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이야기

2017년 3월 13일 월요일

‘존 윅: 챕터 2’(John Wick: Chapter 2) 키아누 리브스




현재 히트하고 있는 액션 영화 ‘존 윅: 챕터 2’(John Wick: Chapter 2)에서 피로 맺은 약속 때문에 은퇴했다 다시 총을 잡으면서 무려 100여명의 인명을 살해하는 킬러로 나온 키아누 리브스(52)와의 인터뷰가 최근 할리웃의 런던호텔에서 있었다.
50대라곤 믿어지지 않게 씩씩한 미남 청년 같은 리브스는 평소의 무뚝뚝한 태도를 버리고 매우 상냥하고 활기에 넘쳐 인터뷰가 재미있었다. 얼굴에 홍조를 띠고 수줍은 미소까지 지어가면서 유머를 섞어 진지하고 차분하게 대답을 했는데 대단히 지적이요 총명한 사람이라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 존을 제거하려는 무리가 그의 머리에 700만 달러의 현상금을 거는데 머리 값이 좀 지나치게 많다고 생각하지 않는가.
“아니다. 값이란 수요와 공급에 따라 정해지는 것이다. 존을 노리는 자는 어떻게 해서든지 그를 죽이려고 하기 때문에 700만 달러를 선선히 지불하려는 것이다. 존은 그의 적에겐 매우 위험한 표적이기 때문에 그를 처치하려면 그 만큼의 대가가 있어야 될 것이 아니겠는가. 전설적인 킬러 존을 처치해주는 사람에겐 그 돈도 모자란다.”

- 영화 클라이맥스 장면의 ‘거울의 방’에서의 총격전과 육박전은 오손 웰즈의 ‘샹하이로 부터 온 여인’과 브루스 리가 나온 ‘용쟁호투’의 장면을 빌려다 쓴 것이 아닌가.
“그렇다고 해야겠다. 채드 스탈스키 감독은 과거의 영화들에서 많은 영향을 받았다. 존 윅도 과거의 것들로 부터 실마리를 취해 자신의 직물을 직조했다고 생각하면 된다.”

- 그 장면은 어떻게 찍었는가.
“실제로 거울의 방을 만들었다. 터널과 넓은 방 그리고 회전 문 등이 있는 것으로 감독이 거울에 반영되는 것을 좋아하는 것 같았다. 이 방은 여러 의미를 내포하고 있다. 영혼에 대한 내적 통찰이요 반영되고 동시에 사라지는 다양한 뜻을 내포한다.”

- 액션 훈련은 얼마나 힘들었는가.
“제 1편 때와 비슷했지만 한 단계 높은 것이다. 유도와 주지추 그리고 자동차 몰기와 다양한 무기 다루는 훈련을 받았다. 첫 편 찍을 때 이미 배운 것들이어서 이번에는 보다 나았고 따라서 수준이 한 단계 높아진 셈이다.”

- 3편이 나올 듯이 끝나는데 그런가.
“그 문제는 순전히 관객에게 달렸다. 나나 감독이나 얘기를 계속해 더 하고 싶은 것이 사실이다. 나는 존을 사랑하며 그가 창조한 세상에서 살고 싶다. 그리고 존에게 무슨 일이 일어날 것인지도 알고 싶다. 난 온갖 역경에 맞서는 존의 편이다.”

- 다음 편에선 여자와 사랑을 하겠다고 감독에게 요청 할 것인가.
“그렇잖아도 그에 관한 얘기가 있었다. 감독은 이 영화에는 고정된 규칙이란 없다고 말했다. 무한한 가능성이 있다는 말이다.”    
피로 맺은 약속 때문에 은퇴 했다가 다시 총을 잡은 킬러 존 윅은 무려 100여명을 살해 한다.

- 당신이 부엌에서 있는 모습이 재미있던데 음식 잘 만드는가.
“난 음식 만들 줄 모른다. 그러나 먹는 것은 잘 한다. 누구 집에 초대 받으면 먹은 접시 닦는 것을 도와줄 수는 있다. 영화에서 커피 끓이는 장면도 한참 연습한 것이다.”

