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이야기

2014년 9월 23일 화요일

‘이 곳이 내가 당신을 떠나는 곳’ 제인 폰다


“항상 활동적 삶… 아버지 영향 행동주의자”


19일 개봉되는 가족드라마‘이 곳이 내가 당신을 떠나는 곳’(This Is Where I Leave You-영화평 참조)에서 아버지의 장례식에 참석차 오래간만에 귀향한 뿔뿔이 헤어졌던 자식들을 맞는 거대한 인공유방을 한 어머니로 나온 제인 폰다(76)와의 인터뷰가 토론토 국제영화제 기간인 7일 토론토의 페어몬트 로열 요크 호텔에서 있었다. 아버지 헨리를 꼭 닮은 갈비씨 제인은 차가운 기가 감돌 정도로 고고하고 우아했는데 76세의 나이답지 않게 아름답게 늙었다. 목을 감싸는 검은 셔츠 위에 회색 재킷을 입은 금발의 제인은 품위가 있었는데 굵음 음성으로 유머를 섞어가면서 짧고 명백 솔직하고 단도직입적으로 대답했다. 인터뷰를 즐기면서“하 하 하”하고 웃다가도 아버지의 얘기가 나오자 냅킨으로 눈물을 닦으며“나는 아버지를 사랑했다”며 울먹였다.      

―영화를 찍으면서 당신의 거대한 인공유방을 마음껏 즐겼다는 얘기를 들었는데.
“진짜 즐겼다. 그것 만드는데 3시간이 걸렸다. 솔직히 말해 사람들이 그것을 진짜 내 것이라고 생각해 주길 바랐다. 내 트일러에서 촬영장까지 걸어가면서 지나가는 차들에 대해 내 유방을 보라고 제스처를 쓰면서 즐겼다. 영화에서 그것을 가급적 많이 드러내려고 했으나 션 레비 감독이 말렸다.”

―당신은 50대 초반에 유방확대 수술을 했다가 후에 제거했는데 왜 그랬는가.
“나이가 먹을수록 유방이 자꾸 커지기 때문에 가짜가 필요 없다고 생각했다.”

―영화에서 당신은 여자와 진한 키스를 하는데 남자와 키스할 때와 다르던가.
“물론이다. 여자가 더 감각적이다. 내 현재의 애인만 빼고 나면 여자가 더 감각적이다.”    

―레비 감독은 당신이 겁을 모르는 배우라고 했는데.
“아니다. 난 언제나 공포에 떤다. 매일 촬영장에 갈 때마다 ‘나 오늘 실패할 거야 그러면 사람들이 날 가짜라고 생각하고 해고하겠지’라며 두려워한다. 신경이 예민하지도 않고 무섭지도 않으면 그 건 뭔가 잘못된 것이다.”

―실제로 당신의 가족이 재회할 때 어떤 불편한 점이라도 있는가.
“늘 있다. 가족이 모이면 언제나 문제가 있게 마련 아닌가. 그래서 가족이 모이면 어머니로서 그런 문제들을 처리하기 위해 만반의 준비를 한다.”

―당신의 삶에서 가장 중요한 변화의 계기는 무엇이었는가.
“테드 터너를 떠나 다시 혼자 있어야겠다고 깨달았을 때다. 나이 62세로 남자라는 보증수표가 더 이상 필요 없다고 생각했다. 그 결정은 내게 있어 매우 중요한 것이었다.”

―부부 간에 어떻게 사랑을 지속시킬 수 있는가.
“결혼을 세 번이나 한 사람에게 그걸 물어보는가. 나 전연 모르겠다.”

―나이 먹은 사람들은 당신이 하는 일로부터 많은 영향을 받는데 그들에게 해 줄 말이라도 있는가.
“가장 중요한 것은 항상 활동적이 되라는 것이다. 나는 옷을 잘 차려 입고 화장을 진하게 하는 것을 싫어한다. 그러려니 닭과 말이 있는 농장에 있겠다. 육체적으로 활동적이어야 레드 카펫에서도 멋지게 보인다. 특히 나이가 먹을수록 활동이 중요하다.”

―동성애 권리를 위해 적극적으로 참여하는가.
“아니다. 난 그보다는 여성에 대한 폭력방지와 언론매체에서의 여성 참여 확대 그리고 10대 문제에 더 관여하고 있다. 그러나 난 동성결혼을 적극 지지한다. 난 곧 릴리 탐린과 함께 이 문제를 다룰 코미디 시리즈에 나올 것이다.”

―당신의 동생 피터는 잘 있는가.
“배우로서 전국을 돌며 연기활동을 해 자주는 못 만나나 우린 서로 아주 가깝다. 내년 봄에 아직 한 번도 가보지 못한 온타리오에 있는 어머니의 무덤에 둘이 같이 가기로 했다.”

―당신의 목장 삶에 대해 말해 달라.
“목장에는 3.5마일 길이의 강이 있어 거기서 플라이피시를 한다. 나무도 자르고 돌벽도 만들고 오래 승마를 즐긴다. 기르는 닭에서 나온 계란을 먹는다. 2,300스퀘어피트의 농장을 걷거나 말을 타고 샅샅이 다녀 구석구석을 잘 안다.”
힐라리(제인 폰다)와 아들 저드(저스틴 베이트만)가 조문객을 맞고 있다.

―요리를 하며 즐기는 음식은 무엇인가.
“나 혼자 먹는 것은 요리하나 손님이 있으면 안 한다. 연어와 밥과 샐러드이나 난 요리를 잘 못한다. 오죽하면 내 전 남편이자 감독인 로저 바딤이 셰프가 되었겠는가.”

―목장은 어디에 있는가.
“뉴멕시코에 있는데 팔려고 내놓았다. 몸의 여러 군데에 이상이 생겨 더 이상 말을 못 타겠다. 내 몸에는 지금 금속이 많이 있다. 더 이상 등산도 못하고 낚시하기도 힘들다. 게다가 TV 시리즈를 해 매주 갈 수도 없다.”

―2016년에 누구를 대통령으로 뽑겠는가.
“힐러리다. 힐러리는 명령하는 식의 남자보다 민주적이요 협동적이다. 그가 당선되면 남자처럼 굴지 말고 진정한 여성 대통령이 되어주길 바란다. 그리고 그는 매우 현명하며 또 과거의 실수로부터 많은 것을 배웠다고 생각한다.”

―당신은 자연과 매우 연결돼 있는데 기상변화에 대해 우려하는가.  
“그렇다. 그 때문에 때론 잠도 못 잔다. 그러나 전 세계의 각국에는 이를 개선시키려고 노력하는 소수의 사람들이 있기 때문에 약간은 낙관적이다. 아직 안 늦었다고는 하나 나는 우리가 큰 재난에 직면해 있다고 생각한다. 난 내 농장도 누가 사든지 개발 못하도록 등록해 놓았다.”

―언제 어떻게 해서 여성으로서 자기 목소리를 높일 줄 아는 사람이 되었는가.
“어렸을 때부터 아버지가 영화에서 한 영웅적 인물을 보면서 자라 행동주의자가 된 것 같다. ‘분노의 포도’와 ‘옥스-보우 사건’ 그리고 ‘12인의 분노한 사람들’과 같은 영화들이다. 정의와 공정을 사랑하고 언더 독을 위해 싸우는 아버지를 따르게 된 것이다. 따라서 난 30대 초반까지는 약간 비현실적으로 살았다. 베트남전이 났을 때 난 프랑스에서 살았는데 그 때 프랑스 사람들이 미국의 잘못을 내게 가르쳐 주었다. 그 때 내 안에서 행동주의가 솟아났다. 여성으로서의 나는 60대가 돼서야 생성됐는데 난 그제야 비로소 내가 나로서 성숙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다시 결혼할 것인가.
“절대 안 한다. 77세에 왜 결혼을 한단 말인가. 테드와 내가 결혼한 이유는 그의 다섯 명의 아이들을 위해서라도 우리가 결혼을 하는 것이 낫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그리고 내가 아닌 테드가 결혼이라는 안전장치가 필요했기 때문이다.”

