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이야기

2018년 10월 29일 월요일

용서해 줄 수 있겠어?(Can You Ever Forgive Me?)


유명 작가의 편지 위조범 이즈라엘(왼쪽)과 그의 공범 잭이 바에서 스카치를 마시고 있다

유명작가의 서명위조 사기 벌이는 매카시 연기 일품


1990년대 초 유명 스타들과 작가들의 편지와 서명을 위조해 팔아먹은 뉴욕의 여류 작가 리 이즈라엘의 실화로 코미디언 멜리사 매카시가 가발을 쓰고 비루먹은 개처럼 초라하고 누추한 모습으로 나와 드라마 배우로 변신한 흥미 있는 작품이다.
뉴욕 출판계에 대한 비판과 함께 작가의 창작력의 원천을 다루면서 아울러 유명 인사의 것이라면 사족을 못 쓰는 풍조도 더불어 조소하고 있는데 매카시의 연기는 벌써부터 상감이라는 평을 듣고 있다. 
매카시의 연기와 함께 볼만한 것이 이즈라엘의 사기행각의 동료 잭으로 나오는 영국배우 리처드 E. 그랜트의 연기인데 변화무쌍하기 짝이 없다. 그리고 매카시와 그랜트의 콤비네이션도 일품으로 둘의 우정과 티격태격을 보는 것만 해도 즐겁다. 
리 이즈라엘(매키시)은 완전히 한물 간 작가로 자기 책을 출판한 회사 편집자(베테런 TV 코미디언 제인 커틴)에게 전화를 하면 받아주지도 않는다. 렌트가 몇 달씩 밀렸지만(편집자의 집에 열린 파티에 가서 화장실의 남은 휴지를 가방에 쓸어 담을 정도로 궁색하다) 단골 바에 가서 스카치를 니트(얼음 안 탄 것)로 거푸 마시는데 유일한 위로라면 애주중지하는 고양이.
*최근 매카시와 가진 인터뷰에서 실제로도 스카치를 그렇게 니트로 미시느냐고 물었더니 요즘에는 옛날과 달리 얼음과 함께 마신다면서 “난 스카치를 즐긴다”고 대답해 “나도 스카치를 즐긴다”고 스카치 예찬에 동조했다.
이즈라엘은 어느 날 도서관에 가서 자료를 연구하던 중 책 속에 있는 유명작가의 서명이 적힌 친필 편지를 발견, 자기 가방에 숨겨 빼낸다. 이를 계기로 이즈라엘의 유명인사 편지와 서명 위조 작업이 시작되는데 편지 한 장에 수백달러씩 팔리는 바람에 렌트비도 조달되고 술값도 넉넉해진다. 
이즈라엘이 위조하는 작가들은 노엘 카워드와 도로시 파커 등이 있고 연예인으로는 패니 브라이스가 있다. 이즈라엘의 필적 위조 솜씨가 어찌나 좋은지 책방에서는 의심하지 않고 사는데 편지 내용은 다 이즈라엘의 창작이다. 
어느 날 이즈라엘은 바에 들렀다가 과거 출판 기념파티에서 잠시 대면한 날건달 잭(그랜트)을 만난다. 둘 다 술꾼으로 즉석에서 죽이 맞아 잭은 이즈라엘의 위조 작업의 파트너로 참여한다. 그러나 한 동안 잘 나가던 사기행각이 꼬리가 길면 잡힌다고 FBI의 수사망에 떠오른다. 그래서 이 때부터 위조편지 판매는 잭이 대행하는데 결국 이즈라엘은 체포돼 재판에 회부된다. 
재판에서 이즈라엘은 판사가 선고를 하기 전 “나는 위조작업 하는 일이 너무나 행복했다”면서 “가짜 편지의 내용은 다 내 창작의 산물”이라고 고백한다. 이즈라엘은 집행유예를 받았는데 후에 자기 경험을 쓴 책 ‘Can You Ever Forgive Me?’는 뉴욕타임스에 의해 칭찬을 받았다. 이즈라엘은 2014년 75세로 사망했다. 매리엘 헬러 감독. R. Fox Searchlight. ★★★½ (5개 만점) 
                                                               <한국일보 박흥진 편집위원/ hjpark1230@gmail.com>


‘길티’(The Guilty)


아스가 홈이 경찰서에서 납치된 여자가 건 비상전화를 받고 있다.

