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이야기

2016년 1월 19일 화요일

제73회 골든 글로브 시상식

작품·감독·남우주연상 수상작(드라마)‘레버넌트’의 감독 알레한드로 G. 이나리투(오른쪽)과 레오나르도 디카프리오 및 제작진들이 무대에 올라 있다.


드라마 부문 - ‘레버넌트’남우주연상, 작품과 감독 3개 부문 석권
코미디/뮤지컬 - ‘화성인’작품과 남우주연상‘조이’여우주연상 수상


10일 베벌리힐스의 베벌리 힐튼 호텔에서 릭키 제르베즈(사진)의 사회로 열린 제73회 골든 글로브 시상식은 폭스사가 주요 상을 독식 하다시피 한 폭스사의 잔치였다.
드라마 부문 작품과 감독 그리고 남우주연상 수상작인‘레버넌트’(The Revenant)와 코미디/뮤지컬 부문 작품과 남우주연상을 탄 ‘화성인’(The Martian) 및 여주주연상 수상작인 ‘조이’(Joy) 등이 모두 폭스사 작품이다. *골든 글로브는 작품과 남녀 주연상 부문에 한해 드라마와 코미디/뮤지컬 두 개의 부문으로 나눠 시상한다.
‘레버넌트’는 19세기 초 미국의 록키산 지역에서 동료들에게 버림받은 빈사상태의 사냥꾼의 생존과 복수에 관한 혹독한 액션 드라마로 작품상과 함께 알레한드로 G. 이나리투가 감독상을 그리고 레오나르도 디카프리오가 주연상을 각기 탔다.
‘화성인’은 동료 우주인들과 함께 화성 탐사에 나섰다가 혼자 남게 된 우주인의 얘기로 작품상 외에 맷 데이먼이 주연상을 탔다. 그런데 작품상을 받으러 무대에 오른 이 영화의 감독 겸 제작자인 노장 리들리 스캇도 수상 소감 서두에 “코미디?”하며 고개를 갸우뚱했듯이 ‘화성인’을 코미디/뮤지컬 부문에 포함시킨 것에 대한 회의가 나돌았었다.
‘화성인’을 이 부문에 넣은 것은 폭스사가 ‘레버넌트’와 ‘화성인’을 함께 드라마 부문에 출품, 제 닭 잡아먹기 식으로 피해를 보지 않기 위해 마련한 궁여지책이다. 그 결과 두 영화가 다 작품상을 탐으로써 폭스사의 전략이 성공한 셈.
‘조이’는 특수걸레를 고안한 조이 망가노의 실화로 조이 역의 제니퍼 로렌스가 주연상을 탔다. 그런데 디카프리오와 로렌스는 골든 글로브를 주는 할리웃 외신기자협회(HFPA)가 사랑하는 배우들로 디카프리오는 과거 이 상을 두 번이나 탔고 로렌스도 한 번 탄 바 있다.
‘레버넌트’와 ‘화성인’이 이렇게 골든 글로브 주요 상을 휩쓸면서 이 두 영화는 오는 2월에 열릴 오스카 시상식에서도 크게 각광을 받게 됐다. 지금까지 모두 4번 오스카상에 도전했으나 실패한 디카프리오가 마침내 주연상을 탈 가능성이 매우 높아졌다.
‘레버넌트’의 작품상과 감독상 수상은 약간의 이변이라고도 볼 수 있다. 시상식이 열리기 전만해도 드라마 부문 작품상은 보스턴 가톨릭 교구 내 신부들의 아동 성추행을 폭로한 보스턴 글로브의 활약을 다룬 ‘스팟라이트’(Spotlight)가 그리고 감독상은 ‘화성인’을 연출한 리들리 스캇이 탈 것으로 유력시 됐었다.
