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이야기

2014년 10월 27일 월요일

‘이퀄라이저’ 덴젤 워싱턴



“사람들은 모두 신이 준 재능이 따로 있어”


현재 상영 중인 보스턴을 무대로 한 범죄 액션 스릴러‘이퀄라이저’(The Equalizer)에서 10대의 러시안 창녀를 악의 구렁텅이에서 구하기 위해 러시안 마피아들과 싸우는 은퇴한 CIA 킬러 로버트 맥콜로 나온 덴젤 워싱턴(59)과의 인터뷰가 9월 토론토영화제 기간에 트럼프 인터내셔널 호텔 앤 타워에서 있었다. 이 영화는 워싱턴이 오스카 주연상을 탄‘트레이닝 데이’를 감독한 안트완 후콰 감독이 다시 워싱턴과 손을 잡고 만들었다. 검은 바지에 짧은 검은 셔츠를 입은 신체 건강한 워싱턴은 원기 왕성했는데 마치 연기를 하듯이 제스처와 얼굴 표정 그리고 인상을 요란하게 써가면서 질문에 대답했다. 인터뷰 후 기자와 사진을 찍을 때 기자가“나 한국사람”이라고 자신을 소개하자 워싱턴은 크게 미소를 지으면서“나 한국에 가야지”라고 말했다.                                                   

―당신의 과거를 돌아볼 때 특별히 기억나는 것은 무엇인가.
“1983년 잠시 TV 출연을 중단하고 ‘크라이 프리덤’을 찍기 위해 런던에서 얼마 전 작고한 리처드 아텐보로 감독을 만났던 일이다. 그는 내게 ‘난 정말로 이 역을 위해 아프리카인을 찾았다’고 말했다. 우리는 아프리카로 갔는데 비행기 문을 열자 아프리카의 냄새가 났던 것을 기억한다. ‘아 나는 마침내 아프리카에 왔구나’하고 감격했다. 그 질문에 대한 답은 나는 과거를 돌아보지 않는다는 것이다. 난 단지 영화를 만들 뿐으로 언제나 나의 가장 좋은 영화는 다음 영화라고 말한다.” 

―당신이 한 일 중 가장 자랑스러운 것은 무엇인가.
“4명의 자식들이다. 그리고 리처드 아텐보로, 조나산 데미, 토니 스캇, 에드 즈윅 및 안트완 후콰와 함께 일한 것이다.”

―이 영화는 개인이 법을 무시하고 자기 마음대로 정의를 구현하는데 그것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나.
“그건 위험한 일로 그래선 안 되겠지만 이 영화는 개인적인 복수영화는 아니다. 나는 러시안 창녀를 러시안 마피아로부터 구해 주려고 현찰을 들고 마피아를 찾아갔다가 그들이 말을 안 듣기에 내가 가진 기술을 사용했을 뿐이다.” 

―요즘 젊은 흑인 배우들의 활약이 큰데 할리웃이 과거보다 흑백의 구분을 덜 한다고 보나.
“모르겠다. 그 사람들에게 물어보라. 과거보다는 나아졌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난 그들의 모범이 아니다. 내 전에 시드니(포이티에)가 있었고 시드니 전에는 1939년 오스카상(‘바람과 함께 사라지다’)을 탄 해티 맥대니얼이 있었다. 난 그저 그들의 연장선의 일부일 뿐이다.”

―당신은 열심히 일하나 아니면 역을 쉽게 얻는가.
“피부 색깔이 무엇이든지 매우 열심히 일해야 한다. 내가 ‘말콤 X’로 오스카상 후보에 올랐을 때 알 파치노가 상을 타자 사람들이 인종차별이라고 말들 하더라. 그래서 난 ‘알 파치노는 오스카상 후보에 8번이나 오르고도 상을 못 탔는데 난 두 번밖에 후보에 오르고도 벌써 탔다(조연상)’라고 말해 주었다. 모든 것을 인종차별이라고 핑계대긴 쉽다. 물론 그것이 완전히 없어진 것은 아니나 할리웃은 어디까지나 사업장소다. 얼굴 색깔이 무엇이건 간에 일을 잘하지 못하면 기회가 줄어들게 마련이다. 소위 쇼 비즈니스라는 것이다. 아니 비즈니스 쇼라고 해야겠네.”

―안트완 후콰와 다시 일하게 된 이유는 무엇인가.
“먼저 각본을 읽고 출연을 결심했다. 그리고 후콰와 만든 ‘트레이닝 데이’가 크게 성공했기 때문에 그에게 연출을 부탁했다. 나는 늘 각본의 처음 4페이지 정도를 읽으면 영화가 좋을지 나쁠지를 감지하곤 한다.”
은퇴했던 킬러 로버트(덴젤 워싱턴)는 러시안 창녀(클로에 그레이스 모리츠)를 
구하기 위해 다시 총을 집어든다.

―영화가 속편을 예고하며 끝나는데 속편을 만들 것인지.
“우린 모두 사람들이 보고 즐길 영화를 만들었을 뿐이다. 속편은 관객의 반응에 달렸다. 흥행이 어떤지 두고 봐야겠다.”(제작사 소니가 속편을 만들 준비를 하고 있다.)

―당신은 영화에서 대형 건축자재상에서 일하면서 거기서 파는 온갖 도구를 이용해 러시아 마피아를 살해하는데 당신이 실제로 마지막으로 건축자재상에 가서 산 물건은 무엇인가.
“수퍼글루를 샀다. 이것으로는 사람의 눈을 붙여놓을 수가 있다. 나는 안트완과 해군 특공대 출신의 스턴트맨과 함께 자재상의 물건 중 무엇이 무기로 쓰여질 수 있는가를 연구했다. 핀, 유리, 모래, 전화와 시계 등이 모두 무기로 쓰여질 수가 있다.”

―당신이 다음 제임스 본드라는 설이 있는데.
“인터넷의 힘이 크네. 내가 인터넷으로 무엇이든지 물어 보세요 라는 인터뷰를 했을 때 누군가 그런 말을 꺼낸 것이 삽시간에 전 세계로 퍼져 나간 것이다. 내가 본드 역을 위해 로비를 한다고.”

―당신에 대한 가장 엉뚱한 가십은 무엇이었나.
“내가 죽었다는 것이다. 내가 스키 타다 죽었데. 난 스키는 물론이요 스노보드도 탈 줄 모른다. 그 후 사람들이 내게 전화를 걸어 ‘덴젤 진짜 당신 맞아’라고 묻더라. 온갖 풍문이 나도는데 별로 창의성들이 없다.”

―평소 어디 가길 좋아하는가.
“수퍼마켓이다. 사람들이 날 보고 ‘당신 여기서 뭘 하세요’라고 묻곤 한다. 목록대로 도마도니 물건을 사는 것을 즐긴다. 

―부인 폴레타의 근황은 어떤가.
“아내는 원래 가수였으나 아이들 키우느라 노래를 포기했다. 그러나 이젠 아이들이 다 커서   다시 가수로 돌아갈 것이다. 곧 토론토에서 노래 부른다. 그리고 시카고와 노스캐롤라이나와 애틀랜타를 거쳐 유럽에서도 공연할 예정이다. 우린 뉴욕에도 집이 있는데 아내가 거기서 노래를 하는 바람에 가끔 음식이 떨어질 때가 있다. 그러면 내가 수퍼엘 가곤 한다.”

―이 세상이 영화 속의 당신과 같은 사람을 필요로 하다고 보는가.
“매 개인이 다른 한 사람을 돌봐준다면 나 같은 사람이 필요 없을 것이다. 그러나 어떻게 보면 세상 사람들은 모두 로버트라고도 할 수가 있다. 사람들은 로버트가 불의를 처단하는 것을 보면서 그와 관계를 맺으면서 그를 응원하게 된다.”

―영화 출연을 잠시 쉬려고 하는지.
“올해는 브로드웨이에서 토니상을 탄 ‘펜시즈’라는 연극에 나와 영화를 안 찍었다. 2005년 후 ‘줄리어스 시저’와 ‘펜시즈’와 ‘태양 속의 건포도’ 등 3편에 나왔다. 그래서 난 연극과 영화에 나오고 또 감독도 하느라 바쁘다. 난 인생을 즐기고 있다. 서두를 것 없다.” 

―로버트는 매우 깔끔하고 단정한데 당신도 그런가. 그리고 당신에게 있어 자제라는 것은 얼마나 중요한가.
“난 단정하지도 않고 자제에 대해서도 생각하지 않는다. 나로 말하자면 조직된 혼란이다. 내 팬티가 마룻바닥에 있어도 내 아내처럼 신경 안 쓴다.”

―어제 영화 시사회 극장 앞에 모인 사람들이 “덴젤, 덴젤”하며 당신 이름을 부르짖는 것을 봤는데 사람들의 당신에 대한 관심에 압박감이라도 느끼나.
“1980년대 초에 150석짜리 극장에서 연극 ‘말콤 X’에 나왔을 때 일이다. 내 연기가 호평을 받으면서 1,000명의 관객이 표를 사려고 줄을 섰다. 난 그 때 극장 건너편의 공원 벤치에 앉아 쉬고 있으면서 ‘야 내 인생에 무엇이 변하고 있구나’하고 느꼈다. 성공하면 주위 세상이 당신을 포위하고 들어와 샤핑하러도 잘 못 간다. 때론 그런 경우가 싫지만 그러나 사랑을 받는다는 것은 좋은 일이다. 그것은 내가 일을 잘하고 있다는 것을 뜻하는 것이니까. 난 내가 수퍼스타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사람들은 다 신이 준 재능이 있다. 어쩌다 내게 명성이 따랐을 뿐이다. 사람들이 날 보고 환호하는 것이 토마토를 집어던지는 것보다 훨씬 낫다.”
―내일 모레가 60인 당신이 어떻게 그렇게 젊어 보이나.
“좋은 유전인자 탓이다. 내 어머니는 89세인데 아직 정정하시고 내 딸은 26세인데 13세 같고 난 30세 때도 술을 사려면 신분증을 요구했다. 그러나 나이가 먹을수록 안으로 곪는 것 같다. 고통이 과거보다 훨씬 오래 남는다.”   <한국일보  편집위원 / hjpark1230@gmail.com>

불가항력(Force Majeure)

토머스(왼쪽)가 아내와 아이들을 내팽개치고 혼자 눈사태를 피해 달아나고 있다.

  위기 순간 혼자만 도망친 아빠, 당신 가족은?

제목 그대로 우리가 마음대로 다룰 수 없는 엄청나게 큰 사건이 일어나고 이 사건을 경험한 사람들에게 미치는 치명적인 후유증과 영향을 날카롭고 내밀하게 해부한 심리 드라마이자 블랙 코미디로 스웨덴의 내년도 오스카 외국어 영화상 후보 출품작이다.
우리는 남들이 보통 때 보는 것처럼 그렇게 결코 최선의 사람들만은 아니다 라는 명제와 함께 우리가 내면에 가지고 있는 최악의 모습과 전연 기대치 않았던 측면을 도전적으로 노출시킨 작품인데 우롱하다시피 인간의 생존본능을 천착하고 있다.
눈사태를 만난 남자가 자기 가족을 구하는 대신 순간적이요 본능적으로 자기만 살겠다고 “걸음아 나 살려라”하고 도망간 사실이 가족에게 미치는 다시는 복원할 수 없는 정신적이요 감정적인 관계의 균열을 고약할 정도로 집요하게 파고들고 있다.
전체적으로 느린 템포와 움직이지 않는 롱테이크 위주의 카메라 그리고 비발디의 매섭게 몰아치는 ‘사계’의 음악과 기하학적인 화면 구성 및 좋은 연기 등이 절대적 조화를 이룬 훌륭한 영화다. 밤의 인공 눈사태를 만드는 폭음소리와 함께 전체적으로 불안한 분위기가 거의 으스스한 공포영화 분위기마저 조성한다.
스웨덴의 부르주아 층인 직장인 토머스(요하네스 바 쿤케)와 그의 현모양처인 에바(리사 로벤 콩실) 그리고 이들의 두 어린 남매 하리(빈센트 베터그렌)와 베라(클라라 베터그렌)는 5일간(영화는 마치 5막의 연극 식으로 진행된다) 알프스의 스키장으로 휴가를 온다. 토머스의 가족은 모범 가족의 모델이다.
스키장에 도착한 이틀째 되는 날 토머스 가족은 식당의 야외 테라스에서 점심을 먹는데 갑자기 눈사태가 나면서 눈이 식당을 덮칠 것처럼 달려 내려온다. 이에 에바는 두 아이를 보호하려는 행동을 취한 반면 토머스는 자기 아이폰과 스키장갑을 들고 식탁에서 달아난다.
그러나 다행히 눈사태는 식당 앞에서 멈춰 인명피해는 없는데 뒤 늦게 다시 식탁으로 돌아온 토머스를 대하는 나머지 가족의 눈길과 태도가 매우 차갑고 경멸적이다. 여기서부터 토머스의 도주를 놓고 토머스와 에바는 계속해 말다툼을 하고 대립하게 되고 그동안 유지돼 오던 가족 간의 우애관계는 치명상을 입게 된다.
그런데 문제는 토머스가 자기 행동의 심각성을 제대로 깨닫고 있지 못하고 있다는 점이다. 설사 그가 자기 잘못을 알고 있다고 해도 그는 이를 대수롭지 않은 하나의 작은 실수로 취급하려고 든다.
남편을 사랑하는 에바는 어떻게 해서든지 남편을 이해하려고 애를 쓰나 별무효과. 그리고 토머스와 에바는 각기 그 사건을 각자의 견해로 보자는 관계 땜질용 합의까지 하나 에바는 남편이 이기적인 괴물이라는 생각에 분노와 치욕과 슬픔에서 빠져 나오질 못한다.    
이런 두 사람의 관계와 느낌과 생각은 토머스 부부가 자기들 방으로 초대한 스키장에서 만난 한 쌍의 즉석 애인과의 저녁식사 장면에서 거의 잔인토록 코믹하게 까밝혀진다. 잘 나가던 식사 중에 갑자기 에바가 남편의 비겁한 행동을 까발린다. 이에 처음에는 아내의 말을 웃어넘기려던 토머스는 급기야는 자기는 도망간 것이 아니라고 대어든다. 여기서 우리는 토머스와 에바의 진정한 화해는 물 건너갔다는 것을 깨닫게 된다.
이어 토머스의 노르웨이 친구 마츠와 그의 20세난 애인 화니가 토머스 부부를 방문하는데 에바의 얘기를 들은 화니는 마츠에게 당신이라면 어떻게 행동했겠느냐고 따지면서 둘 간에 싸움질이 일어난다. 과연 당신 같으면 어떻게 했겠습니까. 영화가 다소 긴데 마지막의 사족 같은 토머스네를 비롯한 관광객들의 귀가장면은 잘랐어야 했다. 루벤 오스트룬드 감독(공동 각본). 성인용. Magnolia. 일부 지역. 31일 개봉. ★★★★(5개 만점)  <한국일보  편집위원 / hjpark1230@gmail.com>

잔 윅(John Wick)

복수의 화신 킬러 존(키아누 리브스)이 총을 난사하고 있다.

