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이야기

2016년 3월 28일 월요일

‘레버넌트’의 레오나르도 디카프리오




“지구의 기온을 변화시키고 있는 행위는 미친 짓”



제88회 오스카 시상식에서 생존과 복수의 드라마‘레버넌트’(The Revenant)로 5번째 도전 끝에 마침내 주연상을 탄 레오나르도 디카프리오(41)와의 인터뷰가 지난 11월 베벌리힐스의 포시즌스 호텔에서 있었다. 말끔한 정장 차림에 잔 수염을 기른 준수하게 생긴 레오는 농담을 섞어 질문에 대답하면서도 지적이요 진지한 면을 잃지 않았는데 극히 개인적인 여자문제에 대한 질문에는“노코멘트”라며 노골적으로 불쾌한 표정을 지었다. 그러나 레오는 할리웃 외신기자협회(HFPA)와의 오랜 인연을 인식해서인지 곧 불쾌한 표정을 지우고 홍조를 띠면서 물음에 자상하게 대답했다. 레오는 이 영화로 HFPA가 주는 골든 글로브상(드라마 부문)을 탔다.

-당신은 영화에서 죽다 살아나다시피 하면서 말로 못할 고생을 하는데 그 경험에 대해 말해 달라.
“난 살면서 여러 번 극단적인 경우에 빠져 봤지만 이 영화에서처럼 혹독한 경험을 하진 못했다. 영화의 인물들인 모피사냥꾼들은 그 당시 혹한을 비롯한 온갖 악조건 속에서 살아남아야 했다. 난 그들에 관한 책을 읽으면서 인간의 의지와 투혼에 경악을 금치 못했다. 나라면 과연 그런 조건 하에서 어떻게 대처했을까 하고 물어도 봤지만 답을 찾을 수가 없었다.”

-당신에게 큰 영향을 준 영화들은 무엇인가.
“젊었을 때 본 영화 중에서 나를 변화시킨 것은 ‘택시 운전사’다. 난 주인공 트래비스 빅클의 고독과 정신상태에 완전히 휘말려들었었다. 이 영화는 내게 있어 가장 위대한 독립영화 중의 하나다. ‘레버넌트’로 말하자면 유사한 서부영화와 타르코프스키의 영화가 연상되나 이 실존적 영화는 그 어느 다른 것들과 비교할 수가 없다. 이 영화를 만든 것은 여태껏 경험할 수 없었던 독특한 여정으로 그래서 출연한 것이다.”

-200년 전에 일어난 주인공의 생존투쟁이 오늘 날에도 어떤 의미를 지니고 있다고 보는가.
“영화의 핵심인 주인공의 생존투쟁과 함께 영화가 얘기하고자 한 또 다른 중요한 것은 인간의 개인 영리를 위한 자연자원 착취다. 그 때 사람들이 모피를 수집하기 위해 야생동물들을 살해하고 원주민들을 살고 있는 땅에서 몰아낸 일은 현재에도 일어나고 있다. 나는 기후변화에 관한 기록영화를 만들면서 세계 도처를 다녔는데 요즘에도 소위 선진국 인간들은 기름과 광물 등을 채취하기 위해 자연을 파손하고 또 원주민들을 살고 있는 땅에서 몰아내고 있다. 한 가지 말하고자 하는 것은 알레한드로(곤살레스 이냐리투) 감독이 원주민들을 묘사할 때 그들을 천편일률적으로 다룬 과거의 할리웃 영화들과는 달리 원주민들 간의 특성과 다양성과 다른 점 등을 가급적 충실히 사실적으로 묘사했다는 사실이다.”

-영화를 위해 어떻게 예행연습을 했는가.
“대규모 서사극의 틀 안에 인간의 내밀한 얘기가 있는 이 영화를 만들면서 몇 달간 연습을 했다. 하루하루가 마치 연극을 위한 리허설과도 같았다. 내 생애 이런 영화 만들기는 처음으로 매일 같이 하루가 끝날 때 쯤 1시간 반가량 마치 마법처럼 태양이 빛을 발할 때 촬영을 해야 했다. 따라서 모든 것이 스위스 시계처럼 정확해야 했다.”    
모피 사냥꾼 휴 글래스가 곰의 습격을 받고 있다.

