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이야기

2018년 3월 19일 월요일

툼 레이더(Tomb Raider)


라라 크로프트(알리시아 비칸더)가 적을 향해 활을 겨냥하고 있다.

실종 아버지 찾아 무인도서 악당·악령과 벌이는 사투


가무잡잡한 피부에 가녀린 몸을 지닌 스웨덴 태생의 여배우 알리시아 비칸더가 영화를 위해 근육을 20파운드나 늘린 뒤 뛰고 달리고 떨어지고 절벽에 매달리고 급류에 휩쓸리면서 죽을 고생을 하는 액션 모험영화인데 도무지 흥도 신도 안 나고 심심하고 재미없다.
비칸더는 아버지를 찾아 이역만리 무인도에서 나쁜 놈들과 여자 악귀를 상대로 치고 박고 차고 찌르고 활을 쏘면서 맹렬한 킬러로 분주하나 공연히 땀만 흘린 셈이다. 이 영화는 비디오게임을 바탕으로 만든 것으로 ‘덴마크 여자’로 오스카 조연상을 탄 비칸더가 ‘나라고 액션 못할 것 같아’라는 듯이 탈바꿈을 시도한 것인데 아무래도 배역 선정이 잘못 된 것 같다.
특수효과에 지나치게 의존한데다가 플롯에 허점이 많고 또 인물들의 개발이 미흡한 서푼짜리 졸작으로 주인공 여전사 라라 크로프트 얘기는 지난 2001년 앤젤리나 졸리 주연으로 이미 영화화 했고 2003년에는 속편까지 나왔다. 졸리의 영화도 비평가들의 혹평을 들었는데 그래도 졸리가 비칸더보다 낫다.
영국 귀족가문의 재벌 리처드 크로프트 경(도미닉 웨스트)의 딸 라라(비칸더)는 아버지의 재산 상속을 거부하고 런던에서 자전거 배달부로 근근이 살아간다. 리처드는 7년 전 동양으로 인류를 재앙으로 몰아넣을 케케묵은 일본제 악령인 죽음의 여왕 히미코의 무덤을 찾아 떠난 뒤 행불이 된 상태.
아버지의 생존을 믿고 있는 라라는 아버지의 물건들을 정리하다가 아버지가 히미코의 무덤이 있는 일본 근해의 무인도에 갔다는 것을 발견하고 아버지를 찾아 동방여정에 나선다. 먼저 도착한 곳이 아버지가 배를 고용한 홍콩. 여기서 라라는 자기 가방을 훔친 청년들을 상대로 한바탕 액션 실력을 발휘한 뒤 아버지가 고용한 배의 주인의 아들로 술꾼인 루렌(대니얼 우)을 설득해 목적지로 떠난다.
그리고 섬에 도착해보니 잔인무도하기 짝이 없는 킬러 보겔(월턴 고긴스)이 이끄는 무뢰한들의 집단 트리니티가 먼저 와 히미코의 무덤을 찾고 있지 않겠는가. 라라와 루렌은 보겔에 붙잡혀 죽을 고생을 하다가 라라가 무술실력을 발휘해 혼자 탈출한다. 그리고 라라는 동굴 속에서 암굴 왕 몬테 크리스토 백작처럼 살고 있는 아버지를 만나 재회의 기쁨을 나눈다. 신파다.
이제 부녀의 임무는 히미코의 무덤을 찾아내 그것을 파괴하는 것. 그러나 이들의 뒤를 보겔 일당이 쫓아와 라라와 리처드와 보겔 등이 함께 동굴 속으로 깊이 히미코의 무덤을 찾아 간다. 그리고 히미코의 악령이 살아나면서 난리법석이 일어난다.
영화를 보면 ‘인디애나 존스’의 장면들을 그대로 빌려다가 쓴 부분이 많은 것을 발견하게 된다. 감독은 쓰나미 대재난 얘기 ‘웨이브’를 만든 노르웨이의 로어 우턱으로 그의 할리웃 데뷔작이다. 크리스틴 스캇 토마스와 함께 명연기파 데렉 자코비가 단역으로 소모되고 있는데 영화가 흥행에 성공하면 속편이 나올 것처럼 끝이 난다. PG-13. WB. ★★½ (5개 만점)
                                                            <한국일보 박흥진 편집위원/ hjpark1230@gmail.com>


엔테베의 7일(7 Days in Entebbe)


독일 테러리스트 보니(왼쪽)와 브리기테가  납치한 에어 프랑스기 앞에 무장을 한 채 서 있다.


