실은 끔찍한 일이다. 그들을 돕기 위해선 국제적으로 보다 많은 시간과 에너지와 자금이 필요하다. 유엔도 이같은 사실을 마침내 인식하고 올해부터 우릴 적극적으로 돕기로 했다. 특히 위험한 것은 15~22세 여자들이다. 우리의 계몽과 노력으로 아프리카 지역에서는 모유를 통해 아기가 에이즈균에 감염되는 경우가 거의 없어졌다.”    
                                                            <한국일보 박흥진 편집위원/ hjpark1230@gmail.com>

‘킬러즈’


어네스트 헤밍웨이가 1927년에 쓴 살벌할 정도로 직설적인 단편소설 ‘킬러즈’(The Killers)는 삶을 포기한 남자가 묵묵히 체념적으로 죽음을 맞는 운명적인 이야기다. 이 소설은 도대체 왜 이 사나이가 자기를 죽이러 온 살인자들을 환영하다시피 맞았는지를 캐어 들어가는 연역법적인 내용이다.      
이 글을 더욱 유명하게 만든 것이 독일서 나치를 피해 미국으로 이주한 로버트 시오드마크 감독의 동명영화(1946)다. 살인과 강도와 남자를 유혹해 죽음으로 유인하는 여자의 이야기로 필름 느와르의 장르를 정립해준 작품이다. 잔뜩 잡아당긴 활시위처럼 간장감이 팽팽하고 거칠면서도 시적인 감수성을 지닌 멋있는 영화다.
영화는 당시 무명씨였던 곡마단 곡예사 출신의 버트 랭카스터(32)의 스크린 데뷔작으로 그는 여기서 실존주의적 짐승과도 같은 역량을 과시, 대뜸 스타가 되었다. 랭카스터는 이 암담한 분위기의 영화에서 내면에 잠복한 힘을 지닌 어두운 남성미를 보여주는데 신선할 정도로 아름다운 모습이다. 
랭카스터는 헤밍웨이의 팬으로 그의 소설은 다 읽어 더욱 주인공 스위드의 내면 연기를 묵직하면서도 차분하게 해낼 수 있었다고 후에 술회했다. 둘 다 터프 가이의 이미지를 지녔던 헤밍웨이와 랭카스터가 화면에서 호흡을 함께 한 작품이라고 하겠다.
두 킬러가 간이식당에서 스위드의 숙소를 묻는 빛과 그림자의 대조가 강렬한 첫 장면부터 보는 사람을 영화 안으로 깊이 잡아끈다. 후에 ‘벤-허’의 음악을 작곡한 헝가리 출신의 미클로스 로자의 음악이 시종일관 운명을 재촉하는데 싸구려 호텔방에 드러누워 있던 스위드는 체념한 상태로 방문을 박차고 들어온 킬러들의 총알을 빗발처럼 맞으며 숨진다.
여기서 이야기는 스위드의 생명보험 금액을 지불해야 하는 보험회사 수사관(에드몬드 오브라이언)이 스위드의 과거의 삶을 재구성하면서 과거로 돌아간다. 전직 권투선수였던 스위드는 손을 다쳐 링에서 일찍 은퇴한 뒤 범죄세계 속에 발을 디디면서 현금수송차 강탈에 참여한다. 그를 범행 속으로 끌고 들어가는 치명적인 여자(femme fatale)가 범죄단 두목의 요염한 정부 키티(에이바 가드너).
스위드는 검은 긴 머리를 늘어뜨리고 담배연기를 자욱이 내뿜으면서 피아노 반주에 맞춰 허스키한 음성으로 ‘사랑을 더욱 알게 될수록’(The More I Know of Love)이라는 노래를 부르는 키티를 보고 첫 눈에 마음을 빼앗긴다(사진). 키티는 스위드에게 현금수송차를 턴 뒤 현금을 챙겨 둘이 함께 먼 곳으로 튀자고 제의, 봉 같은 남자는 요부의 간계에 넘어간다. 그러나 돈과 보석에 눈이 먼 키티는 스위드를 배신하는데 결국 악인들은 다 지옥으로 간다.   
이 영화는 그 때까지 섹스 심벌로만 알려졌던 가드너가 처음으로 극적인 역을 맡아 연기력을 과시한 작품이기도 하다. 매우 육감적인 작품으로 각본은 모두 감독인 리처드 브룩스와 존 휴스턴이 썼으나 크레딧에는 앤소니 베일러가 올랐다.
