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이야기

2014년 4월 29일 화요일

‘캡틴 아메리카' 크리스 에반스

“잘 발달된 내 몸의 근육 볼만한가요”




현재 상영 중인 마블만화를 원작으로 만든 액션영화‘캡틴 아메리카: 윈터 솔저’에서 캡틴 아메리카 역을 맡은 크리스 에반스(32)와의 인터뷰가 3월 베벌리힐스의 포시즌스 호텔에서 있었다. 이 영화는 2011년에 나온‘캡틴 아메리카: 퍼스트 어벤저’의 속편. 에반스는 4월에는 역시 그가 나왔던‘어벤저스’의 속편인‘어벤저스: 에이지 오브 울트론’ 촬영차 한국을 방문했었다. 그는 또 봉준호 감독의 공상과학 액션영화‘설국열차’(6월 개봉)에서도 주연을 맡아 한국 팬들에게는 낯이 익은 배우다. 에반스는 자신이 주연을 하는 미 동부 해안을 무대로 한 로맨틱 드라메디‘1:30 열차’(그는 인터뷰에서 제목을 바꿀 것이라고 말했다)로 감독으로 데뷔한다. 텁수룩한 수염을 하고 푸른색의 짧은 소매 셔츠를 입은 건강한 호남형인 에반스는 마치 캡틴 아메리카처럼 씩씩하고 원기가 왕성했는데 질문에 깔깔대고 웃으면서 박수까지 쳐가며 속사포 쏘듯이 대답했다. 기자가“당신 한국서 영화를 촬영할 예정인데 한국에 대해 얼마나 알고 있는가”라고 묻자“별로 아는 것이 없다”고 답했다. 그러나 그는 인터뷰 후 기자와 사진을 찍을 때 악수를 나누면서“내 영화 홍보 차 한국에 갔었는데 매우 좋았다”고 말했다.

― 영화에서 당신은 놀라울 정도로 단단한 체구를 보여주는데 원래 그런 것인가 아니면 영화를 위해 신체단련을 했는가.
“영화 촬영 2주 전부터 신체단련에 들어가 계속하다가 촬영이 끝나기 2~3주 전부터 그것을 중단했다. 영화가 끝난 뒤로 난 체육관에 대해선 일절 생각을 안 했는데 ‘어벤저스’ 속편을 찍기 위해 다시 맹훈련에 들어가야 한다.”

― 그러면 다이어트를 하는가. 신체단련을 하면서 어려운 점이라도 있었는가.
“다이어트는 아니고 철저한 신체단련이다. 난 고등학교 때부터 여러 가지 스포츠를 해 근육이 발달됐고 또 신진대사가 잘 된다. 그래서 체중의 증감이 아주 신속하다. 그런데 이제 나이를 조금씩 먹다 보니 과거와 달리 몸이 쑤시고 여기저기서 덜커덕거리는 소리도 난다. 그런데 다행히도 나 이젠 이런 역을 몇 개만 더 하고 그만 둘 것이다.”

―‘어벤저스’ 속편 촬영을 위해 한국에 간다고 들었는데 한국에 대해서 어느 정도 알고 있나.
“촬영을 위해 한국에 얼마간 머물 것이다. 나 외에 또 누가 갈 것인지는 잘 모르겠다. 그런데 한국에 대해선 아는 것이 그렇게 많지 않다.”                   

― 당신이 나온 ‘설국열차’를 감독한 봉준호에 대해 얘기해 달라.
“그는 참으로 멋진 감독이다. 난 그 영화와 봉 감독에 대해 자랑스럽게 생각하고 있다. 그는 할리웃과 다른 스타일의 감독이다. 그는 카메라를 어디에 놓아야 할지를 정확히 아는 사람으로 카메라 위치만 정해지면 그 즉시 찍고 편집을 한다. 매우 대담무쌍한 연출로 그것은 봉 감독이 자신의 방법에 대해 확신을 하고 있기 때문이다.”

