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이야기

2017년 8월 16일 수요일

택시 운전사(A Taxi Driver)

만섭(송강호)이 경계중인 군인과 대화하는 것을 독일 기자 페터가 바라보고 있다.


소시민의 눈 통해 소환한 광주 민주화운동 참상

광주 민주화운동을 최초로 세계에 알린 독일 TV 방송기자와 그를 서울서 광주까지 태워다 주고 함께 다시 서울로 돌아온 택시 운전사의 실화를 바탕으로 한 영화다.
역사적 사실과 허구를 섞어 다시 한 번 조국의 민주화를 위한 희생을  되돌아보게 하는 뜻 있는 작품이다. 어둡고 무거운 사실을 재미있게 엮어낸 장훈 감독의 연출력이 돋보인다.
제3자의 눈으로 본 역사영화이자 버디 무비로 잔인한 폭력을 유머와 온기로 다독여주는데 감독은 가차 없는 현실과 폭력과 공포를 너그럽고 훈훈한 인간적 여유와 함께 고른 리듬으로 균형 있게 조화시켰다.          
연기파 송강호의 너그럽고 코믹한 연기가 돋보이는데 처음에는 데모에 반대하던 그가 광주의 참상을 목격하면서 행동인으로 변하는 각성의 이야기기도 하다. 그러나 영화의 마지막 부분에 나오는 택시들과 이들을 뒤쫓는 정보기관 차들 간의 도주와 추격의 액션은 거의 만화 같은 터무니없는 장면이다.
아쉬운 것은 역사적 내용을 보다 깊고 폭 넓게 다루지 못한 점인데 이로 인해 다소 주마간산 식의 작품이 되었고 한국영화의 고질인 상영시간(2시간 17분)이 긴 것도 문제다. 그러나 한국 사람들이라면 눈물을 흘리게 될 영화로 끔찍한 사실에 전율하고 충격을 받게 된다.
서울에서 개인택시를 운영하면서 11세 난 딸을 혼자 키우는 김만섭(송강호-실제 이름 김사복)은 동료운전사로부터 한 외국인이 광주까지 왕복해 태워다 주면 10만원을 주겠다는 말을 했다는 것을 듣고 이 손님을 자기가 가로챈다. 4개월 치 밀린 삭월세가 10만원이기 때문이다.  외국인은 도쿄주재 독일 공영방송 기자 페터(토마스 크레취만-실제 이름 위르겐 힌츠페터)로 광주사태를 취재하기 위해 선교사로 위장하고 서울에 왔다.
사우디에서 일한 경험으로 약간의 영어를 할 줄 아는 만섭은 페터를 차에 태우고 그와 서툰 영어와 제스처를 동원해(이 장면이 우습다) 광주로 내려간다. 그런데 만섭은 딸을 키우면서 먹고 사는데 급급해 시사뉴스나 정치엔 관심이 없다.
광주 초입에 도착하니 도로에 바리케이드가 처져 있고 총을 든 군인들이 지키고 있다. 만섭은 겁이 나지만 10만원 때문에 촌로에게 샛길을 물어 광주에 도착한다. 만섭은 폐허가 되다시피한 광주에서 그제서야 실상을 깨닫게 되고 페터는 시민들의 활동을 TV 카메라에 담는다.
그런데 정보부에서 페터가 광주에서 취재를 하고 있다는 것을 포착해 페터와 만섭을 잡기 위해 혈안이 되면서 스릴러 분위기를 갖추는데 이런 둘을 돕는 사람들이 현지 택시 운전사인 황태술(유해진)을 비롯한 그의 동료 운전사들과 대학생 구재식(류준열).
이 과정에서 만섭과 페터는 단단한 동지 의식으로 맺어지는데 군인들의 시민들에 대한 가혹한 행위를 보면서 서서히 자각하게 된 만섭은 혼자 서울로 가느냐 아니면 페터의 취재가 끝난 뒤 그와 함께 가느냐는 도덕적 딜레마에 빠진다.
크레취만이 침착하게 호연을 하는데 그 밖에도 조연진의 연기도 다 좋다. 영화는 독일의 자택에서 김사복을 다시 만날 수만 있다면 하시라도 서울로 날아가겠다는 ‘푸른 눈의 목격자’ 힌츠페터의 인터뷰 장면으로 끝난다. 둘은 그 후로도 재회를 못 했는데 2016년 79세로 사망한 힌츠페터의 손톱과 머리카락의 일부가 광주의 망월동 묘지에 안장되었다.★★★½ (5개 만점)
                                                               <한국일보 박흥진 편집위원/ hjpark1230@gmail.com>



온리 리빙 보이 인 뉴욕(The Only Living Boy in New York)


토마스가 아버지의 정부 조핸나를 미행하고 있다.