―결혼 아니면 요즘 필요한 것이 무엇인가.
“친절이다. 여자가 젊었을 땐 아무도 그들에게 친절에 대해 가르쳐 주지 않는다. 그 대신  성적 매력과 글래머와 함께 놀아줄 사람을 찾으라고 지도한다. 나는 친절과 위협감을 느끼지 않는 남자를 찾는다. 내 현 애인은 유대인이다. 마침내 나는 유대인이 그렇게 감각적이라는 것을 발견했다. 그리고 그의 어머니는 매우 강해 애인은 강한 여자를 무서워하지 않는다. 그리고 그는 친절하다. 그러나 결혼은 안 한다.”

―왜 아직도 연기를 하는가.
“내 생계비 마련을 위해서다. 내 나이가 되면 고정된 일거리가 있어야 하는데 그래서 난 이번 시리즈를 하게 된 것을 크게 다행으로 여긴다. 이 나이에 배우라는 안정된 직업이 있어 행복하다. 15년 전에 사업을 떠난 것도 매우 불행했기 때문으로 불행을 느끼면 연기를 할 수가 없다. 그동안 한참을 쉬었으니 난 이제 연기가 필요하다. 그리고 나는 책을 쓴다. 7권이나 썼고 앞으로 소설을 써볼 작정인데 어렵다.”

―아버지에 대한 가장 즐거운 추억은.
“아버지의 장례 후 아버지의 절친한 친구인 지미 스튜어트가 우리 집에 찾아와 내 건너편에  1시간 내내 침묵 속에 앉아 있다가 이윽고 말문을 열었다(이 때 제인 폰다는 눈물을 글썽이며 목이 메었다). 옛날에 둘이 함께 뉴욕에서 살 때 큰 연을 만들어 날렸다는 얘기를 들려주었다. 또 아버지의 분장사는 내게 그가 아버지를 분장할 때면 늘 아버지가 내 얘기를 했다고 말했다. 난 아버지를 무척 사랑했다.”              <한국일보  편집위원/hjpark1230@gmail.com>

헥터의 행복 추구(Hector And The Search for Happiness)

헥터(사이몬 펙)가 샹하이 관광을 즐기고 있다.

권태로운 삶 탈출 행복 찾아가는 여정 공감


런던에서 좋은 아파트에 아름다운 애인 그리고 훌륭한 직업을 갖고 잘 사는 헥터(사이몬 펙)는 이렇게 남들이 다 부러워할 여건을 갖췄는데도 삶이 도무지 행복하지가 않고 권태롭기만 하다. 아마 그의 직업이 매일 같이 남의 내적 고충을 들어줘야 하는 심리상담의이기 때문일는지도 모른다.
그래서 헥터는 어느 날 느닷없이 애인 클라라(로자문드 파이크-예쁘다)에게 “나 자아 발견을 위해 여행 좀 다녀와야겠다”고 일방적으로 선언한 뒤 보따리를 싸들고 세계 여행길에 나선다. 이 영국 영화는 우리가 여러 차례 들은 이런 자아발견의 얘기로 기시감이 많긴 하지만 코미디 배우로 알려진 사이몬 펙의 코믹하면서도 극적인 연기와 해롭지 않고 대중이 모두 즐길 수 있는 내용을 담아 보고 즐길 만하다.
심각한 내용과 코미디를 섞은 드라메디라고 하겠는데 얘기가 어쩔 수 없이 에피소드식이고 꽤 감상적이며 어떤 내용은 억지를 부린 듯이 믿어지지가 않는다. 그러나 “아 결국 행복이란 멀리 있는 것이 아니고 바로 내 코앞에 있구나”하고 해묵은 진리를 다시 한 번 깨달으며 밝은 마음으로 극장을 나설 수 있는 온 가족영화다.
그래서 헥터는 런던을 떠나 먼저 상하이로 날아간다(갑자기 자기 혼자 행복 찾아가겠다며 집을 나서는 헥터를 곱게 받아들이는 클라라야말로 성녀다). 이 여정에서 헥터는 부유한 은행가(스텔란 스카스가드는 언제나 잘 한다)를 만나 인생 얘기를 나누면서 인생 공부를 한다. 그리고 클럽에서 만난 아름다운 중국 창녀와도 대화를 나눈다. 또 중국 승려와도 만나 인생에 대해 한 말씀 듣는데 영화는 이렇게 인생 말씀이 많다.
이어 헥터는 아프리카로 날아간다. 여기서 헥터는 가난한 주민들을 만나 그들과의 짧은 삶을 즐기나 무기와 드럭 딜러들에게 납치되면서 죽을 고생을 한다. 매우 어두운 이 부분이 다소 믿어지지가 않는다. 그러나 헥터는 무기거래 두목(장 르노 역시 잘 한다)과의 인연으로 자유의 몸이 된다. 
헥터는 중간 중간에 스카이프로 클라라와 대화를 나누는데 클라라는 여전히 고분고분하다. 헥터는 이 여정을 통해 삶의 여러 가지 다른 부분들의 샘플을 수집하면서 이번에는 대학시절의 사랑 애그네스(토니 콜렛 역시 아주 잘 한다)가 살고 있는 LA로 간다. 애그니스는 행복한 결혼생활을 하고 있는 두 아이의 엄마. 
이제 헥터는 런던으로 돌아가기로 마음을 먹는다. 행복은 클라라가 있는 런던의 자기 아파트에 있다는 것을 깨달은 것이다. 변덕스럽고 재치가 있는 즐겁고 가벼운 영화로 펙이 코미디언에서 드러매틱한 배우로 변신하는 계기가 될 영화다. 특히 좋은 것은 조연진의 연기다. 영화에 무게를 주는 작용을 한다. 피터 첼솜 감독. 
R. Relativity. 일부지역. ★★★(5개 만점)  <한국일보  편집위원/hjpark1230@gmail.com>

이 곳이 내가 당신을 떠나는 곳(This Is Where I Leave You)


조문객을 맞을 채비를 한 웬디(왼쪽부터), 폴, 힐라리, 저드 그리고 필립.
미망인과 네 자녀의 왁자지껄 회상과 화해

무슨 소리인지 알다가도 모를 제목을 가진 이 영화는 흔해빠진 쪽박 찰 가족의 드라메디로 이런 드라마의 상투적인 것은 골고루 다 집대성한 무미건조한 교과서 같은 영화다. 아버지의 장례를 치르기 위해 뿔뿔이 헤어졌던 형제자매들이 귀향해 서로 울고불고 다투고 화해하고 자기 문제 남의 문제를 얘기하면서 시끄럽기 짝이 없다.
미망인과 그의 자녀 4명이 주인공인데 이들 외에도 아내와 남편과 현 애인과 전 애인에 이웃과 동네 사람들까지 모여들어 떠들어대는데 짜증이 난다. 어디서 많이 본 영화로 앙상블 캐스트가 소모된 타작이다. 하나 볼 것이 있다면 달리 파튼이 울고 갈 제인 폰다의 부풀어 터질 것 같은 인공 젖가슴. 폰다는 섹스에 굶주린 할머니로 나오는데 어쩌자고 이런 역을 맡고 스타일을 구기는지 모르겠다.
처음에 토크 라디오 제작자 저드(제이슨 베이트만)가 아내 퀸(애비게일 스펜서)의 생일에 일찍 퇴근해 생일 케익을 들고 귀가하니 아내가 밥맛없는 자기 보스 웨이드(댁스 쉐파드)와 섹스를 하는 것을 발견한다. 
이어 저드의 부친 사망소식이 날아들면서 저드는 어머니 힐라리(폰다)가 있는 고향집을 찾는다. 동네에 아직 살고 있는 것은 어머니 외에도 고지식한 저드의 맏형 폴(코리 스톨). 그런데 폴의 아내 앨리스(캐스린 한)는 아기가 갖고 싶어서 안달이 났다.
여기에 불만족스러운  결혼생활을 하는 외동딸 웬디(티나 페이)와 집안의 망나니 막내 필립(애담 드라이버)이 연상의 애인 트레이시(카니 브리턴)를 데리고 귀향한다.
그리고 이들은 대제사장 같은 어머니의 지시에 따라 유대교 전통대로 1주일간 문상을 받는다. 이들은 그동안 서로 다투고 끌어안고 용서하고 문제를 털어놓고 과거를 회상하면서 가족의 과거와 비밀의 뼈다귀들이 벽장 밖으로 굴러 나오는데 보고 듣자니 번거롭다.
이와 함께 저드는 고교시절 애인 페니(로즈 번)를 만나 사랑을 재점화하고 웬디도 집 앞에 사는 옛 애인 호리(티머시 올리판트)와 오래간만에 만나 이루지 못한 사랑을 아쉬워한다. 웬디의 남편은 일 때문에 일찍 떠나고 트레이시도 철든 남자를 만나야겠다며 필립을 두고 떠난다. 이 와중에 퀸이 저드를 찾아와 임신했다며 화해를 하잔다.
마지막에 힐라리의 깜짝 놀랄 비밀이 밝혀지는데 너무 급작스러워 믿어지질 않는다. 연기들은 무난한 편으로 베이트만과 드라이버가 그 중 낫다. 듣고 본 내용 반복하느라 분주한 영화로 흥행이 잘 안 될 것 같다. 션 레비 감독. R. WB. 일부지역  ★★1/2 (5개 만점) 



