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이야기

2014년 8월 29일 금요일

로빈 후드의 마지막 사랑(The Last of Robin Hood)

반세기 전 에롤 플린과 15세 단역소녀 애정행각


애들랜드와 플린이 단란한 시간을 즐기고 있다.

천하의 바람둥이이자 물고기가 물마시듯 술을 마시고 마약을 즐겼던 할리웃 황금기의 미남 수퍼스타로 ‘로빈 후드의 모험’에 주연한 에롤 플린과 그가 사랑했던 15세난 단역배우 베벌리 애들랜드 간의 메이-디셈버 로맨스를 그린 전기 애정 드라마다. 플린의 과거를 들여다보는 재미는 있으나 각본이 허약해 영화가 물에 물 탄 것처럼 심심하다.
당시 세상을 떠들썩하게 만들었던 사건을 좀 더 산성이 강하게 처리하면서 차라리 야한 태블로이드 이야기 식으로 다루었더라면 좋았을 것이다. 톡 쏘는 신랄한 맛이 모자라고 희대의 스캔들을 너무 온순하게 다뤄 나른한데 두 감독 리처드 글래처와 워시 웨스트모어랜드는 플린을 매우 동정적으로 묘사하면서 관객들도 그의 편을 들라는 식으로 다뤘다. 
그러나 이런 부족함에도 불구하고 이 영화는 과거 할리웃의 실상과 이면을 들여다본다는 점과 함께 플린을 판에 박듯이 닮은 케빈 클라인의 모습과 연기로 인해서 보고 즐길 만하다.
영화는 베벌리의 허영과 명성에 눈이 먼 어머니 플로렌스의 딸에 관한 전기 ‘빅 러브’와 베벌리 및 그의 할리웃 고교 동창생으로 플린의 조수였던 로니 쉐들로(맷 케인)와의 인터뷰를 바탕으로 만들었다.
오디션 차 영화사에 온 15세난 베벌리(다코타 패닝-훨씬 나이 들어 보인다)를 보고 반한 플린은 베벌리를 유혹해 대뜸 섹스를 한다. 
플린은 이 때 세 번째 아내가 있었다. 한편 베벌리는 할리웃에서의 이런 일은 당연지사로 여기고 일회 행사라 치부하는데 플린이 베벌리를 찾아와 “나는 너를 진실로 좋아한다”고 고백한다.
이런 둘 사이에 개입하는 사람이 전직 댄서로 의족을 한 베벌리의 어머니 플로렌스(수전 서랜든). 플로렌스는 허영과 명성에 눈이 먼 여자로 베벌리를 스타로 만들려고 필사적인 노력을 한다. 그래서 미성년자인 딸의 나이도 속이고 플린과 딸의 관계를 말린다기보다 오히려 부추긴다. 
뒤늦게 베벌리가 미성년자인 것을 안 플린은 베벌리와 동행 때 플로렌스를 따라 붙게 시켜 세상의 눈을 속인다. 그리고 플로렌스는 딸 덕택에 할리웃의 호사를 공짜로 즐긴다. 그런데 플린은 1943년에도 13세 소녀와의 성관계로 재판을 받았으나 무죄판결을 받았다. 
1959년 플린이 심장마비로 50세로 사망하기 2년 전부터 시작한 영화는 2년간의 플린과 베벌리의 관계를 에피소드 식으로 그리고 있다. 스타가 되려고 에를 쓰는 베벌리를 위해 플린은 스탠리 쿠브릭을 만나 ‘롤리타’에 자신과 베벌리를 써달라고 부탁을 하나 거절당한다. 또 플린은 자기 돈을 써 쿠바에서 베벌리를 출연시켜 싸구려 영화 ‘쿠바의 여전사들’을 만들기까지 한다. 
깜짝 놀랄 만큼 플린을 닮은 클라인이 연기를 기차게 잘하는데 패닝은 다소 모자란다. 역시 메이-디셈버 로맨스를 다룬 ‘롤리타’에 나온 수 라이언의 순진하면서도 섹시한 모습과 연기를 참고했는지 모르겠다. ★★★(5개 만점) <R. Samuel Goldwyn. 랜드마크(310-470-0492).>   

범죄 인생 (Life of Crime)

강약 없이 단조로운 납치범죄 코미디

오델(왼쪽)이 복면을 씌운 믹키 앞에서 믹키의 남편에게 전화를 건다. 가운데는 루이스.

