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이야기

2017년 7월 30일 일요일

아토믹 블론드(Atomic Blonde)


로레인이 좁은 복도에서 발길질로 적을 제압하고 있다.

냉전시대 미녀 스파이의 핵폭탄급 액션


제목 그대로 원자탄급 폭력과 격투기술을 지닌 백금발의 장신 미녀 스파이가 냉전시대 베를린에서 이중삼중의 음모와 배신을 겪으면서 닥치는대로 적국의 스파이를 때려누이는 스파이 액션 스릴러로 주인공 역의 샬리즈 테론의 핵폭탄 액션이 장관이다. 
얘기에 신경 쓸 것 없이(이런 장르의 영화의 결점인 약한 얘기는 여기서도 마찬가지인데 공연히 플롯이 복잡하다) 테론의 주먹질과 발길질 그리고 온 몸으로 가격하는 액션을 보면서 즐기면 될 영화다. 멋있고 아찔하고 사납고 쿨한 액션이어서 눈을 뗄 수가 없다. 
오스카 수상자인 연기파 테론은 ‘매드 맥스: 분노의 도로’에서도 머리를 밀고 나와 맹렬한 액션을 구사했는데 이 영화로 명실공히 액션에 능한 배우가 된 셈이다. 이 영화는 키아누 리브스가 나온 액션 영화 ‘존 윅’을 연출한 스턴트맨 출신의 데이빗 리치가 감독했는데 두 영화가 서로 액션 장면이 닮았다. 
시대가 냉전시대여서 복고풍인데 특히 제임스 본드 영화의 분위기를 느끼게 한다. 본드가 영국 해외첩보부인 MI6 소속이듯 테론이 영화에서 소속된 기관도 MI6여서 더 그렇다. 차갑고 스타일 갖춘 여름철 무더위를 말끔히 씻어줄 오락영화다. 그래픽 노블 ‘더 콜디스트 시티’가 원작. 
1989년 베를린 장벽이 붕괴되기 직전. 영화는 처음에 얼굴과 온 몸에 타박상을 입은 영국 스파이 로레인 브러턴(테론)이 얼음으로 채워진 욕조에 몸을 담은 뒤 얼음이 든 보드카를 마시는 모습으로 시작된다. 그리고 막 베를린에서 돌아온 로레인이 MI6 본부에서 자기 상사(토비 존스)와 미 CIA고위 요원(존 굿맨)에게 베를린에서의 활동에 대한 보고를 하면서 장면이 과거로 돌아간다. 
로레인은 망명한 러시아 스파이(에디 마산)가 가로챈 영국과 미국 스파이들의 이름이 적힌 명단을 회수하기 위해 베를린에 온 것이다. 여기서 로레인을 돕는 사람이 베를린 주재 영국 스파이 데이빗 퍼시발(제임스 매카보이). 그런데 완전히 베를린의 지하세계와 펑크문화에 젖어든 데이빗은 로레인의 동료이면서도 그에게 거짓말을 한다. 
명단 회수 과정에서 로레인은 겹치는 배신 속에서 과연 누가 적이고 누가 동료인지를 몰라 혼란에 빠지는데 러시아 스파이뿐 아니라 독일과 프랑스 스파이도 로레인을 감시하고 추적한다. 그 중에서도 프랑스 스파이 델핀(소피아 부텔라)과 로레인과의 관계가 자극적인데 처음에는 서로 적으로 격투를 벌이던 둘이 급기야 침대에 들어 액션만큼이나 격렬한 정사를 치른다.
영화에서 가공할 정도로 멋있고 치열하고 흥분되는 장면은 로레인이 아파트 실내와 좁은 계단에서 여러 명의 남자들을 상대로 장시간 육박전을 벌이는 것. 주먹과 굽이 칼날 같이 뾰족한 구두와 온 몸을 사용해 계단을 내려오면서 서로 치고받는데 액션 영화사에 기록될만한 박력 있는 격투다. 이와 함께 로레인이 정원용 호스를 사용해 높은 아파트에서 지상으로 비상하는 장면도 아찔하게 멋있다. 액션을 찍은 촬영도 보기 좋다. R. ★★★½ (5개 만점) 
                                                              <한국일보 박흥진 편집위원/ hjpark1230@gmail.com>


브릭스비 곰(Brigsby Bear)


곰의 탈을 들고 영화 촬영을 준비하고 있는 제임스.

지하벙커서 자란 남자 세상에 나왔는데…


세속의 때에 오염된 우리 모두가 보고 내면을 정화시킬 어른들을 위한 동화다. 거의 선험적 경험을 겪게 만드는 아름답고 우습고 통찰력 있는 선한 영화다. 어렸을 때부터 외부와 차단된 지하벙커에서 자란 남자가 뒤늦게 자유를 맞아 사회에 자기 나름대로 적응하면서 아울러 주변 사람들을 순진무구한 영역으로 안내하는 얘기가 마음에 평화를 가져다준다.
제임스는 아기 때 한 부부(마크 해밀과 제인 애담스)에 의해 납치돼 지하벙커에서 자란다. 이들은 지상은 오염됐다며 제임스에게 외부 세상에 대한 공포를 주입시킨다. 제임스는 TV로 사람 크기의 장난감 곰 브릭스비가 쌍둥이 인간 자매와 함께 우주를 위험에서 구하는 싸구려 시리즈를 보면서 자라 이에 중독이 됐는데 이 프로는 자기를 납치한 남자가 만든 것.
제임스(카일 무니)가 어른이 된 뒤 경찰에 의해 구출이 되고 사건 전담형사 보겔(그렉 키니어)은 제임스와 친부모(맷 월시와 미카엘라 왓킨스)와의 재결합을 주선한다. 제임스의 새 사회에의 적응을 적극적으로 돕느라 노력하는 부모와 제임스를 마땅치 않게 여기는 것이 제임스의 고교생 여동생 오브리(라이안 심킨스). 
제임스의 새 세상에 대한 적응 노력과 오해와 실수와 좌절의 에피소드가 재미있다. 제임스는 아버지와 함께 영화 구경을 갔다가 누구라도 영화를 만들 수 있다는 아버지의 말에 힘을 얻어  자기도 브릭스비 곰을 주연으로 영화를 만들기로 한다. 이런 제임스를 돕는 사람이 오브리의 학교 친구 스펜서(호르헤 렌데버그 주니어). 
그리고 스펜서가 제임스가 소유한 ‘브릭스비 곰’ 에피소드를 유튜브에 올리면서 선풍적인 인기를 끈다. 이에 힘입어 제임스와 스펜서는 제임스를 납치했던 남자가 쓴 장난감 곰 옷과 소도구를 사용해 영화를 만든다. 제임스의 이런 천진난만한 의도에 점차 아버지와 어머니 그리고 오브리와 보겔까지 전염이 되면서 영화 제작이 순조롭게 진행된다. 물론 각본도 제임스가 썼다. 영화가 완성되고 시사회가 열린다.
세상의 때가 아직 하나도 안 묻은 아기의 마음을 지닌 가슴이 뭉클하도록 감동적인 영화로  이 풍진 세상을 분투하면서 사느라 오염된 마음을 돌아다보게 만든다. 제임스가 되고픈 마음이 든다. 무니의 티 없이 순진하고 순수한 연기가 보기 좋다. 
데이브 맥케리 감독. PG-13, ★★★★(5개 만점)
                                                                <한국일보 박흥진 편집위원/ hjpark1230@gmail.com>


