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품·감독·남우주연상 수상작(드라마)‘레버넌트’의 감독 알레한드로 G. 이나리투(오른쪽)과 레오나르도 디카프리오 및 제작진들이 무대에 올라 있다. |
드라마 부문 - ‘레버넌트’남우주연상, 작품과 감독 3개 부문 석권
코미디/뮤지컬 - ‘화성인’작품과 남우주연상‘조이’여우주연상 수상
10일 베벌리힐스의 베벌리 힐튼 호텔에서 릭키 제르베즈(사진)의 사회로 열린 제73회 골든 글로브 시상식은 폭스사가 주요 상을 독식 하다시피 한 폭스사의 잔치였다.
드라마 부문 작품과 감독 그리고 남우주연상 수상작인‘레버넌트’(The Revenant)와 코미디/뮤지컬 부문 작품과 남우주연상을 탄 ‘화성인’(The Martian) 및 여주주연상 수상작인 ‘조이’(Joy) 등이 모두 폭스사 작품이다. *골든 글로브는 작품과 남녀 주연상 부문에 한해 드라마와 코미디/뮤지컬 두 개의 부문으로 나눠 시상한다.
‘레버넌트’는 19세기 초 미국의 록키산 지역에서 동료들에게 버림받은 빈사상태의 사냥꾼의 생존과 복수에 관한 혹독한 액션 드라마로 작품상과 함께 알레한드로 G. 이나리투가 감독상을 그리고 레오나르도 디카프리오가 주연상을 각기 탔다.
‘화성인’은 동료 우주인들과 함께 화성 탐사에 나섰다가 혼자 남게 된 우주인의 얘기로 작품상 외에 맷 데이먼이 주연상을 탔다. 그런데 작품상을 받으러 무대에 오른 이 영화의 감독 겸 제작자인 노장 리들리 스캇도 수상 소감 서두에 “코미디?”하며 고개를 갸우뚱했듯이 ‘화성인’을 코미디/뮤지컬 부문에 포함시킨 것에 대한 회의가 나돌았었다.
‘화성인’을 이 부문에 넣은 것은 폭스사가 ‘레버넌트’와 ‘화성인’을 함께 드라마 부문에 출품, 제 닭 잡아먹기 식으로 피해를 보지 않기 위해 마련한 궁여지책이다. 그 결과 두 영화가 다 작품상을 탐으로써 폭스사의 전략이 성공한 셈.
‘조이’는 특수걸레를 고안한 조이 망가노의 실화로 조이 역의 제니퍼 로렌스가 주연상을 탔다. 그런데 디카프리오와 로렌스는 골든 글로브를 주는 할리웃 외신기자협회(HFPA)가 사랑하는 배우들로 디카프리오는 과거 이 상을 두 번이나 탔고 로렌스도 한 번 탄 바 있다.
‘레버넌트’와 ‘화성인’이 이렇게 골든 글로브 주요 상을 휩쓸면서 이 두 영화는 오는 2월에 열릴 오스카 시상식에서도 크게 각광을 받게 됐다. 지금까지 모두 4번 오스카상에 도전했으나 실패한 디카프리오가 마침내 주연상을 탈 가능성이 매우 높아졌다.
‘레버넌트’의 작품상과 감독상 수상은 약간의 이변이라고도 볼 수 있다. 시상식이 열리기 전만해도 드라마 부문 작품상은 보스턴 가톨릭 교구 내 신부들의 아동 성추행을 폭로한 보스턴 글로브의 활약을 다룬 ‘스팟라이트’(Spotlight)가 그리고 감독상은 ‘화성인’을 연출한 리들리 스캇이 탈 것으로 유력시 됐었다.
또 다른 이변은 ‘스팟라이트’ 외에 작품상을 비롯해 여러 부문에서 수상 후보에 올랐던 ‘빅 쇼트’(The Big Short)와 ‘캐롤’(Carol) 및 ‘덴마크 여인’(The Danish Girl) 등이 모두 단 한 개의 상도 못 탄 것이다.
여우조연상은 애플 컴퓨터의 공동 창업자인 스티브 잡스의 삶을 다룬 ‘스티브 잡스’(Steve Jobs)에서 잡스의 충실한 참모로 나온 케이트 윈슬렛이 탔다. 그런데 채닝 테이텀과 함께 여우 조연상 시상자로 무대에 오른 조나 힐이 말끝마다 F자 상소리를 내뱉는 바람에 시상식을 중계하는 NBC-TV 측이 이 말들을 삭제하느라 그의 말은 절반 이상이 무성으로 방영됐다. 잔에 든 맥주를 마시면서 사회를 본 제르베즈를 비롯해 F자 상소리가 난무하는 쇼였다.
이 날 가장 감격적이었던 모습은 ‘크리드’(Creed)로 남우조연상을 탄 실베스터 스탤론(69)의 것. 그는 여기서 자신의 출세작인 ‘록키’에서 자신의 라이벌이었던 아폴로 크리드의 아들의 코치로 나와 민감한 연기를 보여주었다.