-성공한 배우로서 하고 싶은 일을 이루지 못한 것이 무엇인가.
“개인적으로 뭔가를 더 바란다는 것은 구역질나는 일이다. 나는 지극히 운이 좋은 사람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지구를 위해서는 세상 사람들이 기온 변화에 대한 각성을 해주기를 바란다. 지금 우리가 지구의 기온을 변화시키고 있는 행위는 미친 짓이나 마찬가지다.”

-제작자요 만화책 발행인이었던 당신의 아버지는 당신에게 어떤 영향을 주었는가.
“나의 아버지는 내게 배우로서 뿐만이 아니라 개인적으로도 지대한 영향을 미쳤다. 우리는 환경보호 문제에 있어서도 함께 일한다. 아버지는 내가 젊었을 때 어떤 영화와 역을 선택할 것인지에 대해서도 조언을 했다. 늘 역사적으로 의미가 있고 또 중요한 얘기를 가진 영화를 고르라고 조언했다. 난 늘 아버지와 마주앉아 그의 얘기를 경청하곤 했는데 그것이 내가 받은 가장 훌륭한 교육이었다. 아버지는 매우 박식한 사람으로 내가 17세 때 프랑스 시인 아르튀르 랭보 역을 맡은 것도 아버지의 조언에 따른 것이다.”

-이 영화는 자연과 신과 함께 하는 영혼의 여정의 이야기이기도 한데 혹시 영화를 찍으면서 영적인 경험이라도 했는가.
“그런 순간들이 있었다. 자연 속에서 그렇게 오래 있으면서 영화 만든다는 일이 외적으로나 내적으로 너무 힘들어 그것으로부터 떨어져 나오기 위해선 영적인 느낌을 가지지 않을 수가 없었다. 이 영화는 알레한드로와 나의 실존적 여행이나 마찬가지다.”

-당신이 인조 다이아몬드를 제작하는 연구소에 투자했다는 말을 들었는데.
“그렇다. 다이아몬드를 채취하기 위해 지구 환경에 미치는 악영향을 줄이기 위한 목적이다. 땅을 파고 자원을 캐내면서 지구를 오염시키지 않고 다이아몬드를 인공적으로 만들 수 있는 방안을 찾아내기 위해서다. 자연을 해치면서 동물 모피를 수집하는 영화 속 인물들이나 개인적 산업적 목적을 위해 다이아몬드를 채취하는 사람들이나 다 마찬가지다.”

-조지 클루니도 결혼 안 한다고 말했다가 결혼했는데 당신도 그의 전철을 밟을 것인가.
“그런 문제에 대해 얘기를 했다간 터무니없게 과대 포장돼 보도가 되는 바람에 말을 하지 않겠다. 그러나 한 가지 분명한 것은 난 환경보호를 이해하지 못하는 사람과는 결코 함께 있을 수가 없다.”    

-당신의 인생 여정을 지금 함께 하고 있는 사람이 누구인가.                
“훌륭한 가족과 친구들과 삶을 즐기고 있다. 미안한 말이나 내 개인적 문제에 대해선 과거보다 더 말하기가 조심스러워졌다. 좌우간 난 행복하다.”

-당신은 늘 “나는 행운아”다 라고 말하는데 영화 말고 개인적으로 어떻게 행운아라는 것을 증명할 수 있는가.
“나의 아버지가 내게 이런 말을 해 주었다. 무엇을 하든지 흥미 있는 인생을 살려고 시도할 것이며 또 네가 어떤 직업을 가지든지 간에 매일 아침에 일어나 바지를 입을 때 행복하다고 느껴야 한다고. 내가 100% 이를 이룬 것은 아니나 그것이 나의 야망이다. 그리고 이런 말이 마치 커다란 환상처럼 들릴지 모르나 나는 배우로서나 개인적으로 매일 같이 하루가 끝날 때 마다 내 주위에 훌륭한 사람들이 있다는 것을 큰 행운으로 여긴다.”

