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이야기

2014년 11월 12일 수요일

‘잔 윅’ 키아누 리브스


“색다른 범죄자들 이야기에 끌려 출연”


현재 상영 중인 유혈폭력이 난무하는 액션 스릴러‘잔 윅’(John Wick)에서 개인적 복수를 위해 은퇴에서 다시 범죄의 세계로 돌아온 무자비한 킬러로 나온 키아누 리브스(50)와의 인터뷰가 최근 LA의 할리웃 외신기자협회(HFPA) 사무실에서 있었다. 덥수룩한 검은 수염만 없었다면 50이라곤 믿어지지 않을 만큼 청년의 모습을 한 리브스는 단단한 체구의 늘씬한 미남으로 수줍음을 많아 타 질문에 자주 얼굴을 붉히면서 차분히 답했다. 처음에는 상당히 경직돼 무표정한 얼굴이었으나 시간이 가면서 긴장이 풀린 듯 잔잔한 미소와 함께 가끔 유머를 구사해 가면서 질문에 응했다. 인터뷰 후 기념사진을 찍을 때 기자가“당신이 50세라고, 내가 보기엔 소년 같다”고 말했더니 리브스는“오, 노 노”하면서 얼굴에 홍조를 띠었다. 리브스는 이 영화 홍보차 12월 둘째 주 한국을 방문한다.    

-어떻게 이 영화에 출연을 응했는가.
“각본이 마음에 들었다. 명예를 존중하는 범죄자들의 지하세계의 얘기로 유머와 인간적인 면이 있는 글이었다. 여태껏 나온 영화들과는 다른 특별나고 신선한 점이 있었다. 액션도 아주 다르다. 모든 것이 당신 앞에서 일어나는 듯이 사실적이다. 그 사실을 바짝 긴장도를 높인 것이다.”

-액션을 위해 어떤 훈련을 했는가.
“주지추와 유도를 짬뽕한 ‘건 후’라는 무술을 익히라고 해서 연습했는데 재미있었다. 그리고 여러 가지의 권총 다루는 방법을 연습했다.”

-당신은 영화에서 셀 수 없이 많은 악인들을 살해하는데 몇 명인지 아는가.
“감독이 나더러 70명 이상 죽였다고 하더라. 존 윅은 그래서 매우 바빴다.”

-이 영화는 배우인 에바 롱고리아가 제작을 했는데 에바는 영화제작에 얼마나 개입했는가.
“에바는 제작에 실제로 참여하진 않았다. 다만 영화가 만들어질 수 있도록 뒤에서 적극적으로 밀어줬다.”

-당신의 밴드는 지금 어떻게 됐는가.
“수년 동안 해산된 상태다. 몇 주 전에 즉흥 연습연주를 했다. 아주 오래간만인데 이상했지만 즐거웠다. 새로운 곡을 지어보려고 구상 중이나 어떻게 될지는 나도 모르겠다. 밴드가 다시 구성돼 연주하게 될 것인지에 대해서도 장담을 할 수가 없다.”

-영화에서 차가 중요한 구실을 하는데 당신은 어떤 차를 모는가.
“2013년도 포셰다. 아름다운 기계로 이 차는 내 친구다. 

-당신은 궁지에 몰릴 때 누구를 찾는가.
“상황에 따라 다르지만 가족이나 친구 그리고 변호사나 경찰도 찾는다.”

-쫓아다니는 파파라치들에게 어떻게 대처하는가. 그들을 쿵후로 때려누이고 싶지 않은가.
“그것은 내가 육체적으로 얼마나 준비가 돼 있느냐 하는데 달려 있다. 파파라치들이 갑자기 카메라를 들이댈 때면 겁이 난다. 결코 즐거운 일이 아니다. 그들이 다른 직업을 가지기를 바란다.”

-존 윅의 가까운 친구는 개와 자동차 그리고 총인데 당신의 가장 가까운 친구는 무엇인가.
“다른 사람과 마찬가지다. 특히 고르라면 모터사이클들이다. 그리고 영화를 찍을 때 얻은 물건들을 아끼는데 그런 것으로 두 개의 타이프라이터가 있다. 그리고 내가 제일 좋아하는 두 벌의 양복이 있고 친구들의 사진과 내 경험을 찍은 사진들 및 내가 나온 몇 편의 영화들이 내 친구들이다.”

