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이야기

2016년 6월 28일 화요일

웨스트 사이드 스토리(West Side Story)


마리아와 토니(왼쪽)가 비상계단에서 사랑의 노래를 주고 받고 있다.

뉴욕 뒷골목 라이벌 갱단의 현대판‘로미오와 줄리엣’


브로드웨이 뮤지컬을 스크린으로 옮긴 최고 걸작 로맨틱 뮤지컬 드라마로 1961년에 개봉돼 작품, 감독, 음악, 남녀조연 및 의상 등 모두 10개의 오스카상을 탔다. 비평가들의 극찬과 함께 흥행에서도 크게 성공한 강력한 전율이 흐르는 춤과 노래의 향연과도 같은 영화로 음악은 레너드 번스타인이 작곡했고 가사는 스티븐 손드하임이 썼다. 영화의 안무는 무대 안무를 맡은 제롬 로빈스가 담당했다. 
이 영화는 셰익스피어의 ‘로미오와 줄리엣’의 얘기를 뉴욕의 뒷골목으로 옮겨 놓은 것으로   푸에르토리칸 갱과 백인 갱의 세력다툼 속에서 일어나는 라이벌 갱에 속한 젊은 토니(리처드 베이머)와 마리아(나탈리 우드)의 비극적 사랑을 다루고 있다.
백인 갱의 이름은 제츠로 리더는 리프(러스 탬블린)인데 리프는 닥스 드럭스토어에서 일하는 친구 토니와 함께 갱을 조직했다. 푸에르토리칸 갱의 이름은 샤크스로 리더는 베르나르도(조지 차키리스가 오스카 조연상을 탔다). 베르나르도에게는 아름다운 여동생 마리아(나탈리 우드)가 있고 토니의 애인은 성질이 불같은 봉제공장에서 일하는 아니타(리타 모레노가 오스카 조연상을 탔다).
제츠와 샤크스는 관할지역 문제를 놓고 다투는데 이런 라이벌의 대결 속에서 토니와 마리아가 서로 첫눈에 반해 깊은 사랑에 빠진다. 두 갱은 경찰의 경고에도 불구하고 격투를 벌이는데 처음에는 주먹싸움으로 시작했던 대결이 칼싸움으로 변하고 베르나르도가 리프를 칼로 찔러 죽이자 이에 분개한 토니가 베르나르도를 칼로 찔러 죽인다. 
그러나 마리아는 자기 오빠를 죽인 토니를 용서하고 변함없는 사랑을 약속하는데 리프의 죽음에 복수하려는 리프의 친구 치노가 총으로 토니를 사살하면서 토니는 마리아의 품에 안겨 죽는다.    
‘마리아’ ‘아메리카’ ‘투나잇’ ‘아이 필 프리티’ 및 ‘섬웨어’ 등 주옥같은 노래들과 화려하기 짝이 없는 춤이 있는 명작으로 우드의 노래는 마니 닉슨이 불렀다. 상영시간 152분. 
이 영화가 오는 29일 하오 7시30분 파인아츠 극장(8556 윌셔. 310-478-3836)에서 상영된다. 영화 상영 후 각기 제츠와 샤크스의 리더로 나온 러스 탬블린과 조지 차키리스가 나와 관객과 질의응답 시간을 갖는다. 사회는 LA 영화비평가협회(LAFCA) 회장 스티븐 화버. 
한편 ‘웨스트사이드 스토리’의 콘서트 판이 오는 7월14일(하오 8시)과 19일(하오 8시) 구스타보 두다멜이 지휘하는 LA필에 의해 할리웃보울에서 공연된다. 마리아는 솔레아 파이퍼, 토니는 제레미 조단, 아니 타는 캐런 올리보, 베르나르도는 조지 아크람 그리고 리프는 매튜 제임스 토미스가 각기 노래 부른다. ★★★★★ (5개 만점)
                                                              <한국일보 박흥진 편집위원/ hjpark1230@gmail.com>


나우, 보이저(Now, Voyager·1942)


제리가 샬롯이 입에 문 담배에 불을 붙여주고 있다.


고혹적인 흑백촬영... 여성영화의 결정판


여성영화의 결정판 로맨틱 드라마로 필자가 가장 좋아하는 로맨스영화 중 하나다. 나는 이 영화로 주인공 베티 데이비스에게 반해 아직도 그녀를 좋아하고 있다. 어빙 래퍼 감독. 원작은 올리버 히긴스 프루티의 소설로 제목은 월트 위트만의 시 ‘풀잎’ 중에서 ‘이제, 항해자여 구하고 찾기 위해 돛을 올리세’라는 구절을 인용했다. 
보스턴 상류층의 샬롯 베일(데이비스)은 폭군적인 어머니(글래디스 쿠퍼)의 통제 밑에 살면서 병적으로 소심하고 수줍어하는 혼기를 놓친 여자. 샬롯은 정신과 의사 자퀴스(클로드 레인즈)의 권유에 따라 남미행 여객선을 타는데 여기서 불행한 결혼생활을 하는 세련된 신사 제리 더랜스(폴 헨리드-‘카사블랑카’의 잉그릿 버그만의 남편 역)를 만나면서 생애 처음으로 사랑의 기쁨에 빠진다.
제리는 병약한 아내와 헤어질 수 없는 처지로 오직 딸 티나에 대한 사랑 때문에 불행한 결혼생활을 지켜나간다. 샬롯과 제리는 짧은 항해 중의 로맨스를 남기고 헤어지는데 이 로맨스로 인해 샬롯은 백합처럼 활짝 피어나고 귀가해 어머니에게 자신의 독립을 선언한다. 그리고 샬롯은 자퀴스가 돌보는 과거의 자기처럼 영혼을 잃어버리다시피 한 티나를 만나 소녀를 자기 딸처럼 돌본다.
보스턴에 업무 차 들른 제리와 샬롯은 재회의 기쁨 속에 둘의 사랑을 재확인하나 결합치 못하고 둘이 서로 사랑하고 있다는 것에서 행복을 찾는다. 센티멘털하고 서정적인 멜로디로 오스카상을 탄 맥스 스타이너의 음악과 눈부시게 고혹적인 흑백촬영(솔 폴리토)이 섬세한 연기와 함께 작품의 수준을 단순한 소프오페라에서 수준 높은 로맨스 드라마로 승화시켰다. 
잊지 못할 모습은 제리와 샬롯의 흡연 장면. 밤의 여객선 갑판 위에서 제리가 담배 두 개비를 꺼내 입에 물고 불을 붙인다. 그리고 샬롯은 제리가 건네준 담배를 자기 입에 무는데 접순 없는 뜨거운 키스신이다. 샬롯이 제리에게 하는 마지막 대사가 멋있다. “우리 달을 원해서는 안 되겠지요. 우리에겐 별들이 있으니까요.” 이어 카메라가 별이 가득한 하늘을 향해 오르면서 영화는 끝난다. 28일 하오 1시 LA카운티 뮤지엄 내 빙극장(윌셔와 페어팩스). ★★★★★(5개 만점)
                                                            <한국일보 박흥진 편집위원/ hjpark1230@gmail.com>