1976년 에어 프랑스기 납치사건 소재
구출협상 작전… 액션보다 말만 무성


1976년 6월에 일어난 에어 프랑스기 납치사건을 다룬 영화로 액션과 서스펜스 대신 말이 많다. 이스라엘 정치가들은 납치된 이스라엘 시민을 구출할 방법을 놓고 갑론을박을 하고 납치범들은 그들 나름대로 자신들의 소명을 설명하느라 말이 많다.
액션 영화의 소재를 놓고 정치성이 다분한 드라마를 만들었으니 지루하기 짝이 없는데 신경을 극히 거슬리는 것은 영화 간간이 모던 댄스 장면을 삽입해 내용의 흐름을 막고 있는 점이다. 브라질 감독 호세 파디야는 댄스장면을 극적 효과를 극대화하기 위해 쓰고 있지만 보고 있자니 짜증이 난다.
이 사건은 1976년 커크 더글러스, 버트 랭카스터 및 엘리자베스 테일러 등 기라성 같은 배우들을 써 ABC-TV가 ‘엔테베의 승리’라는 영화로 만들었고 1977년에는 찰스 브론슨이 주연하는 NBC-TV 영화 ‘엔테베 습격’으로도 만들어졌다. 둘 다 흥미진진한 액션영화로 ‘엔테베의 7일’보다 백배 낫다.
백 수십 명에 달하는 이스라엘 시민과 프랑스 시민들을 태우고 텔아비브에서 파리로 가던 여객기가 2명의 팔레스타인 해방인민전선 단원과 팔레스타인 독립을 지원하는 독일의 두 남녀 테러리스트 보니(다니엘 브륄)와 브리기테 쿨만(로자먼드 파이크)에 의해 납치된다.
그리고 여객기는 식인종 이디 아민이 통치하는 우간다의 엔테베공항에 착륙한다. 납치범들은 이들을 공항 터미널에 수용한 뒤 이스라엘 정부에 대해 이스라엘이 수감한 테러리스트와 승객들을 교환하자고 제의한다.
이스라엘은 절대로 납치범들과 협상을 하지 않는 것을 정책으로 삼고 있어 온건파 이츠학 라빈 수상(리오르 아쉬케나지)과 강경파 시몬 페레즈 국방장관(에디 마산) 등이 참석한 각료회의에서는 이 문제를 놓고 열띤 토론이 벌어진다. 그리고 밖에서는 납치된 사람들의 가족들이 자기 가족들을 살려내라고 아우성을 치면서 정부에 압박을 가한다.
이스라엘 장면과 우간다의 납치범들의 신상 소개 그리고 이들과 납치된 사람들과의 얘기가 오락가락 하면서 서술되는데 납치범들이 납치한 사람들 중에서 이스라엘 시민들을 따로 분리시키면서 공포 분위기가 조성된다. 그런데 영화는 두 독일 납치범들을 매우 인간적으로 다루고 있다.
마침내 이스라엘 군 특공대에 의해 ‘선더볼작전’이 시작되면서 이들을 실은 군용기가 심야에 엔테베에 도착한다. 작전 결과 이스라엘 군 1명과 납치된 사람들 중 4명만 사망하고 나머지는 모두 구출됐다. PG-13. ★★½ (5개 만점)
                                                            <한국일보 박흥진 편집위원/ hjpark1230@gmail.com>


