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이야기

2016년 2월 29일 월요일

독수리 에디(Eddie the Eagle)


스키복장을 한 에디가 브론슨이 모는 차 위에서 폼을 잡고 있다.


동계올림픽 스키 점핑 꼴찌선수의 실화영화


감상적이고 너무 달짝지근하지만 온 가족이 보면서 기분 좋을 언더독의 자기성취 전기영화다. 스포츠 실력이라곤 전무한 영국의 마이클 ‘에디’ 에드워즈가 배짱과 낙천성과 불굴의 의지 그리고 열성을 밑천으로 1988년 캐나다 캘거리 동계올림픽에 스키 점핑선수로 출전해 꼴찌를 하고도 올림픽 팬들과 모국의 영웅이 된 실화다. 그런데 이 올림픽에는 자메이카의 4명의 선수가 밥슬레이드 경기에 출전해 큰 화제가 됐었는데 이 얘기는 ‘쿨 런닝스’라는 영화로 만들어졌다.  
귀엽고 순진하고 무공해 산소 같은 영화로 특히 에디로 나오는 태론 에저턴의 어색한 동작과 아이 같은 말투와 태도가 일품 연기다. 이와 함께 마지못해 에디의 코치가 된 산전수전 다 겪은 한물 간 왕년의 스키선수로 술꾼인 휴 잭맨과 에저턴의 콤비가 그야말로 찰떡궁합인데 이 코치는 가상의 인물이다. 정신을 고양시켜 주는 영화여서 부모들이 자녀들과 함께 관람하면서 웃고 즐길 만한 작품이다.
안경을 쓴 에디는 어려서부터 올림픽에 집착해 집 뒷골목에서 온갖 운동 연습하느라고 넘어지고 자빠진다. 집 플래스터공인 아버지는 에디가 자기 직업을 이어 받기를 원해 불만이 많으나 어머니는 아들을 적극 후원한다. 
마침내 20대가 된 에디(에저턴)가 선택한 스포츠가 다운힐 스키. 그러나 에디는 국내 예선전에서 탈락하는데 그는 이에 실망하지 않고 이번에는 스키 점핑으로 종목을 바꾼다. 그리고 연습을 위해 독일의 가미쉬-파르텐키르헨 올림픽 스키연습장으로 간다. 에디는 여기서 눈이나 치우는 신세가 된 왕년의 명 스키 점핑선수 브론슨(잭맨)을 만나 자기를 가르쳐 달라고 사정한다.
처음에는 이를 귀찮게 여기던 브론슨이 에디의 정성에 감복, 그의 코치가 되면서 에디는 브론슨으로부터 높은 램프 꼭대기에서부터 하강할 때 독수리 날듯이 하는 독수리 비상법을 배운다. 그래서 독수리 에디라는 영화 제목이다. 
연습장에서의 얘기가 다소 장황한데 에디가 연습장에 있는 노르웨이 선수들과 핀란드 선수로부터 조롱을 받는 얘기와 자기가 청소부로 일하는 식당의 바 여주인으로부터 은근히 섹스 공격을 받으면서도 뭐가 뭔지 몰라 하는 에디의 아이 같은 순진성이 지나치게 과장됐다. 그리고 여차여차해 에디와 브론슨 간에 갈등이 생겨 에디는 혼자서 캘거리로 간다. 실력이 형편없는 에디가 올림픽에 출전할 자격을 얻게 된 것은 이 부문에서 경쟁하는 영국 선수가 없기 때문.
에디가 캘거리에 오면서 얘기가 활기를 띠는데 뒤늦게 브론슨이 찾아와 코치로 나선다. 물론 에디는 꼴찌를 하나 영국 기록으로선 신기록을 내면서 조국의 영웅이 될 뿐 아니라 언더독의 투지를 좋아하는 올림픽 팬들의 인기를 한 몸에 독차지한다. 그러면서 영화는 올림픽의 참 정신은 승리가 아니라 참가에 있다는 것을 강조한다. 크리스토퍼 월큰이 왕년의 브론슨의 코치로 그리고 짐 브로드벤트가 영국의 스키 해설가로 나온다. 덱스터 플레처 감독. PG-13. Fox. 전지역. ★★★(5개 만점) <한국일보 박흥진 편집위원/ hjpark1230@gmail.com>

어제 같은데(Only Yesterday)


성장한 다케오(왼쪽)가 기차 안에서 소녀(오른쪽) 시절을 회상한다.