할리웃 보울의 토니 베넷




사람이 90세까지 살기도 드문 일인데 9순에 무대에서 춤까지 추면서 노래를 부르는 것이야 말로 하늘의 복을 타고난 일이다. 오는 8월 3일로 91세가 되는 ‘샌프랜시스코에 마음을 두고온 남자’ 토니 베넷의 할리웃 보울 공연은 그의 히트송 ‘이츠 어 굿 라이프’처럼 베넷의 보통 사람과 가수로서의 길고 좋은 인생을 팬들과 함께 자축하는 파티와도 같았다.
지난 달 14일 저녁 이제 보면 마지막 보는 것이 되리라는 다소 쓸쓸한 마음을 안고 보울에서 노래하는 베넷의 노래를 들으러 갔다. 그러나 나의 이런 운명론적인 생각은 생기발랄하고 원기왕성한 베넷이 1시간여를 쉬지 않고 불러대는 노래들로 인해 생명예찬으로 돌아섰다.
이날 공연은 구스타보 두다멜이 지휘하는 LA필(사진)의 반주라는 이색적인 형식으로 이뤄졌다. 제1부는 LA필의 베르디의 오페라 ‘운명의 힘’과 ‘나부코’ 서곡과 헨리 맨시니가 작곡한 영화 ‘샤레이드’와 ‘문 리버’의 음악연주로 진행됐다.
제2부가 시작되면서 베넷이 종종걸음으로 무대에 나오자 팬들이 뜨거운 박수와 함성으로 그를 맞았다. 나도 신나게 박수를 쳤다. 재즈와 팝가수인 베넷은 특유의 약간 갈라지는 듯한 쇳소리로 ‘스테핑 아웃 위드 마이 베이비’ ‘포 원스 인 마이 라이프’ ‘후 캔 아이 턴 투’ 등 스탠다드 20여곡을 불렀다. 어딘가 약간 답답한 듯한 허스키한 목소리가 매력적이다.
베넷이 까칠까칠한 비단결을 지닌 음성으로 부르는 노래들은 클럽에서 스카치를 마시면서 들으면 딱 좋을 노래들로 나는 특히 베넷이 요절한 컨트리 싱어 행크 윌리엄스의 히트송을 편곡해 부른 ‘콜드, 콜드 하트’를 좋아한다.
베넷은 꼿꼿이 서서 왼 손에 마이크를 잡고 미소를 지으면서 ‘저스트 인 타임’ ‘아우어 러브 이즈 히어 투 스테이’ ‘더 웨이 유 루크 투나잇’ 등을 쉬지 않고 노래했는데 반주는 주로 그와 오랫동안 함께 호흡을 맞추어온 4인조 밴드가 했다. LA필은 베넷의 노래를 몇 곡 반주했지만 들러리 같은 역할이었다.
베넷의 음성은 재즈가수답게 달콤하면서도 로맨틱하지만 강한 고음에 오를 때면 오페라 가수 못지않게 강렬한데 특히 그는 노래 마지막에 이 강한 고음을 자주 사용한다. 깜짝 놀랄 정도로 강렬하다.
베넷은 절제되고 깨끗한 제스처를 쓰면서 군더더기 없이 노래를 불렀는데 그의 히트송들인 ‘랙스 투 리치즈’ ‘불러바드 오브 브로큰 드림즈’ ‘아이 갓 리듬’ ‘셰도우 오브 유어 스마일’ ‘디스 이즈 올 아이 애스크’ 등을 듣고 있자니 ‘올디즈 벗 구디즈’의 기분에 젖어 갖고 간 레드와인을 거푸 마셨다. 그의 노래하는 모습은 우아하고 세련됐는데 생의 기쁨으로 가득한 사람처럼 보였다.
노래도 청중보다 자기가 더 즐기는 듯했다. 춤까지 추어가면서 아이처럼 신이 나서 노래를 불렀는데 끝나는가하면 “즐기고들 있나요” “가기 전에 한 곡 더 들을래요”라면서 또 노래를 불렀다. 무대에 불이 켜져 이제 끝나나 했더니 베넷은 “계속하자”면서 다시 노래, 청중의 커튼콜에 답례했다. 베넷의 간판곡은 ‘아이 레프트 마이 하트 인 샌프랜시스코’. 공연 말미에 노래했는데 이날 ‘랙스 투 리치즈‘ 등 일부 노래는 짧게 줄여 메들리 식으로 불렀다.
베넷의 첫 히트곡은 그가 1951년에 음반으로 취입한 ‘비커즈 오브 유’. 그 뒤로 지금까지 무려 66년간을 쉬지 않고 노래를 부르고 있다. 그의 큰 업적은 음반을 통해 거쉬인과 어빙 벌린 및 줄 스타인 등 미국 작곡가들의 미국 정통노래들을 젊은 세대들의 취향에 맞도록 편곡해 알려준 것. 지금까지 팔린 음반은 수천만 장이며 그래미상을 무려 19개나 받았다.
이탈리아계로 뉴욕 퀸즈의 아스토리아에서 태어난 베넷은 어렸을 때부터 노래와 그림에 재능을 보였는데 젊었을 때 노래하는 웨이터로도 일했다. 그림 솜씨가 프로급이어서 그의 그림이 스미소니언 박물관에 소장됐을 정도다. 베넷은 2차대전시 벌지전투에서 싸운 베테런이며 마틴 루터 킹과 함께 셀마에서 민권운동 행진을 한 인본주의자다. 이 행진에 베넷과 함께 참가한 사람이 유명 흑인 가수이자 배우인 해리 벨라폰테로 벨라폰테도 올 해 90세가 되었다.
베넷은 본명은 앤소니 도미닉 베네데토. 그가 제대 후 뉴욕에서 뮤지컬 배우로 일 할 때 그의 노래를 듣고 반한 밥 호프가 무대 뒤로 베넷을 찾아와 LA로 가 함께 일하자고 제안하면서 이름을 토니 베넷으로 고쳐주었다.
베넷은 인본주의자로서의 업적으로 인해 UN으로 부터 ‘세계의 시민 상’을 받았고 최근에는 라이브라리 오브 콩그레스에 의해 ‘거쉬인 프라이즈 포 포퓰라 송’ 수상자로 선정됐다. 다른 작곡가들의 노래를 해석해 부른 가수가 이 상을 받기는 베넷이 처음이다. 베넷은 최근 한 인터뷰에서 “나는 결코 멈추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이어 “나는 사람들을 사랑한다. 나는 그들의 기분을 좋게 해주기를 사랑한다. 그래서 나는 결코 은퇴를 안 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롱 리브 토니 앤 시 유 어겐!  
                                             <한국일보 박흥진 편집위원/ hjpark1230@gmail.com>

2017년 7월 24일 월요일

던커크(Dunkirk)


프랑스의 해변도시 던커크에서 철수하는 영국군들이 공습하는 독일 폭격기를 겁에 질려 올려다 보고 있다.

영국군 38만명 스릴넘치는 철수작전‘스펙터클 대작’


처칠 영국수상이 “패배 속의 승리”라고 불렀던 2차 대전 초기 프랑스 해변 휴양도시 던커크로부터의 38만3,000여명의 영국군과 연합군의 해상 철수를 재현한 서스펜스 가득한 탁월한 전쟁 액션 스릴러다. 영국의 크리스토퍼 놀란(‘배트맨’ ‘인셉션’)이 감독했는데 장인의 솜씨가 역력한 매우 혁신적인 구조를 지닌 획기적인 작품이다.   
얘기를 질서정연하게 플롯을 이어가면서 서술하는 대신 영상과 음악(한스 지머의 시종일관 밀어붙이고 몰아대는 불길하게 아름다운 음악이 인상적이다) 그리고 음향으로 서술하는데 대사도 별로 많지 않다.   
유명 스타들과 신인 배우들이 함께 나오는데 그 어느 특정한 인물에 초점을 맞추지 않고 골고루 분산시켜 작품의 이곳 저곳에 배치시켰다. 또 가급적으로 군더더기를 뺀 서술 방식과 함께 시간을 겹치거나 근접한 현재와 미래를 오락가락 하면서 정확하고 정교하게 구성했다. 
2차 대전 초기인 1940년 봄 독일군에 쫓긴 영국군과 프랑스 등 연합군 38만 여명은 던커크 해변에서 자기들을 영국으로 수송할 배를 기다린다. 이야기는 육·해·공으로 나누어 보여준다. 
육지의 이야기는 영국군 졸병(피온 와이트헤드)의 눈으로, 바다의 이야기는 영국을 떠나 작은 목재 요트 ‘문스톤’호에 두 10대 소년을 태우고 영국군을 철수시키기 위해 영국해협을 건너는 민간인 도슨(마크 라일란스)의 눈으로, 그리고 하늘의 이야기는 영국 전투기 스핏화이어를 몰고 독일 전투기와 공중전을 벌이는 파일롯(탐 하디-영화 맨 끝에 이르기 까지 얼굴을 가렸다)의 눈으로 서술된다. 
육지의 이야기는 1주일, 바다의 이야기는 하루 그리고 공중의 이야기는 1시간에 서술되는 아주 독특한 작품 구성과 서술 방식을 사용하고 있다. 하디와 라일란스 외에 알려진 스타는 해안에서 철수작전을 지켜보는 해군 사령관 역의 케네스 브라나 정도다. 이와 함께 작중 인물들의 배경 설명도 전무하다. 또 2차대전 영화인데도 나치라는 말이 없고 독일군도 맨 끝에 잠깐 배경으로 희미하게 나온다.
이 영화는 일종의 생존기로 아이맥스로 찍은 뛰어난 촬영이 현실감과 현장감을 최대한으로 살려 영화 속의 공포와 혼란과 액션 그리고 전쟁의 아비규환에 빨려들어 가는듯한 사실감에 오금이 저리고 온 몸이 경색되는 경험을 하게 된다. 
백사장과 선착장에 이르는 다리 위에 빼곡히 줄을 지어 서 있는 군인들을 독일 폭격기가 공격할 때면 마치 직접 공습을 당하는 공포를 느끼게 되고 독일군의 어뢰공격을 받아 침몰하는  영국군함 속의 군인들이 수중에서 살아나려고 허우적거리는 부분에서는 산소 부족으로 호흡이 가빠진다. 이와 함께 스핏화이어의 조종석을 비롯해 폐쇄된 공간을 십분 사용해 협소감에 심신이 심한 압박감을 느끼게 된다.    
이 영화는 또 패배에도 굴하지 않는 영국국민의 끈질긴 국민성을 보여준 작품으로 당시 ‘문스톤’과 같은 수많은 일반 선박들이 영국해협을 거쳐 던커크에 도착해 병력을 철수시켰다. 블록버스터가 판을 치는 여름에 젊은 미국인들에게 잘 알려지지 않은 이 영화가 과연 흥행에 성공할 것인지 궁금하다. 스필버그의 ‘일등병 라이언 구출작전’과 함께 전쟁영화사에 길이 남을 작품이다. PG-13.★★★★ (5개 만점)   
                                                              <한국일보 박흥진 편집위원/ hjpark1230@gmail.com>



산파(The Midwife)


성격이 판이한 베아트리스(왼쪽)와 클레어는 서로의 삶에 큰 영향을 준다.