‘돌아온 킬러’ 키아누 리브스의 유혈낭자 복수극


유혈폭력이 난무하고 액션이 달아오른 프라이팬 위에서 콩 튀듯 하는 킬러영화로 마치 살아 있는 그래픽 노블이나 비디오 게임 또는 만화를 보는 것 같다. 눈알이 돌아가는 스타일 좋고 잔인한 액션 속에 셀 수 없을 정도로 많은 악인들이 죽어 다소 터무니가 없지만 액션 팬들에겐 그야 말로 연말 선물 같은 영화다.
요즘 많이 나오는 은퇴한 킬러가 어쩔 수 없이 다시 총칼을 집어 드는 얘기로 키아누 리브스(50세라곤 믿어지지 않을 만큼 젊어 보인다)가 착 가라앉은 연기를 하는데 그는 온갖 무기와 육신의 모든 부분을 동원해 마치 춤을 추듯이 아름다운 동작으로 사람을 죽인다.
지하세계에서 가장 두려운 킬러인 존 윅(리브스)은 헬렌(브리젯 모내핸)을 사랑해 살인에서 손을 씻고 헬렌과 결혼해 조용한 삶을 즐긴다. 그러나 헬렌이 병으로 죽고 존은 헬렌이 죽기 전에 자기에게 보낸 선물인 애견과 단 둘이 고독과 슬픔을 달랜다.
그런데 브룩클린을 말아먹는 러시안 마피아(요즘 액션영화의 나쁜 놈들은 다 러시안이다) 두목 비고(미카엘 니크비스트)의 철딱서니 없는 아들 이오세프(알피 알렌)가 두 명의 졸개와 함께 존의 스포츠카를 탈취하고 애견을 죽이면서 존은 이를 갈면서 복수에 나선다.
영화에서 액션 외에 볼만한 것은 약간 환상적일 정도로 이색적인 범죄세계의 모습. 존은 킬러들만 묵는 호텔에 짐을 풀고 살인에 나서는데 이 호텔과 함께 킬러 전문의 나이트클럽을 디자인한 세트가 스타일 좋다. 그리고 윈스턴(이안 맥셰인)이 일종의 대부로 군림하는 이 킬러들의 세계에는 반드시 지켜야 하는 규칙이 있어 이를 어기면 잔인한 보복이 따른다.
존이 이오세프를 죽이려고 집요하게 그를 추적하면서 러시안 마피아들이 수 없이 황천으로 가는데 비고는 섹시한 여자 킬러 퍼킨스(아드리앤 팔렉키)를 비롯해 수십명의 졸개들을 풀어 존을 처치하려고 하나 상대가 안 된다. 존이 죽인 사체들은 사체처리 업자가 말끔히 청소해 준다. 
간단한 내용의 영화로 영화의 후반부는 완전히 살육의 액션으로 이어진다. 이 액션이 장관인데 무기와 인체를 총 동원한 유혈의 발레이자 치명적으로 날렵한 쿵푸액션 그리고 스턴트가 눈부시다. 윌렘 다포가 존의 옛 동지 킬러로 나온다. 이것이 히트하면 속편이 나올 가능성이 있다. 기자가 얼마 전에 리브스를 만나 “영화를 보면서 사체를 세기 시작하다 포기했는데 도대체 몇 명이나 죽였느냐”고 물었다. 대답은 “70여명은 족히 된다.” 데이빗 레이치 감독. R. Lionsgate. 전지역. ★★★(5개 만점)   <한국일보  편집위원 / hjpark1230@gmail.com>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



내가 “스칼렛 오하라는 미인은 아니었다”로 시작해 “결국 내일은 또 다른 날이니까”로 끝나는 마가렛 미첼의 영문 페이퍼백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Gone with the Wind)를 읽은 것은 서울의 한국일보 사회부 기자 시절이었다.      
방대하면서도 거센 물결처럼 굽이치는 흐름과 개성이 뚜렷한 인물들 그리고 미 남부를 불사르는 전쟁의 화염 속에 타오르는 뜨거운 사랑과 갈등 등 극적인 얘기를 흥미진진하게 이끌어가는 글 솜씨에 휘말려들어 단숨에 읽어 내려갔던 기억이 난다. 미첼이 35세 때 쓴 이 책은 그의 유일한 글로 퓰리처상을 받았는데 현재도 매년 전 세계서 5만여권이 팔리는 성경 바로 다음의 베스트셀러다.
나는 물론 소설을 비탕으로 만들어 1939년에 나온 영화는 책보다 훨씬 먼저 봤는데 지금까지 모두 열댓 번은 봤을 것이다. 미국 영화는 단 2편뿐으로 하나는 ‘GWTW’요 다른 하나는 나머지 모든 다른 영화들이라는 말이 있다. ’GWTW‘의 뛰어난 장엄성을 가리키는 말이다.  
이 영화는 빅터 플레밍이 감독했지만 진짜 창조자는 제작자 데이빗 O. 셀즈닉이다. 그의 원 맨 쇼와도 같은 것으로 셀즈닉은 엑스트라에서 감독과 주연배우들에 이르기까지 총 1만2,000여명의 인원을 마치 신이 인간을 부리듯 일사불란하게 조종, 위대한 작품을 완성했다. 작품과 감독 및 여우주연상(비비언 리)과 조연상(스칼렛의 하녀 매미 역의 해티 맥대니얼이 흑인 사상 최초로 오스카 수상) 그리고 각본과 촬영 등 총 10개의 오스카상을 탔다.
호걸형의 사업가 렛 버틀러(클라크 게이블)와 농장 ‘트웰브 옥스’의 주인으로 골샌님형의 이상주의자 애슐리 윌크스(레즐리 하워드) 그리고 애슐리의 인간 천사와도 같은 아내 멜라니(올리비아 디 해빌랜드-현재 98세로 파리 거주) 및 목화농장 타라의 주인 제럴드 오하라(토머스 미첼)의 딸로 애슐리를 짝사랑하는 요부형인 스칼렛(비비언 리)이 주인공들.
그러나 ‘GWTW’는 어디까지나 실로 당찬 여인 스칼렛의 얘기다. 스칼렛이야말로 시대를 앞서 가는 여성으로 철딱서니가 없는 것 같으면서도 생존의 교본과도 같은 여자다. 고집불통에 오만하고 독선적이며 불같은 정열적인 성질을 지닌 여자로 어떤 난관과 패배에도 다시 발딱 일어서는 오뚝이와도 같다.
참 사랑이 어디에 있는지도 모르고 애슐리에게 집념하는 자기를 버리고 떠나가는 남편 렛을 향해 스칼렛은 처음에는 “난 어떻게 살란 말이에요”라며 징징 울어댄다. 이에 렛은 영화사에 길이 남는 한 마디 “솔직히 말해 이 사람아, 난 당신 일에 전연 관심 없어”(Frankly, my dear, I don’t give a damn)를 남기고 스칼렛에게 등을 돌린다.
이렇게 렛으로부터 치욕적인 한방을 얻어맞고도 스칼렛은 결코 굴하지 않는다. 스칼렛은 “전부 다 타라에서 내일 생각할 거야. 그땐 견딜 수 있을 거야. 내일 그를 되찾을 어떤 방안을 생각해야지. 결국 내일은 또 다른 날이니까”라며 앙칼지게 다짐한다. 가공스럽기까지 한 억척스런 낙관론이다. 그런데 당시에는 영화에 ‘댐’이라는 말을 쓸 수 없어 셀즈닉이 검열기관에 500달러의 벌금을 내고 이 단어를 썼고 가톨릭으로부터 금지딱지를 받았다.
영화의 무대는 조지아주 애틀랜타이나 전부 LA 인근 컬버시티에 있던 셀즈닉 스튜디오(이름만 바뀐채 현재도 있다)에서 찍었다. 나는 1987년 12월 이 영화를 취재하기 위해 애틀랜타를 방문, 도착하자마자 관광안내소에 들렀었다. 여직원이 나를 보고 대뜸 “타라가 어디에 있느냐고 물으러 왔지요”라며 웃었다. 이곳을 찾는 관광객들은 모두 제일 먼저 타라의 소재지를 묻는다는 것.
그 때 애틀랜타 도서관의 ‘마가렛 미첼 기념관’을 둘러봤다. 4인치11피트의 단구에 단아한  모습의 미첼의 초상화를 보면서 멜라니가 연상됐다. 어떻게 저렇게 조그마한 여자가 밀물치 듯 힘차고 거대하며 또 정열적인 글을 쓸 수가 있었을까 하고 의아해 했었다. 그런데 미첼은 매우 내성적이요 수줍음을 타는 성격의 소유자였다고 한다.  
인플레를 감안하면 현재의 액수로 국내 총수입 16억달러라는 할리웃 사상 최고의 흥행수입을 보유하고 있는 ‘GWTW’의 스칼렛 역에는 당대 모두 내로라하는 32명의 할리웃 스타들이 참가했었다.
캐서린 헵번, 수전 헤이워드, 폴렛 고다드, 진 아서 및 베티 데이비스 등이 스크린 테스트를 했지만 역은 비교적 신인인 비비언 리에게 돌아갔다. 스칼렛이야 말로 표독스러울 정도로 아름답고 개성 있는 얼굴과 작지만 탄력 있는 체구에서 풍겨 나오는 도전성을 지닌 리를 위해 만들어진 역이라고 해도 되겠다. 디 해빌랜드는 리가 지극히 자기 직업에 충실했던 노력파라고 칭찬했었다.  
그런데 미첼은 스칼렛 역에 미리암 합킨스를 그리고 렛 역에는 프랑스 배우 찰스 보이에를 원했다고 한다. 미첼은 클라크 게이블이 렛 역에는 결코 어울리지 않는다고 생각했었다. 영화에서 또 하나 잊지 못할 것이 맥스 스타이너의 음악. 감상적일 만큼 서정적이면서도 모든 것을 휩쓸고 가는 바람처럼 도도한데 음악의 주제는 ‘마이 오운 트루 러브’라는 노래로 만들어졌다.  
올해로 ‘GWTW’ 개봉 75주년을 맞아 워너 홈 비디오는 영화와 함께 각종 부록을 담은 4장의 디스크와 36쪽의 책자 및 뮤직박스와 손수건 등 기념품이 담긴 블루-레이 박스셋(사진 50달러)을 출시했다.    <한국일보  편집위원 / hjpark1230@gmail.com>

2014년 10월 20일 월요일

퓨리(Fury)

탱크‘퓨리’ 대원들 보이드(왼쪽부터), 노만, 트리니와 그래디. 맨앞이 단(브래드 핏).

정이 넘치는 사내들의 ‘쇠맛’나는 전쟁액션


오래간만에 보는 튼튼한 근육질의 2차 대전 영화로 마치 옛날에 할리웃이 많이 만든 전쟁영화를 보는 느낌이다. 군더더기 없이 사납고 거칠고 잔인하며 폭력적이면서도 인간성과 감정이 있는 남자들의 영화로 브래드 핏을 비롯해 배우들의 연기도 좋다.
극적으로 강렬한 쇠 맛이 나는 작품인데 결점이라면 마지막 램보 식의 전투장면. 자살이나 마찬 가지인 전투를 반드시 고집해야 하는 이유를 알다가도 모르겠다. 그러나 이에 불구하고 힘찬 흥분감과 전쟁 액션을 즐길 수 있는 잘 만든 영화다.
1945년 4월 독일전선. 산전수전 다 겪은 고참상사 단(핏)이 이끄는 탱크(포신에 분노를 뜻하는 ‘퓨리’라고 써 있다)에는 타이프병 출신의 신참 보조운전사 노만(로간 러만)과 포수로 신심이 깊은 보이드(샤이아 라부프)와 인간짐승 같은 포탄장전수 그래디(존 번달) 및 멕시칸 아메리칸 운전수 트리니(마이클 폐냐)가 타고 있다.
영화는 이들이 투입된 전투장면과 개개인의 성격묘사와 전투와 전투 사이의 휴지기간에 있는 짧은 드라마를 고루 섞어 진행된다. 겉으로는 사납지만 안으로는 깊고 인간적인 단(이런 군인은 전쟁영화의 상투적인 인간이다)은 훈련 받은 지 두 달밖에 안 되는 노만을 호되게 단련시킨다.
영화에서 가장 아름답고 감정적이면서 또 비극적이요 가슴 깊이 파고드는 부분은 ‘퓨리’가 맹활약해 점령한 작은 도시의 아파트 내 장면. 독일 말을 잘 하는 단이 노만을 데리고 들어간 아파트에는 독일 부인과 그의 질녀 엠마(알리시아 본 리트버그가 감동적인 연기를 한다)가 겁에 질려 있는데 이들 4명의 인간적 이해와 미소가 마치 한편의 독립된 평화롭고 정감 넘치는 단편처럼 그려졌다.
‘퓨리’와 다른 3대의 탱크가 지휘관의 명령에 따라 적의 배후로 진입했다가 ‘퓨리’만 남기고 나머지는 다 파괴된다. 그리고 ‘퓨리’는 혼자서 수백명의 독일군과 대결한다. 이 부분은 너무 비현실적인 할리웃식 과장이다. 핏이 내면을 지닌 묵직한 연기를 잘 하고 나머지 배우들도 각기 개성이 뚜렷한 연기를 한다. 데이빗 에이어 감독. R. Sony. 전지역. ★★★★(5개 만점)
                                                   <한국일보  편집위원 / hjpark1230@gmail.com>


버드맨(Birdman)

리간(마이클 키튼·왼쪽)과 팬티바람의 마이크(에드워드 노턴)가 주먹대결을 벌이고 있다.

