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이야기

2014년 6월 24일 화요일

보그만 (Borgman)

외딴 집 문 두드리는 소리…“목욕 좀 합시다”


보그만이 리처드네 목욕탕에서 포도주와 음식을 먹으며 목욕하고 있다.

고약하고 사악하고 기분 나쁘고 삐딱하며 또 폭력적이요 잔인하며 황당무계할 정도로 허무한 새까만 코미디로 보는 사람의 마음을 매우 불안하게 만들어준다. 거의 초현실적 분위기마저 갖춘 시치미 뚝 떼고 사람 잡는 미스터리 심리 스릴러이자 코미디로 홀랜드 영화다.
일종의 부르주아의 무사안일에 대한 냉소적이요 가차 없는 비판이자 현대판 우화로 악의 본질을 탐구하고 있다. 
미gi엘 헤네케의 ‘퍼니 게임스’와 장 르놔르의 ‘익사에서 구해준 부뒤’의 내용과 분위기 그리고 모양을 연상시키는 작품으로 끝에 가서 다소 맥이 풀리지만 기차게 흡인력 강하고 독창적이다. 흥미진진한 영화로 인간의 사악이 저지르는 잔인무도한 행위에 몸서리를 치면서도 기가 차서 웃게 된다.
숲 속의 벙커에 사는 카밀 보그만(얀 비즈보트)이 자기를 수색하는 무장한 신부와 다른 두 남자로부터 도망가면서 역시 각기 땅굴 속에 사는 같은 패인 파스칼과 루드빅(이 영화의 감독 알렉스 반 바르머담)도 함께 달아난다.
꾀죄죄한 보그만은 이어 교외의 한적한 곳에 있는 상자 모양의 초현대적인 주택의 문을 두드린다. 그리고 TV 프로 제작자인 젊고 오만한 주인 리처드(예론 페르시발)에게 목욕 좀 하게 해 달라고 부탁한다. 이를 거절하는 리처드에게 보그만은 자기가 리처드의 아내를 안다고 엉뚱한 소리를 했다가 리처드에게 얻어맞아 나가떨어진다. 
리처드가 출근 후 양심에 가책을 받은 리처드의 아내 마리나(하데빅 미니스)가 보그만을 집안으로 받아들여 목욕하게 하고 먹을 것을 준 뒤 게스트 하우스에 묵게 한다. 물론 리처드는 이를 모른다. 
여기서부터 보그만의 인간 심리조작이 자행되면서 보그만은 마리나와 그의 어린 세 아이들 과 보모 그리고 궁극적으로는 리처드에 이르기까지 이 집안사람들의 마음을 점령하면서 서서히 집의 주인 행세를 하기 시작한다. 
여기에 파스칼과 루드빅도 동참하면서 홈리스들이 안방을 차지하고 드는데 완전히 보그만의 악마적 매력에 사로잡힌 마리나는 보그만이 떠나려고 하자 못 가게 말린다. 그리고 마리나는 보그만에게 자기 몸까지 주겠다고 옷을 벗어젖히나 간교한 보그만은 이를 거절한다.
마리나는 완전히 보그만의 꼭두각시가 되다시피 하는데 마리나와 함께 그의 천사처럼 생긴 막내딸 이졸데까지 보그만의 심리조작에 말려들어 보그만의 하수인이 된다. 그리고 악마의 제자가 된 둘은 보그만을 위해 자발적으로 끔찍한 일까지 수행한다.
재미있는 에피소드는 보그만 일당이 리처드의 정원을 새로 만들어주는 장면. 완전히 정원과 연못을 파 뒤집어놓는데 이들은 이를 위해 먼저 이 집의 정원 조경사 부부를 찾아가 눈 깜짝 하나 안 하고 둘을 해괴한 방법으로 살해한다. 이런 살인방법은 처음 본다.
마치 속편이라도 만들겠다는 듯이 끝나는데 상당히 다정한 가족나들이 영화처럼 마감한다. 볼만한 것은 얀 비즈보트의 간사한 연기. 치명적으로 매력적인 연기다. 이와 함께 생명이 있는 숲에 둘러싸인 마치 진공상태의 살균한 병실 분위기를 느끼게 하는 리처드의 집을 중심으로 주변 정경을 찍은 와이드 스크린 촬영도 훌륭하다. 성인용. 26일까지 뉴아트(310-473-8530)  ★★★½(5개 만점)
                                                             <한국일보 편집위원/hjpark1230@gmail.com>



마지막 문장 (The Last Sentence)

스웨덴의 저명한 언론인의 삶 그려


마야와 토르니(앞)가 사랑의 무드에 젖어있다.

