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이야기

2014년 11월 19일 수요일

타이론 파워 탄생 100주년

 ‘카스틸의 캡튼’. 여배우는 진 피터스.

잘 생긴 게 ‘핸디캡’... ‘진지한 배우 꿈’ 못 이루고 44세에 요절


할리웃에서 잘 생긴 얼굴 때문에 연기력을 제대로 인정 못 받고 또 통속적인 오락영화에만 나와야 했던 대표적인 배우가 할리웃 황금기의 수퍼스타 타이론 파워였다. 6피트 키에 새카만 눈썹과 깊고 큰 눈 그리고 코끝이 약간 도드라진 절세 미남이자 매력 만점인 파워하면 대뜸 떠오르는 영화가 스와시버클러인 칼싸움 영화다. 그의 많은 스와시버클러 중에서도 가장 유명 것은 아마도‘조로의 마크’(The Mark of Zorro·1940)일 것이다. 여기서 조로로 나오는 파워가 사악한 라이벌 바질 래스본과 칼부림을 하는 마지막 클라이맥스는 칼싸움 영화의 백미 중 하나로 꼽히고 있다.
파워는 22세 때 영국의 보험회사에 관한 드라마인 ‘런던의 로이즈’(Lloyd’s of London·1936)에 나오면서 대뜸 할리웃의 스타로 부상했는데 이 영화의 프리미어 후 6개월이 채 안 돼 차이니스극장 앞 콘크리트에 손과 발자국을 남겼다.
1939년에 이르러 그는 미키 루니에 이어 두 번째로 흥행성적이 좋은 남자 배우로 부상했는데 이 해 나온 그의 두 영화로 웨스턴인 ‘제시 제임스’(Jesse James)와 멜로드라마 ‘비가 내렸다’(The Rains Came)는 그 해 최고 흥행성적 4위권 안에 들었다.
그러나 연극계서 활동한 가정에서 태어난 파워는 스타로서만 만족 못하고 진지한 배우로 인정  받으려고 노력했으나 당시 배우를 전속으로 계약한 뒤 회사 마음대로 사용하던 스튜디오 체제 때문에 제대로 이 꿈을 이루지 못했다. 파워는 생전 배우가 되기 훨씬 이전에 스타가 된 사람이다.
파워는 1914년 5월5일 오하이오주 신시내티에서 출생해 1958년 11월15일 스페인 마드리드에서 44세로 요절했다. 이탈리아의 글래머 스타 지나 롤로브리지다와 공연하던 ‘솔로몬과 시바’(Solomon and Sheba)를 촬영하던 중 심장마비로 사망했는데 파워의 대타로 율 브린너가 솔로몬으로 나왔다.
올 해로 파워 출생 100주년을 맞아 할리웃 뮤지엄(1660 노스 하일랜드)에서는 ‘타이론 파워: 남자, 신화 & 영화 우상’이라는 제목으로 전시회를 연다. 전시회는 연말까지 계속된다.
전시회에는 파워의 개인적 및 영화인으로서의 삶과 세 번의 결혼과 세 명의 자녀에 관한 자료를 비롯해 그가 나온 영화들의 각종 기념물 등 총 400여점이 전시된다. 전시품들 중에는 파워가 투우사로 나온 ‘혈과 사’(Blood and Sand·1941)의 의상과 다른 영화들의 로비 카드와 포스터와 프레스킷과 책자 및 영화음악의 악보와 각본들이 선보인다.
이와 함께 14일에는 반스달 갤러리 극장(4800 할리웃·전화번호 323-644-6275)에서는 파워가 나온 뮤지컬 ‘알렉잰더의 랙타임 밴드’(Alexander’s Ragtime Band·1938)를 그리고 15일에는 그의 또 다른 명작 스와시버클러 ‘카스틸의 캡튼’(Captain from Castile·1947)이 각기 상영된다. 또 15일 오전에는 할리웃의 할리웃 포레버 장지에 있는 파워의 무덤에서는 그를 추모하는 모임이 열린다. 
전문가들은 파워가 진지한 배우로서 제대로 평가를 받지 못한 이유를 그가 너무 잘 생겼기 때문이라고 말한다. 파워도 이런 핸디캡(?)을 극복하고 진지하고 심각한 역을 맡으려고 무진 애를 썼으나 그의 전속사인 폭스가 이를 허락하지 않았다.
피워는 2차 대전에 해병으로 근무한 뒤 제대해 할리웃에 복귀하면서 자신의 상표가 되다시피 한 칼싸움 영화나 로맨틱 코미디를 피하려고 마음을 먹었다. 그래서 그는 폭스사 사장에게 “5편 이상의 이런 종류의 영화에 나올 테니 대신 내가 원하는 영화에도 나오게 해 달라”고 간청, 뛰어난 느와르 영화 ‘악몽의 골목길’(Nightmare’s Alley·1947)에 나왔다. 
여기서 파워는 순회곡예단의 손님 끄는 남자로 나와 마음을 읽는 여자와 짜고 목적을 위해 음모를 꾸미는데 훌륭한 연기를 한다. 그러나 폭스는 이 영화를 위해 선전도 하지 않고 일찍 극장에서 철시를 한 뒤 ‘카스틸의 캡튼’을 예정보다 빨리 개봉했다. 
파워가 나온 또 다른 훌륭한 드라마로는 빌리 와일더가 감독한 ‘검사 측 증언’(Witness of the Prosecution·1957)과 진 티어니와 공연한 서머셋 모음의 소설이 원작인 ‘면도날’(Razor’s Edge·1946)이 있다. <한국일보  편집위원/hjpark1230@gmail.com>


