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이야기

2016년 4월 27일 수요일

이야기 중의 이야기(Tale of Tales)


임신 못하는 왕비(샐마 하이엑)가 왕이 죽인 바다 괴물을 내려다 보고 있다.


세 왕국에서 벌어지는‘무궁무진한 환상의 세계’


옛날 옛적 먼 나라 성에 임금님과 왕비와 공주와 왕자가 살았으니 하면서 시작되는 할머니가 들려주던 옛날 얘기처럼 고소한 맛이 나는 동화로 상상력이 무궁무진하고 아름답고 재미있고 또 어둡고 겁나는 이탈리아와 프랑스 공동제작 영화다. 
17세기에 쓰여진 나폴리 동화가 원작인데 섹스 신과 무서운 장면이 있어 아주 어린 아이들에게는 적당치 않다.
이웃에 사는 세 나라의 왕과 왕비의 얘기가 오락가락하면서 이어지는데 왕과 왕비뿐 아니라 괴물 같은 인간과 바다괴물에 벼룩과 곡예사 등이 나와 보는 사람을 환상의 세계로 안내한다. 그야말로 이야기 중의 이야기로 총천연색 촬영과 의상과 프로덕션 디자인 그리고 약간 귀기 서린 잔잔한 음악(알렉상드르 데스플라)을 비롯해 미국과 유럽의 유명 스타들의 앙상블 캐스트 등이 다 좋은 얘기 풍성한 작품이다. 
먼저 아기를 못 낳아서 고민하는 왕비(샐마 하이엑)의 얘기. 왕(존 C. 라일리)은 귀신같은 무당이 왕비에게 말해준 임신 비법을 실현키 위해 자살임무나 마찬가지인 해저 괴물의 심장을 꺼내려고 잠수한다. 왕은 임무수행 후 죽는다. 이 심장을 뜯어 먹은 왕비는 그 날로 임신, 이튿날 왕자를 낳는다. 그런데 심장을 요리한 처녀 하녀 역시 요리 연기를 맡고 임신, 왕비와 같은 날 남아를 낳는다. 
두 아이는 모두 피부색소 결핍증의 눈 같이 하얀 머리와 피부를 지녔는데 왕비의 금지령에도 불구하고 둘(크리스티안과 조나 리스)은 없으면 못 사는 형제애로 뭉친다. 이 아이들을 떼어놓기 위해 왕비가 무당말을 들었다가 불상사가 생긴다.
두 번째 얘기는 벼룩을 지극히 사랑하는 왕(토비 존스)과 그의 혼기가 찬 공주(비비 케이프)의 얘기. 자기 피를 먹여 키운 벼룩이 죽자 실의에 빠진 왕이 딸을 시집보내기로 결정, 신랑감을 찾기 위한 퀴즈를 내는데 이를 푼 것이 괴물인간(기욤 드로네이). 공주는 괴물이 사는 암산 꼭대기 동굴에 살면서 죽을 고생을 하다가 줄 타는 곡예사의 도움으로 탈출을 하나…
마지막 얘기는 이 두 얘기 사이에 낀 여자 좋아하는 왕(뱅상 카셀)의 이야기. 왕은 얼굴을 못 본 동네 여자의 아름다운 노래 소리에 반해 여자의 집을 방문하는데 노래를 부른 여자는 얼굴과 온 몸이 쭈글쭈글한 할머니 도라(헤일리 카마이클). 도라는 언니 임마(셜리 헨더슨)와 함께 사는데 마법이 일어나면서 도라가 아름다운 여인으로 변신한다. 이 세 얘기가 서로 교묘하게 연결된다. PG-13. ★★★½ (5개 만점) 
                                                        <한국일보 박흥진 편집위원/ hjpark1230@gmail.com>      


사냥꾼: 겨울 전쟁(The Huntsman: Winter’s War)


사악한 여왕 언니에게 배신당한 프레이아는 얼음여왕(왼쪽)이 된다.