― 당신이 연기 외에 감독으로 데뷔하게 된 동기는 무엇인가.
“감독은 자신의 얘기를 할 수가 있고 또 영화에 대해 보다 많은 통제권을 갖고 있다. 반면 연기란 다른 배우들과 감독과 함께 일하는 큰 그림의 조각에 지나지 않는다. 배우는 촬영이 끝나면 그것과 작별하고 나머지는 다른 사람들이 만든다. 그러나 감독은 재능을 지닌 다양한 예술인들의 비전을 구체화해야 하는 책임이 있다. 연출은 대화와 협조의 게임으로 나는 그것에서 큰 보상을 받는 느낌을 가졌다. 연출이 정말로 즐거운 것은 편집할 때다. 편집실은 본격적으로 영화를 건축하는 곳으로 그것은 마치 집을 짓는 것과도 같다.”

― 당신에 관해선 약물 복용이나 요란한 파티 참석 그리고 그 밖의 다른 가십이 전연 없는데 어떻게 해서 도덕적으로 난장판인 할리웃에서 자신을 지켜나갈 수가 있는가.
“영화란 매우 아슬아슬한 사업이다. 개인의 정신적 건강을 맑게 유지하려고 노력한다. 가능하면 대중의 눈 밖에 머물러 있고 또 자신의 삶에서 개인적 평온을 유지할 수 있다면 평화를 찾는데 도움이 된다고 생각한다.”
캡틴 아메리카(왼쪽)와 윈터 솔저가 격투를 벌이고 있다.

― 캡틴 아메리카는 미국의 이상을 지키는 것이 일인데 당신이 생각하는 미국의 이상은 무엇인가.
“난 그가 반드시 미국의 이상만 수호한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난 그가 인간의 이상을 수호한다고 생각한다. 비록 그는 캡틴 아메리카라 불리고 적과 백과 청색의 옷을 입긴 했지만 그가 대변하는 도덕과 가치는 그 어느 곳에서나 찾아볼 수가 있다. 나는 그의 신조가 자기보다 다른 사람들의 투쟁과 염려를 먼저 생각한다는 것이라고 본다. 그것은 범세계적인 것으로 따라서 비록 그의 이름엔 아메리카가 붙어 있지만 그를 반드시 미국에만 국한시킬 필요는 없다.”

― 당신은 영화에서 70년간 동면에 빠졌다가 깨어나서도 20대 모습 그대로인데 실제로도 그럴 수 있다면 영원히 젊은 상태로 남고 싶은가.
“유혹적인 제안이긴 하나 나이를 먹으면서 우리는 진화한다고 생각한다. 나이를 먹으면서 우리는 무언가를 배우기 때문에 난 그런 기회를 스스로 박탈하고 싶지 않다.”

― 여자를 만날 때 당신은 상대에게 스스로 데이트를 청하는가 아니면 친구들의 소개로 만나는가.
“난 스스로 데이트를 신청할 배짱이 있다. 그러나 만남이란 서로 주고받아야 하는 것이지 그렇지 않으면 바른 것이 아니다. 내게 바른 사람을 만나면 나의 데이트 신청도 보상을 받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 당신은 여자문제에 있어 구식 스타일인가.
“어느 정도 그렇다. 요즘에는 상대에게 휴대폰으로 문자 메시지를 보내는데 이전엔 전화로 ‘누구 있어요’라고 물었다. 난 분명히 문자 메시지 보내는 사람보다 전화를 들고 말을 하는 사람을 존경한다.”

― 나이를 먹으면서 무얼 배웠는가.
“난 지금 32살인데 20대 때보다 확실히 더 내 나이와 위치에 대해 감사할 줄 알고 있다. 나이를 먹으면서 과거의 실수에 대해 더 이상 염려하지 않고 또 미래에 대해서 집념하지 않으면서 현재 자신이 갖고 있는 것이 무엇인지를 깨달으면서 그것을 수용하는 것을 배우고 있다. 그리고 현재를 즐기고 있다.”

― 현재 가치 있게 느끼는 것이 무엇인가.
“정말로 감독하는 것을 즐겼다. 현재 내가 오직 하고 싶은 것은 감독이다. 따라서 현재 내가 즐기고 있는 것은 자신의 정열을 찾고 이해하는 것이다.”