폭스캐처 USA(Foxcatcher USA)

마크(채닝 테이텀·왼쪽)가 존(스티브 카렐)으로부터 레슬링 지도를 받고 있다.

긴장… 갈등… 마치 스릴러 같은 레슬링 영화


1996년에 발생한 펜실베니아주의 억만장자 존 E. 뒤판트의 미 레슬링 올림픽 챔피언 데이브 슐츠 살인사건을 다룬 단단히 조여진 어둡고 긴장감 가득한 심리드라마이자 성격탐구 영화로 보는 사람의 마음을 어지럽게 만드는 강렬한 힘을 지녔다.
묵직한 영화로 내용과 연기와 연출 그리고 촬영 등 여러 부문에서 상감인데 특히 볼만한 것은 코미디언 스티브 카렐과 별로 무거운 역을 하지 않았던 테이텀 채닝의 극적인 변용. 둘이 과거의 틀을 벗어나 보여주는 심각하고 진지한 연기는 경탄을 금치 못하게 한다.
둘 다 올림픽 레슬링 메달리스트인 데이브와 그의 동생 마크 그리고 이들을 물심양면으로 후원한 존의 삼각관계를 다루었는데 상영시간이 134분인데도 얘기에 군더더기가 없다. 
해괴한 얘기를 심리적으로 또 감정적으로 바짝 조인 베넷 밀러 감독(‘카포티’ ‘머니볼’-올 칸 영화제 감독상 수상)의 완숙되고 튼튼한 연출력 때문에 무슨 공포영화를 보는 듯한 한기마저 느끼게 된다.
둘 다 1984년 LA 올림픽의 레슬링 금메달리스트인 데이브(마크 러팔로)와 마크(테이텀)는 형제. 성격이 밝고 긍정적인 데이브는 자신들의 부모가 이혼한 뒤로 동생 마크를 돌봤는데 둘은 형제애가 돈독하면서도 침울한 성격의 마크는 늘 형의 그림자를 못 벗어난다는 강박관념에 잡혀 있다.
데이브는 1988년 서울 올림픽을 앞두고 코치로서 마크와 맹훈련에 들어가는데 영화는 둘의 레슬링 장면을 통해 형제간의 사랑과 갈등을 상징적으로 잘 묘사하고 있다. 그런데 어느 날 난데없이 펜실베니아의 밸리포지에 대규모 저택과 경마용 녹초지 폭스캐처를 소유한 존(카렐)에게서 마크에게 초청장이 날아든다.
폭스캐처에 있는 자신의 체육관에서 서울 올림픽에 대비해 훈련 중인 레슬링 팀에 합류하라는 것이다. 이에 마크는 데이브에게 함께 가자고 종용하나 아내(시에나 밀러)와 어린 두 아이가 있는 가정적인 데이브는 집을 떠날 수 없다고 사양한다.
마크가 혼자 폭스캐처에 도착하면서 존의 영접을 받는다. 존으로 분장한 카렐의 얼굴을 알아볼 수가 없다. 커다란 가짜 코에 눈썹이 거의 없는 창백한 색깔의 얼굴을 한 존은 마치 인조인간처럼 괴이하고 병적인 모습. 게다가 이상한 억양으로 말까지 느리게 해 보고 있자니 기분이 으스스하다.
존은 일종의 과대망상증자요 자기가 원하는 것은 무조건 성취해야 만족하는 이고 투성이의 인간으로 마크와 팀을 가혹하게 훈련시킨다. 그리고 팀의 실력을 향상시키려고 마크에게 데이브를 코치로서 폭스캐처로 오게 하라고 보챈다. 이에 데이브가 가족과 함께 폭스캐처로 이사 오면서 3인 간에 깊은 관계가 맺어진다.
그러나 다시 형의 후광에 자신이 가려졌다고 생각하는 마크는 개인적으로 선수로서 타락의 길을 걷는데 데이브는 이런 동생을 어떻게 해서든지 구원하려고 모진 애를 쓴다. 여기에 존이 데이브를 무시하고 팀의 코치 노릇을 자처하면서 존과 데이브의 관계에 갈등이 인다. 마크를 비롯한 폭스캐처 팀은 존을 코치로 서울 올림픽에 참가하나 메달권에서 밀려났다.
연기들이 모두 훌륭한데 그 중에서도 뛰어난 것은 카렐의 연기. 완전히 자신의 생애를 뒤바꾸어 놓을 경탄할 연기로 살아 있는 괴물을 보는 것 같다. 
R. Sony Classics. 랜드마크(310 -470-0492), 아크라이트(323-464-4226), 센추리15(888- AMC-4FUN) ★★★★(5개 만점) <한국일보  편집위원/hjpark1230@gmail.com>