월칭 마틸다




캥거루와 부머랭 그리고 멜 깁슨의 나라 호주는 겨울인데도 날씨가 온화했다. 주위가 푸르러 심호흡이 나온다. 시드니 공항의 이민국 직원이 “굿다이 마이트”하며 인사를 했다. ‘음, 굿데이 메이트라는 말이구나’하고 속으로 웃었다. 지난주 폭스사의 공상과학 외계 스릴러 ‘에일리언’의 속편 ‘에일리언: 커버넌트’(Alien: Covenant)와 선댄스 채널의 미스터리 시리즈 ‘탑 오브 더 레익: 차이나 걸’(Top of the Lake: China Girl)의 제2회 시즌 촬영세트 방문차 호주에 다녀왔다.
시드니는 세계 5대 미항 중의 하나라더니 정말 아름답다. 가장 인상적인 것은 내항 쪽으로 입술을 쑥 내민 것 같은 흰 조개껍질 모양의 시드니 오페라하우스. 거의 초자연적으로 아름답고 장엄한데 누군가가 로비 천장의 시멘트 골격을 ‘얼어붙은 음악’이라고 표현했다.
여독을 풀 시간도 없이 시드니의 또 다른 명물인 시드니 항구 다리에 올라갔다. 오르기 전 알콜 호흡검사와 병력 체크를 하고 안전벨트를 맨 점프수트로 갈아입는 과정이 군 시절의 공수훈련을 생각나게 했다.
등산이라곤 서울 근교의 도봉산에 오른 것이 고작인 나로선 700칼로리를 소비하며 1,300여 계단을 올라 다리 꼭대기에 닿는다는 일이 보통 모험이 아니었다. 하늘이 손에 감촉되는 다리 정상에서 까마득히 아래서 추락을 유혹하는 바다와 눈앞에 탁 트인 항구와 도시의 고운 자태를 보자니 신의 천지창조 기분을 조금 알 것 같았다. 다리 꼭대기에 아바의 ‘댄싱 퀸’을 틀어놓고 춤을 추라고 발판까지 마련했다. 후들후들 떨리는 다리로 엉금엉금 기다시피 해 내려오니 장하다고 수료증을 준다.
저녁에 요트를 타고 내항을 둘러봤다. 검은 구름 아래 금빛 황혼이 띠를 두른 시드니의 저녁은 마침 빛의 축제가 열려 빛과 색깔의 마술쇼의 무대 같다. 오페라하우스의 벽(사진)과 다리와 도시의 마천루 위로 총천연색 빛들이 해저 미생물들처럼 빠른 동작으로 움직이며 다닌다. 마치 태초의 생명의 잉태가 꿈틀거리는 것 같다. 그런데 밤의 오페라하우스를 가까이서 보니 아름다운 괴물 같다. 돌고래 같기도 하고 입 벌린 상어 같기도 하고 또 영화 ‘작은 공포상점’의 식인 식물 같기도 하다.
배에서 내려 중국인들로 바글거리는 거리를 지나 숙소로 돌아오면서 ‘월칭 마틸다’를 흥얼거렸다. 이 노래는 호주 민요로 배낭을 등에 지고 걸어서 떠돌아다니는 원주민 일꾼의 얘기로 호주의 비공식국가다. 나는 이 노래를 고등학생 때 명동극장에서 본 스탠리 크레이머 감독의 반핵영화 ‘그날이 오면’에서 듣고 좋아하게 됐다. 그레고리 펙과 에바 가드너가 나오는 쓸쓸하게 아름답고 심오한 작품으로 얼마 안 있어 핵진으로 사망할 호주인들이 냇가에서 “월칭 마틸다, 월칭 마틸다”하면서 노래 부르던 장면이 눈에 선하다.
‘에일리언: 커버넌트’(내년 8월 개봉)의 거대한 오픈세트는 숙소에서 버스로 1시간가량 떨어진 옛 수원지에 있다. 감독 리들리 스캇은 별 연기도 필요 없는 같은 장면을 하루 종일 찍는다. 이러니 제작비가 터무니없이 오를 수밖에. 스캇과 주연인 마이클 화스벤더를 만났다.
이보다 훨씬 흥미 있었던 것은 ‘탑 오브 더 레익: 차이나 걸’. 폭스 스튜디오 시사실에서 살인사건을 푸는 여형사 로빈(엘리자베스 모스)이 주인공인 시리즈의 일부 내용을 본 뒤 내용에서 아시안 소녀의 사체가 떠오른 본다이 비치로 갔다.
우리를 동반한 두 여자는 시리즈에서 창녀로 나오는 각기 말레이시아와 라오스 태생의 성전환한 사람들로 이들은 실제로 창녀들이다. 시리즈의 제작팀이 직접 사창가를 방문해 선발했다. 두 사람은 시드니에서 사는 것은 별 문제가 없으나 직장을 구하기는 하늘의 별 따기라고 고백했다.
시내로 돌아와 모스와 함께 시리즈 총제작자요 감독인 제인 캠피언(영화 ‘피아노’로 오스카 각본상)과 시리즈에 조연하는 호주 태생의 니콜 키드만을 인터뷰했다. 저녁에 키드만과 챔피언과 함께 식사를 했다. 우리 테이블로 찾아온 키드만과 가벼운 대화를 나눴다.
키드만은 남편인 컨트리 가수 키스 어반과 내슈빌에 살고 있다. 내가 그녀에게 “내슈빌에서의삶은 어떻고 이제 컨트리의 전문가가 되었겠네요”라고 말을 건넸더니 키드만은 “아주 좋아요. 무슨 컨트리든지 다 알아요”라며 미소를 짓는다. 생긴 것은 차게 생겼는데 사람이 아주 겸손하고 상냥했다.
호주 영화계는 1970년대 초부터 1980년대 중반에 이르기까지 르네상스를 맞으며 ‘갈리폴리’ ‘행잉록의 피크닉’ ‘매드 맥스’ ‘데드 캄’ ‘브레이커 모란트’ ‘워커바웃’과 같은 걸작들을 내놓았다. 피터 위어, 조지 밀러, 질리안 암스트롱 및 브루스 베레스포드 등 감독과 베우 멜 깁슨, 니콜 키드만 샘 닐 및 주디 데이비스 등이 이 당시 배출된 영화인들이다.
                                                            <한국일보 박흥진 편집위원/ hjpark1230@gmail.com> 


2016년 6월 20일 월요일

'마블 코믹스 창시자' 스탠 리




벽을 기어가는 파리 보고 ‘스파이더-맨’영감 받아



영화로 만들어져 전 세계에서 빅히트를 하고 있는 마블 코믹스의 주인공들인 X-멘과 스파이더-맨 그리고 아이언 맨과 인크레더블 헐크 등을 창조한 스탠 리(93)와의 인터뷰가 지난달 25일 할리웃에 있는 할리웃 외신기자협회(HFPA)에서 있었다. 점퍼차림에 선글라스를 쓴 리는 90대라곤 믿어지지 않을 만큼 정정하고 활기에 넘쳤는데 귀가 잘 안 들려 질문을 옆에서 반복해줄 통역사를 대동하고 있었지만 대답하는 음성은 크고 내용도 정확했다. 리는 유머가 굉장히 많은 사람으로 시종일관 농담과 위트를 구사해가면서 대답했는데 연기하듯 손으로 큰 제스처를 써가면서 신나게 인터뷰를 즐겼다. 인터뷰 후 필자와 기념사진을 찍을 때 필자가 자신을“한국사람”이라고 소개하자 리는“남한이지”라며 웃었다.  

-당신은 당신의 만화를 원작으로 만든 영화에 캐미오(잠깐 얼굴을 비추는 것)로 나오기를 즐기는데 그것은 누구의 아이디어인가.
“우연한 일이다. 브라이언 싱어 감독이 첫 ‘X-멘’ 영화를 찍을 때 나더러 해변의 핫독 장사 노릇을 시켰다. 그 후 ‘스파이더-맨’을 찍을 때 감독이 나보고 ‘당신 X-멘’에서의 캐미오가 좋던데 내 영화에서도 해보라고 제안해 나왔고 그 다음부턴 캐미오가 습관이 돼버렸다.”

-그러면 배우노조 카드도 있겠네.
“캐미오 때문에 받은 것은 아니고 오래 전에 프랑스 감독 알랭 르네의 영화에 나온 탓에 카드를 받게 됐다.”

-당신은 언제 당신의 수퍼히로들을 만들기로 결정했는가.
“난 책을 읽기를 좋아해 책 속의 모든 주인공들이 내겐 수퍼히로들이었다. 내가 가장 좋아하는 인물은 셜록 홈즈다. 내가 수퍼히로들을 만들게 된 이유는 수퍼맨 때문이다. DC 코믹스에서 수퍼맨을 창조, 히트하자 내 출판사 사장이 나더러 ‘당신도 수퍼히로를 만들어보라’고 제의해 X-멘, 스파이더-맨 및 헐크 등을 만들게 된 것이다.” 