또 다른 이변은 ‘스팟라이트’ 외에 작품상을 비롯해 여러 부문에서 수상 후보에 올랐던 ‘빅 쇼트’(The Big Short)와 ‘캐롤’(Carol) 및 ‘덴마크 여인’(The Danish Girl) 등이 모두 단 한 개의 상도 못 탄 것이다.
드라마 부문 여우주연상은 괴한에게 납치돼 오랜 세월 감금된 채 성폭행을 당하면서 아들까지 나은 젊은 여자의 삶과 탈출을 그린 ‘방’(Room)의 비교적 신인인 브리 라슨에게 돌아갔다.
여우조연상은 애플 컴퓨터의 공동 창업자인 스티브 잡스의 삶을 다룬 ‘스티브 잡스’(Steve Jobs)에서 잡스의 충실한 참모로 나온 케이트 윈슬렛이 탔다. 그런데 채닝 테이텀과 함께 여우 조연상 시상자로 무대에 오른 조나 힐이 말끝마다 F자 상소리를 내뱉는 바람에 시상식을 중계하는 NBC-TV 측이 이 말들을 삭제하느라 그의 말은 절반 이상이 무성으로 방영됐다. 잔에 든 맥주를 마시면서 사회를 본 제르베즈를 비롯해 F자 상소리가 난무하는 쇼였다.
이 날 가장 감격적이었던 모습은 ‘크리드’(Creed)로 남우조연상을 탄 실베스터 스탤론(69)의 것. 그는 여기서 자신의 출세작인 ‘록키’에서 자신의 라이벌이었던 아폴로 크리드의 아들의 코치로 나와 민감한 연기를 보여주었다.
스탤론이 무대에 오르는 순간 참석자들의 뜨거운 기립박수를 받았다. 그는 1977년 ‘록키’로 골든 글로브 각본과 주연상 후보에 올랐으나 상은 못 탔는데 이번에 근 40년 만에 같은 인물로 나와 비로소 상을 탄 것이다. 록키처럼 언더독의 승리라고 하겠는데 스탤론은 인사말에서 “나의 보이지 않는 가장 친한 친구 록키 발보아에게 고마움을 표한다”라고 말해 다시 한 번 박수갈채를 받았다.
‘크리드’로 남우조연상을 탄 실베스터 스탤론.
그런데 스탤론은 너무 흥분해 답사에서 ‘크리드’의 감독인 라이언 쿠글러와 주연 배우인 마이클 B. 조단에게 미처 고맙다는 말을 못하고 퇴장하려다가 되돌아와 마이크를 붙잡고 두 사람에게 감사의 뜻을 표했으나 광고가 나가는 바람에 TV로 방영되진 못했다.
‘스티브 잡스’는 여우조연상 외에도 아론 소킨이 각본상을 탔는데 흥행에서 참패한 영화가 이렇게 중요한 두 개의 상을 탄 것도 놀라운 일이다. 그런 탓인지 윈슬렛과 소킨은 모두 수상 소감에서 “믿을 수가 없다”며 감격해 했다.
외국어 영화상은 또 다른 홀로코스트 영화인 ‘사울의 아들’(Son of Saul)이 탔는데 미 영화계의 통설인 ‘할리웃에서는 홀로코스트 영화를 만들면 꼭 상을 탄다’는 말이 이 번에도 적중한 셈이다. 따라서 이 영화는 오스카상을 탈 확률도 부쩍 높아졌다.
