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이야기

2014년 9월 9일 화요일

‘워킹 데드’글렌 역 스티븐 연


“연기자의 길 반대했던 부모님, 이젠 든든한 후원자”


AMC-TV의 인기시리즈로 인간과 산송장들의 대결을 그린‘워킹 데드’(Walking Dead)에서 한국계 글렌 리역을 맡은 스티븐 연(30-한국명 연상엽)과의 인터뷰가 베벌리힐스의 포시즌스호텔에서 있었다. 단정힌 차림의 곱게 생긴 스티븐은 나이보다 젊어 보였는데 인터뷰 전 기자와 만나 두손으로 악수를 하면서 한국말로“반갑습니다”라고 깍듯이 인사를 했다. 스티븐은 5세 때 이민와 부모가 집에서는 한국말을 쓰도록 가르쳐 한국말을 할줄 안다고 알려줬다.  매우 겸손한 사람으로 유머를 섞어가며 지혜롭게 대답을 했는데 내면이 무척 성숙된 젊은이라고 느꼈다. 인터뷰 후 함께 사진을 찍을 때“애인이 있느냐”고 물었더니 대답을 망설이면서 고개를 좌우로 흔들며“싱글이에요”라고만 말했다. 그런데 스티븐은 시리즈에서 공연하는 영국배우로 글렌의 애인 매기역을 맡은 로렌 코핸(31)과 데이트하는 관계라는 소문이 있으나 사실여부는 확인되지 않았다. 한편 스티븐은 현 한국의 북한전략센터 대표인 강철환씨의 함남 요덕정치범 수용소에서의 10년간의 삶을 그릴 영화‘평양의 어항’에서 강씨 역을 맡을 예정으로 제작도 겸한다.

5세 때 미국 이민… 집에서는 한국말 사용
할리웃 진출 문 열어준·전세대 선배들에 감사
‘워킹 데드’는 종말적 현대 사회분위기 반영


―연기 경험이 많지 않은 당신은 시리즈(현재 제5회 시즌)에서 좋은 연기를 보여줘 칭찬이 자자한데 스스로 타고난 연기인이라고 생각하는가.
“칭찬에 감사한다. 내가 글렌 역을 맡게된 것은 정말 운수대통한 일이다. 시리즈가 계속되면서 맡은 역에도 점점 확신을 갖게 됐는데 내 연기가 진전한 것은 다 시리즈에 나오는 선배들의 지도 격려 탓이다. 나는 처음부터 공연배우들에게 ‘질문을 무더기로 해도 되겠느냐’고 물은 뒤 그들의 자문을 받았다. 따라서 좋다는 내 연기는 다 그들 탓이다.”

―이 시리즈가 당신에게 있어 훌륭한 영화배우가 될 수 있는 디딤돌이라고 생각하는가.
“모르겠다. 그랬으면 좋겠다. 이 시리즈 뒤로 보다 많은 역이 주어졌으면 좋겠다. 난 지금 내 역을 진정으로 즐기고 있다. 영화계와 연기등 많은 것을 배우고 있다. 연기외에도  감독과 각본집필등 무엇이 먼저 실현될지는 모르겠지만 그 모든 것은 지금까지 내가 터득한 것을 보다 풍성하게 해주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매기를 사랑하게 되면서 당신 역은 어떤 변화를 일으켰는가.
“글렌은 처음에는 주위 사람들로부터 인정을 받으려고 다소 무모하고 또 남을 위해 희생할 의도마저 있었지만 매기를 사랑하게 되면서 그를 위해 살아야 된다고 마음을 바꾼다. 이 사랑이 나를 활짝 개방시키고 또 키워줬다. 글렌은 사랑으로 인해 제공자요 연인이며 또 파트너요 본격적인 남자로 성장한 것이다.”

―사람과 산송장 중에 누가 더 잔인하다고 보는가.
“단연 사람이다. 그 것이 이 쇼의 매력이다. 이 시리즈는 생존에 관한 것으로 때로 혼란이 오면 사람들은 선과 악의 극단적인 두 방향으로 나아가게 된다는 것을 보여주고 있다.”         
―당신이 좋아하는 산송장영화는 무엇인가.
“난 산송장영화 팬이 아니다. 너무 끔직하다. 그러나 산송장영화를 풍자한 ‘션 오브 더 데드’는 재미 있게 봤다. 그리고 ‘28일 후’도 좋게 봤다.”

