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이야기

2015년 3월 3일 화요일

‘버드맨’마이클 키튼




“내게‘버드맨’은 큰 축복… 세번이나 다시 봐”

‘배트맨’성공이 짐 된 적 없어, 그냥 꾸준히 일할뿐
 진취적 사고·다양한 인종의 캘리포니아 너무 좋아


제87회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작품, 감독, 각본 및 촬영상을 받은‘버드맨’(Birdman)에 주연한 마이클 키튼(63)과의 인터뷰가 뉴욕의 팰리스 호텔에서 있었다. 키튼은 오스카 남우주연상 후보에 올랐으나 상은‘사랑에 대한 모든 것’에서 스티븐 호킹 박사로 나온 영국의 젊은 배우 에디 레드메인이 탔다.‘버드맨’은 한물간 할리웃 스타 리간이 브로드웨이 무대에서의 재기를 시도하는 블랙 코미디다. 영화에서 열연을 한 키튼은 지난 1월 기자가 속한 할리웃 외신기자협회(HFPA)가 주는 골든 글로브 남우주연상(코미디/뮤지컬 부문)을 받았다.  간편한 차림에 머리를 짧게 깎은 대머리인 키튼은 나이보다 젊어 보였는데 처음에는 긴장한 태도로 질문에 대답했으나 시간이 가면서 긴장을 풀고“헤 헤”하며 웃고 농담도 섞어가면서 매우 진지하게 대답했다. 눈초리가 강렬하고 탄탄한 에너지가 넘쳐흘렀는데 다소 냉소적인 사람이라는 인상을 받았다.

―영화에는 대사가 많고 또 말하는 속도도 빠른데 사전에 충분한 리허설을 했는가.
“알레한드로의 뜻대로 만들기 위해선 리허설이 꼭 필요했다. 그래서 한 달간 리허설을 했다. 마치 실제 연기하듯이 모든 배우가 참가해 단어 하나도 빼지 않고 또 동작도 실연과 똑같이 했다.”

―당신은 히트작 ‘배트맨’으로 빅스타가 됐다가 그 후 활동이 뜸했는데 마치 그 상황이 이 영화와 비슷하다. 이 영화의 주인공이 ‘버드맨’의 망령에 시달린 것처럼 당신도 ‘배트맨’의 망령에 시달렸는가.
“난 그런 망령에 시달리는 사람이 아니다. ‘배트맨’에 나온 것은 행운이었지만 이 영화에 나온 것은 그보다 훨씬 더 큰 행운이다. 이 영화는 그 누구도 만들어본 적이 없고 또 나도 해본 적이 없는 아주 독특한 영화다. 매우 하기 어려운 영화요 순수예술인데 나는 어려운 것과 순수예술을 좋아한다.”

―영화는 명성과 자만에 관한 얘기인데 당신은 명성에 의해 어떤 영향을 받았나.
“명성에 대해 고맙게 생각해야 된다. 난 명성이 주는 부담에 대해 불평하지 않는다. 그런데 보통 젊은 여배우들이 명성의 압박에 시달리는 것 같다. 그들은 잡지 표지를 장식하기 때문인 것 같다. 또 사람들이 그들에게 집착하고 따라다니기 때문이기도 한데 그와 반면에 난 아주 따분한 삶을 살고 있다.”

―리간은 영화배우인데 왜 연극으로 재기를 시도하는가.
리간(마이클 키튼)의 뒤를 그의 망령과도 같은 버드맨이 따르고 있다.
“일반인이나 배우들 중 진짜 연기는 무대 위에서 하는 것이라고 생각하는 경향이 있다. 연극은 철저한 훈련과 나름대로의 엄격한 규율이 있어서 모두가 다 쉽게 할 수가 없다. 그래서 사람들은 그것을 보다 높이 평가하는 것 같다. 리간이 무대를 선택한 까닭에도 그런 이유가 조금은 있다. 그는 자신의 불안한 처지를 무대를 통해 보상받고자 한 것이다. ‘제발 날 사랑해 주세요’라고 말하고 싶었던 것이다.”       

―영화에서 팬티바람으로 타임스퀘어를 걸은 기분은 어땠는지.
“내가 진짜 돈 사람이라는 것을 증명했다. 그러나 배우란 무언가를 저지르고자 하는 사람들이어서 어떤 일이라도 하게 된다. 아마 수영을 못하는 배우에게 영불해협을 수영해 건너라고 해도 할 것이다. 난 그 장면에 대해 너무 심각히 생각 안 하고 일상사 하듯이 했다.”