― 영화에서 조연으로 나온 로버트 레드포드와 일한 경험은 어땠는가.
“그는 참으로 훌륭한 사람이다. 철두철미한 프로다. 자기 대사를 암기해 세트에 나온다. 매우 인내심 있고 이해심이 깊다. 뛰어난 연기인으로 모두를 편안하게 만들어주는 살아 있는 전설이다.”

― 캡틴 아메리카는 자기를 적으로부터 보호해 주는 방패가 있는데 당신을 이 세상에서 지켜주는 방패는 무엇인가.
“가족이다. 가족은 나를 다른 사람들과 내 직업과 사업으로부터 지켜줄 뿐 아니라 나 자신으로부터도 나를 지켜준다. 왜냐하면 때로 자신이 자신의 가장 나쁜 적이 될 수가 있기 때문이다.”

― 영화에 당신이 스미스소니언 박물관에 들어가 자신의 옛 모습을 보면서 과거를 회상하는 장면이 있는데 당신은 실제로 고요 속에서 무언가를 들은 적이 있는가.
“매일 그렇다. 난 매일 정적을 연습하며 산다. 나는 목에 정적에 관한 문신이 있다. 우리의 의식은 너무나 퍼져 있고 또 우리는 과거와 미래에 너무 집착해 현재를 온전히 받아들이지 못한다는 것이 우리의 큰 장애다. 이것을 극복한다면 우리는 승리하는 것이다. 삶은 현재의 시리즈이기 때문이다. 우리는 미래를 결코 만날 수 없다. 미래란 현재가 될 뿐이니까.”

― 연예인이 어떻게 그럴 수가 있는가.
“바로 그게 문제다. LA에 오래 머물다 보면 문제가 될 것이 없는 것들이 문제가 되고 영향을 미치지 못하던 것들로부터 영향을 받게 된다. 그래서 난 집에를 자주 간다. 이 사업은 너무나 유혹이 많고 혼란스럽다. 따라서 고요함 속에 현재를 유지하면서 잡생각을 제거하려는 연습이 필요하다. 내가 싸우는 목표도 이를 성취해 스스로를 해방시키고자 하는 것이다.”

―당신이 무서워하는 것은 무엇인가.
“무엇을 무서워한다는 것이 나의 공포다. 공포 자체가 문제다.”
                                               <한국일보  편집위원/hjpark1230@gmail.com>


로크(Locke)

차 안에서 나누는 전화통화 `스릴 만점'  


로크가 운전을 하면서 전화통화를 하고 있다.

