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이야기

2017년 2월 10일 금요일

‘핵소 고지’(Hacksaw Ridge) 감독 멜 깁슨




“이 영화는 인간이 필히 가져야할 사랑의 이야기”


배우요 감독인 멜 깁슨(60)은 술에 취해 유대인을 욕하고 동성애자를 싫어하는 발언을 하고 또 애인에게 폭행을 해 할리우드의 ‘페르소나 논 그라타’(기피인물)가 되다시피 했지만 영화 하나는 잘 만든다. ‘아포칼립토’ 이후 10년 만에 다시 메가폰을 잡은 전쟁영화 ‘핵소 고지’(Hacksaw Ridge)가 그 좋은 예이다. ‘핵소 고지’는 신앙을 이유로  집총을 거부하고 의무병으로 태평양전쟁에 참전한 미군 데스몬드 T. 도스의 혁혁한 무공실화이다. 필자가 본 전쟁영화 중 가장 치열하고 참혹하고 사실적이다. 이영화는 오는 26일에 열리는 아카데미시상식에서 작품^감독^남우주연상 등 후보에 올랐다.    
깁슨과의 몇 차례 인터뷰 때마다 느끼는 점은 그가 정서가 불안정한 사람 같다는 것. 좌불안석에 황소 눈알을 굴려가면서 고함을 지르다 시피하며 질문에 답하는 것을 보면 겁이 날 지경이다. 그러나 최근 ‘핵소 고지’를 위해 베벌리 힐스의 포시즌스 호텔에서 만난 깁슨은 세월 탓인지 정서가 많이 안정된 것 같았다. 그는 인도 도사의 것을 닮은 수염을 계속해 쓰다듬으면서 몸과 손을 사용한 큰 제스처를 동원, 물음에 시치미를 뚝 뗀 유머까지 섞어 힘차게 대답했다. 체격만큼이나 안으로도 매우 건장한 사람이라는 인상을 받았다.  

-영화의 어느 점이 마음에 들어 감독하기로 결심했는가.
“나는 이 영화를 전쟁영화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사랑의 얘기다. 인간이 필히 가져야할 사랑의 얘기이자 형제를 결코 해치지 않겠다는 사랑의 얘기다. 또 자기 목숨을 남을 위해 내놓을 수 있는 사랑의 얘기다. 데스몬드 도스의 얘기는 물결을 거슬러 올라가는 연어의 얘기이다. 비폭력주의자인 그는 지상의 지옥인 전장에서 폭력과 핍박과 차별의 물결을 거슬러 올라가 자신의 영혼을 아름답게 가꾸면서 사랑을 보여준 선험적이요 순수한 사람이다. 이것이야 말로 영웅정신의 절정이라고 하겠다. 각본을 읽었을 때 이런 얘기가 내 심장을 꿰뚫고 들어왔다.”

-사람들은 이 영화를 감독의 할리우드 복귀영화라고 하는데 그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는가.
“난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다. 마지막 영화를 감독한지 오래되지만 그것은 한번 배우면 잊지 않는 자전거를 타는 것 같아서 다시 타니 편하고 기분 좋다. 난 그동안 쉬고 있는 것 같았지만 계속해 각본을 쓰고 영화를 구상해왔다. 지금 구상중인 영화가 4-5편쯤 된다. 물론 그 동안 이런 저런 영화에서 연기도 했다. 쉬면서 배운 좋은 것은 제물낚시를 배운 것이다. 난 지금 정신적으로 육체적으로 아주 좋은 상태다.”

-이런 훌륭한 얘기가 왜 이제야 만들어졌는가.
“데스몬드가 지극히 사적인 사람이어서 자기 얘기를 영화로 만들기를 원치 않았다. 그는 평생에 한 번도 영화관에 가질 않은 사람이다. 지난 1948년부터 영화인들이 이 얘기를 영화로 만들려고 데스몬드와 접촉했으나 그는 이를 거절했다. 그러다가 그가 나이를 먹자 마음이 누그러져 자기 얘기의 영화화 판권을 자기가 다니는 교회에 넘겼고 교회는 조건을 달아 영화화를 허락했다. 데스몬드는 자기 얘기를 자랑하고파하지 않는 겸손한 사람이었다. 그는 자신이 행한 모든 것을 하나님의 일이라고 생각했다.”