-애완동물이 있는가.
“없다.”

-요즘도 모터사이클을 타는가.
“탄다. 나는 실제로 모터사이클 회사를 소유하고 있다. 이름은 아치 모터사이클로 동업인데 6주 전부터 물건을 팔기 시작했다. 우리가 직접 만드는 모터사이클들은 아주 멋있다. 전 세계적으로 판매할 예정이다.”

-과거를 돌아보건대 당신은 지금 당신이 원했던 배우가 됐다고 생각하는가.
“과거를 회상하자면 그 동안 배우로서 일할 수 있었고 내가 사랑하고 또 어떤 것은 팬들이 사랑하는 영화에 나왔다는 것은 참 행운이다. 나는 1985년 할리웃에서 일하기 위해 토론토를 떠났다. 그동안 목적이 이뤄졌고 또 현재도 나는 좋은 영화와 역을 찾고 있다. 많은 것이 변했지만 여러 가지의 다른 얘기를 하고자 하는 정열과 희망 및 이유는 늘 같다.”

-어느 장르의 영화를 좋아하는가.
“난 모든 장르를 좋아한다. 영화는 신문이나 잡지를 읽고 흥미 있는 감독이나 내용의 영화를 발견하면 구경 간다.”

-당신의 러시아어 구사 능력이 썩 괜찮던데.
“액센트가 너무 심하지 않고 약간 있는 러시아어를 구사하려고 노력했다.”

-당신은 스타일 있는 폭력을 구사하는 아시아적 주제를 지닌 영화에 여러 번 나왔는데 그런 영화들이 미국 영화에 영향을 주었다고 보는가.
“스타일 있는 영화 폭력이 어디서 시작되었는지는 모르겠으나 그것은 무성영화 때부터 있었던 것이라고 본다. 그러나 멋있는 죽이고 패는 폭력영화는 샘 페킨파에서부터 시작됐다고 생각한다. 그의 영화와 스타일 있는 유럽 폭력영화는 서로 영향을 주고받으면서 성장했다고 본다. 그리고 하나 분명한 것은 홍콩의 쿵푸영화로부터 큰 영향을 받았다는 점이다.”

-당신은 로맨틱한 사람인가.
“존 윅 역을 맡은 것은 그가 로맨틱하기 때문이었다. 나로 말하자면 로맨틱하다기보다 장난기가 있다고 하겠다.”

-모든 면에서 영화가 매우 과장돼 마치 비디오게임을 보는 것 같은데 어떻게 생각하는가.
“그렇다. 확실히 스타일 있는 폭력을 내포한 게임이자 현실을 한 단계 높인 영화라고 하겠다. 마치 자신이 하는 게임을 보는 것과도 같다.”

-영화의 프로 킬러들은 나름대로의 윤리강령이 있는데 영화사 고급 간부들과 비교해 볼 때 어떤가.
“내가 아는 킬러들이 없으니 그들의 윤리에 대해선 알 바 없지만 영화사 간부들 중에는 더러 그런 사람들이 있다.”

-영화사 간부들에 의해 데인 적이라도 있는가.
“그것에 대해 생각하고 싶지 않다. 없다고는 못할 것이다. 그것이 쇼 비즈니스다.”

-당신은 나이답지 않게 젊어 보이는데 무슨 비결이라도 있는가.
“액션영화를 만들 때 엄격하고 힘든 훈련을 받는다. 그리고 조상의 유전자 탓도 있으니 그들에게 감사한다.”

-당신은 70명밖에 안 죽였지만 실베스터 스탤론이 나온 ‘익스펜다블스’에선 그것의 두 배가 넘는 사람들이 죽는데 그 영화의 속편에 나올 뜻이라도 있는가.
“내게 빈자리가 주어진다면 서슴지 않고 뛰어들 것이다. 실베스터 스탤론은 배우와 감독과 제작자로서 큰 업적을 남긴 사람이다. 그는 사람들을 즐겁게 해주는 뛰어난 예술가이다. 그가 내게 그의 영화에 나올 것을 제의한다면 나로선 하나의 큰 영광이다.”

