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이야기

2016년 6월 13일 월요일

흡혈귀를 위한 치료(Therapy for a Vampire)


프로이드(왼쪽)가 흡혈귀 백작의 고민을 듣고 있다.

불멸의 삶·아내에 지친 정신… 신경쇠약 흡혈귀


자기 아내와 삶에 싫증이 난 흡혈귀가 정신분석학자 프로이드에게 고민을 털어놓는다는 기찬 아이디어를 영화내용을 서술해 가는 실마리로 한 흡혈귀 코미디. 흡혈귀의 뾰족한 송곳니에 물린 사람들이 여럿 죽으면서 내뿜는 피가 화면을 흥건히 적시나 일종의 흡혈귀 풍자영화여서 끔찍하다기보다 오히려 귀염성 있고 재미있다.
조지 해밀턴이 나온 흡혈귀 코미디 ‘러브 앳 퍼스트 바이트’(1979)를 생각나게 하는 오스트리아 영화인데 해밀턴 영화는 이 영화에 비하면 아주 온순하다. 영화를 고도 비엔나에서 찍어 분위기가 고풍이 나고 으스스한데 처음 보는 배우들의 연기도 좋다.
1932년 비엔나. 게자 폰 쾨즈스넴 백작(토비아스 모레티)은 불멸의 삶과 너무 오래 함께 산 자기와 취향이 다른 아내 엘자(지넷 하인)에 지쳐 프로이드(칼 피셔)에게 거액의 도네이션을 하고 상담을 받기 시작한다. 게자는 자기가 직접 사람의 피를 빨아 마시기보다 자기에게 도전하는 하인이 채취해 병에 담은 피를 마신다. 
어느 날 게자는 프로이드의 방에서 아름다운 여인 루시(코넬리아 이반칸)의 초상화를 보고 단숨에 반한다. 그리고 루시를 옛날 옛적에 자기를 두고 떠난 애인 나딜라의 현신이라고 믿는다. 나딜라는 떠나면서 게자에게 스스로 응해 그에게 목을 내밀어 피를 빨린 여자라야 자기의 현신이 될 수 있다고 말한 바 있다. 그러니 그 게 쉬운 일인가.
루시는 가난한 화가 빅터(도미닉 올레이)의 고집 세고 독립심 강한 애인으로 빅터는 프로이드에 고용된 화가. 프로이드의 환자들의 망상과 꿈을 그리는 것이 임무다. 
게자는 루시를 자기 애인으로 만들 작전을 구상하나 먼저 풀어야 할 과제는 자기를 안 떠나는  엘자. 그래서 게자는 엘자에게 아름다운 네 모습을 초상화로 그리자고 제안해 빅터의 집으로 보낸다. 엘자가 젊은 남자 빅터의 목을 갈망할 것은 당연지사이나 자기 초상화를 그려줄 사람이어서 갈증을 꾹꾹 참는다.
여하튼 증세의 강도는 서로 다르지만 나오는 사람들이 너도 나도 흡혈귀가 되는데 게자에게 물린 루시가 목을 문 프로이드도 서푼짜리 흡혈귀가 된다. 그가 거울 앞에서 자기 모습을 보려고 아이처럼 깡충깡충 뛰는 모습이 우습다. 
권태기에 이른 부부의 얘기이자 의견충돌이 잦은 애인의 드라마이기도 한데 연기들이 좋다. 특히 모레티가 그리움과 권태에 시달리는 연기를 연민의 마음이 일도록 잘하고 이반칸의 당찬 연기와 하인의 우아하면서도 도도한 연기도 좋다. 유감은 프로이드와 게자의 상담을 좀 더 충실히 이용하지 못한 점. 다비드 륌 감독. ★★★ (5개 만점)
                                                            <한국일보 박흥진 편집위원/ hjpark1230@gmail.com>

Music of Strangers: Yo-Yo Ma and the Silk Road Ensemble


요-요 마(앞줄 왼쪽서 두번째)와 실크로드 앙상블.