‘킬러즈’는 1964년 단 시겔 감독(그는 원래 1946년도 영화의 감독으로 선정됐었으나 계약문제로 불발됐다)에 의해 새디스틱한 총천연색 영화로 리메이크 됐다. 두 영화는 20년의 사회변화를 뚜렷이 반영하듯 완전히 다른 모습인데 모든 면에서 흑백판이 낫지만 신판도 속도감 있고 날카롭고 흥미 있다.
당초 이 영화는 NBC-TV에 의해 네트웍 사상 최초의 TV 영화로 제작됐으나 매우 폭력적인 데다가 케네디 암살 이후여서 극장용으로 나왔다. 나는 이 영화를 중앙극장에서 봤는데 리 마빈, 존 캐사베티즈, 로널드 레이건 및 앤지 디킨슨 등 호화 캐스팅과 긴장감 있고 빠른 진행 그리고 음모와 배신과 죽음의 얘기가 화려한 신파극 못지않아 재미있게 봤던 기억이 난다.
영화는 전직 자동차 경주선수 자니를 총으로 살해한 찰리(마빈)와 그의 동료 킬러 리(클루 구래거)가 태연히 죽음을 맞은 자니의 태도가 궁금해 그 까닭을 캐들어 가면서 자니의 과거를 재구성하는 식으로 진행된다. 신판은 레이건의 할리웃과의 고별작품으로 그가 냉정한 범죄단 두목이라는 최초의 악역을 맡은 영화다. 그런데 레이건은 후에 악역을 맡은 것에 대해 후회했다고 하는데 영화 개봉 2년 후 가주 지사로 당선됐다. 
레이건은 범죄 후 도주용 운전사로 쓰려고 자니(캐사베티즈)를 유혹해 범죄에 끌어들이는 요부 쉴라(디킨슨)의 남편 잭으로 나오는데 디킨슨은 자기 혼자 살아남으려다가 레이건에게 귀싸대기를 얻어맞는다. 레이건은 끝에 자기가 고용한 킬러 찰리의 총알을 맞고 황천으로 간다.
마빈의 위풍당당한 자태와 냉소적인 대사가 일품인데 총에 맞아 피를 흘리며 죽어가는 그가 잭을 총으로 쏴 죽인 뒤 “살려 달라”고 애걸하는 쉴라에게 내뱉는 “숙녀씨, 나 시간 없어요”라는 대사가 기차게 멋있다. 크라이티리언(Criterion)이 두 영화를 함께 묶은 Blu-ray와 DVD를 출시했다.       
                                                         <한국일보 박흥진 편집위원/ hjpark1230@gmail.com>



두 번 죽은 사나이



영국 작가 그래엄 그린이 각본을 쓰고 영국 감독 캐롤 리드가 연출한 범죄와 우정과 배신의 드라마 ‘제3의 사나이’(The Third Man·1949)는 모든 것이 완벽한 불길한 분위기의 필름느와르다. 수수께끼 같고 유령과도 같은 주인공 사나이 해리 라임과 비엔나 지하 하수구 안에서의 음습하고 드러매틱한 도주와 추격, 사람의 마음을 불안하게 만드는 명암을 뚜렷이 이용한 삐딱한 각도의 흑백촬영 및 부추기듯 몰아대다가 때로 비탄조로 숨을 죽이는 지터음악 등이 절대적 조화를 이룬 빼어난 영화다. 
흥미진진한 내용과 플롯과 화면의 완벽한 구성과 멋있는 연기 그리고 인물들만큼이나 중요한 전쟁의 상처가 그대로 남아 있는 전후 비엔나의 모습(6.25 후의 서울이 생각난다)과 함께 영화의 수면 아래에 잠겨 있는 못 이룰 사랑이 있는 작품으로 한 번을 보나 열 번을 보나 감탄을 금치 못하게 하는 명화다.
나는 최근에 이 영화의 각본을 읽었는데 냉소적인 대사가 많은 글이 마치 하드보일드 형사소설처럼 간결 명확하면서도 강건하다. 어둡고 운명적인 로맨틱한 분위기가 작품의 때인 으스스하고 흐린 2월의 날씨처럼 몸 안으로 스며드는 영화는 캐롤 리드의 해설로 시작된다. 이와 함께 안톤 카라스가 작곡하고 연주하는 지터음악이 마치 이야기의 등을 떠밀듯이 맹렬하게 현을 뜯는다.
‘오클라호마 키드’와 ‘샌타페의 외로운 기수’ 같은 싸구려 웨스턴 소설작가로 무일푼의 술꾼이요 백수건달 스타일의 할리 마틴스(조셉 카튼)가 죽마고우인 해리 라임(오손 웰스-해리는 그린이 알고 지내던 영국인 소련 첩자 킴 필비를 모델로 했다-사진)의 초청을 받고 비엔나에 도착한다. 비엔나는 전승국들인 미·영·불 및 소련이 4개 지구로 분할해 관리하고 있다. 