제니퍼 애니스턴이 나오는 납치범죄 코미디로 무미건조하다. 지극히 무기력한 영화로 사실적이라기보다 농담 같은데 그 농담마저 별로 우습지 않다. 그리고 나오는 인물들의 성격개발도 부족해 배우들이 연기는 괜찮은데도 소모된 셈이다.
강렬한 충격이 결여된 온순하기 짝이 없는 영화의 원작은 범죄소설 작가 고 엘모 레너드(‘겟 쇼티’)의 ‘스위치'. 귀엽게 봐주려고 애를 쓰는데도 서술형태의 굴곡이나 흐름에 강약이 없어 단조롭다. 
1970년대 말 디트로이트. 서푼짜리 범죄인생 오델(야신 베이)은 교외에 사는 사업가 부자 프랭크(팀 로빈스)가 바하마에 젊은 섹스머신 정부 멜라니(이슬라 피셔)와 거액의 빼돌린 돈을 숨겨 놓았다는 것을 알고 상냥한 성격의 동료 루이스(존 호크스)에게 프랭크의 트로피 아내인 믹키(애니스턴)를 납치해 몸값을 받아내자고 제의한다.
오델과 루이스는 나치 숭배자로 다량의 총기를 소유하고 있는 리처드(마크 분 주니어)를 팀에 합류시켜 프랭크가 바하마에 간 사이 범행에 들어간다. 그리고 납치한 믹키를 리처드의 집에 숨겨 놓는다. 이어 오델은 바하마로 전화를 건다.
“네 아내를 다시 보고 싶으면 100만달러를 내라”는 전화를 받은 프랭크는 전화를 끊은 뒤 멜라니와 함께 좋아서 죽겠다며 깔깔 대소를 한다. 프랭크는 멜라니와 살기 위해 믹키 모르게 이미 이혼장을 제출한 터라 아내의 몸값을 지불할 생각이 눈곱만큼도 없는 것이다.
이에 당황하게 된 것은 오델과 루이스. 믹키를 어떻게 할 것이냐 그것이 문제로다. 믹키는 납치범들을 통해 남편이 바람을 피우고 또 이혼장까지 냈다는 것을 알고 복수의 이를 간다. 그런데 믹키가 범인들과 함께 지내면서 믹키와 착한 마음의 소유자인 루이스 간에 묘한 감정이 소생한다. 스톡홀름 신드롬이다. 
오델과 루이스는 믹키를 풀어주기로 하는데 자유의 몸이 된 믹키는 오델과 루이스에게 프랭크에 대한 보복을 함께 시도하자고 제안한다.
재미있고 영특한 내용을 제대로 살리지 못한 반면 연기들은 다 좋은 편이다. 특히 늘 취약점을 안 보여주고 뻣뻣이 굴던 애니스턴이 남편에게서 구박을 받다가 반격을 가하는 아내의 역을 심각하면서도 우습게 잘한다. 대니얼 쉑터 감독. R. Roadside Attractions.            선댄스 선셋 등 일부지역. ★★½(5개 만점)

‘해무’