-어디서 영감을 받았는가.
“스파이더-맨이 나오게 된 동기는 이렇다. 어느 날 벽을 기어가는 파리를 보던 중 파리처럼 벽을 타고 올라갈 수 있는 수퍼히로를 만들면 어떨까 하는 생각이 떠올랐다. 그리고 이름을 생각했는데 ‘인섹 맨’ ‘플라이 맨’ ‘모스키토 맨’ 등 잡다한 이름을 생각하다가 스파이더-맨이 좋겠다고 결론지었다. 그리고 그 때까지의 다른 수퍼히로들과는 달리 하기 위해 주인공을 개인적 문제가 많은 틴에이저로 만들기로 했다. 이 아이디어를 출판사 사장에게 말했더니 사장이 ‘내가 들은 아이디어 중 가장 나쁜 것’이라고 핀잔을 주었다. 그러나 내가 출판사의 만화 중 폐간하는 ‘어메이징 팬터지’ 마지막 호에 스파이더-맨을 그려 슬쩍 집어넣었는데 이것이 빅히트를 하게 된 것이다.”               
스탠 리가 그린 만화‘X-멘’.

-DC 코믹스의 만화가요 공동사장인 한국계인 짐 리를 잘 아는가.
“몇 번 만난 적은 있으나 잘 알지는 못한다. 그러나 나는 그가 훌륭한 화가요 얘기꾼이라는 것을 잘 안다. 우리만은 못하지만.”

-당신을 ‘만화의 왕’이라고 부르는 것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는가.
“만화 잘 그리고 쓰는 다른 사람들도 많은데 겸연쩍은 소리다. 난 때를 잘 만나는 운이 좋았다. 내가 만화를 시작했을 때 다른 만화가들은 다 어린아이들을 위한 만화를 그려 별로 글들이 안 좋았다. 그러나 나는 어른들을 위한 만화를 만들자고 생각했다. 그리고 나는 남을 위해 얘기를 쓰는 것이 아니고 내가 읽고 싶은 얘기들을 쓰기로 했다. 좌우간 나는 나를 왕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이탈리아의 거장 페데리코 펠리니도 당신의 팬이라고 들었는데.
“내 사무실이 뉴욕에 있을 때 그가 나를 만나러 왔다. 검은 레인코트를 어깨에 걸친 멋쟁이였다. 그는 영화인으로서 또 인간으로서 모두 훌륭한 사람이다.”

-DC 코믹스와는 늘 라이벌 관계였는가.
“우리가 그들보다 월등한데 라이벌이 될 수 있겠는가. 이 건 농담이다. 우린 서로 잘 알고 친구처럼 지냈다. 재미있는 얘기 하나 하겠다. 우리 이름은 처음에는 애틀라스 코믹스였다. 우리의 만화가 잘 팔리면서 회사명을 고치기로 하고 생각해낸 것이 마블이었다. 그런데 우리를 따라 당초 이름이 내셔널이었던 저들도 DC 코믹스로 개명하더라.”

-할리웃이 당신 만화를 영화로 만들 것이라고 짐작했었는가.
“전연 생각을 못했다. 우린 그저 만화가 잘 팔리기만을 기다렸다. 그래야 먹고 사니까. 이렇게 블락버스터가 될 줄은 꿈에도 생각 못했다.”

-어느 영화가 가장 잘 당신의 만화를 잘 나타냈다고 보는가.
“전부 다 훌륭하다. 그 중에서도 ‘아이언 맨’이 가장 내 뜻을 잘 나타냈다고 본다. 로버트 다우니 주니어를 선택한 것은 아주 잘한 일이다. ‘스파이더-맨’과 ‘X-멘’도 아주 좋다. 그러나 내가 만든 인물들이 590명에 가까워 다 기억을 못하겠다.”

-수퍼히로의 인기는 얼마나 계속될 것으로 보는가.
“끝나지 않기를 바란다. 우린 어렸을 때 다 동화를 보면서 자랐다. 나이를 먹으면서 동화를 더 이상 읽지는 않지만 우리는 보통 사람들이 할 수 없는 일을 하는 사람들의 얘기에 대해 결코 싫증을 느낄 수가 없다. 나는 수퍼히로들의 얘기를 어른들을 위한 동화라고 본다.”

-어린 팬들이 당신을 보면 어떤 반응을 보이는가.
“산타클로스로 생각한다. 식당에서도 아이들은 자기들 엄마와 함께 나를 찾아와 함께 사진 찍자고 부탁하는데 참 좋은 일이다.”

-TV에 나오는 당신 만화를 원작으로 만든 시리즈를 보는가.
“난 귀가 잘 안 들리고 눈도 침침해 TV를 안 보나 그에 대한 얘기는 읽고 있다. 그리고 난 몇 작품에 캐미오로 나왔다. 그래서 내가 나오는 시리즈가 인기가 좋다.”          

-당신의 작품은 현 시세를 어느 정도로 반영하고 있는가.
“난 세상일에 뒤 떨어지지 않으려고 라디오를 경청한다. 그리고 내 작품에 가급적 시의를 충실히 반영하려고 노력한다. 현실에 충실하자는 것이다.”

-당신 만화에는 과학적 용어도 많고 또 공상과학적인 면도 많은데 과학 지식이 깊은가.
“과학적으로 들리게 하려고 하는 것이다. 감마 레이나 코즈믹 레이 같은 용어를 쓰고 있지만 솔직히 말해 난 그것이 무엇인지 모른다.”                       

-만화의 수퍼히로들을 주인공으로 한 영화들의 대성공은 영화계를 변화시켰을 정도다. 그래서 사실에 입각한 내밀한 드라마들을 만들기가 힘들어졌다는 소리도 있다. 이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는가.
“수퍼히로들의 장소는 늘 있다고 본다. 사람들은 자신의 상상력을 자극하는 얘기에 결코 물리지 않기 때문이다. 이처럼 보통 사람들의 보통 얘기도 설 자리가 있다고 본다. 내 작품 중 여러 편의 인기 있는 것들도 다 사실적인 얘기들이다. 지금은 수퍼히로들의 영화가 너무 많은 것 같지만 때가 되면 다른 드라마와 균형을 맞추게 되리라고 본다.”

-사람들이 수퍼히로에 지칠 것으로 보는가.
“모든 것이 다 지나치면 지치게 마련이다. 그러나 우리 마블사는 영리해 팬들이 보고 싶어 하는 얘기를 만들려고 진력하고 있다. 궁극적인 판단은 대중에 달려 있다. 그들이 이제 됐다고 느끼게 되면 영화도 장사가 잘 안 될 것이다.”

-당신의 작품에 있는 유머는 어디서 오는가.
“어디서 오는지는 모르겠지만 난 코미디를 좋아한다. 난 수퍼히로 얘기 쓰는 만큼이나 우스운 얘기 쓰는 것을 좋아한다. 난 코미디언 친구들이 많다.”

-당신의 인생에 있어 가장 좋았던 때와 나빴던 때는 언제인가.
“가장 좋았던 때는 내 회사 사장이 나쁜 아이디어라고 한 ‘스파이더-맨’이 잘 팔린 일이고 가장 나빴던 때는 내가 오래 전에 우리 영웅들을 영화로 만들자고 제안했을 때 거절당했을 경우다. 그 멍청이 책임자가 한다는 소리가 사람들이 영화를 안 좋아하면 만화도 안 팔린다는 것이다.”

-당신의 부인 조운 클레이턴(1947년에 결혼해 두 딸을 두었다)은 어떤 사람인가.
“나는 하루 종일 집에서 타이프라이터에 매달려 글을 쓰는데도 아내는 나를 가만히 내버려 둔다. 아내는 자기 할 일을 잘 만드는데 특히 집 안 자익하기를 좋아한다. 그러나 난 아내가 만화를 한 번도 읽지를 않았다는 것도 안다. 그러나 아내는 내가 개밥을 살 돈과 집안 장식을 할 수 있는 돈을 버는 한 개의치 않는다. 참 멋있는 여자로 나는 이 세상에서 가장 운이 좋은 사람이다.”        
                                                            <한국일보 박흥진 편집위원/ hjpark1230@gmail.com>     


도리를 찾아서(Finding Dory)


도리(앞)가 네모(가운데), 네모 아버지와 함께 자기 가족을 찾아가고 있다.