비상전화 받는 경찰과 납치된 여인의 대화… 시공 넘은 긴장감 예술적 표현


영화 전체가 경찰서 비상전화 접수실에서 일어나는 얘기로 주인공도 전화를 받는 경찰 한 사람인 협소감 가득한 덴마크 스릴러다. 별로 넓지 않은 사무실에서 전화를 받는 경찰과 그에게 구조를 요청하는 여인의 대화로 이어지는 드라마여서 답답한 것도 사실이나 영화는 이런 제한을 정신적 감정적으로 뛰어 넘고 예술성이 강한 긴장감으로 보는 사람을 유인하고 있다. 어떻게 해서든지 위험에 빠진 여자를 구하려고 온갖 수단방법을 동원하는 경찰의 노심초사에 동반해 화면 안으로 몰입하게 된다. 구스타브 묄러는 대단한 재주를 지닌 감독으로 이 영화가 데뷔작이다 
아스거 홈(야콥 세데르그렌)은 업무수행 중 사건용의자를 사살, 조사 진행 중에 비상전화 접수실 근무령을 받고 근무 중이다. 약물에 취해 응급차 보내달라는 젊은이와 홍등가에서 창녀에게 강탈을 당한 남자의 전화 따위를 받는다. 이어 이벤이라는 이름의 여인으로부터 다급한 음성으로 도와 달라는 전화가 걸려온다. 전 남편에 의해 납치를 당해 지금 차에 실려 가고 있다는 것.
홈은 어떻게 해서든지 차의 위치 등 이벤에 관해 보다 자세히 알기 위해 이벤에게 집에 있는 딸과 전화를 하는 척 하라고 지시한다. 그리고 이벤이 흰색 밴에 타고 있으며 차는 고속도로를 타고 북쪽으로 달리고 있다는 것을 비상대기 차량에 통지한다. 그러나 이벤의 전화가 끊기면서 다급해진 홈은 법규를 무시하고 혼자 지혜와 경험 등을 이용해 사건을 수사하기로 한다.
그야말로 볏단 속에서 바늘 찾기 식인데 홈은 옆 자리에 동료 경찰이 있는 자기 자리를 떠나 옆방에서 혼자 전화와 컴퓨터를 사용, 이벤 구조에 열을 올린다. 
다시 이벤과 통화가 연결된 홈은 여인과 그의 전 남편과의 관계 그리고 둘의 가정생활 내용 및 궁극적으로 그들이 가고 있는 목적지를 알아내려고 이벤에게 유도 질문을 한다. 그리고 이 과정에서 서서히 이벤의 실제 상황을 알게 된다. 감독은 홈이 이벤을 구원함으로써 자기가 저지른 행위에 대한 속죄를 하게끔 했다.
영화는 좁은 공간에서 느끼게 되는 홈의 고독과 갇힌 상태 그리고 시각적 제한을 홈의 전화를 통해 들리는 외부의 여러 가지 음향으로 해소하면서 보는 사람으로 그와 함께 하여금 감정적 여정을 하게 만든다. 세데르그렌이 혼자서 영화를 짊어지고 순전히 얼굴 표정과 음성으로 시종일관 긴장감을 풀어주지 않는 뛰어난 연기를 한다.★★★½ (5개 만점) 
                                                                 <한국일보 박흥진 편집위원/ hjpark1230@gmail.com>



‘불릿’