음악상은 쿠엔틴 타란티노의 피범벅 웨스턴 ‘헤이트풀 에잇’(The Hateful Eight)의 음악을 작곡한 이탈리아의 노익장 엔니오 모리코네(87)가 탔다. 모리코네는 ‘황야의 무법자’ 시리즈의 음악을 작곡한 사람으로 이 날 건강문제로 식에 불참, 타란티노가 대신 받았다.
이 날 시상식에는 각기 코미디 부문의 남녀주연상 후보에 오른 알 파치노(‘대니 칼린스’)와 매기 스미스(‘밴 속의 여자’)도 불참했다. 한편 브래드 핏은 시상자로 식에 참석했으나 그의 부인 앤젤리나 졸리 핏의 모습은 보이지 않았다.  
주제가상은 영국 가수 샘 스미스가 작곡하고 노래한 007 시리즈 ‘스펙터’(Spectre)의 ‘라이팅 온 더 월’(Writing on the Wall)이 탔다. 조수미가 부른 ‘청춘’(Youth)의 주제가 ‘심플 송 #3’은 아깝게도 고배를 마셨다. 만화영화는 예상대로 픽사의 ‘인사이드 아웃’(Inside Out)이 받았다. 생애 업적상인 세실 B. 드밀 상은 덴젤 워싱턴이 받았다.
골든 글로브는 영화와 함께 TV 부문에 대해서도 시상하는데 HFPA는 보통 새 프로와 인물들에 대해 시상을 해 이들을 격려하고 있다. 이 날 새 시리즈들인 ‘정글 속의 모차르트’(Mozart in the Jungle)와 ‘미스터 로봇’(Mr. Robot)이 상을 탄 것도 이런 맥락에서 읽을 수 있다.
이 날 사회를 본 영국인 코미디언 릭키 제르베즈는 이 번으로 4번째 마이크를 잡았는데 지난 3년간은 여류 코미디언 티나 페이와 에이미 폴러가 공동으로 사회를 봤었다. 제르베즈는 농담이 지나치다 못해 독설로 변하는 경향이 있어 시상식을 주관하는 HFPA와 식을 중계하는 NBC는 물론이요 식에 참석한 배우들을 싸잡아 조롱하고 야유하곤 했다.
이 날도 그는 맥주를 들고 마시면서 F자 상소리를 섞어 좌충우돌 식으로 골든 글로브를 ‘무가치한 상’이라고 야유를 한 뒤 NBC는 자사 작품이 단 하나도 수상 후보에 오르지 않았는데도 식을 중계한다고 조롱했다. 이어 그는 션 펜과 찰리 쉰을 비롯해 케이틀린 젠너와 함께 뒤 늦게 남자에서 여자로 성전환한 사람의 코미디 ‘트랜스패런트’의 주인공으로 식에 참석한 제프리 탬보 등을 농담거리로 삼았다.
그는 몇 년 전에 술에 대취해 유대인들을 욕한 멜 깁슨을 조롱해 큰 화제가 됐었는데 이 날 시상자로 무대에 오른 깁슨을 소개하면서 “난 빌 코스비보다는 차라리 멜과 함께 그의 방에서 술을 마시겠다”며 섹스 스캔들에 휘말린 코스비를 야유하면서 아울러 깁슨과는 일종의 화해를 했다. 제르베즈는 주최 측으로부터 어떤 경고를 받았는지 과거보다는 농담의 독기가 순화된 느낌이었다. 시상식이 끝나자 스타를 비롯한 참석자들은 일제히 호텔 내서 열리는 6군데의 파티장들로 자리를 옮겼다.
                                                             <한국일보 박흥진 편집위원/ hjpark1230@gmail.com>