‘타락한 여인’



오페라의 프리마 돈나들은 참 불쌍하게들 죽는다. 지금 LA에서는 폐병에 걸린 비올레타가 애인 알프레도의 품에 안겨 죽고 뉴욕에서는 역시 폐병에 걸린 미미가 애인 로돌포의 품에 안겨 죽는다. 
비올레타는 LA 오페라의 시즌 개막작 베르디의 ‘라 트라비아타’(La Traviataㆍ사진)의 주인공인 고급 창녀이고 미미는 뉴욕 메트로폴리탄 오페라가 23일부터 공연할 푸치니의 ‘라 보엠’의 주인공인 재봉사다. 19세기만 해도 폐병은 현재의 암과 같은 불치병이었다.
비올레타와 미미 외에도 많은 프리마 돈나들이 비명횡사하거나 비극적 죽음을 맞는다. 
질다(‘리골레토’)는 아버지 리골레토의 칼에 찔려 죽고 카르멘은 애인 호세의 칼에 찔려 죽는다(‘카르멘’). 아이다는 애인 라다메스와 함께 생매장 당하고(‘아이다’) 데스데모나(‘오텔로’)는 남편 오텔로가 목을 졸라 죽인다.
토스카는 투신자살하고(‘토스카’) 치오-치오 산은 하라키리 칼로 목을 베고 자살한다(‘나비부인’). 루치아(‘람메르모어의 루치아’)는 미쳐 죽고 노르마는 불에 타 죽는다(‘노르마’). 그리고 이졸데는 애인 트리스탄이 칼에 찔려 죽자 자기도 따라 죽고(‘트리스탄과 이졸데’) 요부 마농은 기운이 빠져 죽는다(‘마농’).
비극이 희극보다 더 극적인 감동과 충격을 주기 때문에 이렇게 많은 프리마 돈나들이 희생을 당했는지도 모른다. 생애 30편의 오페라를 작곡한 베르디의 작품 중 희극은 단 2편뿐인 까닭도 이런 맥락에서 생각해 볼 수 있지 않을까 한다.
그런데 이들 프리마 돈나들은 죽을 때 그렇게 순순히 죽지를 않는다. 드러누워 죽었는줄 알았는데 다시 벌떡 일어나 할 말 다하고 부를 노래 다 부르고 다시 쓰러진다. 이젠 그만 죽었겠거니 하고 생각하면 다시 또 일어나 열창을 하고나서야 쓰러져 영면에 들어간다.
이를 두고 오페라적 죽음이라고 하는데 13일에 본 ‘라 트라비아타’에서도 쇠약해 소파에 누워있던 비올레타(조지아 태생의 니노 마차이제)가 다시 일어나 알프레도와 알프레도의 아버지 제르몽 그리고 자기를 돌봐주던 의사 그랑빌과 하녀 안니나에게 할 말 다하고 부를 노래 다 부르고 작별인사까지 하고 나서야 다시 쓰러져 죽는다.
‘라 트라비아타’(타락한 여인이라는 뜻)는 베르디의 오페라 중 가장 유명한 작품으로 옛날에 한국의 전쟁영화 ‘5인의 해병’에서 육군 졸병 곽규석이 “리비아모 잘 났다 못 났다”하면서 이 오페라의 ‘축배의 노래’를 불렀을 정도로 대중적인 오페라다.
황금의 마음을 가진 창녀와 순진한 시골 청년 간의 애틋한 사랑을 그린 오페라의 원작은 알렉상드르 뒤마 피스의 소설 ‘동백 아가씨’. 그런데 뒤마 피스가 마게리트(소설 속의 이름)를 사랑을 위해 자신을 희생하는 구원의 여인으로 묘사한 까닭은 자기 아버지 뒤마 페르가 쓴 소설 ‘삼총사’에서 여주인공 스파이 밀라디를 교활하고 사악하고 부정한 여자로 묘사한데 대한 반박이라는 설이 있다.
비올레타의 얘기는 여러 번 영화로도 만들어졌는데 그 중에서도 가장 유명한 것이 조지 큐커가 감독한 ‘춘희’(Camilleㆍ1937)다. 비올레타로는 의문부호와도 같았던 스웨덴 배우 그레타 가르보가 그리고 알프레도로는 왕년의 절세 미남 수퍼스타 로버트 테일러가 나왔다.
가르보를 위해 만들었다고 해도 될 만큼 그의 신비하면서도 정열적인 성질에 딱 맞는 영화다. 무지무지하게 로맨틱한데 가르보와 테일러의 콤비가 절묘하다.
현재 LA 다운타운의 도로시 챈들러 파빌리언에서 공연 중인 ‘라 트라비아타’는 LA 오페라 단장인 플라시도 도밍고의 아내 마르타가 2006년에 제작 연출한 것으로 마르타는 프로덕션 디자인도 담당했다. 
시대는 ‘로어링 투웬티즈’요 재즈시대라 불린 미국의 1920년대를 파리로 옮겨왔다. 이때는 금주령시대로 시카고의 악명 높은 갱스터 알 카폰이 밀주를 팔아 떼돈을 벌던 때다. 
비올레타는 당시 사치와 방탕을 일삼던 신여성 플래퍼(한국에서는 후라빠라고 불렀다)로 나오는데 당시 이런 화류계의 여성들의 모습은 영화 ‘파리의 아메리카인’에서 진 켈리와 공연한 시드 채리스와 ‘카바레’에 나온 라이자 미넬리가 잘 보여주고 있다.
시동 스타일의 헤어스타일과 헐렁한 드레스에 긴 담뱃대를 물고 밀주를 마시면서 ‘인생을 마음껏 즐기자’는 것을 삶의 모토로 삼았던 여자들로 돈 많은 애인이 한둘이 아니었는데 극중 비올레타의 주위의 화류계 여자들이 이런 모양을 했다.
그런데 유감스럽게도 이번 오페라는 참신함과 독창성이 안 보이는 기시감 가득한 공연이었다. 서툴고 엉성하다는 느낌마저 들었다. 하나 뛰어난 것은 마차이제의 노래. 약간 까칠까칠한 감촉이 나는 아름다운 음성이다.
그러나 알프레도 역의 멕시칸 테너 아르투로 차콘-크루스는 음성의 폭이 매우 좁고 빈약했는데 연기도 어색했다. 제르몽으로 나온 도밍고(바리톤으로 노래했는데 가슴에 깊이 와닿질 안는다)의 그림자에 주눅이라도 든 듯이 노래와 연기가 모두 허술했다. 28일까지 공연한다.                              <한국일보  편집위원/hjpark1230@gmail.com>