첼리스트 요-요 마가 조직한 앙상블 연주자 영화


첼리스트 요-요 마가 지난 2000년 세계 각국의 연주자들로 조직한 앙상블에 관한 기록영화로 음악은 서로 다른 국경과 문화를 넘어 범우주적인 힘을 지녔다는 것을 얘기하고 있다. 앙상블 연주자(한국 국악인도 있다)들은 계속해 교체되는데 이들은 지금까지 전 세계를 돌면서 많은 연주회를 가졌고 앨범 ‘싱 미 홈’(Sing Me Home)도 나왔다.
이란, 시리아, 스페인 그리고 중국과 이스라엘 등에서 선발된 연주자들이 각기 자신들의 전통악기를 연주하면서 요-요 마와 함께 앙상블의 연주에 이색적인 음색을 제공하는데 연주뿐만이 아니라 노래도 부르고 또 노래와 연주에 맞춰 그림도 그린다.
영화는 연주 장면과 인터뷰 그리고 자료사진들을 사용해 음악은 민족과 이념을 초월해 모두를 묶어주고 궁극적으로 희망을 가져다주는 숭고한 것임을 강조하면서 아울러 단절위기에 빠진 전통악기와 그 음악을 염려한다.
요-요 마의 이력이 어렸을 때부터 자세히 소개되는데 그에 대한 화면 할애가 다소 과다한 느낌은 들지만 다시 한 번 음악의 결집력과 아름다움을 깨닫게 해주는 작품이다. 
영화는 특히 이란과 시리아의 연주자들에 관한 개인적 얘기를 크게 다루면서 이들이 처한 입장과 음악에 관해 걱정하고 아울러 파괴에 시달리는 난민들의 모습도 생생하게 묘사했다. 이란의 전통 현악기인 카만체의 연주자인 카이한 칼호르는 마지못한 국외 망명자로 살면서 조국에서 이 악기 연주를 지도하고 또 연주할 사람이 단절위기에 처한 것을 걱정한다. 그는 예술과 문화가 정치의 볼모로 잡혀 있는 한 조국에서 연주를 안 하겠다고 다짐한다.
시리아 출신의 클라리넷 연주자 키난 아즈메는 요르단에 잇는 시리아 난민 수용소를 방문해 어린아이들에게 음악을 들려주고 연주를 가르쳐주면서 음악의 치유와 희망의 능력을 시범하고 있다. 감동적이다.                     
이밖에도 중국의 비파 연주자 우만의 조국이자 요-요 마의 뿌리이기도 한 중국을 방문해 사라져 가는 인형 쇼를 지키고 있는 장씨 일가와의 만남과 스페인 갈리시아 지방 출신의 백파이프 연주자 크리스티나 파토와 함께 갈리시아도 방문, 그곳의 음악과 풍습도 보여준다. 영화가 너무 고지식하게 기록영화의 형태를 따라 특색은 없지만 요-요 마의 숭고한 정신과 음악의 여러 가지 능력을 다시 한 번 깨닫게 하는 작품이다. ★★★ (5개 만점)
                                                           <한국일보 박흥진 편집위원/ hjpark1230@gmail.com>


“음악이라면 독일이지요”