성격 상반 두 여인의 조우… 연기파 ‘카트린 드뇌브 vs 카트린 프로’ 대결 


성격이 판이한 두 여자가 만나 처음에는 갈등을 빚다가 관계의 시간이 흐르면서 서서히 떨어질 수 없도록 가까워지고 아울러 상대의 삶에 지대한 영향을 미치는 과정을 사실적이요 감수성 짙게 그린 프랑스 드라마다. 
프랑스의 베테런 연기파들인 카트린 드뇌브와 카트린 프로가 공연하는 총명하고 균형을 잘 맞춘 약간 코믹한 기운이 있는 성격 드라마로 소위 ‘여성 영화’다. 드뇌브와 프로의 불꽃 튀는 연기 대결이 볼 만한데 제목은 프로가 맡은 역의 직업을 말한다. 
그러나 이 영화는 소심한 프로 보다는 요란할 정도로 자유분방한 드뇌브의 것이라고 해도 좋다. 영화의 내용을 완전히 파악하고 분위기에 젖어 들려면 시간이 다소 필요하지만 천천히 감동을 주는 훌륭한 드라마다.
산파 클레어(프로)가 병원에서 출산을 돕는 장면으로 시작된다. 50대의 홀어머니로 장성한 외아들 시몽(캉탕 돌메어)이 있는 클레어는 고지식하고 심각하며 은둔자처럼 사는 여자. 
어느 날 느닷없이 클레어에게 그의 아버지의 옛날 정부인 베아트리스(드뇌브)로부터 전화가 걸려온다. 클레어의 아버지의 소식을 알고프니 만나자는 것이다. 그래서 클레어와 베아트리스는 수십 년 만에 카페에서 재회한다. 
70대의 베아트리스는 클레어와 정 반대의 성격과 행동양식을 지닌 여자로 풀어헤친 삶을 자유롭게 사는데 나타났다 하면 자기 존재를 과시해야한다. 이는 자신의 보잘 것 없는 출신 배경을 감추고자 하는 제스처다. 클레어는 베아트리스에게 아버지가 죽었다고 통보하는데 아버지는 베아트리스가 자기를 버리자 자살했고 이로 인해 클레어의 삶도 큰 상처를 입었다.   
베아트리스는 클레어에게 자기가 뇌암에 걸려 얼마 살지를 못한다고 말한다. 그리고 둘이 관계를 이어가면서 서로가 상대의 성격에 영향을 받아 삶이 크게 변화한다. 이로 인해 클레어는 교외에 따로 둔 오두막집 옆의 사람 좋은 트럭운전사 폴(올리비에 구르메)과 데이트까지 한다.
두 여인의 관계 묘사가 가슴에 와 닿도록 정감이 있는데 서로 상대방으로 인해 변화해가는 과정이 두 배우의 자연스런 연기에 의해 사실적으로 그려져 보기 좋다. 끝이 가슴이 싸하니 아파오면서도 폴의 말처럼 “인생은 아름다운 것”이라고 느껴진다. 
마르탱 프로보스트 감독. ★★★½(5개 만점)
                                                              <한국일보 박흥진 편집위원/ hjpark1230@gmail.com>


2017년 7월 17일 월요일

원숭이 혹성의 전쟁(War for the Planet of Apes)


평화를 사랑하는 시저는 가족과 동료들을 구하기 위해 전쟁에 나선다.

원숭이와 인간의 대규모 전면전 액션과 스릴‘여름 블록버스터’


원숭이와 고릴라와 성성이 등 온갖 유인원들이 나와 인간과 싸운다고 난리법석을 떠는 원숭이 영화인데 재미있고 지적이고 감동적이기까지 하다. 
이런 놀라움은 물론 기막히게 효과적인 특수효과 탓이 크지만 호전적인 인간과 평화를 추구하는 원숭이간의 대결이라는 내용에서 배울 점도 있다. 특히 트럼프가 보고 배워야 하겠다.
액션과 스릴이 시종일관 보는 사람을 흥분시키는 영화로 특히 인간보다 나은 원숭이들의 관대함과 사랑과 연민 그리고 통찰력 및 코믹한 행동이 여름철 블록버스터 영화를 휴먼 터치(몽키 터치라고 해야겠지만)로 감싸주고 있다. 
이 영화의 원전은 지난 1968년에 나온 찰턴 헤스턴 주연의 ‘혹성 탈출’이다. 그 것을 지난 2011년에 새로 만들었고 이 영화가 히트하면서 속편이 나온 뒤 이번 것은 두 번째 속편이다.
지난 영화의 내용은 다음과 같다. 북가주의 원숭이 실험실에서 생산한 바이러스로 인간 못지않게 똑똑한 원숭이들이 만들어진다. 이 바이러스로 인간은 떼죽음을 당한다. 그리고 원숭이들은 실험실을 탈출해 숲속으로 도주한다. 
그 후 10년. 숲 속에 자기들 나라를 구축한 원숭이들과 살아남은 인간들 간에 긴장이 팽배하면서 양자 간에 전면전이 일어난다. 전편의 영화와 이번 영화의 주인공은 원숭이들의 리더로 총명하고 현명하며 평화를 사랑하는 시저(앤디 서키스의 몸과 눈의 움직임을 포착한 모션-캡처 기술로 보여주는 시저의 행동과 희로애락의 감정이 가득한 눈 표정이 절묘하다.)
영화는 새디스틱하고 호전적인 대령(우디 해럴슨)이 파견한 군대가 시저의 영역을 침공해 전투가 벌어지면서 시작된다. 그리고 시저는 평화의 제스처로 인간 포로들을 돌려보낸다. 그러나 대령은 이번에는 자기가 직접 전투에 참가해 원숭이들의 영역을 침공하면서 원숭이들은 피난을 떠난다. 
시저는 가족이 대령의 포로가 되면서 마침내 응전을 결심하고 동지들을 이끌고 대령의 본거지로 향한다. 일종의 원숭이들의 로드 무비인데 이 과정에서 갖가지 액션과 우스운 일들이 일어난다. 일행은 가다가 혼자 남은 소녀 노바(아미아 빌러)를 입양해 알뜰히 돌본다.
원숭이들 중에서 재미있는 것은 인간이 ‘배드 에이프’라고 명명한 나이 먹은 떠돌이 원숭이(스티브 잰). ‘배드 에이프’는 때로 살벌하고 폭력적인 영화에 코믹한 쉼표 구실을 한다. 
또 다른 것은 동정심 많고 상냥한 붉은 털의 성성이 모리스(캐린 코노발). 우스우면서도 인자해 보기에 좋다.
원숭이들의 감금과 그들에 대한 가혹 행위 그리고 탈출과 음모와 배신이 이어지면서 마침내 원숭이들과 인간의 치열한 전쟁이 일어난다. 
특수효과로 만들어진 원숭이들의 수화와 동작으로 표현되는 대화 그리고 이들의 몸짓과 움직임과 표정이 경이롭다. 이 영화는 성공한 ‘몽키 비즈니스’다. 맷 리브스 감독. ★★★½ (5개 만점) 
                                                               <한국일보 박흥진 편집위원/ hjpark1230@gmail.com>



레이디 맥베스(Lady Macbeth)


욕정에 불타는 캐서린은 방해되는 자들을 하나씩 제거한다.