2014년 9월 15일 월요일

스크린 위 재탄생한 음악천재, 전기영화 봇물



 마일스 데이비스
위트니 휴스턴


위트니 휴스턴역의 야야 다코스타

























제임스 브라운‘겟 온 업’이어 

기타 귀재 지미 헨드릭스도 곧 개방
트럼펫 마일스 데이비스·

컨트리 행크 윌리엄스·위트니 휴스턴까지


재즈와 컨트리 그리고 팝뮤직의 수퍼스타들에 관한 전기영화가 계속해 만들어지고 있다.
이들 영화중 제일 먼저 나온 것은 8월에 개봉된 ‘겟 온 업’(Get on Up). 영국의 록그룹 롤링 스톤즈의 프론트맨 믹 재거가 제작한 이 영화는 ‘소울의 대부’라 불린 제임스 브라운의 파란만장한 삶을 다뤘다. 브라운으로는 연기력이 뛰어난 신성 채드윅 보스만이 나와 정열적인 연기를 보여줬다. 상당히 잘 만든 영화인데도 흥행서 고배를 마셨다.
26일에는 기타의 귀재 지미 헨드릭스의 삶을 다룬 ‘지미:올 이즈 바이 마이 사이드’(Jimi:All Is by My Side)가 개봉된다.
올해 ‘12년의 노예생활’로 오스카 각본상을 탄 존 리들리가 감독한 영화는 보통의 전기영화가 이야기하는 출생서 죽음에 이르기 까지라는 형식을 버리고 헨드릭스가 고생 끝에 1967년몬터리 팝 페스티발에서 신들린 기타연주로 대뜸 팬들의 우상이 되기 까지의 1년간의 삶을 다루고 있다.    
헨드릭스역은 록그룹 아웃캐스트의 프론트맨 안드레 벤자민이 맡았는데 그는 역을 위해 체중을 20파운드 뺀 뒤 5개월간 왼손잡이였던 지미가 기타를 거꾸로 들고 연주하는 동작을 연습했다. 리들리감독은 연기 경험이 없는 안드레를 기용한데 대해 “안드레가 지미처럼 겸손하고 사려 깊고 또 내면 성찰적인 사람이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재즈 트럼펫의 귀재 마일스 데이비스의 전기영화 ‘마일스 어헤드’(Miles Ahead)가 촬영을 끝내고 현재 후반작업이 진행중이다.
데이비스로는 연기파 단 치들이 나오는데 치들은 이 영화로 감독으로 데뷔한다. 치들은 어렸을 때 집에 있는 1955년에 출반된 데이비스의 앨범 ‘포기와 베스’를 들은 뒤로 이 재즈의 우상과도 같은 존재인 데이비스에게 매료됐다고.
영화는 신시내티에서 찍었는데 치들은 역을 위해 트럼펫연주를 공부했다. 내용은 데이비스가 잠시 연주활동을 중단한 시기와 그의 첫번째 아내 프랜시스 테일러와의 순탄치 못한 결혼생활  에 초점을 맞췄다.
치들은 그 이유에 대해 “나는 전형적인 전기영화에는 관심이 없다”면서 “데이비스의 음악적 스타일과 영향 그리고 아이디어가 결집된 그의 음악으로 가득찬 영화를 만들겠다”고 말했다.
컨트리뮤직의 거성으로 가수이자 작곡가인 행크 윌리엄스의 전기영화 ‘나는 빛을 보았다’(I Saw the Light-그의 히트송 제목)가 곧 제작에 들어간다. 행크역은 블락버스터영화 ‘토르’와 ‘어벤저스’에서 로키로 나온 영국의 탐 히들스톤이 나온다. 순 미국음악 컨트리가수로 영국배우를 기용한 것에 대해 고개를 갸우뚱하는 사람들도 있다.
히들스톤은 역을 위해 얼마전 미시간에서 열린 위틀랜드 뮤직 페스티발에서 기타를 치면서 행크의 노래들인 ‘무브  잇 온 오버’와 ‘아임 소 론섬 아이 쿠드 크라이’를 불렀다. 행크의 비음섞인 음성과는 다소 달리 쉰 목소리였지만 노래를 썩 잘 부르고 기타연주 솜씨도 좋았다고.
‘콜드, 콜드 하트’와 ‘유어 치틴 하트’ 그리고 ‘헤이 굿 루킨’ 등 수 많은 히트곡을 낸 행크는 29세로 요절했다.
팝의 디바로 불린 위트니 휴스턴의 전기영화 ‘위트니 휴스턴’(임시 제목)이 케이블 TV 라이프타임에 의해 내년초 방영을 목표로 현재 촬영중이다.
감독은 휴스턴과 영화 ‘웨이팅 투 엑스헤일’에서 공연한 앤젤라 배셋이 맡고 위트니로는 아메리카스 넥스트 탑 모델에 출전했던 야야 다코스타가 나온다. 이와 함께 가수 재니스 조플린의 전기영화도 만들어질 예정이다.                    <한국일보  편집위원 /hjpark1230@gmail.com>

스켈리튼 트윈스 (Skeleton Twins)


남매간 사랑과 갈등, 내적 방황 경쾌하게 그려


마일로(왼쪽)와 매기가 병원에서 어색한 대화를 하고 있다.
오래 서로 연락이 없던 남매의 재회를 통해 고찰한 남매의 사랑과 갈등 그리고 이들의 성격을 탐구한 소품 드라메디로 각본과 연기가 좋다. 철저한 인물과 개성을 천착한 작품으로 대사 위주여서 대중성 강한 오락영화는 아니나 심각한 드라마와 코미디를 달곰 쌉살하게 잘 섞었다. 다소 마음에 걸리는 것은 내용의 반복성이다. 같은 얘기를 되뇌이는 것 같은 느낌이 든다. 
영화에서 정말 보기 좋은 것은 둘 다 ‘새터데이 나잇 라이브’ 출신인 빌 헤이더와 크리스튼 윅의 연기와 절묘하게 맞아 떨어지는 호흡이다. 코믹하면서도 진지한데 내적 취약성과 분노와 슬픔과 함께 남매지간의 질긴 사랑을 한치의 과장도 없이 자연스럽게 해낸다. 박수감이다.
처음에 LA에 사는 안 팔리는 배우 마일로(헤이더)와 뉴욕에 사는 가정주부이자 치아위생사 매기(윅)이 서로 자살을 시도하는 장면으로 시작된다. 이런 심각한 장면을 코믹하게 처리한 크레이그 존스턴감독(공동 각본)의 솜씨가 기민한데 영화는 전편을 통해 이런 양분된 분위기를 재치 있게 조화시켰다.
마일로는 동성애자로 최근 애인에게서 버림 받고 욕조에서 혈관을 끊고 자살을 시도하는데 그 순간 매기도 손에 가득 담은 약을 먹으려고 한다. 이 때 매기의 셀폰이 울리면서 병원으로부터 마일로의 자살시도 뉴스가 전달된다. 그런데 둘은 10년간 서로 연락이 없던 사이다.  
LA로 날아간 매기가 마일로를 방문하나 처음에는 둘간의 분위기가 어색하다. 그러나 곧 이어 남매지간의 사랑이 연결되고 매기의 권유에 따라 마일로는 매기와 하께 고향인 뉴욕의 매기의 집으로 간다. 
복잡한 성격의 소유자로 자유분방한 매기는 사람 좋은 랜스(루크 윌슨)와 결혼해 겉으로 보기엔 행복하게 사는 것 같으나 자신의 평범한 행복을 겨워하면서 방황한다. 그리고 스쿠바선생과 애정 없는 섹스를 즐긴다. 그러나 매기가 자기를 극진히 사랑하는 남편과 안정된 직장과 안락한 가정이 있는데도 왜 방황하는지 그 이유가 애매모호하다. 하기야 내적 방황에 꼭 무슨 이유가 있어야 되는 것은 아닐지도 모르지만.  
이런 매기의 가정에 역시 정신적 감정적으로 안정이 되지 못한 마일로가 들어와 살면서 이 집안의 역학관계가 지각변동을 일으키게 되는데 천하태평 스타일의 랜스는 매기와 마일로의 관계를 옆에서 목격하면서 나름대로 관계 짜깁기에 한몫 거들려고 노력한다.
매기와 마일로의 관계가 소원하게된 연유는 서서히 밝혀지는데 마일로가 과거 자신의 고교 영어선생이었던 리치(타이 버렐도 착 가라 앉은 연기를 잘 한다)를 방문하면서 둘이 연인사이였음이 드러난다. 
마일로가 매기의 집에 장기 투숙을 하면서 둘간의 과거가 얘기되고 또 둘은 서로간의 감정적 문제와 이해관계 그리고 갈등과 때로는 증오까지를 다루면서 소리치며 다투기도 하나 결국은 정으로 화해한다. 
영화에서 기차게 멋 있는 장면은 마일로가 1980년대 유행한 보칼그룹 스타쉽의 ‘나싱즈 고나 스탑 어스 나우’를 립싱크하는 장면. 오래 기억될 장면으로 마지못해 뒤늦게 립싱크에 동참한 매기와 마일로의 마임 듀엣은 눈물이 날 정도로 감동적이다. 또 매기가 자기 치료소에서 마일로의 이를 스케일링한 뒤 둘이 나누는 대사와 즉흥적 연기하듯 하는 모습도 보기 좋다.
헤이더와 윅이 모두 진지하고 심각하며 때론 가슴 아프기까지한 주제를 무게가 있으면서도 경쾌하고 코믹하게 처리한 연기를 완벽하게 하는데 특히 윅의 연기가 보기 좋다. 
R. Roadside Attractions. 일부지역.  ★★★(5개 만점)
                                                                            <한국일보  편집위원 /hjpark1230@gmail.com>