홈스맨(Homesman)

조지(왼쪽)가 메리 비에게 험한 여정에 대해 훈시를 하고 있다.

‘다시 동부로’여성들의 거친 여정 담은 이색 웨스턴


2005년 웨스턴 ‘멜퀴아데스 에스트라다의 세 번의 매장‘으로 감독으로 데뷔한 배우 타미 리 존스의 두 번째 감독작품으로 그가 주연도 한 이색적인 웨스턴이다. 우리에게 잘 알려지지 않은 개척시대 서부정착에 실패하고 동부로 돌아가는 사람들의 여정을 그린 영화로 서부 광야처럼 거칠고 에누리 없이 각박하다. 그러나 이런 가혹한 환경 속에 인간적인 면을 강조해 오히려 훈기마저 느끼게 된다.
특히 이 영화는 서부개척 시대의 여자들의 얘기를 다루고 있는데 윌리엄 웰만이 감독하고 로버트 테일러가 주연한 웨스턴 ‘서부로 가는 여자들’(Westward the Womanㆍ1951)을 연상케 한다. 비록 ‘홈스맨’의 여자들은 서부를 떠나 동부로 가고 있긴 하지만.
네브래스카주에서 농장을 일궈 성공한 신심과 정의감이 강한 31세의 노처녀 메리 비 커디(힐라리 스왱크)는 열심히 남편감을 물색하나 누구도 줏대가 센 그녀와 결혼하려고 하지를 않는다. 그런데 메리의 이웃들인 세 여자가 혹독한 서부환경에 지쳐 정신이상자들이 된다. 아라벨라(그레이스 거머-메릴 스트립의 딸)는 장질부사로 세 아이를 잃었고 테올린(미란다 오토)은 갓난아기를 변기통에 내던졌고 그로(손자 릭터)는 귀신에 씌었다. 
동네 목사(존 리트가우)의 주선으로 아이오와주의 목사 부인(메릴 스트립)이 이들을 받아주기로 했는데 문제는 이들을 아이오와주까지 데리고 갈 남자가 없다는 점. 미친 여자들 수송을 자원한 사람이 메리 비. 
메리 비는 미친 여자들을 태운 마차를 몰고 길을 떠난 지 얼마 안 돼 탈영병이자 타인 명의의 광구횡령자로 목에 밧줄이 감긴 채 말에 앉아 있는 조지 브릭스(타미 리 존스)를 만난다. 그리고 조지를 살려주는 대신 그가 아이오와까지 함께 간다는 약속을 받아낸다.
서부 광야를 가로지르는 일종의 ‘로드 무비’로 여기서부터 아이오와에 도착하기까지 여러 가 지 에피소드로 꾸며진다. 이 부분에서 전형적인 웨스턴의 내용을 과감히 벗어나진 못하고 있어 기시감이 있다.              
좋은 점은 메리 비와 조지의 성격묘사가 뚜렷한 것. 둘의 개성과 내면이 매우 풍부하게 그려졌는데 연기파들인 스왱크와 타미 리 존스가 깊이 있는 연기를 탁월하게 해낸다. 특히 스왱크의 튼튼한 연기가 출중하다. 심술첨지 모습의 타미 리도 무뚝뚝하면서도 코믹한 연기를 잘 하는데 둘의 콤비가 썩 잘 어울린다. 이와 함께 서부를 미화하지 않고 삭막한 모습 그대로 잡아낸 촬영과 음악도 인상적이다. R. Roadside. 랜드마크극장과 아크라이트극장. ★★★(5개 만점)                   <한국일보  편집위원/hjpark1230@gmail.com>

