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이야기

2017년 9월 4일 월요일

총독의 저택(Viceroy‘s House)


마운트배튼 총독이 간디(왼쪽)와 인도 독립문제를 논의하고 있다. 가운데는 총독부인 에드위나.

인도 독립 서사시, 엉성한 구성으로 몰입 떨어뜨려


1947년 8월 인도가 영국으로부터 독립하기 직전 이 역사적 절차를 순조롭게 진행시키기 위해  인도 총독으로 부임한 루이스 마운트배튼 경(휴 본느빌)의 실화를 허구와 섞어 만든 화사한 시대극으로 ‘베컴처럼 차라’를 감독한 인도계 미국 여류감독 구린더 차다가 연출했다. 
옛날 영화식의 대하 서사극으로 앙상블 캐스트와 현지 촬영을 비롯해 의상과 세트 등 표면적으로는 잔칫상처럼 화려하고 풍성하나 연출 능력이나 내용은 다소 진부하고 감정적으로나 극적으로도 깊이가 모자란다. 언뜻 보기엔 ‘인도로 가는 길’을 연출한 데이빗 린의 작품을 연상시키나 광범위하고 파란만장한 얘기를 너무 소심하고 곱고 깨끗하며 또 피상적으로 다뤄 극적 충격이 약해 작품 안으로 몰입이 제대로 되질 않는다.  
영화는 정치적 내용과 함께 340개의 방이 있는 총독의 저택 내 지배 계급과 하인 계급의 얘기를 ‘위층 아래층’ 식으로 다뤄 역시 본느빌이 나온 영국 드라마 시리즈 ‘다운턴 애비’를 생각나게도 한다.  
합리적이요 진보적인 마운트배튼 경은 아내 에드위나(질리안 앤더슨)와 함께 뉴델리 총독 저택에 여장을 풀자마자 인도 독립 문제 논의에 들어간다. 문제는 인도를 한 국가로 독립시키느냐 아니면 힌두족이 대다수인 인도로부터 회교도들을 분리시켜 2개의 국가로 독립시키느냐 하는 것. 이를 놓고 총독은 간디(네라지 카비)와 네루(탄베르 가니)와 연쇄 회담을 벌이면서 아울러 회교도 대표인 모하메드 알리 지나(덴질 스미스)와도 회담을 갖는다.
이와 함께 저택 밖 세상에서는 힌두교들과 무슬림들 간에 유혈 폭력이 일어나면서 수많은 인명이 살상되고 이런 갈등은 저택 내 하인들에게까지 번진다. 이에 마음이 다급해진 총독은 인도를 두 국가로 나누기로 결정하고 영국으로부터 변호사 시릴 래드클립(사이먼 캘로)을 불러들여 인도와 파키스탄 사이의 국경을 그리도록 시킨다.
이런 정치적 얘기와 함께 총독을 비롯한 지배 계층과 이들에게 봉사하는 사람들의 일상이 묘사되면서 뜬금없이 로미오와 줄리엣 같은 사랑의 얘기가 끼어든다. 마치 밖에서의 힌두교 대 무슬림의 갈등에 대비시키기라도 하려는 듯이 저택 내 하인층인 힌두 청년 지트(머니시 다얄)와 무슬림 처녀 알리아(후마 쿠레시) 간의 사랑이 묘사되나 이는 상투적인 당의정 식의 곁가지다.
격동적인 실화를 다룬 영화로선 얘기의 결이나 구성이 엉성한데 장려한 드라마가 되기보다는 공손한 소프트 오페라가 됐다. 그리고 인물들의 성격 개발이나 그들이 작품에 얹는 무게도 실하지 못하다. 좋은 소재를 충분히 살리진 못했으나 볼 만은 하다. 영국과 인도의 베테랑 스타들인 마이클 갬본과 지난 1월에 사망한 옴 푸리가 나온다. 그런데 바람둥이인 에드위나는 네루와 정사를 벌였고 마운트배튼도 정부가 있었다고 한다. ★★★(5개 만점) 
                                                           <한국일보 박흥진 편집위원/ hjpark1230@gmail.com>


폴리나(Polina)


폴리나(오른쪽)가 아드리앙과 함께 댄스훈련을 받고 있다.

