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이야기

2015년 4월 6일 월요일

분노의 질주 7 (Furious 7)


덱카드(제이슨 스테이담·왼쪽)와 담(빈 디즐)이 쇠몽둥이를 휘두르며 격투를 벌이고 있다.

스턴트·특수효과 뒤범벅된‘액션의 광란’ 


정신 나간 막가파식의 ‘광란의 질주’로 액션 스펙태클이 초고속에 아찔하게 박력이 있긴 하지만 자동차가 하늘을 나는 식으로 과장이 심해 보는 사람을 당황하게 만든다. 시리즈를 자꾸 만들기 위해선 새 것이 전편의 액션을 훨씬 능가해야 하기 때문에 편수가 늘면 늘수록 그 횡포가 더욱 자심해지게 마련이긴 하나 모든 물리의 법칙을 깨면서 이치라곤 도저히 찾아볼 수가 없도록 난동을 부리는 바람에 정나미가 떨어진다. 이건 액션영화라기보다 초현실적 공상과학 영화라고 해야 옳겠다.
이 시리즈를 중간쯤 찍던 중 주인공 가운데 하나인 폴 워커가 아이로니컬하게도 자동차 사고로 사망하면서 화제가 됐었는데 그의 모습은 워커의 시용하지 않은 다른 영화의 필름과 두 동생을 대신 찍은 다음 거기에 얼굴을 디지털로 덮어 마치 살아 있는 워커가 처음부터 끝까지 나오는 것처럼 보인다.
플롯이란 순전히 액션을 사용하기 위한 구실에 지나지 않고 대사도 아주 유치하다. 스턴트와 특수효과와 막강한 액션과 길길이 날뛰는 에너지는 가상하나 마치 약물에 취한 도깨비들의 장장 137분짜리 살풀이를 구경하는 것 같아 헛웃음이 나온다. 제8편이 나오겠다.
전편에서 담(빈 디즐)의 패거리에 의해 얻어터져 런던 병원에 빈사상태로 누워 있는 동생 오웬을 황천으로 보낸 덱카드(제이슨 스테이담)는 담 일당에게 복수의 선전포고를 한다. 담 일당 중 한 명이던 한국계 한(성 강)은 전편 끝에서 죽는다. 만만한 게 아시안이다.
이에 담과 아내와 어린 아들에게로 돌아가 가정생활을 하던 브라이언(폴 워커) 그리고 아직도 기억상실증에 시달리는 담의 애인 레티(미셸 로드리게스) 등 담의 일당은 덱카드를 맞을 준비를 한다. 이 때 이들 앞에 정체불명의 정부기관 소속 ‘무명씨’(커트 러셀)가 나타나 코카서스에 있는 테러리스트 모세(자이몬 훈수)가 납치한 예쁜 처녀 컴퓨터 해커 램지(나탈리 에마누엘)를 구출해 오면 덱카드를 처치해 주마고 제의한다.
램지는 세계 어느 곳에서든지 셀폰과 감시카메라를 통해 사람들의 일거수일투족을 관찰할 수 있는 프로그램 ‘신의 눈’을 개발했는데 이것이 나쁜 놈의 손에 들어가면 세상은 어떻게 될지 뻔한 일.
그래서 담 일행은 아제르바이잔으로 갔다가 이어 아부다비로 간다. 여기서 ‘신의 눈’ 칩이 든 아부다비의 거부가 소유한 세계에서 몇 안 되는 빨간 스포츠카를 담이 마천루 꼭대기로부터 몰고 건물의 유리창을 뚫고 날아가 옆의 건물의 유리창을 뚫고 착륙했다가 다시 한 번 옆의 건물로 비상한다. 믿든지 말든지라는 식이다.
영화는 이들이 LA로 돌아와 또 한 번 뛰고 달리고 치고 박고하면서 난리법석을 떨고 나서야 끝이 난다. 여하튼 영화 내내 자동차가 하늘에서 땅에 떨어지고 사람이 죽도록 치고받으면서 싸우지만 어디 하나 누구 하나 상처가 안 난다. 수퍼카요 수퍼맨이다.
전편에서 담 일행과 일종의 친구가 된 수사관 루크(드웨인 잔슨)도 덱카드에게 찍힌 원수여서 당연히 담 일행과 행동을 같이 해야겠지만 그는 영화 일찍 영웅적인 행동을 하다가 영화 내내 병상에 누워 있다. 그러다가 마지막에 가서 “아빠는 할 일이 있다”고 어린 딸에게 통보하면서  팔의 캐스트를 으스러뜨린 뒤 싸우러 나간다. 마지막에 워커를 추모하는 장면을 삽입했는데 전체적으로 액션에 멜로드라마를 섞어 넣으려고 시도한 흔적이 역력하다. 제임스 완 감독. PG-13. Universal. 전지역. ★★★(5개 만점) <한국일보 박흥진 편집위원/ hjpark1230@gmail.com>

하얀 신 (White God)


릴리가 부다페스트 거리를 달리며 자기를 따라 오는(또는 추격하는) 개들을 돌아다 보고 있다.

