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A오페라가 현재 공연 중인 푸치니의 ‘토스카’(Tosca)는 무대의 커튼에 뿌려진 선혈처럼 피로 얼룩진 비극적인 작품이다. 사랑과 질투, 욕정과 정절 그리고 배신과 죽음으로 엮어진 극적이요 정열적인 내용 때문에 팬들의 ‘올타임 페이보릿’으로 사랑을 받고 있다.
3막 전체가 아름답고 로맨틱하며 격정적인 멜로디로 짜여 있어 평범한 대사마저 듣기 좋다. 제1막에서 자기 애인인 성당화가 카바라도시가 그리는 막달라 마리아의 초상을 보고 질투를 하는 토스카와 카바라도시가 주고받는 대화가 그렇다.
토스카는 질투심과 신심이 강한 여자로 정열적이요 용감하고 맹렬한데 이에 비하면 카바라도시는 다소 ‘마마 보이’처럼 느껴진다. 이런 역인만큼 토스카는 프리 마돈나들의 꿈의 역으로 토스카하면 대뜸 떠오르는 명창이 마리아 칼라스다.
내가 ‘토스카’를 처음 들은 음반도 칼라스의 것으로 카바라도시로는 미남 테너 주세페 디 스테파노가 그리고 카바라도시의 연적인 스카르피아로는 바리톤 티토 고비가 노래했다. 황홀무아 지경이다. 칼라스와 스테파노는 오페라계의 전설적 동반자로 여러 차례 함께 순회공연을 했고 많은 음반을 남겼다.
지난 22일 개막된 ‘토스카’는 토스카 역의 소프라노 손드라 라드바놉스키의 강력한 음성이 장내를 뒤흔들어 놓은 공연이었다. 막강한 음성으로 풍요롭고 거대하면서도 음색이 곱고 깨끗했다. 그가 제2막에서 부르는 ‘노래에 살고 사랑에 살고’를 듣자니 콧등이 시큰해진다.
종교적 의미가 강하면서도 세속적인 것들로 가득 찬 이 오페라에서 라드바놉스키에 못지않게 강한 인상을 남긴 사람이 로마의 경시총감 스카르피아 역의 바리톤 암브로지오 마에스트리. 스카르피아는 자기가 원하는 것은 취하고 버리는 탐욕스런 자로 또 하나의 축재 대상인 토스카에 대한 욕망 때문에 신마저 잊게 된다며 울부짖는데 듬직한 체구의 마에스트리가 체구에 걸 맞는 강렬한 음성으로 노래했다. 그는 노래 뿐 아니라 사악하고 폭군적이며 아울러 간교한 스카르피아의 연기도 잘 했다.
토스카와 카바라도시의 콤비 보다는 토스카와 스카르피아의 대립관계가 더 맹렬한 불꽃을 튕겼다. 제2막을 가득채운 스카르피아와 토스카의 욕정과 정절을 지키려는 순정의 공방전이 볼만하다.
라드바놉스키 역시 연기가 좋다. 제1막에서 카바라도시에게 막달라 마리아의 눈을 검게 칠하라고 질투를 부리는 모습은 철부지 아이 같다가 스카르피아와의 대결 끝에 그를 칼로 찔러 죽인 뒤(사진) 비참에 잠긴 모습이 처절하다. 순수와 존엄성과 강한 의지를 잘 표현했다.
스카르피아와 토스카처럼 역시 비명횡사하는 카바라도시 역의 러셀 토마스도 맑고 풍성한 음성이다. 제1막의 아리아 ‘오묘한 조화’가 청아하고 서정적이며 제3막의 유명한 ‘별은 빛나건만’ 역시 아름답고 고고하다.
그런데 토마스는 노래는 잘 불렀지만 감성이 다소 부족했다. 그리고 안경을 낀 거구의 토마스가 카바라도시 역에 잘 어울리지 않았다. 그와 라드바놉스키 간에 타오르는 로맨틱한 사랑의 열기도 미적지근하게 감촉됐다. ‘로맨스 무슨 로맨스’라는 말이 절로 나온다.
이런 느낌을 가지면서 새삼 오페라는 시각 드라마이자 성악 멜로디라는 말과 함께 지난 2004년 4월 런던의 로열오페라에서 일어났던 ‘뚱보 여가수’ 해프닝이 떠올랐다. 그 때 로열오페라가 리햐르트 슈트라우스의 ‘낙소스섬의 아리아드네’ 공연에 출연 예정이던 소프라노 데보라 보이크트를 뚱뚱하다는 이유로 퇴짜를 놓았었다.
당시 체중 220파운드였던 보이크트가 날씬한 검은 칵테일 드레스를 입은 아리아드네로 나오기엔 지나치게 뚱뚱하다는 것이 이유. 이로 인해 오페라계에서는 스타일이 먼저냐 아니면 내용이 먼저냐는 문제를 놓고 찬반토론이 요란했었다. 이 때 보이크트에 대한 퇴짜에 찬성했던 한 음악저술가는 “폐병을 앓는 미미(라 보엠)를 뚱보가 노래한다는 것은 꼴불견에 가깝다”고 말했었다.
그런데 카바라도시의 대명사와도 같은 뚱보 파바로티가 지난 2004년 3월 메트오페라의 ‘토스카’에서의 카바라도시 역으로 은퇴 공연을 했을 때 그가 과체중으로 몸을 제대로 가누지 못해 비평가들로 부터 명예롭지 못한 퇴장이라는 말을 들었었다. 그 때 파바로티는 제3막에서 총살당해 쓰러지면서 마치 낮잠이라도 자려는 듯이 자기 주위에 잔뜩 깔아놓은 베개들 위로 조심스럽게 몸을 눕혀 관객들의 폭소가 음악소리를 압도했다고 한다.
‘토스카’는 오는 5월13일까지 다운타운의 뮤직센터에서 공연된다. 마지막 공연에서는 멜로디 모어가 토스카로 나오고 한국계 바리톤 윤기훈이 스카르피아를 노래 부른다. 22일 공연의 LA오페라 오케스트라의 지휘는 상임지휘자 제임스 콘론이 맡았는데 훌륭한 연주였다. 마지막 공연 지휘는 LA 매스터코랄 감독 그랜트 거숀이 한다.
<한국일보 박흥진 편집위원/ hjpark1230@gmai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