덴마크 여인(The Danish Girl)


게르다(왼쪽)가 여장을 한 남편 아이나를 모델로 그림을 그리고 있다.

최초로 성전환 수술 받은 화가 베게너 전기영화


의학 사상 최초로 성전환 수술을 받은 사람 중의 하나인 덴마크의 화가 아이나 베게너(1882~1931)의 전기영화로 아이나 역의 에디 레드메인과 그의 아내로 역시 화가였던 게르다 역의 알리시아 비칸더의 연기가 보석처럼 빛나는 영화다.
아름답고 섬세하고 민감하며 차분한데 좀 더 감정적으로 깊이와 무게가 있었으면 하는 아쉬움이 크다.
허풍을 떨지 않아선 좋긴 하나 지나치게 완벽하려다 오히려 사실성과 생명감이 약해진 우를 범하고 있다.
미 올림픽 금메달 육상선수 브루스 제너가 케이틀린이라는 이름의 여자로 성전환 수술을 해 화제가 되고 있는 요즘 시의에 딱 맞는 영화이기도 하다.
이 영화는 작년에 나와 비평가들의 격찬을 받은 소품 ‘탠저린’(Tangerine)의 자매편과도 같은 작품이다. ‘탠저린’은 여자로 성전환한 두 명의 흑인 배우가 할리웃의 샌타모니카 거리에서 몸을 파는 창녀로 나오는 얘기인데 두 배우의 연기가 뛰어난 코미디 드라마다.  
‘덴마크 여인’의 시대는 1926년께. 아이나는 성공한 풍경화가요 그의 아내 게르다는 남편 보다 성공 못한 인물화가. 어느 날 게르다는 모델 없이 그림을 그리다가 아이나에게 여자 모델 노릇을 하라고 부탁한다.
이에 아이나는 스타킹에 발레 슬리퍼를 신고 비단 드레스를 입은 채 아내의 모델이 된다. 그리고 아이나는 자기 피부에 와 닿는 비단 옷의 감촉에 매료된다. 이로 인해 아이나는 서서히 자기 안의 여성적인 곳을 찾아 나아가고 게르다는 그런 남편으로부터 영감을 받아 화가로서 성공의 길에 오른다.
아이나가 여자가 되기를 원한다는 것을 간파한 게르다는 처음에는 다소 슬퍼하나 남편의 뜻을  적극적으로 지원하면서 아이나에게 여성 화장과 함께 가발을 쓰게 하고 드레스를 입힌 뒤 릴리라는 이름으로 둘이 함께 사교계 무도회에 나간다. 그리고 릴리는 헨릭(벤 위셔)의 구애까지 받는다.
게르다의 성공으로 여유가 생긴 둘은 보다 자유롭고 개방된 파리로 이사한다. 그리고 여기서 아이나의 어릴 적 친구로 부유한 미술품 중개상인 한스(마티아스 쇠네르츠)의 주선으로 독일 의사 봐네크로스(세바스티안 코호)로부터 성전환 수술을 받기 위해 드레스덴으로 간다.
당시만 해도 이런 수술은 매우 위험한 혁명적인 것이어서 아이나는 그야 말로 죽음을 각오하고 수술을 받기로 결정한다. 게르다는 이런 아이나를 옆에서 충실히 돌본다. 아이나는 수술 후 이름을 릴리 일제 엘베네스(릴리 엘베라고 불렸다)로 바꿨는데 이 후 그림을 안 그렸다.
작년에 ‘모든 것의 이론’에서 스티븐 호킹 역으로 오스카 주연상을 탄 레드메인의 결이 고른 비단처럼 곱고 섬세한 연기가 훌륭한데 이보다 더 돋보이는 것이 레드메인의 고요한 연기에 맞선 생동감 넘치면서도 깊이가 있는 비칸더의 연기다. 의상과 촬영과 프로덕션 디자인 등도 뛰어나다. 탐 후퍼 감독. R. Focus. 전지역.  ★★★½(5개 만점)
                                                               <한국일보 박흥진 편집위원/ hjpark1230@gmail.com>

잔 다크의 수난(The Passion of Joan of Arc)


잔 다크가 십자가를 들고 화형장에 오르고 있다.

