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이야기

2017년 12월 1일 금요일

‘원더 윌’ (Wonder Wheel)


지니(가운데)의 소개로 미키(왼쪽)와 캐롤라이나가 악수를 하고 있다.

연하 애인 향한 욕망·질투… 케이트 윈슬렛  불꽃 연기


재잘대는 우디 알렌의 영화치곤 마이너급에 속하지만 뒤늦게 찾은 연하의 애인에 대한 애정과 욕정과 질투에 어쩔 줄 몰라 하는 주인공 지니 역의 케이트 윈슬렛의 화끈한 연기가 볼만한 멜로드라마다. 
그 밖에도 조연진의 좋은 연기와 알록달록하고 빛과 어두움을 잘 조화시킨 촬영(알렌의 단골 촬영감독 비토리오 스토라로)과 1950년대를 보여주는 프로덕션 디자인(알렌의 단골 프로덕션 디자이너 산토 로콰스토) 등이 훌륭한 비극적 종말의 어두운 코미디 드라마다.
지니가 한물 간 왕년의 영화배우로서 자기가 했던 역을 재현하며 망상이나 다름없는 꿈에 시달리다 못해 거의 광기 같은 히스테리를 부리는 것이 마치 테네시 윌리엄스의 ‘욕망이라는 이름의 전차’에서의 블랜치 역을 상기시킨다. 그리고 근육질에 상스러운 지니 남편 험프티도 코왈스키를 연상케 한다. ‘욕망이라는 이름의 전차’의 주인공 코왈스키네 집처럼 이 영화도 서민층의 드라마다. 
영화는 알렌이 선배 연극인에게 바치는 헌사라고도 하겠다. 연극 같은 분위기가 나는 작품이다. 그의 자의식이 큰 몫을 차지한 영화로 브루클린 출신의 알렌이 1950년대와 브루클린과 코니 아일랜드를 그리워하며 만든 영화이기도 하다.  
코니 아일랜드의 라이프 가드 미키(저스틴 팀벌레이크)가 관객을 향해 자기소개를 하면서 시작된다. 한 여름 인파로 복작대는 코니 아일랜드 저편으로 거대한 페리스 윌이 보인다. 페리스 윌은 영화에 나오는 미몽에 매어달리는 인물들의 돌아가는 운명을 상징한다고 봐도 좋다. 
그리니치 빌리지에 사는 미키는 뉴욕대학원생인 작가 지망생으로 빤질빤질하게 생긴 언변 좋은 난봉꾼. 해변에서 미키를 만난 지니가 남자에게 반하면서 비극의 씨앗이 뿌려진다. 지니는 해변 대합조개 술집 웨이트리스로 과거 알코올 중독자였던 카루셀 오퍼레이터 험프티(짐 벨루시가 무지막지한 연기를 잘 한다)와 어린 아들 리치(잭 고어)와 함께 코니 아일랜드에 있는 집에서 산다. 그런데 방화광인 리치는 지니와 재즈 드러머였던 전 남편 사이에서 본 아들이다. 지니의 이혼 이유는 지니가 바람을 피웠기 때문. 
사랑도 장래도 없는 삶에 지칠 대로 지쳐 심한 만성 두통에 시달리는 지니는 미키에게 집요하게 매달리는데 미키는 이런 지니와 보드워크 아래 등지에서 뜨거운 정사를 나누면서 함께 보라 보라로 도망가자고 헛소리를 한다. 그러나 지니에겐 이 말이 진실로 들린다. 
그런데 지니 집에 5년 전에 갱스터에게 반해 가출한 험프티의 딸 캐롤라이나(주노 템플)가 돌아오면서 지니와 캐롤라이나가 미키를 놓고 삼각관계를 이루게 된다. 지니가 미키에게 캐롤라이나를 소개하면서 두 젊은 남녀가 사랑에 빠진 것. 그러나 지니와 미키의 관계를 모르는 캐롤라이나는 지니에게 미키와 자신의 관계에 대해 자문을 구하는데 미키를 놓지 않으려고 혈안이 된 지니가 캐롤라이나를 제거할 계획을 꾸미면서 영화 마지막 부분이 급격히 어두워진다. 자기를 극진히 사랑하는 아버지의 권유로 야간대학에 들어간 캐롤라이나가 남편을 버리고 도망 온 이유는 남편과의 사이가 멀어진 캐롤라이나가 갱의 비리를 FBI에 고자질했기 때문. 그래서 갱스터들이 캐롤라이나를 찾아 코니 아일랜드에 온다. R. ★★★ (5개 만점) 
                                                              <한국일보 박흥진 편집위원/ hjpark1230@gmail.com>



‘희망의 건너편’(The Other Side of Hope)


발데마르(앉은 사람 중 오른쪽)가 할레드에게 수프를 대접하고 있다. 뒤는 종업원들.


