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이야기

2015년 7월 20일 월요일

‘트레인렉’ 에이미 슈머




“여자들이 웃기지 않다는 것은 여성 모독”


체중 나가도 언제든 아름답고 욕망의 대상 될 수 있어
르브론 제임스는 겸손한 사람, 랜달 박의 재능에 감탄


17일 개봉된 스크루볼 로맨틱 코미디‘트레인렉’(Trainwreck-영화평 참조)에서 한 남자에게 마음을 주는 것을 꺼려해 이 남자 저 남자와 원나잇 스탠드만을 즐기다 얌전한 남자를 만나 사랑에 빠지는 잡지사 기자 에이미로 나온 에이미 슈머(34)와의 인터뷰가 6월26일 샌타모니카의 한 호텔에서 있었다. 토실토실 살이 찐 몸에 소매 없는 드레스를 입고 긴 금발을 한 슈머는 나이와 달리 소녀처럼 귀엽고 꾸밈이 없어 대하기가 편했다. 슈머는 테이블에 놓인 샴페인 잔을 들어 마시면서 상소리와 성기와 섹스를 섞은 농담을 천연덕스럽게 하면서도 다소 쑥스럽다는 듯이 얼굴에 홍조를 띠기도 했다. 슈머는 자신의 체중을 의식하는 듯이“나는 160파운드”라면서 모든 질문에 진지하고 솔직하게 대답했는데 유머와 위트가 대단한 배우로 자기보다 한 발 앞서 스크린의 빅 스타가 된 동료 여자 코미디언들인 크리스틴 윅과 멜리사 맥카시의 뒤를 이어 대성할 배우라는 느낌을 받았다.                

-당신은 스스로 각본을 쓰는데 때로 관객이 농담이 너무 지나치다고 생각할까 봐 걱정하진 않는가.
“그렇게 염려하진 않는다. 난 글을 쓸 때 지나치게 흉측하거나 또 미친 소리 같은 것은 쓰려고 하지 않는다. 그래도 내 농담을 싫어한다면 할 수 없다. 사과할 생각은 없다. 언제나 내 농담을 즐길 줄 아는 사람들이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난 도를 너머 지나치게 과격한 소리는 하고 싶지 않다.”

-당신이 영화에서 말한 대로 당신은 실제로 모든 남자들의 꿈이 모든 여자와 자는 것이라고 생각하는가. 
“사람마다 다르다고 본다. 어떤 남자들은 자기 씨를 사방팔방에 뿌리려고 하는가 하면 또 어떤 남자들은 자기 아내와 자는 것만이 최고라고 생각한다. 어떤 사람들은 이 영화를 보고     남자 역과 여자 역이 바뀌었다고 말하는데 그것은 잘못된 생각이다. 내가 아는 여자들 중에는  에이미와 같은 여자들이 더러 있다.”

-당신은 최근 한 모델쇼에서 “난 160파운드이지만 언제든지 자×를 취할 수 있다”고 말했는데 남자들이 당신을 무서워한다고 생각하는가.
“난 내 체중을 스스로 재지는 않으나 그 정도 나간다. 그것은 예쁜 모델들이 너무 말라서 한 말이다. 체중이 좀 나가더라도 얼마든지 자신의 몸을 편안하게 느끼고 스스로의 정체를 지킨다면 아름답고 건강하며 또 욕망의 대상이 될 수가 있다는 것을 말한 것이다. 내가 그런 말을 했다고 해서 진짜로 원하기만 한다면 언제나 남자와 잘 수가 있다는 것은 아니다. 난 그런 여자가 아니다.”

-당신의 성장에 큰 영향을 준 사람은 누구인가.
“학교의 배구코치였다. 그로부터 결단력과 근면과 생의 목표설정을 배웠다. 그리고 내 가족이다. 난 어렸을 때 부자였는데 아버지가 중병에 걸리면서 집이 망해 큰 집에서 아주 작은 모텔방과도 같은 곳으로 이사를 갔다. 내가 세 아이들 중 둘째로 그 때부터 난 집안일을 도와야 했다. 따라서 그 같은 어려움이 나의 성격 형성에 큰 영향을 미쳤다.”