욕정 사로잡힌 새색시 연쇄살인 음울하게 그려


처녀가 한을 품으면 오뉴월에도 서리가 내린다더니 성적으로 좌절감에 빠진 젊은 새색시가 한을 품으니 여러 사람 저승길로 간다. 러시아 소설 ‘므첸스크 디스트릭의 레이디 맥베스’가 원작으로 이 소설 내용을 쇼스타코비치가 오페라로 만들었다가 스탈린에게 퇴폐적 작품이라는 낙인이 찍혀 음악가로서의 생애는 물론이요 목숨마저 위험에 빠졌던 일화가 유명하다.
섹스와 살인과 음모 그리고 권위에의 저항이 있는 어둡고 정열적이요 음울하면서도 안으로 끓어오르는 멜로드라마로 연기와 촬영과 의상이 모두 훌륭한 재미 만점의 작품이다. 특히 질식할 것 같은 부부 생활에서 탈주한 여자의 이야기여서 ‘보바리 부인’과 ‘안나 카레니나’ 및 ‘차털레이 부인의 연인’을 생각나게 한다. 또 바람이 휩쓸고 지나간 황량한 영국의 멀리 떨어진 시골 정경이 ‘폭풍의 언덕’을 연상케 한다.
1865년. 영국 북부 노덤버랜드의 황량한 시골의 외딴 대저택에서 사는 40세의 알렉산더(폴 힐튼)는 방년 17세의 캐서린(플로렌스 퓨)을 아내로 맞는다. 알렉산더와 그의 아버지 보리스(크리스토퍼 페어뱅크)는 부유한 광산주로 2세를 보기 위해 플로렌스의 아버지로부터 딸을 땅과 함께 매입했다.
차갑고 기분 나쁜 분위기를 풍기는 폭군적인 알렉산더는 신혼 초야의 행위를 거부한다. 그리고 아내에게 외출을 금지시킨다. 보리스도 며느리에게 적대적이다. 캐서린은 하녀 안나(네이오미 액키)와 몇 명의 하인들이 지키는 저택의 수인이나 마찬가지다. 한창 피가 끓어오르는 나이의 캐서린은 푸른 드레스를 입은 채 창가에서 밖을 내다보면서 자유를 탐낸다.
광산에서 폭발사고나 나면서 알렉산더가 현지로 가고 보리스도 업무 차 런던에 간다. 둘이 없는 동안 캐서린은 외출해 거친 자연을 즐긴다. 그리고 마구간에 들렀다가 젊고 신체 건강하고 도전적인 막일꾼 세바스티안(코스모 자비스)을 만나 둘은 눈이 맞는다.
캐서린과 세바스티안은 주위에 아랑곳 않고 침실과 마구간을 가리지 않고 욕정을 불사르는데 결국 둘의 통정을 안나를 비롯해 알렉산더와 보리스 등 모두가 알게 된다. 이에 가혹한 응징 행위가 가해지면서 안나는 자기가 계획한 음모에 마다하는 세바스티안을 끌어들여 살인을 한다. 이 살인은 연쇄 살인으로 번진다.
계급과 인종문제도 다른 작품으로 아이로니컬하고 애매모호하게 끝이 나는데 퓨(21)가 도도하고 당찬 연기를 알차게 한다. 대성할 배우다. 윌리엄 올드로이드 감독. ★★★½(5개 만점)
                                                                 <한국일보 박흥진 편집위원/ hjpark1230@gmail.com>


할리웃의 아시안


CBS-TV의 인기 수사시리즈 ‘하와이 화이브-0’에 수사관으로 나오는 한국계 배우 대니얼 대 김과 그레이스 박(사진 왼쪽서 두 번째와 첫 번째)이 출연료 문제로 8회째 시즌 촬영에 앞서 도중하차를 발표, 다시 한 번 할리웃의 아시안 배우들에 대한 차별론이 대두되고 있다.
두 사람은 4명의 수사관 중의 일원으로 중요한 역임에도 불구하고 다른 2명의 백인 수사관 역의 알렉스 오러플린과 스캇 칸(배우 제임스 칸의 아들-사진 오른쪽서 첫 번째)보다 출연료가 적다는 이유로 시리즈를 떠나기로 결정했다. 대니얼과 그레이스의 8회째 시즌부터 인상된 출연료는 에피소드 당 각기 19만5,000달러로 이는 알렉스와 스캇의 출연료보다 5,000달러가 적은 것으로 알려졌다.
할리웃이 소수계인 아시안을 서자 취급하는 것은 어제 오늘의 일이 아니다. 그 중에서도 가장 치욕적으로 아시안을 묘사한 것은 오드리 헵번이 나온 ‘티파니에서 아침을’이다. 여기서 미키 루니가 뻐드렁니를 한 일본인으로 나와 어릿광대 같은 행동을 하는 것을 보면 같은 아시안으로서 분기가 탱천한다.
물론 시간이 지나면서 할리웃의 아시안 배우들에 대한 처우는 어느 정도 개선된 것은 사실이다. ABC-TV의 아시안 아메리칸 가족에 관한 인기 코미디 시리즈 ‘프레시 오프 더 보트’의 대만인 가장으로 한국계 코미디언 랜달 박이 나오고 AMC 채널의 인기 산송장 시리즈 ‘워킹 데드’의 고정 출연 배우 중 하나로 스티븐 연이 나온 것이 그 실례다. 그러나 아직도 할리웃의 아시안 배우들은 고작해야 단역이나 배경 인물로 나오는 경우가 허다하다.  
할리웃에서 활동한 한국계 배우의 원조는 도산의 아들 필립 안. 그는 많은 영화에 나왔지만 역시 모두 단역들. 얼마 전에 다시 본 윌리엄 홀든과 제니퍼 존스가 나온 로맨스 영화 ‘모정’에서도 필립은 단역으로 거의 대사가 없는 제니퍼의 외삼촌으로 나온다. 그나마 할리웃은 필립 안의 업적을 기려 할리웃 명성의 거리에 그의 이름을 새겼는데 이 것은 코리안 커뮤니티의 적극적인 로비의 결과다.
할리웃의 궁극적 목표는 흥행 성공이다. 따라서 할리웃이 아시안 배우를 괄시하는 것은 인종차별에서 라기 보다 흥행성 때문이라고 봐야 옳다. 그래서 올 해 나온 일본만화가 원작인 ‘고스트 인 더 쉘’의 주인공으로 스칼렛 조핸슨을 썼고 작년에 나온 ‘닥터 스트레인지’에서도 아시안 남자 도사 역에 틸다 스윈턴을 썼다가 논란거리가 됐었다. 또 올 해 나온 꼴불견 ‘만리장성’의 주연도 맷 데이먼이다.
그나마 할리웃이 요즘 신주단지 모시 듯 하는 아시안이 중국인이다. 이는 중국이 전 세계에서 두 번째로 큰 할리웃의 시장인데다 막대한 중국자본을 끌어들이기 위한 상술의 하나다. 요즘 할리웃 스튜디오들의 영화를 보면 내용과 별 관계도 없이 중국 배우들이 나오고 또 중국에 관한 에피소드를 삽입한 경우를 자주 보게 된다. 그러나 한 중국 배우의 말처럼 그 역이란 것이 말 한 마디 정도 하는 배경 인물인 ‘화병’에 지나지 않는 것이 사실이다.
백인이 지배하는 할리웃이 괄시하는 것은 비단 아시안 뿐만이 아니다. 비 백인이 다 찬밥 신세다. 그래서 아카데미도 최근 ‘오스카는 온통 백색이다’라는 힐난을 받고나서야 부랴부랴 외국의 영화인들과 미국 내 소수계와 여성 영화인들을 회원으로 영입하고 있다. 이로써 봉준호, 김기덕, 이병헌, 송강호 등 여러 명의 한국인 영화인들이 오스카 회원이 됐다.
현재 할리웃에서 활동 중인 한국계 배우들로는 올해 오스카 회원으로 영입된 존 조와 성 강, 릭 윤, 스티븐 연, 대니얼 김, 랜달 박, 저스틴 전, C.S. 리 및 그레이스 박(캐나다) 등이 있다. 그러나 이들을 스크린에서 만나기란 쉽지가 않다.
내가 지금 보기를 기다리고 있는 영화가 ‘트와일라이트’ 시리즈에 단역으로 나온 저스틴 전이 감독하고 각본을 쓰고 주연도 한 ‘국’(Gook-8월18일 개봉)이다. 동양인을 비하하는 말인 ‘국’은 4.29 폭동 당시 가업인 사우스 LA의 구둣가게를 지키는 두 형제의 이야기로 올 선댄스영화제서 ‘넥스트 오디언스’상을 탔다. 그리고 ‘스타 트렉’시리즈로 잘 알려진 존 조가 주연하는 소품 인디드라마 ‘콜럼버스’(8월4일 개봉)도 기대가 크다.
나는 오래 전에 대니얼을 골든 글로브 파티에서 만났고 그 후 하와이에서 ‘하와이 화이브-0’를 찍고 있던 그와 전화 인터뷰를 했었다. 사람이 매우 겸손하고 소박해 금방 친근감이 갔다. 할리웃에서 인기 높은 작품 출연을 거부하는 것은 대단한 용기가 필요한 행위다. 끼리끼리 싸고도는 영화사와 TV사들이 소위 ‘말썽’ 피우는 배우들을 은연중에 보이콧하고 있는 것이 공개된 비밀이다. 대니얼과 그레이스의 출연 거부가 할리웃의 아시안 배우들에 대한 차별을 개선하는 계기가 되기를 바라면서 두 사람의 건투를 빈다.
                                                                  <한국일보 박흥진 편집위원/ hjpark1230@gmail.com>


2017년 7월 11일 화요일

스파이더-맨: 홈커밍(Spider-Man: Homecoming)