난민 소재 인간성·유머 조화 미니멀리즘의 극치


시치미 뚝 뗀 바싹 마른 블랙 코미디의 장인 핀란드의 아키 카리우스마키의 인간성 가득하고 배꼽 빠지게끔 우스운 영화로 연기와 표정과 세트를 비롯해 대사에 이르기까지 미니멀리즘의 극치를 이루고 있다.
감독은 현재 유럽의 큰 문제 중의 하나인 난민 문제를 진지하면서도 냉소적으로 해부하면서 아울러 드라이 아이스처럼 건조한 유머를 섞어 정치와 인간관계 코미디를 잘 조화시킨 재미 만점의 작품을 내놓았다. 
헬싱키의 우중충한 공업지대 항구에 도착한 석탄화물선에서 밀항자 시리아 난민 할레드(셰르완 하지)가 내린다. 그는 곧바로 경찰서에 찾아가 망명신청을 한다. 중년의 셔츠세일즈맨 발데마르 비크스트룀(사카리 쿠스마넨)은 알코올 중독자인 아내를 버리고 가출한 뒤 재고를 청산한 돈으로 거액의 불법 도박판에 가서 엄청난 돈을 딴다. 그리고 이 돈으로 망해가는 식당을 사고 거기에 딸린 세 명의 종업원도 고용한다. 
영화의 중심 내용은 할레드와 발데마르라는 생면부지의 두 사람이 만나 핀란드의 난민정책을 둘러싼 관료주의의 맹점을 짓궂게 폭로하면서 아울러 식당의 장사와 종업원들의 모습을 비롯해 식당에 관한 얘기를 킬킬대고 웃게끔 묘사하고 있다.
할레드는 망명신청이 거부되자 수용소를 탈출했다가 발데마르를 만나게 되는데 겉으로는 무뚝뚝하나 마음은 인자한 발데마르에 의해 식당 종업원으로 고용된다. 발데마르가 할레드를 보는 눈길이 하필이면 왜 핀란드 같이 못 사는 곳에 왔느냐고 힐난하는 것 같다. 
할레드는 인종차별주의자들인 깡패들로부터 얻어터지기도 하지만 어떻게 해서든지 피난길에 잃어버린 여동생을 찾아 핀란드에 데려오려고 모든 고생을 참는다. 이를 기꺼이 돕는 사람이 발데마르와 수용소의 여직원. 감독은 인간의 선한 마음을 요란 떨지 않고 아름답게 드러내 보여준다. 
기 차게 우스운 것은 전통 핀란드 식당 영업이 부진하자 종업원들이 모두 일본식 복장을 한 스시집으로 바꾸고 손님을 맞는 장면. 연어가 떨어지자 소금에 절인 통조림 청어로 일본인 단체 관광객을 접대하니 장사가 잘 될 리가 있겠는가. 
할레드와 발데마르와 함께 세 명의 종업원들의 시종일관 표정 없는 연기가 황당무계한 코미디를 확실하게 뒷받침해주고 있다. ★★★★ (5개 만점)
                                                             <한국일보 박흥진 편집위원/ hjpark1230@gmail.com>