‘새벽’



졸린 눈에 종잇장처럼 얇은 입술 그리고 주먹코를 한 과묵한 프랑스 명우 장 가방은 1930년대 로맨틱한 염세주의를 상징했던 프랑스 영화의 동의어와도 같은 배우였다. 그는 운명을 트렌치코트처럼 걸치고 다니는 저주받은 반영웅처럼 기억될 만큼 숙명적이요 비극적이며 어두운 영화에 많이 나왔다. 장 가방 하면 세속적인 국외자요 고독자가 연상되는 까닭이 여기에 있다.    
가방은 1930년대 프랑스 영화의 흐름이었던 ‘시적 사실주의’(Poetic Realism)의 대표적인 스타로 많은 영화에서 자기를 파괴하려는 잔인한 운명과 투쟁하는 평범한 인간으로 나왔다. 고독이라는 병을 앓은 뒤 순수한 사랑을 찾아 잠시 위로를 받으나 또 다시 기만당하고 자신의 꿈을 빼앗겨 살인을 저지르고 자살하거나 총에 맞아 죽었다.
‘시적 사실주의’는 주로 파리 주변을 무대로 한 노동자 계급의 도시 드라마로 매우 어둡고 염세적인 분위기에 젖어 있다. 신화 속 존재 같은 남자들이 주인공으로 이들은 때로 범죄를 저지르고 이룰 수 없는 사랑을 하다가 대부분 처절한 종말을 맞는다.
전쟁의 암운이 하늘을 뒤덮은 당시 프랑스의 시민들의 절망과 허무를 대변했는데 뛰어난 형식미 속에 각박한 일상과 서정적이요 감정적인 것의 이중성을 담고 있다. 회색으로 채색된 실존적 영화다.
가방이 나온 ‘사적 사실주의’의 걸작 중 하나가 살인자 프랑스와의 하룻밤을 그린 ‘새벽’(Le Jour se Leve·1939·사진)이다. 노르망디 교외의 노동자층이 사는 6층짜리 아파트 꼭대기 층에서 분노한 음성과 함께 한 발의 총성이 울리면서 아파트의 좁은 계단 아래로 말끔하게 차려 입은 남자가 굴러 떨어져 내린다.
이어 아파트에 들이닥친 경찰들이 프랑스와가 바리케이드를 친 아파트 문을 향해 총알을 쏟아 붓는다(실탄이 사용됐다). 이렇게 시작된 영화는 프링스와의 현재와 그가 회상하는 과거가 교차되면서 이튿날 새벽까지 이어진다. 그리고 프랑스와의 권총자살로 끝난다.
공장 노동자인 프랑스와와 그가 사랑하는 가녀린 꽃가게 여점원 프링스와즈(자클린 로랑) 그리고 프랑스와를 사랑하는 클럽 쇼걸 클라라(아를레티) 및 이 두 여인을 소유하다시피 한 쇼맨 발랑탕(쥘르 베리) 등 4인이 맺는 기구한 운명의 이야기로 암담하기 그지없다.
흑백 촬영이 뛰어난 이 영화의 감독은 마르셀 카르네이고 각본가는 시인이기도 한 자크 프레베르인데 프레베르의 아름다운 글이 자칫 멜로드라마가 될 수도 있는 절망적인 얘기를 시적으로 승화시키고 있다.
그런데 두 사람은 ‘시적 사실주의’의 또 다른 걸작으로 역시 가방이 나오고 호심 같은 눈을 지녔던 미셸 모르강이 공연한 음습한 분위기의 ‘안개 낀 부두’(Le Quais des Brumes·1938)와 이 영화사조의 마지막 작품 중 하나로 마르셀 마르소와 아를레티가 나오는 영화사에 길이 남는 명작 ‘천국의 아이들’(Les Enfants du Paradis·1943-45)도 같이 만들었다.    