미야자키 하야오가 만든 소녀의 성장기 드라마


올해 오스카 만화영화상 후보에 오른 ‘마니가 거기 있었을 때’(When Marnie Was There)를 비롯해 ‘키키의 배달서비스’와 ‘카구야 공주의 이야기’ 그리고 ‘내 이웃 토토로’ 및 ‘스피리티드 어웨이’ 등 주옥같은 만화영화들을 제작한 미야자키 하야오의 기블리 스튜디오가 1991년에 만든 아름다운 전원목가이자 소녀의 성장기다.
기블리의 여러 영화에 등장하던 귀신 도깨비나 용 또는 하늘을 나는 성과 같은 동화적 요소가 등장하는 환상적인 영화가 아니라 어느 정도 나이를 먹은 아이들(특히 소녀)과 어른들이 더 즐길 직설적으로 서술되는 드라마다. 원작은 오카모도 호타루가 글을 쓰고 도네 유코가 그림을 그린 오카모도의 반자서전 격인 만화로 영어 더빙판.
얘기는 과거와 현재를 오락가락하면서 전개되는데 놀랄 정도로 소녀의 성장에 관한 모든 과정이 자세하게 묘사되었다. 도쿄에서 혼자 사는 27세의 여사원 다케오(데이지 리들리의 음성)가 여름휴가를 맞아 기차를 타고 자기가 어렸을 때 자란 고향으로 가면서 시작된다.
그리고 다케오는 열차 안에서 자신의 초등학교 5학년 시절을 회상하면서 시간이 과거로 돌아간다. 이 같은 플래시백은 다케오가 목적지에 도착해서도 계속되는데 그 과거의 일들이 매우 생생하게 사실적이요 또 가깝게 느껴진다.    
학교 연극과 소년에 대한 호기심과 생리와 부자와 빈자의 차이 그리고 처음 먹어 보는 파인애플 또 자기를 사랑하나 고지식한 아버지와의 관계 및 가족 식사와 잇꽃 따기와 손톱에 물들이기 그리고 학교 청소 같은 것들이 자상하고 재미있고 소소하게 묘사된다.
시골의 먼 친척집에 묵은 다케오는 이 집 부부와 자기 나이 또래의 아들 도시오(데브 파텔의 음성)와 함께 농촌 일을 하면서 근로와 자연 속의 삶을 즐기는데 그런 과정에서 시골생활을 사랑하는 건전하고 건강한 도시오에게 마음이 이끌린다. 
그리고 다케오는 도시와 시골의 삶 중 과연 어느 것이 자신의 것인가 하는 문제를 놓고 갈등을 한다. 그러나 영화는 이에 대한 명확한 답을 피한다. 마음에 정답게 와 닿는 쾌적한 영화로 손으로 그린 그림이 소박하고 친근감이 간다. 아이들과 함께 보기를 적극 권한다. 다카하다 이사오 감독. 일부 지역. ★★★★½(5개 만점)
                                                               <한국일보 박흥진 편집위원/ hjpark1230@gmail.com>


‘마술 피리’