건망증 심해 길 잃은 도리… 가족 찾아 떠나


무슨 물고기가 그렇게 말이 많은가. 새파란 색깔의 물고기 도리가 영화 내내 어떻게나 말이 많고 재잘대는지 짜증이 나고 피곤해진다. 잡아서 사시미를 해먹어 조용하게 만들어 버릴까보다. 
2003년에 나온 픽사의 ‘네모를 찾아서’의 속편 격인데 내용이나 그림이나 서술형태 그리고 플롯의 아기자기한 묘미가 전편에 훨씬 못 미친다. 
우선 주인공 도리의 묘사가 1차원적이고 이야기도 부족하다. 그리고 상상력이나 창의성도 충분치 못하다. 그런대로 우습고 재미는 있어 어린아이들이 보기엔 좋겠지만 얘기가 하다만 것처럼 중간에 막혀 답답하다. 음성연기는 좋다.
캘리포니아 인근에서 부모(다이앤 키튼과 유진 오닐 음성)의 사랑을 듬뿍 받으며 사는 도리(엘렌 디제네러스)는 방금 전의 것을 까먹어버리는 단기 기억상실증에 시달린다. 도리가 어느 날 자기 영역 밖으로 나갔다가 길을 잃어버리면서 망망대해에 표류하게 된다. 기억력이 짧으니 쉽게 집을 찾게 되겠는가.
도리가 도착한 곳은 호주 근해. 여기서부터 도리는 오렌지색의 네모(헤이든 롤렌스)와 그의 아버지(알버트 브룩스)와 함께 태평양을 헤엄쳐 부모를 찾아 나선다. 도리의 ‘엄마 찾아 3만리’다. 도리 일행은 대양을 가로지르면서 모험과 각종 수중생물들을 만나지만 특별히 새로울 것도 또 흥미 있는 일도 생기질 않는다.
도리 일행이 도착한 곳이 캘리포니아 모로베이에 있는 거대한 수족관인 해양생물 인스티튜트. 이 곳은 시고니 위버(물론 목소리만 나오는데 재미있다)가 관리하는데 위기에 처한 해양생물들을 구해 돌본 뒤 다시 바다로 방출한다. 
그러나 영화의 문제는 여기에 있다. 대양모험 영화가 제한된 공간 안에 갇히면서 진행이 막히고 플롯이나 서술도 협소하게 된다. 답답하다.
여하튼 도라는 여기서 근시의 상어와 방향감각이 어두운 고래 그리고 야단스런 광대 같은 물개 등을 만나는데 그 중에서도 가장 재미있는 것이 모양과 색깔을 자유자재로 바꿀 수 있는 낙지 행크(에드 오닐의 음성연기가 일품). 
행크는 생존력이 강하고 재주가 많고 또 신랄한 농담을 내뱉는 ‘잭 오브 올 트레이즈’ 같은 낙지인데 문제는 바다에 나가 사는 것보다 클리블랜드의 수족관에 사는 것을 더 좋아하는 점. 수족관으로 이사 가려면 꼬리표가 있어야 하는데 그래서 행크는 도리가 가진 꼬리표를 받는 조건으로 도리의 부모 찾기를 도와주기로 한다. 여기서 야단스런 액션이 일어난다. 그런데 도리의 부모도 이 수족관 안에 있지 않은가. 더 이상 모험하기 싫어 얘기를 중도에 포기하는 식이다. 
영화에서 정말로 재미있고 그림 좋고 보기 좋은 것은 본 영화 전에 상영되는 6분짜리 ‘파이퍼’(Piper). 어미 도요새가 새끼 도요새에게 생존술을 가르쳐주는 얘기다. 앤드루 스탠턴 감독. ★★★ (5개 만점)
                                                            <한국일보 박흥진 편집위원/ hjpark1230@gmail.com>


막스 형제의 영화(Marx Brothers Movies)


‘거울 장면’

아무 생각없이 즐기는 요절폭통 코미디


1905년부터 1949년까지 순회 쇼단과 브로드웨이 그리고 스크린을 종횡무진으로 주름잡았던 막스 5형제의 영화들이 17~19일(하오 7시30분) 매일 2편씩 샌타모니카의 에어로극장(1328 몬태나 애비뉴)에서 상영된다. 치코, 하포, 그라우초, 검모 및 제포 등 예명으로 잘 알려진 형제들 중 치코, 하포 그리고 그라우초 등 3명이 코미디의 핵심으로 이들은 허튼소리와 허튼짓에 노래까지 부르면서 요절복통할 코미디를 양산했었다. 이들의 영화는 내용의 이치를 따지지 말고 봐야 한다. 거기에 이들의 매력이 있다.  

■‘덕 수프’(Duck Soup·1933)-파산한 소국 프리도니아의 부잣집 부인이 국가 재건을 위해 돈을 투자하는 조건으로 루퍼스 T. 화이어플라이(그라우초)를 수상으로 임명할 것을 요구한다. 수상에 취임한 화이어플라이가 아무 이유 없이 이웃 국가에 선전포고를 하면서 불난리가 일어난다. ‘거울 장면’(사진)이 유명하다. 
■‘코코넛’(The Coconuts·1929)-막스 형제의 첫 영화. 플로리다의 속도 빠르게 망해가는 호텔 코코넛의 주인 해머(그라우초)가 호텔을 살리기 위해 날사기꾼들인 형제와 음모를 꾸민다. 
■‘애니멀 크래커스’(Animal Crackers·1930)-유명한 아프리카 탐험가 캡튼 스펄딩(그라우초)을 위한 파티가 열리는 동안 귀중한 그림이 도난당하면서 스펄딩이 수사에 나선다.         
■‘몽키 비즈니스’(Monkey Business·1931)-미국으로 향하는 여객선에 막스 4형제가 무임 승선해 본인들의 뜻과 상관없이 승객들을 위한 서비스를 맡게 되면서 온갖 해프닝이 일어나게 된다. 
■‘호스 페더즈’(Horse Feathers·1932)-헉슬리대학의 총장(그라우초)이 라이벌인 다윈대학과 겨루기 위해 풋볼팀을 조직한다.         
■‘경마장의 하루’(A Day at the Races·1937)-돈 많은 부인이 주요 환자인 요양소에서 일어나는 뒤죽박죽 코미디. 배꼽 빠지게 우스운 장면이 많다.   
                                                           <한국일보 박흥진 편집위원/ hjpark1230@gmail.com>


‘연인들과 폭군’