“꿈을 찾아서…” 발레리나의 고뇌·피와 땀 그려


독립심 강한 발레댄서의 자아 추구를 직선적이면서 약간 기록영화 식으로 다룬 프랑스영화로 감독과 주·조연 배우가 다 실제로 발레를 연마한 사람들이다. 발레영화로 뛰어나 것은 ‘분홍 신’과 ‘흑조’가 있는데 이 영화는 이 둘의 수준에 이르진 못하나 댄서의 고통과 고뇌와 인내 그리고 피와 땀을 진지하고 흥미 있게 다뤘다. 특히 전통 발레와 현대 무용을 표현한 안무가 볼만하다. 바스티앙 비베의 그래픽 노블이 원작.
공산체제 하 소련의 한 공업도시에서 가난한 부모와 함께 사는 소녀 폴리나(베로니카 조브니츠카)는 발레학교 오디션을 통과해 엄격한 스승(알렉세이 쿠스콥)으로 부터 강훈련을 받는다. 폴리나는 귀갓길에도 즉흥적으로 댄스를 하면서 즐거워하는 타고난 댄서다.
이어 10대가 된 폴리나(아나스타시아 쉐브초바-실제로 마린스키 발레단원이었다)는 저명한 볼쇼이 발레단 오디션을 앞두고 현대무용을 보고나서 자신의 예술적 본능을 추구하기 위해 함께 댄스를 수련한 프랑스 청년 아드리앙(닐스 슈나이더)과 함께 프랑스로 간다. 틀에 박힌 전통 무용을 탈피해 즉흥적이요 살아 있는 현대적인 댄스를 배우겠다는 욕심에서다
여기서 폴리나는 아드리앙과 동거하면서 자유혼을 지닌 현대 무용가 리리아(연기파 베테런 쥘리엣 비노쉬도 실제로 발레를 수련했다)로 부터 강훈련을 받는다. 몸에 상처가 나고 발톱이 뭉개지는 고된 수련이다.
그러나 부평초 같은 폴리나는 리리아가 약속한 ‘백설 공주’의 프리마 돈나 역을 다른 사람에게 주자(자기 탓이긴 하지만) 이번에는 벨기에 안트웝으로 이주해 바에서 일한다. 그리고 거리의 생활과 전자음악으로 부터 영감을 취하는 즉흥적 댄스단체에 들어간다. 폴리나는 비로소 여기서 춤을 추면서 자신의 예술적 욕망을 만족시킨다.          
재능 있는 젊은 여인의 자기 음성을 찾는 이야기의 서술 과정이 고르지 못하고 주인공의 내면 묘사가 약하긴 하지만 쉐브초바의 단단한 연기와 함께 다채로운 안무로 꾸며진 댄스 장면이 볼 만하다. 발레리 뮐러와 프랑스 안무가 앙젤린 프레료카 공동 감독. PG. ★★★(5개 만점)
                                                        <한국일보 박흥진 편집위원/ hjpark1230@gmail.com>