―감독은 영화를 의식의 흐름의 영화라고 했는데 당신은 영화를 찍을 때 어떤 의식이었는가.
“그에 관해 우리는 리허설과 함께 실연을 할 때도 계속해 얘기했다. 근본적으로 말하자면 난 내게 주어진 일을 했을 뿐으로 각본 속 인물의 마음상태에 어떻게 감정적으로 다다를 것인가에 대해 생각했다. 리간은 깊은 어둠에 빠졌다가 삽시간에 우스워지는가 하면 또 진지하다가 곧 이어 불안한 상태가 되는 역이어서 촬영 내내 정신을 바짝 차려야 했다. 그래서 때론 집에 와서도 그를 떠나지 못했다.”

―당신은 그동안 활동이 뜸했다고 생각하지 않는가.
“꼭 그렇지도 않다. 아무도 보진 않았으나 한 일들이 꽤 많다. 그리고 그동안 내가 별로 신통치 못한 영화에 나왔던 것도 사실이다.”

―당신은 스탠드업 코미디를 비롯해 다양한 활동을 하면서 오랜 연예계 생활을 해왔는데 그 동안 영화산업이 어떻게 변화했다고 생각하는가.
“내가 그에 대해 말할 올바른 사람인 줄 모르겠다. 그러나 난 리간처럼 할리웃의 사사건건에 집착하는 사람이 아니다. 나는 대부분의 경우 내 본능을 믿는다. 나는 내가 보지 못했던 것들에 대해 매력을 느낀다. 나는 독창적이요 흥미 있고 또 흥분되는 것을 늘 찾고 있다. 난 적기에 적소에 있는 행운을 누렸는데 특히 ‘비틀주스’와 ‘배트맨’을 감독한 팀 버튼과 함께 일한 것은 큰 행운이었다. 팀이야 말로 진정한 예술가다.”

―‘배트맨’의 성공 이후의 당신의 여정에 관해 말해 달라. 편했나 아니면 힘들었나.
“그것은 큰 결실로 난 정말로 고마워하고 있다. 그로 인해 내가 반드시 하지 않아도 될 것에 대해선 거부권을 행사할 수가 있게 됐다. 그러나 그것이 반드시 좋은 것만은 아니다. 내가 ‘배트맨’으로 국제적으로 성공하는 축복을 받은 이후 더러 영화에 나오긴 했지만 활동이 뜸했던 것은 아내와 헤어진 뒤 혼자 어린 아들을 돌봐야 했기 때문이기도 하다. 그리고 제공되는 영화들이 엉터리가 많은 것도 또 다른 이유다. 나는 영화에 나오려고 찾아다니는 사람은 아니지만 먹고 살아야 한다는 것도 잘 알고 있다. 또 나는 내가 하는 일을 좋아한다. 그러나 나는 리간처럼 자신의 과거 성공의 그림자를 등에 짊어지고 다니지는 않는다.”

―당신은 목장에서 사는 것으로 아는데.
“연중 일부분은 거기서 산다. 난 어렸을 때 펜실베니아주 서부의 시골에서 자라 우리 7남매가 모두 숲과 들을 뛰어다니면서 살았다. 변소도 집 밖에 있었다. 그래도 난 우리 집이 세상에서 제일 멋있는 집이라며 좋아했다. 나는 그래서 방 안에 오래 있지 못한다. 늘 신체적 공간을 유지하기 위해 걷는다. 그렇게 동부에서 자란 나는 늘 영화를 보면서 서부를 그리워했다. 언제나 서부에 가고 싶어서 20세 때 쯤에는 애리조나주의 인디언 거주지역에서 일도 했다. 그래서 시골에 사는 것은 나의 어릴 적부터의 꿈이었다. 내가 사는 목장은 작가와 화가와 사진작가들이 모여 사는 동네다. 아침에 일어나 커피 끓여 마시고 이메일 보고 개와 산책을 하고 이웃과 할 일을 얘기하다 보면 어느 새 저녁이 된다.”

―LA에서의 삶과 목장에서의 삶을 어떻게 균형을 맞추는가.
“나는 목장 없이는 못 살지만 LA와 캘리포니아도 매우 좋아한다. 캘리포니아는 훌륭한 곳이다. 사람들이 이 곳을 비판하는 것은 질투 때문이다. 캘리포니아는 앞서 생각하는 곳으로 그 생각이 처음에는 미친 것처럼 여겨지다가도 결국은 세계가 그것을 따르게 마련이다. 그리고 또 이곳은 인종적으로도 온갖 인종이 모여 살아 아주 흥미 있다. 차로 5시간만  달리면  완전히 다른 세상에 도착하게 되는 것이 캘리포니아다.”