오는 9월에 개봉되는 ‘연인들과 폭군’(The Lovers and the Despot)의 연인들은 영화감독 신상옥과 그의 아내이자 배우인 최은희(89)요, 폭군은 북한의 영화광 김정일이다. 영국의 로버트 캐난과 로스 아담이 공동으로 감독한 최은희와 신상옥의 김정일의 지시에 따른 북한에로의 피랍사건을 다룬 기록영화다.
두 부부의 개인적 면모와 김정일의 영화에 대한 집념을 비롯해 북한의 실상을 흥미 있고 또 유익하게 다룬 영화로 서스펜스 스릴러이자 멜로드라마 같다. 흥미 있는 것은 최은희와 신상옥이 몰래 녹음한 김정일과의 전화통화 내용. 김정일의 육성으로 그의 영화에 대한 애착을 들을 수 있다.
신상옥은 1950년대 영화 활동을 시작해 1960년대 신필름을 통해 300여편의 영화를 만들면서 절정기를 이뤘는데 그의 많은 작품에 최은희를 사용했다. 그 대표적 영화가 최은희와 김진규가 나온 빅히트작 ‘성춘향’(1961). 그러나 신상옥은 신필름이 1978년대에 이르러 정부에 의해 폐쇄되고 최은희와의 이혼 및 경제적으로 곤경에 처하게 된다.
최은희는 자신과 신감독과의 만남과 남편의 부정으로 인한 이혼 그리고 북한에서의 재회와 관계의 재연결 및 작품활동에 대해 담담하게 서술하고 있다. 최은희가 홍콩으로부터 영화 제작자를 자처하는 여자에게서 영화를 함께 만들자는 전화를 받은 것은 1978년 7월. 홍콩에 간 최은희는 7월11일 괴한들에 의해 납치되는데 최은희는 증언에서 회물선을 타고 북한으로 가는 8일간 몇 명의 터프가이들이 자신을 감시했다고 말한다. 영화 제작자를 자처한 여자는 북한의 스파이였다.
북한에 도착한 최은희를 반갑게 맞이하는 사람이 김정일. 김정일은 최은희와 악수를 하면서 “와 주셔서 감사합니다”하고 반색을 한다. 그 뒤로 최은희는 집이 제공되고 좋은 대접을 받으나 방기된 상태로 남는데 최은희는 증언에서 지루함을 달래기 위해 집 마당에 각종 채소를 가꿨다고 말한다.
김정일이 최은희를 납치한 것은 그가 남한의 영화를 북한의 그것보다 월등하다고 느끼면서 동경을 했기 때문인데 그가 북한 영화인들에게 “왜 우리는 남조선처럼 영화를 못 만드냐”고 질책하는 것을 녹음테입을 통해 들을 수 있다.
최은희가 실종된지 2개월 후 신상옥이 홍콩으로 최은희를 찾으러 갔다가 역시 실종된다. 당시 신상옥이 실종되자 그가 한국의 중정요원에 의해 살해됐다는 설과 함께 북한에로의 자진 입국설 그리고 납북설 등 각종 추측이 난무했었다. 죽은 줄 알았던 신상옥이 나타난 것은 납북된지 5년 후 그가 만든 북한 영화가 알려지면서이다. 이 5년간 신상옥은 북한의 감옥에 투옥돼 있었는데 과감히 탈출해 기차를 타고 도주하다가 다시 붙잡혀 독방에 갇혀 세뇌를 받게 된다. 여기서 신상옥은 살아남기 위해 김정일에게 충성서약의 글을 쓰는데 그로 인해 신상옥은 감옥에서 풀려나 최은희와 재회, 영화활동에 들어가게 된다.
둘은 김정일의 총감독 하에 특혜를 받으면서 작품활동을 하다가 1986년 유럽에서 영화를 만든다는 핑계로 비엔나에 갔다가 주비엔나 미대사관을 통해 탈출하기까지 2년여동안 7편의 영화를 만들었다. (사진) 김정일은 신상옥과 최은희에게 ‘주의’ 대신 감정적인 영화를 만들어 북한 영화를 세계적 수준에 올려놓자고 격려했다. 그래서 ‘춘향’을 비롯한 러브스토리도 만들었고 대규모 제작비가 든 ‘불가사리’도 나왔다. 둘이 만든 ‘소금’으로 최은희는 모스크바 영화제에서 주연상을 받기도 했다.
북한 탈출 이후 신 감독부부는 미국에서 살면서 신상옥은 아이들 영화 ‘닌자’를 만들었는데 이어 한국으로 돌아가 지난 2006년 80세로 별세했다. 미국에 있을 때 신상옥의 생애 마지막 꿈은 대하극 ‘징기스칸’을 만드는 것이었으나 그 꿈은 이뤄지지 못했다.
나는 신상옥 납치 때 한국의 한국일보에 사회부 기자로 근무했는데 그 때 그에 관한 정보를 얻으려고 며칠간을 그의 집에서 죽치고 앉아 야근을 했었다. 그 후 내가 신상옥의 전화를 받은 것이 1986년 LA의 한국일보에 근무할 때였다. 당시 나는 서울의 한국일보 자매지 일간 스포츠에 매주 1회씩 2면에 걸쳐 할리웃에 관한 얘기를 연재하고 있었다. 그런데 어느 날 전화가 걸려왔다. 반말로 “나 신상옥인데 일간 스포츠 지면을 나를 위해 남겨 놓으라”는 것이었다. 나는 그 때 그의 음성이 반갑기는 했지만 “거 참 거만하기도 하구나”라는 생각을 떨쳐버릴 수가 없었다. 그 후 코리아타운의 한 식당에서 신 감독부부를 목격한 것이 마지막이었다.
신상옥과 최은희라면 잊지 못할 에피소드가 있다. 내가 오래 전에 북한을 방문했을 때였다. 안내원의 안내로 조선예술영화 촬영소를 둘러보면서 내가 안내원에게 “신상옥과 최은희를 어떻게 생각하느냐”고 물었더니 안내원은 “우리가 그렇게 잘 대접해 주었는데 배신했다”면서 “죽일 것들”이라고 악담을 했었다. 가슴이 섬뜩했었다.    
*지난주 칼럼 내용 중 바그너는 베니스에서 숨졌기에 고칩니다.          
                                                          <한국일보 박흥진 편집위원/ hjpark1230@gmail.com>


2016년 6월 13일 월요일

흡혈귀를 위한 치료(Therapy for a Vampire)


프로이드(왼쪽)가 흡혈귀 백작의 고민을 듣고 있다.

불멸의 삶·아내에 지친 정신… 신경쇠약 흡혈귀


자기 아내와 삶에 싫증이 난 흡혈귀가 정신분석학자 프로이드에게 고민을 털어놓는다는 기찬 아이디어를 영화내용을 서술해 가는 실마리로 한 흡혈귀 코미디. 흡혈귀의 뾰족한 송곳니에 물린 사람들이 여럿 죽으면서 내뿜는 피가 화면을 흥건히 적시나 일종의 흡혈귀 풍자영화여서 끔찍하다기보다 오히려 귀염성 있고 재미있다.
조지 해밀턴이 나온 흡혈귀 코미디 ‘러브 앳 퍼스트 바이트’(1979)를 생각나게 하는 오스트리아 영화인데 해밀턴 영화는 이 영화에 비하면 아주 온순하다. 영화를 고도 비엔나에서 찍어 분위기가 고풍이 나고 으스스한데 처음 보는 배우들의 연기도 좋다.
1932년 비엔나. 게자 폰 쾨즈스넴 백작(토비아스 모레티)은 불멸의 삶과 너무 오래 함께 산 자기와 취향이 다른 아내 엘자(지넷 하인)에 지쳐 프로이드(칼 피셔)에게 거액의 도네이션을 하고 상담을 받기 시작한다. 게자는 자기가 직접 사람의 피를 빨아 마시기보다 자기에게 도전하는 하인이 채취해 병에 담은 피를 마신다. 
어느 날 게자는 프로이드의 방에서 아름다운 여인 루시(코넬리아 이반칸)의 초상화를 보고 단숨에 반한다. 그리고 루시를 옛날 옛적에 자기를 두고 떠난 애인 나딜라의 현신이라고 믿는다. 나딜라는 떠나면서 게자에게 스스로 응해 그에게 목을 내밀어 피를 빨린 여자라야 자기의 현신이 될 수 있다고 말한 바 있다. 그러니 그 게 쉬운 일인가.
루시는 가난한 화가 빅터(도미닉 올레이)의 고집 세고 독립심 강한 애인으로 빅터는 프로이드에 고용된 화가. 프로이드의 환자들의 망상과 꿈을 그리는 것이 임무다. 
게자는 루시를 자기 애인으로 만들 작전을 구상하나 먼저 풀어야 할 과제는 자기를 안 떠나는  엘자. 그래서 게자는 엘자에게 아름다운 네 모습을 초상화로 그리자고 제안해 빅터의 집으로 보낸다. 엘자가 젊은 남자 빅터의 목을 갈망할 것은 당연지사이나 자기 초상화를 그려줄 사람이어서 갈증을 꾹꾹 참는다.
여하튼 증세의 강도는 서로 다르지만 나오는 사람들이 너도 나도 흡혈귀가 되는데 게자에게 물린 루시가 목을 문 프로이드도 서푼짜리 흡혈귀가 된다. 그가 거울 앞에서 자기 모습을 보려고 아이처럼 깡충깡충 뛰는 모습이 우습다. 
권태기에 이른 부부의 얘기이자 의견충돌이 잦은 애인의 드라마이기도 한데 연기들이 좋다. 특히 모레티가 그리움과 권태에 시달리는 연기를 연민의 마음이 일도록 잘하고 이반칸의 당찬 연기와 하인의 우아하면서도 도도한 연기도 좋다. 유감은 프로이드와 게자의 상담을 좀 더 충실히 이용하지 못한 점. 다비드 륌 감독. ★★★ (5개 만점)
                                                            <한국일보 박흥진 편집위원/ hjpark1230@gmail.com>

Music of Strangers: Yo-Yo Ma and the Silk Road Ensemble


요-요 마(앞줄 왼쪽서 두번째)와 실크로드 앙상블.