2차 대전 직전과 나치의 유럽 점령 때에 이르기까지 히틀러와 나치에 대해 강력한 비판 칼럼을 쓴 스웨덴의 저명한 언론인 토르니 세거스텟의 개인적 삶과 언론인으로서의 삶을 그린 전기영화로 켄네 판트가 쓴 책이 원작.
스웨덴의 명장 얀 트뢸이 감독했는데 판트의 제의를 받고 영화를 만들었다. 흑백영화로 감정보다 지성에 어필할 영화로 토르니의 복잡한 여자관계에 상당한 무게를 두고 있는 데도 영화가 안팎으로 매우 냉정하다. 
토르니의 삶을 1933부터 그가 사망한 1945년까지 다루고 있다. 스웨덴 고텐부르크의 유력 일간지 편집국장인 토르니(덴마크 배우 예스퍼 크리스튼센-처음에 스웨덴 명우 막스 본 시도가 고려됐었다)는 나치가 집권하기 시작할 때부터 칼럼을 통해 히틀러를 맹렬히 공격한다. 신문사 사주는 토르니의 친구인 악셀(뵤른 그라나드).
노르웨이 태생의 자기 아내 푸스테(울라 스콕)보다 세 마리의 애견을 더 사랑하는 토르니의 정부는 악셀의 유대인 아내 마야(페르닐라 아우구스트)로 신문사의 실제 주인은 마야다. 토르니와 마야의 관계는 공공연한 비밀.
영화는 사랑 없는 결혼에 시달리는 푸스테와 토르니를 지극히 사랑하는 마야 및 검은 베일을 쓰고 나타나는 토르니가 어릴 때 사망한 어머니의 귀신 그리고 토르니의 여비서 에스트리드 앙커(비르테 헤리베르트손) 등 토르니와 여러 여자들과의 관계를 집중적으로 묘사하고 있다.
이런 토르니의 사생활과 함께 그의 히틀러에 대한 집요한 공격과 중립국의 입장에서 나치에게 밉보이지 않으려고 토르니에게 논조의 강도를 낮춰 줄 것을 설득하는 악셀과 외무장관 그리고 국왕과 토르니의 공적인 삶을 병행 묘사하고 있는데 그의 공적인 면보다 사적인 면이 더 중요하게 다뤄지고 있다.
그러나 토르니는 어떤 회유와 설득에도 굴복하지 않고 히틀러를 맹공하고 또 중립국으로서 히틀러를 수용한 정부에 대해서도 서슴없이 공격의 펜을 휘두른다. 독재와 정치적 압력 앞에서도 소신을 굽히지 않는 토르니의 용기가 가상한데 영화는 그의 이런 십자군적 행동과 함께 개인적 결함도 보여준다.
토르니는 굉장히 이기적이요 거의 괴물처럼 독선적인데 그가 이렇게 된 데는 종교학자로 실패한 자신에 대한 과대한 보상심리가 뒷받침한 것처럼 설명하고 있다. 매우 엄격하고 진도가 느린 역사적 드라마로 예스퍼 크리스텐센의 카리스마가 있는 연기 때문에 쉽지 않은 내용을 끝까지 따라가게 된다. 스웨덴의 베테런 배우 페르닐라 아우구스트도 훌륭하다. 볼만한 지식인용 영화다.
성인용. 일부극장.★★★(5개 만점)  <한국일보 편집위원/hjpark1230@gmail.com>


‘그들 일생일대의 경기’


