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이야기

2015년 8월 4일 화요일

‘터미네이터: 제니시스’ 아놀드 슈워제네거




“다시 본격 배우로 과거 팬들 불러모을 것”


“주지사 때 좋은 일 많이 해… 미국서 태어났다면 대선출마
  굴곡도 실패도 있었지만 내 인생은 축복 받았고 난 행복”


자신을 수퍼스타로 만들어준‘터미네이터’의 제4편‘터미네이터: 제니시스’에서 나이 먹은 터미네이터로 나오는 아놀드 슈워제네거(68)와의 인터뷰가 베벌리힐스의 포시즌스 호텔에서 있었다. 거구의 슈워제네거는 액센트가 있는 굵은 음성으로 큰 제스처를 써 가며 개인생활에 대해서까지 솔직하게 대답했는데 시종일관 농담과 함께 위트와 유머를 구사하면서 인터뷰를 즐기는 것 같았다. 허연 이를 드러내고“허 허 허”하고 웃으면서 장난하듯이 굴었지만 대답은 정치가 출신답게 달변이었다. 요즘 운동선수들의 체력관리자인 헤더 밀리간(39)을 새 애인으로 만나서 그런지 슈워제네거는 아주 행복해 보였는데 대답에서도“나는 운이 좋고 행복하며 모든 것에 대해 하느님께 감사드린다”고 두세 차례 강조했다. 아주 재미있고 즐거운 인터뷰였다. 그는 영화 홍보 차 얼마 전 한국엘 다녀왔다.                       

-당신은 영화에서 나쁜 터미네이터 T-1000으로 나오는 한국의 수퍼스타 이병헌을 한 손으로 죽였는데 곧 한국에 가서 그를 만나면 무어라고 말할 것인가. 그리고 당신은 한국을 여러 차례 방문했는데 느낀 인상이 어떤가.
“이병헌을 만나면 ‘내가 다시 돌아온다고 그랬잖아’라고 말하겠다. 그는 ‘터미네이터’ 영화의 아주 멋있는 새 식구다. 역을 매우 훌륭하게 해냈는데 그의 정확성과 속도감을 보면서 감탄했다. 나는 가주 주지사 시절을 포함해 한국을 여러 번 방문했다. 무역업무 차 한국을 방문, 당시 대통령과 도지사들도 만났다. 나는 한국 사람들을 매우 존경한다. 한국은 발전으로 터질 것만 같은 나라다. 사람들은 중국이 빠르게 발전한다고 말하지만 나는 서울을 차로 돌아보면서 한국 사람들이 해낸 사회 기반구조를 보고 혀를 내둘렀다. 그것은 정말로 거대한 안목이며 그 능력은 대단하다고 해야 옳겠다.”

-당신의 삶을 바꿔 보고 싶은 생각이라도 있는지.
“내 삶은 굴곡도 많았고 또 실패와 잘못도 많았지만 난 내 삶이 복 받고 멋있다고 생각한다. 따라서 바꿀 생각이 없다. 내 인생은 축복을 받았고 난 행복하다. 난 늘 하느님과 미국에 감사하고 있다. 이 기회의 나라에 온 것은 내 인생의 기본적이요 중요한 한 부분이다.”

-정치인으로서 한 자랑스러운 일이 무엇인지. 
“난 주지사 시절 자랑스러운 일을 많이 했다. 우선 환경보호를 위한 강력한 법규를 마련했다. 녹화와 에너지 재생산을 위한 것으로 그 방면에 대해선 세계적으로 모범이 될 만한 업적이다. 그리고 줄기세포법도 통과시켰고, 가주를 위한 사회기반구조 작업도 했다. 또 정치개혁과 함께 선거구도 재조정했다. 난 정치에 지금도 관심이 많다. 내년이 대통령 선거라 지금 너도 나도 후보 출마를 선언하고 있는데 내가 미국에서 태어났다면 나도 뛰어들어 가주 지사 후보 출마 때처럼 대중을 사로잡을 자신이 있다.”
나이 먹은 터미네이터가 나쁜 터미네이터 T-1000(이병헌·왼쪽)과 사투하고 있다.