‘왕년의 스타’할리웃 컴백 시도 블랙 코미디 


속편을 계속해 만드는 할리웃 블락버스터 영화에 대한 조롱기 섞인 풍자이자 브로드웨이의 할리웃에 대한 위선적인 태도를 신랄하게 비판한 매우 심각하고 진지한 드라마이자 폭소를 자아내게 하는 블랙코미디다.
오래간만에 본격적인 배우로서 인정을 받고자 컴백을 시도하는 왕년의 수퍼스타의 필사적인 안간힘을 통해 명성과 창의성 그리고 힘의 대결과 유명세 및 외부의 압력 등 영화와 연극계의 각종 긍정적이요 부정적인 면을 밀도 있게 그렸다.
이와 함께 스타들의 이고와 배우로서 한 개인의 자기 구제를 초현실적인 장면들과 함께 일사불란하고 흥미진진하게 그린 독창적인 작품이다. 내용이 거의 시종일관 브로드웨이의 역시와 전통을 자랑하는 세인트 제임스 극장에서 전개돼 연극을 보는 듯한 느낌이 들기도 하지만 이런 협소감은 물 흐르듯 하는 카메라 동작과 위협적이요 박력 있는 재즈드럼의 배경음악 그리고 주인공의 하늘을 비상하는 상상에 의해 위무된다.
특히 영화 전부를 마치 단 한 번의 컷도 없이 찍은 것 같은 멕시코의 촬영감독 엠마누엘 루베즈키의 유려하고 과감한 촬영이 찬사를 받을 만하고 배경음악으로 쓴 말러와 차이코프스키 및 라흐마니노프의 로맨틱한 음악 그리고 배우들의 뛰어난 연기 등 여러 가지로 칭찬 받을 만한 예술적이요 흥미진진한 작품이다.
감독은 ‘바벨’과 ‘21그램’ 등을 만든 멕시코의 알레한드로 G. 이나리투(공동 각본)로 그는 늘 도전적인 주제를 즐겨 다루는데 영화를 보면서 자기 경험을 어느 정도 내용에 포함시키지 않았는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리간 톰슨(마이클 키튼)은 할리웃의 블락버스터 영화 ‘버드맨’으로 수퍼스타가 된 배우로 영화의 제4편에 나오기를 거부한 뒤로 인기가 시들해졌다. 이런 내용은 ‘배트맨’으로 나와 수퍼스타가 됐다가 시리즈 제3편에 나오기를 거절한 뒤로 인기가 시들해진 키튼의 사정을 똑 닮아 마치 그의 전기영화를 보는 느낌마저 든다.
리간이 ‘버드맨’ 이후 20여년만에 재기를 노리는 작품은 레이몬드 카버의 소설 ‘우리가 사랑에 관해 얘기할 때 얘기하는 것들’을 각색한 연극. 리간은 이 4인극을 각색하고 감독하고 공연도 하면서 브로드웨이에서 자신의 배우로서의 컴백과 함께 존경과 인정을 모두 추구하려고 시도한다. 그러니 스트레스가 얼마나 심할지 불문가지인데 이 스트레스는 “영화배우나 하라”면서 리간을 조롱하고 몰아붙이는 리간의 또 다른 자아인 자기 내부의 ‘버드맨’의 음성 때문에 곱으로 증가한다.
연극에는 리간 외에 콧대 높고 미끈미끈한 유명 영화배우 마이크 샤이너(에드워드 노턴이 팬티바람으로 얄밉도록 매끈한 연기를 잘 한다)와  역시 영화배우인 마이크의 과거 애인 레즐리(네이오미 와츠) 및 리간의 애인 로라(안드레아 라이스보로)가 나온다. 그런데 마이크가 연극을 혼자 말아먹으려 들면서 리간과 충돌이 일고 레즐리는 이것이 브로드웨이 데뷔여서 초조하기 짝이 없다.
여기에 할리웃 출신의 자기를 파멸시키려고 벼르는 막강한 연극 평론가 타비타(린지 던칸이 잠깐 나오지만 매우 인상적이다)에 신경을 써야 하는데 게다가 막 약물중독자 치료소에서 나온 딸 샘(엠마 스톤)이 블로거도 없고 트위터도 없는 아버지야 말로 완전히 한물간 공룡과도 같은 사람이라고 리간에게 악을 써댄다.
리간은 자기 사비를 털어 만드는 연극을 통해 어떻게 해서든지 재기하려고 하지만 회의에 시달리는데 그럴 때마다 ‘버드맨’이 되어 하늘을 나르며 시름을 달랜다. 후반에 들어 마이크와 로라와 레즐리의 역할이 약해지는 것이 흠이긴 하나 독창적이요 신랄하고 냉소적이면서 또한 정이 있는 영화다. 볼만한 것은 자신의 모든 것을 아낌없이 노출시키면서 맹렬하고도 연민의 감을 느끼게 하는 키튼의 연기로(오스카 후보상감이다) 그가 팬티바람으로 브로드웨이를 활보하는 장면은 압권이다. R. Fox Searchlight. 일부지역. ★★★★(5개 만점)
                                                      <한국일보  편집위원 / hjpark1230@gmail.com>


아이 러브 몬티



지금 생각하니 홀어머니의 내성적인 외아들로 약골인데다 수줍음 많은 외톨이었던 내가 세상의 모든 고독을 혼자 다 짊어지고 다니는 듯한 몬고메리 클리프트(사진)에게 매료됐던 것은 너무나 당연한 일이었다.
자학하는 듯한 내적 고뇌가 오히려 매력적이었던 몬티는 실재와 허구에서 모두 국외자였다. 현실과 타협하려 들지 않는 고집불통인 데다가 보기만 해도 소슬한 기운을 느끼게 하는 아름다운 쓸쓸함의 소유자여서 꼬마 때부터 그는 나의 우상이 되었다. 그래서 나는 내 생활과 거울 앞에서 몬티의 흉내를 내기도 했었다.
17일은 몬티의 생일로 그가 살았으면 올해로 94세가 된다. 몬티는 차사고 후 약물과 알콜 남용 끝에 1966년 45세로 요절했다. 그런데 나는 지금도 몬티의 아름다운 얼굴을 볼 때마다 그가 일찍 죽길 잘 했다는 생각이 든다.
중학교 2학년 때 ‘지상에서 영원으로’에 나온 몬티를 보고 완전히 넋을 잃은 나는 그 뒤로 그를 거의 여자처럼 사랑했었다. 뒤늦게 한국일보 김포공항 출입기자 시절 읽은 몬티의 영문 전기는 지금까지 내가 아끼며 간직하고 있는 책이다.
나는 몬티가 조소하며 수줍어하듯이 입의 한쪽으로 짓는 미소가 좋다. 몬티가 죽을 때까지 서로 깊은 우정을 나누었던 엘리자베스 테일러가 말했듯이 악동 기가 있는 미소다. 그리고 몬티의 눈은 청명한 늦가을 하늘이 내려와 몸을 씻는 호수처럼 맑고 푸르러 춥다. 그래서 몬티에겐 열렬한 여성 팬들이 많았다. 그런데 몬티는 남자와 여자 모두와 데이트한 양성애자였다.
13세 때부터 브로드웨이 무대에서 연기를 닦은 몬티는 메소드 액터로 내면 성찰과 고뇌하는 역을 찾아 거기에 심리적 깊이를 부여했다. 안으로 끙끙 앓는 듯한 연기다.
특히 몬티는 내면 감정을 손의 제스처로 절묘하게 표현해냈다. 그의 연기는 불안정한 매력이 있는데 이런 불안정감을 살짝 장식해 주는 것이 이 손의 연기다. 이 손의 제스처가 보여주는 내면 표현은 몬티가 방년 19세의 리즈 테일러와 첫 공연한 ‘젊은이의 양지’와 몬티의 라이벌이었던 말론 브랜도(몬티와 말론은 모두 고향이 네브래스카주 오마하다)가 독일군 장교로 나온 ‘젊은 사자들’ 및 나치 전범의 재판을 그린 ‘뉴렘버그의 재판’에서 뚜렷이 나타난다.
몬티의 할리웃 데뷔작은 2차 대전 후 유럽에 주둔한 미군과 소년의 관계를 그린 ‘수색’으로 몬티는 이 역으로 대뜸 오스카 주연상 후보에 올랐다. 이어 같은 해에 찍은 존 웨인이 주연한 웨스턴 ‘레드 리버’로 몬티는 할리웃의 총아가 된다. 몬티의 또 다른 웨스턴으로는 클라크 게이블과 마릴린 몬로의 유작으로 이색적인 ‘미스피츠’가 있다. 몬로는 몬티가 유머감각이 특출했던 배우였다고 회상한 바 있다.
나는 2007년에 ‘지상에서 영원으로’에서 악질 군영창장으로 나와 몬티에게 칼침 맞고 죽은 어네스트 보그나인을 만났었는데 그는 그 때 내게 “몬티는 매우 조용하고 해박한 지식을 지닌 사람이었다”며 몬티를 그리워했다.
지적이요 세련됐고 민감한 무드파였던 몬티는 ‘수색자’ ‘젊은이의 양지’ 및 ‘지상에서 영원으로’ 등으로 오스카 주연상 후보에 그리고 ‘뉴렘버그의 재판’으로 조연상 후보에 올랐으나 상은 못 탔다. 할리웃의 분위기를 피해 그 테두리밖에 있던 몬티를 할리웃의 주류들이 달가워하지 않았기 때문이라는 설이 있다.              
개인과 배우로서의 몬티의 삶은 1956년 5월12일에 일어난 자동차 사고로 내리막길로 접어든다. 당시 촬영 중이던 ‘레인트리 카운티’(한국명 ‘애정이 꽃피는 나무’)에서 공연하는 엘리자베스 테일러의 베벌리힐스 자택서 열린 파티 후 귀가 길에 몬티가 몰던 차가 전주를 들이받으면서 그의 턱과 코를 비롯해 오른쪽 얼굴이 완전히 망가졌다. 사고소식을 듣고 현장에 제일 먼저 달려간 테일러는 피투성이가 된 몬티의 얼굴을 자기 무릎 위에 올려놓은 뒤 그의 혀에 박힌 이빨들을 뽑아냈다고 한다. 테일러는 TCM의 몬티를 소개하는 프로에서 그 때를 회상하면서 “나는 몬티를 사랑했고 지금도 사랑한다”고 울먹였다.
그 후 몬티는 성형수술을 하고 영화를 끝냈지만 그의 섬세하도록 아름다운 얼굴은 다시 볼 수 없게 됐다. ‘레인트리 카운티’를 보면 영화 전반과 후반의 몬티의 얼굴이 다른 것을 알 수 있다. 사고 후 몬티는 테일러와 공연한 ‘지난여름 갑자기’와 ‘와일드 리버’ ‘프로이드’ 및 유작인 ‘도망자’ 등에 나왔지만 육체적으로나 감정적으로 회복되지 못한 채 고통에 시달리면서 약물과 술에 절어 살다가 1966년 7월23일 뉴욕에서 심장마비로 사망했다. 사고 후 그의 이 10년은 긴 자살기간이나 마찬가지였다.
TCM은 17일 몬티의 영화들을 방영한다. *‘빅 리프트’(오전 8시) *‘나는 고백한다’(오전 10시) *‘레인트리 카운티’(오전 11시45분) *‘젊은 사자들’(오후 2시45분) *‘도망자’(오후 5시45분).  
                                  <한국일보  편집위원 / hjpark1230@gmail.com>

2014년 10월 15일 수요일

‘곤 걸’벤 애플렉



“연기자로서 성취, 이젠 다양한 영화 제작의 꿈”


현재 상영 중인‘곤 걸’(Gone Girl)에서 아내 에이미(로자먼드 파이크)가 실종되자 이 사건의 가장 유력한 용의자로 몰리는 남편 닉으로 나온 벤 애플렉(42)과의 인터뷰가 9월27일 뉴욕의 리츠 칼튼 호텔에서 있었다. 감기가 걸려 쉰 목소리로 질문에 대답하던 애플렉은 잇단 인터뷰에 지친 듯이 처음엔 하품을 하면서 피곤한 표정을 지었으나 시간이 지나면서 활기를 되찾아 F자 상소리를 섞어가면서 마치 신이 난 아이처럼 떠들어댔다. 숱 많은 머리에 잔 수염을 한 미남인 애플렉은 체중이 다소 비대해 보였는데 요란한 제스처에 연기를 하듯이 얼굴 표정을 지었지만 대답만은 위트와 유머를 섞어 매우 신중하고 진지하게 했다. 아주 실팍한 인터뷰로 시상시즌에 접어들었음을 깨우쳐 주듯이 은근히 영화의 골든 글로브상 후보를 위한 캠페인을 벌였다.                                                

―배우이자 감독인 당신이 다른 감독에 의해 연기 지시를 받는 기분이 어땠는가.
“믿는 사람으로부터 연기 지시를 받는 것은 아주 쉬운 일이다. 데이빗 핀처(감독)는 좋은 영화만 만든다. 그래서 난 장인의 휘하에 있음을 느꼈다. 나는 내가 좋아하고 존경하는 감독을 골라 함께 일한다.”