프랑스 가톨릭 신부들의 잔 다크 재판 재구성


덴마크의 칼 데오도어가 감독하고 연극배우 르네 잔 팔코네티가 잔 다크로 나오는 1928년 작 무성영화로 영화사의 기념비적 작품이다. 
‘오를레앙의 처녀’ 잔 다크(1412~1431)에 대한 프랑스 가톨릭 신부들의 마녀재판 기록을 바탕으로 재판과정과 화형을 치밀하게 재구성했는데 데오도어의 연출과 팔코네티의 연기 그리고 후에 할리웃으로 건너와 감독이 된 루돌프 마테의 촬영이 획기적이요 경이롭다.
특히 고뇌하는 잔 다크의 얼굴이 자주 크게 클로스업으로 화면을 가득 메우면서 보는 사람으로 하여금 이 무식한 촌색시 성녀의 고뇌를 함께 느끼도록 한다. 마테는 잔 다크와 그를 심문하는 신부들의 얼굴과 머리뿐 아니라 이들의 육체에 가깝게 접근해 우리로 하여금 그들과 함께 있는 현장감을 조성하고 있다.  
마테의 촬영은 투명하면서 간결하고 또 솔직한데 이와 함께 재판이 열리는 수도원의 흰 외부 내부를 비롯해 장식 없는 무대를 꾸며 잔 다크와 신부들 간의 치열한 영적 대결을 강렬하게 부각시킨다. 
화면구성이 과감한 영화로 인물들이 말을 하는 입술의 움직임과 제스처가 마치 무대의 무언극을 보는 느낌을 주는데 진행이 매우 느리다. 따라서 순간순간이 고뇌로 연결되면서 서서히 감정의 결을 축적하다가 이것은 마지막에 깊은 감동으로 승화된다.         
대담무쌍한 영적 드라마로 팔코네티의 체념과 고뇌와 불굴의 정신 그리고 자비로운 부드러움이 절묘한 조화를 이루면서 떠도는 얼굴 표정은 한 번 보면 결코 잊지 못할 것이다. 이 영화는 팔코네티의 유일한 주연 영화다. 그런데 드라이어는 배우들의 화장을 허락하지 않고 조명을 사용해 그 모습들을 더욱 기괴하게 만들었다.
영국과 프랑스 간의 백년전쟁 중인 1431년 영국군에게 포로가 된 잔 다크가 루앙으로 호송돼 영국에 충성하는 프랑스 로마 가톨릭 신부들에 의해 종교재판을 받는다. 신부들은 신의 소명을 받아 영국군을 물리치기 위해 출전했다는 잔 다크의 믿음을 꺾으려고 하나 잔 다크는 이에 굴복치 않고 결국 화형 당한다.       
이 영화가 영국의 남성 5인조 중창단 올란도 콘소트의 무반주 노래와 함께 16일 하오 8시 코스타메사의 시거스트롬 콘서트홀(615 Town Center Dr.)에서 상영된다. 중창단의 노래는 잔 다크 시대에 작곡된 중세 노래다. (949)553-2422, (714)556-2787. ★★★★★(5개만점)
                                              <한국일보 박흥진 편집위원/ hjpark1230@gmail.com>     