최근 한국영화 10편을 봤다. 대부분 한국서 히트했거나 해외 영화제에 초청을 받은 것들이다.
한국에서 보다 유럽에서 더 유명한 김기덕 감독의 복수극 ‘일대일’은 한국의 구정권과 현 사회비판을 앞에 내세운 감독 자신의 신세한탄이자 화풀이 같은 영화다. 김 감독 특유의 폭력과 잔인이 판을 치는 설교조의 타작이다.
이선균이 나오는 범죄스릴러 ‘끝까지 간다’는 빈자의 양말처럼 플롯에 구멍이 많아 그 내용이 도저히 믿어지지가 않는다.
하정우가 주연하는 ‘군도’는 철종시대 천민들의 반란을 그린 한국판 ‘로빈 후드’인데 코미디와  사극과 웨스턴과 쿵후 영화를 짬뽕한 국적불명의 튀기 같은 영화. 음악마저 스파게티 웨스턴식인 넌센스다.
‘스톤’은 바둑과 폭력을 접목한 이색적인 내용으로 바둑과 인생을 비교하면서 인간적 얘기를 다뤘으나 잔인한 폭력이 이런 뜻을 저해한다. 볼만은 하다.
‘야간비행’은 지난해에 골든 글로브와 오스카 외국어 영화상 후보로 출품한 ‘불량소년’ 스타일의 소품. 청소년 문제와 동성애를 다뤘으나 깊이가 부족하고 진행속도가 처지는데 이것 역시 폭력적이다.
설경구가 나온 ‘소원’은 아동 성폭행을 당한 한 가족의 비극을 희망으로 승화시키는 과정을 소박하고 곱게 그렸다. 사회문제를 다룬 영화로 규모가 작아 마치 TV 영화를 보는 것 같지만 잘 만들었다.
청소년 성폭행 문제를 다룬 ‘한공주’는 단아한 소품인데 후반 들어 진행이 축 처진다. 역시 사회문제를 다룬 영화인데 주제 외에 주변 얘기를 너무 많이 늘어놓아 당초 하고자 한 얘기가 제대로 전달이 안 되고 있다. 그러나 볼만한 영화다.
배두나가 주연한 폭력에 시달리는 불우아동과 동성애 문제를 다룬 ‘도희야’는 볼만한 소품이나 강력한 클라이맥스에 이르기 전까지 같은 얘기를 반복하고 있어 보면서 지치겠다. 이 것 역시 폭력이 자심하다. 다소 맹한 모습과 연기로 알려진 배두나가 과거를 지닌 여자의 연기를 안으로 가라 앉혀 강한 저류로 몰아가지 못해 무기력해 보이기까지 한다. 이 영화는 이창동 감독이 제작을 맡고 정주리가 감독했는데 9월4일부터 열리는 올 토론토 국제영화제 ‘도시기행’(올해는 서울) 부문에 초청됐다.
한국에서 1,600만명이 관람하면서 거국적 뉴스가 된 ‘명량’은 그저 보고 즐길 만한 액션 사극이다. 이순신 장군의 명량대첩을 그린 우국충정의 영화로 동양대 진중권 교수의 말처럼 ‘졸작’이라고 까지는 할 수 없지만 아주 평범한 오락영화다.
우선 이순신 역의 최민식이 전연 카리스마가 없고 성격개발도 전무하다. 그리고 영화 전반부는 말이 많은 드라마요 후반부는 액션영화로 양분돼 마치 2개의 영화를 보는 것 같다. 액션신은 볼만하나 너무 길어 부담이 가고 컴퓨터 특수효과도 엉성하다.
나는 이 영화를 보면서 자연 아키라 쿠로사와의 ‘란’과 같은 드라마와 액션의 절묘한 조화와 뚜렷한 인물과 성격묘사를 비롯해 장엄과 우아미를 고루 갖춘 사무라이 사극을 생각하지 않을 수가 없었다.
‘명량’이 한국영화 사상 초유의 관람객수를 기록하면서 국가를 들었다 놓을 듯한 사건이 된 이유는 과연 무엇일까. 현 한국민들의 반일감정과 백성을 먼저 생각한 진정한 지도자인 이순신과는 다른 현 한국의 무능하고 부패한 정치인들에 대한 반동이 작용했다는 분석이 있다. 그리고 영화의 배급사인 CJ 엔터테인먼트의 스크린 독과점으로 인한 싹쓸이 작전도 주효했다는 해석도 있었다. 여기에 ‘너도 봤으니 나도 봐야지’ 하는 무리의식도 한몫 했을 것이다. 좌우지간 나로서는 이 영화의 흥행대박이 불가사의할 뿐이다.
내가 본 10편의 영화 중 가장 인상적인 것이 봉준호가 제작하고 심성보가 감독한 생존문제를 강인하고 강렬하게 그린 실존주의적 영화 ‘해무’다(사진.) 물고기 대신 한국으로 밀입국을 시도하는 재중 동포를 싣고 귀항하는 트롤선 어부들과 밀입국자들과의 관계를 그린 사납고 거친 스릴러로 현실성이 강하다. 인간의 수성과 함께 휴머니즘을 충격적이면서도 따스하게 그렸다. 연기들도 좋다. ‘해무’는 올 토론토 국제영화제 갈라 부문에 초청됐다.
문제는 끔찍하고 잔인한 폭력. 이런 폭력은 한국영화의 장점이자 단점이라는 이중성을 지녔다. 한국영화는 세계적으로 사납고 거칠며 폭력적이요 비타협적인 것으로 정평이 나있는데 많은 경우 이런 특징을 살린다고 폭력을 남용하고 있다.
한국영화의 또 다른 문제는 긴 상영시간. ‘벤-허’도 길지만 그것은 충분한 내용 서술을 위한 시간인 반면 한국영화들은 쓸데없이 시간을 끄는 경우가 많다.            
한국영화는 그동안 질적 기술적으로 큰 발전을 이뤘지만 이웃 일본과 달리 아직 한 번도 오스카상 후보에 오른 적이 없다. 이번 오스카상 후보로 ‘해무’를 밀어볼 만한데 폭력이 큰 핸디캡이다.    <한국일보 편집위원 / hjpark1230@gmai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