―이 영화에서처럼 왜 영화배우들이 연극 무대에 서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하는가.
“사람마다 차이는 있겠지만 그것은 중요하다. 영화와 연극은 완전히 다른 근육을 지녔다. 연극의 이점은 오랜 리허설이다. 3~4주씩 연습하다 보면 극중 인물이 완전히 자기 것이 된다. 그리고 연극은 매일 같이 달리 연기할 수 있지만 영화는 단 한 번의 연기가 필름에 담겨지게 마련이다. 나는 대학 때 연극을 잠깐 한 뒤로는 별 경험이 없는데 아주 즐거웠다. 최근에 와서 나는 연극 대본을 많이 읽고 있다. 그러나 한 가지 말할 것은 연극배우가 영화배우보다 반드시 나은 배우라고는 할 수 없다는 것이다.”  

―당신의 연기가 격찬을 받고 있는데 기분이 어떤지. 이 영화가 당신 생애의 새로운 전기가 되리라고 생각하는가.
“정말로 기분이 좋다. 새 전기라는 면에서는 그럴 수도 또 아닐 수도 있다. 근본적으로 나는 같은 일을 하고 있다. 나는 꾸준히 같은 일을 하는 스타일이다. 이 영화에 나오게 된 것은 정말로 축복이다. 난 벌써 영화를 세 번이나 봤는데 앞으로도 얼마를 더 볼지 모르겠다. 어떤 때는 영화에 너무 몰입해 내가 나온 것도 잊을 정도다.”

―이 영화 이후 당신에게 출연 제의가 쇄도할 것이 뻔한데 그것을 원하는가.
“난 일하는 것을 즐긴다. 사람에겐 일이 매우 중요한 것이다. 난 지금 ‘스팟라이트’라는 영화에 출연 중이다. 보스턴 글로브가 폭로한 보스턴 가톨릭교구 신부들의 아동 성추행에 관한 실화인데 각본과 감독(탐 맥카시)과 배우들이(마크 러팔로와 레이철 맥애담스) 다 좋다. 그러니 난 2연타 히트를 하게 되리라고 믿는다. 그러나 나는 흥분하지 않고 내 갈 길로 서서히 가고 있다. 한 가지 신통한 일은 이 영화 후 그 동안 몇 년간 한 마디 없던 영화계 사람들이 갑자기 내게 전화를 걸어와 ‘아이 러브 유 마이클’이라고 축하했다는 사실이다.”
                                                          <한국일보 박흥진 편집위원/ hjpark1230@gmail.com>


포커스 (Focus)


닉키(윌 스미스·왼쪽)와 제스(마고 로비)가 첫 대면을 하고 있다.