-이 영화가 분쟁이 끊이지 않고 있는 요즘 세상에 어떤 메시지를 줄 수 있다고 생각 하는가
“그렇다. 아까도 말했지만 이 영화는 전쟁을 둘러싼 얘기이나 사랑의 얘기이기 때문이다. 내가 전쟁의 참상을 가능한대로 사실적으로 표현하고자 한 까닭은 전쟁에서 싸운 사람들을 치하하기 위해서다.
데스몬드가 적진에서 부상한 아군을 철수 시키고 있다.
 그리고 관객들에게 전쟁의 참혹상을 알려주고 싶었고 또 전쟁의 공포를 초월하기 위해선 영적으로 어떤 대가를 치러야하는 가를 알려주고 싶었다. 모든 것을 견디고 일어난다는 메시를 지닌 영화다.”

-배우들을 어떻게 군대식으로 훈련시켰는가.
“군인들을 불러다 훈련시키긴 했으나 길진 않았다. 그러나 그들은 한 팀이 되어 정신을 집중해 훈련에 임했다. 그리곤 금방 맥주친구들이 됐다. 명 교관들이었다. 그 중 한 명은 영화에서 군인으로 나온다.”

-오키나와 전투인 영화를 어디서 찍었는가.
“오키나와는 너무 멀어 못 갔고 호주에서 찍었다.

-데스몬드는 부상당한 일본군도 구출했는데 사실인가.
“그렇다. 그가 고지에서 일본군을 들것에 실어 아래로 내릴 때 미군들은 이를 중지하라고 말했으나 그는 이를 따르지 않았다. 그리고 그는 또 터널에서 심하게 부상한 일본군을 만나자 그에게 모르핀을 놔줘 고통을 들어주었다. 이런 것이야 말로 영화의 본질이다.”

-감독은 데스몬드 같이  용감할 수 있는가.
“그렇지 못하다. 난 비겁자다. 나도 가끔 내가 자랑스럽게 여기는 일을 하긴 하나 또 때론 그렇지 못하다. 내가 이 얘기를 좋아하게 된 까닭도 데스몬드의 용기에 감복했기 때문이다. 난 상상 속에서도 그가 간 길을 가지 못할 것이다. 그의 용기야 말로 얘기할만한 것이 아닌가.”

-비폭력주의자인 데스몬드가 왜 전쟁에 지원해 나갔다고 보는가.
“그는 전쟁은 증오했지만 그의 형제들을 사랑했다. 우린 전쟁을 증오해야 하지만 그것은 하나의 사실이다. 불행스럽게도 전쟁은 늘 있어왔고 또 늘 있을 것이며 인류는 아마도 전쟁으로 멸망할지도 모른다. 전쟁을 좋아하건 싫어하건 간에 그것은 30-40년마다 일어나 우리의 귀싸대기를 패곤 한다. 그리곤 한 두 세대 동안 쉬었다가 또 일어난다.”

-한때 할리웃의 스타로 명성을 날렸는데 그것이 그립기라도 한가.
“그럼 내가 지금은 아니란 말인가. 명성이란 사라지게 마련이고 난 과거에도 그것을 그렇게 즐긴 편은 아니다. 그것 말고도 내게는 다른 삶이 있다. 아이들과 로맨틱한 일들이 내겐 아직도 제대로 있다.”

-데스몬드는 총이 아니라 사랑이라고 말했는데 상징적으로 영화는 감독의 삶의 무기인가.
“영화로 무엇인가를 말해 사람들에게 영향을 줄 수 있다. 영화로 사람들에게 영감을 불러 일으켜주고 그들을 행복하게도 또 슬프게도 만들 수 있다. 난 영화의 임무란 사람들을 즐겁게 해주고 교육시키며 정신을 고양시키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난 늘 이 이론을 따르려고 하는데 이 영화가 그런 일을 해냈다고 본다.”