-당신의 아버지 말고 어머니는 당신에게 어떤 영향을 미쳤는가.
“나의 어머니는 나이가 들수록 더 가차 없이 솔직하다는 점에서 잘 익은 포도주라고 하겠다. 어머니는 믿을 수 없을 정도로 가혹하게 솔직한데 독일계여서 그런 것 같다. 그렇게 솔직하려면 용감해야 한다. 어머니는 모든 사람들에게 에누리 없이 솔직한 것을 매우 자랑스럽게 여기고 있다. 그래서 난 어머니가 사람들에게 얘기한 뒤에 그 말의 진의가 무엇이지를 여러 번 해명해야 할 경우가 있었다. 정말 멋있고 흥미진진하지만 때로는 어머니의 솔직함을 말려야 할 필요가 있다. 난 어머니가 내게 그렇게 가차 없이 솔직할 때면 그냥 웃어넘긴다. 우리 집 사람들은 다 솔직한데 그것은 우리 할머니에게서 물려받은 것이다.”

-당신이 이 지구상에서 가장 있기에 편안하게 느끼는 곳은 어디인가.
“나는 여행을 많이 했는데 그 중에서도 가장 기억에 남는 곳 중의 하나가 아마존 정글이다. 문명에서 떨어진 참으로 아름다운 자연의 정수가 그대로 드러난 곳이다. 마치 내가 어릴 때 꿈꾸던 주라기 시대로 돌아간 것 같은 경험을 했다. 다른 하나는 캄보디아의 앙코르와트이다. 난 그렇게 마법적인 곳은 여태껏 본 적이 없다. 아름다운 사원들을 구경하면서 며칠이고 모든 것을 잊고 보낼 수 있는 곳이다.”

-영화가 너무 폭력적이라고 생각하지 않는가.
“이 영화의 폭력은 그 시대에 정확하게 맞춰 묘사한 것이다. 그리고 이 영화는 폭력과 함께 아름다움도 잘 다루고 있다. 이 영화는 자연의 야만성과 아름다움을 잘 융화시킨 작품이다. 가장 어려웠던 일은 혹한으로 너무 추워 때론 카메라가 얼어붙어 작동을 하지 않을 때도 있었다. 손가락이 아플 정도였으나 난 내가 어떤 영화에 나온다는 것을 알고 있었기 때문에 그 고통을 견뎌냈다.”

-영화에서 당신은 거의 말을 안 하다시피 하는데 그 것에 대해 말해 달라.
“그 점이 내겐 마음에 들었다. 그래서 난 알레한드로에게 대사를 더 빼 달라고 졸랐다. 주인공의 인물과 성격을 제대로 표현하려면 대사가 가급적 적어야 했기 때문이다. 우리는 주인공의 느낌을 그의 눈에서 읽을 수 있는데 과거 말을 많이 하는 영화에 여러 편 나온 나로선 매우 새로운 경험이었다. 나는 말 대신 주인공의 본능에 의존하려고 했다. 그래서 내 연기는 즉흥적인 것이 많다.”      
                                                      <한국일보 박흥진 편집위원/ hjpark1230@gmail.com>


배트맨 대 수퍼맨: 정의의 새벽 (Batman v Superman: Dawn of Justice)


배트맨과 수퍼맨이 일전에 들어가기 전 서로 기를 올리고 있다.