첼리스트 요-요 마가 조직한 앙상블 연주자 영화


첼리스트 요-요 마가 지난 2000년 세계 각국의 연주자들로 조직한 앙상블에 관한 기록영화로 음악은 서로 다른 국경과 문화를 넘어 범우주적인 힘을 지녔다는 것을 얘기하고 있다. 앙상블 연주자(한국 국악인도 있다)들은 계속해 교체되는데 이들은 지금까지 전 세계를 돌면서 많은 연주회를 가졌고 앨범 ‘싱 미 홈’(Sing Me Home)도 나왔다.
이란, 시리아, 스페인 그리고 중국과 이스라엘 등에서 선발된 연주자들이 각기 자신들의 전통악기를 연주하면서 요-요 마와 함께 앙상블의 연주에 이색적인 음색을 제공하는데 연주뿐만이 아니라 노래도 부르고 또 노래와 연주에 맞춰 그림도 그린다.
영화는 연주 장면과 인터뷰 그리고 자료사진들을 사용해 음악은 민족과 이념을 초월해 모두를 묶어주고 궁극적으로 희망을 가져다주는 숭고한 것임을 강조하면서 아울러 단절위기에 빠진 전통악기와 그 음악을 염려한다.
요-요 마의 이력이 어렸을 때부터 자세히 소개되는데 그에 대한 화면 할애가 다소 과다한 느낌은 들지만 다시 한 번 음악의 결집력과 아름다움을 깨닫게 해주는 작품이다. 
영화는 특히 이란과 시리아의 연주자들에 관한 개인적 얘기를 크게 다루면서 이들이 처한 입장과 음악에 관해 걱정하고 아울러 파괴에 시달리는 난민들의 모습도 생생하게 묘사했다. 이란의 전통 현악기인 카만체의 연주자인 카이한 칼호르는 마지못한 국외 망명자로 살면서 조국에서 이 악기 연주를 지도하고 또 연주할 사람이 단절위기에 처한 것을 걱정한다. 그는 예술과 문화가 정치의 볼모로 잡혀 있는 한 조국에서 연주를 안 하겠다고 다짐한다.
시리아 출신의 클라리넷 연주자 키난 아즈메는 요르단에 잇는 시리아 난민 수용소를 방문해 어린아이들에게 음악을 들려주고 연주를 가르쳐주면서 음악의 치유와 희망의 능력을 시범하고 있다. 감동적이다.                     
이밖에도 중국의 비파 연주자 우만의 조국이자 요-요 마의 뿌리이기도 한 중국을 방문해 사라져 가는 인형 쇼를 지키고 있는 장씨 일가와의 만남과 스페인 갈리시아 지방 출신의 백파이프 연주자 크리스티나 파토와 함께 갈리시아도 방문, 그곳의 음악과 풍습도 보여준다. 영화가 너무 고지식하게 기록영화의 형태를 따라 특색은 없지만 요-요 마의 숭고한 정신과 음악의 여러 가지 능력을 다시 한 번 깨닫게 하는 작품이다. ★★★ (5개 만점)
                                                           <한국일보 박흥진 편집위원/ hjpark1230@gmail.com>


“음악이라면 독일이지요”




베르코르의 소설 ‘바다의 침묵’에서 프랑스를 점령한 나치장교 베르너 폰 에브레낙은 자기가 묵고 있는 집의 주인과 그의 질녀에게 이렇게 독백한다. 작곡가인 그는 자신의 존재에 침묵으로 저항하는 두 사람에게 먼저 프랑스 문학을 찬양한 뒤 “그러나 음악이라면 독일이지요”라면서 바흐와 베토벤의 이름을 든다. 내가 지난달 바그너를 매우 좋아하는 내 친구 C의 안내로 독일을 기차여행한것도 이 음악 때문이었다.
뮌헨서 버스를 타고 1시간반 정도 바바리아 지방을 달려 바그너의 열렬한 신봉자였던 수줍음 타는 왕 루드빅 II의 노이슈반슈타인성에 닿았다. 산정에 세운 거대한 성내 벽화들은 ‘탄호이저’와 ‘트리스탄과 이졸데’ 등 바그너의 음악에서 영감을 받은 것이라고 안내원이 알려준다.  
넥카 강변의 그림엽서 같은 대학 도시 하이델베르크에 도착했다. 이 도시를 굳이 음악과 연결시키자면 영화 ‘황태자의 첫사랑’ 때문이다. ‘철학자의 길’에서 도시를 내려다보니 마리오 란자가 열창한 영화 속 노래 ‘세레나데’와 ‘드링킹 송’이 절로 흥얼거려진다.
쾰른에 짐을 푼 뒤 베토벤의 얼굴처럼 엄격한 마음을 품고 본의 그의 생가를 찾았다. 초상화 속 베토벤의 불멸의 연인 안토니 브렌타노의 얼굴이 곱다. 내 마음을 아프게 한 것은 쇠로 만든 작은 나팔모양의 보청기. 귀 먹은 작곡가의 고뇌가 금속성을 낸다. 베토벤의 머리칼도 있다. 아기 베토벤이 태어난 방은 참 작다. 친구가 “이런 작은 방에서 태어난 사람이 우주를 울리는 음악을 짓다니”라면서 나지막하게 말한다.
뤼벡을 거쳐 날씨가 브람스 음악처럼 스산한 함부르크에 왔다. 브람스가 세례를 받은 세인트 마이클 교회와 기념관을 둘러보고 그가 거닐었던 산책로를 답습했다. 브람스가 어렸을 때 피아노를 친 선원들의 색주가는 어디쯤 있을까.  
이어 동독의 잿빛 그림자가 아직도 남아 있는 소도시 루터슈타트 비텐부르크에 들러 루터호텔에 짐을 풀었다. 도시 이름을 비롯해 손수레에서 파는 루터소시지에 이르기까지 온통 루터 때문에 먹고 사는 도시다. 루터가 시민들의 영육의 양식을 다 책임지고 있다. ‘내 주는 강한 성이요’를 작곡한 루터는 종교인이요 혁명가이자 음악인이다. 그가 바티칸에 항의하는 95개조의 반박문을 못질한 캐슬처치의 문 앞에 선다. 보통 용기가 아니다. 내년은 그의 반박문 발표 500주년이 되는 해다.
라이프직을 거쳐 바그너가 유년시절과 젊은 시절을 보내고 후에 궁정지휘자로 일했던 드레스덴으로 내려왔다. 버스를 몇 차례 갈아타고 바그너의 시골 여름휴양지 그라우파의 집을 찾아갔다. 신록과 새소리 그리고 강으로 둘러싸인 여기서 그는 ‘로엔그린’을 작곡했다. 이어 여기서 조금 떨어진 곳에 있는 베버의 집에 도착했다. 바그너는 9세 때 베버가 지휘하는 오페라 ‘마탄의 사수’를 듣고 큰 감동을 받았다고 한다. 친구는 이 오페라의 서곡을 좋아한다.
폭격으로 잿더미가 되었다 피닉스처럼 부활한 드레스덴의 로열 팰리스 마당에서 이스라엘 교향악단의 일부 연주자들이 연주하는 모차르트와 이스라엘과 아랍음악을 들었다. 독일과 이스라엘과 아랍이라는 화음이 분쟁의 세상에서 인류 평화를 생각하게 한다. 도시의 한 가운데를 차지한 프라우엔키르헤(성모교회)의 외벽들이 전화에 그을린 숯빛의 돌들과 복원할 때 새로 사용한 흰색 돌들과 오묘한 신구의 조화를 이루고 있다,        
다시 라이프직으로 갔다. 이 도시는 멘델스존과 전 뉴욕필 상임지휘자 쿠르트 마주어가 바톤을 잡았던 유서 깊은 라이프직 게반트하우스 오케스트라가 있는 곳이다. 나치에게 끌려간 유대인들의 명판이 집 앞 보도에 깔린 멘델스존기념관은 멘델스존의 음악처럼 산뜻하게 정돈됐다. 악보와 기둥 위에 놓인 형광등으로 연주 악기를 대신한 음악실에서 지휘봉을 들고 멘델스존의 경쾌한 ‘한여름 밤의 꿈’ 서곡을 지휘했다. 그 옆방에서 멘델스존은 두 번의 심장마비 끝에 요절했다.
슈만이 클라라와 신혼을 보낸 집을 둘러봤다. 슈만의 서정미가 물결치는 교향곡이 나는 좋다.  이어 바흐가 음악장을 지낸 세인트 토마스교회를 찾았다. 바흐의 무덤이 있는 이 곳에서 때마침 라이프지거 보컬앙상블이 합창을 한다. 성스럽다. 교회 앞의 바흐기념관을 찾아보았다. 라이프직 오페라하우스에서 바그너의 최초의 오페라 ‘요정들’(Die Feen)을 관람했다. 피곤에 깜빡깜빡 졸면서 들었는데 그의 깊고 진중한 여느 오페라들과 달리 음악이 밝고 경쾌하다. 그런데 이 오페라가 좀처럼 공연되지 않는 이유가 무엇일까.
이윽고 바그너의 본고장이라 부를 만한 바이로이트에 왔다. 도착한 날 22일은 마침 바그너의 생일이어서 기념관 구경이 공짜. 그가 건축하고 해마다 ‘링’사이클이 공연되는 페스트슈필 하우스는 보수 중이다. 바그너가 작곡을 하고 생활하다가 숨진 기념관이 된 반프리트 저택 뒤에 바그너와 그의 아내 코지마가 함께 묻힌 무덤(사진)이 있다. 잿빛 대리석 무덤에 이름이 없다. 개인적으로 결함이 많았던 천재 바그너는 죽어서도 보통 사람과 다르게 존재하겠다는 것 같았다. 반프리트 바로 옆에 바그너의 친구이자 장인인 리스트기념관이 있다. 짧은 일정에 분주한 방문이었지만 가는 곳마다 내 심장은 음악처럼 율동했다.
                                                            <한국일보 박흥진 편집위원/ hjpark1230@gmail.com>