-데스몬드는 결코 총을 잡기를 거부하는데 감독이 절대로 “노”라고 하는 것은 무엇인가.
“초콜릿과 파스타 먹는 것이다. 모르겠다. 전쟁에 나가서 적을 만났을 때 과연 내가 그를 죽일 수 있을지 의문이다.”

-할리웃을 떠나 있을 때 무엇이 가장 그리웠는가.
“영화로 얘기를 하는 것이었다. 그래서 그렇지 못할 경우 나는 다른 방법으로 얘기를 하곤 한다. 글을 쓰고 만찬을 위해 요리하는데 요리란 그 자체가 남과 공유할 수 있는 얘기이다. 가능한 한 자신을 표현할 수 있는 창조적 필요성을 지키려고 노력하고 있다. 그것이 나를 감금 상태에서 풀어 놓아주는 도구이다.”

-당신은 젊은 여자로부터 행복과 사랑을 찾는 것 같은데 그들이 당신이 삶에서 잃은 것이라도 채워주는가.
“나이란 숫자일 뿐이다. 내 애인(24세의 로잘린드 로스-승마선수이자 작가로 최근 깁슨의 아이를 출산했다)은 어른이고 우린 서로를 사랑하고 이해하고 있다. 그는 정말로 특별한 사람이다.”

-당신의 삶에 있어 무엇이 가장 자랑스러운가.
“내 일이다.  다음은 내 아이들이다.

-영웅적이란 무엇인가.
“그것은 사람과 그들의 행동을 통해 정의 내릴 수 있는 것으로 자기를 버리는 희생이다. 성공적인 결혼을 한사람들은 영웅들로 그들은 희생을 치러야 했기 때문이다. 그 중에서도 가장 영웅적인 것은 남을 위해 자기 목숨을 버리는 것이다.”

-종교적 의미가 강한 이 영화에 대한 종교단체의 반응은 어떤가.
“제7일 안식일교회를 비롯해 전국에서 여러 종교단체로부터 좋은 반응을 받았다. 어떤 장면은보기가 힘들었지만 좋은 메시지영화라는데 공감하는 것 같았다. 데스몬드는 겸손한 자로 저기 어딘가에 자기보다 더 중요하고 큰 것이 있다는 것을 믿지 않고서는 겸손할 수가 없다. 우리보다 더 위대한 것을 인정하는 것보다 더 좋은 메시지가 어디 있는가.”
                                                       <한국일보 박흥진 편집위원/ hjpark1230@gmail.com>


존 윅: 챕터 2(John Wick:Chapter 2)


암살자 존윅이 적을 향해 총구를 겨냥하고 있다.