-요즘 가족관계는 어떤지.
“우리 가족관계에 매우 만족한다. 거기엔 마리아(전처 마리아 슈라이버)의 공이 크다. 우린 상호 이견도 있었고 또 난 큰 실수도 저질렀지만 아이들 키우는 면에서는 합심하자고 다짐했다. 그래서 무슨 때가 되면 모두 서로 방문을 하고 함께 즐긴다.”

―당신의 과거의 잘못에서 배운 것은 무엇인지.
“쓰러졌다 일어난다는 것이다. 누구나 한두 번은 쓰러지게 마련이다. 그러나 강자는 일어나고 약자는 그대로 주저앉아 있게 마련이다.”

-새 애인에 대해 말해 달라.
“그녀는 훌륭한 여자로 아주 좋다.”

-인공지능과 기술은 일취월장하고 있는데 당신은 그것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나.
“난 기술발전에 전적으로 찬성이다. 그것은 에너지 자원 개발과 의료문제 등 모든 면에서 좋은 일을 하고 있다. 주의해야 할 점은 이 영화처럼 기계가 자의식을 가지지 못하게 한다는 것이다. 만약 그렇게 되면 그야말로 지옥세상이 될 것이다. 따라서 우리는 기술을 남용하지 않도록 주의해야 한다.”

-차기 대통령 선거에 개입할 것이며 힐러리가 대통령이 될 것으로 보나.
“아직 일러 내가 어떻게 개입할 지에 대해선 말할 수가 없다. 힐러리가 되든 누가 되든 미국에 흑인 대통령이 나왔듯이 불원 여자 대통령이 나올 것은 분명하다.”

-당신의 어려운 경험에서 무엇을 배웠는지.
“긍정적이 되라는 것이다. 그리고 다시 일어나 당신이 저지른 과오를 가능한 한 많이 수정하라는 것이다. 그리고 다시 과오를 저질러 자신뿐 아니라 남에게 해를 주기 전에 두 번 생각하라는 것이다.”

-이 영화에 나오는 것을 얼마나 즐겼는지.
“과거에 한 역이긴 하지만 제작비 1억7,000만달러짜리 영화에 나오긴 처음이다. 규모와 여러 면에서 내가 공직을 나와 만든 다른 영화와 완전히 다른 영화다. 이 영화 이전의 것들은 일종의 준비운동이라고 할 수 있다. 비로소 이 영화로 서서히 다시 본격적인 배우가 되는 셈으로 다시 나의 과거 팬들을 불러 모아야 한다. 시간이 걸리겠지.”

-자녀들에게 어떤 충고를 하는가.
“내 아이들이 성공의 열쇠가 무엇이냐고 물어오면 부모 말 듣지 말고 네가 정열적으로 느끼는 것을 하라고 말해 주겠다. 요즘 너무나 많은 아이들이 그냥 4년제 대학에 가서 졸업을 하고나면 무엇을 할지 몰라 멍한 상태다. 아무 계획 없이 부모 말만 들어서 그런 것이다. 따라서 아이들로 하여금 스스로 생각하도록 내버려두어야 한다. 부모는 힌트만 주면 된다.”   

-디지털 기술의 발달로 머지않아 당신이 없어도 컴퓨터로 당신을 만들어 연기하게 할 수가 있게 됐는데 그것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나.
“그 게 그렇게 말처럼 쉬운 일이 아니다. 기술이 아무리 발달해도 실물 그대로 연기하게 할 순 없다. 이 영화 만드는데 내가 얼마나 많은 시간을 컴퓨터실에서 보낸 줄 아는가. 내 얼굴 표정과 턱의 선과 몸의 모든 부분을 컴퓨터로 스캐닝 하느라고 수많은 시간을 보냈다. 내가 없어도 컴퓨터로 내 연기나 표정을 나와 똑같이 만들어내기란 불가능하다.” 

-마침내 연방 대법원이 동성결혼을 합법화했는데 그에 대한 소감이 어떤지.
“바른 결정이라고 생각한다.”