팻 분


“아일 비 홈 마이 달링/플리즈 웨이트 포 미” 하면서 시작되는 ‘아일 비 홈’은 내가 가장 좋아하는 팻 분의 노래다. 약간 비음에 솜사탕처럼 달콤하고 조류가 막 왔다간 뒤의 백사장의 감촉과도 같이 부드러운 음성을 지닌 분은 83세라는 나이답지 않게 젊어 보이고 건강했다. 한창 감수성이 영글어가던 고등학생 때 분의 노래를 들으면서 성장한 내가 이제 인생의 황혼기에 깊숙이 들어서 그를 직접 만나(사진) 인터뷰를 하자니 만감이 교차했다. 분을 최근 할리웃 외신기자협회(HFPA) 사무실에서 만났다. 
분은 내가 한국 사람이라는 것을 알고 한국 여성 팬들의 열광을 회상했다. “한국을 너 댓 차례 방문해 공연했는데 여성 팬들이 무대에서 자기들을 향해 손을 내미는 나를 밑으로 끌어내리려고 했다”면서 “그들의 손힘이 매우 세더라“며 크게 웃었다.
그가 1956년에 불러 빅히트한 ‘아일 비 홈’도 한국과 인연이 있는 노래다. 분은 고향에 남겨두고 온 님을 그리워하는 이 노래가 당시 한국전 후 한국에 주둔했던 미군들과 그들 고국의 가족들 사이에서 크게 유행, 연 4년간 넘버 원 신청곡이었다고 알려 주었다.
젊었을 때 정통 올 아메리칸 보이의 이미지를 지녔던 분은 이런 이미지와 로맨틱한 음성 때문에 1950년대 백인 틴에이저들의 우상으로 사랑을 받았고 생애 총 42곡의 탑 40를 기록하면서 수천만장의 레코드가 팔려나갔다. 분은 이런 단정한 모습과 온순하고 고운 노래들 때문에 당시 골반을 마구 비틀어대며 ‘악마의 노래’인 로큰롤을 부른 엘비스 프레슬리를 혐오하던 틴에이저들의 부모들에게도 큰 인기를 누렸었다.
그런데 테네시주 내슈빌에서 자란 분은 역시 테네시의 멤피스에서 활동한 프레슬리와 친구이자 라이벌이었다. 분은 인터뷰에서도 프레슬리에 대해 자상히 회상하면서 자기가 그보다 탑 40히트곡이 딱 1곡 더 많다고 자랑했다.
분은 나이에 비해 강건할 뿐 아니라 컬럼비아 대를 우등으로 졸업한 사람답게 기억력도 비상했다. 무슨 노래를 몇 년도에 불렀다는 것을 또렷이 기억했다. 분은 이 같은 육체와 정신적 건강의 비결을 “우유를 많아 마시고 운동을 많이 하며 깨끗한 양심을 지는 것”이라고 말했다.자기를 “팻”이라고 부르라고 부탁하는 분은 친절하고 상냥하며 또 이웃집 아저씨처럼 편안했다. 그래서 첫 대면인데도 구면처럼 친근감이 갔다.
분은 수많은 히트 팝 뿐 아니라 가스펠, 록, 컨트리와 리듬 앤 블루스를 비롯해 심지어 헤비 메탈 장르까지 섭렵한 가수다. 그런데 뒤 늦게 시도해 빅히트한 헤비 메탈 앨범을 출반했다가 자기가 출연하던 기독교TV쇼에서 쫓겨났다고 한다. 그러나 분은 랩은 음악이 아니라고 딱 잘라 말했다. “그 건 음악이아니라 리듬에 붙인 폭언”이라고.
분은 이 날 자신의 가수로서의 생애 외에도 지난 63년간을 함께 해로한 아내 셜리와 히트곡  ‘유 라이트 업 마이 라이프’를 부른 딸 데비 및 정치와 신앙 등에 관해서도 길고 상세하게 얘기, 인터뷰는 근 2시간이나 진행됐다.
여러 펀의 영화에도 나온 분의 작품 중 잘 알려진 것이 자기가 주제가도 부른 ‘에이프릴 러브’(1957)와 빅히트한 공상과학 모험영화 ‘저니 투 더 센터 오브 디 어스’. 그런데 분은 ‘에이프릴 러브’에서 공연한 셜리 존스와 키스 한 번 못 했다며 크게 웃었다. 감독 헨리 레빈이 마지막 장면을 찍을 때 존스의 입에 키스를 하라고 지시했지만 분은 아내에게 허락을 받아야 한다며 사절했다는 것이다.
분은 당시 22세였는데 그 때부터 그는 매우 도덕적이었다고 한다. 그래서 마릴린 몬로와 공연할 영화도 그 내용 때문에 거절했다고 말했다. 그런데 분은 ‘에이프릴 러브’ 개봉 40주년 회고전 때야 비로소 무대에 함께 나온 존스의 입에 키스를 했는데 “가볍고 아름다운 키스였다”고 회상했다.
분은 자기가 가수가 되리라곤 생각하지도 못했다. 교사나 목사가 될 줄 알았다는 것. 둘 다 그의 이미지에 어울리는 직업인데 분은 독실한기독교 신자다. 철저한 보수파 공화당원인 분이 지난 선거에서 도널드 트럼프를 “마지못해 지원한” 까닭도 트럼프가 새로운 기독교신자라고 믿었기 때문이다.
분은 트럼프 지지운동을 해 트럼프로부터 고맙다는 전화를 받았다고 한다. 분은 통화에서 트럼프에게 “대통령 감답지 못한 짓이니 상대방을 욕하지 말라”고 조언했다고. 분은 이어 “트럼프가 비생산적인 트위팅을 중단하기를 바란다”면서 “그러나 나는 그를 지지하며 그를 위해 기도한다”고 강조했다.             
분의 많은 노래들 중 내가 즐겨 듣던 노래들은 ‘웬 아이 로스트 마이 베이비’ ‘무디 리버’ ‘프렌들리 퍼수에이전’(영화 ‘우정 있는 설복’ 주제가) ‘러브 레터즈 인 더 샌드’ ‘스피디 곤잘레스’ 및 영화 ‘엑소더스’의 주제가. “디스 랜드 이즈 마인”으로 시작되는 ‘엑소더스’의 주제가는 이스라엘의 제2의 국가로 여겨지면서 이스라엘 국민의 사랑을 받고 있다. 나는 지난 2005년 세리토스 공연센터에서 분의 공연을 관람했었다. 그 때 분은 71세로 여전히 스위트한  음성이었다. 세월은 가지만 분의 노래들은 내겐 지금도 청춘의 속삭임으로 남아 있다. 이 할러데이 시즌에 분의 크리스마스 캐롤을 들으면 축복 받는 기분이 날 것이다.           
                                                             <한국일보 박흥진 편집위원/ hjpark1230@gmai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