은퇴 선언한 킬러, 규칙 때문에 다시 살인자로 


2014년에 나와 빅히트한 키아누 리브스 주연의 무차별 살육 액션 스릴러 ‘존 윅’의 속편으로 사체가 산처럼 쌓이고 유혈이 강같이 흐른다. 보지 않고선 믿지 못할 스턴트와 액션의 난장판으로 액션 팬들이 구름처럼 몰려들 것이다. 
은퇴했다 마지못해 다시 살인자가 된 존이 도대체 사람을 몇 명이나 죽일까 하고 궁금해 그 숫자를 세어봤더니 자그마치 130여명. 세자니 숨이 차다. 물론 존도 마땅히 죽어야 되는데도 살아남으니 그야말로 수퍼맨이라고 하겠다.
보잘 것 없는 내용과 멍청한 대사와 무연기의 폭력과 추격과 소음과 잔인으로 얼룩진 영화이지만 스턴트(리브스가 자동차 질주를 비롯해 자기 액션신은 대부분 본인이 했다)와 사람 대 사람 간의 손과 육신을 이용한 격투 및 시각적 스타일은 아주 보기 좋고 효과적이다. 
쏘고 차고 찌르고 목 조르고 치고 박으면서 인명이 살상되고 총과 칼과 몸과 자동차 그리고 펜과 연필 등이 흉기로 등장한다. 만화요 비디오 게임 같은 영화로 도가 지나쳐 실소가 터져 나온다. 제3편이 준비 중이다.   
서막식으로 존이 러시안갱으로 부터 자기 차인 검은 머스탱(차만 검은 것이 아니라 존의 의상도 검은 색이다)을 회수하는 장면으로 시작된다. 밤의 맨해탄을 머스탱과 러시안갱이 탄 자동차가 서로 쫓고 쫓으면서 액션이 콩 튀듯 하는데 존은 자동차에 치이고 갱으로부터 집단으로 공격을 받는데도 쓰러졌다가 오뚝이처럼 발딱 일어난다.
암살자 노릇을 그만 두기로 한 존에게 같은 암살단체 멤버인 산티노 단토니오(리카르도 스카마르시오)가 찾아와 자기에게 진 빚을 갚으라고 요구한다. 산티노는 과거 존을 구해준 적이 있는데 암살단체 규약에 의하면 진 빚은 반드시 갚게 돼있다. 그런데도 존이 산티노의 요구를 묵살하자 산티노는 존의 집을 폭파해 박살낸다. 
이에 존은 애견을(존은 사람보다 개를 더 사랑한다) 데리고 암살단체의 규율과 관습을 중재하는 비밀에 싸인 윈스턴(이안 맥셰인)을 찾아가 도움을 청한다. 윈스턴은 존에게 산티노에 대한 빚을 갚지 않으면 암살단체가 널 처치할 것이라고 말한다. 
그래서 존은 울며 겨자 먹기로 산티노의 요구를 실행하기고 한다. 산티노의 요구란 유럽의 범죄단체들의 수장으로 군림하려는 자기 여동생 지안나(클라우디아 제리니)를 죽이라는 것. 그래서 존은 로마로 간다. 
그리고 산티노는 존을 감시하라고 말 못하나 살인에는 특급기술을 지닌 자신의 여자 바디가드 에어리스(루비 로즈)를 파견한다. 따라서 존은 에어리스와 사투를 벌이게 되는데 그의 또 다른 적은 지안나의 치명적인 바디가드 카시안(랩가수 코먼이 잘 한다). 존과 두 킬러간의 육박전이 볼만하다. 
그러나 로마의 지하묘지에서 벌어지는 장시간의 총격전은 아이들 장난이다. 리브스가 일부러 그러는지 연기를 안 한다. 마지막의 거울의 방에서의 대결은 영화 ‘샹하이에서 온 여자’와 ‘용쟁호투’의 장면을 빌려다 쓴 것이다. 채드 스탈스키 감독. R. Summit. 전지역.
                                                        <한국일보 박흥진 편집위원/ hjpark1230@gmail.com>


유나이티드 킹덤(A United Kingdom)


루스(왼쪽)와 세레체는 온갖 차별을 극복하고 사랑을 지킨다.

