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함께 일한 가장 아름다운 남자는 록 허드슨”
150여편 영화 출연…‘표범’ ‘8 ½’ ‘부베의 여인’ 애착
브리짓 바르도와는 라이벌 아닌 아주 친했던 사이
1960년대 전성기에 BB로 불린 프랑스의 육체파 브리짓 바르도에 맞서 CC라 불리면서 전 세계 남성들의 선망의 대상이 되었던 왕년의 이탈리아의 글래머 스타 클라우디아 카르디나레(77)와의 인터뷰가 지난 3월30일 뉴욕의 레파드 식당에서 있었다. 육감적이던 얼굴이 전연 알아볼 수 없을 정도로 변한 카르디나레를 보면서 세월의 무상을 다시 한 번 깨닫지 않을 수가 없었다. 그러나 카르디나레는 그런 세월을 무시나 하듯이 매우 정력적이요 쾌활하고 유머가 많았다. 튜니지아 태생인 카르디나레는 특유의 저음에 다소 서툰 영어로 질문에 간단하면서도 위트 있게 대답했는데 록 허드슨과 케리 그랜트 등 과거 자기와 공연한 스타들의 얘기를 할 때는 그리움에 젖은 모습을 보였다. 카르디나레는 주제가‘시노 메 모로’로 유명한‘형사’와‘부베의 여인’ 및‘가방을 든 여자’로 올드팬들의 기억에 남아 있다. 카르디나레는 최근 개봉된 19세기 영국의 미술평론가 존 러스킨과 19세 때 결혼, 불행한 삶을 산 꿈 많은 에피 그레이의 실화를 그린‘에피 그레이’(Effie Gray)에서 베니스의 귀부인으로 나온다.
―당신의 영화들은 한국에서 굉장한 인기를 모았었다. 특히 한국 여자들은 당신과 조지 차키리스가 공연한 ‘부베의 여인’을 사랑했는데 그 영화와 차키리스에 대한 좋은 추억이라도 있는지.
“그것은 정말로 멋있는 영화였다. 지난 번 내가 LA에 들렀을 때 차키리스가 날 기다려 만났다. 그리고 내게 선물을 듬뿍 주었다. 그 영화는 정말로 환상적이었다.”
―다음의 클라우디아 카르디나레가 되려는 젊은 배우들에게 무슨 말을 해 주겠는가.
“모르겠다. 난 배우가 될 생각이 없었으니까. 감독 등 영화인들이 나를 못 살도록 조르는 바람에 배우가 된 것이다. 그들은 마치 연인을 쫓아다니듯이 날 쫓아다녔다.”
―당신은 맹렬 여권운동가인데 그것이 영화와 사회에서 어느 정도 진척이 되었다고 보는가.
“난 여권신장을 위한 유네스코 대사다. 난 그것을 위해 늘 싸우고 있다. 불행하게도 많은 나라에선 남자들이 왕이다. 난 어렸을 때부터 늘 그런 남자들에 맞서 싸웠다.”
―남자와 사랑에 대해 배운 것이 무엇인가.
“내가 결코 결혼 안한 것 보면 짐작하지 않겠는가. 그러나 내겐 딱 한 명의 중요한 남자가 있는데 그는 내 딸의 아버지인 나폴리 태생의 영화감독 파스쿠알레 스퀴티에리이다. 영화들을 찍을 때 많은 남자들이 내게 구애를 했지만 다 ‘노’했다.”
―영화 ‘표범’에 대해 말해 달라.
“참으로 훌륭한 영화였다. 처음 영화에 버트 랭카스터가 나온다고 하자 사람들이 ‘아니 그는 카우보이인데 이런 시대극을 해낼 수가 없을 걸’이라고들 했다. 그러나 그는 멋있게 해냈다. 그 후 랭카스터와 난 절친한 사이가 됐다.”
클라우디아 카르디나레가 사랑하는 영화 중 하나인‘부베의 여인’. 왼쪽은 공연한 조지 차키리스. |
―영화 선택을 어떻게 하나.
“감독과 각본이 우선이다. 각본이 나쁘면 출연을 거절한다. 그리고 세트에선 감독이 제일 중요하다. 좌우단간에 나는 남들은 다 은퇴했지만 77세에도 일을 하는 것을 기쁘게 여긴다. 지금까지 150여편의 영화에 나왔다.”
―돌아보건 데 당신의 삶에서 무언가를 고쳐 보고 싶은 것이라도 있는지.
“인생은 단 한번 뿐인데 고치긴 뭘 고치는가. 한 가지 말하고자 하는 것은 이 직업은 안으로 심지가 굳어야 해낼 수가 있다는 것이다. 그렇지 않으면 자신의 정체조차 모르게 된다. 카메라 앞의 나는 허상으로 촬영이 끝나면 자신에게로 돌아가야 한다.”
―아이들을 어떻게 키웠는가.
“엄마라는 것은 참 멋있다. 난 아이들이 아주 어렸을 때부터 그들에게 자유를 주었다. 지금 내 딸과 아들은 다 혼자 살고 있다. 우린 서로 아주 가깝다.”