내용도 엉성하고 연기도 어정쩡한 얼어붙은 동화



2012년에 크리스튼 스튜어트가 백설공주로 나온 ‘백설공주와 사냥꾼’의 후속편으로 동화 ‘백설공주’를 제멋대로 변용한 특수효과 위주의 친근감 없는 영화다. 제목처럼 내용과 연기와 배우들의 상호작용이 얼어붙어 동화가 영혼이 빠진 딱딱한 습작문 같다.
특수효과와 프로덕션 디자인 그리고 잘 생긴 배우들과 의상은 구경거리이나 얘기도 엉성하고 연기도 어정쩡한데 특히 주인공이 되어야 할 백설공주는 간 곳이 없고 그 주위의 인물들을 주요 인물로 등장시켜 허전하다. 전형적인 외화내빈의 스튜디오 영화로 배우들이 아깝다.
백설공주의 계모로 수리수리 마수리를 할 줄 아는 사악한 여왕 라베나(샬리즈 테론)에게 착한 여동생 프레이아(에밀리 블런트)가 있는데 라베나가 마법을 써 프레이아의 애인으로 하여금 둘 사이에서 난 아기를 태워 죽이게 한다.
그래서 프레이아는 사랑을 저주하는 얼음여왕이 돼 북쪽에 왕국을 차리고 혼자 살면서 납치해온 아이들로 ‘사냥꾼’이라는 부대를 구성해 지상에서 사랑을 쓸어버리려고 한다. 납치된 아이들 중에 소년 에릭과 소녀 새라가 있는데 둘은 커서 얼음여왕의 명을 어기고 사랑에 빠진다. 이를 본 얼음여왕이 에릭(크리스 헴스워드)과 새라(제시카 채스테인) 사이에 얼음벽을 치고 둘을 갈라놓은 뒤 부하를 시켜 새라를 살해한다.            
그로부터 7년 후. 백설공주(등만 보인다)의 명에 의해 괴물의 손에 들어간 라베나 소유의 마법의 황금거울 회수에 나선 에릭이 자기를 돕는 7~8명의 남자 난쟁이와 두 명의 여자 난쟁이(이 두 여자 난쟁이와 두 명의 남자 난쟁이의 코믹한 콤비가 헴스워드와 채스테인의 그것보다 백배 낫다)와 함께 적을 맞아 칼부림을 하면서 액션이 일어난다.
그런데 이게 웬 일인가. 7년 전에 죽었는 줄 알았던 새라가 살아나 에릭 앞에 나타난다. 에릭은 새라에게 “난 네가 죽는 것을 분명히 봤다. 난 여전히 널 사랑한다”고 호소하나 새라는 “넌 날 버린 배신자다. 난 사랑을 더 이상 안 믿는다”고 억지를 쓴다. 둘이 노는 모습이 아주 어색하다.
그리고 마지막에 라베나와 프레이아의 사생결단의 자매 싸움이 벌어지면서 난리법석이 일어난다. 피곤한 영화다. 세드릭 니콜라스-트로이얀의 연출 솜씨가 무디다.
PG-13. Universal. ★★½(5개 만점) <한국일보 박흥진 편집위원/ hjpark1230@gmail.com>