―산송장을 피할 수 있는 묘책 세가지를 말해보라.
“몸에서 악취를 풍기고 가볍게 여행을 하며 예쁜 여자를 친구로 두는 것이다.”

―글렌과 당신의 유사성과 다른 점은 무엇인가.
글렌 역의 스티븐 연과 그의 연인 매기 역의 로렌 코핸.
“그와 나는 모두 아주 평범하다는 것이 같다. 나는 고등학교와 대학교 때 체격도 크지 않고 또 아시안 아메리칸이어서 농구와 풋볼 같은 경기가 있을 때면 늘 꼴찌로 뽑혔다. 따라서 난  많은 것들을 극복해야 했고 또 나도 평균치 정도는 할 수 있다는 것을 증명하기 위해 필요 이상으로 노력해야 했다. 그런 면에서 글렌과 나는 매우 닮았다. 둘 다 오해 받고 잘못 전해지고 있다는 면에서. 다른 점이라면 글렌이 나보다 더 괴이한 복장을 한다는 것이다. 그는 탱크탑을 입는데 난 그 것을 안 입는다.”

―시리즈에서 당신이 겪은 가장 끔직한 장면은 무엇인가.
“우물 속에서 줄에 매달려 있는 나를 잡아 먹겠다고 밑에서 손을 뻗치는 물에 퉁퉁 불은 산송장 장면이다. 나는 내 밑에 어떤 산송장이 있는 줄을 모르다가 마지막 순간에 가서야 보고 진짜로 혼비백산 했었다.”

―대부분의 아시안 부모들은 자신의 자녀들이 사업가가 되거나 변호사가 되기를 원하는데 당신이 배우가 되기로 했을 때 당신 부모의 반응은 어땠는가.
“안 좋았다. 그러나 나를 밀어주었다. 난 그런 부모를 둔 행운아다. 그러나 난 자랄 때 부모 속을 많이 썩였다. 나는 나 같은 자식 두고싶지 않다. 부모에게 대어들고 끊임 없이 따졌다. 왜 이를 닦아야 하며 왜 일찍 자야 하느냐고 대어 들었다. 부모가 하라는 것과는 정반대로 나가 부모의 마음을 많이 아프게 했다. 내가 배우가 되겠다고 했을 때 나의 부모는 ‘우리가 반대하면 또 난리법석을 떨겠지’라며 허락했다. 그리고 2년간 기회를 주겠다고 말한 뒤로 즉시 나를 후원했다. 이제 그들은 좋아서 어쩔줄을 모른다.”

―할리웃이 아시안계를 위해 문을 충분히 열었다고 보는가.
“우리의 전 세대보다 우리 세대에게 보다 많은 기회가 주어질 것으로 확신한다. 내가 그 증거다. 난 나의 전 세대 선배들 보다 덜 고생하고 이런 역을 맡을 수가 있었다. 선배들은 쓰레기같은 역을 맡아야했고 그나마 많지 않았다. 선배들에게 감사를 드린다. 난 참 운이 좋아 다른 아시안계 배우들보다 쉽게 할리웃에 진출할 수 있었다. 지금 내게 있어 가장 중요한 것은 내가 아시안 아메리칸 배우라는 딱지를 떼어버리는 것이다. 내 정체성과 모습을 유지하면서 온전한 미국인으로서 실제 세상에 존재하는 역을 해내는 것이다.”

―시리즈에 아시안 산송장이 몇이나 있는지 세어 봤는가.
“굉장히 많다. 첫 번째 시즌에는 2명내지 3명이었는데 시리즈가 계속 되면서 그 수도 늘어났다. 그러나 산송장들은 다 비슷해 인종을 구별하기가 쉽지 않다. 산송장 중에는 한국계 스턴트맨이 있다.”

―팬들이 당신을 보면 어떤 반응을 하는가.
“사람들이 내가 한 일에 대해 긍정적으로 반응하는 것을 보면 기분이 좋다. 사람들이 점점 더 많이 이 쇼를 보는 이유는 단순히 무섭고 놀라운 것을 보자는 것만이 아니라 이 시리즈가 전하는 메시지가 이 시대와 코드가 맞기 때문이라고 본다. 팬들의 호응에 정말로 감사한다.”