-이것은 당신의 무술영화인데 무술에 대해 늘 열정이 있었는가.
“난 어렸을 때부터 전쟁놀이와 가짜 싸움을 즐겼었다. 우리가 연극을 할 때면 늘 칼싸움이 있는 것을 했다. 내게 있어 그것은 카우보이와 인디언의 싸움이었다.”

-언제부터 모터사이클을 탔으며 그것을 타고 멋진 여행이라도 해 봤는가.
“처음에 독일서 배웠다. 미국에 와 처음 타고 간 곳은 선셋 블러버드와 퍼시픽코스트 하이웨이와 샌타모니카 산이었다. 그것을 반복했다. 프랑스와 호주에서 멋진 여행을 즐겼고 미 동부에서도 신나게 달렸다. 샌프란시스코 연안을 달린 것도 좋았다.”

-당신이 가장 좋아하는 모터사이클은 무엇이며 그것을 타고 여행을 할 때 혼자 하는가 여럿이 하는가.
“가장 좋아하는 것은 노턴 코맨도다. 프랑스와 호주 여행 땐 친구들과 같이 달렸다. 미국에서도 혼자 탈 때가 있고 여러 명이 함께 탈 때도 있다.”

-몇 대가 있는가.
“모두 4대다.”

-당신이 나온 ‘포인트 브레이크’의 신판이 만들어진다고 하는데 어떻게 생각하는가.
“그저 잘 만들고 만들면서 즐기기를 바랄 뿐이다.”  

-당신과 존 윅은 닮은 데라도 있는가.
“거의 없다. 그래서 존 윅 역을 하는 것이 좋았는지도 모른다. 그는 어떤 강한 힘을 지녔는데  나는 그렇지 못하다.”

-요새 당신을 행복하게 해주는 사람이 누구인가.
“영화 나오느라 바빠서 사랑할 시간이 별로 없다. 그저 가족과 친구와 함께 있기를 즐긴다. 현재 애인은 없다. 슬픈 일이다. 친구들이 나를 여자와 연결시켜 주려고 몇 차례 시도했지만 포기했다.” 

인터스텔라 (Interstellar)

쿠퍼(매튜 매코너헤이)가 우주여행 끝에 빙하가 된 혹성에 도착했다.