―데이빗 핀처 감독과는 어떻게 보조를 맞췄는가.
“그는 매우 애매모호한 사람이다. 그리고 한 장면을 여러 번 찍는 주도면밀한 시계 제조자 같은 사람이다. 그래서 나와 그는 많은 논의를 했다. 가장 중요한 것은 허구의 얘기 속에서 사실성을 최대한으로 살리기 위해 매우 자연스런 연기를 하는 것이었다.”

―아내 실종사건의 용의자로 몰린 닉은 매스컴의 총아가 되는데 역시 매스컴의 초점을 받는 당신은 이를 어떻게 보는가.
“영화는 미디어에 대한 기소이기도 하다. 요즘의 케이블 TV들은 비극이나 끔찍한 사건을 자극적으로 보도하고 시청자들은 이런 뉴스를 포식하며 즐긴다. 보도라는 명목 하에 사건의 주인공들은 추악한 인물들로 낙인이 찍히고 마는데 데이빗도 영화에서 미디어의 이런 위선을 맹렬히 비난하고 있다.”

―결혼에 관한 분석이기도 한 영화를 찍으면서 당신의 결혼에 대해 생각했는가.
“난 영화와 달리 사랑스런 아내(배우인 제니퍼 가너)가 있어 다행이다. 그래서 내 결혼에 대해 별로 생각 안 했다. 그러나 영화가 너무 어두워 촬영 후 귀가해도 그 흔적이 몸에 남아 있었다. 그러나 다행히 핀처는 유머가 많고 따스한 사람이어서 세트에서 웃으며 재미있게 보냈다.”
닉(벤 애플렉)은 아내 에이미(로자문드 파이크)가 실종되자 아내살인자로 몰린다.

―속편을 만들 것인가.
“다시 이렇게 어두운 영화를 내가 소화해낼 수 있을지 의문이다. 데이빗도 속편을 만들 것 같지 않다.”

―영화는 상당히 무서운 얘기인데 당신이 살면서 가장 무서웠던 경험은 무엇인가.
“내 아이들에게 어떤 나쁜 일이 벌어질 것을 생각하는 일이 가장 두렵다. 지금 나의 아이들이  앓고 있는데 제니퍼가 여기 없는 것도 그 때문이다. 지금 내가 가장 걱정하는 것도 아이들의 건강이다.”

―미디어의 끈질긴 추적에서 어떻게 살아남을 수가 있는가.
“태블로이드 잡지나 신문을 팔아먹기 위해 굶주린 야수처럼 달려드는 미디어에 걸리면 상처 받기가 십상이다. 그들은 식인종이자 잔인하다. 다행히 난 견고한 환경에서 자라 자신감을 가지고 있어서 미디어의 허위와 과장보도를 ‘시간이 약이다’라는 심정으로 견딜 수가 있다. 그러나 역설적으로 유명해지려고 악행을 저지르는 사람들이 있다. 악명과 유명의 구분이 애매모호한 것이 요즘 미국의 현실이다.”

―다음 영화에서 배트맨으로 나오는데 역을 제의 받고 어떤 생각을 했는가.
“앞으로 2년 뒤에나 나올 영화여서 별로 할 말이 없다. 단지 각본이 훌륭하고 재주 있는 감독(잭 스나이더)이 연출하며 든든한 스튜디오(워너 브라더스)가 만들어 매우 흥분하고 있다는 말만하겠다.”

―한국에는 이런 농담이 있다. ‘한 남자의 아내가 죽으면 그 남자는 사람들 앞에서는 울지만 화장실에 혼자 있으면 웃는다.’ 이에 대한 당신의 생각은 어떤가.
“그것 참 재미있는 농담인데 내가 말했다고는 쓰지 말라. 이 영화는 당신의 농담이 지적하듯이 부부 간의 긴장을 다루고 있다. 남녀가 연애를 할 때는 서로 자신들의 좋은 점만 보여주지만 일단 결혼을 하면 상대방의 가면이 벗겨지면서 당신이 잘 몰랐던 면이 드러나게 마련이다. 이건 남자나 여자나 마찬가지다. 닉도 아내가 실종되면서 어느 순간에는 아주 행복하다고 느낀다. 관계에서 벗어나고 싶어도 용기가 없어서 머물러 있었기 때문이다. 데이빗도 당신의 농담에 담겨 있는 혹독한 진실을 얘기하려고 한 것이다. 관계란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난 다행히 제니퍼가 있어 복이 많다. 관계나 직업이나 친구를 돌보고자 한다면 그 것에 투자를 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그것은 사라지고 만다. 나와 아내는 우리의 관계를 유지하기 위해 매우 열심히 노력하고 있다.‘

―아주 복잡한 성격을 지닌 닉 역을 하기가 쉬웠는가.
“사실은 아주 자유로웠다. 보통 주역은 늘 옳고 똑똑하고 매사에 답을 가지고 있게 마련이다. 그런데 그것은 참 지루한 노릇이다. 데이빗은 그것을 원치 않았다. 그는 관객이 좋아하지 않을 사실적이요 결함이 있는 닉을 원했다. 데이빗은 내게 한 치의 꾸밈도 없는 결함이 있는 닉을 원했다. 내 장점과 함께 가장 추한 단점을 보여줘야 했다. 닉의 역을 하는 데는 어떤 규칙도 없어 자유로웠다.”

―영화 출연에 응한 첫째 이유는 무엇인가.
“존경할 수 있는 감독인 데이빗과 일하는 것이었다.”

―당신은 나이 42세에 남들이 다 부러워할 성취를 했는데 앞으로의 계획은 무엇인가.
“과거 10년간 나는 상당히 순조로운 길을 걸어 왔다. 난 이제 얘기꾼으로서의 정상에 올랐다고 생각한다. 따라서 나는 연기보다 감독에 더 힘쓰려고 한다. 작은 영화와 대하 서사적인 영화를 고루 만들려고 한다. 다양성을 추구하고자 한다. 물론 그러다 보면 실패도 할 수 있고 그 책임을 내가 져야 한다. 그러나 그것이 할리우드다. 야구선수도 삼진을 먹을 때가 있지 않은가. 실수에도 불구하고 앞으로 나아가는 것이 중요하다. 또 한 가지 나의 세 아이가 성격 형성기인 8세와 5세와 2세이기 때문에 일을 하면서도 아이들 주변에서 멀리 있지 않으려고 노력하겠다. 다음에 아이들이 커서 자서전을 쓸 때 ‘우리 아버지는 단 한 번도 우리 곁에 있지 않았다’고 쓰지 않도록 하기 위해서.”

―아이들은 주로 누가 돌보는가.
“제니퍼다. 제니퍼는 영화 출연과 양육을 아주 현명히 조화시키고 있다. 역의 선정도 신중하고 현명하게 한다. 제니퍼는 멋진 엉덩이를 갖고 있지만 공연히 엉덩이나 흔들어대는 롬콤에는 안 나온다. 나는 아이를 갖기 전만해도 직업여성인 배우가 양육과 일을 함께 해야 한다는 것이 얼마나 힘든 것인 줄 몰랐다. 그런 뜻에서 나는 제니퍼를 존경하고 또 그에게 감사한다.”

―닉은 어린 어린 여대생의 유혹에 넘어 가는데 그 이유가 무엇인가.
“영화가 하고자 하는 얘기는 빗나가는 결혼이다. 따라서 여자나 남자나 다른 데서 인간관계를 통한 행복을 찾으려고 한다. 누군가 이런 말을 했다. 부부가 서로 상대방을 경멸한다면 그 결혼은 끝장이 난 것이라고. 닉도 에이미가 더 이상 자신을 존경하지 않는다고 느낀다. 그래서 자기를 가치 있다고 생각하는 사람을 찾은 것이다. 그 결정은 물론 비도덕적인 것이지만 결혼 얘기를 할 때 온갖 유혹을 제외하고 어떻게 얘기할 수가 있는가.”

―당신과 로자먼드가 나체로 나온 샤워장면에 대해서 말해 달라.
“영화를 보고 나서야 내 나체를 인식했다. 그래서 데이빗에게 이렇게까지 할 필요가 있겠느냐고 물었다. 이에 대해 데이빗은 부부가 실제로 침대에 있을 때 여자가 쉬트로 젖꼭지를 가리지 않듯이 노골적이요 솔직해야 한다고 말했다. 그는 사실성을 살리기 위해 머리 손질도 화장도 못하게 했다. 우리 자신을 숨기지 말라는 것이다.
                                                                      <한국일보 편집위원/hjpark1230@gmail.com>


세인트 빈센트(St. Vincent)


빈센트(빌 머리)가 올리버(제이든 리버허)에게먼지 마당의 제초작업을 시키고 있다.

괴팍한 늙은이와 이웃소년의 만남과 힐링


심술첨지 중늙은이가 맑고 총명한 어린 소년을 베이비시팅하게 되면서 소년의 순진한 마음에 의해 꽁꽁 얼어붙었던 마음이 녹아내리고 아울러 자기 가슴 속 깊이 잠자고 있던 아름다운 인간성이 모습을 드러내는 걸맞지 않는 한 쌍의 인간관계의 이야기이자 자기 구제의 코미디 드라마다.
전연 새로운 얘기는 아니지만 주인공인 베테런 코미디언 빌 머리의 누워서 떡먹기 식으로 해내는 천연덕스럽고 다채로운 연기와 그와 소년 역의 제이든 리버허의 찰떡궁합 콤비네이션 그리고 주변 인물들로 나오는 조연진의 조화를 이룬 협찬 등으로 인해 남녀노소가 함께 즐길 만한 영화다.
빌 머리에게 너무 의존하고 후반에 들어 ‘아이가 어른의 스승’이라는 많이 듣던 얘기가 제자리를 맴돌면서 신선감을 잃고 있으며 또 다소 감상적이긴 하나 달콤 쌉싸래하고 훈훈한 정이 있어 흐뭇한 감정에 젖게 된다.
브루클린 교외에 혼자 사는 6순의 베트남전 베테런 빈센트(머리)는 술꾼에 골초요 입만 열었다 하면 상소리가 튀어나오는 대인기피증자. 친구라곤 007시리즈에서 본드의 천적 블로펠드가 껴안고 쓰다듬던 페르시아산 백고양이 필릭스 하나다.
인간 친구라곤 자기가 자주 이용하는 임신한 러시안 창녀 다카(네이오미 와츠가 심한 러시안 액센트를 쓰면서 파격적인 연기를 한다). 그런데 빈센트는 매주 요양원에 있는 정체가 안 밝혀진 샌디(다나 미첼)를 찾아가 대화를 나눈다.
빈센트의 옆집에 이혼수속 중인 매기(멜리사 매카시)가 12세난 갈비씨 아들 올리버(리버허)와 함께 이사를 온다. 이사 오는 날 이삿짐 차가 빈센트의 앞마당 나뭇가지를 부러뜨리면서 빈센트와 매기는 반갑지 못한 이웃이 된다.
병원의 의료담당 기술자인 매기는 올리버를 방과 후에 돌봐줄 사람이 없어 돈이 궁한 빈센트에게 시간당 12달러를 주고 아들을 맡긴다. 자기를 퉁명스럽게 대하는 빈센트를 너그럽게 받아들이는 올리버. 이런 중에 둘은 대화를 나누고 함께 시간을 보내면서 서서히 둘 간의 감정의 물꼬가 트인다.
빈센트는 자기가 자주 찾아다니는 바와 경마장에 올리버를 데리고 다니면서 조기 어른 훈련을 시키는데 올리버가 새로 전학한 가톨릭 학교에서 급우에게 시달리자 상대방의 코피를 터지게 하는 쌈질방법까지 가르쳐 준다. 둘은 이제 없으면 못사는 친구가 된다.
그리고 올리버의 선생(크리스 오다우드가 재미있는 연기를 한다)이 아이들에게 너희들 주위에서 성인을 찾아 그에 관한 글을 쓰라는 숙제를 내주면서 올리버는 빈센트를 아는 몇 안 되는 사람들을 만나 빈센트에 관해 조사를 한다.
얘기의 단조로움을 피하기 위해 빈센트와 올리버 간에 불화를 조성하고 불상사를 일으키나 결국 둘은 화해하면서 사랑이 더욱 공고해지고 모두들 한 가족처럼 되어 내내 행복하게 살았노라 하는 얘기.
잘 찾아보면 우리들 주위에 ‘인간 성인’들이 있다는 얘기이기도 한데 이 인간 성인 역을 머리가 기차게 잘해 낸다. 단순한 것 같지만 실은 복잡한 성격의 소유자요 겉으로는 밉상이나 속은 착한 밉지 않은 심술단지 노릇을 속옷 갈아입듯 쉽고 자연스럽게 한다. 실제의 자신을 베껴 먹은 연기다. 시오도어 멜피가 각본을 쓰고 감독으로 데뷔했다.
PG-13. Weistein. 전지역.   ★★★½(5개 만점)  <한국일보 편집위원/hjpark1230@gmail.com>

판사(The Judge)


행크(로버트 다우니 주니어·왼쪽)가 아버지 조셉(로버트 두발)과 피고석에 앉아 있다.