아버지에 대한 복수로 정부를 꼬시는데…


더스틴 호프만을 세계적 스타로 만들어준 ‘졸업’을 연상시키는 코미디 드라마로 대화가 상당히 많은 현학적일 정도로 지적인 영화다. 뉴욕에 바치는 헌사이자 청년의 성장기로 앙상블 캐스트가 좋은 연기를 보여주고 상호간 화학작용도 훌륭하다.
퍼즐을 푸는 듯한 플롯을 지녔는데 점점 사라져가는 책과 같은 개인적 기호와 중산층의 보장 그리고 영혼을 잃어버린 예술의 본향 뉴욕을 아쉬워하는 복고풍의 영화로 자신의 장래를 못 찾아 갈팡질팡 하는 청년의 이 사람 저 사람들과의 관계를 통해 서술된다. 
토마스 웹(영국 배우 캘럼 터너가 젊은 리처드 기어를 생각나게 한다)은 대학을 막 졸업한 청년으로 작가 지망생. 출판사 사장인 아버지 이산(피어스 브로스난)과 병약한 어머니(신시아 닉슨)가 사는 대저택을 떠나 로어 이스트 사이드의 후진 아파트에 산다. 그에겐 아름다우나 독설가인 여자 친구 미미(키어시 클레몬스)가 있는데 미미는 어디까지나 친구 관계를 주장한다.
토마스의 아파트 이웃으로 혼자 사는 철학적이요 유식한 술꾼 작가 W.F. 제럴드(제프 브리지스)가 청춘의 방황에 시달리는 토마스의 조언자요 멘토가 되기를 자원하면서 둘은 대화를 통해 사제지간이나 부자지간처럼 된다. 그런데 과연 이 다른 세상에서 온 것 같은 W.F.의 정체는 무엇인가. 
어느 날 토마스가 미미와 함께 클럽에 갔다가 자기 아버지가 외간 여자와 키스를 하는 것을 보고 토마스는 이 여자의 정체를 캐내기로 결심한다. 그리고 토마스는 여자 뒤를 마치 스토커처럼 따르는데 여자는 아버지 출판사의 프리랜스 에디터인 조핸나(케이트 베켄세일).
아름답고 총명한 조핸나에게 호기심을 갖게 된 토마스는 아버지에 대한 복수로 이 여자를 유혹해 결국 섹스를 하는 관계에 까지 이른다. 물론 조핸나도 토마스에게 호감을 갖고 있다. 한 여자가 부자와 모두 섹스를 한다는 불결한 플롯은 그러나 나중에 묘하게 세척된다.
마지막에 가서 W.F의 정체가 밝혀지는데 그 얘기가 다소 급작스럽고 조작적이어서 잘 믿어지지가 않는다. 그러나 이 영화는 터너를 비롯한 배우들의 좋은 연기가 있는 지적이요 문학적인 대사가 많은 아담한 소품으로 특히 브리지스의 현자 같은 연기가 볼만하다. 제목은 사이몬과 카펑클의 동명 제목 노래에서 따 왔다. 마크 웹 감독. R. ★★★ (5개 만점)  
                                                          <한국일보 박흥진 편집위원/ hjpark1230@gmail.com>