대단한 원맨쇼다. 지극히 검소한 영국산 미니멀리스트 영화로 건축 수퍼바이저인 아이반 로크가 밤에(완전히 차 안에서 찍은 촬영이 훌륭하다) BMW를 운전하고 85분간 영국의 버밍엄에서부터 런던까지 가면서 차 안에서 여러 가지 문제로 가족을 비롯해 이 사람 저 사람과 전화로 대화를 나누는 내용인데도 처음부터 끝까지 숨 막힐 정도로 서스펜스가 가득하다.
내용은 물론이요 기술적으로도 대담하고 혁신적인 영화로 로크로 나오는 탐 하디의 목소리와 얼굴표정 연기가 압도적이다. 어떤 상황에서도 목소리 높이지 않고 침착하게 문제를 하나씩 하나씩 풀어나가는 하디의 기민성과 능력이 가상하다.
과실과 책임 그리고 상실과 얻음의 영화인데 로크가 당면한 여러 가지 문제들은 그가 차를 타고 가면서 전화 통화 상대방과 나누는 대화를 통해 하나씩 밝혀진다. 하디의 연기와 함께 또 하나 칭찬 받을 만한 것은 그와 대화를 나누는 사람들의 음성연기. 사실감 있다.
우선 첫 문제는 로크는 내일 새벽에 고층건물 건축의 토대용 콘크리트를 붓는 일을 감독해야 하는 데도 만부득이한 일 때문에 현장을 떠났다. 공사문제로 로크는 자기 보스(벤 대니얼스)와 조수(앤드루 스캇)는 물론이요 수십대의 콘크리트 적재 트럭의 원활한 교통을 위해 교통 통제관과도 대화를 나누면서 당면 문제들을 풀어나간다.
이어 그는 축구광인 집에 있는 어린 두 아들과 아내 카트리나(루스 윌슨)와 대화를 나눈다. 아들에게는 경기 결과를 물어보면서 한편으로는 아내에게 자신의 과오를 고백한다. 
그의 과오는 지난해에 런던에서 일할 때 현장의 사무직원인 베탄(올리비아 콜만)과 하룻밤을 지냈는데 베탄이 로크의 아이를 임신, 지금 조산하게 돼 병원에 입원했다. 
로크는 자신의 책임을 지키기 위해 직장과 가정을 잃을지도 모르는 데도 현장을 떠난 것이다. 그리고 그는 카트리나에게 용서를 빌랴 징징대며 우는 베탄을 달래느라 바쁘다. 
로크가 운전을 하면서 계속해 번갈아 가며 전화를 걸고 또 걸려오는 전화를 받아 통화를 하는 연기를 일사불란하게 하는데 경탄할 만한 것이다. 꽉 죄어드는 긴장감 가득한 드라마로 연극으로 만들어도 재미있겠다. 뼈 빼고 기름 빼고 진국만 있는 뛰어난 작품이다. 스티븐 나잇 감독(각본 겸). R. A24. 일부지역. ★★★½(5개 만점)  <한국일보  편집위원/hjpark1230@gmail.com>


다른 여자(The Other Woman)

세 여자의 `플레이보이 골탕 먹이기'  


케이트(왼쪽부터)와 칼리와 앰버가 술 마시고 춤추며 우정을 나누고 있다.

전형적인 할리웃산 속빈 강정과 같은 영화로 상스럽고 짜증나게 만드는 우습지 않은 ‘시스맨스’ 코미디다. 코미디에 재주가 있는 캐메론 디애스와 레즐리 맨이 주연하는데 웃음이 자연스럽지가 못하고 억지로 쥐어짜는 듯이 불편해 피곤하다.
