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섭(송강호)이 경계중인 군인과 대화하는 것을 독일 기자 페터가 바라보고 있다. |
소시민의 눈 통해 소환한 광주 민주화운동 참상
광주 민주화운동을 최초로 세계에 알린 독일 TV 방송기자와 그를 서울서 광주까지 태워다 주고 함께 다시 서울로 돌아온 택시 운전사의 실화를 바탕으로 한 영화다.역사적 사실과 허구를 섞어 다시 한 번 조국의 민주화를 위한 희생을 되돌아보게 하는 뜻 있는 작품이다. 어둡고 무거운 사실을 재미있게 엮어낸 장훈 감독의 연출력이 돋보인다.
제3자의 눈으로 본 역사영화이자 버디 무비로 잔인한 폭력을 유머와 온기로 다독여주는데 감독은 가차 없는 현실과 폭력과 공포를 너그럽고 훈훈한 인간적 여유와 함께 고른 리듬으로 균형 있게 조화시켰다.
연기파 송강호의 너그럽고 코믹한 연기가 돋보이는데 처음에는 데모에 반대하던 그가 광주의 참상을 목격하면서 행동인으로 변하는 각성의 이야기기도 하다. 그러나 영화의 마지막 부분에 나오는 택시들과 이들을 뒤쫓는 정보기관 차들 간의 도주와 추격의 액션은 거의 만화 같은 터무니없는 장면이다.
아쉬운 것은 역사적 내용을 보다 깊고 폭 넓게 다루지 못한 점인데 이로 인해 다소 주마간산 식의 작품이 되었고 한국영화의 고질인 상영시간(2시간 17분)이 긴 것도 문제다. 그러나 한국 사람들이라면 눈물을 흘리게 될 영화로 끔찍한 사실에 전율하고 충격을 받게 된다.
서울에서 개인택시를 운영하면서 11세 난 딸을 혼자 키우는 김만섭(송강호-실제 이름 김사복)은 동료운전사로부터 한 외국인이 광주까지 왕복해 태워다 주면 10만원을 주겠다는 말을 했다는 것을 듣고 이 손님을 자기가 가로챈다. 4개월 치 밀린 삭월세가 10만원이기 때문이다. 외국인은 도쿄주재 독일 공영방송 기자 페터(토마스 크레취만-실제 이름 위르겐 힌츠페터)로 광주사태를 취재하기 위해 선교사로 위장하고 서울에 왔다.
사우디에서 일한 경험으로 약간의 영어를 할 줄 아는 만섭은 페터를 차에 태우고 그와 서툰 영어와 제스처를 동원해(이 장면이 우습다) 광주로 내려간다. 그런데 만섭은 딸을 키우면서 먹고 사는데 급급해 시사뉴스나 정치엔 관심이 없다.
광주 초입에 도착하니 도로에 바리케이드가 처져 있고 총을 든 군인들이 지키고 있다. 만섭은 겁이 나지만 10만원 때문에 촌로에게 샛길을 물어 광주에 도착한다. 만섭은 폐허가 되다시피한 광주에서 그제서야 실상을 깨닫게 되고 페터는 시민들의 활동을 TV 카메라에 담는다.
그런데 정보부에서 페터가 광주에서 취재를 하고 있다는 것을 포착해 페터와 만섭을 잡기 위해 혈안이 되면서 스릴러 분위기를 갖추는데 이런 둘을 돕는 사람들이 현지 택시 운전사인 황태술(유해진)을 비롯한 그의 동료 운전사들과 대학생 구재식(류준열).
이 과정에서 만섭과 페터는 단단한 동지 의식으로 맺어지는데 군인들의 시민들에 대한 가혹한 행위를 보면서 서서히 자각하게 된 만섭은 혼자 서울로 가느냐 아니면 페터의 취재가 끝난 뒤 그와 함께 가느냐는 도덕적 딜레마에 빠진다.
크레취만이 침착하게 호연을 하는데 그 밖에도 조연진의 연기도 다 좋다. 영화는 독일의 자택에서 김사복을 다시 만날 수만 있다면 하시라도 서울로 날아가겠다는 ‘푸른 눈의 목격자’ 힌츠페터의 인터뷰 장면으로 끝난다. 둘은 그 후로도 재회를 못 했는데 2016년 79세로 사망한 힌츠페터의 손톱과 머리카락의 일부가 광주의 망월동 묘지에 안장되었다.★★★½ (5개 만점)
<한국일보 박흥진 편집위원/ hjpark1230@gmai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