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영화는 인간이 필히 가져야할 사랑의 이야기”
배우요 감독인 멜 깁슨(60)은 술에 취해 유대인을 욕하고 동성애자를 싫어하는 발언을 하고 또 애인에게 폭행을 해 할리우드의 ‘페르소나 논 그라타’(기피인물)가 되다시피 했지만 영화 하나는 잘 만든다. ‘아포칼립토’ 이후 10년 만에 다시 메가폰을 잡은 전쟁영화 ‘핵소 고지’(Hacksaw Ridge)가 그 좋은 예이다. ‘핵소 고지’는 신앙을 이유로 집총을 거부하고 의무병으로 태평양전쟁에 참전한 미군 데스몬드 T. 도스의 혁혁한 무공실화이다. 필자가 본 전쟁영화 중 가장 치열하고 참혹하고 사실적이다. 이영화는 오는 26일에 열리는 아카데미시상식에서 작품^감독^남우주연상 등 후보에 올랐다.
깁슨과의 몇 차례 인터뷰 때마다 느끼는 점은 그가 정서가 불안정한 사람 같다는 것. 좌불안석에 황소 눈알을 굴려가면서 고함을 지르다 시피하며 질문에 답하는 것을 보면 겁이 날 지경이다. 그러나 최근 ‘핵소 고지’를 위해 베벌리 힐스의 포시즌스 호텔에서 만난 깁슨은 세월 탓인지 정서가 많이 안정된 것 같았다. 그는 인도 도사의 것을 닮은 수염을 계속해 쓰다듬으면서 몸과 손을 사용한 큰 제스처를 동원, 물음에 시치미를 뚝 뗀 유머까지 섞어 힘차게 대답했다. 체격만큼이나 안으로도 매우 건장한 사람이라는 인상을 받았다.
-영화의 어느 점이 마음에 들어 감독하기로 결심했는가.
“나는 이 영화를 전쟁영화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사랑의 얘기다. 인간이 필히 가져야할 사랑의 얘기이자 형제를 결코 해치지 않겠다는 사랑의 얘기다. 또 자기 목숨을 남을 위해 내놓을 수 있는 사랑의 얘기다. 데스몬드 도스의 얘기는 물결을 거슬러 올라가는 연어의 얘기이다. 비폭력주의자인 그는 지상의 지옥인 전장에서 폭력과 핍박과 차별의 물결을 거슬러 올라가 자신의 영혼을 아름답게 가꾸면서 사랑을 보여준 선험적이요 순수한 사람이다. 이것이야 말로 영웅정신의 절정이라고 하겠다. 각본을 읽었을 때 이런 얘기가 내 심장을 꿰뚫고 들어왔다.”
-사람들은 이 영화를 감독의 할리우드 복귀영화라고 하는데 그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는가.
“난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다. 마지막 영화를 감독한지 오래되지만 그것은 한번 배우면 잊지 않는 자전거를 타는 것 같아서 다시 타니 편하고 기분 좋다. 난 그동안 쉬고 있는 것 같았지만 계속해 각본을 쓰고 영화를 구상해왔다. 지금 구상중인 영화가 4-5편쯤 된다. 물론 그 동안 이런 저런 영화에서 연기도 했다. 쉬면서 배운 좋은 것은 제물낚시를 배운 것이다. 난 지금 정신적으로 육체적으로 아주 좋은 상태다.”
-이런 훌륭한 얘기가 왜 이제야 만들어졌는가.
“데스몬드가 지극히 사적인 사람이어서 자기 얘기를 영화로 만들기를 원치 않았다. 그는 평생에 한 번도 영화관에 가질 않은 사람이다. 지난 1948년부터 영화인들이 이 얘기를 영화로 만들려고 데스몬드와 접촉했으나 그는 이를 거절했다. 그러다가 그가 나이를 먹자 마음이 누그러져 자기 얘기의 영화화 판권을 자기가 다니는 교회에 넘겼고 교회는 조건을 달아 영화화를 허락했다. 데스몬드는 자기 얘기를 자랑하고파하지 않는 겸손한 사람이었다. 그는 자신이 행한 모든 것을 하나님의 일이라고 생각했다.”
-이 영화가 분쟁이 끊이지 않고 있는 요즘 세상에 어떤 메시지를 줄 수 있다고 생각 하는가
“그렇다. 아까도 말했지만 이 영화는 전쟁을 둘러싼 얘기이나 사랑의 얘기이기 때문이다. 내가 전쟁의 참상을 가능한대로 사실적으로 표현하고자 한 까닭은 전쟁에서 싸운 사람들을 치하하기 위해서다.
데스몬드가 적진에서 부상한 아군을 철수 시키고 있다. |
-배우들을 어떻게 군대식으로 훈련시켰는가.
“군인들을 불러다 훈련시키긴 했으나 길진 않았다. 그러나 그들은 한 팀이 되어 정신을 집중해 훈련에 임했다. 그리곤 금방 맥주친구들이 됐다. 명 교관들이었다. 그 중 한 명은 영화에서 군인으로 나온다.”
-오키나와 전투인 영화를 어디서 찍었는가.