연기와 대사 역시 모두 가짜투성이인 ‘칙 플릭’인데 디애스와 맨 외에 순전히 눈요깃거리로 나온 젖가슴이 큰 호박만한 모델 케이트 업톤 등 세 여자의 억지 교태와 제스처와 함께 끊임없이 재잘대는 허튼 소리에 짜증이 나고 신경질이 난다.
영화를 감독한 사람은 센티멘털한 로맨스 영화 ‘노트북’을 만든 닉 캐사베이티즈인데 코미디 데뷔가 엉망진창이다. 레즐리 맨을 비롯해 역시 여자들이 주인공인 코미디 ‘브라이즈메이즈’의 재미와 폭소에 비하면 이 영화는 허접 쓰레기에 가깝다.
바람둥이 남자의 피해자들인 세 여자가 일치단결해 남자에게 온갖 방법으로 복수를 한다는 ‘복수 코미디’인데 알다가도 모를 일은 이들이 어떻게 해서 별 남성적 매력이 없는 이기적인 플레이보이 역의 니콜라이 코스터-발다우(덴마크 배우로 HBO의 인기 시리즈 ‘왕좌 게임’에 나온다)에게 그렇게 쉽게 몸을 허락하느냐 하는 점이다. 꼭두각시 같은 역의 코스터-발다우는 미스 캐스팅이다.
뉴욕에서 잘 나가는 맹렬여성 변호사 칼리 위튼(디애스)은 재정전문가인 마크 킹(코스터-발다우)을 만나자마자 반해 둘이 요란한 섹스를 한다. 그런데 알고 보니 코네티컷주에서 뉴욕으로 출퇴근하는 마크가 유부남이 아닌가.
대경실색한 것은 칼리뿐 아니라 마크의 전형적인 가정주부 케이트(맨)도 마찬가지. 그런데 서로 적이 돼야 할 칼리와 케이트는 서로 마음이 맞아 둘이 팀이 되어 마크에게 복수를 하기로 한다. 여기에 합류하는 것이 마크의 또 다른 여인인 젊은 육체파로 약간 맹한 스타일의 앰버(업톤-뻣뻣하다).
셋이 복수의 삼총사가 돼 작업에 들어가는데 이런 복수과정에서 셋은 술 마시고 춤추고 포옹하고 재잘대고 찧고 까불면서(보기가 낯간지럽다) 우정으로 단단히 맺어진다. 그런데 이 복수 수단이 참으로 상스럽기 짝이 없다.
마크의 샴푸제에 탈모제를 대신 집어 넣어 마크의 머리털이 빠지게 하는 것은 그렇다 치더라도 목불인견인 것은 복수용 설사약을 먹은 마크가 고급 식당에서 방귀를 뀌다가 급기야 참지를 못하고 일을 저지르는 장면. 고약한 냄새가 난다. 
이렇게 상스러운 것은 세 여자가 재잘대는 대화에서도 나오는데 그것이 솔직한 것인지는 모르겠으나 이들은 여자의 은밀한 곳의 손질에 대해서 신이 나서 떠들어댄다. 
이 밖에도 디애스의 얼굴과 커다란 개의 커다란 그것과의 접촉 등 매우 역겹고 볼썽사나운 장면들이 많다. 일종의 여권 회수영화인데 회수는커녕 여자들을 모욕하는 결과를 저지른 상당히 미성숙한 코미디다. R. Fox. 전지역. ★★(5개 만점) 
                                                                           <한국일보  편집위원/hjpark1230@gmail.com>