“줄리엣, 나는 당신의 팬입니다”


제이크 질렌할, 르네 루소, 로버트 다우니 주니어, 로버트 두발, 빌 나이, 빌 머리, 사이몬 펙, 제이슨 베이트만, 티나 페이, 제인 폰다, 덴젤 워싱턴, 케빈 코스너, 옥테이비아 스펜서, 애담 샌들러, 안셀 엘고트, 케이틀린 디버, 가엘 가르시아 베르날, 티모시 스팔, 마일스 텔러, J.K. 시몬스. 4일부터 닷새간 토론토 국제영화제에 참석해 인터뷰한 배우들이다.    
데이빗 다브킨, 존 스튜어트, 션 레비, 제이슨 라이트만. 같은 기간에 인터뷰한 감독들이다.   아침부터 오후 늦게까지 인터뷰하고 영화 보고 저녁 파티에 참석하다 보면 온몸이 녹초가 된다. 매년 그렇지만 올해는 유난히 강행군이어서 할리웃외신기자협회(HFPA) 동료들이 이구동성으로 “토론토길 고생길”이라며 투덜댔다.
토론토 국제영화제(4-14일)는 오락성 있는 영화도 많이 상영하고 또 규모도 큰 영화시장이기도 하지만 무엇보다 수상시즌의 개막영화제로서 중요한 의미를 지니고 있다. 과거 9편의 오스카 작품상 수상작중 8편이 여기서 제일 먼저 각광을 받은 것이 이를 잘 증명한다.
특히 개막후 첫 나흘간 수상후보감들이 상영되는데 올해는 영화제측이 토론토영화제 직전에 폐막된 텔루라이드영화제 및 다른 영화제에서 상영된 영화들을 이 기간에서 제외시키는 바람에 ‘이미테이션 게임’(The Imitation Game)과 ‘와일드’(Wild) 같은 무게 있는 영화들이 뒷전으로 밀려났다.
그래서 예년처럼 영화제 초반에 오스카상 후보감들이 떠오르지 않아 다소 맥 빠지는 영화제가 됐다. 로버트 다우니 주니어와 로버트 두발이 부자로 나온 개막작 ‘판사’(The Judge)부터 마음에 안 들었다. 2시간 반짜리 지루한 가족과 법정 드라마로 두 배우의 경쟁하는 듯한 연기는 좋지만 작품상 후보에 오르기엔 미흡하다.
이어 사전 기대를 모았던 컴퓨터시대의 가족관계 단절을 다룬 ‘남자, 여자 & 아이들’(Men, Women & Children)과 뿔뿔이 헤어졌던 자녀들이 부친 장례식차 귀향해 떠들어대는 ‘여기가 내가 당신을 떠나는 곳’(This Is Where I Leave You) 도 가슴에 와 닿질 않는 평번한 것들이었다.
토론토영화제 팬들은 영화의 질과 관계 없이 영화가 끝나면 일제히 기립박수를 보내기로 유명하다. 그러나 ‘모든 것의 이론’(The Theory of Everything)이 끝난 뒤  팬들이 보여준 기립박수와 환호는 그 열기가 보통을 훨씬 넘어섰다. 나도 큰 박수를 보냈는데 이 영화가 이번 영화제의 큰 수확이다.
‘시간의 짧은 역사’를 쓴 윌체어 물리학자 스티븐 호킹의 전기로 호킹으로 나온 영국의 젊은 배우 에디 레드메인의 연기가 단연 오스카상감이다. 레드메인의 ‘나의 왼발’이라는 소리가 자자했다. 그의 첫부인 제인 역의 작고 예쁘장한 펠리시티 존스도 호연인데 이 영화는 오스카 작품과 각본과 감독 및 남우주연 등 여러 부문에서 수상후보에 오를만한 수작이다.
인터뷰 때 재미 있었던 일은 빌 머리의 너스레와 샴페인 접대. ‘세인트 빈센트’에서의 심술첨지 베이비시터 역으로 오스카주연상 후보감이라는 말을 듣고 있는 머리는 인터뷰 후 샴페인을 주문하고 우리들에게 “서두르지들 말고 샴페인을 마셔요”라고 명령을 했다. 나는 그 명령대로 샴페인을 마시고 그와 잔을 마주치면서 사진을 찍었다.
애담 샌들러의 악의 없는 상소리도 기억에 남는다. ‘남자, 여자 & 아이들’ 인터뷰 후 사진을 찍는데 그가 날보고 “헤이 영맨”이라며 “나 곧 48세가 돼”라고 늙은 티를 냈다. 이에 내가 기가 막혀 “뭐 나보고 영맨이라고, 나 60이 훨씬 넘었어”라고 말했더니 애담은 정색을하고 “불 쉿”이라고 불손한 소리를 했다. 난 깔깔대고 웃을 수 밖에 없었다.
영화제에 참석한 기라성 같은 스타들이 모두 모이는 것이 HFPA/InStyle 파티다. 하늘에 뜬 별들만큼이나 많은 스타들과 우리 회원들을 비롯한 손님들이 한 자리에 모여 먹고 마시고 떠들고 껴안고 사진 찍느라 아수라장을 이룬다.
스타들을 동반한 홍보담당자들은 여기서 우리 회원들을 잡아 끌다시피하며 자기 배우들과 인사를 시킨다. 골든 글로브상 후보 고를 때 기억해 달라는 홍보활동의 일환이다. 로버트 다우니 주니어와 에디 레드메인과 펠리시티 존스 및 사이몬 펙과 악수하고 사진 찍고 짧은 몇 마디를 나눴다.  
이날 만나 제일 반가웠던 배우가 내가 매우 좋아하는 줄리엣 비노쉬(사진). 검은 드레스를 입은 줄리엣은 다소 냉기가 감돌았지만 우아하고 아름다웠다. 나는 그에게 닥아가 악수를 청한 뒤 “줄리엣, 나는 당신의 팬입니다. 우리 몇 년 전에 부산영화제서 만났지요”라고 반가워 했다. 줄리엣은 이에 “고맙습니다”라며 잔잔한 미소를 지었다. 쉽게 근접할 수 없는 엄격함이 느껴져 더 좋았다.
자정이 넘어 파티장을 나서니 파티장 앞에 장사진을 친 팬들이 차에서 내리고 타는 스타들의 이름을 부르짖는다. 그들은 파티가 끝나는 새벽 2시까지 자리를 지키며 땅에 내려온 별구경을 했을것이다.  <한국일보  편집위원 /hjpark1230@gmail.com>


2014년 9월 9일 화요일

‘워킹 데드’글렌 역 스티븐 연


“연기자의 길 반대했던 부모님, 이젠 든든한 후원자”


AMC-TV의 인기시리즈로 인간과 산송장들의 대결을 그린‘워킹 데드’(Walking Dead)에서 한국계 글렌 리역을 맡은 스티븐 연(30-한국명 연상엽)과의 인터뷰가 베벌리힐스의 포시즌스호텔에서 있었다. 단정힌 차림의 곱게 생긴 스티븐은 나이보다 젊어 보였는데 인터뷰 전 기자와 만나 두손으로 악수를 하면서 한국말로“반갑습니다”라고 깍듯이 인사를 했다. 스티븐은 5세 때 이민와 부모가 집에서는 한국말을 쓰도록 가르쳐 한국말을 할줄 안다고 알려줬다.  매우 겸손한 사람으로 유머를 섞어가며 지혜롭게 대답을 했는데 내면이 무척 성숙된 젊은이라고 느꼈다. 인터뷰 후 함께 사진을 찍을 때“애인이 있느냐”고 물었더니 대답을 망설이면서 고개를 좌우로 흔들며“싱글이에요”라고만 말했다. 그런데 스티븐은 시리즈에서 공연하는 영국배우로 글렌의 애인 매기역을 맡은 로렌 코핸(31)과 데이트하는 관계라는 소문이 있으나 사실여부는 확인되지 않았다. 한편 스티븐은 현 한국의 북한전략센터 대표인 강철환씨의 함남 요덕정치범 수용소에서의 10년간의 삶을 그릴 영화‘평양의 어항’에서 강씨 역을 맡을 예정으로 제작도 겸한다.