법정드라마 속 가족간의 갈등과 화해 그려


판에 박은 법정 드라마이자 뜻밖의 사건으로 소원했던 부자간의 관계가 재 연결되는 가족 드라마인데 로버트 다우니 주니어와 로버트 두발이라는 두 거물급의 영화치곤 너무 상투적이다. 상영시간도 쓸데없이 긴 140여분으로 뻔한 결말을 가져오기까지 괜히 얘기를 질질 끌고 간다.
올 토론토영화제 개막작으로 기대가 컸던 영화로 두 배우의 맹렬한 연기는 볼만하나 이런 내용의 영화가 지닌 온갖 구태의연한 요소는 다 갖다 쑤셔 넣은 어디서 많이 보고 들은 천편일률적인 드라마여서 식상한 감이 있다.
시카고의 변호사 행크(다우니 주니어)는 ‘돈 많고 유죄’인 의뢰인만 맡는 잘 나가는 변호사. 행크는 자기 아내가 바람을 피운 것을 알게 되는데 이와 함께 인디애나의 작은 마을에 사는 어머니가 사망하면서 오래간만에 고향에 돌아온다.
고향에는 수십 년간 동네판사로 지내 모두들 ‘판사’라 부르는 행크의 아버지 조셉(두발)과 한때 프로야구 유망주였으나 꿈이 무산된 형 글렌(빈센트 도노프리오)과 정신박약자인 동생 데일(제레미 스트롱)이 살고 있다. 그런데 행크와 독선적이자 권력형인 조셉과는 앙숙지간.
오래간만에 가족이 함께 모이면서 이런 영화가 잘 써먹는 여러 가지 자질구레한 가족문제들이  나열된다. 후회와 회한과 갈등과 애증의 편린들이 옷장에서 쏟아져 나오면서 별로 듣고 싶지 않은 얘기가 많다.
그리고 행크는 동네 바에서 바텐더로 일하는 고교시절 애인 새만사(베라 화미가)를 만나 옛정을 되살리는데 새만사가 마치 옛날에 못 이룬 사랑의 결실을 이제야 맺어보겠다는 듯이 적극적이다. 20여년은 헤어졌다 만나는 둘이 금방 옛사랑을 재 점화한다는 것이 믿어지질 않는다.
얘기는 아내의 장례를 치른 조셉이 28년 만에 처음 마신 술에 취한 상태에서 사람을 차로 치어죽인 혐의로 기소되면서 가족 얘기가 법정 드라마로 변전한다. 조셉의 차에 치여 죽은 사람은 조셉이 과거 20년형을 선고한 동네 쓰레기 같은 인간. 그런데 과연 조셉은 이 사람을 고의로 치어 죽였는가 아니면 실수였는가. 그런데 조셉은 사고에 대해 전연 기억을 못한다.
조셉을 기소한 검사는 베테런 드와잇(빌리밥 손턴)이고 변호사는 신출내기 C.P.(댁스 쉐파드). 그래서 행크가 마지못해 C.P.를 도와 아버지 변호에 나선다. 두발과 다우니 주니어가 부자간의 치열한 갈등 끝의 화해를 이루는 과정에서 뿜어져 나오는 감정적이자 극적인 연기를 가슴 뭉클하니 보여준다. 그러나 얘기가 사전에 그어놓은 줄을 따라 가듯이 너무 작위적이고 또 잘 깎은 잔디처럼 매끄러워 사실감이 안 난다. 데이빗 다브킨 감독.
R. WB. 전지역.  ★★★(5개 만점)         <한국일보 편집위원/hjpark1230@gmail.com>

독일 표현주의 영화




내가 한국일보 서울본사에서 LA 미주본사 3년 근무를 자원한 이유 중 하나가 할리웃이 있는 이 도시에서 영화나 실컷 보겠다는 것이었다. LA로 옮긴지 얼마 안 돼 영화에 대해 공부하고 싶어 LACC 야간부 영화사 강좌를 듣기 시작했다. 오랜만의 캠퍼스 생활 재경험이 참 흐뭇했었다.
그때 처음 보고 배운 영화들이 D.W. 그리피스의 ‘국가의 탄생’과 ‘불관용’ 그리고 루이스 부누엘의 충격적인 ‘안달루시아의 개’와 함께 독일 감독 로버트 뷔네가 만든 해괴한 무성영화 ‘칼리가리 박사의 관’(The Cabinet of Dr. Caligariㆍ1919ㆍ사진) 등이었다.
‘칼리가리 박사’는 1차 대전 후 독일의 바이마르 공화국 시절 잠깐 만개했던 표현주의 영화의 대표작 중 하나다. 표현주의 영화들은 심신을 죄어들면서 협소감을 느끼게 하는 삐딱하고 비현실적적인 세트 디자인과 무대극과 같은 화면 구성 그리고 흑백명암이 극적인 대조를 이루는 촬영과 조명 및 도발적인 카메라 테크닉을 이용해 복잡하고 변태적이며 심리적인 주제를 다룬 악몽과도 같은 영화들이 대종을 이루고 있는데 스타일이 아주 고급이다.
나는 강의시간에 이 영화를 보면서 “아, 이런 영화도 있었구나”하고 영화의 신경지를 깨닫는 기쁨에 젖었었다.
대부분 무성영화들인 독일 표현주의 영화들은 전후 천문학적으로 상승하는 인플레와 온갖 악조건에 시달리던 불안하고 혼란스럽고 또 어둡던 당시 독일의 시대상황의 산물로 1933년 히틀러의 득세와 함께 소멸됐다.
그러나 히틀러가 득세하면서 또 다른 표현주의 영화의 걸작 중 하나인 ‘M’(1931: 24일 하오 7시 LA카운티 뮤지엄 내 빙극장에서 1956년작 필름 느와르 ’도시가 잠 잘 때‘와 동시상영)을  감독한 프리츠 랭 등 많은 표현주의 영화인들이 할리웃으로 이주하면서 할리웃 영화에 커다란 족적을 남겼다.
그 대표적 장르가 필름 느와르로 표현주의는 지금까지도 할리웃이 만드는 범죄영화와 공상과학영화 및 공포영화에서 자주 감지할 수 있다.
독일 표현주의에 관한 전시회 ‘사로잡는 스크린: 1920년대 독일 영화’(Haunted Screens: German Cinema in the 1920’s)가 2015년 4월26일까지 LA카운티 뮤지엄에서 열린다.
14명의 감독과 20명의 미술가 및 25편의 영화들과 관련된 250점의 영화 클립과 각본, 사진과 스케치와 포스터 그리고 문서와 카메라 등이 선을 보인다.    
전시회는 4개의 주제로 구분됐는데 표현주의의 태동을 보여주는 첫 번째 ‘광기와 마법’ 전시실에 들어서니 ‘칼리가리 박사’와 파울 베게너 감독의 ‘골렘’(The Golemㆍ1920) 및 로버트 뷔네가 연출한 ‘죄와 벌’(Crime and Punishmentㆍ1923) 등의 정교한 세트 디자인 등이 눈길을 끈다.
둘째 전시실은 ‘신화와 전설’로 랭 감독의 ‘니벨룽겐’(Die Nibelungenㆍ1924)과 F.W. 무르나우의 ‘파우스트‘(Faustㆍ1926: 17일 하오 7시 빙극장에서 1994년작 ’파우스트‘와 동시상영) 등 독일 낭만주의의 영향을 받은 영화들의 각본과 스케치들이 전시된다.
이어 ‘도시와 거리’ 전시실로 들어가면 바이마르 공화국 당시 급팽창한 베를린 및 여러 도시들의 성장과 관련된 작품들의 각종 자료가 진열됐다. 무르나우의 걸작으로 에밀 야닝스가 주연하는 ‘마지막 웃음’(The Last Laughㆍ1924)과 역시 야닝스와 토실토실 살이 찐 마를렌 디트릭이 공연한 ‘푸른 천사’(The Blue Angelㆍ1930) 및 제1회 오스카 여우주연상(재넷 게이너)과 촬영상 등을 받은 무르나우의 ‘해돋이’(Sunriseㆍ1927) 그리고 G.W. 팝스트의 ‘기쁨 없는 거리’(The Joyless Streetㆍ1925) 등의 세트사진과 스케치들이 급성장하는 도시로부터 소외된 인간의 모습을 황량하게 보여주고 있다.
마지막 전시실은 특수효과와 프로덕션 디자인에 의존하면서도 사실주의적인 영화들에 관한 ‘기계와 살인자들.’ 이를 대표하는 영화는 두말 할 것 없이 랭 감독의 ‘메트로폴리스’(Metropolisㆍ1927). 이와 함께 ‘M’과 역시 랭 감독의 ’마부제 박사의 유언‘(The Testament of Dr. Mabuseㆍ1933) 등에 관한 여러 자료들이 보인다.
전시회에는 이들 외에 따로 ‘계단’이라는 주제로 표현주의 영화에 나오는 각양각색의 계단 스케치와 세트디자인 사진들을 따로 마련했다. 이들 계단은 시각적으로나 심리적으로 뒤틀리고 불안하며 또 소외당하는 감정을 갖게 만든다. ‘마지막 웃음’과 ‘죄와 벌’ ‘메트로폴리스’와 ‘기쁨 없는 거리’ 등의 계단들이 불길하고 위태로운 기운을 잘 나타내고 있다.
대형 포스터들도 구경거리다. ‘푸른 천사’와 ‘M’ 그리고 ‘메트로폴리스’와 요염한 단발머리 루이즈 브룩스가 주연한 ‘판도라의 상자’(Pandora’s Boxㆍ1929) 등의 포스터가 전시실 한쪽 벽을 가득 채우고 있다.
이와 함께 전시실 내 어두운 두 터널에서는 전시된 영화들의 발췌 필름이 상영된다. 지크프리트가 입에서 불을 뿜는 용을 죽이는 장면(‘니벨룽겐’)과 아동살인자인 M(피터 로레)이 거지와 도둑들에 의해 인민재판을 받는 모습 그리고 ‘해돋이’와 ‘마지막 웃음’의 장면들을 보면서 잠시 현재를 잊고 과거가 소용돌이치는 화면 안으로 걸어 들어갔다. 한편 뮤지엄(5905 Wilshire Blvd.)내 빙극장에서는 전시회에 선보인 표현주의 영화들을 상영한다. lacma.org
                                        <한국일보 편집위원/hjpark1230@gmail.com>



              

2014년 10월 9일 목요일

‘왓 이프’대니얼 래드클리프



“해리 포터 떠나 성인역… 언젠가는 감독이 꿈”


로맨틱 드라마‘왓 이프’(What If)에서 동거애인이 있는 샨트리(조이 카잔-‘워터프론트’와‘에덴의 동쪽을 감독한 엘리아 카잔의 손녀)를 사랑하면서도 이 여자와 친구 사이로 있겠다고 한 약속 때문에 속을 태우는 의대 중퇴생 월래스로 나온 대니얼 래드클리프(25)와의 인터뷰가 베벌리힐스의 포시즌스 호텔에서 있었다. 월래스 역은‘해리 포터’ 시리즈로 성장하고 또 이로 인해 수퍼스타가 된 래드클리프의 본격적인 첫 성인 역이다. 소매가 짧은 짙은 회색 셔츠 차림에 얼굴에 잔 수염을 기른 래드클리프는 동안이었는데 질문자에게“서”라고 깍듯이 존칭을 써가면서 액센트가 있는 어투로 속사포식으로 대답했다.                                                              
―당신은 남자와 여자가 친구가 될 수 있다고 생각하는가.
“난 남자와 여자가 친구가 될 수 있다고 확신한다. 거기서 그 관계가 연인 사이로 발전할 수도 있고 또는 친구 사이로 남아 있을 수도 있다. 나의 아버지와 어머니도 2년 정도 친구로 지내다가 연인이 돼 결혼해 지금까지 30여년 간을 잘 살고 계신다. 그러나 영화의 주제는 남자와 여자가 친구가 될 수가 있느냐는 것보다는 자신이 느끼는 감정을 부인하는 것이 과연 현명한 일이냐 하는 것이다.”

―영화에서 월래스는 누나의 아이를 돌봐 주는데 당신도 아이들을 돌볼 줄 아는가.
“난 아이들을 좋아해 잘 돌볼 줄도 안다. 나는 두 명의 대자도 있다. 아이들은 어른들보다 훨씬 더 함께 있기가 즐거운데 왜냐하면 그들은 아무 거리낌 없이 자기가 생각하는 대로 얘기를 하기 때문이다.”         

―월래스처럼 실연해 고통해 본 적이 있나.
“월래스처럼 애인에게서 배신을 당해 고통해 본 적은 없다. 따라서 내가 겪은 상심이나 상사병은 남에 의한 것이라기보다 순전히 자해와도 같은 것이라고 하겠다.”    

―당신에게 사랑이란 무엇인가.
“특별한 누군가와 함께 있을 때 느낄 수 있는 행복한 감정이라고 생각한다. 그러나 사랑이란 각자가 다 다른 것이어서 하나의 정의로는 말할 수가 없다. 사랑이란 멋있고 혼란스러운 것이 아닐까.”

―작년에 당신은 ‘킬 유어 달링스’에선 남자를 사랑했고 이번에는 여자를 사랑하는데 두 역이 다른 점이 무엇인가.
“다를 게 뭐가 있는가. 남자이건 여자이건 간에 매력적인 사람에게 사랑에 빠진다는 것은 다 같은 일이다. 남자와 어떻게 사랑하지, 아니면 여자와 어떻게 사랑하지 하고 생각하는 것이 아니다. 남자냐 여자냐가 문제가 아니다. 배우는 모든 장면에 똑 같이 접근한다.”