“오키나와는 너무 멀어 못 갔고 호주에서 찍었다.
-데스몬드는 부상당한 일본군도 구출했는데 사실인가.
“그렇다. 그가 고지에서 일본군을 들것에 실어 아래로 내릴 때 미군들은 이를 중지하라고 말했으나 그는 이를 따르지 않았다. 그리고 그는 또 터널에서 심하게 부상한 일본군을 만나자 그에게 모르핀을 놔줘 고통을 들어주었다. 이런 것이야 말로 영화의 본질이다.”
-감독은 데스몬드 같이 용감할 수 있는가.
“그렇지 못하다. 난 비겁자다. 나도 가끔 내가 자랑스럽게 여기는 일을 하긴 하나 또 때론 그렇지 못하다. 내가 이 얘기를 좋아하게 된 까닭도 데스몬드의 용기에 감복했기 때문이다. 난 상상 속에서도 그가 간 길을 가지 못할 것이다. 그의 용기야 말로 얘기할만한 것이 아닌가.”
-비폭력주의자인 데스몬드가 왜 전쟁에 지원해 나갔다고 보는가.
“그는 전쟁은 증오했지만 그의 형제들을 사랑했다. 우린 전쟁을 증오해야 하지만 그것은 하나의 사실이다. 불행스럽게도 전쟁은 늘 있어왔고 또 늘 있을 것이며 인류는 아마도 전쟁으로 멸망할지도 모른다. 전쟁을 좋아하건 싫어하건 간에 그것은 30-40년마다 일어나 우리의 귀싸대기를 패곤 한다. 그리곤 한 두 세대 동안 쉬었다가 또 일어난다.”
-한때 할리웃의 스타로 명성을 날렸는데 그것이 그립기라도 한가.
“그럼 내가 지금은 아니란 말인가. 명성이란 사라지게 마련이고 난 과거에도 그것을 그렇게 즐긴 편은 아니다. 그것 말고도 내게는 다른 삶이 있다. 아이들과 로맨틱한 일들이 내겐 아직도 제대로 있다.”
-데스몬드는 총이 아니라 사랑이라고 말했는데 상징적으로 영화는 감독의 삶의 무기인가.
“영화로 무엇인가를 말해 사람들에게 영향을 줄 수 있다. 영화로 사람들에게 영감을 불러 일으켜주고 그들을 행복하게도 또 슬프게도 만들 수 있다. 난 영화의 임무란 사람들을 즐겁게 해주고 교육시키며 정신을 고양시키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난 늘 이 이론을 따르려고 하는데 이 영화가 그런 일을 해냈다고 본다.”
-데스몬드는 결코 총을 잡기를 거부하는데 감독이 절대로 “노”라고 하는 것은 무엇인가.
“초콜릿과 파스타 먹는 것이다. 모르겠다. 전쟁에 나가서 적을 만났을 때 과연 내가 그를 죽일 수 있을지 의문이다.”
-할리웃을 떠나 있을 때 무엇이 가장 그리웠는가.
“영화로 얘기를 하는 것이었다. 그래서 그렇지 못할 경우 나는 다른 방법으로 얘기를 하곤 한다. 글을 쓰고 만찬을 위해 요리하는데 요리란 그 자체가 남과 공유할 수 있는 얘기이다. 가능한 한 자신을 표현할 수 있는 창조적 필요성을 지키려고 노력하고 있다. 그것이 나를 감금 상태에서 풀어 놓아주는 도구이다.”
-당신은 젊은 여자로부터 행복과 사랑을 찾는 것 같은데 그들이 당신이 삶에서 잃은 것이라도 채워주는가.
“나이란 숫자일 뿐이다. 내 애인(24세의 로잘린드 로스-승마선수이자 작가로 최근 깁슨의 아이를 출산했다)은 어른이고 우린 서로를 사랑하고 이해하고 있다. 그는 정말로 특별한 사람이다.”
-당신의 삶에 있어 무엇이 가장 자랑스러운가.
“내 일이다. 다음은 내 아이들이다.
-영웅적이란 무엇인가.
“그것은 사람과 그들의 행동을 통해 정의 내릴 수 있는 것으로 자기를 버리는 희생이다. 성공적인 결혼을 한사람들은 영웅들로 그들은 희생을 치러야 했기 때문이다. 그 중에서도 가장 영웅적인 것은 남을 위해 자기 목숨을 버리는 것이다.”
-종교적 의미가 강한 이 영화에 대한 종교단체의 반응은 어떤가.
“제7일 안식일교회를 비롯해 전국에서 여러 종교단체로부터 좋은 반응을 받았다. 어떤 장면은보기가 힘들었지만 좋은 메시지영화라는데 공감하는 것 같았다. 데스몬드는 겸손한 자로 저기 어딘가에 자기보다 더 중요하고 큰 것이 있다는 것을 믿지 않고서는 겸손할 수가 없다. 우리보다 더 위대한 것을 인정하는 것보다 더 좋은 메시지가 어디 있는가.”
<한국일보 박흥진 편집위원/ hjpark1230@gmai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