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이야기

2014년 9월 23일 화요일

‘이 곳이 내가 당신을 떠나는 곳’ 제인 폰다


“항상 활동적 삶… 아버지 영향 행동주의자”


19일 개봉되는 가족드라마‘이 곳이 내가 당신을 떠나는 곳’(This Is Where I Leave You-영화평 참조)에서 아버지의 장례식에 참석차 오래간만에 귀향한 뿔뿔이 헤어졌던 자식들을 맞는 거대한 인공유방을 한 어머니로 나온 제인 폰다(76)와의 인터뷰가 토론토 국제영화제 기간인 7일 토론토의 페어몬트 로열 요크 호텔에서 있었다. 아버지 헨리를 꼭 닮은 갈비씨 제인은 차가운 기가 감돌 정도로 고고하고 우아했는데 76세의 나이답지 않게 아름답게 늙었다. 목을 감싸는 검은 셔츠 위에 회색 재킷을 입은 금발의 제인은 품위가 있었는데 굵음 음성으로 유머를 섞어가면서 짧고 명백 솔직하고 단도직입적으로 대답했다. 인터뷰를 즐기면서“하 하 하”하고 웃다가도 아버지의 얘기가 나오자 냅킨으로 눈물을 닦으며“나는 아버지를 사랑했다”며 울먹였다.      

―영화를 찍으면서 당신의 거대한 인공유방을 마음껏 즐겼다는 얘기를 들었는데.
“진짜 즐겼다. 그것 만드는데 3시간이 걸렸다. 솔직히 말해 사람들이 그것을 진짜 내 것이라고 생각해 주길 바랐다. 내 트일러에서 촬영장까지 걸어가면서 지나가는 차들에 대해 내 유방을 보라고 제스처를 쓰면서 즐겼다. 영화에서 그것을 가급적 많이 드러내려고 했으나 션 레비 감독이 말렸다.”

―당신은 50대 초반에 유방확대 수술을 했다가 후에 제거했는데 왜 그랬는가.
“나이가 먹을수록 유방이 자꾸 커지기 때문에 가짜가 필요 없다고 생각했다.”

―영화에서 당신은 여자와 진한 키스를 하는데 남자와 키스할 때와 다르던가.
“물론이다. 여자가 더 감각적이다. 내 현재의 애인만 빼고 나면 여자가 더 감각적이다.”    

―레비 감독은 당신이 겁을 모르는 배우라고 했는데.
“아니다. 난 언제나 공포에 떤다. 매일 촬영장에 갈 때마다 ‘나 오늘 실패할 거야 그러면 사람들이 날 가짜라고 생각하고 해고하겠지’라며 두려워한다. 신경이 예민하지도 않고 무섭지도 않으면 그 건 뭔가 잘못된 것이다.”

―실제로 당신의 가족이 재회할 때 어떤 불편한 점이라도 있는가.
“늘 있다. 가족이 모이면 언제나 문제가 있게 마련 아닌가. 그래서 가족이 모이면 어머니로서 그런 문제들을 처리하기 위해 만반의 준비를 한다.”

―당신의 삶에서 가장 중요한 변화의 계기는 무엇이었는가.
“테드 터너를 떠나 다시 혼자 있어야겠다고 깨달았을 때다. 나이 62세로 남자라는 보증수표가 더 이상 필요 없다고 생각했다. 그 결정은 내게 있어 매우 중요한 것이었다.”

―부부 간에 어떻게 사랑을 지속시킬 수 있는가.
“결혼을 세 번이나 한 사람에게 그걸 물어보는가. 나 전연 모르겠다.”

―나이 먹은 사람들은 당신이 하는 일로부터 많은 영향을 받는데 그들에게 해 줄 말이라도 있는가.
“가장 중요한 것은 항상 활동적이 되라는 것이다. 나는 옷을 잘 차려 입고 화장을 진하게 하는 것을 싫어한다. 그러려니 닭과 말이 있는 농장에 있겠다. 육체적으로 활동적이어야 레드 카펫에서도 멋지게 보인다. 특히 나이가 먹을수록 활동이 중요하다.”