―길에서 아이들이 당신을 보고 ‘해리 포터네’하고 말하는 것을 들으면 기분이 어떤가.
“나이를 불문하고 사람들이 내게 다가 와 해리 포터에 대해 흥분해서 얘기를 할 때면 그들을 충분히 이해한다. 그들은 나를 그 영화로 인해 알게 됐으니까. 그런데 사람들이 요즘에는 내게 다가와 해리 포터라기보다 내 본명을 부른다. 대니얼 래드클리프라고 부르는 소리를 듣는 것은 기분 좋은 일이다. 내가 뉴욕에서 연극에 나왔을 때 팬들이 매일 밤 무대로 통하는 문에서 기다리다가 날 만나면 ‘해리 포터’가 자기들 인생에 있어서 얼마나 중요한 의미를 지녔는지에 대해 얘기를 했다. 그것을 듣는 것은 참으로 환상적인 일이었다. 그러나 이와 반대로 주정꾼들이 날 보고 ‘해리 포터’하고 소리를 질러대는 것을 듣는 일은 짜증나고 힘든 일이다. 좌우지간 그 이름을 들을 때마다 깊은 향수감에 젖곤 한다.”

―아침에 혼자 일어나면서 자의식이라도 하는가.
월래스(대니얼 래드클리프·왼쪽)와 샨트리(조이 카잔)가 식당서 대화하고 있다.
“오 노. 그런 생각하면서 일어나지 않는다.”

―해리 포터의 작가 J.K. 롤링이 새로운 작품을 쓴다면 거기에 나올 생각이 있는가.
“그것에 대해서는 우리들 간에 어떤 논의도 없었다. 롤링은 최근에 신작 단편을 냈는데 아마도 이 때문에 영화 얘기가 나온 것 같다. 그러나 내게 영화 제의가 온 적은 없다.”

―당신은 최근에 마법의 세계 속의 어른에 관한 영화에 나올 용의가 있다고 말한 것으로 아는데 사실인가.
“아니다. 각본은커녕 아무 것도 아는 것이 없는 일에 관심을 가질 수가 없다. 나는 곧 다리 건설에 관한 영화 ‘무너진 다리’의 촬영을 시작하는데 이것도 각본을 읽고서야 출연에 응했다. 내가 할 말은 나는 다양한 역을 찾아서 부지런히 일하겠다는 것이다. 그냥 과거와 다르다고 해서 각본을 선택한다기보다는 내가 즐길 수 있는 역을 찾을 것이다. 모든 가능성에 대해 저는 문을 열어놓고 있다.”

―당신의 애인에 대해 말해 줄 수 있는가.
“그럴 수가 없다.”

―조이 카잔과의 관계는 어땠고 그에게서 무엇을 배웠는가.
“우린 사실 같이 자란 사이다. 그리고 우리의 부모들도 서로 비슷하다. 조이와 나는 서로 아주 어렸을 때부터 영화계에서 자라 관계가 더 돈독한 것 같다. 그리고 우린 서로 비슷한 점이 많다. 그래서 영화에서 우리의 화학작용이 대단히 좋았던 같다. 우린 책벌레들인 데다가 유머감각도 비슷하다.”  
        
―영화에서 당신은 샨트리를 놀라게 하려고 예고도 없이 비행기를 타고 토론토에서 더블린으로 날아갔는데 실제로도 그런 적이 있는가.
“내가 과거 아일랜드 태생의 애인이 있었을 때 영국에서 아일랜드로 예고 없이 찾아간 적이 있는데 비행시간은 달랑 45분밖에 안 걸려 별 스릴이 없었던 것 같다.”

―사랑에 빠지려면 서로 반대되는 성격을 지녀야 하나 아니면 비슷한 사람들이 돼야 하나.
“어딘가 서로 공통되는 바탕은 있어야겠지만 보통은 서로 상반되는 사람들이 사랑에 빠지기가 쉽다고 본다. 그래서 서로가 상대의 균형을 맞춰줄 수 있으면 좋을 것이다. 나는 매우 다혈질이어서 자연 나보다 침착한 사람에게 마음이 간다.”

―남녀 간 친구지간에도 정열이 타오를 수가 있다고 생각하나.
“친구로 지내면서 서로 함께 성장하고 사귀다 보면 경우에 따라 정열이 서서히 솟아날 수도 있다고 본다.”

―요즘 많은 영화배우들이 TV 작품에 나오고 있는데 당신도 그럴 생각이 있는가.
“언젠가 한 번 흥미 있는 TV 작품의 각본을 읽고 관심이 있었는데 한 번 계약하면 7년은 매어달려야 한다는 바람에 포기했다. 그러나 언젠가는 TV 작품에 나오고 싶다. 단 7년씩은 못하겠다.”

―당신은 얼마 전에 25세가 됐다. 이제 진짜 어른이 된 것인데 앞으로의 계획은 무엇인가.
“계속 글을 쓰고 언젠가는 감독을 하고 싶다. 먼저 뮤직 비디오를 감독한 뒤에 보다 큰 작품을 연출하고 싶다. 내가 과거에 한 일들을 보다 공고히 하면서 새 것을 찾을 것이다. 계속해 연기를 하고 연극에 나오고자 한다. 궁극적으로는 가정을 꾸리겠지만 아직은 생각이 없다.”

―남자와 여자 중에 어느 쪽이 더 당신의 마음 문을 열고 대화가기가 쉽다고 여기나.
“남자들은 친구지간에도 서로 약점을 안 보이려고 심각한 얘기를 하기를 꺼려한다. 그러나 여자들은 안 그래서 그들과 대화하기가 더 편하다.”

―요즘 남자배우들이 수염을 기르는 경향이 있는데 그렇다면 나처럼 말끔히 면도한 남자는 이제 더 이상 핸섬하지 않다는 것인가.
“전연 그렇지 않다. 당신 아주 핸섬한데 어리석은 소리 하지 마라. 난 단지 너무 동안이어서 좀 어른스럽게 보이려고 수염을 기르는 것이다. 당신은 면도한 얼굴이 멋있으니 절대로 수염 기르지 말라.”

―이 역이 앞으로 당신의 성인 역의 디딤돌이 될 것이라고 생각하나.
“그렇다. 해리 포터와 나를 쉽게 떼어 놓을 수야 없겠지만 나는 이 역이 광범위한 관객에게 어필할 수 있다고 믿는다. 하여튼 나는 나를 흥분시키고 또 정열적으로 만드는 일을 계속할 것이다.”
                                                                          <한국일보 편집위원/hjpark1230@gmail.com>

곤 걸(Gone Girl)

닉(벤 애플렉)이 실종된 아내의 행방에 대해 대중에게 도움을 청하고 있다.


아내의 실종… 한꺼풀씩 벗는 부부의 딴 모습


아내가 살해당하거나 실종되면 제일 먼저 용의선상에 오르는 사람이 남편이다. 이 영화도 이런 내용을 바탕으로 부식해 가는 결혼의 모습을 파헤친 멜로물이자 서스펜스 스릴러다. 뛰어난 감독 데이빗 핀처(‘소셜 네트웍’)도 이 영화는 겉으로는 단란해 보이나 안으로는 썩어 문드러져 가는 결혼생활을 다룬 진지한 작품이라고 말하나 그렇게 깊이가 있는 작품은 아니고 다분히 오락성 위주의 선정적인 영화다.
총천연색 필름 느와르라고 하겠는데 배신과 음모와 살인이 있는데다가 ‘남편 말이 맞아, 아니면 아내 말이 맞아’라는 식으로 얘기를 알쏭달쏭하게 이끌어가 재미는 만점이다. 남편 측과 아내 측의 얘기를 병행식으로 나열하면서 현재와 과거가 오락가락하는데 완벽하게 뽑은 주ㆍ조연 배우들(닐 패트릭 해리스 빼고)의 눈부신 연기와 나무랄 데 없는 구조와 연출력과 촬영과 음악 및 프로덕션 디자인 등 여러 면에서 훌륭하다.  
그러나 얘기가 자연스럽다기보다 조작한 느낌이 들고 종결부를 다소 엿가락 늘이듯이 늘인 점과 일부 믿어지지 않는 장면 등은 옥에 티라고 하겠다. 9월25일에 시작된 뉴욕영화제 개막작인데 상감은 되지 못한다.
원작은 연예주간지 엔터테인먼트 위클리의 TV 담당기자로 일하다가 경기침체 때 해고당한 길리언 플린의 베스트셀러인데 내용의 일부는 이런 자기 경험을 담았다. 아주 고약하고 사악하며 냉소적인 영화인데 그래서 더 재미가 있다.     
미주리주 노스카테이지의 천편일률적인 교외 주택지에 사는 닉 던(벤 애플렉)이 이른 아침 집 앞에서 어딘가 불안하고 수상쩍은 모습으로 서 있는 장면으로 시작된다. 그는 이어 쌍둥이 여동생 마고(캐리 쿤이 잘 한다)와 함께 경영하는 자신의 바에 들러 동생과 함께 이른 버본을 마시면서 오늘이 아내 에이미(로자문드 파이크)와의 결혼 5주년이 되는 날이라고 말한다.
그리고 닉은 집에 돌아와 리빙룸의 커피테이블이 박살이 난 것을 발견한다. 그리고 에이미가 실종된다. 영화는 여기서부터 닉의 얘기와 에이미가 자기 일기를 읽는 형식으로 두 갈래로 진행된다.   
닉과 에이미는 몇 년 전만해도 뉴욕에 살던 여피 부부로 둘 다 잡지기자였는데 경기침체와 함께 모두 해고당한다. 그리고 닉의 어머니가 암에 걸리면서 둘은 시골로 이사를 온 것이다. 에이미의 부모는 유명한 아동소설 작가로 소설의 주인공은 에이미다. 
닉이 에이미의 실종을 신고하면서 여형사 론다(킴 딕킨스가 빼어난 연기를 한다)와 파트너 짐(패트릭 휴짓)이 수사를 맡는다. 그리고 닉의 집에서 에이미의 혈흔이 발견된다. 이어 닉은 미디어를 통해 아내의 실종을 알리고 대중의 도움을 요청한다. 
경찰이 우선 닉을 심문하면서 도시인을 별로 안 좋아하는 동네 사람들과 미디어가 닉을 아내 실종의 주범으로 몰아붙인다(영화는 작은 마을 사람들의 편협한 생각과 미디어 서커스도 싸잡아 비판하고 있다). 여기에 닉이 어린 여자와 바람을 피웠다는 사실이 밝혀지면서 그는 완전히 살인자로 찍힌다. 이에 닉은 뉴욕의 유명 변호사 태너(타일러 페리도 잘 한다)를 고용한다.    
한편 에이미가 읽는 일기는 따분한 시골에서 백수로 지내는 닉과 자신의 관계가 갈수록 상하면서 점점 닉으로부터 심각한 위협을 받는다고 말한다. 그리고 영화가 시작된 지 1시간(상영시간 2시간 반)쯤 지나 플롯이 충격적으로 변전하고 에이미의 대학시절 애인 데지(닐 패트릭 스미스)가 에이미가 두는 장기판의 말로 등장한다. 그런데 도대체 에이미는 어디로 사라졌는가. 영국 배우 파이크의 과거 이미지를 깨어버릴 영화로 독성이 있는 백합과 같은 모습으로 강인한 연기를 한다. R. Fox. 전지역.  ★★★½(5개 만점)  <한국일보 편집위원/hjpark1230@gmail.com>

해방자(The Liberator)

시몬 볼리바(에드가 라미레스)가 독립군을 이끌고 진격하고 있다.

스페인으로부터 해방전쟁 이끄는 영웅 일대기


남미를 300여년 간의 스페인의 혹독한 통치에서 해방시키는데 초석이 된 베네수엘라의 영웅 시몬 볼리바의 파란만장한 30여년 간의 삶을 그린 전기영화로 허우대는 멀쩡하고 볼만은 하나 감정적으로 개입이 안 되는 영혼이 부족한 작품이다. 이 영화와 엘리아 카잔이 만든 멕시코의 영웅 사파타의 인생을 그린 ‘비바 사파타!’를 비교해 보면 과연 전기영화는 어떻게 만들어야 하는가를 알게 될 것이다.
베네수엘라 태생의 알베르토 아르벨로가 감독하고 에드가 라미레스(‘칼로스’)가 주연한 이 영화는 역시 베네수엘라 태생으로 현 LA 필의 상임지휘자인 구스타보 두다멜이 처음으로 영화음악을 작곡해 화제가 됐는데 음악 역시 교과서적인 영화처럼 평범하다.
영화는 1828년 볼리바가 자신에 대한 암살시도를 모면한 1828년부터 시작해 1800년대 초기로 거슬러 올라가 베네수엘라 지방 부농의 아들인 볼리바가 스페인 궁정을 방문하는 장면으로 변전한다. 여기서 그는 아름다운 마리아-테레사 델 토로(마리아 벨베르데)를 만나 사랑에 빠지고 둘은 결혼해 볼리바의 고향으로 간다.
그러나 신혼 6개월 만에 마리아-테레사가 황열병에 걸려 사망하면서 볼리바는 파리로 가 방탕한 삶에 탐닉한다. 이런 그에게 남미 해방의 소명을 심어주는 사람이 급진보주의자요 인간적인 볼리바의 옛 스승 시몬 로드리게스(프란시스코 데니스).
볼리바는 집의 부를 사용해 소규모의 독립군을 조직하고 그의 군대는 서서히 동맹군을 얻게 된다. 영화는 독립군과 막강한 스페인군 간의 전투 액션과 볼리바의 개인적 삶과 그의 주변 인물들과의 관계를 번갈아가면서 엮었다.
남미의 영웅이 된 볼리바는 1819년 스페인으로부터 해방된 대륙의 북쪽지방을 통틀은 그랜 콜롬비아의 대통령으로 취임하나 독립군의 내분과 스페인의 집요한 공격으로 그랜 콜롬비아는 볼리바가 음모에 말려들어 암살된 후 수개월 만에 해체된다.
극적인 요소를  모두 갖추었으면서도 그것을 제대로 요리 못한 혁명영화로 혁명얘기가 에너지가 모자라고 불꽃이 튀질 않는다. 
라미레스의 연기는 좋지만 이 역시 피와 살이 있는 실물이라기보다 그림 같다. 
R. 일부 지역. ★★★(5개 만점)         <한국일보 편집위원/hjpark1230@gmail.com>