-언제 당신이 우습다는 것을 알았는가. 
에이미와 르브론 제임스가 농구 경기장에서 나란히 앉아 대화를 나누고 있다.
“난 어렸을 때부터 남을 잘 웃겼다. 세 살인가 네 살 때부터 노래 부르고 사람들을 웃겼다. 타고난 것이라고 본다.”

-당신의 섹스 농담은 단순한 섹스 외에 다른 의미를 내포하고 있는가.
“난 섹스를 마케팅 도구로 이용해 왔다. 섹스 농담처럼 우습고 흥미 있는 것도 없다. 그러나 섹스는 내 농담의 30% 정도다. 그런데 사실 여자보다 남자들이 더 섹스 농담을 하는데도 여자라는 것 때문에 여자들은 조금만 섹스 얘기를 해도 주목의 대상이 된다. 남자들이 지나친 섹스 농담을 하면 마치 생각이 깊은 사람대접을 받지만 여자는 경우가 다르다. 남자들은 이 여자 저 여자와 자도 별 탈이 없지만 내가 그랬다간 화냥년 취급을 받을 것이다. 난 우린 다 같고 누가 누구보다 특별히 낫지가 않다는 것을 상기시키기 위해 섹스 농담을 하는 것이지 결코 충격을 주려고 하는 것은 아니다.”

-당신은 피부가 두꺼운가.
“그렇다. 난 굉장히 어렵게 살았기 때문이다. 고생하는 가족을 웃기는 일이 내 임무였다. 내게 있어 우습다는 것은 하나의 방어체계다. 난 생명의 위협도 받았고 맥주병 세례도 받았고 또 관객들이 다 공연장을 떠나는 경험도 했지만 여전히 여기 서 있다.”

-명성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는가.             
“어젯밤 내내 그것에 대한 악몽을 꾸었다. 내 명성의 오직 단 하나 장점은 난 언제나 사람들을 웃게 하려고 원했는데 그것을 할 수가 있다는 것이다. 그러나 그밖에는 명성이 주는 플러스가 없다. 한 번 공짜로 냉장고를 받은 것 외에는. 난 명성이 뭐가 좋은지 모르겠다. 내가 부담으로 느끼는 명성에도 불구하고 심지가 굳은 것은 가족과 내 주위의 솔직한 친구들이 있기 때문이다. 난 예스맨을 싫어한다. 난 늘 정직을 좋아했다.”

-여자들은 우습지도 않고 또 그럴 수도 없다는 말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는가.
“그것이야 말로 이상한 말로 주이시(유대인)들은 오렌지주스 냄새가 나는가 라는 말이나 같다. 여자들은 우습고 늘 그래 왔다. 캐롤 버넷과 루시와 래번 앤 셜리를 봐라. 내가 가장 좋아하는 여배우도 골디 혼이다. 내 농담에 대한 반응도 여자들이 더 뜨겁다. 여자들이 우습지 않다는 것은 여성 모독이다. 날 가장 많이 웃기는 사람들도 여자다.”

-돈의 의미는 무엇이며 또 그것을 어떻게 쓰는가.
“그것은 매우 터무니없는 것이다. 난 버는 돈의 상당을 가족에게 준다. 난 자전거 외엔 소유물이 없었다. 그런데 지금 난 뉴욕에서 활동하기 때문에 아파트를 샀지만 도어맨도 없는 방 하나짜리다. 대학교 이후 자동차도 없고 여전히 운동용 바지를 입고 산다. 돈에 대해 현명하려고 한다. 내 주위의 사람들이 아프거나 일이 났을 때 쓰기 위해 돈을 갖고 있을 필요가 있다.”

-일부일처제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는가.
“모르겠다. 내가 데이트를 할 때면 한 사람하고만 한다. 내가 가장 오래한 데이트는 4년짜리다. 한 번 영원히 살기로 약속한다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난 아직 함께 가족을 이루고 싶은 남자를 만난 적이 없어서 그 질문에 대답하기가 어렵다.”

-영화에 프로농구의 수퍼스타 르브론 제임스가 나오는데 그를 평소 알았는가.           
“내가 각본에 그를 사용한 것은 르브론이 내가 아는 유일한 농구선수였기 때문이다. 난 스포츠에 관심이 없는데 다행히 그가 출연에 응했다. 그는 아주 우스운 사람이다. 한 번도 잘난 체 하지를 않더라. 세트에 함께 있기가 정말로 즐거웠다.”