―동성애 권리를 위해 적극적으로 참여하는가.
“아니다. 난 그보다는 여성에 대한 폭력방지와 언론매체에서의 여성 참여 확대 그리고 10대 문제에 더 관여하고 있다. 그러나 난 동성결혼을 적극 지지한다. 난 곧 릴리 탐린과 함께 이 문제를 다룰 코미디 시리즈에 나올 것이다.”

―당신의 동생 피터는 잘 있는가.
“배우로서 전국을 돌며 연기활동을 해 자주는 못 만나나 우린 서로 아주 가깝다. 내년 봄에 아직 한 번도 가보지 못한 온타리오에 있는 어머니의 무덤에 둘이 같이 가기로 했다.”

―당신의 목장 삶에 대해 말해 달라.
“목장에는 3.5마일 길이의 강이 있어 거기서 플라이피시를 한다. 나무도 자르고 돌벽도 만들고 오래 승마를 즐긴다. 기르는 닭에서 나온 계란을 먹는다. 2,300스퀘어피트의 농장을 걷거나 말을 타고 샅샅이 다녀 구석구석을 잘 안다.”
힐라리(제인 폰다)와 아들 저드(저스틴 베이트만)가 조문객을 맞고 있다.

―요리를 하며 즐기는 음식은 무엇인가.
“나 혼자 먹는 것은 요리하나 손님이 있으면 안 한다. 연어와 밥과 샐러드이나 난 요리를 잘 못한다. 오죽하면 내 전 남편이자 감독인 로저 바딤이 셰프가 되었겠는가.”

―목장은 어디에 있는가.
“뉴멕시코에 있는데 팔려고 내놓았다. 몸의 여러 군데에 이상이 생겨 더 이상 말을 못 타겠다. 내 몸에는 지금 금속이 많이 있다. 더 이상 등산도 못하고 낚시하기도 힘들다. 게다가 TV 시리즈를 해 매주 갈 수도 없다.”

―2016년에 누구를 대통령으로 뽑겠는가.
“힐러리다. 힐러리는 명령하는 식의 남자보다 민주적이요 협동적이다. 그가 당선되면 남자처럼 굴지 말고 진정한 여성 대통령이 되어주길 바란다. 그리고 그는 매우 현명하며 또 과거의 실수로부터 많은 것을 배웠다고 생각한다.”

―당신은 자연과 매우 연결돼 있는데 기상변화에 대해 우려하는가.  
“그렇다. 그 때문에 때론 잠도 못 잔다. 그러나 전 세계의 각국에는 이를 개선시키려고 노력하는 소수의 사람들이 있기 때문에 약간은 낙관적이다. 아직 안 늦었다고는 하나 나는 우리가 큰 재난에 직면해 있다고 생각한다. 난 내 농장도 누가 사든지 개발 못하도록 등록해 놓았다.”

―언제 어떻게 해서 여성으로서 자기 목소리를 높일 줄 아는 사람이 되었는가.
“어렸을 때부터 아버지가 영화에서 한 영웅적 인물을 보면서 자라 행동주의자가 된 것 같다. ‘분노의 포도’와 ‘옥스-보우 사건’ 그리고 ‘12인의 분노한 사람들’과 같은 영화들이다. 정의와 공정을 사랑하고 언더 독을 위해 싸우는 아버지를 따르게 된 것이다. 따라서 난 30대 초반까지는 약간 비현실적으로 살았다. 베트남전이 났을 때 난 프랑스에서 살았는데 그 때 프랑스 사람들이 미국의 잘못을 내게 가르쳐 주었다. 그 때 내 안에서 행동주의가 솟아났다. 여성으로서의 나는 60대가 돼서야 생성됐는데 난 그제야 비로소 내가 나로서 성숙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다시 결혼할 것인가.
“절대 안 한다. 77세에 왜 결혼을 한단 말인가. 테드와 내가 결혼한 이유는 그의 다섯 명의 아이들을 위해서라도 우리가 결혼을 하는 것이 낫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그리고 내가 아닌 테드가 결혼이라는 안전장치가 필요했기 때문이다.”