요지경처럼 마법적인 모차르트의 오페라 ‘마술 피리’(The Magic Flute·사진)를 노래와 함께 애니메이션을 곁들인 무성영화로 보면 어떨까. 그 파격적인 독창성에 놀라지 않을 수가 없었다. 이 오페라는 모차르트의 유일한 독일어 작품으로 가수들이 노래를 부르면서 다른 한편으로는 대사로 대화를 하는 ‘징슈필’(Singspiel)이다. ‘징슈필’은 후에 바그너의 ‘악극’의 길잡이 노릇을 한다.
현재 LA 다운타운의 도로시 챈들러 파빌리언에서 공연 중인 LA 오페라의 ‘마술 피리’는 대사가 나올 때는 포르테피아노가 반주를 하면서 자막과 함께 애니메이션으로 내용을 보충 설명하고 있다.
무성영화에 대한 지식이 있는 사람들은 오페라를 보면서 금방 주인공들이 옛날 무성영화의 인물들을 닮았다는 것을 알 수 있을 것이다. 주인공 타미노(테너 벤 블리스)가 사랑하는 거대한 거미 모양을 한 ‘밤의 여왕’(소프라노 박소영)의 딸 파미나(소프라노 마리타 죌버그)는 헤어스타일과 복장이 독일 감독 G.W. 팝스트가 만든 ‘판도라의 상자’(Pandora’s Box·1928)의 팜므 파탈 룰루(루이즈 브룩스)를 꼭 닮았다.
또 지혜보다는 포도주를 더 좋아하는 재잘대는 새 잡이 파파게노(바리톤 조나단 미치)가 쓴 모자는 무성영화 시대 ‘돌의 얼굴’이라 불렸던 명 코미디언 버스터 키튼이 썼던 더비모자다. 그리고 파미나를 납치한 ‘지혜의 사원’의 제사장 자라스트로(베이스 빌헬름 슈빙하머)의 졸개모노스타토스(테너 브렌턴 라이언)는 독일 감독 F. W. 무르나우의 흡혈귀 영화 ‘노스페라투’(Nosferatu·1922)의 올록 백작(막스 슈렉)처럼 흉측하게 생겼다.
오페라는 이렇게 무성영화의 흉내를 내면서 아울러 작품 속에 나오는 용, 뱀, 검은 고양이, 개, 물고기, 둥둥 떠다니는 코끼리, 원숭이를 비롯해 요정과 박동하는 붉은 심장 등을 애니메이션으로 처리, 마치 무성영화로 만든 동화와 만화를 보는 것 같다.
그리고 가수들도 무대 위에 설치된 스크린과 같은 편평한 배경 속에 박혀 있듯이 처리해 영화 같은 기분을 더 북돋우는데 이 때문인지 음악이 다소 희생된 느낌이 들었다. 그러나 눈이 번쩍 뜨이면서 경이감에 빠지게 되는 기발 나게 창조적인 제작이다.
이런 무대를 만든 팀은 독일의 코미셰 오퍼 베를린(코믹 오페라 베를린)의 감독인 배리 코스키와 영국의 극단 ‘1927’(최초의 유성영화 ‘재즈 싱어’기 나온 해)의 공동 창립자인 수잔 안드레이드와 폴 배릿인데 배릿은 이 오페라의 애니메이션을 만들었다. 오페라를 보면서 오페라를 사랑하는 내 친구 C가 “독일에서는 별의별 독창적인 아이디어로 오페라를 만든다”고 한 말이 떠올랐다.
동화와 환상과 마법이 뒤엉켰으면서도 다분히 지적인 ‘마술 피리’는 음의 마술사인 모차르트의 원숙한 아름다움을 느낄 수 있는 작품으로 그의 마지막 오페라다. 상징과 은유가 있는 철학적 깊이와 세속적 희롱기를 함께 지녔는데 위험에 처한 연인들의 영적·육체적 시련과 선과  악의 대결 및 인간성에 대한 가치 추구 그리고 지혜의 중요성을 말한 계몽주의적 작품이기도 하다.
내용과 음악이 진지한 드라마에서 익살극으로 자유롭고 분주하게 오락가락하는 ‘마술 피리’는 음악의 힘에 관한 얘기이기도 하다. 타미노가 마술 피리를 불어 침묵과 유혹의 시험 끝에 불과 물의 시험을 이겨내고 또 타미노의 짝패가 된 파파게노가 작은 종을 울려 괴물들을 물리치고 애인 파파게나(소프라노 바네사 베세라)와 재회하게 되는 것도 다 음악의 힘 때문이다. 이 음악의 힘은 사랑의 힘과도 같은 것이다. 타미노가 파미나의 초상화만 보고 사랑에 빠진 것도 사랑의 막강한 힘을 말해주고 있다.
오페라의 주인공은 타미노이지만 그보다 더 재미있는 인물은 말 많은 파파게노다. 먹고 마시고 자고 사랑하고 아이 많이 낳는 것이 꿈인 파파게노는 ‘케 세라 세라’ 형으로 삶의 기술을 터득한 너무나 인간적인 인물이다. 2막에서 파파게노가 파파게나와 함께 “파파 파파 파파”하면서 부르는 듀엣이 귀엽고 즐겁다.
이번 공연에서 청중들의 뜨거운 박수갈채를 받은 사람이 박소영이다. 그는 제2막에 나오는 유명한 아리아 “지옥의 복수가 내 가슴 속에서 끓어오르네”를 맑고 고운 음성으로 아슬아슬 하면서도 매끄럽게 불러 넘겼다. 이 아리아는 대중화한 인기곡으로 콜로라투라 소프라노 최고의 높이와 기술을 요구하는 것이어서 듣고 있으면 전율마저 느끼게 된다.
그런데 박소영은 제1막에서 아리아 “오 떨지 말지어다, 내 아들아”를 부를 때는 목소리가 채 다듬어지지 않은 듯 했다. 그 외에 블리스가 잘 불렀고 나머지 가수들의 노래는 무난한 편. 지휘는 LA 오페라 상임지휘자인 제임스 콘론.
‘마술 피리’(Die Zuberfloete)는 1970년에는 스웨덴의 잉그마르 베리만 그리고 2006년에는 영국의 케네스 브라나에 의해서 오페라 영화로도 만들어졌다. ‘마술 피리’는 오는 28일과 3월 2일과 6일 등 세 차례 공연이 남았다. (213)972-8801.
                                                                <한국일보 박흥진 편집위원/ hjpark1230@gmai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