잔느 모로, 권태의 현신




공중전화 부스 안의 여인의 감은 눈을 클로스업 하던 카메라가 그의 헤픈 듯 두툼한 입술로 훑고 내려가면서 여인의 착 가라앉은 음성이 들린다(사진) “난 더 이상 못 참겠어요. 사랑해요. 해야 해요. 난 당신을 안 떠 날거에요. 쥘리앙.” 자기 정부에게 자기 남편을 어서 죽이라고 호소하는 이 간부가 콱 씹으면 다크 초콜릿 맛이 날 것 같은 잔느 모로다. 모로가 지난 달 31일 파리서 89세로 사망했다.
모로가 주연한 이 영화는 프랑스 누벨 바그의 기수 중 하나였던 루이 말르가 24세에 감독으로 데뷔한 범죄 느와르 ‘사형대의 엘리베이터’(Elevator to the Gallows^1958)다. 마일스 데이비스의 고독하고 우수에 가득 찬 트럼펫 소리가 자아내는 짙은 무드가 연무처럼 영화를 감싸고돈다.
나는 이 영화를 중학생 때 광화문에 있던 아카데미극장에서 봤는데 컬을 한 금발에 하이힐을 신은 모로가 투피스상의의 깃을 올린 채 밤새 비 내리는 샹젤리제거리를 쥘리앙을 찾아 헤매는 모습을 보면서 저런 여자를 갖기 위해 살인마저 저지르는 남자의 심정을 이해할 것만 같았다. 그리고 그 후로 난 모로의 열렬한 팬이 되었다.
양끝이 내려앉은 농염한 윗입술과 약간 거슬리는 듯한 나른한 음성 그리고 생존을 마다하는 것 같은 눈동자와 그늘진 얼굴을 했던 모로는 마치 세상을 다 산 여인처럼 나태해 보여 보는 사람을 녹작지근하게 만든다. 피곤이 지닌 육감을 현시한 프렌치 쿨의 전형이었다.
모로는 자기 애인이 된 말르와 다음해 ‘연인들’(The Lovers)을 만들었는데 권태로운 유부녀와 젊은 애인의 정사를 다룬 영화에서 모로가 오르가즘을 묘사해 오하이오주의 판사로부터 외설딱지를 받기도 했다.
무대배우로 시작한 모로를 국제적 스타로 만들어준 것이 프랑솨 트뤼포의 ‘쥘르와 짐’(Jules et Jim^1962)이다. 보헤미안적 삶을 사는 두 남자와 한 여인의 비극적 삼각관계를 그린 명화로 모로는 역시 자기 애인이 된 트뤼포의 복수스릴러 ‘흑의의 신부’(The Bride Wore Black^1968)에도 나왔다.
모로의 미국영화로 잘 알려진 것이 버트 랭카스터와 공연한 2차대전 액션영화 ‘기차’(The Train^1964)와 리 마빈과 공연한 ‘몬테 월쉬’(Monte Walsh^1970). ‘몬테 월쉬’에서 황금의 마음을 지닌 창녀로 나온 모로는 마빈과 연인 사이가 되었다. 모로의 또 다른 유명애인으로는 디자이너 피에르 카르댕이 있다. 모로는 두 번 결혼했는데 두 번째 남편이 ‘엑소시스트’를 감독한 윌리엄 프리드킨이다.
모로의 세상만사 다 귀찮다는 듯한 나태와 피곤이 십분 발산된 것이 미켈란젤로 안토니오니의 ‘밤’(La Notte^1961)이다. 모로는 마르첼로 마스트로이안니의 아내로 나와 가정주부의 권태를 천착했다. 입천장이 쩍쩍 말라붙도록 노곤한 영화다.
‘생각하는 남자들의 팜므 파탈’이라 불린 무엇엔가 홀린 듯한 모습의 모로는 겁 없는 도도한 여자였는데 그를 타임지는 일찍이 이렇게 찬양했다. “할리웃에는 그 만큼의 깊이와 폭을 가진 여배우가 없다. 그리고 긴 고문처럼 달려드는 카메라의 시선을 그처럼 이겨낼 개성도 없으며 단순히 자태 하나로 그렇게 다양한 분위기를 자아낼 여자도 없다. 모로의 사랑의 장면은 그 누구의 것보다 강렬하고 그의 고통은 번뇌스러울 만치 신랄하다. 그야말로 무한한 복합성과 신념의 스타다.”
파리에서 태어난 모로는 장 아누이의 연극 ‘안티고네’를 보고 배우가 되기로 했다. 모로는 이런 결심을 아버지에게 말했다가 뺨을 맞았다고 한다. 그러나 모로는 몇 년 후 유명한 코메디 프랑세즈 연극반의 최연소 단원이 되었다. ‘사형대의 엘리베이터’로 유명해지기 전까지는 연극과 범작 영화들에 나왔는데 말르가 모로를 이 영화에 기용한 것은 모로가 나온 테네시 윌리엄스의 연극 ‘뜨거운 양철지붕 위의 고양이’를 보고 나서였다.
모로의 또 다른 좋은 영화들로는 자크 데미의 ‘천사들의 만’(Bay of Angels^1963), 루이스 부누엘의 ‘하녀의 일기’(Diary of a Chambermaid^1964) 그리고 모두 오손 웰즈가 감독한 ‘심판’(The Trial^1962)과 ‘자정의 종소리’(Chimes at Midnight^1965) 및 ‘불멸의 이야기’(The Immortal Story^1968) 등이 있다. 모로는 1976년 자기가 각본을 쓰고 주연도 한 자전적영화 ‘뤼미에르’(Lumiere)로 감독으로 데뷔했는데 또 다른 연출작으로는 ‘사춘기’(L‘Adolescente^1979)가 있다.
내가 지난 2001년 9월 토론토영화제에 참가했을 때 9^11일 테러가 났다. 영화제측이 영화제 중단을 검토하자 영화제에 참석했던 모로가 이렇게 말했다. “어떤 사람들이 우리의 삶 안에 있는 에너지를 죽이려한다고 해서 왜 우리가 살기를 멈춰야 합니까.” 나는 그때 모로의 이 말을 듣고 그의 고매한 인간 혼에 깊이 감동했었다. 아디외 잔느!    
                                                           <한국일보 박흥진 편집위원/ hjpark1230@gmai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