―결혼 아니면 요즘 필요한 것이 무엇인가.
“친절이다. 여자가 젊었을 땐 아무도 그들에게 친절에 대해 가르쳐 주지 않는다. 그 대신  성적 매력과 글래머와 함께 놀아줄 사람을 찾으라고 지도한다. 나는 친절과 위협감을 느끼지 않는 남자를 찾는다. 내 현 애인은 유대인이다. 마침내 나는 유대인이 그렇게 감각적이라는 것을 발견했다. 그리고 그의 어머니는 매우 강해 애인은 강한 여자를 무서워하지 않는다. 그리고 그는 친절하다. 그러나 결혼은 안 한다.”

―왜 아직도 연기를 하는가.
“내 생계비 마련을 위해서다. 내 나이가 되면 고정된 일거리가 있어야 하는데 그래서 난 이번 시리즈를 하게 된 것을 크게 다행으로 여긴다. 이 나이에 배우라는 안정된 직업이 있어 행복하다. 15년 전에 사업을 떠난 것도 매우 불행했기 때문으로 불행을 느끼면 연기를 할 수가 없다. 그동안 한참을 쉬었으니 난 이제 연기가 필요하다. 그리고 나는 책을 쓴다. 7권이나 썼고 앞으로 소설을 써볼 작정인데 어렵다.”

―아버지에 대한 가장 즐거운 추억은.
“아버지의 장례 후 아버지의 절친한 친구인 지미 스튜어트가 우리 집에 찾아와 내 건너편에  1시간 내내 침묵 속에 앉아 있다가 이윽고 말문을 열었다(이 때 제인 폰다는 눈물을 글썽이며 목이 메었다). 옛날에 둘이 함께 뉴욕에서 살 때 큰 연을 만들어 날렸다는 얘기를 들려주었다. 또 아버지의 분장사는 내게 그가 아버지를 분장할 때면 늘 아버지가 내 얘기를 했다고 말했다. 난 아버지를 무척 사랑했다.”              <한국일보  편집위원/hjpark1230@gmail.com>

헥터의 행복 추구(Hector And The Search for Happiness)

헥터(사이몬 펙)가 샹하이 관광을 즐기고 있다.