―당신에게 있어 성공과 명성은 어떤 의미가 있는지.
“그것을 이뤘다고 해서 달라진 것은 없다. 난 거의 정상적인 삶을 살고 있다. 산책하고 신문을 사서 읽고 바디가드도 없다.”
―명성 중에 가장 즐길 만한 것은 무엇인가.
“내가 아랍 사람이어서 날 공주라고 부르는 것이다.”
―성형수술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나.
“난 그것을 싫어하고 하지도 않았다. 나의 어머니는 나더러 ‘넌 늘 하하하 하고 웃기 때문에 주름살을 찾아보기가 힘들다’고 했다. 성형수술을 하고 난 뒤 거울을 보면 자신을 알아볼 수가 없을 것 아닌가.”
―당신은 BB라 불린 브리짓 바르도에 맞서 CC라 불리며 그로부터 가장 섹시한 여배우의 왕관을 빼앗았는데 둘의 관계가 어땠는지.
“파파라치들이 우리를 놓고 금발 대 검은 갈색머리의 대결이라고 부추기면서 우리가 서로 죽이기라도 할 것이라고 했지만 우린 아주 좋은 관계였다. 그녀는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여자였다.”
―할리웃에서의 재미있는 경험은 무엇인지.
“난 늘 바디가드 없이 혼자 걸어 다녔는데 경찰들은 날 보면 늘 세운 뒤 ‘왜 바디가드가 없느냐’고 묻곤 했다. 그 때마다 내 대답은 ‘난 바디가드를 원치 않는다’는 것이었다.”
―당신에게 있어 가장 아름다운 남자는 누구인지.
“난 많은 아름다운 남자와 일을 해서 고르기가 쉽지는 않지만 록 허드슨이라고 해야겠다. 그는 나의 좋은 친구였다. 당시엔 동성애자는 일을 할 수가 없었기 때문에 우리가 함께 있을 땐 마치 연인인 것처럼 행동했다. 그 때 동성애는 배우에겐 독약이나 마찬가지였다.”
―인간관계에서 중요한 것이 무엇인가.
“서로가 주고받는 대화요 통신이다.”
―지금 어디서 사나.
“파리다. 31년째 살고 있다.”
―딸이 혹시 당신의 전철을 밟을 생각은 없었는지.
“그런 제의가 있었지만 딸은 싫단다. 굉장히 예쁘다. 한 번은 LA에서 딸에게 잔 다르크 역이 주어졌는데 딸은 거절했다.”
―요즘 애인이 있나.
“내게 남자란 단 하나 내 딸의 아버지다. 그러나 난 늘 혼자 살고 있다.”
―어떻게 해서 배우가 됐는가.
“우연이다. 튜니지아에서 미인대회가 있었는데 그 때 행사 관계자 한 남자가 거기에 있던 나를 무조건 잡아끌어 무대에 내보냈다. 그리곤 당선 부상으로 베니스영화제에 보냈다. 거기서 비키니를 입었는데 파파라치들이 사진을 찍는다고 난리법석을 떨더라. 그 때 비키니 처음 입어 봤다. 이어 영화감독과 제작자들이 영화 출연을 제의했지만 난 ‘노’라고 했다. 집에 돌아오는 비행기에서 ‘영화를 거절한 여자’라는 제목의 나에 관한 기사를 일고 깜짝 놀랐다. 그 후 영화 관계자들이 내 아버지에게 전보를 수 없이 보내 날 배우로 내보내라고 독촉을 했다. 그래서 견디다 못해 갑자기 로마의 촬영 실험센터에 등록을 하게 된 것이다. 난 성질이 있어 주위 사람들이 다 날 싫어했다.”
―그 때 영화인들이 당신의 섹시한 음성을 싫어했다는 말이 사실인지.
“이탈리아 말을 못하는데다가 음성까지 남자 것 같아서 싫어했다. 내 얼굴을 안 보고 목소리만 들으면 날 남자로 착각했다.”
―누구의 옷을 입나요. 또 장신구들을 좋아하나.
“늘 아르마니다. 장신구들을 좋아한다.”
―당신의 가슴에 아주 가깝게 느끼는 영화들은 무엇인가.
“가장 중요한 두 영화는 비스콘티의 ‘표범’과 펠리니의 ‘8 ½’이다. 그리고 ‘가방을 든 여인’과 ‘부베의 여인’이다.”
―할리웃에서의 경험 중 기억나는 것은 무엇인가.
“존 웨인이 주연한 ‘서커스 월드’를 찍을 때 리타 헤이워드가 내 캠퍼를 찾아와 내 얼굴을 보더니 울기를 시작하더라. 난 영문을 몰랐다. 이어 그는 나보고 ‘나도 한 때 아름다웠지’라고 했다. 그는 그 때도 아름다웠는데도 과거의 자기가 더 아름다웠다고 여긴 것 같다.”
<한국일보 박흥진 편집위원/ hjpark1230@gmai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