-당신은 물건에 집착하는가. 예를 들면 편지나 사진 같은 것에 대해 애착을 갖는가.
“그렇다. 할러데이나 어떤 기념일을 맞아 보내온 편지나 카드 같은 것은 매우 소중히 여긴다. 상자에 사진과 편지들을 넣어 놓고 가끔 꺼내 본다.”

- 영화를 로마에서 찍었는데 로마 방문 소감은.
“정말 황홀한 도시다. 도시는 아름답고 함께 일한 사람들은 다 훌륭했다. 로마의 여러 명소에서 찍었는데 밤새 촬영을 하고 새벽에 숙소로 돌아 갈 때 인적이 끊긴 로마를 보는 것은 정말로 기억에 남을 만한 것이다. 관광 시즌이 아닌 1월에 찍어 조용한 로마를 즐길 수 있었다.”

- 당신은 음악인이기도 한데 음악이 당신의 영화와 연기에 어떤 영향이라도 미친다고 보는가.
“그렇다. 자주는 아니지만 가끔 내가 맡은 역의 안으로 들어가기 위해 음악을 듣는다. 감정과 에너지를 제 자리에 놓기 위해서다. 그러나 이 영화를 위해선 그러지 않았다. 이유는 모르겠으나 존을 위해선 음악을 듣지 않았다.”

- 제 3편에 대해서도 처음과 같은 도전의식을 느낄 수 있는가.
“그렇다. 감독과 제작자와 내가 이 영화를 만들 때 느낀 도전은 왜 우리가 이 얘기를 하려고 하느냐 하는 것이었다. 그리고 우리는 그 이유를 찾아냈다. 제3편도 마찬가지다. 무슨 얘기를 할 것이냐가 우리의 도전이다. 난 이 역이 아주 편하다. 난 존에게 무슨 일이 일어날 것인가 가 매우 궁금하다. 그래서 그의 얘기를 창조적으로 만들어 관객에게 들려주는 데 관심이 깊다.”    

- 이 영화의 각본에 참여하는가.
“어느 정도 참여한다.”

- 당신은 유명한 세계적 스타이면서도 사생활을 잘 지키는데 어떻게 그럴 수 있는가.
“난 외출을 잘 하지 않고 집에서 공부하고 일한다. 명성이란 알려진다는 뜻의 라틴어에서 온 것으로 아는데 그런 의미에서 난 관객과 동료 영화인들에게 알려진 것을 좋은 일로 여긴다. 팬들의 사랑과 동료 영화인들의 인식이 영화인으로서의 내 삶의 기둥이나 마찬 가지다.”

- 당신은 레바논에서 태어났는데 그 곳에 가본 적이 있는가.
“나는 어머니가 21세 아버지는 22세 때 태어났다. 두 사람은 레바논의 해변과 문화를 즐기면서 나를 가졌던 것 같다. 그러나 난 어릴 때 거기를 떠난 후로 다시 가보질 못 했다. 그 것이 내가 가장 후회하는 일 중의 하나다. 언젠가 가게 되기를 바란다.”

- 당신이 모터사이클을 직접 고안 했다는 말을 들었는데.
“난 아치 모터사이클이라는 회사를 만들었다. 주문 받는 특수 모터사이클을 제작한다. 다른 곳에선 구할 수 없는 아름다운 것이다. 내게 있어 그 것은 내 정열의 소산인 창작이다. 그러나 그 것은 아주 비싸다. 30,000달러 이상 나간다. 햄버거가 아니다.”

- 당신이 만든 모터사이클을 자주 타는가. 세계 여행 할 때도 그 것을 이용하는가.
“물론이다. 난 외국 여행 때도 모터사이클을 이용한다. 얼마 전 프랑스에 갔을 때도 탔다. 유감인 것은 여러 곳에서 타고 다니고 싶었는데도 타지 못 한 것이다. 미국이나 호주 북부는 타고 가 봤으나 아직 남미와 스페인과 이탈리아에서는 타질 못 했다. 죽기 전에 하고픈 일이다. 내가 벌써 죽기 전에 하고픈 일들의 리스트(버켓 리스트)를 작성할 때가 왔다니.”