-당신은 자기보다 남을 돕기를 좋아하는데 당신이 무언가 필요할 때는 누구의 도움을 받는가. 정신을 고양시키기 위해 명상이라도 하는가.
“나는 1970년대 1년반 정도 명상을 하루에 두 번씩 했다. 그 때 난 영화 출연과 바디 빌딩과 함께 학교에도 가야해 업무과다로 심한 스트레스에 시달렸을 때다. 그 때 어느 사람의 소개로 명상센터에 가서 명상하는 법을 배웠다. 거기서 배운 것은 내일 일을 미리 걱정하지 말고 오늘 할 일에만 정신을 집중하라는 것이다. 그 뒤로 나는 이 신조를 지금까지 지키고 있다. 오늘도 이 인터뷰만 성공적으로 끝내자고 다짐했다. 내 주위에는 나를 진심으로 염려해 주는 사람들이 많다. 친구와 애인과 자식들과 가족들이다. 그러나 나는 받을 때보다 줄 때가 더 편안하다.”
                                                      <한국일보 박흥진 편집위원/ hjpark1230@gmail.com>





미션:임파서블-로그 네이션 (Mission:Impossible-Rogue Nation)


이산 헌트가 화학무기를 실은 수송기 문에 매달려 있다.

작렬하는 액션과 스릴에 숨이 멎는듯


스파이 액션 시리즈 ‘미션:임파서블’ 제5편으로 시종일관 심장이 뛰고 손에 땀을 쥐게 하는 액션과 스릴로 진행된다. 거의 숨 쉴 틈이 없이 작렬하는 액션은 음모와 배신과 기만 그리고 거짓말 및 변장 등 정통 스파이 영화의 온갖 요소를 잘 섞은 드라마와 균형을 이룬다.
아주 잘 만든 여름철용 스파이 액션 드라마로 모양새와 내용(다소 복잡하다)이 제임스 본드와 제이슨 본 시리즈를 모방한 흔적이 보여 기시감이 있긴 하나 거의 지칠 정도로 몰아가는 액션에 휩쓸려 들고만다. 
탐 크루즈 외에 보기 좋고 연기와 액션을 아주 잘 하는 것이 정체불명의 여자 스파이 일사(스웨덴 배우 레베카 퍼거슨-TV시리즈 ‘와이트 퀸’). 단구이지만 단단한데 결연한 표정의 얼굴과 확신에 찬 연기 그리고 혀를 찰 액션동작이 일품이다. 할리웃에서 대성할 배우인데 이 여자의 정체가 시종일관 아리송해 영화에 미스터리 기운을 듬뿍 제공한다.
본드 시리즈를 연상케 하는 오프닝 크레딧 이전의 액션신이 장관이다. 미 특수 비밀 첩보기관 IMF요원 이산 헌트(크루즈)가 화학무기를 싣고 막 이륙하는 대형 수송기 날개 위에 뛰어 오른 뒤 수송기문을 붙잡고 공중에 매달려 나르는 장명은 앞으로 영화가 신나게 진행되리라는 것을 예고하는데 이 장면은 53세의 크루즈가 직접 했다고 해 유명한 장면. 여기서 이산의 동료들인 윌리엄(제레미 레너)과 벤지(사이먼 펙) 그리고 루서(빙 레임즈) 등이 모두 소개된다.
CIA국장 알란(알렉 볼드윈)이 IMF의 해체를 결정하면서 이산은 낭인이 되고 윌리엄과 벤지는 CIA를 위해 일하게 된다. 알란은 IMF의 해체에도 불구하고 혼자 활동하는 이산을 잡아들이려고 혈안이 되나 윌리엄과 벤지는 몰래 이산을 돕는다. 벤지역은 액션영화에 코믹 터치를  주는 쉼표다. 
수송기의 화학무기를 탈취한 이산은 그에 대한 보복으로 세계적인 테러그룹 신디킷의 두목솔로몬(션 해리스)에게 붙잡혀 위기에 처한다. 이를 구해주는 여자가 솔로몬의 졸개인 일사. 이 때부터 일사는 솔로몬 쪽과 이산 쪽을 오락가락해 그 정체가 알송달송하다.
이산은 혼자서 지구를 돌면서 신디킷을 분쇄하려고 분주한데 역시 혼자선 역부족이라 컴퓨터귀재인 벤지를 비엔나로 유인해 낸다. 비엔나 오페라하우스에서 공연되는 푸치니의 ‘투란도트’를 관람하는 오스트리아수상을 신디킷이 암살하려는 것을 막기 위해서다. 테너 아리아 ‘공주는 잠들지 못하고’가 끝나는 순간 저격수의 방아쇄가 당겨지고(이 장면은 히치콕의 ‘나는 비밀을 알고 있다’에서 빌려왔다.) 빌려는 왔지만 정교하고 장대한 장면이다. 
벤지에 이어 윌리엄도 이산을 찾으려고 CIA본부를 나오는데 그를 돕는 것이 일사. 무대는 모로코의 카사블랑카로 이전한다. 여기서 이 영화에서 가장 훌륭한 두 장면이 전개된다. 하나는 수중에 보관된 신디킷의 정보를 담은 컴퓨터칩을 이산이 바꿔치기 하는 것. 수중에서 호흡을 3분간 중단해야하는 장면인데 긴장감 있고 잘 찍었다.      
다른 하나는 오토바이를 초고속으로 몰고 달아나는 일사와 이를 추격하는 이산 그리고 이들을 추격하는 솔로몬의 졸개들의 속도감 강렬한 도주와 추격전. 감탄사가 절로 나오는 장면이다.
후반에 가서 일사의 정체가 밝혀지고 진짜 배신자가 알고 보니 아군이라는 스파이영화의 공식적인 플롯이 드러난다. 그리고 이산과 솔로몬의 대결로 말미가 장식된다. 크루즈가 자신만만한 연기와 액션을 장쾌하게 해낸다. 제6편이 나올 것이며 일사도 그 때 다시 볼 수 있을 것임에 분명하다. 크리스토퍼 맥쿼리 감독(각본 겸). PG-13. Paramount. 전지역.  ★★★½(5개 만점)
                                                              <한국일보 박흥진 편집위원/ hjpark1230@gmail.com>