흑인 왕자와 영국 백인 여성의 사랑… 차별을 극복한 실화 


현재 상영 중인 흑백사랑을 그린 ‘러빙’을 연상시키는 흑백사랑의 드라마로 실화다. 
현 보츠와나의 초대 대통령 세레체 카마와 영국의 사무원 루스 윌리엄스 간의 사랑과 결혼 그리고 그들이 차별과 난관을 극복하고 사랑을 지켜 나가는 얘기를 당의정 식으로 그렸다. 파란만장한 사랑과 그들의 극적인 역사적 배경을 너무 쉽고 안전 위주로 묘사해 내용이 갖고 있는 강렬성과 폭과 깊이를 충분히 못 살리고 있다.
인종차별과 정치적 사회적 역사적 문제를 비롯해 그야말로 드라마틱한 얘기인데 모든 것을 너무 소심하고 편안하게 그려 극적 흥분을 느끼기 힘들고 두 사람이 겪는 갈등과 슬픔 그리고 그리움 및 고뇌 등도 다 분홍빛 터치로 채색됐으나 호기심거리는 된다.      
1940년대. 런던서 유학중인 베추아나랜드(현 보츠와나)의 차기 왕이 될 왕자 세레츠(‘셀마’에서 마틴 루터 킹 주니어로 나온 데이빗 오이엘로)는 한 파티에서 만난 사무원 루스(로자먼드 파이크)를 보고 첫 눈에 반한다. 둘은 데이트에 들어가고 이어 세레츠는 루스에게 청혼한다.
물론 둘은 모두 양측 측근들로부터 이 결합에 대한 심한 반발을 받는다. 세레츠를 대신해 영국의 보호령인 베추아나랜드의 명목상 통치자 노릇을 하고 있는 세레츠의 삼촌 체케디(부시 쿠네네)는 조카의 흑백결합에 격렬히 반대하고 루스의 아버지는 딸을 가문에서 축출하겠다고 말한다.
이와 함께 영국 정부까지 둘의 결합을 반대한다. 베추아나랜드와 인접한 남아공이 막 ‘아파트헤이드’(흑백분리정책)를 실시한 뒤 영국정부에 대해 세레츠와 루스의 결합을 안 막으면 자국의 광물질 대영수출을 금지하겠다고 위협을 한다.  
여기서부터 세레츠와 루스의 사랑은 큰 시련을 겪게 된다. 어떻게 보면 둘의 시련은 인종차별 보다는 관계 국가 간의 정치적 놀음의 희생물이라고 하겠는데 이런 묵직한 내용이 아주 쉽게 처리됐다. 모든 것을 다 색깔론으로 처리한 멜로드라마적인 안이한 방식이다.
그러나 사랑은 모든 것을 극복해 두 사람은 오랜 결별 끝에 재회하고 세레츠는 영국으로부터 독립해 설립된 민주국가 보츠와나의 초대 대통령이 된다. 보츠와나의 현 대통령은 세레츠의 아들이다. 인물들의 개성 묘사와 연기도 그저 무난한 편이다. 오이엘로의 실제 백인 부인 제시카가 극중 영국 정부관리의 부인으로 나온다. 암마 아산테 감독. PG-13. Fox Searchlight.
                                                             <한국일보 박흥진 편집위원/ hjpark1230@gmail.com>