2016년 6월 7일 화요일

내 앞의 당신(Me Before You)


루이자가 윌의 무릎에 앉아 사랑의 눈길을 나누고 있다.

사랑의 힘을 얘기하는 로맨틱 코미디


나처럼 센티멘털한 사람들이 좋아할 위피(눈물 짜는 영화)로 매우 감상적인 멜로드라마이지만 정결하고 단순하고 선의가 가득한데다가 로맨틱해 비극인데도 보고 나면 기분이 고양된다. 물론 슬퍼서 눈물을 찔끔찔끔 흘리게 되지만 울어서 몸과 마음이 다 시원해진다. 영화가 곱다.
아름답고 잘 생긴 두 선남선녀 배우들의 콤비와 연기도 좋고 슬픈 내용인데도 유머가 가득해 때로 로맨틱 코미디를 보는 것 같은 착각에 빠질 정도다. ‘러브 스토리’와 ‘우리 별들의 잘못’을 연상케 만드는 완벽한 데이트용 영국 영화다. 원작은 조조 모이에스의 동명 베스트셀러로 모이에스가 각본도 썼다.
주인공은 영국의 작은 마을에 사는 덤벙대지만 착한 루이자(에밀리아 클라크-‘왕좌 게임’). 아이 같은 얼굴을 한 루이자는 한 없이 친절하고 늘 얼굴 가득히 미소를 지어 주위를 밝게 만드는 태양과도 같은 여자로 옷과 구두를 총천연색으로 갈아입고 매니큐어도 색색깔로 바꿔가며 칠해 마치 동화 속의 인물 같다.
루이자가 일하던 빵가게가 문을 닫으면서 루이자는 실직을 하는데 아버지마저 실직자여서 집에 걱정이 쌓인다. 이 때 루이자가 직업 안내소를 통해 얻은 직업이 동네 부자로 성을 소유하고 있는 부부(찰스 댄스와 재넷 맥티어)의 목 아래를 못 쓰는 아들 윌(샘 클래플린-‘헝거 게임’)을 돌보는 일.
윌은 런던 금융가의 총아로 미남에 신체 건강한 사람이었으나 2년 전 교통사고로 지금은 휠체어 신세를 지며 산다. 그러니 사람이 냉소적이요 한으로 가득 찰 수밖에 없다. 윌을 실제로 돌봐주는 사람은 네이산(스티브 피칵)인데 윌의 어머니는 루이자의 생명력과 밝음에 마음이 끌려 아들의 주위를 밝게 하기 위해 그녀를 고용한 것.
물론 윌은 처음에는 루이자를 퉁명스럽게 대하나 루이자의 낙천성과 선의에 감화돼 둘 사이에 가로 놓였던 서리가 서서히 녹기 시작한다. 루이자에겐 7년을 사귄 달리기광인 애인 패트릭(매튜 루이스)이 있지만 둘이 어떻게 될지는 뻔한 일.
문제는 윌이 루이자로 인해 미소마저 짓게 되지만 자기가 결코 과거처럼 될 수 없으며 또 건강도 갈수록 악화된다는 사실로 인해 더 이상 살기를 원치 않는다는 점이다. 이런 윌에게 생의 의욕을 되살려주기 위해 루이자는 윌을 데리고 경마장에도 가고 모차르트의 오보협주곡 연주회에도 가지만 윌의 결심은 변하질 않는다.
잔가지 플롯으로 루이자의 집안 얘기와 그녀와 패트릭의 나빠져 가는 관계 그리고 윌의 전 애인이 윌의 친구와 결혼하는 식장에 윌과 루이자가 참석해 즐기는 장면 등이 있다. 사랑의 힘을 얘기하는 통속적인 내용이지만 두 배우가 호흡이 잘 맞는 진실된 연기로 보는 사람의 마음을 사로잡아 그들의 기쁨과 슬픔에 함께 웃고 울게 된다. 테아 샤록 감독. PG-13.
★★★ (5개 만점)           <한국일보 박흥진 편집위원/ hjpark1230@gmail.com>

옛날 옛적 서부에(Once Upon a Time in the West)


3명의 건맨이 역에서 무명씨(찰스 브론슨)를 죽이려고 기다리고 있다.