휴가 (Vacation)


그리스월드 가족이 오래간만에 한자리에 모였다.

재밌지도 새롭지도 않은 역겨운 코미디


이 냄새나는 하나도 우습지 않은 코미디는 체비 체이스 주연의 1983년작 ‘내셔널 램푼스 휴가’(National Lampoon’s Vacation)의 속편격으로 순진한 전편에 비하면 조야하고 상스럽기 짝이 없다. 온갖 F자 상소리와 함께 음란하고 거칠고 지저분한데 전편에 어느 정도라도 가까이 가려고 분투하고 있으나 재미 없고 한심한 영화다.
영화에서 부부인 러스티와 데비가 목욕하는 숲 속의 연못에 흘러 나온 인분과 갖가지 폐기물처럼 인체에 해롭고 더러운 영화인데 언어와 육체적 농담이 많은데도 전연 우습지 않고 역겹기만 하다.
러스티 역의 에드 헬름스는 주연으로서 보다 조연으로서 더 제 구실을 하는 좋은 코미디언인데 1983년 판의 체비 체이스의 편안하게 너스레를 떠는 연기에 비해 체이스를 인식하고 그 보다 앞서 가기라도 해야겠다는 듯이 긴장된 모습이다. 
러스티 그리스월드는 1983년 판의 가장 클라크(체이스)의 아들로 아내 데비(크리스티나 애플게이트)와 약골인 장남 제임스(스카일러 기손도)와 악동인 차남 케빈(스틸 스테빈스)을 두고 있다. 웃기려고 연출한 차남의 악행이 부질없이 시간만 잡아 먹는다.
러스티는 여름 휴가를 맞아 30년 전에 아버지와 함께 갔던 캘리포니아의 왈리월드로 차를 몰고 대륙횡단에 나선다. 차는 알바니아제로 제 멋대로 작동하는 사람 잡을 차다. 길을 가면서 여러 가지 모험과 해프닝이 일어나는데 도무지 흥미를 유발치 못하는 보잘 것 없는 짓거리들이다.
가면 갈수록 김이 새는 영화인데 데비가 자기가 다닌 대학교에 들러 자신은 아직도 젊다는 것을 보여준다고 음주망발을 하는 모습과 온 가족이 자살기운이 있는 안내원이 모는 고무보트를 타고 그랜드캐년의 폭포 아래로 떨어지는 장면을 비롯해 무엇 하나 새롭거나 우습거나 신나는 장면이 없다.
꼴불견인 것은 러스티의 색정에 굶주린 여동생(레즐리 맨)과 그의 덩지 큰 남편(크리스 헴스워드). ‘어벤저스’에 나오는 헴스워드가 팬티바람으로 이상한 액센트를 써가면서 자신의 건강한 아랫도리를 과시하는 모습이야 말로 목불인견이다. 체비 체이스와 옛날 영화에서 그의 아내 역을 맡은 베벌리 디앤젤로가 나중에 캐미오로 나오나 한심한 이 영화를 구제할 길이 없다. 모두들 이 영화와 멀리 하기를 권한다. 존 프랜시스 데일리와 조나산 M. 골드스틴 감독. R. WB. 전지역. ★★(5개 만점)  
                                                               <한국일보 박흥진 편집위원/ hjpark1230@gmail.com>