‘곡성’리메이크


얼마 전에 인터넷신문 스포츠한국을 보다가 참으로 답답한 기사를 읽고 이 글을 쓴다. “나홍진 감독 ‘곡성’, 리들리 스콧 프로덕션 리메이크 제안…단박에 거절했다”라는 제하의 기사 내용은 다음과 같다.
18일 오후 서울 중구 한국프레스센터에서 ‘2016 올해의 영화상’ 시상식이 진행된 가운데 나홍진 감독의 ‘곡성’(사진)이 올해의 작품상 수상작으로 선정됐다. 수상을 위해 무대에 오른 김호성 폭스인터내셔널 프로덕션 코리아 대표는 리들리 스콧이 제작자로 있는 스콧 프리 프로덕션으로부터 ‘곡성’의 리메이크 제안을 받았다고 말했는데 이 사실을 시상식에 참석한 나홍진 감독은 몰랐다는 것.
이어 김대표는 “오늘 영국에서 전화 한 통을 받았다. 박찬욱 감독의 ‘스토커’(박감독의 할리웃 데뷔작)에 참여한 프로덕션에서 리메이크 하고 싶다더라”라며 “그래서 안 된다고 했다. 이건 나홍진 감독이 아니면 못 만든다며 전화를 끊었다”고 말했다고 한다. 이에 나홍진 감독은 “잘 하셨다”고 화답했다는 것이다.
작품상과 함께 감독상도 탄 ‘곡성’(나감독이 각본도 썼다)은 작년에 한국에서 개봉된 귀신 스릴러 드라마다. 작은 마을 곡성에 외지인(일본 배우 쿠나무라 준)이 나타나면서 벌어지는 의문의 연쇄 사건들을 놓고 경찰(곽도원)과 무속인(황정민)까지 동원돼 사건을 풀어나가는 이야기다. 나는 귀신 도깨비 영화 팬이 아니고 영화가 한국영화 특유의 잔인성과 폭력이 자심하지만 아주 잘 만들었다. 이 영화는 LA 타임스 등 미 신문들로부터도 호평을 받았다.
김호성씨가 왜 감독에게도 알리지도 않고 할리웃의 리메이크 요구를 단박에 거절했는지 속사정은 알바 없으나 나는 이 기사를 읽으면서 김대표와 나감독의 근시안적 태도에 아연실색할 수밖에 없었다. 두 사람은 다 리메이크 제안에 그러라고 대답하고 협상에 들어갔어야 한다.
수출인 리메이크는 국위선양과 국익에도 크게 기여한다. 할리웃의 리메이크하면 대뜸 생각나는 영화가 아키라 쿠로사와가 감독하고 도시로 미후네가 주연한 걸작 ‘7인의 사무라이’(Seven Samurai^1954)다. 이 영화는 ‘O.K.목장의 결투’와 ‘건힐의 마지막 열차’ 같은 웨스턴을 잘 만든 존 스터지스 감독에 의해 ‘황야의 7인’(The Magnificent Seven^1960)으로 리메이크 돼 빅히트를 했다. 서부영화를 본 쿠로사와는 만족해 스터지스에게 일본도를 선물했다고 한다.
‘황야의 7인’은 작년에는 덴젤 워싱턴과 이병헌이 나오는 신판으로 다시 만들어져 성공했는데  ‘황야의 7인’이 거론될 때마다 따라 붙는 이름이 ‘7인의 사무라이’다. ‘7인의 사무라이’없는 ‘황야의 7인’은 없다는 말이다.
또 다른 유명한 리메이크가 세르지오 레오네가 감독하고 무명씨나 다름없던 클린트 이스트우드를 대뜸 스타로 만들어준 ‘황야의 무법자’(Fistfull of Dollars^1964)다. 이 영화 역시 쿠로사와가 감독하고 미후네가 나온 사무라이 영화 ‘요짐보’(Yojimbo^19561)가 원작이다. ‘요짐보’는 1996년에는 브루스 윌리스 주연의 ‘라스트 맨 스탠딩’(Last Man Standing^1996)으로 리메이크 됐다. 그러니까 ‘황야의 무법자’가 재 상영될 때마다 거론되는 것이 ‘요짐보’다.
이 밖에도 쿠로사와가 감독하고 역시 미후네가 주연한 또 다른 사무라이 영화 ‘숨겨진 성채’(The Hidden Fortress^1958)는 조지 루카스 감독의 ‘스타 워즈’의 모태가 된 영화다. 또 쿠로사와와 미후네 콤비가 만든 ‘라쇼몬’(Rashomon^1950)도 폴 뉴만 주연의 ‘분노’(The Outrage^1964)로 리메이크 됐다.
할리웃이 외국영화를 리메이크한 것은 어제 오늘의 일이 아니다. 코주부 장 가방이 나온 프랑스의 시적 사실주의 작품인 ‘페페 르 모코’(Pepe le Moko^1937)는 바로 그 다음 해 샤를르 봐이에와 헤디 라마 주연의 ‘알지에’(Algiers)로 리메이크 됐다. 그리고 마틴 스코르세지가 오스카 감독상을 탄 ‘디파티드’(The Departed^2006)는 홍콩영화 ‘무간도’(The Internal Affairs^2002)가 원작이다.
한국영화도 몇 편 할리웃에 의해 리메이크 됐다. 그 중 대표적인 것이 박찬욱 감독의 ‘올드보이’다. 이 영화는 지난 2003년 스파이크 리가 감독하고 조쉬 브롤린이 주연한 동명영화로 리메이크 됐으나 비평가들의 악평과 함께 흥행서도 참패했다. 이 밖에도 ‘시월애’ ‘장화, 홍련’ ‘엽기적인 그녀’ 등도 리메이크 됐다.
김대표와 나감독이 한국인이 만든 토속적인 원작의 뜻을 외국인이 제대로 소화를 못할 것이 두려워 ‘곡성’에 대한 실력 있는 미 제작사의 리메이크 제안을 거절하고 동의 했는지는 몰라도 그것은 길게 앞을 내다보지 못하는 단견의 조치이다. 이제라도 그 제안에 응하길 바란다.
                                                       <한국일보 박흥진 편집위원/ hjpark1230@gmai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