‘새벽’은 프랑스의 저명한 영화 평론가 앙드레 바장이 ‘우리 시대 영화의 비극적 영웅’이라고 칭한 가방이 사랑과 희망을 잃고 살인을 한 뒤 스스로를 자기 아파트에 가두어 놓은 킬러의 연기를 마치 우리 안에 갇힌 치명상을 입은 짐승처럼 불안하고 절실하게 보여준 명화다.
영화는 개봉되면서 당시 나치의 프랑스 괴뢰정부였던 비시 정부의 혹독한 검열을 받고 아를레티의 나신장면과 경찰을 파시스트에 비유한 대사를 비롯해 둘 다 유대인이었던 촬영감독 쿠르트 쿠란트와 프로덕션 디자이너 알렉상드르 트러네의 이름이 잘려 나갔다. 그러다가 곧 이어서는 영화가 ‘지나치게 사기를 저하시킨다’는 이유로 아예 상영금지 조치를 당했다.
가방의 신화를 창조한 ‘시적 사실주의’의 첫 영화는 쥘리앙 뒤비비에가 감독(공동 각색 겸)한 운명이 판을 치는 로맨틱한 갱스터 영화 ‘페페 르 모코’(Pepe le Moko·1937)다. 파리에서 은행강도를 한 뒤 프랑스의 식민지 알제리의 항구도시 알지에의 언덕 위 아랍계들이 사는 치외법권 지대나 마찬가지인 달동네 카스바에 숨어 사는 플레이보이 페페의 이야기다.
하구한날 항구를 바라다보며 파리를 그리워하던 페페가 파리에서 놀러와 구경 차 카스바로 올라온 돈 많은 늙은이의 정부로 깊은 눈동자를 지닌 가비(미레유 발랑)을 사랑하게 되면서 비극적 종말을 맞게 된다.
암흑세계의 갱스터에 대한 동경이요 미녀와 야수의 드라마로 페페가 고동소리를 내며 항구를 떠나가는 귀국선을 탄 가비를 향해 “가비”하고 외치면서 주머니에서 꺼낸 손칼로 스스로 목숨을 끊는 라스트신은 잊지 못할 장면이다. 이 영화는 1938년 샤를르 봐이에와 헤디 라마 주연의 흑백 미국 영화 ‘앨지어즈’(Algiers)로 만들어졌다. 이 영화도 삼삼하다.
가방이 저주 받은 사랑을 하는 남자로 나와 치열한 연기를 한 또 하나의 1930년대의 명작이 장 르느와르(화가 피에르 오귀스트 르느와르의 아들)가 감독한 ‘인간 짐승’(La Bete Humaine· 1938)이다. 에밀 졸라의 소설이 원작인 영화에서 열차 기관사인 가방은 역장인 남편을 죽여 달라고 요구하는 요부(시몬 시몽)를 사랑하다가 여자를 목 졸라 죽이고 자기는 달려오는 기차에 투신자살한다.  
‘새벽’ 개봉 75주년을 맞아 처음으로 잘려나간 장면과 대사 그리고 크레딧이 복원된 새 프린트로 14일부터 로열극장(11523 Santa Monica)에서 상영된다. (310-478-3836), 플레이하우스(패사디나). <한국일보  편집위원/hjpark1230@gmai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