수퍼맨과 배트맨 억지스러운 라이벌 스토리


소문난 잔치에 먹을 것 없다더니 워너 브라더스가 2억여달러의 제작비를 투입해 만든 이 만화가 원전인 수퍼히로 영화는 정말로 사람 피곤하게 만든다. 소음과 파괴와 특수효과로 뒤범벅을 한 지루하기 짝이 없는 거대한 추물이다. 끝나는가 하면 또 계속되고 끝나는가 하면 또 쓸데없는 얘기를 하면서 시람 진을 빼놓는다. 상영시간 153분.
배트맨과 수퍼맨을 라이벌로 만들어 싸움을 시키느라 얘기를 억지로 만들었는데 여기에 한술 더 떠서 원더 우먼(갤 개도)까지 나와 난동에 참여한다. 감독 잭 스나이더가 본 영화가 시작되기 전 화면에 나와 “세계의 모든 팬들이 모두 즐기도록 내용을 말하지 말아 달라”고 부탁을 했는데 이런 서툰 아이들 장난 같은 영화가 흥행에 성공한다는 것은 실로 재앙이다.
배트맨과 수퍼맨 역의 벤 애플렉과 헨리 캐빌 외에도 하이텍 재벌로 수퍼맨 잡는데 혈안이 된  사악한 렉스 루터 역의 제시 아이젠버그 그리고 에이미 애담스(데일리 플래닛 기자 로이스 레인), 로렌스 피시번(데일리 플래닛의 편집국장), 제레미 아이언스(배트맨의 시종 알프레드), 다이앤 레인(수퍼맨의 인간 어머니 마사 켄트) 및 케빈 코스너(수퍼맨의 인간 아버지)까지 나오는 올스타 캐스트의 졸작이다.
연기마저 볼품 없는데 늘 부어 있는 애플렉과 미간을 찌푸리는 것이 큰 연기인 캐빌 그리고 오두방정을 떠는 아이젠버그와 광대 같은 피시번 및 ‘내가 여기 왜 나왔는가’하고 의문하는 듯한 아이언스와 소모되다시피 한 애담스 등이 다 그렇다.
수퍼맨이 메트로폴리스의 시민들을 사악하고 파괴적인 침입자들로부터 구하는 과정에서 그에 따른 피치 못할 부수적 파괴가 동반되자 사람들은 지금까지 인류 구원자로 떠받들던 수퍼맨(인간일 때는 데일리 플래닛 기자요 로이스 레인의 애인인 클라크 켄트)을 두려워하게 되고 이를 지켜보는 배트맨(인간일 때는 억만장자 브루스 웨인)이 수퍼맨을 위험분자로 간주, 처치하기로 결심한다. 
이런 두 수퍼히로의 마찰을 이용해 수퍼맨 나아가서 배트맨을 제거하고 자신이 창조해낸 막강한 파괴력을 지닌 흉물 둠스데이를 이용해 세상을 혼자서 말아 먹으려는 자가 루터. 그래서 눈에서 빨간 광선을 분출하는 케이프를 입은 수퍼맨과 박쥐 가면에 박쥐 옷을 입은 배트맨 간에 사생결단의 결투가 벌어진다. 누가 이길까요. 마지막 둠스데이가 고함을 지르면서 나선 싸움에는 원더 우먼이 끼어들어 여성파워를 과시한다. 한스 짐머의 음악이 소음에 가세한다. PG-13. 전지역.★★(5개 만점)
                                               <한국일보 박흥진 편집위원/ hjpark1230@gmail.com>

산하고인(Mountains May Depart)


타오(왼쪽)가 고향을 떠나는 리앙지 때문에 괴로워하고 있다.