사람을 깔보는 듯한 새파란 눈동자의 시선과 매력적으로 인색한 미소를 지녔던 쿨 가이 스티브 맥퀸을 액션 스타로 신격화한 영화는 형사스릴러 ‘불릿’(Bullitt^사진)이다. 갱스터 범죄영화의 금자탑과도 같은 ‘불릿’이 이달로 개봉 50주년을 맞아 요즘 미 전국 대도시에서 재상영 되고 있다.
‘불릿’하면 대뜸 생각나는 것이 형사 불릿으로 나온 맥퀸이 복잡한 샌프란시스코 시내를 초고속으로 질주하는 자동차 추격 장면이다. 맥퀸이 차를 타고 도주하는 킬러를 쫓아 포드머스탱 390GT를 모는 장면은 자그마치 10분간 계속되는데 대부분 스피드광인 맥퀸이 직접 시속 120마일로 차를 몰며 찍었다. 나도 이 장면 때문에 ‘불릿’이 TV에서 방영될 때면 다시 보곤 한다. 
자동차 추격의 전설이 되다시피 한 이 장면을 찍는데 총 3주가 걸렸는데 맥퀸은 샌프란시스코의 자동차 경주장에서 옆에서 달리는 스턴트 드라이버를 따라 맹연습을 했다. 맥퀸은 이렇게 위험한 장면을 직접 하겠다고 우겨 배급사인 워너브라더스가 전전긍긍했다고 하는데 맥퀸은 영화의 제작에서부터 영국인 감독 피터 예이츠의 선정에 이르기까지 영화 전반에 걸쳐 철저히 주도권을 행사했다. 제작비 550만 달러가 든 영화는 빅히트, 총 4,230만 달러를 벌었는데 이는 현 시가로 3억 달러에 이른다.
로버트 본과 재클린 비셋이 공연한 ‘불릿’은 후에 나온 액션영화들인 ‘프렌치 커넥션’과 ‘히트’ 및 ‘제이슨 본 ’시리즈 등에 큰 영향을 미쳤다. 특히 오스카 작품과 감독 및 남우주연상을 탄 ‘프렌치 커넥션’에서 형사 포파이(진 해크만)가 고가전철을 타고 달아나는 헤로인 밀수범을 쫓아 복잡한 뉴욕시내를 초고속으로 차를 모는 장면은 ‘불릿’의 추격 장면을 연상시킨다.
맥퀸은 온 몸에서 허위란 찾아 볼 수 없었던 생생한 실물이었다. 과묵하고 섹시한 야생동물과도 같은 남성다움으로 팬들의 사랑을 받았던 우상과도 같은 존재였다. 맥퀸은 온순해 보이기까지 하는 마초기질과 카리스마가 가득한 분위기로 인해 생전에는 물론이요 죽은 지 40년이 가까운 지금까지도 웬만한 살아 있는 배우들 보다 더 유명한 배우다.
맥퀸은 폐암으로 1980년 50세로 사망했는데 당시 아내는 범죄영화 ‘겟어웨이’에서 공연하다 사랑에 빠졌던 알리 맥그로였다. 공연 시 맥그로는 패라마운트 사장 로버트 에반스의 부인이었다. 신문들은 맥퀸과 맥그로의 로맨스를 놓고 ‘미녀와 야수’의 결합이라고 대서특필했었다.
1980년은 내가 미국에 온 해로 그 때 맥퀸이 암치료를 위해 일종의 비법치료를 한다는 의사를 찾아 멕시코에 갔다는 신문보도를 읽었던 기억이 난다. 그는 병을 못 고치고 귀국했는데 그 후 수술을 받기 위해 다시 멕시코에 갔다가 수술 후유증으로 사망했다. 그에 관한 기록영화에 의하면 맥퀸은 죽음과 필사적으로 다투다가 지쳐 마지막에는 “대츠 잇”하며 싸움을 포기했다.
거칠면서도 상냥한 양면성을 지녔던 맥퀸은 늘 변두리를 밟으며 스릴을 좇아 산 국외자였다. 그가 나온 ‘주니어 보너’ ‘탐 혼’ ‘신시내티 키드’ 및 ‘헌터’ 등은 다 이런 변두리 인물이 주인공이다. 맥퀸의 국외자 생활 스타일은 그의 불우했던 어린 시절과 관계가 있다고들 한다.
그는 아버지를 모른 채 태어나 어렸을 때 알콜중독자인 어머니로부터도 버림받고 인디애나주의 농부인 삼촌 밑에서 자랐다. 불량아였는데 그는 이렇게 배드 보이가 될 소지가 충분히 있었는데도 오히려 배드 보이의 어두운 매력과 장난기를 십분 발휘해 자기 인기형성에 이용했다. 맥퀸은 자기주장이 강해 할리웃에서 다루기 힘든 배우로 딱지가 붙었었는데 그래서 자기를 스타로 만들어준 ‘황야의 7인’과 ‘대탈주’를 감독한 스승과도 같았던 존 스터지스와도 결별하고 말았다. 
해병대 출신으로 G.I. 빌로 뉴욕의 액터스 스튜디오에서 연기공부를 한 뒤 무대와 라이브TV로 배우생활을 시작한 맥퀸은 많은 웨스턴에 나왔다. 배우 초기 시절 나온 TV시리즈 ‘원티드:데드 오어 얼라이브’를 비롯해 ‘황야의 7인’, ‘네바다 스미스’ 및 ‘탐 혼’ 등이 다 웨스턴이다.
맥퀸은 ‘황야의 7인’ 영화 전편을 통해 불과 20여 줄의 대사(그는 대사를 싫어했다)밖에 구사하지 않았는데 그는 여기서 공연한 선배 빅스타 율 브린너에게 집중되는 시선을 자신에게 돌리기 위해 자기 멋대로 독특한 행동을 해 브린너의 심기를 크게 건드렸다는 일화가 있다. 맥퀸은 자동차만 잘 탈 뿐만 아니라 ‘대탈주’에서는 모터사이클을 ‘황야의 7인’에서는  말도 잘 탔는데 그의 자동차 질주 실력이 과시된 또 다른 영화는 그랑 프리를 다룬 ‘르 만스’다.     
맥퀸은 생전 “나는 연기하는 사람이 아니다. 나는 반응하는 사람이다”라고 자신의 본능적인 연기관을 피력했다. 그의 연기는 생경할 정도로 사실적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맥퀸이 오스카상 후보에 오른 영화는 캔디스 버겐과 공연한 ‘샌드 페블스’ 단 한편이다. 
                                                               <한국일보 박흥진 편집위원/ hjpark1230@gmai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