―이 시리즈는 단순히 산송장에 관한 것이라기 보다 우리 시대의 어떤 현상을 대변하고 있는 것으로 본다. 당신의 의견은 어떤가.
“요즘 우리 사회에는 세상 종말적인 분위가 감돌고 있다. 뉴스매체의 발달로 세계 도처에서 발생하는 참극들이 마치 우리집 뒷마당에서 일어난 것처럼 즉각적으로 우리에게 전달되기 때문이다. 경제붕괴를 비롯해 온갖 불길한 뉴스들이 시도 때도 없이 다량으로 우리에게 공급돼 우리는 마치 세계종말이 곧 올것같은 분위기에서 살고 있다. 시리즈는 이런 면을 반영하고 있다. 따라서 사람들은 산송장이 판을 치는 세상에 남은 사람들이 어떻게 생존해 나아갈 수 있는지에 대해 궁금해 하면서 쇼에 매어달리는 것 같다.”

―시리즈는 애틀란타에서 찍는데 주민들의 반응은 어떤가.
“아주 좋아한다. 촬영을 할때면 사람들이 떼를 지어 와서 구경한다. 이런 인기 시리즈가 자신들의 동네에서 만들어진다는 것에 대해 자랑스럽게 여기는 것같았다.” 

―글렌이 다음에는 살아남은 사람들의 지도자가 되리라고 생각하는가.
“현재로서 글렌은 자기 자신을 찾기에 바쁘다. 글렌은 계속해 성장하고 있다. 지도자란 단순히 힘이 센 자가 아니라 남을 돌보고 염려하며 또 총명하고 지각이 있는 사람이어야 한다. 그런 면에서 글렌은 지도자로서의 자질이 있다고 본다. 그러나 당장은 아니다.”

―당신과 매기의 관계는 순탄하겠는가.
“무슨 일이 생길지 아무도 모른다. 글렌은 매기를 붙잡고 놔 주지 않을 것인데 매기가 어떨지는 두고 봐야할 것이다.”

―사랑의 치유력을 느껴봤는가. 사랑이 당신을 어떻게 변화시켰는가.
“사랑이란 모든 것이다. 나도 그 것에 내밀히 관여해본 적이 있다. 반드시 로맨틱한 사랑뿐 아니라 어떤 형태의 것이든지 사랑은 사람을 변화시킨다. 나는 개가 있는데 개를 처음 가지면서 그 것을 돌보기 위해 그때까지 살아온 것과는 완전히 다른 생활을 해야 한다는 것을 깨달았다. 삶이란 이런 관계에 근거를 둔 것이라고 본다. 나는 우리가 모두 서로 연결돼 있다고 본다. 다른 사람을 사랑한다는 것은 자신을 사랑하는 것이기도 하다. 그같은 경험을 한다는 것이 인생의 목표라고 생각한다. 글렌과 매기의 관계도 그런 것이다.”

―한국에서 애틀란타까지 온 경위를 말해달라.
“난 한국에서 출생했다. 부모는 1988년에 캐나다로 이민을 했다. 거기서 1년쯤 보내고 미시간으로 왔다. 삼촌이 살았기 때문이다. 나는 미시간에서 자라 거기서 대학을 나왔다. 그리고 나는 시카고로 이주했다. 연극에 뛰어들었다. 코미디그룹 세컨드시티와 2년 순회공연을 한 뒤 2009년 배짱 하나 믿고 LA로 왔다. 처음에는 무서웠다. 그러나 많은 사람들이 도와줬다. 그리고 내가 가장 잘한다고 생각하는 것을 밀고 나갔다. 참 운이 좋았다.”

엘리노어 리그비의 실종: 그들(The Disappearance of Eleanor Rigby: Them)

사랑의 붕괴와 후유증, 시적 언어로 고찰


카너(제임스 매카보이·왼쪽)와 엘리노어(제시카 채스테인)가 사랑에 잠겨 있다.