스파이더-맨은 동네 잡범부터 처리하면서 수퍼 히로 행세를 한다

틴에이저 스파이더-맨 성장통과 호쾌한 액션



21세 난 영국배우 탐 홀랜드가 15세난 고등학생 스파이더-맨(본명 피터 파커)으로 나오는 또 다시 새로 시작한 ‘스파이더-맨’ 영화로 경쾌하고 속도감 있으며 틴에이저처럼 원기왕성하다. 일종의 소년 성장기로 틴에이저 영화이지만 어른들도 즐겨 볼 수 있도록 요란하고 박력 있는 액션과 드라마를 잘 섞어 신선하고 말끔한 영화를 내 놓았다.
주인공 파커처럼 영화가 단정하고 순진하고 서민적이며 또 장난기가 짙은데 특수효과도 대단하고 무엇보다 홀랜드가 즐기면서 신나게 해대는 연기가 좋다. 빅히트할 것이며 이로써 앞으로 속편이 나올 것도 분명하다.
이 영화는 작년에 나온 ‘캡틴 아메리카: 시빌 워’에서 어벤저스 멤버들인 아이언 맨(본명 토니 스타크)과 캡틴 아메리카 등과 함께 맹활약하면서 소개된 스파이더-맨(역시 탐 홀랜드)을 본격적으로 주인공으로 사용한 얘기다.
퀸즈에서 아주머니 메이(마리사 토메이)와 함께 사는 파커는 학교에서 외톨이. 유일한 친구가  뚱보 네드(제이콥 배탈론). 그리고 파커는 동급생 흑인소녀 리즈(로라 해리어)를 사랑하나 수줍어 말을 못하고 속을 태운다.
파커는 스타크(로버트 다우니 주니어)가 돌보는 어벤저스의 견습생인데 ‘캡틴 아메리카: 시빌 워’에서 스파이더-맨으로 길길이 날뛰던 액션이 그리운데다 늘 선행을 하고 싶어 안달이 난 틴에이저다.
그래서 동네 잡범들부터 처리한다면서 스파이더-맨 옷을 입고 하늘을 훨훨 나르면서 자동차 절도범을 잡고 구멍가게 ATM 기계를 통째로 뜯어가는 도둑들을 때려잡는다. 그리고 길을 찾는 할머니에게 길을 안내해주고 스파이더-맨을 보고 넋을 잃은 시민들 앞에서 곡예 묘기를 보여주며 초능력을 마음껏 즐긴다. 그런데 문제는 이런 과정에서 엉뚱한 실수가 많아 사고를 저지르는데 그 때마다 이를 수습해주는 것이 아이언 맨 즉 스타크다.
파커가 수퍼 히어로 스파이더-맨의 옷을 안 입었을 때의 모습이 네드와의 우정과 학교생활 그리고 첫 사랑의 몸살 및 메이와의 관계를 통해 묘사되면서 액션과 조화를 이룬다.      
스파이더-맨의 적은 ‘캡틴 아메리카: 시빌 워’에서 파괴된 외계인들의 우주선과 온갖 무기의 잔해들을 고철로 처리하는 서민 에이드리안 투메스(마이클 키튼). 그런데 투메스가 시 정부로부터 해고를 당하면서 그는 힘과 돈 있는 기득권층에 반발해 외계인이 남긴 기계에서 캐낸 초능력을 이용해 닥치는 대로 악행을 저지르기 시작한다.
자기는 막강한 초능력을 발휘하는 쇠로 만든 독수리 옷을 입고 ‘벌처’가 돼 하늘을 날면서 온갖 범법을 저지르고 이와 함께 훔친 외계인의 기계를 이용해 가공할 파괴력을 지니 무기를 만들어 팔아먹는다.
액션 중의 장관은 뉴욕 앞 강을 운항하는 페리에서의 스파이더-맨과 ‘벌처’의 대결. 페리의 한 가운데가 갈라지면서 배가 두 쪽이 난 것을 스파이더-맨이 자신의 거미줄을 이용해 봉합시키려고 안간힘을 쓰는 장면이 대단하다. 그리고 마지막 화물항공기에서의 결전도 볼 만하다. 한 가지 엉뚱한 점은 리즈와 투메스와의 관계. 억지다. 존 와츠 감독. ★★★½ (5개 만점)
                                                               <한국일보 박흥진 편집위원/ hjpark1230@gmail.com>



파리에서 길 잃어(Lost in Paris)


돔(왼쪽)과 피오나가 합심해 찾아낸 마르타(중간)의 손을 꼭 잡고 있다.

“사라진 아주머니 찾아라”파리 돌아다니며 겪는 소동 훈훈한 코미디로


변덕스럽고 독창적이며 상냥하고 순진한 영화로 말보다 몸으로 보여주는 행동으로 웃기는 코미디다. 배우들의 얼빠진 모습과 그들이 저지르는 장난과 실수와 어처구니없는 짓의 타이밍이 절묘하니 완벽한 미니어처 코미디로 거의 초현실적 분위기가 난다. 
무성영화의 명 코미디언 채플린과 버스터 키튼의 영화와 프랑스의 코미디언 자크 타티의 영화를 연상케 하는데 센 강과 에펠탑이 있는 아름다운 파리에서 찍은 촬영이 곱다. 
이 영화는 벨기에 브러셀에서 활동하는 남녀 콤비 코미디언 피오나 고든과 도미니크 아벨이 제작·감독하고 각본을 쓰고 또 주연까지 했는데 보는 사람의 마음을 아늑하게 만들어주고 아울러 깨끗하게 비워주는 청량제와도 같으면서 정감 있게 우습다. 
갈비씨에 안경을 쓴 빙충맞은 모습의 캐나다의 사서 피오나(고든)가 자기가 어릴 때 파리로 이주한 아주머니 마르타(에마뉘엘 리바-‘아무르’로 오스카상 후보에 오른 프랑스 배우 리바는 지난 1월 89세로 별세)를 찾으러 파리로 간다. 88세인 마르타로 부터 자기가 혼자 있기가 힘들다고 적은 편지가 뒤늦게 온 것. 편지가 뒤늦게 온 것은 마르타가 편지를 길에 있는 쓰레기통에 넣기 때문이다.
캐나다 국기를 꽂은 배낭 하나 달랑 지고 파리에 온 피오나가 마르타의 아파트에 찾아 갔더니 마르타는 간 곳이 없다. 동네 카페에 가서 물어 봤더니 마르타가 죽었다는 것이다. 이를 못 믿는 피오나는 파리 시내를 방황하며 마르타를 찾아다니다가 센 강변에서 천막을 치고 노숙을 하는 천하태평의 껑충한 돔(아벨)을 만난다. 
그리고 둘이 함께 마르타를 찾아 파리 시내를 샅샅이 훑고 다니다가 에펠탑까지 올라가면서 가지각색 넌센스 코미디가 벌어지는데 피오나와 돔이 저지르는 실수와 엉뚱한 행동이 재미있고 우습다. 깔깔대고 웃기보다 부드러운 미소를 짓게 만드는 천진난만한 코미디다. 
그런데 마르타는 안 죽었다. 노망이 든 마르타와 마르타의 옛 남자 역의 피에르 리샤르가 공원 벤치에 앉아 서로 두 발로 추는 댄스(카메라가 발만 찍는다) 모습이 아주 정겹다. 피오나와 아벨의 연기와 코믹한 행동의 타이밍이 스위스 시계처럼 정확하고 절묘하고 리바의 연기도 소박하다. ★★★½(5개 만점)
                                                              <한국일보 박흥진 편집위원/ hjpark1230@gmail.com>


2017년 7월 3일 월요일

‘연인들’로 컴백 데브라 윙어




“소통부재 부부 그린 영화… 감독과 인연으로 출연”


대화 불능과 감정 소진에 시달리다 못해 서로 바람을 피우는 중년부부의 질식할 것 같은 일상을 코미디 분위기를 섞어 사실적으로 그린 드라마 ‘연인들’(The Lovers)에서 작가 애인을 둔 아내 메리로 나오는 데브라 윙어(61)와의 인터뷰가 최근 할리웃에 있는 할리웃 외신기자협회(HFPA) 사무실에서 있었다.
이 영화는 ‘사관과 신사’ 등 모두 3차례 오스카 주연상 후보에 올랐던 윙어가 5년 만에 스크린에 컴백한 소품으로 윙어는 강한 성격과 독립심으로 인해 할리웃의 ‘금기인물’이 되다시피 했었다. 
그러나 인터뷰에 임한 윙어는 아주 상냥하고 밝고 다정했다. 빛이 나도록 이름다웠는데 때로 크게 웃어가면서 약간 저음으로 질문에 차분하고 엄격하게 대답했다. 대답이 매우 철학적이다. 명랑한 모습 속에서도 특유의 강한 줏대를 느낄 수 있었다.

▲그 동안 공백이 길었는데 왜 이제야 스크린에 복귀했는가.
“인생의 모든 일이란 단지 하나로 설명할 수가 없다. 그 것은 많은 것들의 집합체이다. 내 자신의 내적 성장과 자녀 문제를 비롯해 마땅한 각본과 감독이 없었기 때문이다. 그러다 이 영화가 내게 바른 것이라고 깨닫고 나왔다. 배우로서 한 동안 내가 일을 안 하면 내 원동력을 잃는다는 공포에 시달리기도 했지만 시간이 지나서야 내가 스스로 자유롭다는 것을 깨달았다. 삶이란 그것을 밖이 아니라 안에서부터 관찰해야 그 뜻을 알 수가 있다.”

▲그래서 지금 편한가.
“이보다 더 좋았을 때가 없다.”

▲남녀 관계가 오래 갈 수 있는 비결은 무엇인가.
“그 대답은 나도 모른다. 지난 25년간 한 사람과 관계를 유지해온 내가 할 수 있는 대답은 그 질문을 계속 하라는 것이다. 사랑의 지속이란 순간순간에 달려 있다. 우린 과거를 후회하고 미래를 희망과 함께 기대하지만 그것은 결코 우리가 존재해야 하는 현재가 될 수 없다. 모든 것은 현재에 존재한다. 문제는 당신이 그 현재에 도착할 수 있느냐 없느냐에 달려 있다. 내 대답이 마치 리처드 기어(‘사관과 신사’에서 공연)와 달라이 라마가 나누는 대화처럼 너무 철학적인 것 같네.”