베르코르의 소설 ‘바다의 침묵’에서 프랑스를 점령한 나치장교 베르너 폰 에브레낙은 자기가 묵고 있는 집의 주인과 그의 질녀에게 이렇게 독백한다. 작곡가인 그는 자신의 존재에 침묵으로 저항하는 두 사람에게 먼저 프랑스 문학을 찬양한 뒤 “그러나 음악이라면 독일이지요”라면서 바흐와 베토벤의 이름을 든다. 내가 지난달 바그너를 매우 좋아하는 내 친구 C의 안내로 독일을 기차여행한것도 이 음악 때문이었다.
뮌헨서 버스를 타고 1시간반 정도 바바리아 지방을 달려 바그너의 열렬한 신봉자였던 수줍음 타는 왕 루드빅 II의 노이슈반슈타인성에 닿았다. 산정에 세운 거대한 성내 벽화들은 ‘탄호이저’와 ‘트리스탄과 이졸데’ 등 바그너의 음악에서 영감을 받은 것이라고 안내원이 알려준다.  
넥카 강변의 그림엽서 같은 대학 도시 하이델베르크에 도착했다. 이 도시를 굳이 음악과 연결시키자면 영화 ‘황태자의 첫사랑’ 때문이다. ‘철학자의 길’에서 도시를 내려다보니 마리오 란자가 열창한 영화 속 노래 ‘세레나데’와 ‘드링킹 송’이 절로 흥얼거려진다.
쾰른에 짐을 푼 뒤 베토벤의 얼굴처럼 엄격한 마음을 품고 본의 그의 생가를 찾았다. 초상화 속 베토벤의 불멸의 연인 안토니 브렌타노의 얼굴이 곱다. 내 마음을 아프게 한 것은 쇠로 만든 작은 나팔모양의 보청기. 귀 먹은 작곡가의 고뇌가 금속성을 낸다. 베토벤의 머리칼도 있다. 아기 베토벤이 태어난 방은 참 작다. 친구가 “이런 작은 방에서 태어난 사람이 우주를 울리는 음악을 짓다니”라면서 나지막하게 말한다.
뤼벡을 거쳐 날씨가 브람스 음악처럼 스산한 함부르크에 왔다. 브람스가 세례를 받은 세인트 마이클 교회와 기념관을 둘러보고 그가 거닐었던 산책로를 답습했다. 브람스가 어렸을 때 피아노를 친 선원들의 색주가는 어디쯤 있을까.  
이어 동독의 잿빛 그림자가 아직도 남아 있는 소도시 루터슈타트 비텐부르크에 들러 루터호텔에 짐을 풀었다. 도시 이름을 비롯해 손수레에서 파는 루터소시지에 이르기까지 온통 루터 때문에 먹고 사는 도시다. 루터가 시민들의 영육의 양식을 다 책임지고 있다. ‘내 주는 강한 성이요’를 작곡한 루터는 종교인이요 혁명가이자 음악인이다. 그가 바티칸에 항의하는 95개조의 반박문을 못질한 캐슬처치의 문 앞에 선다. 보통 용기가 아니다. 내년은 그의 반박문 발표 500주년이 되는 해다.
라이프직을 거쳐 바그너가 유년시절과 젊은 시절을 보내고 후에 궁정지휘자로 일했던 드레스덴으로 내려왔다. 버스를 몇 차례 갈아타고 바그너의 시골 여름휴양지 그라우파의 집을 찾아갔다. 신록과 새소리 그리고 강으로 둘러싸인 여기서 그는 ‘로엔그린’을 작곡했다. 이어 여기서 조금 떨어진 곳에 있는 베버의 집에 도착했다. 바그너는 9세 때 베버가 지휘하는 오페라 ‘마탄의 사수’를 듣고 큰 감동을 받았다고 한다. 친구는 이 오페라의 서곡을 좋아한다.
폭격으로 잿더미가 되었다 피닉스처럼 부활한 드레스덴의 로열 팰리스 마당에서 이스라엘 교향악단의 일부 연주자들이 연주하는 모차르트와 이스라엘과 아랍음악을 들었다. 독일과 이스라엘과 아랍이라는 화음이 분쟁의 세상에서 인류 평화를 생각하게 한다. 도시의 한 가운데를 차지한 프라우엔키르헤(성모교회)의 외벽들이 전화에 그을린 숯빛의 돌들과 복원할 때 새로 사용한 흰색 돌들과 오묘한 신구의 조화를 이루고 있다,        
다시 라이프직으로 갔다. 이 도시는 멘델스존과 전 뉴욕필 상임지휘자 쿠르트 마주어가 바톤을 잡았던 유서 깊은 라이프직 게반트하우스 오케스트라가 있는 곳이다. 나치에게 끌려간 유대인들의 명판이 집 앞 보도에 깔린 멘델스존기념관은 멘델스존의 음악처럼 산뜻하게 정돈됐다. 악보와 기둥 위에 놓인 형광등으로 연주 악기를 대신한 음악실에서 지휘봉을 들고 멘델스존의 경쾌한 ‘한여름 밤의 꿈’ 서곡을 지휘했다. 그 옆방에서 멘델스존은 두 번의 심장마비 끝에 요절했다.
슈만이 클라라와 신혼을 보낸 집을 둘러봤다. 슈만의 서정미가 물결치는 교향곡이 나는 좋다.  이어 바흐가 음악장을 지낸 세인트 토마스교회를 찾았다. 바흐의 무덤이 있는 이 곳에서 때마침 라이프지거 보컬앙상블이 합창을 한다. 성스럽다. 교회 앞의 바흐기념관을 찾아보았다. 라이프직 오페라하우스에서 바그너의 최초의 오페라 ‘요정들’(Die Feen)을 관람했다. 피곤에 깜빡깜빡 졸면서 들었는데 그의 깊고 진중한 여느 오페라들과 달리 음악이 밝고 경쾌하다. 그런데 이 오페라가 좀처럼 공연되지 않는 이유가 무엇일까.
이윽고 바그너의 본고장이라 부를 만한 바이로이트에 왔다. 도착한 날 22일은 마침 바그너의 생일이어서 기념관 구경이 공짜. 그가 건축하고 해마다 ‘링’사이클이 공연되는 페스트슈필 하우스는 보수 중이다. 바그너가 작곡을 하고 생활하다가 숨진 기념관이 된 반프리트 저택 뒤에 바그너와 그의 아내 코지마가 함께 묻힌 무덤(사진)이 있다. 잿빛 대리석 무덤에 이름이 없다. 개인적으로 결함이 많았던 천재 바그너는 죽어서도 보통 사람과 다르게 존재하겠다는 것 같았다. 반프리트 바로 옆에 바그너의 친구이자 장인인 리스트기념관이 있다. 짧은 일정에 분주한 방문이었지만 가는 곳마다 내 심장은 음악처럼 율동했다.
                                                            <한국일보 박흥진 편집위원/ hjpark1230@gmai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