서로를 지극히 사랑하는 30대 젊은 부부의 비극적 사건을 겪은 뒤 무너져 내리는 관계를 진지하고 감정적으로 고찰한 아름다운 드라마로 프랑스 영화풍이다. 네드 벤슨이 각본을 쓰고 감독으로 데뷔한 이 영화는 처음 찍을 때 부부의 얘기를 각기 남편과 아내의 입장에서 본 ‘남자’(Him)와 ‘여자’(Her)의 2편으로 만들었으나 이번에 개봉되는 영화는 이 둘을 합한 것이다. 그래서 제목에 ‘그들’이 붙었다. ‘남자/여자’를 합한 201분짜리는 10월10일에 개봉된다.
문학적이요 고상한 영화로 시적이요 철학적인 대사가 때로 과장된 것처럼 느껴지기도 하나 듣기 좋다, “비극은 다른 나라이다. 우리는 그 나라 원주민들과의 대화의 방법을 모른다”라든지 “나는 당신을 만나기 전까진 내가 누구인지를 전연 몰랐다”라는 말들은 아름답다.
붕괴되는 부부관계 외에도 사랑의 의미와 자식과 부모의 관계 그리고 비극의 후유증에 각기 다르게 대처하면서 사랑을 재연결시키고 아울러 자신들의 삶에 다시 불을 밝히려는 부부의 안간힘을 로맨틱하면서도 시적 사실주의적으로 그렸다. 
영화는 처음에 뉴욕에 사는 젊은 부부 카너(제임스 매카보이)와 엘리노어(제시카 채스테인)의 사랑의 유희로 시작된다. 이 때 카너가 엘리노어에게 “내 몸 속의 심장은 하나이니 내게 자비를 베푸소서”하고 사랑을 고백한다. 그런데 엘리노어라는 이름은 엘리노어의 대학 교수인 아버지 줄리안(윌리엄 허트)이 비틀즈의 노래제목을 따서 붙인 것이다.
이어 장면은 엘리노어가 뉴욕의 다리에서 강물로 뛰어내리는 것으로 변전하면서 우리는 서서히 엘리노어와 카너의 관계 붕괴의 원인을 알게 된다. 영화는 엘리노어와 카너의 입장에서 얘기되면서 한쪽의 얘기를 할 때면 다른 쪽은 화면에서 사라진다. 그런데 제목의 실종은 상징적인 것이다.
그리고 엘리노어는 코네티컷주에 있는 아버지와 어머니 메리(이자벨 위페르)의 집으로 숨어든다. 메리는 프랑스 여자로 줄담배에 포도주를 물마시듯 하는데 전직 바이얼리니스트다. 엘리노어와 그의 부모 간의 관계와 대화가 솔직하고 다정하게 묘사되는데 영화는 가족의 세대 간의 초상화와 함께 이들 각자 자신들의 삶에 대한 인식을 차분히 다루고 있다.
삶을 다시 추스르려고 애쓰는 엘리노어는 대학에서 릴리언 교수(바이올라 데이비스)가 가르치는 ‘아이덴티티 이론’을 청강하면서 릴리언과 우정을 맺는다. 그리고 파리에서 공부하다 중단한 인류학을 계속하기 위해 파리로 떠날 생각을 한다.
한편 카너는 친구인 스튜어트(빌 헤이더)를 셰프로 고용, 식당을 차리고 비극으로부터 떠나 앞으로 나아가려고 노력한다. 그리고 엘리노어를 찾아내 뒤쫓아 가나 둘은 서로를 지극히 사랑하면서도 무너지기 시작한 관계가 비극의 무게 때문에 쉽게 재 연결되지를 않는다.
감동적이고 보기 좋은 부분은 카너와 사업에서는 성공한 식당 주인이나 인생에선 실패한 카너의 아버지 스펜서(키아란 힌즈)와의 관계와 대화. 조용하고 깊이 있게 부자관계와 삶의 문제들을 얘기한다.
사랑하나 서로 멀어진 부부의 재연결 가능성을 가슴 깊숙이 파고들도록 흡인력 있게 그린 아담하고 엄숙한 영화로 강렬한 눈동자를 지닌 채스테인의 연약한 듯 하면서도 다부지고 감정 풍만한 연기와 매카보이의 꾸밈없는 순진한 연기가 좋은 조화를 이루면서 작품에 무게를 준다. 뉴욕현지 촬영과 음악도 훌륭하다. 성인용. Weinstein. 일부지역. 12일 개봉.   ★★★★(5개 만점)  <한국일보 편집위원 / hjpark1230@gmail.com>



선셋대로(Sunset Blvd.)

할리웃의 실상과 허상 고발 불후의 명화


노마(오른쪽)가 조에게 왕년의 자기 영화를 보여주면서 뽐내고 있다.