-여권신장의 선두로서 부담을 느끼진 않는가.
“자랑스럽게 여긴다. 사실 그것은 내 목표는 아니었는데 이제 내가 그것의 대명사처럼 됐으니 자랑스럽고 적극적으로 이 기회를 사용하겠다. 아직도 난 그것에 적응하고 있으나 그것을 위해 적극 헌신하려고 한다. 내 영웅은 늘 여권신장 선구자들이었는데 이제 글로리아 스타이넴과 같은 그들 중 일부를 만나게 돼 멋있다.”

-대법원이 내린 동성결혼 합법화에 대한 의견은 어떠며 코미디가 대중의 의견 형성에 도움이 됐다고 보는가.
“그 결정에 대해 흥분하고 있다. 그 소식을 듣고 ‘아이구 하느님 굉장하네요’하고 놀랐다. 큰 감동을 받았다. 코미디가 살짝 대중의 뒷문으로 들어가 그들의 의견 형성에 도움을 줄 수가 있다고 본다. 내가 아는 많은 코미디언들은 동성결혼에 대한 농담들을 많이 갖고 있다.”

-이 영화가 당신의 첫 메이저 영화인데 소감은.
“내 생애 최고의 시간이었다. 난 이 영화를 내 TV 쇼로 여기고 그대로 했다. 사실 TV 쇼보다 쉬웠다. 난 길고 크게 보질 않고 오늘 할 연기만 생각했다. 내가 쉽게 해 낼 수 있었던 것은 저드 애파토 감독 때문이다. 그는 마치 아버지와 같은 사람으로 활짝 개방된 분위기를 만들어 일하기가 편했다. 내가 필요로 하는 것은 다 그로부터 받았다.” 

-영화에서 당신의 라이벌 기자로 나온 랜달 박과 일한 경험은 어땠는가.
“난 전에 그를 몰랐는데 저드가 그의 코미디 비디오를 내게 보여줬다. 그리고 난 ‘아니 이게 누구야’ 하고 그의 재능에 감탄했다. 세트에 함께 있는 것이 정말로 즐거웠는데 그는 아주 우스운 사람으로 즉흥적 연기를 해내면서도 감독의 지시를 잘 따랐다. 참 상냥한 남자로 난 그를 좋아했다.”    
                                                               <한국일보 박흥진 편집위원/ hjpark1230@gmail.com>

트레인렉 (Trainwreck)


에이미(왼쪽)와 아론이 바에서 즐거운 시간을 보내고 있다.