▲살면서 몇 번이나 사랑에 빠질 수 있다고 생각하는가.
“오랜 관계의 비결이란 한 사람에게 계속해 사랑에 빠지는 것이다. 난 매주 사랑에 빠진다. 나는 여자들과 남자들 그리고 아이들을 사랑한다. 아직 개에게 사랑에 빠져보진 않았으나 곧 그것도 사랑하게 되기를 바란다. 난 30대에는 사랑에 빠진다는 것을 육체적인 것으로 오해했었다. 그래서 이 사람 저 사람과 사랑을 했고 감정이 바뀔 때마다 사람도 바꿨다. 그러나 이젠 그런 관념이 바뀌었다. 사랑을 어떤 테두리 안에 넣지 않고 나니 더 사랑으로 가득 찬다. 그리고 관계도 보다 더 뜻 깊은 것이 되고 있다. 

▲영화는 메리와 남편 마이크의 앞날을 애매모호하게 보여 주는데.
“수수께끼 같다. 그러나 내가 영화에서 배운 것이 있다면 그것은 우리는 뒤로 돌아설 것이 아니라 앞으로 나아가야 한다는 것이다. 같은 사람이라도 과거와 다른 방법으로 관계를 시도해보는 것도 바람직한 일이다.”

▲당신은 비밀을 얼마나 잘 지킬 수 있는가
“남이 말하지 말라는 것은 그대로 잘 지킨다. 그리고 난 자신에게도 비밀을 잘 지키는데 그것은 일종의 자기 부정이다. 그러나 비밀과 사적인 문제와는 다르다. 난 사적인 것을 절대적으로 존중한다. 그러나 비밀이란 누군가에겐 위험한 것으로 난 그것이 두렵다. 비밀이란 보통 남을 해칠 수가 있다.”

▲메리와 마이크는 전연 소통을 안 하는데 당신은 남과 의사소통을 얼마나 잘 하는가.
“난 소통에 아주 능하다. 지나치다는 말을 들을 정도다. 그러나 난 진짜로 이해하려고 자꾸 묻는다. 난 세 아들의 어머니요 한 남자의 아내로서 남자들 틈에서 사는 여자로서 남자들인 그들의 의사를 명확히 알기 위해 끈질기게 묻는다. 지금은 보다 잘 듣는 사람이 되는 연습을 하고 있다.”

대화불통의 부부 메리(왼쪽)와 마이클은 각자 바람을 피운다.
▲에이전트와 팬과 스튜디오 간부들을 생각해야 하는 영화계에서 일하는 것이 가치가 있다고 여기는가.
“난 그 사람들을 염두에도 두고 있지 않다. 내가 내리는 결정에서 그들은 아무 구실도 못 한다. 배우로서의 내 기능과 그들은 아무 관계도 없다. 그래서 난 할리웃의 명성과 거리를 두고 살고 있다. 난 이 영화가 바로 내 영화라는 것을 알고 있다. 이 영화가 자랑스럽다. 이렇게 아름다운 작업을 한 것이 좋긴 하나 그것은 내 삶과는 무관한 것이다. 내가 젊었을 땐 영화와 연극 같은 것이 내 삶인 줄 알았으나 그로 인해 난 크게 상처를 입었다.”

▲왜 이 영화에 나왔는가.
“감독 아자젤 제이캅스 때문이다. 난 그의 영화 ‘테리’를 보고 큰 감동을 받아 그에게 팬레터를 보냈다. 그 후 우린 4-5년간 서로 서신과 각본을 교환했는데 그가 어느 날 자기가 쓴 이 영화의 각본을 보내오면서 주연할 뜻이 있느냐고 물어왔다. 그리고 마이크 역에 트레이시 레츠가 응했고 그 다음에는 모든 것이 마법처럼 이뤄졌다.”

▲이 영화는 유럽영화 같이 느껴지는데.
“그렇다. 나이 먹은 사람들의 사랑과 섹스 이야기는 미국보다 유럽이 더 잘 만들고 있는 것이 사실이다. 감독이 트뤼포 영화의 영향을 받은 것 같다. 전엔 캐사베티즈나 애쉬비 같은 일부 미국영화 감독들도 이런 영화를 잘 만들었으나 이젠 할리웃이 나이 40 넘은 사람들의 사랑 얘기를 기피하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당신을 스타로 만들어준 첫 영화 ‘어반 카우보이’와 ‘사관과 신사’를 생각하면 무엇이 떠오르는가.
“둘은 서로 매우 다른 경험이었다. ‘어반 카우보이’는 내가 스승으로 생각하는 제임스 브리지스가 감독한 것으로 고유한 미국의 한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그것은 시간을 초월한 것이다. 난 ‘연인들’을 찍을 때 제임스를 많이 생각했다. ‘사관과 신사’로 부터는 할리웃의 사업적인 면을 배웠다. 1982년 배급사인 패라마운트는 그 영화의 진가를 미처 몰라 개봉을 미루려고 했다가 각본가들의 파업설이 나돌면서 마케팅이나 선전도 제대로 안 하고 급히 개봉했다. 다행히 빅 히트를 했는데 난 그 영화를 만들 때 러브 스토리를 만들고 싶다고 생각했었다. ”

▲어디에 사는가.
“뉴욕주 북쪽의 목장에 산다. 소를 키우는 낙농업용 목장이다.”

▲학교에서 학생들을 지도한다는 말을 들었는데.
“지금은 안 하지만 연기 생활에서 쉬고 있을 때 하버드에서 문학을 가르쳤다. 항상 내가 가짜선생처럼 느껴졌지만 그것을 극복한 흥미 있는 경험이었다.”                  

▲베르나르도 베르톨루치가 감독한 ‘쉘터링 스카이’에 나왔을 때 그를 사랑했다는 말을 들었는데 사실인가.
“그렇다. 그 후로도 그를 만났는데 그는 늘 멋있는 양말을 신곤 했다.”
-이제 와서 ‘아반 카우보이’와 ‘사관과 신사’ 속의 데브라 윙거를 바라보면 어떤 느낌이 드는가.
“그들로 인해 데브라 윙거는 하나의 사물이 되었다. 내가 그 영화들과 무관하다는 말은 아니지만 그들은 내가 아니다. 난 상표나 상품의 이름과 동일한 인물이 아니다. 그래서 난 단순히 이름으로만 기억되지 않을 양질의 작품을 고르려고 조심하고 또 노력한다. 그러나 그것이 내 마음대로 되는 것만은 아니다. 가끔 내 옛 영화들을 보면서 극중의 나와 일체감을 느낄 때가 있긴 하지만 그것은 그저 내 한 부분에 지나지 않는다. 내가 가장 좋아하는 역은 ‘위험한 여자’에서 나쁜 일을 하는 마사다. 그리고 ‘마이크의 살인’의 베티도 내가 가깝게 느끼는 역이다.”    
                                                                 <한국일보 박흥진 편집위원/ hjpark1230@gmail.com>

‘옥자’(Okja)


옥자(왼쪽)와 미자가 돈독한 우정을 즐기고 있다.

수퍼돼지와 소녀의 우정, 탐욕세계의 잔인성 고발


옥자는 한국여인의 이름이 아니라 크기가 새끼 코끼리만하나 귀엽고 민감한 수퍼 돼지의 이름이다. 재주꾼 봉준호 감독의 온갖 장르를 뒤섞은 이 영화는 동화요 우화이자 대기업(자본주의)의 탐욕과 육식을 탐하는 인간의 동물에 대한 잔인성을 비판한 작품으로 봉 감독의 ‘스노피어서’에 이은 미국영화다. 스트리밍업체인 넷플릭스가 제작해 29일부터 볼 수 있다.
영화의 톤이 급변하고 얘기가 다소 무질서하나 상냥하고 인정이 있는 매력적인 영화다. 코미디와 공포영화 그리고 사회비평 드라마와 아동영화를 혼합한 영화로 봉 감독의 작가의식이 뚜렷이 엿보이는 독특하고 야심찬 작품이다.
뉴욕의 유전자 조작을 전문으로 하는 대기업체 미란도의 여사장 루시(틸다 스윈튼이 금발 가발에 이에 브레이스를 하고 액센트를 쓰면서 으스대는 연기를 재미있게 한다)가 수퍼 돼지새끼 생산에 성공했다고 발표한다. 루시에게는 라이벌인 쌍둥이 자매 린다(스윈튼)가 있어 회사를 놓고 패권을 겨룬다.
루시는 26마리의 돼지새끼들을 세계 각국에 보내 누가 가장 살찌고 맛 좋은 돼지를 빨리 키울 수 있는가를 알아보기로 결정한다. 그로부터 10년 후. 산골에서 할아버지(변희봉)와 단 둘이 사는 소녀 미자(안서현)와 미자가 정성들여 키운 수퍼 돼지 옥자(컴퓨터 특수효과로 제작된 옥자가 실감난다)가 아름다운 자연(강원도 정선에서 찍었다)을 배경으로 장난치는 장면이 묘사된다. 그 모습이 아이와 그의 애완동물이 장난하는 것처럼 정겹다.  
그런데 어느 날 갑자기 뉴욕에서 동물학자로 TV쇼 호스트인 자니(제이크 질렌할이 지나치게 과장된 연기를 한다)가 미자를 찾아와 옥자를 뉴욕으로 데리고 간다고 알려준다. 물론 옥자는 뉴욕에 가면 베이컨으로 가공될 운명이다. 옥자가 트럭에 실려 공항으로 가는 과정에서 제이(폴 데이노)가 리더인 동물해방전선 게릴라들이 트럭을 습격하면서 심한 폭력이 일어난다. 그리고 미자는 옥자를 구하려고 뉴욕으로 온다. 맨해탄에서 옥자와 미자가 참석한 중에 수퍼 돼지축제가 열리는데 이 행사를 제이 일행이 습격하면서 액션과 폭력이 재발한다.
그리고 미자는 도살장에 끌려간 옥자를 구출하기 위해 도살장에 잠입하는데 마치 나치의 유대인 수용소를 연상케 하는 도살장 장면이 끔찍하다. 끝이 평화롭고 곱다. 명 촬영감독 다리우스 콘지가 찍은 촬영이 알록달록하니 아름답고 안서현이 다부지고 야무지면서도 침착하게 연기를 잘 한다. 정재일의 음악도 좋다. IPIC(윌셔+웨스트우드), 모니카 필름센터(샌타모니카) 상영중, 뉴베벌리 시네마(7165 Beverly Blvd.) 7/2~8일 ★★★★(5개 만점)
                                                                  <한국일보 박흥진 편집위원/ hjpark1230@gmail.com>