현대 중국사회를 향한 지아 장케 감독의 메시지



급속히 자본주의화 하는 중국사회의 신흥 부르주아와 이런 흐름에 뒤떨어진 서민층의 문제와 함께 이들의 사회적 지위와 정체성의 혼란 등을 끊임없이 다루는 중국의 지아 장케 감독의 작품으로 이런 변화가 몰고 오는 상실과 후회를 매우 감정적이요 아름답고 또 사실적이며 진지하게 다루고 있다.
1999년부터 시작해 2014년과 2025년의 시간대를 통과하면서 부의 추구와 삼각관계와 이별과 그리움 그리고 이민과 부자간의 문화와 세대갈등 등을 상세하게 다룬 멜로드라마로 전반적으로 슬픈 분위기를 지녔지만 궁극적으로 긍정적인 결론을 맺는다. 연기와 중국의 팝송을 많이 쓴 음악 그리고 촬영 등이 다 좋은 영화로 한국 사람들에겐 남의 얘기 같지가 않을 것이다.
1999년 신년 전날 중국 북부의 휀양(감독의 고향). 교사인 아름답고 독립심 강한 20대의 타오(감독의 부인 자오 타오)는 함께 자란 두 남자 리앙지(리앙 진 동)와 진쉥(장 이)의 사랑을 동시에 받는다. 과묵한 리앙지는 탄광에서 일하고 주유소를 가진 저돌적인 진쉥은 자동차와 현찰을 지닌 금전만능형.
그런데 타오가 진쉥을 선택하면서 리앙지는 고향을 떠나는데 그와 타오의 이별 장면이 고요하게 가슴을 아픔과 슬픔으로 적신다. 진쉥과 타오는 결혼하고 진쉥은 갓난 아들 이름을 달러라고 짓는다. 상영시간이 50분 정도 지나고 2014년이 되면서 메인타이틀이 나온다. 리앙지는 타향에서 결혼해 아들을 보나 탄광에서 일하다가 암에 걸려 죽으려고 귀향한다.
타오는 이혼해 혼자 주유소를 경영하면서 넉넉하게 사는데 7세난 아들은 상하이에서 이름도 피터로 바꾼 투자가 아버지와 함께 산다. 타오는 아들이 자기보다 아버지와 함께 사는 것이 낫다고 판단, 멀리서 그리워만 한다.
한편 리앙지와 타오는 리앙지의 아내의 주선으로 재회를 하는데 이 장면 역시 고즈넉하게 곱고 슬프다. 그리고 타오의 아버지가 사망하면서 달러가 장례식에 참석한다. 타오는 며칠 자기와 함께 있던 달러와 같이 기차를 타고 상하이로 가는 비행장까지 가는데 이 과정에서 그간 소원했던 모자관계가 소생한다.
2025년. 달러는 아버지와 함께 호주에서 산다. 정체성과 문화갈등에 시달리는 18세의 달러(동 지지안)는 정신적으로 파산한 아버지와 격한 대결을 벌인다. 이를 위로하는 여자가 달러에게 중국어를 가르치는 여선생 미아(실비아 챙)로 미아는 달러에게 타오의 대리모 격. 끝 부분은 나이 먹고 혼자 사는 타오의 집으로 돌아오는데 눈 오는 벌판에서 타오가 미소를 지으면서 혼자 춤을 추는 라스트신에서 모든 갈등과 그리움과 상실과 고독과 후회가 아름다운 타협을 맺는다. 자오 타오의 연기가 빛이 난다. 성인용. 일부 지역. ★★★½(5개 만점)
                                               <한국일보 박흥진 편집위원/ hjpark1230@gmail.com>
 

‘웨스트월드’