스탤론이 무대에 오르는 순간 참석자들의 뜨거운 기립박수를 받았다. 그는 1977년 ‘록키’로 골든 글로브 각본과 주연상 후보에 올랐으나 상은 못 탔는데 이번에 근 40년 만에 같은 인물로 나와 비로소 상을 탄 것이다. 록키처럼 언더독의 승리라고 하겠는데 스탤론은 인사말에서 “나의 보이지 않는 가장 친한 친구 록키 발보아에게 고마움을 표한다”라고 말해 다시 한 번 박수갈채를 받았다.
‘크리드’로 남우조연상을 탄 실베스터 스탤론. |
‘스티브 잡스’는 여우조연상 외에도 아론 소킨이 각본상을 탔는데 흥행에서 참패한 영화가 이렇게 중요한 두 개의 상을 탄 것도 놀라운 일이다. 그런 탓인지 윈슬렛과 소킨은 모두 수상 소감에서 “믿을 수가 없다”며 감격해 했다.
외국어 영화상은 또 다른 홀로코스트 영화인 ‘사울의 아들’(Son of Saul)이 탔는데 미 영화계의 통설인 ‘할리웃에서는 홀로코스트 영화를 만들면 꼭 상을 탄다’는 말이 이 번에도 적중한 셈이다. 따라서 이 영화는 오스카상을 탈 확률도 부쩍 높아졌다.
음악상은 쿠엔틴 타란티노의 피범벅 웨스턴 ‘헤이트풀 에잇’(The Hateful Eight)의 음악을 작곡한 이탈리아의 노익장 엔니오 모리코네(87)가 탔다. 모리코네는 ‘황야의 무법자’ 시리즈의 음악을 작곡한 사람으로 이 날 건강문제로 식에 불참, 타란티노가 대신 받았다.
이 날 시상식에는 각기 코미디 부문의 남녀주연상 후보에 오른 알 파치노(‘대니 칼린스’)와 매기 스미스(‘밴 속의 여자’)도 불참했다. 한편 브래드 핏은 시상자로 식에 참석했으나 그의 부인 앤젤리나 졸리 핏의 모습은 보이지 않았다.
주제가상은 영국 가수 샘 스미스가 작곡하고 노래한 007 시리즈 ‘스펙터’(Spectre)의 ‘라이팅 온 더 월’(Writing on the Wall)이 탔다. 조수미가 부른 ‘청춘’(Youth)의 주제가 ‘심플 송 #3’은 아깝게도 고배를 마셨다. 만화영화는 예상대로 픽사의 ‘인사이드 아웃’(Inside Out)이 받았다. 생애 업적상인 세실 B. 드밀 상은 덴젤 워싱턴이 받았다.
골든 글로브는 영화와 함께 TV 부문에 대해서도 시상하는데 HFPA는 보통 새 프로와 인물들에 대해 시상을 해 이들을 격려하고 있다. 이 날 새 시리즈들인 ‘정글 속의 모차르트’(Mozart in the Jungle)와 ‘미스터 로봇’(Mr. Robot)이 상을 탄 것도 이런 맥락에서 읽을 수 있다.
이 날 사회를 본 영국인 코미디언 릭키 제르베즈는 이 번으로 4번째 마이크를 잡았는데 지난 3년간은 여류 코미디언 티나 페이와 에이미 폴러가 공동으로 사회를 봤었다. 제르베즈는 농담이 지나치다 못해 독설로 변하는 경향이 있어 시상식을 주관하는 HFPA와 식을 중계하는 NBC는 물론이요 식에 참석한 배우들을 싸잡아 조롱하고 야유하곤 했다.
이 날도 그는 맥주를 들고 마시면서 F자 상소리를 섞어 좌충우돌 식으로 골든 글로브를 ‘무가치한 상’이라고 야유를 한 뒤 NBC는 자사 작품이 단 하나도 수상 후보에 오르지 않았는데도 식을 중계한다고 조롱했다. 이어 그는 션 펜과 찰리 쉰을 비롯해 케이틀린 젠너와 함께 뒤 늦게 남자에서 여자로 성전환한 사람의 코미디 ‘트랜스패런트’의 주인공으로 식에 참석한 제프리 탬보 등을 농담거리로 삼았다.
그는 몇 년 전에 술에 대취해 유대인들을 욕한 멜 깁슨을 조롱해 큰 화제가 됐었는데 이 날 시상자로 무대에 오른 깁슨을 소개하면서 “난 빌 코스비보다는 차라리 멜과 함께 그의 방에서 술을 마시겠다”며 섹스 스캔들에 휘말린 코스비를 야유하면서 아울러 깁슨과는 일종의 화해를 했다. 제르베즈는 주최 측으로부터 어떤 경고를 받았는지 과거보다는 농담의 독기가 순화된 느낌이었다. 시상식이 끝나자 스타를 비롯한 참석자들은 일제히 호텔 내서 열리는 6군데의 파티장들로 자리를 옮겼다.
<한국일보 박흥진 편집위원/ hjpark1230@gmai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