‘베이비 드라이버’(Baby Driver)


늘 선글래스를 끼고 있는 베이비 드라이버는 록뮤직을 들으며 도주한다.

도주장면 일품인 강도단의 액션영화
록음악 배경 처리 한편의 뮤직비디오


보고 있으면 피가 끓는 흥분을 느끼게 만드는 초고속 스피드의 강도 액션영화로 록뮤직이 끊임없이 나오고 앳된 청춘 남녀의 고운 로맨스마저 있는 흥미진진한 하이스트(heist) 영화다. 살아서 길길이 날뛰는 사나운 만화영화 같기도 하고 뮤직 비디오 같기도 한데 특히 자동차 추격과 도주 장면이 일품이다. 아찔하다.
한 가지 결점은 후반부에 가서 극심한 유혈폭력이 일어나면서 영화가 만화처럼 처리된 것. 전반부는 코믹 액션 영화 같다가 후반부에 들어 믿을 수 없는 액션이 일어나면서 영화의 톤이 완전히 바뀌어 두 개의 다른 영화를 보는 것 같다. 
장소는 애틀랜타. 고아 베이비(앤셀 엘고트-‘폴트 인 아우어 스타즈’)는 강도전문 범죄를 계획하는 닥(케빈 스페이시)에 고용된 도주차 운전사. 베이비는 늘 선글래스를 끼고 있고 강도 후 도주하면서도 귀에 꽂은 헤드폰으로 록뮤직을 듣는다. 그가 듣는 록뮤직이 사운드 트랙으로 나오면서 액션에 걸맞는 반주를 한다. 
영화는 처음부터 강도와 속도감 있는 도주로 보는 사람의 혼을 빼앗는다. 베이비가 도주차 운전사 노릇을 하는 이유는 그가 닥에게 진 빚이 있어서다. 닥은 강도를 음모할 때마다 매번 범행을 저지를 사람을 바꾼다. 베이비만 상시 고용이다. 
그런데 베이비가 간이식당에 들렀다가 아름다운 웨이트리스 데보라(릴리 제임스)를 보고 첫 눈에 반하면서 마지막 강도를 끝으로 범죄에서 손을 털고 역시 자기를 좋아하는 데보라와 함께 깨끗한 삶을 살기로 결심한다. 그의 이런 은퇴계획은 물론 뜻대로 되지 않는다. 
닥은 은행 강도를 계획하고 이 범행에 성질이 불같은 버디(존 햄)와 그의 애인 달링(에이자 곤잘레스) 및 배츠(제이미 팍스)가 가담한다. 그런데 이 범행이 삐딱하게 나가면서 자동차 도주와 함께 파괴와 유혈폭력이 난무한다. 그리고 동지였던 베이비와 나머지 강도들이 서로 적이 되면서 베이비 뿐 아니라 데보라의 생명마저 위협을 받는다.
곱상하게 생긴 엘고트가 침착하게 도주 차량의 운전사 노릇을 잘 하면서 영화를 혼자 어깨에 짊어지다시피 하고 있다. 그와 제임스의 콤비도 곱고 나머지 배우들도 잘 한다. 도주 장면 중 경탄을 금치 못할 것은 강도들이 탄 빨간 소형 수바루가 양 옆에서 달리는 같은 모양과 색깔의 수바루와 함께 나란히 달리는 것. 헬기의 경찰이 구분을 못해 안달이 났다. 
영국인 에드가 라이트 감독. R. TriStar. ★★★★(5개 만점)
                                                                 <한국일보 박흥진 편집위원/ hjpark1230@gmail.com>


‘빅 식’(The Big Sick)


에밀리(왼쪽)와 쿠마일이 소파에 누워 다정한 때를 보내고 있다.

이민자의 문화충돌 따뜻하고 감동적으로 그린 수작


올 해 선댄스 영화제서 극찬을 받아 도대체 얼마나 잘 만들었기에 그런 평을 받았는지 궁금했는데 보고나니 진짜 잘 만들었다. 재치 있고 경쾌하고 사뿐하며 사실적이고 직선적이면서 가슴에 와 닿는 감동적인 로맨틱 코미디다. 
파키스탄 이민자로 스탠드업 코미디언인 쿠마일 난지아니의 실화. 그가 주연하고 그의 미국인 백인 부인인 에밀리 고든과 함께 각본을 썼다. 문화 충돌과 부모와의 갈등 그리고 에밀리의 건강이 엄청난 위기를 맞으면서도 이를 모두 극복하고 사랑으로 맺어지는 두 사람의 얘기가 흠 잡을 데 없이 잘 묘사됐다. 
두 사람이 겪는 위기를 조금 더 심각하게 그렸으면 하는 아쉬움이 있긴 하지만 상냥하고 기분 좋은 영화로 특히 에밀리의 부모로 나오는 레이 로마노와 할리 헌터의 연기가 출중하다. 자녀들의 타인종과의 결혼이 보통사가 된 이민자들인 한국인 부모들을 비롯해 모든 세대가 보면 남의 얘기 같지가 않을 것이다.
에밀리는 쿠마일을 스탠드업 코미디쇼에서 만나 둘은 금방 사랑에 빠진다. 문제는 쿠마일은 파키스탄 사람이요 에밀리(조이 카잔)는 백인 미국사람이라는 사실. 쿠마일은 아직 성공한 코미디언이 못 돼 우버 운전사로 밥벌이를 한다.
물론 쿠마일의 보수 전통적인 부모는 아들이 다른 직업을 선택하기를 원한다. 그리고 쿠마일에게 어서 장가가라면서 계속해 파키스탄 처녀들을 집으로 불러들여 선을 보게 한다. 그러나 쿠마일은 속으로 난 절대로 중매결혼을 안 한다고 작심한 청년이다.
쿠마일은 보수적인 부모 때문에 자기가 에밀리와 사귀고 있다는 사실을 숨긴다. 이런 사실을 알렸다간 가족에서 쫓겨나게 되기 때문이다. 그런데 에밀리가 원인 모를 중병에 걸리면서 그에 대한  대책과 충격으로 청년 쿠마일은 본격적인 어른 쿠마일로 성장하게 된다.
쿠마일이 병원에서 에밀리를 돌보면서 비로소 에밀리의 부모 테리(로마노)와 베스(헌터)를 만나게 되는데 두 사람은 물론 처음에 쿠마일을 냉랭하게 대한다. 그러나 에밀리가 혼수상태에 빠져 있는 동안 이들은 쿠마일이 자기들의 딸을 극진히 사랑하고 있다는 것을 깨닫고 얼어붙었던 마음이 녹는다. 그리고 성깔 있는 베스는 완전히 쿠마일의 편이 돼 반 무슬림 데모를 하는 사람들에게 고함을 지르면서 맞서기까지 한다.              
이제 쿠마일은 자기 부모에게 에밀리의 정체를 밝히고 한판 겨룰 만반의 준비를 한다. 물론 영화는 눈물이 찔끔 날 정도로 감정적이요 따스하게 해피엔딩! 쿠마일과 카잔(감독 엘리아 카잔의 손녀로 생김새와 연기가 다 귀엽다) 그리고 로마노와 헌터가 모두 연기를 기차게 자연스럽게 잘 하는데 특히 헌터가 앙칼지면서도 속으로는 인정 있는 어머니의 연기를 눈부시게 한다. 상감이다. 마이클 쇼월터 감독. ★★★★½ (5개 만점)      
                                                                <한국일보 박흥진 편집위원/ hjpark1230@gmail.com>


‘비가일드’ (The Beguiled)


교장 마사(왼쪽서 네번째) 일행이 북군 존을 대접하고 있다.