5세 때 미국 이민… 집에서는 한국말 사용
할리웃 진출 문 열어준·전세대 선배들에 감사
‘워킹 데드’는 종말적 현대 사회분위기 반영


―연기 경험이 많지 않은 당신은 시리즈(현재 제5회 시즌)에서 좋은 연기를 보여줘 칭찬이 자자한데 스스로 타고난 연기인이라고 생각하는가.
“칭찬에 감사한다. 내가 글렌 역을 맡게된 것은 정말 운수대통한 일이다. 시리즈가 계속되면서 맡은 역에도 점점 확신을 갖게 됐는데 내 연기가 진전한 것은 다 시리즈에 나오는 선배들의 지도 격려 탓이다. 나는 처음부터 공연배우들에게 ‘질문을 무더기로 해도 되겠느냐’고 물은 뒤 그들의 자문을 받았다. 따라서 좋다는 내 연기는 다 그들 탓이다.”

―이 시리즈가 당신에게 있어 훌륭한 영화배우가 될 수 있는 디딤돌이라고 생각하는가.
“모르겠다. 그랬으면 좋겠다. 이 시리즈 뒤로 보다 많은 역이 주어졌으면 좋겠다. 난 지금 내 역을 진정으로 즐기고 있다. 영화계와 연기등 많은 것을 배우고 있다. 연기외에도  감독과 각본집필등 무엇이 먼저 실현될지는 모르겠지만 그 모든 것은 지금까지 내가 터득한 것을 보다 풍성하게 해주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매기를 사랑하게 되면서 당신 역은 어떤 변화를 일으켰는가.
“글렌은 처음에는 주위 사람들로부터 인정을 받으려고 다소 무모하고 또 남을 위해 희생할 의도마저 있었지만 매기를 사랑하게 되면서 그를 위해 살아야 된다고 마음을 바꾼다. 이 사랑이 나를 활짝 개방시키고 또 키워줬다. 글렌은 사랑으로 인해 제공자요 연인이며 또 파트너요 본격적인 남자로 성장한 것이다.”

―사람과 산송장 중에 누가 더 잔인하다고 보는가.
“단연 사람이다. 그 것이 이 쇼의 매력이다. 이 시리즈는 생존에 관한 것으로 때로 혼란이 오면 사람들은 선과 악의 극단적인 두 방향으로 나아가게 된다는 것을 보여주고 있다.”         
―당신이 좋아하는 산송장영화는 무엇인가.
“난 산송장영화 팬이 아니다. 너무 끔직하다. 그러나 산송장영화를 풍자한 ‘션 오브 더 데드’는 재미 있게 봤다. 그리고 ‘28일 후’도 좋게 봤다.”

―산송장을 피할 수 있는 묘책 세가지를 말해보라.
“몸에서 악취를 풍기고 가볍게 여행을 하며 예쁜 여자를 친구로 두는 것이다.”

―글렌과 당신의 유사성과 다른 점은 무엇인가.
글렌 역의 스티븐 연과 그의 연인 매기 역의 로렌 코핸.
“그와 나는 모두 아주 평범하다는 것이 같다. 나는 고등학교와 대학교 때 체격도 크지 않고 또 아시안 아메리칸이어서 농구와 풋볼 같은 경기가 있을 때면 늘 꼴찌로 뽑혔다. 따라서 난  많은 것들을 극복해야 했고 또 나도 평균치 정도는 할 수 있다는 것을 증명하기 위해 필요 이상으로 노력해야 했다. 그런 면에서 글렌과 나는 매우 닮았다. 둘 다 오해 받고 잘못 전해지고 있다는 면에서. 다른 점이라면 글렌이 나보다 더 괴이한 복장을 한다는 것이다. 그는 탱크탑을 입는데 난 그 것을 안 입는다.”

―시리즈에서 당신이 겪은 가장 끔직한 장면은 무엇인가.
“우물 속에서 줄에 매달려 있는 나를 잡아 먹겠다고 밑에서 손을 뻗치는 물에 퉁퉁 불은 산송장 장면이다. 나는 내 밑에 어떤 산송장이 있는 줄을 모르다가 마지막 순간에 가서야 보고 진짜로 혼비백산 했었다.”

―대부분의 아시안 부모들은 자신의 자녀들이 사업가가 되거나 변호사가 되기를 원하는데 당신이 배우가 되기로 했을 때 당신 부모의 반응은 어땠는가.
“안 좋았다. 그러나 나를 밀어주었다. 난 그런 부모를 둔 행운아다. 그러나 난 자랄 때 부모 속을 많이 썩였다. 나는 나 같은 자식 두고싶지 않다. 부모에게 대어들고 끊임 없이 따졌다. 왜 이를 닦아야 하며 왜 일찍 자야 하느냐고 대어 들었다. 부모가 하라는 것과는 정반대로 나가 부모의 마음을 많이 아프게 했다. 내가 배우가 되겠다고 했을 때 나의 부모는 ‘우리가 반대하면 또 난리법석을 떨겠지’라며 허락했다. 그리고 2년간 기회를 주겠다고 말한 뒤로 즉시 나를 후원했다. 이제 그들은 좋아서 어쩔줄을 모른다.”

―할리웃이 아시안계를 위해 문을 충분히 열었다고 보는가.
“우리의 전 세대보다 우리 세대에게 보다 많은 기회가 주어질 것으로 확신한다. 내가 그 증거다. 난 나의 전 세대 선배들 보다 덜 고생하고 이런 역을 맡을 수가 있었다. 선배들은 쓰레기같은 역을 맡아야했고 그나마 많지 않았다. 선배들에게 감사를 드린다. 난 참 운이 좋아 다른 아시안계 배우들보다 쉽게 할리웃에 진출할 수 있었다. 지금 내게 있어 가장 중요한 것은 내가 아시안 아메리칸 배우라는 딱지를 떼어버리는 것이다. 내 정체성과 모습을 유지하면서 온전한 미국인으로서 실제 세상에 존재하는 역을 해내는 것이다.”

―시리즈에 아시안 산송장이 몇이나 있는지 세어 봤는가.
“굉장히 많다. 첫 번째 시즌에는 2명내지 3명이었는데 시리즈가 계속 되면서 그 수도 늘어났다. 그러나 산송장들은 다 비슷해 인종을 구별하기가 쉽지 않다. 산송장 중에는 한국계 스턴트맨이 있다.”

―팬들이 당신을 보면 어떤 반응을 하는가.
“사람들이 내가 한 일에 대해 긍정적으로 반응하는 것을 보면 기분이 좋다. 사람들이 점점 더 많이 이 쇼를 보는 이유는 단순히 무섭고 놀라운 것을 보자는 것만이 아니라 이 시리즈가 전하는 메시지가 이 시대와 코드가 맞기 때문이라고 본다. 팬들의 호응에 정말로 감사한다.”

―이 시리즈는 단순히 산송장에 관한 것이라기 보다 우리 시대의 어떤 현상을 대변하고 있는 것으로 본다. 당신의 의견은 어떤가.
“요즘 우리 사회에는 세상 종말적인 분위가 감돌고 있다. 뉴스매체의 발달로 세계 도처에서 발생하는 참극들이 마치 우리집 뒷마당에서 일어난 것처럼 즉각적으로 우리에게 전달되기 때문이다. 경제붕괴를 비롯해 온갖 불길한 뉴스들이 시도 때도 없이 다량으로 우리에게 공급돼 우리는 마치 세계종말이 곧 올것같은 분위기에서 살고 있다. 시리즈는 이런 면을 반영하고 있다. 따라서 사람들은 산송장이 판을 치는 세상에 남은 사람들이 어떻게 생존해 나아갈 수 있는지에 대해 궁금해 하면서 쇼에 매어달리는 것 같다.”

―시리즈는 애틀란타에서 찍는데 주민들의 반응은 어떤가.
“아주 좋아한다. 촬영을 할때면 사람들이 떼를 지어 와서 구경한다. 이런 인기 시리즈가 자신들의 동네에서 만들어진다는 것에 대해 자랑스럽게 여기는 것같았다.” 