할리웃의 아시안




올 오스카 남녀 주조연상 후보 20명이 몽땅 백인이어서 ‘오스카는 온통 백색이다’라는 비판을 받았던 할리웃이 이번에는 2편의 메이저 영화에서 주요 아시안 역에 백인을 써 또 다른 구설수에 말려들고 있다.
오는 11월4일에 개봉될 마블작품인 ‘닥터 스트레인지’는 외과의사 스티븐 스트레인지(베네딕 컴버배치)가 자기 계몽과 구제를 찾아 히말라야에 가 티벳인 여도사 에인션트 원 밑에서 수련 후 세상을 보호하는 마법사가 된다는 얘기. 그런데 이 아시안 도사 역을 순백의 틸다 스윈튼이 맡고 있다. 또 내년 3월에 개봉될 패라마운트의 공상과학 액션영화 ‘공각기동대: 고스트 인 더 셸’은 일본의 인기 만화와 영화가 원전으로 여기서 초정밀 기계와도 같은 특수부대 요원 메이저 소령의 본명은 구사나기 모도꼬. 그런데 이 구사나기 역도 역시 순백의 스칼렛 조핸슨이 맡았다. 
할리웃이 아시안 역에 백인배우들을 쓰는 것은 어제 오늘의 일이 아니다. 그 중에서도 가장 희극적인 것이 ‘정복자’에서 징기스칸으로 나온 존 웨인. 말론 브랜도도 ‘8월 달의 찻집’에서 찢어진 눈을 한 일본인 통역사로 나온다. 또 폴 뮤니와 루이즈 레이너는 ‘대지’에서 중국인 부부로 나왔다. 그 중에서도 아시안에게 가장 치욕적인 것이 ‘티파니에서 아침을’에서 일본인으로 나온 미키 루니. 큰 뿔테안경에 기모노를 입고 뻐드렁니를 한 루니가 고래고래 소리를 지르는 모습을 보노라면 같은 아시안으로서 모멸감에 속이 다 메슥거린다.
할리웃은 백색지대여서 오래 전부터 아시안뿐 아니라 흑인과 아메리칸 인디언과 멕시칸 등 소수계 역을 백인배우들이 해왔다. 첫 유성영화 ‘재즈 싱어’에서는 알 졸슨이 얼굴에 검은 칠을 하고 나와 노래를 불렀다. 
백인배우들로 아메리칸 인디언 역을 한 사람들은 록 허드슨, 제프 챈들러, 찰스 브론슨, 버트 랜카스터와 오드리 헵번 및 데브라 패젯 등이 있다. 자니 뎁도 몇년 전에 ‘로운 레인저’에서 아메리칸 인디언 톤토로 나왔다. 백인 수퍼스타로 유명 멕시칸 실제인물 역을 한 것이 말론 브랜도. 그는 ‘비바 사파타!’에서 멕시코의 풍운아 사바타로 나왔다. 
할리웃이 이렇게 제멋대로 피부색을 무시하는 이유는 물론 흥행 때문이다. 막대한 제작비를 투입한 영화에 인기 백인스타가 아닌 아시안을 비롯한 비백인을 썼을 경우 흥행에 실패할 것이 두렵기 때문이다. 요즘 할리웃 흥행 총수입의 70%가 해외시장 몫이다. 특히 그 중에서도 중국과 한국 및 일본 등 아시안 시장에서 벌어들이는 몫이 큰 비중을 차지하는 데도 할리웃은 영화의 중요한 역에 아시안 배우를 쓰는 것을 꺼려하고 있다. 
한국시장이 할리웃의 중요한 판매처로 등장하면서 최근 들어 할리웃은 한국 팬들 나아가서 아시아권 팬들의 비위를 맞추기 위해 동양권에서 잘 알려진 한국 배우들을 더러 쓰고 있다. 대부분 조연이나 단역이지만 아주 가끔 주연으로도 쓴다. 
오래 전에 박중훈이 ‘찰리의 진실’에 조연으로 나왔고 가수 비도 ‘스피드 레이서’와 ‘닌자 어새신’에서 각기 조연과 주연으로 나왔으며 장동건도 ‘워리어스 웨이’에서 주연을 맡았으나 유감스럽게도 이들 영화들은 다 평과 흥행면에서 좋지 않은 반응을 받았다. 
한국 배우가 할리웃 영화에 조연으로 나와 빅히트한 것은 스칼렛 조핸슨이 나온 액션 스릴러 ‘루시’. 여기서 최민식이 킬러 두목으로 나와 칭찬을 받았는데 흥행성공은 물론 조핸슨 탓이다.               
배두나도 2012년 탐 행스가 나온 ‘클라우드 아틀라스’에 조연했으나 이 영화는 평과 흥행이 다 나빴다. 
한국 배우로 명실 공히 국제적 배우의 문턱에 올라선 사람이 이병헌이다. 물론 다 조연이나 그는 ‘G.I. 조’ ‘레드 2’ ‘터미네이터 제니시스’ 및 ‘미스칸덕트’ 등 여러 편의 할리웃 영화에 꾸준히 출연하고 있다. 그의 할리웃 영화로 지금 기대되고 있는 것이 오는 9월23일에 개봉될 웨스턴 ‘황야의 7인’. 이 영화는 율 브린너와 스티브 매퀸이 니온 동명영화의 리메이크로 원작은 구로사와 아끼라의 ‘7인의 사무라이’. 안트완 후콰가 감독하는 리메이크에는 덴젤 워싱턴과 이산 호크 등이 나오는데 이병헌은 검은 옷차림의 건맨 빌리 락스(사진)로 나온다.   
할리웃의 아시아계 배우 홀대에도 불구하고 한 가지 고무적인 현상은 한국계 미국인 배우들이 타 아시안들보다 유난히 많이 할리웃에서 활약하고 있다는 사실. 마가렛 조, 켄 정, 릭 윤, 윌 윤 리, 성 강, 스티븐 연, 랜달 박, 존 조, C.S. 리, 대니얼 대 김, 그레이스 박, 샌드라 오, 제이미 정, 그레타 리 등 외에도 많은 배우들이 영화와 TV에서 활동하고 있다.      
할리웃이 비백인 역에 백인을 쓸 때마다 내세우는 말이 “배역 선정은 색맹이다”라는 것. 그런데 이 말은 소위 유색인종 역에 백인배우를 쓸 때만 적용되는 일방통행용이다. 할리웃은 언제나 백색이기 때문이다.  
                                         <한국일보 박흥진 편집위원/ hjpark1230@gmail.com>