인류의 새 정착지 찾아서… 눈부신 우주탐험


두뇌를 요구하는 영화를 만드는 영국의 크리스 놀란 감독(‘배트맨’ ‘인셉션’)의 사랑과 희생의 주제를 곁들인 대규모 스펙태클 공상과학 우주탐험 드라마로 놀란의 ‘2001: 우주 오디세이’다. 대단한 야심작으로 아찔한 시각효과와 아름다운 촬영 그리고 고상한 아이디어와 스타일 및 주인공의 좋은 연기를 비롯해 칭찬 받을만한 점이 많긴 하나 문제는 이야기 서술과 터무니없이 복잡한 플롯(놀란이 동생 조나산과 함께 각본을 썼다) 그리고 궁극적 연출 결과가 야심과 아이디어를 못 따라 가고 있다는 점이다.
온갖 이론 물리학을 잘 알아도 이해할까 말까 할 지나치게 많은 천문과학적 용어와 함께 마치 관객의 지능을 시험하기라도 하겠다는 듯이 쓸데없이 혼란스럽게 늘어놓은 플롯 그리고 감독의 부푼 이고 때문에 작품에 몰입하려다가도 주춤하고 물러서게 된다.
무슨 요설을 듣는 것 같기도 하고 또 속임수에 당하는 기분이기도 한데 놀란은 ‘2001’을 능가하기라도 하겠다는 듯이 암호로 만든 듯한 장광설을 늘어놓아 짜증마저 난다. 그는 기자회견에서 “이 영화는 이해하려 하지 말고 그저 느껴라”면서 잘 모르겠으면 두 번, 세 번이라도 보라고 영화사 홍보인 같은 소리를 했다. 그리고 영화에 우주인으로 나온 앤 헤사웨이도 “나도 영화를 완전히 이해 못하겠다”고 말했다.
지구가 흙모래 폭풍으로 황폐해가면서 식량이 모자라는 가까운 미래. 전직 우주비행사로 홀아비인 쿠퍼(매튜 매코너헤이)는 시골에서 옥수수 농사를 지으면서 장인(존 리트고우)과 두 남매 탐(어릴 때는 티모데 샬라메, 성인 역은 케이시 애플렉)과 머피(어릴 때는 맥켄지 포이, 성인 역은 제시카 채스테인)와 함께 살고 있다.
쿠퍼가 우연히 위치를 숨긴 마지막 남은 미 국립우주항공국(NASA-식량 조달이 우선이어서 모든 NASA 기지는 폐쇄됐다)을 발견하면서 거기서 자신의 옛 스승인 우주공학자 브랜드(마이클 케인)를 만난다. 브랜드는 쿠퍼에게 인류가 살 수 있는 다른 행성이 있는지를 탐험해 달라고 부탁한다.
쿠퍼는 한 번 떠나면 다시는 돌아오지 못할지도 모르는 우주여행을 앞두고 깊은 고민에 빠진다. 인류를 위해 자기희생을 할 것이냐 아니면 떠나지 말라고 우는 딸이 있는 가정을 지킬 것이냐. 영화는 흥분되고 선험적인 우주모험에 사랑의 감정을 듬뿍 담고 있다.
그리고 쿠퍼는 브랜드의 딸 아멜리아(해사웨이)와 다른 2명의 우주인들과 함께 우주탐험을 떠난다. 우주선에는 냉소적인 걸어 다니는 검은 고체상자와 같은 로봇이 동승하는데 이 로봇은 ‘2001’의 비석 모양의 검은 물체를 연상케 한다. 
우주선은 한 우주에서 다른 우주로 통하는 관문인 웜호울을 빛의 속도를 초월해 비행하면서 토성 인근의 빙하가 된 혹성(이 부분이 인상적이다)에 도착한다. 눈부신 시각효과를 사용해 보여주는 이 우주여행이 장관인데 70mm 대형화면을 가득 메운 방대한 우주 속의 모험이 스릴 만점이다. 