- 당신의 사랑에 대한 견해는 무엇인가.
“사랑을 받고 주는 것은 우리 삶의 자양분이 된다고 생각한다. 그 것은 우리가 바라고 찾는 것에 매어달려 있다. 인생의 여정을 통해 사랑은 변하고 자라고 또 끝나며 계속된다고 본다. 그 것은 반드시 연인과의 것만은 아니다. 친구와 가족과도 연계된 것이다. 사랑은 힘이며 사랑하는 대상에 따라 색깔과 책임감과 수행의 의무가 각기 다르다고 생각한다. 그 것이 없다는 것은 포도 덩굴에 물이 없다는 것과 마찬가지다. 그 것이 없으면 우리는 멸종돼 죽고 만다. 그 것은 개인을 초월해 집단의 것으로 승화돼 공유해야 하는 것이다.”

- 당신 개인의 사랑은 어떤가.
“98만4,000번째의 사랑이라고 해야겠다. 수천 번 사랑해 봤다. 난 보통 사람으로 살 것이다. 결혼 안 하고 아이도 안 낳고. 내 개인적 사랑에 대해선 난 아는 바가 없다. 언젠가 진짜로 사랑할 수 있기를 바랄 뿐이다.”

- 어떻게 그렇게 젊어 보이는가.
“유전자 탓이다.”

- 특별히 무슨 운동이라도 하는가.
“난 먹고 마시기를 좋아하는데 좀 삼가야 하겠다. 수년간 함께 일한 트레이너와 신체 단련하는 것이 전부다.”

- 좋아하는 음료수는 무엇인가.
“목마를 때 마시는 한 잔의 냉수다. 그 밖에는 적포도주와 위스키다. 좋아하는 포도주는 1982년 산 오베론이다.”      
                                                            <한국일보 박흥진 편집위원/ hjpark1230@gmail.com>


콩: 해골 섬(Kong: Skull Island)


킹콩이 공룡과 한판 겨루기 전에 가슴을 치며 워밍업을 하고 있다.

산더미만한 킹 콩이 다시 돌아왔는데 그야말로 목불인견이다. 올해가 이제 불과 석 달 째이긴 하지만 이 영화는 내게 있어 올해 최악의 영화로 이야기란 보잘 것 없는 특수효과 위주의 꼴불견이다. 후반이 전반보다 더 엉터리인데 특수효과가 판을 치면서 얘기가 초점을 잃고 영화 속 인물들처럼 갈팡질팡하면서 질질 끌고 가 지루하기 짝이 없다.
킹 콩 영화는 스톱모션으로 킹 콩을 만든 페이 레이 주연의 ‘킹 콩’(1933)과 제시카 랭이 나오는 ‘킹 콩’(1976) 및 네이오미 와츠가 주연한 ‘킹 콩’(2005) 등 여러 편이 있는 인기 품목인데 이번 것은 3류에 속한다.
이 허우대만 거대한 영화는 ‘킹 콩’과 베트남 전 영화 ‘지옥의 묵시록’을 짬뽕한 액션모험 영화인데 내용이나 특수효과 등이 다 터무니가 없어 실소가 터져 나온다. 본의 아니게 코미디가 된 영화로 크기만 하다고 잘 난 것이 아니라는 사실을 증명하는 타작이다.
서론 식으로 1944년 태평양 상공에서 두 대의 전투기가 섬으로 추락한다. 하나는 미군 파일롯 말로가 모는 전투기요 다른 하나는 일본전투기. 둘이 총과 칼을 사용해 격투를 벌이는데 절벽 아래서 킹 콩이 나타난다. 여기서부터 영화의 주인공은 여러 배우가 아니라 신장이 산의 높이만한 킹 콩이다.
이어 때와 장소는 베트남 전이 한창인 1973년의 워싱턴 D.C.로 이동한다. 고고학자로 추정되는 빌 란다(존 굿맨)가 정부의 재정지원을 얻어내 태평양 상의 지도에도 표시되지 않은 섬을 탐험하러 떠나면서 일단 사이공에 도착한다. 여기서 빌을 도와 이 섬으로 함께 가는 자가 막강한 군인정신으로 무장된 팩카드 중령(새뮤얼 L. 잭슨이 아이가 만화 보며 즐기듯이 엉터리 영화를 즐긴다)과 그의 부하 채프맨 소령(토비 케벨)과 이들의 부하들.
여기에 반전주의자인 여자 사진작가 메이슨 위버(브리 라슨-작년에 ‘룸’으로 오스카 주연상 수상)와 탐험가이자 길잡이인 콘래드(톰 히들스톤-올해 TV시리즈 ‘나잇 매니저’로 골든 글로브 주연상 수상). 기라성 같은 배우들이 왜 이 영화에 나왔는지 궁금하다.  
이들이 섬의 탐험에 나서면서 자기가 사는 신성한 지역을 침범한 것에 노발대발한 킹 콩이 이들이 탄 헬기를 비롯해 인간들을 찢고 밟고 씹으면서 유린하는데 킹 콩 뿐 아니라 거대한 공룡과 메뚜기와 파충류들이 이에 합세해 사람들을 도륙한다. 킹 콩은 사람만 잡을 뿐 아니라 공룡을 비롯한 자기 이웃들과도 싸우느라 바쁜데 킹 콩과 거대한 낙지(문어?)와의 대결이 가관이다. 킹 콩이 생 낙지 다리를 소주도 없이 맛있게 씹어 먹는다.
탐험대는 잃어버린 종족인 원주민들과 함께 사는 수염을 잔뜩 기른 말로(존 C. 라일리)를 만나고 킹 콩의 무차별 살육에서 살아남은 자들이 그와 함께 귀국한다. 킹 콩이 물에 빠진 위버를 구출해 자기 손 바닥 위에 올려놓는 장면과 킹 콩과 공룡의 격투 그리고 잃어버린 원주민 등은 다 1933년 영화에서 빌려온 것이다. PG-13. 조단 보그트-로버츠 감독. WB 전지역. ★★(5개 만점)
                                                                <한국일보 박흥진 편집위원/ hjpark1230@gmail.com>