권태로운 삶 탈출 행복 찾아가는 여정 공감


런던에서 좋은 아파트에 아름다운 애인 그리고 훌륭한 직업을 갖고 잘 사는 헥터(사이몬 펙)는 이렇게 남들이 다 부러워할 여건을 갖췄는데도 삶이 도무지 행복하지가 않고 권태롭기만 하다. 아마 그의 직업이 매일 같이 남의 내적 고충을 들어줘야 하는 심리상담의이기 때문일는지도 모른다.
그래서 헥터는 어느 날 느닷없이 애인 클라라(로자문드 파이크-예쁘다)에게 “나 자아 발견을 위해 여행 좀 다녀와야겠다”고 일방적으로 선언한 뒤 보따리를 싸들고 세계 여행길에 나선다. 이 영국 영화는 우리가 여러 차례 들은 이런 자아발견의 얘기로 기시감이 많긴 하지만 코미디 배우로 알려진 사이몬 펙의 코믹하면서도 극적인 연기와 해롭지 않고 대중이 모두 즐길 수 있는 내용을 담아 보고 즐길 만하다.
심각한 내용과 코미디를 섞은 드라메디라고 하겠는데 얘기가 어쩔 수 없이 에피소드식이고 꽤 감상적이며 어떤 내용은 억지를 부린 듯이 믿어지지가 않는다. 그러나 “아 결국 행복이란 멀리 있는 것이 아니고 바로 내 코앞에 있구나”하고 해묵은 진리를 다시 한 번 깨달으며 밝은 마음으로 극장을 나설 수 있는 온 가족영화다.
그래서 헥터는 런던을 떠나 먼저 상하이로 날아간다(갑자기 자기 혼자 행복 찾아가겠다며 집을 나서는 헥터를 곱게 받아들이는 클라라야말로 성녀다). 이 여정에서 헥터는 부유한 은행가(스텔란 스카스가드는 언제나 잘 한다)를 만나 인생 얘기를 나누면서 인생 공부를 한다. 그리고 클럽에서 만난 아름다운 중국 창녀와도 대화를 나눈다. 또 중국 승려와도 만나 인생에 대해 한 말씀 듣는데 영화는 이렇게 인생 말씀이 많다.
이어 헥터는 아프리카로 날아간다. 여기서 헥터는 가난한 주민들을 만나 그들과의 짧은 삶을 즐기나 무기와 드럭 딜러들에게 납치되면서 죽을 고생을 한다. 매우 어두운 이 부분이 다소 믿어지지가 않는다. 그러나 헥터는 무기거래 두목(장 르노 역시 잘 한다)과의 인연으로 자유의 몸이 된다. 
헥터는 중간 중간에 스카이프로 클라라와 대화를 나누는데 클라라는 여전히 고분고분하다. 헥터는 이 여정을 통해 삶의 여러 가지 다른 부분들의 샘플을 수집하면서 이번에는 대학시절의 사랑 애그네스(토니 콜렛 역시 아주 잘 한다)가 살고 있는 LA로 간다. 애그니스는 행복한 결혼생활을 하고 있는 두 아이의 엄마. 
이제 헥터는 런던으로 돌아가기로 마음을 먹는다. 행복은 클라라가 있는 런던의 자기 아파트에 있다는 것을 깨달은 것이다. 변덕스럽고 재치가 있는 즐겁고 가벼운 영화로 펙이 코미디언에서 드러매틱한 배우로 변신하는 계기가 될 영화다. 특히 좋은 것은 조연진의 연기다. 영화에 무게를 주는 작용을 한다. 피터 첼솜 감독. 
R. Relativity. 일부지역. ★★★(5개 만점)  <한국일보  편집위원/hjpark1230@gmail.com>