레오로부터 온 편지




지난 연말에 레오나르도 디카프리오(사진)로부터 친필 편지가 날아왔다.
“디어 H.J. 
나를 최우수 주연 남우 후보로 지명해 줘 고맙습니다. 나는 할리웃 외신기자협회가 지난 21년간 내 생애에 보내준 후원에 영원히 감사하고 있습니다. 당신도 알다시피 이 영화는 알레한드로와 나 그리고 전체 영화팀의 사랑의 노고입니다. 당신의 인정은 정말로 많은 것을 뜻합니다. 1월에 당신을 만나기를 기대합니다. 마이 베스트,”
판독불명의 서명이 적힌 편지는 내가 속한 할리웃 외신기자협회(HFPA)가 ‘레버넌트’(The Revenant)에 나온 자기를 제73회 골든 글로브 남우주연상 후보로 선정한 것에 대한 감사와 함께 은근히 진짜로 상도 달라는 의미가 내포된 글이다. 
그런데 레오는 그 뜻이 이뤄져 지난 10일에 열린 시상식에서 주연상(드라마 부문)을 탔다. 나도 레오와 작품 그리고 알레한드로 G. 이나리투 감독에게 투표, 셋이 다 수상을 했는데 내가 레오에게 투표한 것은 그의 편지와는 아무 상관도 없다.
해마다 연말이 되면 영화와 TV의 배우와 감독 그리고 제작자와 각본가를 비롯해 작곡가들이 우리들에게 카드와 편지 그리고 서명한 영화사진과 악보 및 음반 등을 보내오곤 한다. 이는 물론 송구영신 인사와 함께 자기들을 수상 후보로(그리고 최종적으로는 수상자) 밀어달라는 뜻이 담긴 운동을 겸한 것이다.
그런데 대부분의 편지와 카드들은 내용은 인쇄하고 서명만 친필로 적은 것들로 레오의 편지처럼 내용까지 친필로 써 보내는 경우는 많지가 않다. 90명에 가까운 우리 회원들에게 일일이 친필로 편지를 써 보낸다는 것이 쉬운 일이 아니라는 것은 알지만 아무래도 인쇄된 글보다는 친필에 더 마음이 가게 마련이다. 그러나 물론 친필 편지를 써 보내왔다고 해서 표를 찍어 주지는 않는다.  
그런데 공교롭게도 이번에는 레오 외에도 친필로 쓴 편지를 보내온 두 명의 배우가 골든 글로브를 탔다. 다음은 ‘크리드’(Creed)에서 나이 먹은 록키 발보아로 나와 남우조연상을 탄 실베스터 스탤론의 편지다.
“디어 H.J. 
나는 당신과 골든 글로브가 뜻밖에도 나를 후보로 지명해준 것에 대해 감사의 뜻을 전하고자 합니다. 베스트, 슬라이 스탤론.”
이 글은 우리가 슬라이(실베스터의 애칭)를 조연상 후보로 뽑은 뒤에 보내온 것이다. 그런데  나는 슬라이가 아니라 ‘스파이들의 다리’에서 소련 스파이로 나온 영국 배우 마크 라일런스에게 투표했다. 
‘방’(Room)으로 여우주연상(드라마 부문)을 탐 브리 라슨도 후보로 지명된 후 친필 편지를 보내 왔다. 
“디어 H.J. 
저의 영화를 시간을 내 본 것에 대해 감사합니다. 이 영화는 제게 너무 많은 것을 뜻하며 당신과 함께 그 같은 의미를 나누게 된 것을 사랑하고 있습니다. 당신의 모든 지원에 감사합니다. 베스트, 브리 라슨.” 라슨이 상을 탄 데는 내 표도 한몫했다. 
이번에 배우들이 보내온 카드들 중에 독특한 것은 수퍼스타 가수 레이디 가가의 것. 그는 TV(HFPA는 TV부문에 대해서도 시상한다) 미니시리즈 ‘아메리칸 호러 스토리: 호텔’로 여우주연상 후보에 오른 것에 감사하는 글을 인쇄해 보내 왔다. 

내 이름과 자기 서명은 친필인데 서명 옆에 새빨간 루즈를 바른 자신의 탐스런 입술을 찍어 보냈다. 키스 탓은 아니겠으나 레이디 가가는 주연상을 타고 무대에서 눈시울을 적시며 감격해 했다.
그러나 내가 받은 편지들 중 이들의 것보다 훨씬 더 반가웠던 것은 영국 여배우 조안 프로갓의 것이다. 프로갓은 TV 시리즈, 미니시리즈 및 영화 부문에서 ‘다운턴 애비’에서의 하녀 역으로 조연상 후보에 올랐으나 상을 못 탔는데도 시상식 후 감사의 글을 E메일로 보내 왔다. 
“디어 H.J. 
저를 올해 골든 글로브 후보 중 한 명에 포함시켜 준 것에 대해 다시 한 번 큰 감사를 하고자 합니다. 저는 아주 훌륭한 밤을 보냈으며 아름다운 사람들과 얘기를 나눴습니다. 제가 이런 행사의 한 부분이 된 것을 매우 영광으로 생각합니다. 올 마이 베스트, 조 프로가트.”
나는 지난해에 이 시리즈(현재 PBS에서 마지막 시리즈가 방영 중이다)의 현장 방문차 런던에 갔을 때 프로가트와 한 테이블에 앉아 대화를 나눴었는데 사람이 매우 겸손해 좋은 인상을 받았던 기억이 난다.                              <한국일보 박흥진 편집위원/ hjpark1230@gmai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