날것(Raw)


쥐스틴이 냉장고에서 날고기를 꺼내 씹어 먹는다.

동물, 가금류 그리고 인간을 가릴 것 없이 그들의 생고기를 씹고 뜯어 먹는 피로 뒤범벅이 된 장면 때문에 작년 칸영화제서 상영 시 관객들이 구토를 하고 퇴장을 하는 소동을 벌였던 날 것에 맛을 들인 여대생의 소품 공포영화로 프랑스와 벨기에 합작이다. 
프랑스 감독 줄리아 뒤쿠르노의 데뷔작인데 눈 뜨고 보기에 끔찍하지만 연출 솜씨가 확실하고 스타일이 멋있어 외면하기가 힘들다. 
B급 공포영화의 수준을 한 단계 넘어섰는데 따귀와 비게 뺀 군더더기 없이 잘 만든 얘기가 온 몸에 소름 돋는 공포감을 조성한다. 일종의 여대생의 성장기이자 성에 대한 자각 그리고 자매간의 사랑과 대결 의식을 그린 작품이기도 하다.
언니 알렉시아(엘라 룸프)가 다니는 수의과대에 입학한 쥐스틴(가랑스 마릴리에)은 입학하자마자 다른 신입생들과 함께 상급생들에 의해 호된 신고식을 치르게 된다. 영화 ‘캐리’를 본 딴 동물의 피를 온 몸에 뒤집어쓰는가 하면 토끼의 생간을 먹어야한다. 
그런데 문제는 쥐스틴이 채식주의자라는 것. 쥐스틴은 죽을상을 하면서 토끼 간을 먹는데 아뿔싸 이를 어쩌나 한번 먹어본 생고기 맛에 중독이 돼 그 뒤로 쥐스틴은 생고기를 안 먹으면 약효가 떨어진 마약중독자처럼 심한 후유증에 시달리게 된다. 온 몸에 두드러기가 나고 잠을 못자 고통 한다.               
그래서 쥐스틴은 햄버거의 빵을 빼고 고기만 슬쩍 훔쳐 실험복 주머니에 넣고 냉장고의 생고기를 꺼내 게걸들린 듯이 씹어 먹는다. 쥐스틴의 식욕은 갈수록 강해져 급기야 인간의 고기마저 먹게 되는데 그 희생자 중 하나가 쥐스틴의 동성애자 룸메이트 에이드리엔(라바 나잇 우펠라). 그리고 쥐스틴은 가위를 들고 알렉시아와 다투다가 언니의 손가락을 자르는데 그 손가락이 어떻게 될지는 상상에 맡긴다. 
드라큘라 영화와 산송장 영화의 분위기를 갖춘 예술적 피범벅 공포영화인데 쥐스틴이 식욕을 채우지 못해 고통하고 또 날고기를 먹은 뒤 후회하고 고뇌하는 모습이 애처롭기 짝이 없다.
마릴리에의 수줍고 소심하면서도 똘똘한 연기와 룸프의 공격적이며 대담한 연기가 좋은 조화를 이루고 다른 배우들의 연기도 좋다. 모든 사람의 기호에 어울릴 영화는 아니지만 공포영화 팬들에겐 아주 색 다른 작은 수작이다. 너무 끔찍해서 탈이지만. R. 일부지역. ★★★(5개 만점)
                                            <한국일보 박흥진 편집위원/ hjpark1230@gmail.com>