사기·소매치기로 도배, 로맨스까지 뒤범벅


로맨스와 코믹 터치를 곁들인 사기꾼들과 소매치기들의 한탕 영화로 겉만 번드르르하지 흡인력이 모자라는 쇼윈도의 장식용 고급 드레스 같은 작품이다. 처음부터 끝까지 사기를 치고 소매치기를 하고 내기를 하는데 마치 사기 치기 교본을 보는 것 같다.
수퍼스타 윌 스미스와 ‘월스트릿의 늑대’에서 레오나르도 디카프리오의 애인으로 나온 호주산 섹시한 신성 마고 로비가 사기꾼 선생과 제자로 나와 만났다 헤어졌다 하면서 로맨스를 엮지만 스미스가 공연히 심각한 표정을 지으면서 생기를 잃어 둘 간의 화학작용도 미적지근하고 또 러브 신도 어색하다. 스미스보다는 로비가 더 화끈하다.
모든 것이 사기여서 또 사기 당하는구나 하는 느낌 때문에 내용에 빠져들기가 어려운데 플롯이 너무나 황당무계하고 터무니가 없어 혀를 내휘두르게 된다. 뉴욕과 뉴올리언스 그리고 부에노스아이레스에서 찍은 화려한 촬영과 부와 사치와 로비가 수시로 바꿔 입는 드레스 같은 눈요깃거리를 즐기면서 속빈 강정 같은 영화의 허구를 즐길 사람도 있겠으나 세련미란 전연 없는 영화다. 진짜로 잘 만든 사기영화를 보려면 ‘게임의 집’과 ‘그리프터즈’와 ‘스팅’을 보기를 권한다. 
영화에서 눈알이 돌아갈 정도로 재빠른 몽타주로 이어지는 소매치기 장면은 무려 25만명을 털었다는 소매치기 아폴로 로빈스의 자문을 받은 것이다. 
이 세상에 사기 치지 못할 것이 없다며 자신만만한 소매치기요 사기꾼인 닉키(스미스)가 자신의 수제자가 될 섹시한 제스(로비)를 처음에 만나는 곳은 뉴욕의 고급 호텔 식당. 물론 이 만남부터가 사기행각의 하나다.  
닉키는 제스를 제자 겸 애인으로 삼고 수십명에 달하는 졸개들과 함께 풋볼경기가 있는 뉴올리언스로 소매치기 원정을 간다. 주말 인파로 붐비는 프렌치쿼터에서 잽싸게 행해지는 소매치기 장면이 영화에서 가장 볼만한 것. 여기서 얻은 수확이 무려 100여만달러. 
닉키와 제스는 이 돈을 가지고 풋볼경기가 열리는 수퍼돔의 귀빈실로 들어간다. 여기서 닉키는 거부의 중국인 도박꾼 리유안(BD 웡이 꼭두각시처럼 논다)과 내기를 하나 계속해서 진다. 내기의 액수는 200만달러까지 오른다. 믿거나 말거나인데 과연 최후의 승자는 누구일까요. 그리고 닉키는 느닷없이 제스를 내버린다. 
그로부터 3년 후 자동차 경주 포뮬라 1이 열리는 부에노스아이레스. 닉키는 오만한 거부로 경주팀을 소유한 가리가(로드리고 산토로)에 고용돼 가리가의 라이벌인 호주인 매큐언을 사기 치기로 계약한다. 매큐언에게 가리가의 비밀 연료첨가제 성분 공식을 판다는 것이다. 여기서도 수백만달러가 오가는데 도대체 믿어지지가 않는다.  
그런데 아뿔사 가리가의 애인이 나타나는데 그 여자가 제스가 아닌가. 우연이 판을 치는 영화다. 닉키와 제스 간의 애정 고백과 사랑의 줄다리기가 지루하게 곁가지를 치면서 닉키의 과거가 설명된다.
한편 의심 많은 가리가는 닉키를 철저히 믿지 못해 자기의 나이 먹은 킬러 하수인 오웬스(제럴드 맥레이니가 잘 한다)로 하여금 닉키의 행동을 감시하도록 시킨다. 클라이맥스에 가서 또 한 번 사기가 벌어지는데 이 부분은 ‘스팅’의 장면을 도용했다. 글렌 피카라와 존 레콰 공동감독(각본 겸).R. WB. 전지역. ★★★(5개 만점)  <한국일보 박흥진 편집위원/ hjpark1230@gmail.com> 

에벌리 (Everly)


에벌리가 암살자들을 향해 총을 난사하고 있다.