존 윌리엄스 축하

(Mathew Imaging)


마치 중세 기사영화의 나팔수들처럼 기를 단 트럼핏을 들고 무대 좌우의 객석에 서있던 14명의 미군 헤럴드 트럼핏 팀은 LA필과 함께 존 윌리엄스가 1984년 LA올림픽을 위해 작곡한 ‘올림픽 팡파르와 주제’를 요란하게 불어댔다.
30일 LA 다운타운의 디즈니 콘서트홀에서 구스타보 두다멜의 지휘로 열린 LA필의 시즌 개막 연주회는 오스카상을 5번이나 탄 영화음악 작곡가 존 윌리엄스(82)를 축하하는 행사로 진행됐다. 연주곡은 모두 그의 것으로 발췌곡식으로 연주됐다. 그런데 나는 발췌곡을 별로 좋아하지 않는다. 짜깁기 형식이어서 완성된 음악적 만족감을 느끼기가 쉽지 않다.
팡파르에 이어 무대 위에 설치된 대형 화면에 디즈니 홀의 모습을 담은 비디오가 영사되고 윌리엄스가 이 콘서트홀의 개막을 축하하기 위해 지은 현대 음악풍의 ‘사운딩스’가 연주됐다. 이어 바이얼리니스트 이츠학 펄만이 등장, ‘쉰들러 리스트’의 음악과 윌리엄스의 첫 오스카 수상 음악인 ‘지붕 위의 바이얼린’의 카덴자를 연주했다. 아름답고 섬세하면서도 힘 있는 연주다.
윌리엄스의 녹음된 육성이 “난 어렸을 때 칼싸움 영화를 좋아했다”고 과거를 회상하면서 스필버그의 만화영화 ‘틴 틴의 모험’ 중 결투장면을 그린 음악이 “휙 휙”하고 칼바람 소리를 내면서 홀을 메웠다.
화면에는 진 켈리, 타이론 파워, 버트 랭카스터, 스튜어트 그레인저, 에롤 플린 등 왕년의 펜싱영화의 스타들과 요즘의 해리슨 포드와 안토니오 반데라스 등이 나온 ‘스와시버클러’의 장면들의 몽타주가 쏜살같이 지나갔다. 이 날 영화장면이 영사된 것은 이 때 뿐인데 아마도 음악이 연주될 때마다 영화장면을 보여주면 청중들이 음악에서 멀어질 것을 염려해서인 것 같다.
윌리엄스와 스필버그는 단짝이어서 이 날도 여러 편의 스필버그 영화의 음악이 연주됐다. 이어 연주된 오케스트라 단원들의 손가락 튕기는 소리를 곁들인 장난기 짙은 재즈풍의 음악이 있는 ‘캐치 미 이프 유 캔’도 스필버그의 영화다.
두다멜이 마이크를 집어 들더니 오케스트라 석에 부인과 함께 앉아 있는 윌리엄스를 향해 “우리는 음악하면 바흐와 말러 그리고 쇼스타코비치를 생각하지만 오늘 바로 여기에 존 윌리엄스가 있다”면서 “그는 위대한 음악가이자 위대한 인간”이라고 윌리엄스를 찬양했다.
그런데 두다멜도 3일 개봉된 남미 해방의 영웅 시몬 볼리바의 삶을 그린 영화 ‘해방자’(‘위크엔드’판 영화평 참조)의 음악을 작곡, 영화음악 작곡가로 데뷔했다.
이어 두다멜은 “여러분이 잘 아는 음악”이라더니 ‘스타 워즈’의 음악을 전신운동 하듯이 활발한 제스처를 써가면서 힘차게 연주했다. 화면에는 애니메이션으로 된 영화장면의 스케치가 음악에 맞춰 우주선의 속도로 맹렬히 달려갔다.
앙코르는 LA 아동합창단과 엔젤레스 코랄이 부른 서정적이요 아름다운 ‘아미스태드’의 노래 ‘너의 눈물을 말려라 아프리카.’ 음악이 갑자기 분위기를 바꾸더니 두다멜이 ‘조스’의 겁나는 첫 소절을 짧게 연주했다. 무대 위에 있던 아동합창단원들이 “악 악”하고 비명을 지르면서 퇴장했다. 이날 연주회는 이렇게 쇼 기분이 다분했다.
이어 만면에 미소를 머금은 두다멜은 윌리엄스에게 다가가 그를 무대 위로 안내하면서 바톤을 넘겼다. 윌리엄스는 ‘스타 워즈’의 유명한 ‘제국의 행진’을 위풍당당하게 연주했다(사진). 음악 속에 영화에 나온 백색제복의 ‘제국의 스톰트루퍼’들과 함께 흑색망토에 흑색헬멧을 쓴 다트 베이더가 적색 광선검을 휘두르면서 무대에 등장, 클라이맥스를 장식했다. 천장에서 색종이가 떨어져 내리는 가운데 청중들이 기립박수로 노 음악가의 업적을 치하했다.
원래 이런 갈라 스타일의 음악회는 진짜 음악과는 다소 거리가 있다. 보기엔 화려한데 내실이 아쉽게 마련이다. 뭘 먹긴 먹었는데 여전히 허기가 지는 느낌이다.
연주회 내내 기다린 것이 ‘E.T.’와 ‘잃어버린 성궤의 약탈자’ 그리고 ‘제3 세계와의 조우’의 음악인데 이들과 함께 ‘스타 워즈’와 ‘조스’의 음악을 조곡식으로 연주했더라면 훨씬 더 즐거웠을 텐데 하는 아쉬움이 남았다.
작년에 ‘책 도둑’의 음악을 작곡한 존 윌리엄스를 인터뷰했다. 인자한 미소를 띤 윌리엄스는 자상하고 친절한데다가 매우 겸손해 절로 존경심이 우러났다. 윌리엄스는 그때 “내가 작곡한 음악은 다 내 자식과 같아 모두 사랑스럽다”면서 “그 중에서 특별히 고르라면 ‘스타 워즈’와 ‘제3 세계와의 조우’”라고 말했다.
연필로 종이 위에 작곡을 한다는 그는 “8순에도 여전히 작곡을 할 때면 도전과 흥분을 느끼곤 한다”면서 “밤 9시에 작곡을 시작해 새벽 3시에 끝낸다”고. 그래서 이제 그에게 가장 중요한 것이 건강이라고 덧붙였다.
나는 음악가들을 만날 때면 늘 영감이 어디에서부터 오는가 라고 묻는다. 윌리엄스는 이 질문에 “번뜩 악상이 떠오르는 것이 아니라 수주간에 걸친 노력 끝에 나온다”면서 “작곡은 내게 하나의 발견의 과정”이라고 말했다. 윌리엄스의 무병장수를 기원한다.  
                                     <한국일보 편집위원/hjpark1230@gmail.com>

2014년 10월 2일 목요일

‘은퇴한 킬러들’컴백 붐

‘노벰버 맨’의 피어스 브로스난.
‘테이큰’의 리암 니슨.
‘이퀄라이저’의 덴젤 워싱턴.
‘존 윅’의 키아누 리브스.



















케빈 코스너‘3 days…’, 브로스난‘노벰버 맨’
덴젤 워싱턴·키아누 리브스도 다시 총잡아
‘테이큰’으로 대박 리암 니슨도 3편 제작



나이 50 넘은 사람들의 보험체계인 AARP에 가입할 자격이 있는 중년의 은퇴한 킬러들이 마지막 한 번의 임무를 수행하기 위해 계속해 스크린에 컴백하고 있다. 
옛날에는 보통 은퇴한 형사들이 마지막 한 번의 임무수행을 위해 일선에 복귀했는데 요즘에는 전직 히트맨들이 스크린에 컴백하고 있는 것이 특징이다. ‘내 명함에 은퇴란 없다’는 식이다. 
리암 니슨, 케빈 코스너, 피어스 브로스난, 덴젤 워싱턴 그리고 키아누 리브스 등이 최근 마지막 임무를 치르기 위해 은퇴에서 컴백했거나 컴백할 킬러들.              
제일 먼저 케빈 코스너(59)가 ‘스리 데이즈 투 킬’(3 Days to Kill)에서 딸(헤일리 스타인펠드)과 부녀지간의 정을 새롭게 하기 위해 CIA에서 은퇴했다가 마지막 임무를 위해 컴백한 뇌암을 앓는 킬러 이산 레너로 나왔다. 그러나 2월에 나온 이 영화는 전 세계적으로 달랑 5,200만달러를 버는 흥행 부진을 보였다.
8월 마지막 주말 노동절 연휴 흥행을 노리고 개봉된 피어스 브로스난(61)이 주연한 킬러영화 ‘노벰버 맨’(The November Man)도 역시 흥행이 부진했다. 여기서 브로스난은 은퇴한 CIA 킬러 피터 데브로로 나와 한적한 동네에서 조용히 살고 있다가 역시 마지막 임무를 수행하기 위해 마지못해 컴백한다. 노동절 연휴 엿새 간 11.900만달러의 흥행수입을 낸 뒤 이미 박스오피스 탑 10권에서 밀려 났다.
26일에는 코스너와 동갑인 덴젤 워싱턴도 ‘이퀄라이저’(The Equalizer)에서 은퇴한 CIA 킬러 로버트 맥콜로 나온다. 과거를 손 씻고 보스턴의 홈마트에서 일하며 혼자 조용히 살고 있는 맥콜은 자기가 단골로 다니는 식당에서 알게 된 10대의 러시아 창녀(클로이 그레이스 모리츠)를 러시안 마피아들로부터 구하기 위해 다시 총과 칼을 뽑아든다. 
맥콜은 홈마트에 있는 온갖 건축용 도구를 사용해 러시아에서 파견된 킬러와 대결하는데 굉장히 폭력적이다(영화평 참조).
이들 중에 제일 막내인 키아누 리브스(50)도 은퇴했다가 다시 총을 뽑아든다. 리브스는 ‘존 윅’(John Wick)에서 은퇴한 킬러 존 윅으로 나와 러시안 마피아(요새 시국을 보여주듯이 요즘 나쁜 놈들은 대부분 러시안들이다)에게 아내와 애견이 살해되고 자동차까지 도둑맞자 이를 갈면서 복수를 자행한다.
중늙은이 킬러들의 컴백 붐을 일으킨 장본인은 리암 니슨(62)이다. 니슨은 ‘테이큰’(Takenㆍ2008)에서 그동안 소원했던 딸과의 관계를 봉합하기 위해 은퇴한 CIA 스파이 브라이언 밀스로 나왔다가 파리를 방문한 딸이 괴한들에게 납치되면서 다시 총을 잡는다. 
이 영화와 속편이 전 세계적으로 9억달러의 흥행수입을 내면서 내년 1월9일에는 제3편 ‘테이큰 3’가 나온다. 이 영화로 드라마 배우인 니슨은 중늙은이 액션스타 자리를 굳혔다.
그의 이런 인기를 업고 19일에 개봉된 ‘묘비 사이를 걷다’(A Walk among the Tombstones)에서도 니슨은 허가 없는 사립탐정으로 일하는 은퇴한 뉴욕 형사로 나와 마지못해 러시안 마약 밀매자들을 위해 일한다. 개봉 사흘 간 1,300만달러의 흥행수입을 냈다. 기대치만 못한 흥행성적이다.
이런 영화들의 공식은 일정하다. 저 예산으로 액션을 강조하고 수퍼스타는 아니나 고정 팬들을 지니고 있는 배우들을 사용해 이들을 곤경에 처하게 한 뒤 팬들의 연민과 동정을 자아내게 한다는 것이다.    
그러나 이런 영화들의 계속되는 흥행 성공만을 믿고 비슷한 영화들이 양산되다 보면 반드시 그 중 일부는 흥행에 실패, 은퇴한 중늙은이 킬러들도 다시 일선에 복귀하기를 꺼려하게 될 것이라고 전문가들은 말했다.                 <한국일보 편집위원/hjpark1230@gmail.com> 

프라이드(Pride)

런던에서 게이와 레즈비언들이 파업광부 지지 퍼레이드를 벌이고 있다.