한 남자만? 여러 상대랑?… 문제는 사랑


일부일처제가 과연 현실적이냐 라는 명제를 내건 로맨틱 코미디로 불경스럽고 음탕하고 야한 것과 솔직하고 현실을 직시하는 통찰력을 함께 구사해 우습고 매력적인 영화를 만드는 저드 애파토(‘40세 숫처녀’)가 감독했다. 여자가 주인공인 그의 첫 영화다. 
각본은 주연을 겸한 요즘 한창 떠오는 살이 토실토실 찐 귀엽게 생긴 코미디언 에이미 슈머가 썼는데 지금까지는 주로 TV로 잘 알려진 그녀가 본격적으로 빅 스크린에 등장한 영화다. 이로 인해 또 하나의 빅 스크린 여자 코미디언이 탄생했다고 봐도 된다.
폭풍 같은 삶의 에너지를 지닌 입 건 여자와 조용하고 무리 없는 남자가 만나 사랑하다가 갈등을 빚고 다시 화해한다는 연애영화의 전형적인 틀을 지닌 관계에 관한 스크루볼 코미디다.
영화는 심술첨지요 술꾼인 고든(칼린 퀸)이 이혼해 짐을 싸들고 집을 나가기 전 어린 두 딸 에이미와 킴에게 “일부일처제는 비현실적이다”라고 일장 훈시를 하는 장면으로 시작된다. 그로부터 20년 후 아직 미혼인 에이미(슈머)는 뉴욕의 센세이셔널 위주 남성 잡지 ‘스너프’의 기자가 됐고 킴은 결혼해 아이 낳고 모범주부가 됐다. 그런데 둘은 아버지가 있는 요양원의 비싼 월세를 놓고 다툰다. 요양원의 또 하나의 입주자로 히치콕의 친구로 그의 영화에 나온 100세인 노만 로이드가 나와 웃긴다.     
에이미가 아직 미혼인 까닭은 어렸을 때 아버지로부터 훈시의 영향 탓으로 깊은 관계 공포증 환자다. 에이미는 무수한 남자들과 섹스(섹스신이 요란하다)를 하지만 그들은 다 단 1회용 소모품들이다. 예외로 섹스를 운동경기로 여기는 근육질인 스티븐(레슬러 존 세나)과는 드문드문 만난다.
이런 에이미에게 그녀의 요란스런 영국 액센트를 구사하는 편집장 다이애나(틸다 스윈튼-화장을 짙게 해 알아볼 수 없을 정도다)가 르브론 제임스와 뉴욕 닉스의 스터드마이어 등을 돌보는 한창 떠오르는 스포츠 의사 아론(빌 헤이더)을 인터뷰하라고 지시한다. 이를 질시하는 것이 동료기자들인데 그 중 한 명이 ‘인터뷰’에서 김정은으로 나온 랜달 박이다.  
그런데 아뿔사 에이미는 직업윤리를 위반하고 아론에게 반해 둘이 함께 침대에 든다. 아론도 생활력 강하고 화끈한 에이미가 좋다. 그런데 에이미는 하룻밤 정사 후에도 아론에게 자꾸 마음이 가면서 깊은 고민에 빠진다. 과연 한 남자와만 관계를 지속하는 것이 현명한 일인가 아닌가 그것이 문제로다.                         
슈머가 코믹한 연기를 기차게 잘하는데 대사와 제스처와 표정이 일품이다. 귀엽고 순진하면서도 상스럽기 짝이 없는 연기를 활짝 연 공작의 날개처럼 보여준다. 그녀와 침착한 헤이더의 콤비도 찰떡궁합이다. 영화에서 진짜로 놀란 것은 르브론 제임스의 천연덕스런 연기. 기성 배우 뺨친다. 이밖에도 크리스 에버트와 달라스 카우보이스의 쿼터백 토니 로모도 캐미오로 나온다. 중간 중간 플롯을 돌려가면서 시간을 끄는 것이(상영시간이 좀 길다) 흠이지만 재미있고 매력 삼삼한 영화로 우디 앨란의 ‘맨해턴’에 잠깐 경배를 보내고 있다. R. Universal. 전지역. ★★★½(5개 만점)
                                                          <한국일보 박흥진 편집위원/ hjpark1230@gmail.com>

새들 (The Birds)


멜라니가 새 떼의 공격에 비명을 지르고 있다.