세르지오 레오네의 강인한 대하서사 서부극


‘황야의 무법자’ 시리즈를 만든 이탈리아의 세르지오 레오네 감독이 미 서부에 바치는 헌사로 서정적이며 감상적이고 또 강인한 대하서사 서부극이다. 헨리 폰다가 보기 드물게 검은 모자에 검은 옷과 부츠를 신은 악인으로 나와 마지막에 복수심에 불타는 찰스 브론슨과 결투를  벌인다.  
첫 장면이 멋있다. 허허벌판에 달랑 서 있는 기차역에 내리는 수수께끼의 사나이 브론슨과 그를 처치하려고 기다리는 3인의 악당을 카메라가 가물가물하게 롱샷으로 찍은 다음 갑자기 4인의 얼굴을 극대로 클로스업해 보여준다. 이 때 흐르는 엔니오 모리코네가 작곡한 하모니카가 주도하는 비감한 진혼곡과도 같은 음악이 황량한 서부의 무드를 향수 짙은 음색으로 스크린에 채색한다.
폰다와 브론슨 외에도 클라우디아 카르디날레와 제이슨 로바즈가 공연하는 165분짜리 걸작이다. 이 영화로 브론슨은 미국을 벗어나 유럽에서도 탑스타의 자리에 오르게 된다.
서부의 개척지 플랙스톤과 인근의 유일한 수원지가 있는 스윗워터를 무대로 벌어지는 철도 건설과 땅을 둘러싼 갈등 그리고 복수심에 불타는 정체불명의 건맨의 얘기로 폰다는 프랭크라는 이름으로 철도 건설업자 모턴의 고용된 킬러로 나온다.
프랭크가 수원지가 있는 땅을 소유한 브렛을 사살한 직후 뉴올리언스의 전직 창녀로 브렛의 신부인 질(카르디날레)이 마을에 도착해 남편의 땅을 관리한다. 프랭크와 그의 일당 그리고 모턴과 그의 졸개들이 음모와 배신에 말려들어 살육이 벌어지고 이 난장판에 끼어드는 것이 강도 샤이엔(로바즈). 여기에 무명씨로 하모니카를 부는 브론슨이 나타나는데 이 하모니카 때문에 샤이엔은 브론슨을 ‘하모니카’라고 명명한다.
그런데 ‘하모니카’는 처음에 질의 땅을 차지하려는 프랭크를 돕는데 그가 이 킬러를 돕는 데는 이유가 있다. 프랭크는 옛날에 ‘하모니카’의 동생의 죽음에 책임이 있는 자로 ‘하모니카’는 오랜 세월 뒤 프랭크에게 복수하기 위해 나타난 것이다. 마침내 프랭크와 ‘하모니카’ 간에 필사의 대결이 벌어지는데 이 때 마주 선 둘을 놓고 카메라가 회전촬영을 한다.
프랭크는 ‘하모니카’에게 “도대체 너는 누구냐”고 물으나 ‘하모니카’는 묵묵부답. 이어 총성이 요란하게 난다. 필견의 걸작 웨스턴이다. ★★★★★(5개 만점)
                                            <한국일보 박흥진 편집위원/ hjpark1230@gmail.com>


헤세의 고향을 찾아서




남독의 헤르만 헤세의 고향 칼프를 찾아간 날은 봄비가 내리고 있었다. 헤세의 섬세한 언어들과 아름다운 시어들이 소리를 내며 떨어지고 있었다. 뮌헨에서 울름과 슈투트가르트를 거쳐 칼프를 향해 달리는 기차의 창밖을 내다보니 신록이 무성하다. 한스 기벤라트가 마울브론 수도원학교에서 쫓겨나 고향으로 돌아오는 기차에 타 내다본 창밖에도 신록은 저렇게 냄새를 풍기며 푸르렀을 것이다. 독일을 잘 아는 내 친구 C의 안내로 우리 두 부부가 지난 5월 중순 2주간 독일을 다녀왔다. 독일을 아래서 위로 그리고 좌우로 돌면서 헤세 등 작가와 바그너를 비롯한 음악가들의 고향과 집을 둘러보았다.
나는 헤세를 좋아한다. 어렸을 때 그의 ‘나르치스와 골트문트’를 읽은 뒤로 나는 지금까지 헤세를 하나의 이상처럼 여기고 있다. 나로선 도저히 다다를 수 없는 이상이어서 마치 헤세가 좋아하는 자연 속에서 구름을 동경하듯이 그는 나의 동경의 대상이다. 칼프로 가는 기차는 마치 내 고향으로 가는 기차 같았다. 생전 처음 찾아가는 내 문학의 고향을 향해 달리는 기차의 규칙적인 바퀴소리와 진동이 나의 기대와 의문과 흥분을 거의 불안하리만치 쿡쿡 찔러댔다.
내가 헤세를 좋아하는 까닭은 그가 늘 내 만성 통증이기도한 영육 간의 갈등에 시달리면서 그들의 숭고한 결합을 추구했기 때문이다. 헤세 자신이 개인적으로 결함과 문제가 적지 않은 사람이었기 때문인지도 모른다.
‘나르치스와 골트문트’의 둘은 이성과 감성이며 헤세의 자전적 소설 ‘수레바퀴 아래서’의 한스 기벤라트와 헤르만 하일러도 마찬가지다. 그래서 나는 나와는 성격이 정반대인 C를 나르치스로 나를 골트문트로 여기고 있다. 그리고 헤세는 자연의 문인인데 나 같은 도시인으로서는 그의 자연 또한 막연한 이상향과도 같다.
헤세의 글은 토마스 만도 말했듯이 산문도 시다. 섬섬옥수로 그린 세밀화처럼 자세해 현미경으로 들여다봐야 깨달을 것 같으면서 또 한편으로는 화가이기도 했던 그가 자유롭게 그린 풍경화처럼 너그럽다. 단어 하나 하나가 보석처럼 반짝이는 그의 글은 심오하고 아름답다.
비가 오는 칼프의 작은 역에 내려 헤세도 말했듯이 자그마한 마을을 걷다가 친절한 동네사람의 소개로 점심을 먹으러 17세기에 지었다는 뢰슬레 호텔의 식당엘 들렀다. 영어를 나보다 잘하는 자그마한 주인아주머니 키어스텐이 남편 칼 바이델릭과 6대째 경영하는 호텔 식당에 헤세도 들렀었다고 들려준다. 요리접시에도 헤세의 사진과 글이 박혀 있다.
마을의 중심인 마르크트광장을 둘러싸고 헤세의 아담한 목조생가(사진 왼쪽서 두 번째)와 기념관 그리고 교회와 시청이 옹기종기 모여 있다. 소년 한스와 헤세가 이 광장과 골목을 걸어 다니면서 자신들의 이상을 가꾸었겠지. 헤세기념관의 실물 크기 사진 속 헤세의 얼굴이 엄격하고 차갑다. 진열장에 한국어로 번역된 ‘데미안’도 있고 내가 좋아하는 ‘페터 카멘진트’와 ‘크눌프’의 초판과 그가 사용한 타자기도 있다. C가 독어판 ‘나르치스와 골트문트’를 사줬다.
한스가 멱을 감고 낚시를 하던 강 위로 놓인 니콜라우스 다리 중간에 나이 먹은 헤세의 동상을 보니 산 헤세 보듯이 반갑다. 어린 헤세를 세워 놓았다면 어땠을까 하는 생각이 났다. 칼프소요는 내게 마치 갑자기 받은 선물처럼 벅차게까지 느껴졌다. 그래서 차라리 그리움이 현실보다 고운지도 모른다. 칼프를 떠나는데 아쉬움이 발목을 잡는다. 언제 다시 찾아오나 하는 생각에 마음을 잡아 추슬렀다.
하이델베르크와 쾰른과 본을 거쳐 북독 뤼벡에 오니 매우 춥다. 바닷바람이 독일 병정처럼 매섭다. 독일로 떠나기 전 친구가 유튜브로 보낸 하이네의 시에 슈만이 곡을 붙인 ‘임 분더쉐네 모나트 마이’(화사하게 아름다운 5월에)라고 노래하기엔 너무 춥다.
한자동맹의 본산인 뤼벡은 작가 토마스 만의 고향이요 귄터 그라스의 집이 있는 곳이다. 젊은 바흐가 작곡가요 오르가니스트인 디트릭 북스테후데의 오르간 연주를 들으러 아른슈타트로부터 장장 250마일을 걸어 찾아왔다는 세인트 메리교회도 있다. 그러고 보니 독일에는 참 교회와 성당도 많다. 우리가 매일 먹다시피 한 소시지와 맥주만큼이나 많다.  
토마스 만과 그의 형으로 역시 작가인 하인리히가 태어나고 자란 백색 건물은 이들의 기념관. 토마스 만의 자전적 소설인 ‘붓덴부르크 가족’이 살았던 집처럼 대가족의 훈기가 느껴졌다. 이 대하소설은 거상이었던 만 가족을 모델로 한 4대에 걸친 한 가족의 흥망성쇠를 다룬 걸작이다. 튼튼한 문체와 방대하고 대담한 서술방식 그리고 자세한 인물과 사물 묘사로 꽉 짜여진 작품이다. 헤세와 만은 모두 노벨상을 탔다. 만의 집에 들르기 전 역시 노벨상을 탄 ‘양철북’의 작가 그라스의 집에서 그의 자서전 ‘양파껍질을 벗기며’를 샀다.              
                                                 <한국일보 박흥진 편집위원/ hjpark1230@gmai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