2016년 4월 19일 화요일

정글 북(The Jungle Book)


늑대소년 모글리와 꿀 중독에 걸린 곰 발루가 정글여행을 하고 있다.


디즈니의 정글 북…컴퓨터로 새롭게 탄생


컴퓨터로 만든 정글과 거기서 사는 온갖 동물들이 진짜보다 더 진짜 같이 아름답고 장엄하고 수려하며 또 움직이고 살아 숨 쉬는 이 디즈니 만화영화는 디즈니가 지난 1967년에 만든 만화영화의 신판인데 3-D로 보는 시각효과가 믿을 수가 없을 정도로 완벽해 혀를 찰 지경이다.  
영화의 또 다른 재미는 동물들의 대사를 말하는 배우들의 음성연기. 처음에는 좀 이상하게 들리나 시간이 가면서 귀에 익숙해진다. 영화의 약점이 있다면 모두가 너무 잘 아는 얘기라는 것과 플롯의 무게가 시각미를 제대로 따라가지 못하고 있는 점.
온 가족이 같이 즐겁게 볼 수 있는 정글 속의 늑대소년 모글리의 모험과 액션영화로 영화의 원작은 영국 작가 루디야드 키플링의 동명소설. 모글리 얘기는 지난 1942년에는 사부 주연으로 라이브 액션영화로도 만들어졌는데 만인필견의 명작이다.
그런데 모글리 얘기는 현재 워너 브라더스에 의해 크리스천 베일, 케이트 블랜쳇 및 베네딕 컴버배치 등이 나오는 라이브 액션영화로 만들어지고 있는데 감독은 ‘반지의 제왕’에서 골룸 역을 맡은 앤디 서키스. 서키스는 감독과 함께 모글리의 정글친구인 곰 발루로 나온다. 2017년 10월 개봉 예정.  
카메라가 유연한 동작으로 정글의 생태계를 자세하게 묘사하면서 고아소년으로 늑대가 키운 모글리(닐 세티-인도계 미국 소년으로 2,000여명의 웅모자 중에서 뽑았다. 나긋나긋하고 날렵한 동작과 연기를 아주 잘 하는데 다소 지나치게 어른스러운 것이 흠이다)의 보호자인 검은 표범 바기라(벤 킹슬리의 음성)의 해설로 영화가 진행된다.
정글은 모든 동물들이 평화공존하는 지상낙원. 이런 평화를 무시하고 자기가 정글의 왕이 되려고 성질을 부리는 못된 짐승이 호랑이 시어 칸(이드리스 엘바). 
특히 시어 칸은 인간인 모글리를 싫어하는데 그래서 둘은 적으로 마지막에 사생결단의 격투를 벌인다. 시어 칸 외에 정글의 평화공존에 대해 별로 호의적이지 못한 것이 나무에 사는 거대한 뱀 카(스칼렛 조핸슨).
바기라가 모글리가 이젠 인간세계로 돌아갈 때가 됐다고 결정, 처음에는 이에 반대하던 모글리를 인간세상으로 돌려보내기 위해 둘이 함께 험한 정글여정을 진행하면서 모글리는 각종 동물들을 만나고 또 모험과 액션을 겪게 된다. 
먼저 만나는 것이 영화의 코미디 쉼표를 하는 장난기 심한 곰 발루(빌 머리). 모글리가 꿀이라면 사족을 못 쓰는 발루에게 꿀을 제공하면서 둘은 친구기 된다. 그리고 발루는 1967년 영화에 나온 노래 ‘베어 네세시티즈’(The Bare Necessities)를 신나게 부른다. 이어 모글리는 원숭이떼들에게 납치돼 버려진 고도에 사는 흉측하게 큰 오랑우탕 킹 루이(크리스토퍼 월큰) 앞으로 끌려간다. 킹 루이가 모글리에게 원하는 것은 ‘빨간 꽃’ 즉 불이다.  
마침내 모글리는 인간세계에 도착하는데 과연 그가 정글가족을 버리고 인간세계로 돌아갈까요 아니면 정글로 되돌아갈까요. 재미있고 즐거운 영화로 컴퓨터 정글 속에서 유일한 살아 있는 짐승인 인간 소년과 컴퓨터 동물들이 물에 물 섞이듯이 자유롭게 대화하고 교감하고 또 행동하는 시각효과야 말로 경이롭기만 하다. 존 홰브로(‘셰프’) 감독. PG. ★★★½ (5개 만점)
                                                <한국일보 박흥진 편집위원/ hjpark1230@gmail.com>