새떼의 무차별 습격… 히치콕의 스릴러


서스펜스의 거장 알프렛 하치콕이 감독한 1963년 작 스릴러로 까마귀와 갈매기를 비롯해 온갖 잡새들이 인간을 무차별 공격해 살상하는 공포영화다. 왜 새들이 인간을 공격하는지 그 이유는 밝혀지지 않는다. 영국의 여류작가 다프네 뒤 모리에(‘레베카’)의 소설이 원작으로 히치콕은 1961년 8월 캘리포니아 캐피톨라에서 발생한 새들의 떼죽음을 참고로 삼았다. 
히치콕 특유의 연출기법인 서서히 서스펜스를 조성해 가면서 사람 간을 조이게 만드는 흥미진진한 영화로 이 영화를 보고나면 새에 대한 경계심이 생길 것이다. 금발미녀로 눈이 따가울 정도로 아름다운 티피 헤드렌(배우 멜라니 그리피스의 어머니)의 데뷔작으로 그녀는 이 영화로 어슐라 안드레스(‘닥터 노’의 본드 걸)와 독일여우 엘키 소머와 함께 골든글로브 신인상을 탔다. 
그런데 헤드렌은 이 영화와 함께 역시 히치콕의 만든 1964년작 심리 스릴러 ‘머니’(션 코너리 주연)에 출연하면서 히치콕과 충돌이 심해 그 이후 심술첨지 히치콕의 방해로 연기생활이 단명되고 말았다. 히치콕은 자신의 많은 영화에서 금발미녀들을 학대했는데 이 영화에서도 때로 살아 있는 새로 하여금 헤드렌을 공격케 하면서 못살게 굴었다.       
캘리포니아의 그림 같이 아름다운 해변 마을 보데가 베이가 무대. 처음에 사교계 여성인 멜라니 대니얼스(헤드렌)와 호남형의 변호사 비치 브렌너(얼마 전 작고한 로드 테일러)는 처음에 서로 샌프란시스코의 새를 파는 가게에 들렀다가 만나면서 서로에게 호감을 느낀다. 영화 첫 장면에서 두 마리의 개를 데리고 길을 걷는 사람이 히치콕으로 그는 자기 영화에 캐미오로 나오기를 즐겼다. 
보데가 베이에서 미망인인 어머니 리디아(제시카 탠디)와 11세난 어린 여동생 캐시와 함께 살고 있는 미치는 멜라니를 가족에게 소개시키면서 서서히 둘 간의 관계가 깊어진다. 모든 것이 평화로운 이 마을에 갑자기 새떼들이 인간을 공격, 마을은 온통 공포의 도가니로 변한다.
닥치는 대로 인간을 공격하는 새떼들에 의해 미치의 전 애인으로 교사인 애니(수잰 플레셋)가 살해되고 이어 아이들을 공격한다. 미치는 자기 집의 창문을 모두 나무판자로 봉하나 새들은 굴뚝을 통해 이 집을 공격한다. 그리고 혼자 이상한 소리가 나는 다락에 올라간 멜라니가 새떼들의 공격을 받고 쓰러진다. 특수효과는 디즈니 스튜디오에서 했고 새떼들이 내지르는 소리는 전자악기를 사용해 만들었다. 이 영화와 스필버그의 ‘조스’가 17일과 18일 뉴베벌리 시네마(7165 베벌리 블러버드 323-938-4038)에서 동시 상영된다.  ★★★★(5개 만점)
                                                            <한국일보 박흥진 편집위원/ hjpark1230@gmail.com>