―글렌이 다음에는 살아남은 사람들의 지도자가 되리라고 생각하는가.
“현재로서 글렌은 자기 자신을 찾기에 바쁘다. 글렌은 계속해 성장하고 있다. 지도자란 단순히 힘이 센 자가 아니라 남을 돌보고 염려하며 또 총명하고 지각이 있는 사람이어야 한다. 그런 면에서 글렌은 지도자로서의 자질이 있다고 본다. 그러나 당장은 아니다.”

―당신과 매기의 관계는 순탄하겠는가.
“무슨 일이 생길지 아무도 모른다. 글렌은 매기를 붙잡고 놔 주지 않을 것인데 매기가 어떨지는 두고 봐야할 것이다.”

―사랑의 치유력을 느껴봤는가. 사랑이 당신을 어떻게 변화시켰는가.
“사랑이란 모든 것이다. 나도 그 것에 내밀히 관여해본 적이 있다. 반드시 로맨틱한 사랑뿐 아니라 어떤 형태의 것이든지 사랑은 사람을 변화시킨다. 나는 개가 있는데 개를 처음 가지면서 그 것을 돌보기 위해 그때까지 살아온 것과는 완전히 다른 생활을 해야 한다는 것을 깨달았다. 삶이란 이런 관계에 근거를 둔 것이라고 본다. 나는 우리가 모두 서로 연결돼 있다고 본다. 다른 사람을 사랑한다는 것은 자신을 사랑하는 것이기도 하다. 그같은 경험을 한다는 것이 인생의 목표라고 생각한다. 글렌과 매기의 관계도 그런 것이다.”

―한국에서 애틀란타까지 온 경위를 말해달라.
“난 한국에서 출생했다. 부모는 1988년에 캐나다로 이민을 했다. 거기서 1년쯤 보내고 미시간으로 왔다. 삼촌이 살았기 때문이다. 나는 미시간에서 자라 거기서 대학을 나왔다. 그리고 나는 시카고로 이주했다. 연극에 뛰어들었다. 코미디그룹 세컨드시티와 2년 순회공연을 한 뒤 2009년 배짱 하나 믿고 LA로 왔다. 처음에는 무서웠다. 그러나 많은 사람들이 도와줬다. 그리고 내가 가장 잘한다고 생각하는 것을 밀고 나갔다. 참 운이 좋았다.”

엘리노어 리그비의 실종: 그들(The Disappearance of Eleanor Rigby: Them)

사랑의 붕괴와 후유증, 시적 언어로 고찰


카너(제임스 매카보이·왼쪽)와 엘리노어(제시카 채스테인)가 사랑에 잠겨 있다.

서로를 지극히 사랑하는 30대 젊은 부부의 비극적 사건을 겪은 뒤 무너져 내리는 관계를 진지하고 감정적으로 고찰한 아름다운 드라마로 프랑스 영화풍이다. 네드 벤슨이 각본을 쓰고 감독으로 데뷔한 이 영화는 처음 찍을 때 부부의 얘기를 각기 남편과 아내의 입장에서 본 ‘남자’(Him)와 ‘여자’(Her)의 2편으로 만들었으나 이번에 개봉되는 영화는 이 둘을 합한 것이다. 그래서 제목에 ‘그들’이 붙었다. ‘남자/여자’를 합한 201분짜리는 10월10일에 개봉된다.
문학적이요 고상한 영화로 시적이요 철학적인 대사가 때로 과장된 것처럼 느껴지기도 하나 듣기 좋다, “비극은 다른 나라이다. 우리는 그 나라 원주민들과의 대화의 방법을 모른다”라든지 “나는 당신을 만나기 전까진 내가 누구인지를 전연 몰랐다”라는 말들은 아름답다.
붕괴되는 부부관계 외에도 사랑의 의미와 자식과 부모의 관계 그리고 비극의 후유증에 각기 다르게 대처하면서 사랑을 재연결시키고 아울러 자신들의 삶에 다시 불을 밝히려는 부부의 안간힘을 로맨틱하면서도 시적 사실주의적으로 그렸다. 
영화는 처음에 뉴욕에 사는 젊은 부부 카너(제임스 매카보이)와 엘리노어(제시카 채스테인)의 사랑의 유희로 시작된다. 이 때 카너가 엘리노어에게 “내 몸 속의 심장은 하나이니 내게 자비를 베푸소서”하고 사랑을 고백한다. 그런데 엘리노어라는 이름은 엘리노어의 대학 교수인 아버지 줄리안(윌리엄 허트)이 비틀즈의 노래제목을 따서 붙인 것이다.
이어 장면은 엘리노어가 뉴욕의 다리에서 강물로 뛰어내리는 것으로 변전하면서 우리는 서서히 엘리노어와 카너의 관계 붕괴의 원인을 알게 된다. 영화는 엘리노어와 카너의 입장에서 얘기되면서 한쪽의 얘기를 할 때면 다른 쪽은 화면에서 사라진다. 그런데 제목의 실종은 상징적인 것이다.
그리고 엘리노어는 코네티컷주에 있는 아버지와 어머니 메리(이자벨 위페르)의 집으로 숨어든다. 메리는 프랑스 여자로 줄담배에 포도주를 물마시듯 하는데 전직 바이얼리니스트다. 엘리노어와 그의 부모 간의 관계와 대화가 솔직하고 다정하게 묘사되는데 영화는 가족의 세대 간의 초상화와 함께 이들 각자 자신들의 삶에 대한 인식을 차분히 다루고 있다.
삶을 다시 추스르려고 애쓰는 엘리노어는 대학에서 릴리언 교수(바이올라 데이비스)가 가르치는 ‘아이덴티티 이론’을 청강하면서 릴리언과 우정을 맺는다. 그리고 파리에서 공부하다 중단한 인류학을 계속하기 위해 파리로 떠날 생각을 한다.
한편 카너는 친구인 스튜어트(빌 헤이더)를 셰프로 고용, 식당을 차리고 비극으로부터 떠나 앞으로 나아가려고 노력한다. 그리고 엘리노어를 찾아내 뒤쫓아 가나 둘은 서로를 지극히 사랑하면서도 무너지기 시작한 관계가 비극의 무게 때문에 쉽게 재 연결되지를 않는다.
감동적이고 보기 좋은 부분은 카너와 사업에서는 성공한 식당 주인이나 인생에선 실패한 카너의 아버지 스펜서(키아란 힌즈)와의 관계와 대화. 조용하고 깊이 있게 부자관계와 삶의 문제들을 얘기한다.
사랑하나 서로 멀어진 부부의 재연결 가능성을 가슴 깊숙이 파고들도록 흡인력 있게 그린 아담하고 엄숙한 영화로 강렬한 눈동자를 지닌 채스테인의 연약한 듯 하면서도 다부지고 감정 풍만한 연기와 매카보이의 꾸밈없는 순진한 연기가 좋은 조화를 이루면서 작품에 무게를 준다. 뉴욕현지 촬영과 음악도 훌륭하다. 성인용. Weinstein. 일부지역. 12일 개봉.   ★★★★(5개 만점)  <한국일보 편집위원 / hjpark1230@gmail.com>



선셋대로(Sunset Blvd.)

할리웃의 실상과 허상 고발 불후의 명화


노마(오른쪽)가 조에게 왕년의 자기 영화를 보여주면서 뽐내고 있다.