감탄할 부분도 적지 않고 작품제작 의도도 가상한 영화이긴 하나 결점도 많은 일종의 미완성대작이다. 그리고 매코너헤이를 제외한 다른 배우들은 매코너헤이의 들러리 노릇을 하고 있다. 좀 과다하긴 하나 오르간을 주로 사용한 한스 짐머의 음악이 효과적이다.
PG-13. Paramount. 전지역. ★★★(5개 만점)  <한국일보 편집위원/hjpark1230@gmail.com>

모든 것의 이론 (Theory of Everything)

제인(왼쪽)과 호킹이 서로 사랑의 눈길을 즐기고 있다.

스티븐 호킹의 업적과 25년에 걸친 사랑과 이별 


블랙홀과 우주의 기원에 관해 연구하고 베스트셀러 ‘시간의 짧은 역사“를 쓴 이론물리학자 스티븐 호킹 박사에 관한 드라마로 말끔하고 확실하게 잘 만들었으나 특별히 뛰어난 점은 없는 전형적인 전기 드라마다. 호킹의 업적과 25년간에 걸친 그와 아내 제인의 사랑과 결혼 그리고 이혼을 고루 다루고 있는데 두 주연 배우의 연기가 매우 훌륭하다.
이와 함께 역경을 극복한 인간 승리의 재미있는 내용과 영국 현지에서 찍은 촬영 그리고 음악 등이 다 좋아 권하고 볼만한 영화이긴 하지만 작품이 현존하는 사람에 관한 것이어서 그런지 얘기를 너무 조심해서 다뤄 극적인 높낮이를 충분히 즐기기는 힘들다.
시간대를 따라 진행되는 영화는 1963년 호킹(에디 레드메인)이 캠브리지 대학에서 박사과정을 밟을 때부터 시작된다. 그는 대학의 한 파티에서 문학을 전공하는 제인(펠리시티 존스)을 만나고 둘은 사랑에 빠진다.
둘은 순진한 아이들처럼 사랑에 빠지는데 이와 함께 호킹의 연구생활이 교차로 묘사된다. 그리고 호킹은 수학에 남다른 이해력과 통찰력을 지녀 담당교수 데니스(데이빗 튤리스)를 놀라게 한다.
그러나 호킹은 근위축증(루게릭병)에 걸리고 의사로부터 2년밖에 더 못 산다는 말을 듣고 절망에 빠진다. 호킹은 제인마저 외면하나 호킹을 진실로 사랑하고 강단이 있는 제인은 호킹을 떠나지 않는다. 그리고 둘은 결혼해 아이들을 낳고 행복한 생활을 즐긴다.
호킹의 병세가 악화하면서 제인의 슬픔과 고통 그리고 남편을 돌봐야 하는 부담도 따라서 증가하나 제인은 굳세게 남편을 지킨다. 영화는 이런 제인의 처지를 상당히 강조하고 있다. 그리고 제인은 교회의 합창단 지휘자 조나산(찰리 칵스)을 사랑하게 된다. 이와 함께 둘의 결혼생활은 호킹이 자기를 돌보는 특별 간호사를 사랑하게 되면서 끝이 난다.
호킹의 과학적 업적과 결혼생활 그리고 이 결혼의 해체를 균형 있게 다루려고 무척 애를 쓴 흔적이 역력한데 좀 과감했더라면 영화가 훨씬 더 힘 있고 극적인 것이 되었을 것이다.
영화에서 가장 볼만한 것은 레드메인의 연기다. 몸의 연기라기보다 얼굴의 연기로 눈동자와 입술과 안면근육을 사용해 매우 우아하고 완벽하게 호킹을 재현하고 있다. 총명하고 또렷한 연기로 레드메인의 ‘나의 왼발’이라고 하겠다. 이와 함께 존스의 연기도 단단하면서도 고상하다. 제임스 마쉬 감독. PG-13. Focus. 일부지역. ★★★½(5개 만점) <한국일보 편집위원/hjpark1230@gmail.com>