“런던 콜즈 유”




술을 좋아하는 내가 런던에 가면 보면서 부럽고 흐뭇해하는 모습이 런더너들의 노변 음주다. 런던 시민들은 퇴근길에 곧바로 집으로 안 가고 펍 앞의 인도에 삼삼오오 모여서서 맥주를 마시면서 떠들어들 대는데 그 모양이 정겹기 짝이 없다.
저녁 때 런던 길을 걷다 보면 골목골목에서부터 와글바글 대는 소리가 울려나오는데 이 것이 바로 노변 음주자들의 리드미컬하기까지 한 하루의 노고를 푸는 소리들이다. LA에서 이들 런더너들처럼 노변 음주를 했다가는 벌금 딱지감이지만.
지난주 영화촬영 세트 방문과 배우들 인터뷰 차 런던에 갔다 왔다. 저녁 산책길에 숙소인 호텔 인근의 ‘코치 앤 호시즈’ 펍(사진) 앞을 지나가다가 셀폰으로 노변 음주하는 런더너들을 찍는데 그 중 한 사람이 같이 사진을 찍자고 부른다. 사진을 찍을 때 내가 엄지손가락을 올리면서 “롱 리브 더 퀸”이라고 했더니 사진을 같이 찍던 한 남자가 “여왕 폐하 좋아하시네”라며 핀잔을 준다. 그도 아마 나처럼 군주제를 싫어하나 보다.
군주제 얘기가 나왔으니 말이지 런던의 여러 유명 호텔과 고급 아파트들이 중동의 왕족이나 특권층들의 것이다. 식당에서 비둘기 고기를 파는 도체스터 호텔과 역사와 전통을 자랑하는 클래리지스 호텔을 비롯해 하이드팍이 내려다보이는 1억파운드짜리 고급 아파트들이 다 오일 머니에 팔렸다. 칵테일 리셉션이 있은 레인스보로 호텔에는 오일 머니들을 위해 하룻밤에 기만파운드짜리 방도 마련돼 있다.
출생 탓에 나라의 땅과 석유를 독식한 채 호사를 누리면서 백성 위에 군림하는 군주제가 아직도 있다는 것이 믿어지지가 않는다. 그러니까 혁명이 나지. 영국도 마찬가지다. 관광객들의 명소인 피카딜리 서커스와 리츠를 비롯한 고급호텔과 고급상점들이 즐비한 런던의 웨스트민스터시의 금싸라기 같은 땅의 대부분이 공작 칭호를 지닌 귀족의 것이다.
세트방문 차 셰퍼튼 스튜디오로 우리를 태우고 가는 택시의 운전사도 군주제를 별로 탐탁지 않게 여김에 분명했다. LA에서도 살았다는 그는 “엘리자베스 여왕이 아직도 살아 있는 것은 찰스가 왕 될 자격이 없기 때문”이라며 껄껄대고 웃었다. 나도 그 말에 깔깔대고 웃었다. 그는 아주 달변이었는데 고풍이 느껴지는 액센트가 듣기에 좋다.
숙소인 웨스트민스터시 본드 스트릿의 웨스트베리 호텔은 도심공원 버클리 스퀘어 인근에 있다. 버클리 스퀘어는 바비 다린이 노래한 ‘나이팅게일 생 인 버클리 스퀘어’로 유명하다. “우리가 만난 그 어느 날 밤 리츠에선 천사들이 식사를 하고 있었고 버클리 스퀘어에선 나이팅게일이 노래 불렀지/당신이 돌아서서 나보고 미소를 지었을 때 버클리 스퀘어에선 나이팅게일이 노래 불렀지/마을의 길들은 별들로 포장되었고 그것은 정말로 로맨틱한 연애였어/그리고 우리가 키스를 하고 굿-나잇이라고 말하자 나이팅게일이 노래 불렀지.” 나도 공원을 거닐면서 노래를 흥얼댔다.