광부들과 동성애자의 이색적 연대 감동터치


1984년 ‘철의 나비’ 대처 수상이 지배하던 영국에서 일어난 광부들의 총파업과 이들과 그들의 가족을 위해 기금을 모금한 런던의 게이와 레즈비언들의 걸맞지 않는 우호관계를 그린 드라메디로 기를 쓰고 관객의 심금을 울리려고 애를 써 다소 부담이 가지만 대중이 즐길 수 있는 영국작품이다.
나오는 인물들이 너무 많고 또 너무 광범위하게 여러 가지 얘기를 다루고 있어 좀 산만하고 또 잘 몰랐던 사실이지만 일종의 언더독의 승리담이어서 기시감이 있으나 감독 매튜 와커스는 모든 인물들을 사랑하면서 정성과 애정을 다해 다뤄 가슴에 와 닿는다.
광부들의 파업과 이에 대한 대처의 냉정한 반응을 TV 뉴스로 보던 젊은 게이 행동주의자 마크(벤 슈네처-뉴요커로 기막히게 영국 액센트를 쓰는데 실제의 마크는 26세로 에이즈로 사망했다)는 런던 게이행진에 버켓을 들고 나와 광부들의 가족을 돕기 위한 모금을 한다. 여기에 동참하는 것이 런던 교외에 사는 10대의 조(조지 맥케이). 그런데 조는 자신의 성적 기호를 숨기고 있다.
동성애자들과 블루칼러인 광부들은 서로 어울릴 처지가 아닌데도 마크는 둘이 모두 압박 받고 사회에서 밀려난 층이라는 공통점이 있다고 믿고 대처를 공동의 적으로 삼고 일단의 동료들과 함께 ‘광부들을 후원하는 레즈비언과 게이들’(LGSM)이라는 단체를 조직, 광부 돕기 기금모금 캠페인을 벌인다. 
그리고 이들은 파업을 하고 있는 사우스웨일즈의 작은 광산마을을 찾아가나 처음에는 광부들로부터 냉대를 받는다. 남자들과 반대로 이들을 반갑게 맞는 것은 여자들. 그 중에서도 정열적이요 생의 소금과도 같은 동네 반장격인 헤피나(이멜다 스턴튼은 언제나 호연)와 진보적 사고방식을 지닌 젊은 주부 시안(제시카 거닝이 연기를 아주 잘 한다-실제의 시안은 후에 지방의원이 됐다)과 나이 먹은 상냥한 그웬(멘나 트러슬러) 등이 이들을 반갑게 맞는다.
남자 중엔 시를 사랑하는 아름다운 영혼의 소유자인 클립(빌 나이)이 이들을 환영하고 노조의 중재자인 다이(패디 콘시딘)도 이들을 조심스럽게 맞아들인다. 
결국 광부들도 LGSM 회원들의 진심에 감동해 서서히 마음이 녹는데 이런 과정을 서술하면서 여러 가지 판에 박은 에피소드들이 진열된다. 그 중에서 활기찬 것은 게이인 조나단(우락부락하게 생긴 도미닉 웨스트가 역을 잘 소화한다)이 동네사람들이 잔뜩 모인 교회 홀에서 동네 아주머니들과 신나게 디스코를 추는 장면.
LGSM팀이 웨일즈로 내려오고 이에 대답 차 헤피나 등 동네 아주머니들이 런던을 방문하면서 잡다한 에피소드들이 웃음과 눈물을 자아내게 만든다. 여기에 질질 끄는 파업에 서서히 무너져 내리는 광부들의 결단과 광부 돕기와 에이즈 대처 문제를 놓고 일어나는 LGSM의 내부갈등 등 얘기가 지나치게 잔가지를 많이 친다.
그러나 배우들의 연기가 모두 좋고(특히 젊은 배우들이 영화에 넘치는 에너지를 공급한다)드라마와 코미디와 감상적인 면을 고루 잘 섞어 흐뭇한 기분을 느끼게 되는 즐거운 영화다. 1985년 런던에서 열린 게이 퍼레이드에 광부들과 그들의 아내들이 대거 참석하는 마지막 장면은 콧등을 시큰하게 만든다. 
R. CBS Films. 일부 지역.   ★★★½(5개 만점)  <한국일보 편집위원/hjpark1230@gmail.com> 

프라이드 (Pride)

로버트(덴젤 워싱턴)는 어린 창녀를 위해 다시 총을 든다.

가여운 어린 창녀를 위해 처절한 복수를 펼치는…


덴젤 워싱턴이 나오는 서스펜스와 스타일을 갖춘 폭력적이요 흥분되는 킬러무비로 재미는 있는데 쓸데없이 폭력적이다. 총과 칼과 주먹은 물론이요 코르크스크루와 드릴 그리고 온갖 건축용 날카로운 도구들이 총 동원돼 수많은 러시안 마피아들이 황천으로 가는데 화면에 피가 흥건하다. 고개를 돌리게 된다.
워싱턴이 오스카상을 탄 ‘트레이닝 데이’를 감독한 안트완 후콰가 다시 워싱턴과 콤비를 이뤄 만든 쓴 맛나고 거칠고 사납고 가차 없는 영화인데 흥행에 성공할 것을 자신한 소니사는 벌써 속편을 준비하고 있다.
과거를 지닌 고독하고 과묵한 전직 킬러 스파이가 학대 받는 어린 창녀를 도와주면서 법을 무시하고 자기 마음대로 무력과 폭력을 휘두르는 얘기는 사실 새로울 것이 없지만(이 영화는 보스턴판 ‘택시 드라이버’다) 눈부신 액션과 느와르의 음습한 분위기 그리고 워싱턴의 신비감과 카리스마 가득한 자태와 연기 때문에 볼만하다.
보스턴의 대형 건축자재상 홈마트에서 일하는 로버트 맥콜(워싱턴)은 정결하고 검소한 아파트에서 혼자 사는 과묵한 불면증자로 침착한 도사형. 밤이면 동네 다이너에 찾아가 자기 지정석에 앉아 차를 마시면서 ‘노인과 바다’와 ‘투명인간’ 같은 책을 읽는다. 로버트의 정체는 영화 중간에 가서야 밝혀지나 우리는 이미 그가 과거가 있고 어두운 일에 종사했을 것이라는 추측을 쉽게 할 수 있다.
로버트는 식당에서 10대 러시안 창녀 테리(클로에 그레이스 모리츠)를 알게 되는데 어느 날 테리가 핌프에게 죽도록 얻어맞아 입원한 것을 보고(테리는 그 후 영화에서 사라졌다가 끝에 다시 나타나는데 영화는 철저히 워싱턴의 것이다) 테리의 소유주인 러시안 마피아 본부로 찾아간다. 그리고 현찰 8,000달러를 내밀면서 테리를 해방시키라고 요구한다.
이 요구가 거절되면서 로버트는 방안에 있는 5명의 마피아를 무자비하게 살해하는데 긴 대화에 이어 천둥번개 치듯 하는 살해 장면이 멋지게 안무되고 연출됐다. 로버트는 이들을 살해하기 전에 눈으로 마치 고성능 컴퓨터가 감지하듯이 방안의 마피아들의 위치와 무기로 쓸 만한 것들 그리고 내부구조 등을 전광석화처럼 파악한다. 
보스턴의 술집과 에스콧 서비스와 부패한 경찰까지 손 안에 쥐고 있는(이것이 사실이라면 큰일이다) 러시안 마피아가 이렇게 당하자 러시아의 마피아 본부에서 로버트를 처치하기 위해 교활하고 잔악하고 지능이 뛰어난 사이코 테디(마턴 코카스가 웃으며 사람 잡는 연기를 겁나게 한다)를 보스턴으로 파견한다.      
그러나 테디의 로버트 살해 시도는 늘 테디보다 한 발 앞서가는 로버트 때문에 번번이 실패하고 이로 인해 테디는 좌절감에 빠진다. 영화 중간에 가서 로버트가 과거 자신의 정보부 상사였던 부부(빌 풀맨과 멜리사 리오)를 찾아가면서 그의 정체가 밝혀진다. 
마지막 장면은 홈마트 안에서의 로버트와 테리의 장시간에 걸친 대결로 이어지는데 서스펜스와 잔인한 액션이 손에 땀을 쥐게 한다. 이 영화는 에드워드 우드워드가 나온 1985~89년 방영된 미국의 동명 TV 시리즈를 바탕으로 한 것이다. R. 전지역.  <한국일보 편집위원/hjpark1230@gmail.com> 

‘로이 최의 쿠바 샌드위치’



LA에 음식트럭 붐을 일으킨 ‘고기 바비큐’의 창업자인 로이 최(44)가 프라이팬에 각종 재료를 놓고 쿠바 샌드위치를 만드는 모습이 마치 화가가 캔버스에 그림을 그리는 것 같다. 맞다. 요리도 예술이라고 한다.
한국과 멕시코 음식을 혼성한 요리법을 고안해 전 미국이 알아주는 셰프가 된 로이가 만드는 쿠바 샌드위치의 구수한 냄새가 후각을 자극하면서 아직 저녁을 못 먹은 내 위장을 자극한다.
로이의 삶과 그의 음식트럭에서 영감을 받아 만들어 5월에 개봉, 빅히트한 영화 ‘셰프’(Chef)의 DVD 발매를 기념한 요리시범이 23일 LA의 선셋 타워 호텔에서 있었다. 로이는 영화를 감독하고 각본을 쓰고 주연도 한 존 홰브로의 요리선생으로 자문했고 그가 개발한 디저트 ‘베리즈 앤 크림’도 영화에 선을 보였다.        
요리시범에는 영화에서 셰프로 나온 존과 그의 어린 아들 역의 엠제이 앤소니가 나와 로이의 지시대로 쿠바 샌드위치를 만들었는데(사진) 로이가 재료를 다루는 동작이 마치 요술쟁이가 공 놀리듯 한다. 쿠바 샌드위치의 재료는 빵과 겨자(로이는 빵에 겨자를 바를 땐 빵 전체에 골고루 발라야 한다고 가르쳐 줬다)와 오이지와 돼지고기와 햄과 스위스치즈.
존은 로이의 지시대로 요리를 하면서 “요리는 하나의 비전이며 셰프는 타고난 선생”이라고 로이를 치켜세웠다. 그리고 “난 로이 덕택에 집에서 온갖 음식을 다 해먹는다”고 자랑했다. 시범이 끝나고 쟁반에 담겨 나온 샌드위치를 포도주에 곁들여 먹어보니 맛이 고소하다. “여미.”
내가 로이와 악수를 나누면서 한국일보 기자라고 자신을 소개하니 그는 “반갑습니다”라고 깍듯이 인사한다. 로이에게 “당신에게 있어 음식은 무엇인가”라고 물었더니 그는 “나는 말도 별로 잘 못하고 또 스포츠 같은 것도 크게 즐기는 편이 아니어서 음식으로 사람들과 대화하고  교통한다”고 말했다. 재미있는 음식을 만들어 그것을 통해 상호작용하는 커뮤니티를 조성할 수 있다는 것이 그의 신념이다.
‘셰프’는 음식영화이자 부자간의 사랑을 강조한 영화로 로이는 “이 영화는 음식 관계자 모두에게 큰 영감을 주고 아울러 그들에게 명예로운 작품”이라면서 “존이 처음에 각본을 가져 왔을 때 읽고 감동했고 영화도 거의 각본 그대로”라고 존을 칭찬했다.
LA에서 시작해 마이애미로 이동한 뒤 거기서 다시 뉴올리언스와 오스틴을 거쳐 LA로 돌아오는 로드 무비이기도 한 ‘셰프’는 음식과 가족 사랑으로 채워진 코미디 드라마다. 소피아 베르가라, 존 레구이사모, 더스틴 호프만, 스칼렛 조핸슨, 앤디 가르시아, 올리버 플랫 및 로버트 다우니 주니어 등 초호화 캐스트. 시각과 후각과 미각을 자극하는 음식이 화면을 장식, 영화 내내 군침을 삼키다가 영화가 끝나자마자 식당으로 달려가게 만든다.
‘아이언 맨’을 감독하기도 한 존과는 구면이어서 반갑게 악수를 나눈 뒤 “당신이 제일 좋아하는 한국 음식은 무엇인가”라고 물었다. 존은 “나는 김치라이스가 제일 좋다”면서 “그 걸 집에서도 해먹고 또 코리아타운에 있는 라인호텔의 로이의 식당(로이는 이 밖에도 LA와 인근 도시에 여러 개의 식당을 소유하고 있다)에서 로이의 메뉴를 즐긴다”고 말했다. 옆에서 이를 듣던 로이가 “그 김치 내가 갔다 줬다”며 거들었다.
이어 존은 “로이에게서 많은 것을 배웠다”면서 “앞치마 두르는 방법도 하나의 의식이라는 것을 깨달았다”고 덧붙였다. 존은 현재 디즈니의 대규모 액션 모험영화 ‘정글북’을 감독하고 있다.
로이는 중학교에 다닐 때 말썽꾸러기여서 부모가 군사학교에 보낼 정도였다. 20대 초반에는 마약에도 손을 댔고 한때 법대에도 다녔지만 곧 중퇴했다. 로이에게 재생의 문을 열어준 사람이 셰프 에메릴 라가스. 에메릴이 TV에서 요리강좌를 하는 것을 보고 있는데 에메릴이 TV 밖으로 나와 자기에게 “이 냄새 좀 맡아 봐. 이것 맛 좀 봐. 뭐든지 해”라고 말하는 것 같았다고 한다. 그래서 로이는 요리학교에 등록했고 에메릴은 로이의 생명의 은인이 된 셈이다.
로이는 덜 풍족한 사람들을 위해 음식을 만들어주기를 좋아한다. 지금도 틈이 나면 사우스센트럴 LA에 가서 학생들에게 요리를 가르쳐 준다. 로이는 “이제 나는 마약 대신 사람들 먹이는 일에 중독됐다”고 말한다. 그리고 동료 셰프들에게도 “특권층만 먹일 것이 아니라 그렇지 못한 사람들도 먹이는 방법을 생각하라”고 조언한다.
2010년 ‘10대 최고의 신인 셰프’로 선정된 로이는 자서전 겸 요리책인 ‘LA 선: 마이 라이프, 마이 시티, 마이 후드’(LA Son: My Life, My City, My Food)를 출간했다. 그리고 CNN은 곧 로이의 쇼 ‘스트릿 푸드’(Street Food)를 방영한다. 로이의 옆에 있던 존이 “그 쇼에는 내가 제일  먼저 게스트로 나온다”고 뽐냈다. 쇼의 시청률이 하늘 높이 치솟기를 바란다. ‘코리안 후드 넘버 원!’   <한국일보 편집위원/hjpark1230@gmai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