프랑스 영화 ‘구멍’ (Le Trou·1960) 복원

롤랑이 하수구 벽을 뚫으면서 시멘트 조각들을 나르고 있다

탈옥 준비과정 사실적 묘사 조마조마


시몬 시뇨레와 세르지 레지아니가 공연한 어두운 러브 스토리 ‘황금 투구’(Casque d‘Or·1952)와 장 가방, 리노 벤투라 및 잔느 모로가 나온 갱스터 영화 ‘황금에 손대지 마라’(Touchez Pas au Grisbi·1954)와 같은 걸작을 만든 프랑스의 자크 베케 감독이 1960년에 만든 흑백영화 ‘구멍’(Le Trou)은 실화를 바탕으로 한 긴장감 팽팽한 교도소 탈출 이야기다. 
베케는 5명의 탈출을 시도하는 미결수들 역에 주로 비배우들을 썼는데 영화 처음에 카메라를 향해 “이것은 내 친구 자크 베케가 내 실화를 영화로 만든 것”이라고 말하는 사람이 실제 탈출을 기도한 롤랑 바르바(무대 이름 장 케로디)다. 또 베케는 바르바와 함께 탈출을 시도한 미결수 중 2명을 기술 자문으로 고용해 영화의 사실성을 극대화 했다. 
프랑스 갱영화의 거장 장-피에르 멜빌이 “사상 가장 위대한 프랑스 영화”라고 칭찬한 작품으로 또 다른 프랑스 영화계의 거장 장 르놔르에 사사한 베케는 영화 촬영이 끝난지 몇 주 후 53세로 요절했다. 원작은 조제 지오반니가 탈옥 시도를 소설로 쓴 ‘탈출’(The Break)로 베케는 처음에 이 사건을 신문에서 읽고 영화화를 생각했다고 한다. 
1947년 파리의 상테 교도소. 터프 가이들인 중범자 미결수 롤랑 다르방(장 케로디)과 마뉘 보렐리(필립 르로이) 그리고 별명 ‘각하’로 불리는 보슬랑(레이몽 뫼니에)과 제오 카신(미셸 콩스탕팅) 등이 수감된 좁은 방에 아내 살해 미수범으로 기소된 젊은 클로드 가스파르(마르크 미셸)가 이감돼 들어온다. 
롤랑 등은 그 때 탈옥을 기도하던 중이어서 마지못해 클로드에게도 그 계획을 말하는데 이에 클로드도 함께 탈출하겠다고 동의한다. 롤랑 등은 먼저 나무로 된 감방 바닥의 일부를 뜯어낸 뒤 안 쓰는 침대의 철제 골조를 뜯어 망치로 사용해 나무 바닥 밑의 시멘트를 뚫기 시작한다. 마침 이들이 있는 동이 공사 중이어서 망치로 시멘트를 강타하는 소리를 막아준다.
건장한 남자들이 사제 망치로 온 힘을 다해 시멘트를 까부수는 장면을 카메라가 오래 동안 집요하게 붙잡고 늘어지면서 보는 사람마저 온 몸의 근육이 당겨지는 압박감을 느끼게 하는데 영화는 전혀 음악 없이 실제 소리만을 써 사실감이 극에 이른다. 한 사람이 시멘트를 강타하는 동안 다른 한 사람은 손거울을 깬 파편을 칫솔 끝에 감아 잠망경 식으로 감시구멍을 통해 복도의 상황을 탐지한다. 
교도소 내 시설과 숟가락 등 온갖 소지품으로 탈출용 도구를 만들 줄 아는 사람이 과묵한 롤랑으로 그는 주도면밀하고 침착하고 하는 일에 능숙하다. 그와 역시 말수가 적은 마뉘가 팀의 리더 구실을 한다. 
시멘트 바닥이 뚫리면서 롤랑과 마뉘는 좁은 통로를 기어 쇠로 된 창살을 끌로 자르고 넓은 지하 공간으로 진출한다. 그리고 순찰하는 교도관들을 피해 숨어가면서 사제 열쇠로 문을 열고 하수구로 내려간다. 이제 마지막 남은 공사는 하수구의 시멘트벽을 뚫고 외부 세계로 나가는 것. 하수구와 감방 사이의 거리가 멀어 벽을 뚫는 사람들은 사제 모래시계로 시간을 잰 뒤 감방으로 달려가 다음 사람을 깨운다. 이 모래시계는 ‘각하’가 엄살을 부려 교도소 내 병원에서 치료를 받으면서 훔쳐온 2개의 주사액 병으로 만들었다. 
마침내 벽에 구멍이 뚫리고 이제 남은 것은 야반 탈출뿐이다. 롤랑 등은 정장에 타이를 매고 구두를 닦아 신은 뒤 담요를 뒤집어쓰고 자는 척 한다. 순찰이 끝나면 탈옥할 예정이다. 
그런데 교도소장이 클로드를 불러 클로드의 아내가 소를 취하해 얼마 안 있어 출소할 수 있다고 통보하면서 일행의 탈출 시도에 난관이 생긴다. 과연 클로드는 동료들의 탈출 계획을 교도소장에게 고발할 것인가 아니면 동료애를 지킬 것인가.
남자들의 탈출을 위한 일거수 일투족과 지극히 세밀한 부분까지도 정확을 기하려고 신경을 쓴 노력이 역력한 영화로 대부분 좁은 공간에서 진행돼 협소감에 호흡하기가 힘들 정도다. 베케는 마뉘의 단단한 근육질의 벗은 상반신처럼 군더더기를 일체 배제하고 미결수들의 강인하고 치열한 탈출 시도를 물고 늘어지듯이 묘사했다. 그래서 보고 있으면 괴로울 정도로 고단함을 느끼게 된다. 
또 영화는 브로맨스 영화라고도 하겠다. 협소한 감방 안에서 동거하는 사나이들의 동지애가 믿음직한데 이런 과묵하고 듬직한 사나이들이 풍기는 묵직한 분위기를 ‘궁정의 광대’역을 맡은 ‘각하’의 유머가 다정하게 다독여준다. 
영화의 단순하고 꾸밈없는 스타일은 프랑스의 명장 로베르 브레송의 솜씨를 생각나게 하는데 특히 브레송의 감옥 탈출 실화를 그린 ‘남자 탈옥하다’(A Man Escaped·1956)를 거의 모방했다는 생각이 들 정도로 닮았다. 이 영화는 나치가 프랑스를 점령했을 때 레지스탕스 활동을 하다가 수감된 남자의 탈옥을 그린 것으로 ‘구멍’의 집요한 탈옥을 위한 빈틈없는 준비와 과정 등이 이 영화에서 빌려온 것처럼 유사하다. 
*‘구멍’(★★★★½, 5개 만점)이 새로 복원돼 9월1~7일 화인 아츠(8556 Wilshire Blvd.)에서 상영된다.
                                                        <한국일보 박흥진 편집위원/ hjpark1230@gmai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