“인간에게 복수하라”개들의 반란


‘개들의 반란’이라고 불러야 좋을 이 영화는 인간이 짐승에게 가하는 가혹한 행위를 비판한 우화이자 인종과 계급 차이에 대한 기소이기도 하다. ‘래시 컴 홈’의 살벌한 신판으로 자기를 사랑하는 어린 주인을 찾아 온갖 모험과 위험을 겪으면서 달리고 또 달리는 황구의 의지가 가상하다. 
신화적 분위기를 지닌 헝가리 영화로 볼만한 것은 개들의 연기다. 영화가 다정다감하다가 잔인하고 폭력적인 톤을 갖추면서 감정적 곡선을 혼란케 만드는데 미물로 여기는 개들이 사람 뺨치게 영리하고 생각이 있어 마치 초현실적 영화를 보는 것 같기도 하다.
주인공은 부다페스트의 허름한 아파트에서 백수 아버지 다니엘(산도르 소토)과 둘이 사는 13세난 영리한 소녀 릴리(소피아 소타). 릴리에게는 잡종인 황구 하겐이 유일한 친구인데 당국에서 잡종 개에게 세금을 부과하자 다니엘은 하겐을 길에다 내다버린다.
주인 없는 홈리스가 된 하겐은 자기를 잡아 처리하려는 시공무원들을 피해 도주하다가 터키 인에게 붙잡혀 투견훈련을 받는다. 이 부분이 매우 잔인하다. 그러나 불굴의 정신을 지닌 하겐은 모진 고난을 참다가 탈출해 시내를 배회하는 주인 없는 개들을 규합해 리더가 된다. 
하겐은 이제 서서히 졸개 개들을 이끌고 인간에 대한 역습을 도모하는데 이 같은 하겐의 점진적인 발전은 자기를 찾는 릴리의 아버지를 비롯한 주위의 무지막지한 어른들에 대한 항거와  평행적으로 묘사된다.
릴리와 하겐은 일종의 국외자들로 서로 같은 처지인데 하겐이 졸개들과 함께 인간에 대한 반격을 준비하는 과정이 긴장감과 공포감 가득히 연출된다. 히치콕의 ‘새들’에서 새들이 인간을 공격하는 장면을 연상시킨다. 복수심에 불타는 하겐을 위무해 줄 사람은 오직 릴리. 마지막 부분이 충격적이다. 
하겐 역의 개와 많은 개들의 일사불란한 연기를 담당한 조련사의 솜씨가 감탄을 금치 못하게 하고 릴리 역의 신인 소피아 소타도 아주 잘 한다. 기술적으로도 탁월한 작품으로 촬영이 아주 좋고 오케스트라 음악도 훌륭하다. 영화의 제목은 흑인만 공격하도록 훈련된 백구가 주인공인 새뮤얼 풀러 감독의 ‘백구’(White Dog·1982)를 연상케 한다. 코넬 문드루조 감독. 개가 나오고 소녀가 주인공이나 성인용이다. Magnolia. 4월9일까지 뉴아트(310-473-8530) ★★★½(5개 만점)  
                                                       <한국일보 박흥진 편집위원/ hjpark1230@gmail.com>


‘스펙터’