셰퍼튼 스튜디오로 가면서 비틀즈의 앨범 커버사진으로 유명한 애비 로드를 지나갔다. 관광객들이 떼를 지어 앨범사진 대로 일렬횡대로 애비 로드 건널목을 걸어가면서 사진을 찍는다. 셰퍼튼 스튜디오는 오손 웰즈가 나온 ‘제3의 사나이’(1949)를 비롯해 007 시리즈와 ‘해리 포터’ 시리즈 등을 찍은 유서 깊은 스튜디오다.
구내에 들어서니 데이빗 린 드라이브와 햄릿 드라이브가 있고 오손 웰즈 빌딩과 드라이브도 보인다. 오손 웰즈 빌딩에서는 ‘제3의 사나이’에서 범죄자 해리(웰즈)가 미로 같은 비엔나 하수구로 도주하는 장면을 찍었을 것이다.
현재 여기서는 디즈니의 뮤지컬 만화영화 ‘미녀와 야수’를 뮤지컬 극영화로 찍고 있는데 세트와 의상과 소품들이 매우 정교하고 화려하고 또 아름답다. 미녀로는 ‘해리 포터’의 엠마 왓슨이 나오는데 한 관계자는 장 콕토의 ‘미녀와 야수’(1946)를 많이 참조했다고 말했다.        
빨간색의 2층 버스들과 검은 색의 택시(런던의 택시 운전사시험은 사법고시만큼이나 힘들어 시험을 지식이라는 뜻의 ‘날리지’라고 부른다고 한다)들이 시내 교통대란을 잽싸게 헤집고 다니는 런던은 옛것과 요즘 것이 티를 안 내고 조화를 이뤄 걷노라면 마치 내 집에나 온 것처럼 아늑하게 느껴진다. 그러나 이런 매력은 런던의 물가를 생각하면 거의 공포로 변한다. 하여튼 되게 비싼데 호텔 바에서 마신 싱글몰트 스카치 한 잔이 무려 13파운드다.
런던 체류 마지막 이틀은 1960년대 인기리에 방영된 TV 스파이 시리즈 ‘U.N.C.L.E.에서 온 사나이’를 원작으로 만든 영화를 보고 감독과 출연진 인터뷰를 했다. 마돈나의 전 남편 가이 리치가 감독한 이 영화는 8월14일에 개봉되는데 아주 졸작이다. CIA 스파이와 KGB 스파이로는 각기 헨리 캐빌과 아미 해머가 나온다.
런던 체류를 끝내고 우디 알렌을 만나려고 뉴욕으로 떠나는 날은 비가 왔다. 내가 짐을 들어준 호텔 포터에게 “비가 오네”라고 했더니 그가 나더러 “런던 콜즈 유”라며 미소를 짓는다. 노래 가사처럼 로맨틱한 표현이다.                <한국일보 박흥진 편집위원/ hjpark1230@gmai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