‘일당백’여전사의 만화같은 액션극


기가 막히는 영화다. 보면서도 믿을 수가 없는 잔인하고 끔찍하고 유혈 폭력이 난무하는 액션 스릴러 복수극으로 퀜틴 타란티노의 ‘킬 빌’의 싸구려 판이다. 너무 잔인하고 피가 철철 넘쳐흘러 보다가 포기했다가 다시 나머지 부분을 보니 역시 끔찍하고 역겹긴 하나 코믹하고 어처구니없는 내용의 만화를 보는 재미마저 있다. 철저한 액션장르의 팬들 용이다.
볼만한 것은 영화를 혼자 걸머진 히스패닉 섹시스타 셀마 하이엑의 혼신의 연기. 등에 화려한 문신을 한 하이엑이 주먹과 발과 함께 수류탄, 기관총, 단검, 장검 그리고 권총과 청산가리 등 온갖 흉기를 동원해 자기를 죽이려고 물밀 듯이 몰려오는 암살자들을 처치하는 모습이 가히 성난 암사자 같다. 브라바!
피가 흥건히 흐르는 가운데서도 낄낄대고 웃게 되는 다크 코미디이기도 한 영화의 내용은 별 것 없다. 잔인한 일본인 애인 타이코(히로유키 오타나베)를 배신하고 아파트에 진을 친 에벌리(하이엑)를 처리하기 위해 타이코가 파견한 온갖 유형의 암살자들을 에벌리가 혼자서 맞아 싸우는 것이 전부다. 
무대는 아파트의 한 방과 이 방 건너의 다른 방 그리고 복도와 엘리베이터로 대부분의 액션은 에벌리의 방에서 일어난다. 파견된 킬러들 중에서 가관인 것은 새디스트(토고 타가와)와 마조키스트(마사시 후지모토). 만화 속에서 걸어 나온 것 같은 이들이 싸구려로 웃기는 대사와 인상을 쓰면서 에벌리와 난투극을 벌이는데 그 결과가 끔찍해 차마 눈 뜨고 보기 힘들 정도다. 이 중 하나는 청산가리 등 각종 치명적인 화학제를 살상무기로 쓴다. 
에벌리는 한 아파트에 4년간이나 갇혀 타이코로부터 강간을 당하며 살다가 탈출을 결심한 것인데 문제는 타이코가 에벌리의 어머니와 어린 딸의 소재지를 알고 있는 것. 그래서 에벌리는 이 둘을 자기 아파트로 불러들인 뒤 이들을 보호하면서 암살자들과 대결하느라 죽을 고생을 한다.
시뻘건 물감으로 그린 살아 있는 만화 같은 영화는 잔인무도함을 달래느라 새카만 유머를 자주 사용하는데 그 중 하나가 에벌리의 총을 맞고 소파에 앉아 죽어가는 안경을 낀 샌님 스타일의 일본인 암살자(아키에 코타미)와 에벌리의 대사. 
한편 타이코는 개별 암살자들 외에도 검은 정장차림의 졸개들을 떼거리로 파견하는데 이 중 그 누구 하나도 살아남는 자가 없다. 이를 악물고 암살자들을 황천으로 보내는 에벌리의 결의가 가공한데 그러자니 그가 온 몸에 입는 총상이 한둘이 아니다. 
과연 에벌리는 살아남을 것인지. 마침내 에벌리를 사랑한다는 타이코가 정장을 하고 아파트에 들어선다. 그리고 둘 간에 애증이 얽힌 대격전이 벌어진다. 때는 크리스마스로 영화 간간이 ‘고요한 밤 거룩한 밤’이 흐르면서 아기 예수의 탄생을 찬양하는데 이것이 영화의 살육과 묘한 대조를 이룬다. 조 린치 감독. R. Radius. 전지역. ★★1/2(5개 만점)
                                                         <한국일보 박흥진 편집위원/ hjpark1230@gmail.com>