브라질에서 열리고 있는 월드컵 열기가 화끈하게 달아오르고 있다. 스포츠는 궁극적으로 인간관계와 투쟁 그리고 영혼에 관한 얘기로 그것은 이런 극적 요소를 지니고 있어 영화의 좋은 소재가 되고 있다.
할리웃의 스포츠 영화는 당연히 미국인들의 기호에 맞춰 야구, 농구, 아메리칸 풋볼 등에 관한 것이 많다. 또 액션이 치열한 권투도 즐겨 선택되는 경기다. 이 밖에도 골프, 자동차와 자전거 경주, 스키, 승마 및 서핑마저 소재로 다뤄지고 있다.
그러나 여러 스포츠 중에서도 유독 서자 취급받는 것이 전 세계서 가장 인기 있는 스포츠인 축구로 이에 관한 할리웃 영화는 눈을 비비고 찾아보려야 볼 수가 없을 정도다. 황소 눈알의 코미디언 로드니 데인저필드가 소녀 사커(미국에서는 풋볼이 아니라 이렇게 부른다)팀 코치로 나온 ‘레이디 벅스’는 졸작. 키라 나이틀리가 스타가 되는데 디딤돌 역할을 한 ‘베컴처럼 차라’는 영미 합작이긴 하나 사실 영국 영화다.
이밖에 세인트루이스의 이탈리안 아메리칸 선수들이 주축이 된 미 대표팀이 1950년 브라질 월드컵 경기에 출전, 선전한 언더독 실화 ‘그들 일생일대의 경기’가 있지만 이것 역시 타작이다.
거장 존 휴스턴이 감독하고 실베스터 스탤론이 주연한 ‘빅토리’는 펠레를 비롯한 왕년의 전 세계 A급 축구선수들이 나온 B급 정도의 영화다. 전쟁포로 얘기를 스포츠 시각에서 다룬 일종의 ‘축구전쟁’ 드라마다.
1943년 독일의 연합군 포로수용소 신임 소장(맥스 본 시도)은 왕년의 축구선수로 영국군 포로이자 역시 축구선수였던 존 콜비대위(마이클 케인)에게 축구경기를 제의한다. 이에 케인은 전 세계 전직 축구선수들로 팀을 구성, 독일 대표팀과의 일전을 준비한다. 한편 연합군 사령부는 이를 기회로 포로선수들의 탈출계획을 마련한다.    
파리의 콜롱브 경기장. 5만 관중이 운집한 가운데 적간의 올스타게임이 벌어지고 독일팀이 전반을 4대1로 리드한다. 해프타임을 이용해 탈출키로 했던 포로팀은 자유를 포기하고 후반전에 들어간다. 과연 누가 이기겠는가.
화면을 가득 채우는 빌 콘티(‘로키’의 음악)의 승천감 드는 음악을 깔고 슬로모션으로 보여주는 펠레의 마이너스킥 등 경기장면이 박력 있고 멋있다. 그러나 이 영화는 손에 땀을 쥐게 하는 마지막 20분간의 경기장면을 빼고는 명장 휴스턴의 영화치곤 시종일관 힘이 없고 내용도 엉성하다.
펠레 외에도 바비 모어(영국), 오스발도 아딜레스(아르헨티나), 파울 반 힘스트(벨기에) 등 일류 선수들이 나와 묘기를 선보인다. 그러나 스탤론이 아무리 수퍼스타라고는 하지만 축구 문외한이 짧은 연습 후 신기의 골키퍼로 맹활약하는 것은 믿지 못하겠다.
내가 경이의 눈으로 뜨거운 감동을 느끼며 본 축구영화는 미국 영화와 제목이 같은 기록영화 ‘그들 일생일대의 경기’(The Game of Their Livesㆍ2002ㆍ사진)다. 영국의 댄 고든이 감독한 영화는 1966년 영국에서 열린 월드컵 경기에서 북한의 천리마 축구팀이 이탈리아를 1대0으로 물리친 사실을 담은 것이다.
당시 북한이 이탈리아를 이길 확률은 1,000대1로 이런 확률을 뒤엎고 북한이 승리, 이 경기는 ‘월드컵 사상 최대의 충격’으로 불리고 있다. 고든은 북한에 들어가 코치 등 당시 경기에 참가했던 7명의 선수들을 인터뷰하고 이들을 경기가 열렸던 영국의 미들스브로로 초청, 과거 북한 선수들에게 숙식을 제공하고 그들을 자기 팀처럼 응원했던 마을 주민들과의 감격적인 재회의 장면들을 담고 있다. 이와 함께 당시 북한 카메라 팀이 찍은 컬러 경기장면도 흥미진진하다.
이탈리아전에서 득점한 선수는 배번 7번의 박두익으로 그는 “영국인들은 우리를 그들의 가슴으로 맞아주었고 우리도 그랬다. 나는 축구가 이기는 것만이 전부가 아니라는 것을 배웠다”고 추억했다. 
팀웍과 개인기가 그림처럼 아름다운 축구가 할리웃의 괄시를 받고 있는 이유를 전문가들은 먼저 이 경기가 미국의 토착경기가 아니라는 데서 찾고 있다. 그리고 축구는 순간 경기이며 득점수가 적고 아메리칸 풋볼과 야구와 농구가 전략 등을 논의하기 위해 쉬는 시간이 많은 반면 축구는 90분간을 거의 쉬지 않고 진행되는 것도 그 이유로 든다. 또 배우들이 효과적으로 경기를 진짜 선수들이 하는 것처럼 눈속임을 하기가 어렵다는 점도 있다.
그러나 할리웃이 축구를 포용하지 않는 이유는 명 영화제작자요 미 프로축구팀 시애틀 사운더스의 공동 소유주인 조 로스가 가장 분명하게 설명하고 있다. 그는 LA타임스와의 인터뷰에서 “미국인들은 외국 기피증자들로 자기 나라 밖에서 일어나는 일들을 제대로 보려하지 않는다”고 말했다.  
                                                    <한국일보 편집위원/hjpark1230@gmai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