싱 스트릿(Sing Street)


리드싱어 코너(카운데)와 ‘싱 스트릿’ 밴드가 거리연주를 하고 있다.


주옥같은 80년대 음악들 즐겁고 재미있어


오스카 주제가상을 탄 ‘원스 어겐’과 또 다른 음악영화 ‘비긴 어겐’을 쓰고 감독한 아일랜드 태생의 존 카니가 역시 쓰고 감독한 소품 뮤지컬로 아담하니 귀엽고 즐겁고 재미있다. 1980년대 중반 감독의 10대 때 경험을 허구를 섞어 만들어 향수감이 짙은데 카니가 작곡한 노래들이 매우 아름답고 좋다.
이 영화도 그의 다른 영화들처럼 음악을 통한 자아 발견과 치유와 인간관계를 그렸는데 소년의 성장기를 환상을 섞어 사실적으로 다루고 있다. 1991년에 나온 역시 아일랜드를 무대로 만든 뮤지컬 ‘코미트먼트’를 연상케 하는데 1980년대 유행한 노래들과 함께 영화를 위해 만든 노래들이 많이 나와 눈과 귀를 모두 즐겁게 만들어준다.
1985년 더블린의 중산층 가정의 14세난 코너(신인 퍼디아 월시-필로)는 별거 직전의 부모와 대학 중퇴생으로 락뮤직에 도통했으나 삶의 의미를 못 찾아 방에 칩거하는 형 로버트(돈 레이노)와 무난한 일상을 살고 있다. 그런데 아일랜드의 경제가 나빠져 코너가 부유층이 다니는 제수잇 학교에서 독재자 같은 백스터가 학생들을 지도 감독하는 후진 동네학교로 전학을 하게 되면서 그의 삶이 확 뒤바뀐다. 
왈패들의 시달림을 받는 코너는 자기를 사업가로 착각하는 꼬마 대런(벤 카롤란)을 친구로 사귄다. 그리고 코너는 길에서 보고 반한 자기보다 1~2세 위인 아름다우나 정처 없는 모델 지망생 라피나(루시 보인턴)에게 다가가 라피나를 자기 밴드의 뮤직비디오에 출연시켜 주겠다고 말한다.
문제는 코너에게는 밴드도 없고 또 부를 노래도 없다는 것. 여기서부터 코너는 대런과 함께 밴드를 급조하기 시작한다. 작곡을 잘 하고 온갖 악기를 다룰 줄 아는 이몬(마크 맥켄나)과 키보디스트로 학교 내 유일한 흑인인 엔기그(퍼시 참부루카) 그리고 베이스와 드럼 연주자를 규합해 ‘싱 스트릿’이라는 밴드를 결성한다. 리드 싱어는 코너.
밴드는 ‘수수께끼 같은 모델’이라는 비디오를 제작해 라피나에게 선을 보이는데 이를 좋아한 라피나도 밴드에 참여, 멤버들에게 화장술도 가르쳐 준다. 이와 함께 코너의 학교생활과 밴드의 길거리와 부두에서의 연주와 비디오 제작 및 코너와 그의 음악과 연애의 코치가 되는 로버트와의 관계 등이 자상하니 그려진다. 
그리고 마침내 밴드는 학교의 경연대회에 나간다. 마지막은 환상적인 요소가 다분한 코너와 라피나의 꿈을 찾아가는 장면으로 장식된다. 모두 신인들인 젊은 배우들의 연기가 아주 사실적이요 훌륭하다. PG-13. Weinstein. ★★★½(5개 만점)  
                                                           <한국일보 박흥진 편집위원/ hjpark1230@gmail.com>


짧은 만남(Brief Encounter·1945)


로라(왼쪽)와 알렉이 기차역에서 이별을 나누고 있다.