더블린 사람들




잔 비가 내리는 가운데 더블린 공항에서 숙소인 쉘번 호텔까지 가는 차 안에서 안내원이 “2월에 더블린에 오면서 우산을 안 가져 오다니”하면서 핀잔을 준다. 그는 이어 “이런 날은 펍에서 기네스 마시기 딱 좋은 날”이라고 권주사를 건넸다.
차창 밖으로 새뮤엘 베켓다리가 걸린 리피강이 도심을 가로지르는 아담한 더블린을 바라보자니 학생 때 읽은 제임스 조이스의 ‘더블린 사람들’이 생각난다. 그 때 나는 이 15편의 단편들로 구성된 소설과 함께 조이스의 성장소설 ‘젊은 예술가의 초상’을 읽으면서 더블린에 대한 막연한 동경을 품었던 기억이 난다.
아일랜드 헌법이 여기서 초안됐다는 1824년에 지은 쉘번에 여장을 풀자마자 나는 안내원의 권유대로 할리웃 외신기자협회(HFPA) 독일인 동료기자 엘마와 함께 호텔 인근의 80년된 오도노휴즈 펍엘 들렀다. 평일인데도 펍은 술꾼들로 입추의 여지가 없었다. 기네스를 시키면서 바텐더에게 “늘 이렇게 초만원이냐”고 물었더니 그는 “그렇다”며 고개를 끄덕였다.
이 펍은 유명한 포크그룹 ‘더블리너즈’가 활동을 시작한 곳으로 이 날도 펍 한구석에 대여섯명의 음악인들이 앉아 맥주를 거푸 마시면서 기타와 밴조와 아코디언과 플룻을 치고 켜고 불면서 아이리시 음악을 연주했다. 손님들 들으라기보다 자기들이 더 즐기는 것 같았다. 나도 기네스와 아이리시 위스키 재미슨을 번갈아 마시면서 신나는 리듬에 발장단을 맞추다가 아이리시 음악의 특유한 멜랑콜리 기운이 감도는 서정적인 곡이 연주될 때면 감상에 푹 젖어 들었다. 기네스와 재미슨의 완벽한 화학작용 탓이려니.
아이리시들 정말로 술 좋아한다. 꼭 한국 사람들 닮았다. 누가 누구를 먼저 닮았는지는 모르겠지만 아이리시와 한국 사람은 닮은 데가 많다. 우선 문학적이다. 조이스와 베켓, 오스카 와일드와 예이츠 그리고 조지 버나드 쇼와 브람 스토커 등이 다 아이리시 문학인들이다. 그리고 두 나라는 다 피점령국의 압박과 설움을 겪어야 했다.
아이리시들은 또 감정적이요 울기를 잘 하고 술 마시면서 떠들고 노래하고 춤추다가 싸움박질 까지 하는 것도 서로 닮았다. 그래서 한국을 동양의 애란이라고도 했다. 이런 아이리시들의 특징은 존 포드가 감독하고 존 웨인과 모린 오하라가 나온 ‘아일랜드의 연풍’(The Quiet Man)에서 잘 그려졌다.
아이리시 술꾼 중에서 유명한 사람이 배우 스펜서 트레이시다. 그는 평소 술을 한꺼번에 몰아 마시고 대취하곤 했는데 그래서 영화사에서 그의 촬영현장에 구급차를 따라 보내기까지 했다는 설이 있다.  
아이리시 영어는 영국 영어보다 액센트가 훨씬 더 심해 무슨 소리를 하는지 알아듣기가 힘들 때가 많다. 그런데 그들의 말은 매우 운율적이어서 듣기가 좋다. 아이리시 노래가 아름다운 것이 이해가 간다.    
아일랜드하면 궁금한 것이 영국이 점령한 북아일랜드의 아일랜드 귀속문제다. 그래서 안내원에게 “아일랜드 사람들은 아직도 북아일랜드를 되찾기를 원하느냐”고 물었더니 그는 “그것은 아주 미묘한 문제여서 대답하기가 어렵다”고 말했다.
이번에 클로버 색깔 초록의 나라 아일랜드를 찾아간 것은 케이블 TV 쇼타임의 시리즈 ‘페니 드레드풀’의 세트방문(사진)과 출연진 인터뷰 때문이었다. 이 시리즈 제목은 19세기 영국에서 나온 선정적이요 무서운 주제를 다룬 싸구려 출판물을 말한다.
시리즈는 오스카 와일드의 ‘도리안 그레이의 초상’의 주인공과 브람 스토커의 ‘드라큘라’의 인물들 그리고 메리 쉘리의 프랑켄스타인과 그가 창조한 괴물 등과 함께 온갖 잡귀들이 나와 난리법석을 떠는 공포물이다.
우리는 프랑켄스타인의 실험실과 초상화로 사방 벽을 가득 메운 도리안 그레이의 리빙룸 그리고 해골 샹들리에로 가꿔진 저택 및 시리즈용 의상실 등을 둘러본 뒤 그레이의 접견실에서 출연진과 인터뷰를 했다. 먼저 납치당한 딸을 찾으려고 몸부림치는 탐험가 말콤 머리경 역의 영국 배우 티머시 달턴을 만났다.
그는 ‘리빙 데이라이츠’와 ‘라이센스 투 킬’ 등 2편의 007시리즈에서 제임스 본드로 나왔다. 6순의 나이에도 늠름하고 섹시했는데 유머가 많은 호인이다. 달턴에 이어 미국 배우 조시 하트넷과 귀신을 자기 몸 안에 불러들일 수 있는 수수께끼 같은 여인 바네사 아이브스 역의 프랑스 배우 에바 그린을 인터뷰했다. 그린은 유럽 여인답게 젖가슴 노출을 대수롭지 않게 여기는 배우로 산성이 있는 어둡게 아름다운 여자다. 그린은 007시리즈 ‘카지노 로열’에서 본드 걸로 나왔다.        
비는 하루 종일 쉬었다 내렸다 했다. 이러니 아이리시들이 술 안 마시고 배겨낼 재간이 없겠다. 호텔로 돌아와 몸과 마음에까지 묻은 물기를 털어내려고 바에 들렀다. 아일랜드 특산물인 우울을 선물로 받아들고 다음 목적지인 런던으로 떠났다.
                                                      <한국일보 박흥진 편집위원/ hjpark1230@gmai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