인공지능(A.I.) 알파고가 인간 이세돌과의 바둑대결에서 승리하자 사람들은 기계가 인간을 지배할 날이 멀지 않았다고 아우성을 쳐댔다. 그런데 기계는 인간을 상대로 백가몬과 체커스 및 체스게임을 벌여 이긴 지가 이미 오래돼 알파고의 승리는 올 것이 온 것이라고 봐도 되겠다.
알파고의 이세돌 제압이 있기 전에 인간은 이미 기계의 노예가 되다시피 한 것이 사실이다. 사람들은 이젠 없으면 못 사는 스마트폰을 맘몬처럼 섬기며 살고 있다. 매년 모양을 바꿔 나오는 스마트폰을 사려고 가게 앞에 장사진을 친 사람들을 보면 마치 맘몬에게 경배하기 위해 신전 앞에 모여든 우상숭배자들을 보는 것 같다.
컴퓨터와 로봇은 이미 인간의 활동영역을 깊숙이 파고들었다. 호텔 심부름꾼과 자동차 조립 같은 단순직에서부터 병원과 금융계를 비롯해 무대와 스크린의 배우 그리고 작곡과 그림을 그리고 소설과 기사도 쓰고 있다. 기자인 내 자리도 위태롭다.    
내가 기계가 사람 잡겠구나 하고 절실히 느낀 것이 스탠리 쿠브릭의 ‘2001: 스페이스 오디세이’에 나오는 빨간 눈동자처럼 생긴 컴퓨터 ‘핼’을 보면서였다. 말하고 감정을 표현하며 독순술까지 지닌 ‘핼’은 우주선 디스커버리 1호의 전 기계와 생명보조 체계를 책임지고 있는데 절대로 오류를 범할 수 없는 ‘핼’이 오류를 범하면서 우주인들이 ‘핼’의 전원을 끊어버리기로 결정한다. 그러나 두 우주인의 대화를 멀리서 독순술로 읽은 ‘핼’은 자기를 죽이려는 인간을 먼저 제거한다. 그런데 ‘핼’의 오류가 과연 진짜 오류인가 아니면 인간을 제거하고 자신이 우주선의 주인이 되고자 하는 ‘핼’의 술책인가.
영화는 일찌감치 인간이 기계의 노예가 되고 또 그것들이 인간 행세를 하는 모습을 보여주었다. 프리츠 랭의 무성영화 ‘메트로폴리스’와 채플린의 무성영화 ‘모던 타임스’가 기계화된 인간세계를 묘사한 대표적 작품이다.
공상과학 공포영화 ‘악마의 종자’에서는 A.I. 프로테우스가 인간 모습의 자기 아이를 낳기 위해 자기를 발명한 과학자의 아내 수전(줄리 크리스티)의 세포를 추출한 뒤 정자를 합성해   강제로 임신을 시킨다. 컴퓨터와 인간 사이의 인공수정이다. 스필버그도 ‘A.I.’에서 사랑할 수 있도록 프로그램 된 로봇소년 데이빗을 통해 인공지능과 인간과의 공존을 탐색했다.
얼마 전에 합성고무 소재로 인간의 피부와 비슷한 느낌을 주고 성관계가 가능한 인공지능을 갖춘 실제 여자와 같은 섹스로봇 ‘록시’가 출시된다고 해서 ‘인간과 로봇과의 성관계’에 관한 논란이 있었다. 반대론자들은 “이것은 남녀뿐 아니라 모든 인간관계에 해롭다”고 주장한 반면 찬성론자들은 “인공지능을 갖추면 주인과 대화도 하고 취향까지도 스스로 파악할 수 있어 인간끼리의 관계보다 더 큰 만족감을 느낄 수 있다”고 말했다.
영화 ‘허’(Her)의 테오도어(와킨 피닉스)도 여자의 음성으로 인간화한 지적인 컴퓨터 시스템 새만사(스칼렛 조핸슨)와 사랑의 밀어를 나눈다. 아주 로맨틱한데 육체가 없는 음성과의 사랑의 대화여서 애잔하다. A.I.가 인간지능을 초월할 가능성은 얼마든지 있다. 지난해에 나온 ‘엑스-마키나’의 인간과 똑같이 생긴 로봇 에이바(알리시아 비칸더-올해 ‘덴마크 여인’으로 오스카 조연상)가 그렇다. 에이바는 자신에게 A.I.를 준 창조자 인간을 살해하고 자유를 찾아가는데 이야말로 인간의 신에 대한 반역과도 같다.
기계가 사람을 잡는 영화 중에서 진짜로 흥미진진한 것은 소설 ‘주라기 공원’을 쓴 마이클 크라이턴이 각본을 쓰고 감독으로 데뷔한 ‘웨스트월드’(Westworld·사진)다. 공상과학 웨스턴 스릴러인 영화의 무대는 미래의 성인용 위락공원 ‘델로스’. 이 곳에는 사람과 똑같이 말하고 행동하는 로봇들이 사는 ‘웨스트월드’와 ‘중세세계’ 및 ‘로마세계’ 등 3개의 세계가 있어 사람들은 하루에 1,000달러를 내고 셋 중 한 곳을 골라 과거를 실제처럼 체험할 수가 있다.
두 친구 존과 피터가 선택한 곳이 ‘웨스트월드.’ 옛날 서부와 똑같은 세계로 바에서 로봇술꾼들과 싸움도 할 수 있고(물론 인간이 이긴다) 로봇창녀와 섹스를 즐길 수도 있다. 그 중에서도 가장 흥분되는 것은 로봇건맨(율 브린너-움직이지 않는 눈동자와 무표정한 얼굴이 로봇 같다) 과의 결투. 건맨이 존과 피터에게 시비를 걸어 총격전이 벌어지고 죽는 것은 로봇. 죽은 로봇건맨은 수리 후 이튿날 다시 나타난다.              
그런데 로봇들에게서 이상이 생기고 이들이 통제실의 말을 안 듣고 제 멋대로 행동하면서 지금까지 자신들을 희롱의 대상으로 즐기던 인간들을 살해하기 시작한다. 이런 사실을 모르고 로봇건맨에게 다시 결투를 신청한 존이 살해되고 이어 로봇이 피터를 살해하기 위해 집요하게  추격하면서 피터는 숨이 턱에 차도록 달아난다. 기계의 인간에 대한 역습이요 반란이다. A.I.가 인간을 지배할 날이 멀지 않은지도 모른다.
                                                              <한국일보 박흥진 편집위원/ hjpark1230@gmai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