‘지상 최대의 쇼’




내가 ‘십계’를 만든 세실 B. 드밀이 감독한 서커스영화 ‘지상 최대의 쇼’(The Greatest Show on Earth^1952^사진)를 본 것은 중학생 때 서울 용산에 있던 성남극장에서였다. 찰턴 헤스턴, 코넬 와일드, 제임스 스튜어트, 베티 허튼. 글로리아 그래암 및 도로시 라모어 등 초호화 캐스트에 코끼리, 사자 그리고 호랑이 등이 나오는 흥미진진한 영화다.
이 영화가 ‘하이 눈’과 ‘아일랜드의 연풍’ 및 ‘사랑은 비를 타고’ 같은 영화들을 제치고 오스카 작품상을 탄 것을 놓고 논란이 되긴 했지만 꼬마였던 나는 총천연색 만화경과도 같은 꿈의 세계에 빠져 넋을 잃고 구경 했었다. 이 영화는 미 최대의 서커스인 링글링 브라더스와 바넘 & 베일리의 쇼와 단원들 간의 애증과 경쟁의식을 다룬 것으로 진짜 서커스 단원들이 대거 출연했다.
그런데 이 ‘지상 최대의 쇼’를 지난 146년 간 제공해온 링글링 서커스가 오는 5월로 해체된다. 재정난 탓인데 특히 동물 애호가들의 압력에 굴복, 작년 5월부터 코끼리를 쇼에서 퇴출시킨 뒤로 관객이 부쩍 감소했다고 한다. 그런데 코끼리들은 바넘이 지난 1882년 ‘점보’라 명명한 아시안 코끼리를 관객들에게 소개시킨 이래 이 서커스의 상징이 돼왔다. 이와 함께 인터넷 시대에 변화하는 대중의 취향도 해체 이유 중 하나라고 한다.
빅 탑이라 불리는 서커스는 한국에서는 곡마단이라고 했다. 곡마단은 아이들에겐 꿈과 환상과 마법의 세계여서 나도 어렸을 때 동네에 곡마단이 천막을 치면 어머니에게 졸라 돈을 타 구경을 하곤 했었다. 퀴퀴한 냄새가 나는 천막 안에 깐 거적 위에 앉아 접시돌리기, 외발 자전거 타기, 줄타기 그리고 마술과 광대의 익살을 보면서 황홀무아지경에 빠지곤 했다.
특히 내 눈길을 끈 것은 살빛 싸구려 스타킹을 신고 공중을 새처럼 훨훨 나는 그네 타는 소녀의 넓적다리였다. 모든 것이 초라한 곡마단의 공기 속에서 그네 타는 소녀의 표정 없는 얼굴에 발랐을 염가 분 냄새를 상상으로 들여 마시며 미열이 나는 흥분을 느꼈었다.
그네 타는 여자를 보고 반한 것은 나만이 아니다. 빔 벤더스의 아름답고 몽환적인 분단된 베를린에 대한 찬가 ‘욕망의 날개’(Wings of Desire^1997)에 나오는 천사 다미엘(브루노 간츠)도 곧 해체될 서커스의 그네 타는 여자 마리옹(솔베이지 동마르탱)을 보고 매료된다.
하늘에서 내려온 다미엘은 등에 닭털 날개를 단 곱슬머리 긴 금발에 날씬한 허리 그리고 곡선 진 몸매를 한 마리옹이 살빛 스타킹을 신은 긴 다리를 앞으로 쭉 내뻗고 그네를 타는 모습을 보고 반해 지상에서 그녀와 같이 있기 위해 불사의 천사 노릇을 포기하고 인간이 된다.