‘로드 짐’



‘할리웃 외신기자협회를 대표해 귀국에서 일어난 참사에 대해 심심한 유감의 뜻을 표합니다. 우리 협회가 이번 참사에 대해 도울 것이 있다면 기꺼이 돕겠으니 알려주기 바랍니다.’ -할리웃 외신기자협회(HFPA) 회장 테오 킹마.
‘귀국에서 일어난 참사에 대해 깊은 유감의 뜻을 표합니다. 앞으로 긴 인생과 함께 며칠간의 휴가를 기대하던 그렇게 어린 아이들의 삶이 끝나다니 이 무슨 비극입니까. 다시는 평화로운 삶을 살 수 없을 슬픔에 잠긴 모든 가족에게 제 마음을 보냅니다.’ -HFPA 회원 카렌 마틴.
며칠 전 e메일로 보내온 HFPA 동료들의 글을 읽고 나는 ‘그들을 위해 기도해 달라’고 답장을 보내면서 눈물을 흘렸다. 그리고 부끄러웠다. 한국판 ‘타이태닉’이라 부를 만한 ‘세월’호 비극은 단순히 먼저 달아난 선장이나 일본산 고물 배를 사서 뜯어 고친 뒤 바다에 띄운 선주나 무능하기 구태의연한 정부의 탓만이 아니다.
그것은 대한민국이라는 나라의 총체적 잘못이다. 우리 모두의 잘못이다. 이번 사건으로 또 한 번 우리나라는 기초가 제대로 안 돼 있고 규칙과 법은 지킨다기 보다 오히려 깨기 위해 있다는 것이 드러났다.
난 우리나라를 생각하면 꼭 가건물을 보는 것 같다. 기초 부실로 붕괴한 와우아파트처럼 언제 어디가 무너져 내릴지 몰라 아슬아슬하기가 짝이 없다. 정말이다. 기초 공부부터 다시 하려는 국민운동이라도 일으켜야겠다.
‘세월’호 사건에 관한 뉴스를 볼 때마다 자꾸 눈물만 나오는데 그러면서도 괘씸하기 짝이 없는 것이 승객 구조를 안 하고 자기들 먼저 달아난 선장과 승무원들이다. 이 사람들은 영화 ‘타이태닉’도 안 봤는가. 나도 죽음 앞에 섰을 때 과연 어떤 태도를 취할지 장담 할 수는 없지만 적어도 선장과 승무원이라면 어느 정도의 책임의식을 가져야 되지 않겠는가.
이들의 도주는 용기와 비겁을 생각나게 한다. 용기와 비겁의 차이는 백지 한 장의 차이일 수도 있다. 그래서 ‘세월’호 선장처럼 가라앉는 배의 승객들을 버리고 먼저 도망간 비겁자인 항해사 짐은 그 후 속죄하고 더 이상 도망가기를 거부하면서 스스로 죽음을 맞는 용감한 사람으로 변신할 수 있었는지도 모른다.
짐은 영국 작가 조셉 콘래드의 모험얘기이자 인간의 심리를 탐구한 소설 ‘로드 짐’(Lord Jim)의 주인공이다. 콘래드의 또 다른 소설로는 ‘어둠의 심장’이 있는데 이 소설은 프랜시스 F. 코폴라가 감독하고 말론 브랜도가 나온 영화 ‘지옥의 묵시록’으로 만들어졌다.
소설 ‘로드 짐’도 1965년 리처드 브룩스 감독에 의해 영화로 만들어졌는데 짐으로는 비수의 감촉처럼 새파란 눈동자를 한 피터 오툴이 나왔다. 난 이 영화를 대학생 때 을지로에 있던 을지극장에서 봤는데 로맨틱하면서도 장렬한 내용에 진한 감동을 느꼈었다.
실화를 바탕으로 한 ‘로드 짐’은 인간의 순간적 과오와 그로 인한 인간성의 추락 그리고 고통과 자괴와 궁극적 속죄와 재생의 이야기다.
영국의 1등 항해사 짐(사진)은 부상 치료차 자바에 남아 머물다가 건강을 회복, 구닥다리 화물선 S.S. 파트나에 오른다. 메카로 가는 회교신자들을 잔뜩 태운 배가 항해 중 심한 태풍을 만나 침몰할 위기에 처하자 짐은 승객들을 버리고 동료 승무원들과 함께 구명정을 타고 탈출한다. ‘세월’호의 선장과 승무원과 똑같다.
그런데 짐이 항구에 도착해 보니 뜻밖에도 파트나호가 멀쩡히 정박해 있지 않겠는가. 그리고 짐은 재판에 회부돼 승무원 자격을 박탈당하고 여기서부터 그는 뜨내기가 돼 스스로 버러지 같은 삶을 산다.
자신을 증오하는 자아 혐오증자가 된 비겁자 짐이 재생의 기회를 찾게 되는 것은 그가 말레이시아의 외딴 섬 파투산에 정착하면서 이뤄진다. 짐은 이 섬의 주민들을 수탈하는 강도단 두목 제너럴(일라이 월랙)에 맞서 주민들을 이끌고 전투를 벌여 승리, 주민들로부터 ‘로드’ 칭호를 받는다.
그러나 제너럴이 짐과의 약속을 어기고 마을을 역습하면서 촌장의 아들이 사망하고 짐이 이에 대한 책임을 진다. 촌장은 짐에게 마을을 떠나면 살려주겠다고 말하나 다시는 도주하지 않기를 자신에게 다짐한 짐은 총을 든 촌장을 향해 스스로 선택한 죽음의 걸음을 내디딘다. 오툴이 새파란 눈을 들어 창공을 응시하는 순간 “빵”하는 총소리가 난다.
올스타 캐스트의 이 영화는 브룩스 감독(‘엘마 갠트리’ ‘인 콜드 블러드’)의 영화치곤 감상적이요 질이 다소 떨어진다는 평을 들었지만 감수성이 예민한  대학생 때여서 그랬는지 난 비겁과 용기와 인간 재생의 얘기를 진지하게 보면서 짙은 감동을 받았었다. 난 영화를 본 뒤 영어소설을 사 읽기 시작했는데 도중에 중단했다. 언젠가 다시 시작할 생각이다.
                                       <한국일보  편집위원/hjpark1230@gmai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