빌리 와일더가 감독한 1950년작 불후의 명화로 환상과 미혹 위에 세워진 할리웃의 실상과 허상을 통렬하게 고발하고 또 그것들을 음침하게 웃어 제친 블랙 코미디다. ‘
할리웃의 과거요 현재며 미래’라고 불리는 영화는 로맨틱하고 우아했던 1920년대 무성영화 시대를 그리워하는 노스탤지어이기도 하다.
한물간 왕년의 무성영화 시대 수퍼스타였던 노마 데즈몬드(글로리아 스완슨)가 쏜 총에 맞고 선셋대로에 있는 노마의 저택 풀에 눈을 뜨고 엎드린 채 떠오른 안 팔리는 각본가 조(윌리엄 홀든)의 회상으로 시작된다.
조는 자기 자동차를 회수하려는 리포맨들을 피해 선셋대로로 도망가다가 노마의 집에 숨어든 것을 계기로 자신이 아직도 수퍼스타라는 망상에 빠진 노마의 기둥서방으로 전락한다. 그리고 자기 삶에 넌더리가 난 조가 노마를 떠나다가 총에 맞아 죽은 것이다.
전율스럽도록 뛰어난 것은 노마의 광기를 처절하도록 아름답게 표현해낸 스완슨의 연기. 완전히 돌아버린 노마가 자기 집 계단을 내려오면서 플래시를 터뜨리는 카메라맨들을 영화촬영 팀으로 오인하고 “올 라잇, 드밀씨, 나 클로스업할 준비 됐어요”라고 말하는 라스트신은 영화사에 길이 남는 것이다.
“나는 커. 작아진 것은 영화들이야”를 비롯해 기차게 멋진 대사가 가득한 영화로 무성영화 시대 빅 스타를 비롯해 왕년의 유명 영화와 연예인들이 실명으로 나온다. 명 코미디언 버스터 키튼과 유명 가십 칼럼니스트 헤다 하퍼 그리고 명감독 세실 B. 드밀 및 명감독이자 배우였던 에릭 본 스트로하임 등이 나온다.      
와일더의 경험과 성격과 지성 그리고 독기 서린 위트와 유머가 가득 찬 영화로 작품 분위기가 너무 어두워 개봉 당시에는 대중의 큰 인기를 얻지 못했었다.
인기보다는 관객과 비평가와 영화사 사장들에게 경악과 충격을 안겨준 작품으로 한 영화사 사장은 와일더를 “자기에게 밥 주는 주인의 손을 무는 개”라고 비난했었다. 감독상 등 11개 부문에서 오스카상 후보에 올랐으나 각본상과 음악상 등 3개만 받았다.
12일 하오 7시30분에 해머뮤지엄 내 빌리 와일더 극장(10899 윌셔)에서 상영한다. 꼭 보시도록 권한다.  <한국일보 편집위원 / hjpark1230@gmail.com>

빅 픽처:히치콕!