카를로비 바리




카를로비 바리는 ‘늘 낯선 사람들의 친절에 의지해 온’ 도시다. 베토벤과 괴테와 쇼팽이 그 낯선 사람들이었고 요즘에는 한국인 관광객들이 그 중 큰 몫을 차지하고 있다.
체코공화국의 엄지손가락 끝 부분만한 휴양지 카를로비 바리에서 열린 제50회 국제영화제에  다녀왔다. 프라하 공항에 내리니 안내문이 체코어와 영어에 이어 한국어로 쓰여 있다. ‘한국인들이 온다. 한국인들이 온다’라는 말이 실감이 났다.
보헤미안 스메타나가 ‘나의 조국’에서 유려하게 스케치한 몰다우강으로 흐르는 청계천 규모의 테플라강이 도심을 관통하는 카를로비 바리는 동화 속 마을처럼 곱다. 시내는 왕복 30분이면 구경을 다할 만큼 작다.
프라하 서쪽 81마일 지점 서부 보헤미아에 있는 이 도시는 14세기 후반 보헤미아왕 찰스 4세가 세웠는데 300여개의 온천이 있어 옛날부터 휴양지와 질병 치료지로 유명하다. 독일어로 칼스바트라 부르는데 이는 ‘찰스의 온천’이라는 뜻이다.  순전히 타인들인 관광객에 의지해 먹고 사는 도시여서 강 양 옆으로 호텔과 식당과 보석상들이 줄을 섰다. 특히 관광객들이 몰려오는 때는 영화제가 열리는 7월 초순이어서 거리는 인파로 도떼기시장을 방불케 했는데 영화제가 끝나면 관광객들도 썰물 빠지듯이 몰려나간다고 우리를 안내한 즈덴카가 알려줬다.
때마침 유럽을 강타한 폭염 속에 자갈길을 걷는 관광객을 태운 마차의 말밥굽이 고전의 소리를 내는 거리를 가다가 괴테가 묵은 모차르트 호텔 앞에 섰다. 독일어로 ‘Hier wohnte Goethe 1786’(1786년에 괴테가 여기 살았노라)라고 쓰인 호텔 정문 옆에 괴테의 초상이 걸려있다(사진). 모차르트 호텔이 있고 모차르트 공원도 있는 것으로 봐 ‘프라하’ 교향곡을 짓고 오페라 ‘돈 지오반니’의 초연도 프라하에서 한 모차르트도 프라하에 온 김에 여기를 찾아와 목욕을 했을 법하다.
손바닥만 한 도시를 정찰하듯이 헤집고 다니다가 보헤미안인 드브로작과 칼 막스가 묵었던 집과 베토벤 호텔과 쇼팽 호텔도 목격했다. 숙소인 사보이 호텔 바로 옆의 쇼팽 호텔은 쇼팽이 묵었던 곳임에 분명한데 시내 쪽에 가까운 베토벤 호텔은 그의 초상까지 달았지만 어딘지 가짜 냄새가 났다.
숙소 앞에 있는 대형 칼 막스의 앉은 조각상이 이 나라의 과거를 상기시키는데 전신이 공산주의 국가답게 주민들이 너도 나도 끽연을 한다. 주민들은 영어는 못해도 과거 지배국인 러시아어와 독일어는 다 한다. 호텔 종업원도 나보고 “켄넨 지 도이치 슈프레헨”(독일 말 할 줄 아세요)라고 묻고 택시 운전사도 내가 서투르게 말한 “바르텐 지 드라이시히 미누텐”(30분만 기다려 주세요)을 알아듣고 고개를 끄덕거렸다.
호텔마다 스파요 길 곳곳에 탄산수 수도가 있어 사람들이 컵을 들고 다니면서 건강하겠다고 물을 받아 마시는데 나도 손으로 받아 마셔보니 찝찔하다. 걷다 피곤하면 강가 노천카페에 앉아 맥주를 마셨는데 그 맛이 버드와이저는 저리 가라다. 한국인 관광객들이 떼를 지어 다닌다.
영화제 본부는 공산정권 시대 세운 회색 콘크리트 건물 테르말 호텔인데 그 몰골이 주위의 예쁜 집들에 비해 더욱 꼴불견이다. 여기서부터 스타들이 머무는 18세기에 세운 그랜드 호텔 풉(호텔 이름치곤 고약하다)까지 왕래하면 시내 구경은 다한 셈. 그랜드 풉 호텔은 웨스 앤더슨 감독의 ‘그랜드 부다페스트 호텔’의 모델이 된 곳으로 둘이 모양이 많이 닮았는데 여기서 007시리즈 ‘카지노 로얄’도 찍었다고 한다.  
원수는 외나무다리에서 만난다고 이번 여행서 할리웃외신기자협회(HFPA)를 극도로 미워하는 여기자 샤론 왝스맨을 만나 와이트와인을 함께 마신 것이 지금도 믿어지지 않는다. 왝스맨은  연예전문 인터넷 사이트 ‘랩’의 창간자로 오래 전부터 HFPA의 별로 아름답지 못한 가십거리를 미주알고주알 보도, HFPA의 ‘페르소나 논 그라타’가 된 사람. 우리를 안내한 반 체코 반 한국인 피가 섞인 타티아나의 소개로 만나 식사를 함께 했는데 왝스맨이 산 포도주를 마시면도 우리와의 악연 탓에 신포도주 맛이 났다.
영화제에는 한국 영화도 몇 편 출품돼 ‘간신’과 김기덕의 ‘스톱’(Stop)을 봤다. ‘간신’은 준 포르노영화여서 보다 나왔다. ‘스톱’은 세계적으로 알려진 김기덕의 영화여서 극장은 기자들로 초만원을 이뤘다. 후쿠시마 원자력발전소 방사능 누출사고의 후유증을 다룬 작품으로 블랙 코미디풍의 메시지 영화다.    
하루 틈을 내 몰다우강이 흐르는 프라하를 찾았다. 더위와 습기가 이를 갈 듯이 치열한 속에 카프카의 발자국 소리가 들릴 것 같은 미로들의 자갈 골목길을 걸으면서 저 멀리 언덕 위에 있는 공사 중인 대통령궁을 바라보자니 자연 카프카의 ‘성’이 생각났다. 프라하는 몇 년 전에 처음 들렀었는데 그런 탓인지 기시감이 있어 이 고도의 품위와 아름다움이 옛만 못했다. 사람의 마음이 참으로 간사하구나 하며 혀를 찼다.                 <한국일보 박흥진 편집위원/ hjpark1230@gmai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