빌리 와일더가 감독한 1950년작 불후의 명화로 환상과 미혹 위에 세워진 할리웃의 실상과 허상을 통렬하게 고발하고 또 그것들을 음침하게 웃어 제친 블랙 코미디다. ‘
할리웃의 과거요 현재며 미래’라고 불리는 영화는 로맨틱하고 우아했던 1920년대 무성영화 시대를 그리워하는 노스탤지어이기도 하다.
한물간 왕년의 무성영화 시대 수퍼스타였던 노마 데즈몬드(글로리아 스완슨)가 쏜 총에 맞고 선셋대로에 있는 노마의 저택 풀에 눈을 뜨고 엎드린 채 떠오른 안 팔리는 각본가 조(윌리엄 홀든)의 회상으로 시작된다.
조는 자기 자동차를 회수하려는 리포맨들을 피해 선셋대로로 도망가다가 노마의 집에 숨어든 것을 계기로 자신이 아직도 수퍼스타라는 망상에 빠진 노마의 기둥서방으로 전락한다. 그리고 자기 삶에 넌더리가 난 조가 노마를 떠나다가 총에 맞아 죽은 것이다.
전율스럽도록 뛰어난 것은 노마의 광기를 처절하도록 아름답게 표현해낸 스완슨의 연기. 완전히 돌아버린 노마가 자기 집 계단을 내려오면서 플래시를 터뜨리는 카메라맨들을 영화촬영 팀으로 오인하고 “올 라잇, 드밀씨, 나 클로스업할 준비 됐어요”라고 말하는 라스트신은 영화사에 길이 남는 것이다.
“나는 커. 작아진 것은 영화들이야”를 비롯해 기차게 멋진 대사가 가득한 영화로 무성영화 시대 빅 스타를 비롯해 왕년의 유명 영화와 연예인들이 실명으로 나온다. 명 코미디언 버스터 키튼과 유명 가십 칼럼니스트 헤다 하퍼 그리고 명감독 세실 B. 드밀 및 명감독이자 배우였던 에릭 본 스트로하임 등이 나온다.      
와일더의 경험과 성격과 지성 그리고 독기 서린 위트와 유머가 가득 찬 영화로 작품 분위기가 너무 어두워 개봉 당시에는 대중의 큰 인기를 얻지 못했었다.
인기보다는 관객과 비평가와 영화사 사장들에게 경악과 충격을 안겨준 작품으로 한 영화사 사장은 와일더를 “자기에게 밥 주는 주인의 손을 무는 개”라고 비난했었다. 감독상 등 11개 부문에서 오스카상 후보에 올랐으나 각본상과 음악상 등 3개만 받았다.
12일 하오 7시30분에 해머뮤지엄 내 빌리 와일더 극장(10899 윌셔)에서 상영한다. 꼭 보시도록 권한다.  <한국일보 편집위원 / hjpark1230@gmail.com>

빅 픽처:히치콕!



할리웃보울 안으로 들어서니 정면에 걸린 대형 스크린에 부루퉁한 입술에 찐빵같은 뺨을한 히치콕의 커다란 서양호박 모양의 얼굴 실루엣이 눈에 익다. 이 실루엣은 현재도 안테나TV에서 재방영하는 히치콕의 30분짜리 미스터리 서스펜스 앤솔로지 ‘알프렛 히치콕 제공’의 처음에 나오는 것으로 이때 사용된 음악이 구노의 뒤뚱거리는 ‘꼭둑각시의 장송행진곡’이다.
지난 일요일 서스펜스의 거장 알프렛 히치콕의 영화와 함께 음악이 연주되는 ‘빅 픽처:히치콕!’을 들으러 보울에 갔다. 묵직한 음성의 “하우 두 유 두. 긴장을 풀고 느긋이 앉아 공포가 찾아올 때까지 즐기시오”라는 히치콕의 인사말이 끝나고 스크린에 ‘북북서로 진로를 돌려라’ ‘마니’ ‘새들’ ‘사이코’및 ‘나는 비밀을 알고 있다’ 등의 장면들이 몽타주로 쏜살같이 지나가면서 데이빗 뉴만이 지휘하는 할리웃보울 오케스트라가 ‘꼭둑각시의 장송행진곡’과 함께 이들 영화의 음악을 박력있게 연주했다.
데이빗 뉴만은 ‘호파’와 ‘아이스 에이지’ 등 100여편의 영화음악 작곡자이자 지휘자. 그의 아버지 알프렛은 폭스사의 영화 처음에 나오는 팡파레를 작곡한사람으로 ‘모정’ 등으로 오스카상을 무려 9번이나 탔다. 이날 알프렛이 작곡한 ‘해외 특파원’의 음악도 연주됐다.
연주는 ‘북북서로 진로를 돌려라’에 나온 에바 마리 세인트(사진)의 해설과 함께 진행됐다. 첫 번에 연주된 음악은 러시아태생으로 ‘하이 눈’과 ‘O.K.목장의 결투’ 등의 음악을 지은 디미트리 티옴킨의 ‘기차 안의 낯선 사람들’. 음악이 극중 주인공의 하나로 낯선 사람에게 교차살인을 제의하는 로버트 워커처럼 교활하고 음모적이다.
티옴킨은 이날 프로그램에 포함된 입체영화 ‘다이얼 M을 돌려라’의 음악도 작곡했는데 마리 세인트는 히치콕은 입체영화를 성가신 아이들 장난같은 것으로 여겼다고 들려줬다.
히치콕은 영국에서 무성영화로 감독생활을 시작했는데 첫곡에 이어 그의 대표적 무성영화 ‘하숙생’과 함께 스파이 스릴러 ‘39계단’ 및 히치콕이 즐겨 다룬 도망가는 남자의 얘기인 ‘사보퇴르’의 음악이 차례로 연주됐다.
히치콕이 1939년 도미해 처음 만든 영화가 로렌스 올리비에와 조운 폰테인이 나온 으스스한 분위기의 ‘레베카’다. 이날 연주된 ‘레베카’의 음악은 ‘선셋대로’와 ‘젊은이의 양지’로 오스카상을 탄 프란츠 왝스맨의 것으로 그는 ‘레베카’ 외에도 ‘의혹’과 ‘이창’ 등 히치콕의 영화음악을 작곡했다.    
히치콕과 영화사에 길이 남는 감독과 작곡가의 돈독한 관계를 유지하면서 모두 7편의 히치콕의 영화음악을 작곡한 버나드 허만의 작품중에서  가장 유명한 것이 ‘사이코’다. 음침하기 짝이 없는 음악으로 허만은 ‘흑백영화에 맞는 흑백음악’이라고 말했다. 음악이 매우 검고 살의가 있어 여름밤 기운마저 소슬하게 느껴졌다.
휴게시간 후 첫 번째로 연주된 음악이 역시 허만이 작곡한 ‘환상’이다. 제임스 스튜어트와 킴 노백이 나오는 샌프란시스코를 무대로한 집념적인 사랑과 고독 그리고 살인과 죽음에 관한 명작으로 음악이 귀기가 감돌면서도 로맨틱하고 또 집요하다.
허만은 이날 연주된 ‘북북서로 진로를 돌려라’의 음악도 작곡했다. 히치콕 특유의 엉뚱한 사람 잡는 경쾌한 스릴러로 음악이 신경을 위협하면서도 재치있고 또 힘차다. ‘환상’과  ‘북북서로 진로를 돌려라’의 음악은 독립음악으로서도 훌륭하다. 이 영화들에 허만의 음악이 없었더라면 우리의 영화에 대한 반응도 달라졌을 것이다.      
히치콕영화의 음악은 여러번 오스카상후보에 올랐지만 막상 상을 탄 것은 헝가리태생으로 ‘벤-허’의 음악을 작곡한 미클로스 로자의 ‘망각의 여로’ 하나뿐이다. 둘 다 정신병치료소의 의사로 어두운 과거를 지닌 그레고리 펙과 그를 사랑하는 잉그릿 버그만의 마음을 음으로 묘사한 ‘사랑의 주제’가 격정적으로 가슴을 엄습한다. 마치 집단자살이라도 하듯이 떨어지는 가을낙엽들처럼 자포자기적으로 로맨틱하다.
이어 프렌치 리비에라에 은퇴한 심야 보석전문털이 케리 그랜트와 미국인 사교계여인 그레이스 켈리의 유희하듯 하는 사랑의 제스처와 대사로 유명한 사뿐한 스릴러 ‘나는 결백하다’의 밤의 불꽃놀이 장면이 스크린을 장식했다. 이 불꽃장면은 남녀간 섹스의 절정을 상징하는 것으로 음악도 영화에 잘 맞게 장난끼가 있으면서도 감각적이다.
마지막으로 ‘사이코’에서 샤워하는 재넷 리를 앤소니 퍼킨스가 식칼로 난자 살해할 때 나오는  사람 잡는 충격적인 음악이 연주됐다. 순전히 현으로만 연주되는데 바이얼린이 떼를 지어 목청을 다해 비명을 지르면 베이스가 음험하게 맞장구를 차면서 듣는 사람의 전감관을 유린한다. 천재적 영상처리와 마법적 음이 절묘한 조화를 이룬 장면이다.  
여름밤의 대기 속에 사이트와 사운드를 포도주에 타서 마시며 즐긴 뒤 히치콕의 “굿 나잇” 배웅을 받으며 보울을 나섰다.  <한국일보 편집위원 / hjpark1230@gmai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