‘황야의 결투’



웨스턴의 장인 존 포드는 영화 ‘리버티 밸런스를 쏜 사나이’에서 “여기는 서부야. 전설이 사실이 되면 전설을 인쇄하지”라고 말했다. 이렇게 사실과 전설이 뒤엉켜 사실이 전설이 되다시피 한  미 서부의 총격전의 대표적 사건이 1881년 10월26일 이른 아침 애리조나주 툼스톤에서 일어난 O.K. 목장의 결투다.
연방 보안관 와이엇 어프와 그의 형제들 그리고 와이엇의 친구로 전직 치과의사인 폐병환자 킬러 닥 할러데이 대 소도둑 일가 클랜턴 가족 간에 벌어졌던 총격전으로 단 30여초 만에 끝났다,
미 서부사의 마지막 대결이라 불리는 이 전설적인 사건은 하도 유명해 수많은 책과 TV 작품과 영화로 만들어졌다. 그 중에서도 가장 화려하고 대중적인 것이 버트 랭카스터와 커크 더글러스가 나온 ‘O.K. 목장의 결투’(1957)다.
이 밖에도 이 결투는 제임스 가너와 제이슨 로바즈가 공연한 ‘총의 시간’과 커트 러셀과 발 킬머가 나온 ‘툼스톤’ 그리고 케빈 코스너와 데니스 퀘이드가 공연한 ‘와이엇 어프’ 등 여러 편의 영화로 만들어졌다.
그러나 나와 내 친구 C가 가장 좋아는 웨스턴이자 O.K. 목장의 결투 얘기는 존 포드가 감독한 흑백 서정시와도 같은 ‘황야의 결투’(My Darling Clementineㆍ1946ㆍ사진)이다. 이 영화는 와이엇 어프를 개인적으로 알았던 포드가 그에게 바치는 헌사다.
내용과 연기와 액션과 함께 포드가 여러 편의 웨스턴을 찍은 애리조나와 유타주 경계에 있는 모뉴먼트 밸리에서 찍은 촬영 등 모든 것이 준수한 작품이다. 물론 극적 재미를 위해 사실을 다소 전설화 했지만 가급적 사실에 충실한 영화로 느린 템포로 서술되고 있다.
많은 포드의 웨스턴에서 볼 수 있는 활짝 트인 하늘과 떠 있는 뭉게구름 그리고 광활한 황야를 무대로 펼쳐지는 극적인 얘기로 우수와 노스탤지어가 촉촉이 배어 있다. 특히 인상에 깊이 남는 것은 침울한 흑백 명암을 뛰어나게 처리한 촬영이다. 치밀하게 구성된 화면 안에 마치 서부 전체를 떠다 옮겨 놓은 듯한 무한광대하고 흙먼지 일어나는 사실적인 촬영으로 영상시의 극치라고 할만하다.
툼스톤은 모뉴먼트 밸리와는 거리가 있지만 포드가 매우 좋아한 곳이어서 영화를 여기서 찍었는데 그는 자신의 다른 웨스턴인 ‘역마차’와 ‘황색 리번’ 및 ‘수색자’ 등도 역시 이 곳에서 찍었다. 그래서 모뉴먼트 밸리에는 포드를 기리는 ‘존 포드 포인트’가 있다.
나는 오래 전에 ‘역마차’의 현장 취재차 모뉴먼트 밸리를 방문했었다. 황토의 언덕 위에서 아래로 가없이 물러선 광야를 바라보면서 영혼이 산산이 부서져 허공중에 떠도는 듯한 신비한 감동을 느꼈었다. 왜 포드가 모뉴먼트 밸리를 좋아했는지 알 것 같았다.
영화에서 참 보기 좋은 것은 ‘신사 건맨’ 와이엇 어프 역의 헨리 폰다의 과묵한 모습과 절제된 연기다. 콧수염을 한 폰다의 침착하고 평온한 연기는 거의 단조로울 지경인데 대사의 억양 역시 높낮이가 거의 없다. 완벽한 연기로 수필과도 같은 것이라는 평을 들었다.
그 못지않게 멋진 인물이 닥 할러데이로 나온 빅터 마추어다. 폐병으로 심한 기침을 할 때마다 목에 감은 스카프로 입을 틀어막는 닥은 이 기침을 위스키로 진정시키곤 한다. 그런데 사실과 달리 닥은 영화에서 이 기침 때문에 클랜턴 일가의 총에 맞아 죽는다.
마추어는 쓴맛 다시는 표정으로 시한부 인생의 건맨 모습을 윤곽이 뚜렷하게 표현하는데 “투 비 오어 낫 투 비”와 함께 셰익스피어의 ‘햄릿’의 구절을 줄줄이 외워 살육의 영화에 문학적 기운마저 부여한다.
제목의 클레멘타인(캐시 다운즈)은 닥의 전 애인으로 그녀는 자기를 피해 서부로 달아난 닥을 찾아 툼스톤에 도착한다. 그런데 어수룩할 정도로 순진한 와이엇이 이 참한 색시를 보고 첫 눈에 반한다. 영화에서 간간이 하모니카로 불어대는 미국 민요 ‘마이 달링 클레멘타인’의 선율이 차마 자기 사랑을 제대로 고백 못하는 와이엇의 마음을 감상적으로 대변하고 있다.
클레멘타인과는 정반대로 정열적인 여인이 닥을 사랑하는 술집가수인 멕시칸 치와와(린다 다넬)다. 눈이 큰 다넬이 닥을 사랑하는 여인의 역을 뜨겁게 보여주고 있다. 멕시칸고추처럼 입안이 화끈해지는 연기다.
영화는 포드의 많은 다른 웨스턴들처럼 주인공이 먼 지평선 속으로 사라지는 장면으로 끝난다. 와이엇은 마을에 학교 선생으로 남는 클레멘타인의 볼에 입을 맞춘 뒤 “맴, 나는 클레멘타인이라는 이름이 참으로 좋습니다”라는 말로 작별을 고한다. 이어 카메라가 말을 타고 떠나가는 폰다의 뒷모습을 작은 점이 될 때까지 따라간다. 과연 와이엇은 클레멘타인을 찾아 다시 툼스톤으로 돌아올 것인가.
와이엇 어프는 생애 모두 100여회의 결투를 했는데 건맨으로는 보기 드물게 장수하다가 1929년 81세로 LA에서 사망했다. 닥 할러데이(본명 존 H. 할러데이)는 조지아주 명문 태생으로 폐병으로 치과를 문 닫고 서부로 방랑길에 올랐다. 총과 칼에 능했는데 1887년 35세로 숨지기까지 모두 30명을 황천으로 보냈다. ‘황야의 결투’가 새로 프린트돼 Criterion에 의해 블루-레이로 나왔다.   <한국일보 편집위원/hjpark1230@gmai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