김기덕


한국에 불어 닥친 대여성 성폭행 폭로운동인 ‘미투’의 표적 중 한 사람으로 지목 받던 영화와 연극배우이자 대학교수인 조민기가 끝내 자살을 하고 말았다 그의 자살은 2009년 신성 장자연(당시 27세)이 매니저의 압력으로 영화감독과 회사사장 및 신문사 간부들에게 섹스를 제공하다 못해 자살한 것과 역설적인 대조를 이룬다. 이렇게 영화감독이나 제작자가 배역을 미끼로 여배우들로부터 섹스를 착취하던 소파를  ‘캐스팅 카우치’(casting couch)라고 일컫는다. 
지금 한국영화계에서 ‘미투’의 거센 바람을 맞고 있는 유명한 사람이 세계적인 감독 김기덕(57^사진)이다. 최근 3명의 여배우들이 김 감독으로 부터 성추행과 폭행을 당했다고 폭로하면서 이런 소식이 국제적 뉴스감이 되고 있다.
김 감독은 이에 대해 “영화감독이란 지위로 개인적 욕구를 채운 적이 없다”면서 “여자에 대한 관심으로 상대의 마음을 얻기 위해 일방적인 감정으로 키스를 한 적은 있다”고 말했다. 그는 이어 “서로에 대한 호감으로 만나고 서로의 동의하에 육체적 교감을 나눈 적은 있다”고 교언영색적인 단어를 써가며 자기를 변호했다.
그런데 김 감독의 성폭행 문제는 이번이 처음이 아니다. 전에도 이런 문제가 제기됐으나 유야무야 되곤 했다. 한국 영화계에서의 대여성 성폭행의 근원은 한국적 전통인 남성위주와 권위주의에서도 찾아볼 수 있다. 김기덕의 영화에 참여했던 한 스태프가 “그는 왕이었다”고 김 감독의 절대 권력을 표현한 것도 이런 사고방식과 일맥상통한다.
요즘은 어떤지 잘 모르겠지만 과거 한국남자들 사이에서는 ‘여자와 북어는 사흘에 한번 씩 패야 된다’는 말이 유행했었다. 이런 사고방식을 지닌 나라에서 사회전반에 걸쳐 대여성 성폭력이 만연한 것은 그리 놀랄 일도 아니다.
김기덕의 영화들은 대부분 어둡고 잔인하고 폭력적이며 가학적인데 특히 여성들은 강간이나 성매매의 희생자들로 자주 나온다. ‘섬’ ‘악어’ ‘나쁜 남자’ ‘사마리아’ 및 ‘파란 대문’ 등이 다 그런 것들이다. 그는 새디스트다. 그런데 성매매를 다룬 ‘나쁜 남자’의 주연남우 조재현도 김기덕과 함께 ‘미투’에 의해 성폭행자로 거명되고 있다.
나는 김기덕의 ‘수취인 불명’이 2001년 9월 토론토국제영화제에 출품됐을 때 그를 처음 만났다. 둘이 한국식당에서 술을 마시면서 대화를 나눴는데 그는 자신의 폭력에 대해 “나는 어두운 것을 통해 밝은 곳에로의 탈출구를 찾으려고 한다”면서 “내 폭력은 어둡지만 유머가 있다”라고 말했다.
이어 나는 그가 2004년 7월 ‘봄, 여름, 가을, 겨울....그리고 봄’의 홍보 차 LA에 왔을 때 다시 만났다. 그 때 그는 “제 영화는 한국에서 안 봐요”라며 한탄을 했다. 그러더니 급기야 2006년에는 “더 이상 내 영화를 한국에서 개봉할 계획이 없다”라고 폭탄선언을 했다. 이 폭탄선언은 후에 오리발선언이 되었지만. 내가 김기덕과 두 차례 만나고 느낀 점은 그가 자기 생각을 직선적으로 표현하긴 하나 다분히 궤변론자라는 것이다.
나는 프랑스의 거리화가 출신인 영화인 김기덕의 작품을 좋아한다. 그의 영화들은 보통 영화들과 파격적으로 다르다. 그는 자기 말대로 ‘불편한 대중성’에 아랑곳 않고 자기 뜻대로 끊임없이 새로운 것을 강조하려고 애쓰는 사람이다. 지나치게 예술 지향적이어서 팬들이 극히 제한돼 있긴 하나 그런 점에서 그는 분명 예술가이다.
그의 작품이 매년 세계 유명 영화제들인 칸과 베니스와 베를린 등 국제영화제에 초청되는 까닭도 이 때문이다. 김기덕은 한국에서는 푸대접을 받을지 몰라도 해외에서는 박찬욱과 홍상수 처럼 큰 대접을 받는 감독이다.
그는 2004년에는 원조교제를 다룬 ‘사마리아’로 베를린 국제영화제 감독상을 그리고 같은 해에 남편의 집착과 소유욕으로 피폐해진 여자의 드라마 ‘빈집’으로 베니스국제영화제 감독상을받았다. 이어 2012년에는 끔찍하게 가학적인 ‘피에타’로 베니스국제영화제 대상인 황금사자상을 탔다.
한국에서는 지금 김기덕을 사법 처리해야 한다는 주장이 나오고 있다. 현재 성폭행 문제로 경찰의 수사를 받고 있는 미국의 하비 와인스틴 사건의 한국판을 보고 있는 것 같다. 김기덕에 대한 ‘미투’의 폭로가 사실로 드러나면 그의 영화인으로서의 생애도 막을 내리게 될 것이다. 한국이나 세계 영화계로선 큰 손실이나 이를 계기로 한국영화계에서 ‘캐스팅 카우치’의 악습이 사라지게 되기를 기대해 봄직도 하다. 그런데 한 가지 짚고 넘어가야 할 것은 ‘캐스팅 카우치’가 존재하는 데는 명성과 부를 위해선 어떤 대가도 지불할 용의가 있다는 젊은 연예인들에게도 어느 정도 책임이 있다는 사실이다. 
                                                           <한국일보 박흥진 편집위원/ hjpark1230@gmai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