여자 기숙사에 온 북군 둘러싼 소동… 겉만 번지르르‘칸영화제 감독상 무색’


필자는 데이빗 린치 감독의 ‘와일드 앳 하트’에게 작품상을 준 칸영화제를 불신하는데 지난 5월 ‘비가일드’를 연출한 소피아 코폴라(프랜시스 코폴라의 딸)에게 감독상을 주는 것을 보고 한층 더 불신하게 됐다. 도대체 이런 폼만 재는 영화를 감독한 사람에게 상을 준 것이 불가사의할 뿐이다.
소피아는 사람도 침착하고 조용하며 연출도 착 가라앉다시피 차분한데 이 영화는 차분하다 못해 무기력할 정도다. 보는 사람 맥 빠지게 하는 영화로 스타일만 있지 나오는 인물들의 성격 개발이나 얘기가 다 턱 없이 모자라고 지지부진하다.
크림 빛 하얀 드레스를 입은 여자들이 학교 맨션 안을 오락가락하다 마는데 작품이 지닌 열정과 라이벌 의식과 질투와 배신과 적대감이 내 뿜어야 하는 열기가 하나도 안 느껴진다. 배우들의 연기도 마찬가지. 이 영화는 지난 1971년 단 시겔이 감독하고 클린트 이스트우드가 주연한 동명 영화의 리메이크다.  
우거진 나뭇잎 사이로 파고드는 햇빛을 찍은 첫 장면부터 촬영과 조명은 좋다. 따라서 외화내빈의 작품이다. 포성이 멀리서 끊임없이 울리면서  남북전쟁 중임을 알려준다. 미 남부 버지니아주의 여자전용 기숙사학교의 한 학생이 버섯을 따러 나갔다가 중상을 입은 북군 존 맥버니(칼린 패럴)를 발견, 학교로 데려간다.
학교에는 교장 마사(니콜 키드만)와 교사 에드위나(커스튼 던스트) 그리고 상급생 알리시아(엘리 패닝) 외에 4명의 여학생만 있다. 이런 여자들의 세계에 잘 생기고 신체 건강한 남자가 나타나면서 여자들 사이에 성적 욕망과 경쟁의식 그리고 질투와 적대감이 악성 전염병처럼 번진다. 존은 여자들의 이런 심중을 파악하고 자신의 매력을 사방팔방에 흩뿌리는데 그 중에서도 에드위나와 눈이 맞아 욕정을 불사른다. 그런데 과연 존은 에드위나를 사랑하는 것인가.
마지막은 여자들이 자신들의 죄(?)에 대한 ‘메아 쿨파’ 식으로 폭력적으로 끝이 나는데 무슨 해괴한 공포영화나 괴물영화를 보는 것 같다. 배우들 간의 교감도 매우 모자라는 성장이 제대로 안된 미숙한 작품이다. ★★½(5개 만점)
                                                                  <한국일보 박흥진 편집위원/ hjpark1230@gmail.com>

헛것 많이 보는 봉준호




봉준호감독(49)은 7년 전이나 지금이나 성실한 대학생 같은 모습과 자세가 마찬가지다. 7년 전에는 ‘마더’ 홍보 차 LA에 온 그를 만났고 최근에는 스트리밍업체 네트플릭스가 제작한 ‘옥자’를 위해 와 만났다. 전과 달라진 것이 있다면 콧수염을 한 것.
지난 5월 칸영화제서 경쟁부문에 올랐던 ‘옥자’는 강원도 산골 소녀 미자가 자기가 10년간 키운 수퍼 돼지 옥자가 미 대기업 식품업체 「미란도」에 의해 뉴욕으로 끌려가자 옥자를 찾아 미국에 오면서 일어나는 모험과 액션을 그렸다.
봉감독은 작품의 아이디어에 대해 지난 2010년 차를 몰고 시내를 지나가는데 갑자기 눈 앞에  높이 3^4층짜리의 순하고 내성적인 거대한 돼지가 나타나 방황하는 모습이 보인 뒤로 그 돼지의 앞날이 궁금해 영화를 만들게 됐다고 말했다. 봉감독은 “나는 이처럼 헛것을 많이 본다”며 웃었는데 이 헛것이란 예술가의 비전일 것이다.
‘스노피어서’로 국제적 감독이 된 봉감독은 ‘옥자’로 그 입지를 더욱 다지게 됐는데 이 영화는 칸영화제 상영 시 극장 상영이 아니라 온라인으로 공개되는 영화라는 점 때문에 큰 논란거리가 됐었다. 그래서 한국의 대형극장 체인들도 28일에 개봉된 ‘옥자’를 보이콧했다.
봉감독은 이에 대해 “극장 측 입장도 이해한다”면서 “그러나 온라인 개봉은 영화 관람의 새 형식으로 나는 이 것과 극장 관람이 평화공존 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그는 이어 “그러나 사실 이를 둘러싼 문제는 궁극적으로 영화업계의 것이지 창작자들의 문제는 아니다”고 덧 붙였다.    
봉감독은 네트플릭스가 자기 일에 일절 관여치 않아 자유롭게 작품을 만들 수 있었다면서 음악과 편집 등에서 한국인들을 기용한 것도 다 내 의도대로였다며 흐뭇한 표정을 지었다. 그는 최근 한국영화계에 대해 예산규모도 커지고 작업환경과 대우도 많이 개선됐다고 말하고 영화의 질적 개선도 낙관적으로 본다고 말했다.
이제는 세계적으로 인정받는 한국영화가 아직까지 단 한 번도 오스카상 후보에 오르지 못한 것에 대해 “‘마더’의 김혜자씨가 권위 있는 LA영화 비평가협회에 의해 주연상을 받았듯이 조만간 오스카상도 받게 될 것”이라고 내다봤다.
영화에 대한 열정이 가득해 보이는 봉감독은 ‘스노피어서’와 ‘옥자’를 만드느라 근 7년간 해외생활을 하다시피 했다면서 두 영화에 다 나온 틸다 스윈튼과는 친구 같은 사이라고. 스윈튼은 ‘옥자’ 구상 때부터 제작에 개입, 자신의 대사를 본인이 수정하기도 했다.
돼지 이름을 옥자로 지은 것에 대해서는 순 한국적인 것과 유전자를 조작해 수퍼돼지를 생산하는 대기업 「미란도」간의 동^서양 및 신^구식의 대조를 생각했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봉감독은 스릴러를 잘 만드나 장르감독이 아닌 오퇴르(작가주의 감독)다. 그가 비평가들의 호응을 받는 이유도 장르의 변형적 연출을 통해 오락성과 개인적 색채가 강한 예술성을 훌륭히 결합하기 때문이다. 봉감독은 장르를 따지기 전에 좋은 영화를 만드는 것을 원칙으로 여긴다.
봉감독은 이어 미자 역의 안서현은 ‘하녀’를 비롯해 꼬마 때부터 영화와 TV작품에 나온 베테런이라며 ‘옥자’의 캐스팅이 처음에 매우 힘들었으나 안서현을 고른 뒤로 잘 풀려나갔다고 안서현을 칭찬했다.
봉감독의 멘토는 김기영 감독과 쇼헤이 이마무라. 그리고 히치콕도 좋아한다. 그래서 ‘마더’의 어머니는 히치콕의 ‘사이코’의 어머니로부터 다소 영감을 받은 것이라고 알려줬다.
봉감독은 초등학생 때부터 방 안에 틀어박혀 주한미군 방송인 AFKN-TV에서 방영하는 영화를 보면서 영화인의 꿈을 키웠다. 이 때 본 영화 중 깊은 충격과 감동을 받은 영화는 프랑스의 앙리-조르지 클루조가 감독하고 이브 몽탕과 샤를르 바넬이 나온 서스펜스 가득한 ‘공포의 보수’. 그는 특히 바넬의 연기가 인상적이었다면서 “영화를 빼지 않고 끝까지 보기 위해 오줌을 참느라고 혼이 났었다”며 크게 웃었다.
그는 앞으로 송강호를 기용해 작은 영화를 만들 계획인데 한국영화건 미국영화건 간에 작은 영화를 만들고 싶다고 한다. 그러면서 “조금만 더 젊었으면 좋겠다”고 하기에 “내 앞에서 그런 말 하면 안 되지”라고 가볍게 야단을 쳤다. 봉감독은 제작자에 대한 예의로 많은 관객이 보는 영화를 만들고 싶지만 돈을 추구하거나 내용을 타협하진 않을 것이라고 말한다. 철저한 오퇴르다.
헤어지면서 샌디에고 인근에 사시는 한국영화계의 원로 정창화감독을 아느냐고 물었더니 “액션영화를 잘 만드신 감독인줄 알고 있다”면서 인사와 함께 안부를 물었다. 다음에 LA에 오면 함께 정감독을 방문하자고 제의했다. 봉감독과 나는 정답게 악수를 나눈 뒤 헤어졌는데 급히 다음 인터뷰 차 떠나는 그가 자랑스러웠다.                  
                                                               <한국일보 박흥진 편집위원/ hjpark1230@gmai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