이 곳이 내가 당신을 떠나는 곳(This Is Where I Leave You)


조문객을 맞을 채비를 한 웬디(왼쪽부터), 폴, 힐라리, 저드 그리고 필립.
미망인과 네 자녀의 왁자지껄 회상과 화해

무슨 소리인지 알다가도 모를 제목을 가진 이 영화는 흔해빠진 쪽박 찰 가족의 드라메디로 이런 드라마의 상투적인 것은 골고루 다 집대성한 무미건조한 교과서 같은 영화다. 아버지의 장례를 치르기 위해 뿔뿔이 헤어졌던 형제자매들이 귀향해 서로 울고불고 다투고 화해하고 자기 문제 남의 문제를 얘기하면서 시끄럽기 짝이 없다.
미망인과 그의 자녀 4명이 주인공인데 이들 외에도 아내와 남편과 현 애인과 전 애인에 이웃과 동네 사람들까지 모여들어 떠들어대는데 짜증이 난다. 어디서 많이 본 영화로 앙상블 캐스트가 소모된 타작이다. 하나 볼 것이 있다면 달리 파튼이 울고 갈 제인 폰다의 부풀어 터질 것 같은 인공 젖가슴. 폰다는 섹스에 굶주린 할머니로 나오는데 어쩌자고 이런 역을 맡고 스타일을 구기는지 모르겠다.
처음에 토크 라디오 제작자 저드(제이슨 베이트만)가 아내 퀸(애비게일 스펜서)의 생일에 일찍 퇴근해 생일 케익을 들고 귀가하니 아내가 밥맛없는 자기 보스 웨이드(댁스 쉐파드)와 섹스를 하는 것을 발견한다. 
이어 저드의 부친 사망소식이 날아들면서 저드는 어머니 힐라리(폰다)가 있는 고향집을 찾는다. 동네에 아직 살고 있는 것은 어머니 외에도 고지식한 저드의 맏형 폴(코리 스톨). 그런데 폴의 아내 앨리스(캐스린 한)는 아기가 갖고 싶어서 안달이 났다.
여기에 불만족스러운  결혼생활을 하는 외동딸 웬디(티나 페이)와 집안의 망나니 막내 필립(애담 드라이버)이 연상의 애인 트레이시(카니 브리턴)를 데리고 귀향한다.
그리고 이들은 대제사장 같은 어머니의 지시에 따라 유대교 전통대로 1주일간 문상을 받는다. 이들은 그동안 서로 다투고 끌어안고 용서하고 문제를 털어놓고 과거를 회상하면서 가족의 과거와 비밀의 뼈다귀들이 벽장 밖으로 굴러 나오는데 보고 듣자니 번거롭다.
이와 함께 저드는 고교시절 애인 페니(로즈 번)를 만나 사랑을 재점화하고 웬디도 집 앞에 사는 옛 애인 호리(티머시 올리판트)와 오래간만에 만나 이루지 못한 사랑을 아쉬워한다. 웬디의 남편은 일 때문에 일찍 떠나고 트레이시도 철든 남자를 만나야겠다며 필립을 두고 떠난다. 이 와중에 퀸이 저드를 찾아와 임신했다며 화해를 하잔다.
마지막에 힐라리의 깜짝 놀랄 비밀이 밝혀지는데 너무 급작스러워 믿어지질 않는다. 연기들은 무난한 편으로 베이트만과 드라이버가 그 중 낫다. 듣고 본 내용 반복하느라 분주한 영화로 흥행이 잘 안 될 것 같다. 션 레비 감독. R. WB. 일부지역  ★★1/2 (5개 만점) 