할리웃보울 안으로 들어서니 정면에 걸린 대형 스크린에 부루퉁한 입술에 찐빵같은 뺨을한 히치콕의 커다란 서양호박 모양의 얼굴 실루엣이 눈에 익다. 이 실루엣은 현재도 안테나TV에서 재방영하는 히치콕의 30분짜리 미스터리 서스펜스 앤솔로지 ‘알프렛 히치콕 제공’의 처음에 나오는 것으로 이때 사용된 음악이 구노의 뒤뚱거리는 ‘꼭둑각시의 장송행진곡’이다.
지난 일요일 서스펜스의 거장 알프렛 히치콕의 영화와 함께 음악이 연주되는 ‘빅 픽처:히치콕!’을 들으러 보울에 갔다. 묵직한 음성의 “하우 두 유 두. 긴장을 풀고 느긋이 앉아 공포가 찾아올 때까지 즐기시오”라는 히치콕의 인사말이 끝나고 스크린에 ‘북북서로 진로를 돌려라’ ‘마니’ ‘새들’ ‘사이코’및 ‘나는 비밀을 알고 있다’ 등의 장면들이 몽타주로 쏜살같이 지나가면서 데이빗 뉴만이 지휘하는 할리웃보울 오케스트라가 ‘꼭둑각시의 장송행진곡’과 함께 이들 영화의 음악을 박력있게 연주했다.
데이빗 뉴만은 ‘호파’와 ‘아이스 에이지’ 등 100여편의 영화음악 작곡자이자 지휘자. 그의 아버지 알프렛은 폭스사의 영화 처음에 나오는 팡파레를 작곡한사람으로 ‘모정’ 등으로 오스카상을 무려 9번이나 탔다. 이날 알프렛이 작곡한 ‘해외 특파원’의 음악도 연주됐다.
연주는 ‘북북서로 진로를 돌려라’에 나온 에바 마리 세인트(사진)의 해설과 함께 진행됐다. 첫 번에 연주된 음악은 러시아태생으로 ‘하이 눈’과 ‘O.K.목장의 결투’ 등의 음악을 지은 디미트리 티옴킨의 ‘기차 안의 낯선 사람들’. 음악이 극중 주인공의 하나로 낯선 사람에게 교차살인을 제의하는 로버트 워커처럼 교활하고 음모적이다.
티옴킨은 이날 프로그램에 포함된 입체영화 ‘다이얼 M을 돌려라’의 음악도 작곡했는데 마리 세인트는 히치콕은 입체영화를 성가신 아이들 장난같은 것으로 여겼다고 들려줬다.
히치콕은 영국에서 무성영화로 감독생활을 시작했는데 첫곡에 이어 그의 대표적 무성영화 ‘하숙생’과 함께 스파이 스릴러 ‘39계단’ 및 히치콕이 즐겨 다룬 도망가는 남자의 얘기인 ‘사보퇴르’의 음악이 차례로 연주됐다.
히치콕이 1939년 도미해 처음 만든 영화가 로렌스 올리비에와 조운 폰테인이 나온 으스스한 분위기의 ‘레베카’다. 이날 연주된 ‘레베카’의 음악은 ‘선셋대로’와 ‘젊은이의 양지’로 오스카상을 탄 프란츠 왝스맨의 것으로 그는 ‘레베카’ 외에도 ‘의혹’과 ‘이창’ 등 히치콕의 영화음악을 작곡했다.    
히치콕과 영화사에 길이 남는 감독과 작곡가의 돈독한 관계를 유지하면서 모두 7편의 히치콕의 영화음악을 작곡한 버나드 허만의 작품중에서  가장 유명한 것이 ‘사이코’다. 음침하기 짝이 없는 음악으로 허만은 ‘흑백영화에 맞는 흑백음악’이라고 말했다. 음악이 매우 검고 살의가 있어 여름밤 기운마저 소슬하게 느껴졌다.
휴게시간 후 첫 번째로 연주된 음악이 역시 허만이 작곡한 ‘환상’이다. 제임스 스튜어트와 킴 노백이 나오는 샌프란시스코를 무대로한 집념적인 사랑과 고독 그리고 살인과 죽음에 관한 명작으로 음악이 귀기가 감돌면서도 로맨틱하고 또 집요하다.
허만은 이날 연주된 ‘북북서로 진로를 돌려라’의 음악도 작곡했다. 히치콕 특유의 엉뚱한 사람 잡는 경쾌한 스릴러로 음악이 신경을 위협하면서도 재치있고 또 힘차다. ‘환상’과  ‘북북서로 진로를 돌려라’의 음악은 독립음악으로서도 훌륭하다. 이 영화들에 허만의 음악이 없었더라면 우리의 영화에 대한 반응도 달라졌을 것이다.      
히치콕영화의 음악은 여러번 오스카상후보에 올랐지만 막상 상을 탄 것은 헝가리태생으로 ‘벤-허’의 음악을 작곡한 미클로스 로자의 ‘망각의 여로’ 하나뿐이다. 둘 다 정신병치료소의 의사로 어두운 과거를 지닌 그레고리 펙과 그를 사랑하는 잉그릿 버그만의 마음을 음으로 묘사한 ‘사랑의 주제’가 격정적으로 가슴을 엄습한다. 마치 집단자살이라도 하듯이 떨어지는 가을낙엽들처럼 자포자기적으로 로맨틱하다.
이어 프렌치 리비에라에 은퇴한 심야 보석전문털이 케리 그랜트와 미국인 사교계여인 그레이스 켈리의 유희하듯 하는 사랑의 제스처와 대사로 유명한 사뿐한 스릴러 ‘나는 결백하다’의 밤의 불꽃놀이 장면이 스크린을 장식했다. 이 불꽃장면은 남녀간 섹스의 절정을 상징하는 것으로 음악도 영화에 잘 맞게 장난끼가 있으면서도 감각적이다.
마지막으로 ‘사이코’에서 샤워하는 재넷 리를 앤소니 퍼킨스가 식칼로 난자 살해할 때 나오는  사람 잡는 충격적인 음악이 연주됐다. 순전히 현으로만 연주되는데 바이얼린이 떼를 지어 목청을 다해 비명을 지르면 베이스가 음험하게 맞장구를 차면서 듣는 사람의 전감관을 유린한다. 천재적 영상처리와 마법적 음이 절묘한 조화를 이룬 장면이다.  
여름밤의 대기 속에 사이트와 사운드를 포도주에 타서 마시며 즐긴 뒤 히치콕의 “굿 나잇” 배웅을 받으며 보울을 나섰다.  <한국일보 편집위원 / hjpark1230@gmai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