트라피즈 아티스트라 불리는 그네 타는 곡예사 마리옹이 천사와도 같다면 또 다른 서커스영화 ‘트라피즈’(Trapeze^1956)의 그네 타는 여자로 나오는 이탈리안 육체파 지나 롤로브리지다는 육체의 악마다. 육감적인 롤로브리지다를 사이에 놓고 두 그네 타는 남자 버트 랭카스터와 토니 커티스가 치열한 삼각관계를 이룬다. 육신의 아름다움과 건강함을 과시하는 세 남녀가 모두 탄탄한 육체에 꽉 끼는 옷을 입어 살 냄새가 코를 찌른다. 이 영화도 성남극장에서 봤다.
유랑민들의 집단인 곡마단의 생태를 연민과 애정의 마음으로 묘사한 소설이 한수산의 ‘부초’다. 제목처럼 떠다니는 풀과도 같은 ‘일월 곡예단’ 단원들의 간난한 삶과 동지애와 사랑을 소박하고 솔직하면서도 재미있게 묘해 단숨에 읽어 내려갔었다.
작가는 산업화 되어가는 사회에서 소외된 집단의 삶을 동병상련의 눈길로 바라보고 있어 작품에 애조가 드리워져 있다. 소설에서 주인공 하명은 외줄타기 곡예사 지혜를 사랑하나 곡마단에서는 이성 간의 사랑이 금기로 돼 있어 둘의 사랑이 더욱 애틋하다.    
내가 어렸을 때 기억에 따르면 한국에서는 곡마단하면 무섭고 섬뜩한 생각부터 들었었다. 곡마단의 어른들이 고아원에서 아이들을 데려다가 밥 짓고 빨래하고 물 길어 나르게 하면서 학대하고 무자비하게 곡예훈련을 시킨다는 소문이 나돌았기 때문이다. 그래서 어린 내게 곡마단은 비극의 공연장이요 유형자의 유배지처럼 느껴졌었다.
얼마 전에 현재 뉴욕에서 찍고 있는 폭스사의 서커스영화 ‘최대의 쇼맨’(The Greatest Showman)의 세트 구경을 갔었다. 바넘 & 베일리 서커스의 창설자인 P.T. 바넘의 삶을 다룬 뮤지컬로 바넘으로 휴 잭맨이 나온다. 음악과 노래는 ‘라 라 랜드’로 오스카상을 탄 벤지 파섹과 저스틴 폴이 지었다. 이 영화는 ‘물랭 루지’ ‘시카고’ 및 ‘레 미제라블’ 등과 같은 호화 뮤지컬로 오는 크리스마스에 개봉된다.
링글링 브라더스와 바넘 & 베일리 서커스의 해체는 모든 것이 컴퓨터 화하는 시대의 흐름에 따른 조치라고 보겠다. 옛 것들이 하나 둘씩 사라져 섭섭하긴 하지만 서커스가 지상에서 소멸된 것은 아니다. 아직도 서커스 바가스, 빅 애플 서커스 그리고 실물 대신 실물 크기의 꼭두각시 코끼리를 쓰는 서커스 1903 및 입장료가 비싼 시르크 뒤 솔레유 등이 호객하고 있다.
                                                  <한국일보 박흥진 편집위원/ hjpark1230@gmai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