멕시코시티 중심부에 위치한 소칼로(광장)는 어마어마하게 넓다. 국빈 영접과 국경일 행사 등이 열리는 광장 한복판에 게양된 거대한 멕시코 국기가 바람을 맞으며 위풍당당하게 펄럭이고 있었다.
광장 위로 제임스 본드가 탄 헬기가 굉음을 내며 날아오더니 마침 ‘사자의 날’을 맞은 축제인파를 헤치고 착륙한다(사진). 007시리즈 제24편 ‘스펙터’(SPECTRE)의 프리 타이틀 시퀀스를 촬영하는 현장에는 시리즈 제작자들인 바바라 브로클리와 마이클 윌슨 및 제작사인 MGM의 게리 바버 회장과 조나산 글릭맨 영화제작 담당 사장 등이 참석, 3월 말 취재차 이 곳을 찾은 할리웃 외신기자협회(HFPA)원들을 맞았다.
헬기에는 본드가 타고 있어야 하겠지만 기내에서 본드가 암살자와 격투를 벌이는 장면을 소칼로에서 찍기에는 위험부담이 커 본드 없이 찍은 뒤 본드가 실제로 싸우는 장면은 후에 다른 곳에서 찍는다고 브로클리가 설명했다. 그는 이어 “‘스펙터’는 ‘스카이폴’보다 규모가 훨씬 더 크고 더 좋다”면서 “대중이 그만 만들라고 할 때까지 시리즈는 이어질 것”이라고 자랑했다.
브로클리는 이날 촬영에 나온 엑스트라는 1,500여명으로 광장을 가득 메운 나머지 인파는 촬영이 끝난 뒤 디지털로 만든다고 말했다. 바바라 브로클리는 본드시리즈를 처음 제작한 커비 브로클리의 딸이다.
시리즈 제23편 ‘스카이폴’을 감독한 샘 멘데스가 다시 연출하는 ‘스펙터’에서 본드 역은 역시 대니얼 크레이그가 맡는다. 본드 역 만큼이나 중요한 본드 악한 역은 오스카 조연상을 탄 오스트리아 배우 크리스토프 월츠가 그리고 본드걸들로는 이탈리아 배우 모니카 벨루치(50세로 역대 본드걸 중 가장 나이가 많다)와 프랑스배우 레아 세이두(‘푸른색이 가장 따뜻한 색’) 및 멕시코 배우로 신성인 스테파니 시그맨 등이 나온다. 이들 외에 본드를 짝사랑하는 본드의 상관 M(레이프 화인즈)의 여비서 모니페니(네이오미 해리스)까지 합하면 본드걸이 자그마치 4명이나 된다. 여복도 많지!
영화 제목은 본드의 천적인 국제적 범죄 및 테러조직의 영어 두문자로 스펙터는 본드 시리즈 제1편 ‘닥터 노’에서부터 활약을 했다. ‘스펙터’는 이미 오스트리아와 로마와 런던에서 촬영을 마쳤고 멕시코시티 촬영이 끝나면 모로코로 이동한다. 가히 세계적 영화다.
우리는 영화의 제작진과 배우들을 인터뷰했지만 누구 하나 영화의 내용에 대해선 “말할 수 없다”며 나 모르쇠 일관이었다. 크레이그의 선배 본드인 티머시 달턴이 나온 ‘라이선스 투 킬’을 찍은 소칼로가 내려다보이는 고색창연한 그랜드호텔 4층 테라스에서 촬영과정을 지켜본 뒤 시내 극장에서 관람한 ‘스펙터’의 예고편도 길이가 1분 남짓했다. 영화 내용을 철저히 보호하려는 제작진의 장삿속이겠지만 농담 같은 짓이다.
촬영현장 방문 다음 날 월츠, 세이두, 시그맨 및 졸개 본드 악한으로 나오는 격투기 선수인 데이브 바우티스타 등과의 인터뷰가 있었다. 제일 만만한 시그맨과의 인터뷰 내용만 쓸 수 있고 나머지는 영화 개봉일인 11월6일 보름 전쯤에나 쓴다는 서약서에 서명까지 했다. 그러나 도대체 배우들이 영화 내용에 대해 “모른다” “아마 그럴 수도 있겠지” 또는 “말할 수가 없다”는 식이어서 나중에 써먹을 만한 얘기가 과연 있을지 의문이다.
마이클 윌슨이 들려준 내용 이래봐야 고작 “크레이그는 촬영 내내 올림픽 선수처럼 신체단련에 매달렸고 저녁 9시에 취침해 아침 5시에 기상하는 수사와도 같은 생활을 하고 있다”는 것이 전부. 그는 이어 “영화를 위해 시당국이 광장을 완전히 외부로부터 차단하면서 적극적으로 협조했고 시민들도 마찬가지”라며 멕시코를 치켜세웠다.
그런데 일설에 의하면 멕시코 당국에서 영화 속의 멕시코의 이미지를 좋게 표현하기 위해 각본을 수정하는 조건으로 2.000여만달러를 제작비 협조 명목으로 주었다고 한다. 물론 당국은 이를 부인했다.
본드 시리즈에 처음 등장하는 멕시칸 본드걸 역의 시그맨(28)은 아마추어 권투선수다. 내가 그에게 “이 건 내 추측인데 당신은 권투선수로 제임스 본드 영화에 나오니 아마 본드의 엉덩이를 걷어찰 모양이지요”하고 물었더니 그는 “모르겠네요, 아마 그럴지도 모르지요”라며 웃었다. 그러나 내 추측이 맞을 것 같다.
교통대란의 도시 멕시코시티는 곳곳에 고가도로가 설치된 모습이 1970년대 서울을 연상시킨다. 이 곳이 위험한 도시라는 말은 익히 들어 알고 있었지만 이번에 현장에서 그 사실을 직접 경험했다. 우리가 묵은 호텔은 시내 중심부의 고급 호텔이었는데 밤에 호텔 밖에서 호텔 내 바에 들어가려면 가드가 지켜보는 가운데 금속 탐지기를 통과해야 했다. 그런 살벌한 분위기를 거쳐 바에 들러 테킬라에 매운 토마토주스 상그리타를 체이서로 마시니 이국의 노독이 깜빡깜빡 졸음에 빠진다. 이번 여행서 얻은 큰 수확은 틈을 내 프리다 칼로와 그의 남편 디에고 리베라가 함께 살고 작업을 한 원색의 프리다 칼로 개인주택 뮤지엄을 방문한 것이었다.    
                                                             <한국일보 박흥진 편집위원/ hjpark1230@gmai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