‘타락한 여인’



오페라의 프리마 돈나들은 참 불쌍하게들 죽는다. 지금 LA에서는 폐병에 걸린 비올레타가 애인 알프레도의 품에 안겨 죽고 뉴욕에서는 역시 폐병에 걸린 미미가 애인 로돌포의 품에 안겨 죽는다. 
비올레타는 LA 오페라의 시즌 개막작 베르디의 ‘라 트라비아타’(La Traviataㆍ사진)의 주인공인 고급 창녀이고 미미는 뉴욕 메트로폴리탄 오페라가 23일부터 공연할 푸치니의 ‘라 보엠’의 주인공인 재봉사다. 19세기만 해도 폐병은 현재의 암과 같은 불치병이었다.
비올레타와 미미 외에도 많은 프리마 돈나들이 비명횡사하거나 비극적 죽음을 맞는다. 
질다(‘리골레토’)는 아버지 리골레토의 칼에 찔려 죽고 카르멘은 애인 호세의 칼에 찔려 죽는다(‘카르멘’). 아이다는 애인 라다메스와 함께 생매장 당하고(‘아이다’) 데스데모나(‘오텔로’)는 남편 오텔로가 목을 졸라 죽인다.
토스카는 투신자살하고(‘토스카’) 치오-치오 산은 하라키리 칼로 목을 베고 자살한다(‘나비부인’). 루치아(‘람메르모어의 루치아’)는 미쳐 죽고 노르마는 불에 타 죽는다(‘노르마’). 그리고 이졸데는 애인 트리스탄이 칼에 찔려 죽자 자기도 따라 죽고(‘트리스탄과 이졸데’) 요부 마농은 기운이 빠져 죽는다(‘마농’).
비극이 희극보다 더 극적인 감동과 충격을 주기 때문에 이렇게 많은 프리마 돈나들이 희생을 당했는지도 모른다. 생애 30편의 오페라를 작곡한 베르디의 작품 중 희극은 단 2편뿐인 까닭도 이런 맥락에서 생각해 볼 수 있지 않을까 한다.
그런데 이들 프리마 돈나들은 죽을 때 그렇게 순순히 죽지를 않는다. 드러누워 죽었는줄 알았는데 다시 벌떡 일어나 할 말 다하고 부를 노래 다 부르고 다시 쓰러진다. 이젠 그만 죽었겠거니 하고 생각하면 다시 또 일어나 열창을 하고나서야 쓰러져 영면에 들어간다.
이를 두고 오페라적 죽음이라고 하는데 13일에 본 ‘라 트라비아타’에서도 쇠약해 소파에 누워있던 비올레타(조지아 태생의 니노 마차이제)가 다시 일어나 알프레도와 알프레도의 아버지 제르몽 그리고 자기를 돌봐주던 의사 그랑빌과 하녀 안니나에게 할 말 다하고 부를 노래 다 부르고 작별인사까지 하고 나서야 다시 쓰러져 죽는다.
‘라 트라비아타’(타락한 여인이라는 뜻)는 베르디의 오페라 중 가장 유명한 작품으로 옛날에 한국의 전쟁영화 ‘5인의 해병’에서 육군 졸병 곽규석이 “리비아모 잘 났다 못 났다”하면서 이 오페라의 ‘축배의 노래’를 불렀을 정도로 대중적인 오페라다.
황금의 마음을 가진 창녀와 순진한 시골 청년 간의 애틋한 사랑을 그린 오페라의 원작은 알렉상드르 뒤마 피스의 소설 ‘동백 아가씨’. 그런데 뒤마 피스가 마게리트(소설 속의 이름)를 사랑을 위해 자신을 희생하는 구원의 여인으로 묘사한 까닭은 자기 아버지 뒤마 페르가 쓴 소설 ‘삼총사’에서 여주인공 스파이 밀라디를 교활하고 사악하고 부정한 여자로 묘사한데 대한 반박이라는 설이 있다.
비올레타의 얘기는 여러 번 영화로도 만들어졌는데 그 중에서도 가장 유명한 것이 조지 큐커가 감독한 ‘춘희’(Camilleㆍ1937)다. 비올레타로는 의문부호와도 같았던 스웨덴 배우 그레타 가르보가 그리고 알프레도로는 왕년의 절세 미남 수퍼스타 로버트 테일러가 나왔다.
가르보를 위해 만들었다고 해도 될 만큼 그의 신비하면서도 정열적인 성질에 딱 맞는 영화다. 무지무지하게 로맨틱한데 가르보와 테일러의 콤비가 절묘하다.
현재 LA 다운타운의 도로시 챈들러 파빌리언에서 공연 중인 ‘라 트라비아타’는 LA 오페라 단장인 플라시도 도밍고의 아내 마르타가 2006년에 제작 연출한 것으로 마르타는 프로덕션 디자인도 담당했다. 
시대는 ‘로어링 투웬티즈’요 재즈시대라 불린 미국의 1920년대를 파리로 옮겨왔다. 이때는 금주령시대로 시카고의 악명 높은 갱스터 알 카폰이 밀주를 팔아 떼돈을 벌던 때다. 
비올레타는 당시 사치와 방탕을 일삼던 신여성 플래퍼(한국에서는 후라빠라고 불렀다)로 나오는데 당시 이런 화류계의 여성들의 모습은 영화 ‘파리의 아메리카인’에서 진 켈리와 공연한 시드 채리스와 ‘카바레’에 나온 라이자 미넬리가 잘 보여주고 있다.
시동 스타일의 헤어스타일과 헐렁한 드레스에 긴 담뱃대를 물고 밀주를 마시면서 ‘인생을 마음껏 즐기자’는 것을 삶의 모토로 삼았던 여자들로 돈 많은 애인이 한둘이 아니었는데 극중 비올레타의 주위의 화류계 여자들이 이런 모양을 했다.
그런데 유감스럽게도 이번 오페라는 참신함과 독창성이 안 보이는 기시감 가득한 공연이었다. 서툴고 엉성하다는 느낌마저 들었다. 하나 뛰어난 것은 마차이제의 노래. 약간 까칠까칠한 감촉이 나는 아름다운 음성이다.
그러나 알프레도 역의 멕시칸 테너 아르투로 차콘-크루스는 음성의 폭이 매우 좁고 빈약했는데 연기도 어색했다. 제르몽으로 나온 도밍고(바리톤으로 노래했는데 가슴에 깊이 와닿질 안는다)의 그림자에 주눅이라도 든 듯이 노래와 연기가 모두 허술했다. 28일까지 공연한다.                              <한국일보  편집위원/hjpark1230@gmai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