할리는 도착 당일 해리의 아파트 관리인으로부터 해리가 며칠 전 교통사고로 사망했는데 오늘이 장례일이라는 말을 듣고 장례식이 열리는 중앙묘지로 간다. 그는 여기서 모자를 쓰고 코트를 입은 해리의 애인으로 신비감이 감도는 체코 태생의 연극배우 안나(알리다 발리)의 옆모습을 훔쳐본다.           
그리고 할리는 역시 장례식에 온 영국군 경찰 캘로웨이 소령(트레버 하워드)으로부터 해리가 군수물자 암거래상으로 희석한 페니실린을 팔아 이를 사용한 병든 아이들이 죽거나 불구가 되게 한 사악한 범죄자라고 알려준다. 이에 할리는 친구의 누명을 벗기기로 결심하고 해리의 사고사를 파 들어가다가 교통사고 직후 쓰러진 해리를 옮긴 세 명의 남자 중 신원이 불분명한 제3의 사나이가 누구인지를 찾아내기 위해 생전 해리를 알던 사람들을 일일이 찾아 심문한다.
그 중의 한 사람이 안나로 할리는 안나와의 만남을 이어가면서 서서히 그녀를 사랑하게 된다. 이 영화는 필름느와르의 특징 중 하나인 그늘진 사랑의 흔적이 역연한데 가망 없는 사랑을 막연한 그리움의 눈길과 텅 빈 얼굴 표정으로 표현하는 할리의 측은한 러브스토리라고 해도 되겠다. 결국 할리는 악에 대한 응징과 함께 안나에 대한 사랑 때문에 친구를 배신한다.
영화의 주인공인 해리는 영화가 시작된 지 1시간 후에야 나타난다. 모자를 쓴 채 두꺼운 외투의 깃을 올리고 장난기 있는 음모자의 미소를 띠며 남의 집 문간에 불쑥 나타난 해리를 빛과 어두움을 교차해 가며 찍은 촬영이 아찔하다.
영화사에 길이 남을 클라이맥스는 비엔나의 지하 미로 같은 하수구에서 벌어지는 연합군 경찰과 해리 간의 쫓고 쫓기는 긴박한 추격전. 첨벙첨벙 소리를 내면서 하수를 밟고 뛰어 달아나는 해리의 실물보다 훨씬 큰 그림자와 땀 흘리듯 물이 흘러내리는 하수구 벽을 급작하게 비추는 플래시라이트 그리고 무거운 코트를 입은 채 이리 뛰고 저리 뛰어 도주하는 해리의 불안한 눈동자와 안면근육 및 맨홀 뚜껑을 필사적으로 들어 올리려는 해리의 손가락 등을 찍은 로버트 크래스커의 표현주의적 촬영은 조명을 신의 솜씨로 다룬 시각적 경이다. 그는 이 영화로 오스카상을 탔다. 그런데 비엔나에서는 현재 이 영화를 본 딴 ‘제3의 사나이’ 하수구 관광이 인기라고 한다. 
영화의 라스트 신은 영화사상 가장 멋 있고 아름다운 장면이다. 두 번 죽은 사나이 해리의 두 번째 장례 후 수레에 기대 선 할리를 본 척도 안 하고 나신의 떡갈나무가 길 양옆으로 늘어선 중앙묘지의 길을 안나가 말없이 무표정한 얼굴로 뚜벅뚜벅 걸어 지나 간다. 카메라가 안나를 멀리서부터 가까이까지 따라가면서 찍은 이 장면은 우수가 가득히 배인 로맨틱한 라스트 신이다.  원래 그린이 쓴 각본의 마지막은 할리와 안나가 결합되는 해피 엔딩이었으나 영화의 미국측 제작자인 데이빗 O. 셀즈닉이 우겨 행복과 거리가 멀게 고쳤다. 그런데 중앙 묘지에는 해리와 함께 베토벤과 브람스와 슈베르트도 묻혀 있다.
나더러 무인도에 표류할 경우 영화 딱 한 편을 가지고 간다면 어느 것을 고르겠냐고 물으면 서슴없이 ‘제3의 사나이’를 고르겠다. ‘제3의 사나이’가 웰스의 출생(5월6일) 100주년을 기념해 4K로 복원돼 9일 까지 뉴아트극장(11272 샌타모니카)에서 상영된다. (310-473-8530) 
                                          <한국일보 박흥진 편집위원/ hjpark1230@gmai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