기차역에서 만난 중년남녀의 슬픈 사랑


기차가 “빼액-”하는 기적소리와 함께 연기를 내뿜으며 전속력으로 저녁 어둠을 뚫고 화면 왼쪽에서 오른쪽으로 달려가면서 라흐마니노프의 장중하면서도 비감토록 서정적인 피아노협주곡 제2번의 멜로디가 흘러나온다. 이어 이번에는 다른 기차가 역시 전속력으로 화면 오른쪽에서 왼쪽으로 달려간다.
우연히 기차역에서 만난 두 유부녀와 유부남이 짧은 사랑 끝에 각자 자기 가정으로 돌아가는 고통스럽도록 아름답고 슬픈 사랑의 영화 ‘짧은 만남’의 첫 장면이다. 내가 가장 좋아하는 로맨스 영화인데 나는 지금도 이 영화를 볼 때마다 눈물을 흘린다. 나뿐만 아니라 감독 데이빗 린(‘아라비아의 로렌스’ ‘닥터 지바고’)과 린과 함께 각본을 쓴 로널드 님도 영화를 보면서 울었다고 한다. 영화는 오스카 감독상과 각본상 후보에 올랐다. 
왼쪽에서 오른쪽으로 달리는 기차는 의사 알렉 하비가 타야 할 기차이고 이와 반대방향으로 달리는 기차는 가정주부 로라 제슨이 타야 할 기차다. 둘의 사랑은 이렇게 서로 기차 방향이 다르듯이 애당초 엇갈릴 수밖에 없는 것이었는지도 모른다.
무대와 스크린 사상 가장 다재다능했던 영국의 극작가이자 각본가였던 노엘 카워드의 단막극 ‘스틸 라이프’(Still Life)가 원작인 이 영화는 불륜의 영화요 로라의 영화다. 평범한 여인 로라와 이상주의자인 알렉은 키스 이상의 행위는 저지르지 않지만 사회 규율로 볼 때 둘의 사랑은 불륜이요 비도덕적이다. 과연 둘의 키스를 간통으로 단죄해야 할 것인지 나로선 알 바 없으나 린은 이 불륜의 스릴과 고통과 부드러움을 흑백화면(후에 ‘제3의 사나이’로 오스카상을 탄 로버트 크라스커 촬영)에 시적으로 꽃을 피워냈다.       
로라(실리아 존슨-이 역으로 오스카 주연상 후보)와 알렉은 해 저문 늦가을 목요일 저녁 작은 도시 밀포드의 기차역 카페에서 우연히 만난다. 눈에 티가 들어가 불편해하는 로라에게 알렉이 다가가 손수건을 꺼내 로라의 눈에서 티를 빼내주면서 둘의 만남이 시작된다.
둘은 각기 남편과 아내 그리고 아이를 둔 보통 사람들로 이 평범한 사람들에게 사랑이라는 무자비한 감정의 폭력행위가 일어나면서 둘은 짧은 만남의 날 동안 함께 기쁨과 슬픔을 혹독하게 치른다. 로라는 샤핑과 영화구경 그리고 알렉은 병원근무를 위해 매주 목요일 이 도시에 왔다가 일이 끝난 뒤 알렉은 하오 5시40분 발 열차로 먼저 떠나고 잠시 후 로라도 집으로 가는 열차를 탄다. 
영화는 로라가 알렉과 마지막 작별을 나누고 귀가해 리빙룸에서 자기 건너편에 앉아 신문을 보는 무미건조하나 자기를 사랑하는 남편에게 속으로 자신의 짧은 만남을 고백하는 식으로 진행된다. 
눈이 큰 로라는 모처럼 찾은 알렉과의 사랑에 “나같이 평범한 사람에게도 사랑이라는 폭력적 행위가 일어날 줄은 몰랐다”며 로맨틱한 여학생처럼 희열하다가도 “우리가 서로를 자제할 수만 있다면”이라며 울음을 터뜨린다. 그러나 알렉의 말처럼 둘은 이미 이성을 찾기에는 늦어버렸다. 그래서 로라는 알렉이 헤어질 때 “목요일”이라고 하는 말에 “목요일”이라고 대답한다.
영화 ‘러브스토리’에서 올리버는 “사랑은 결코 미안하다 라는 말을 할 필요가 없는 것”이라고 말했지만 알렉은 기차를 타고 떠나는 로라에게 여러 번 “미안하다”고 말한다. “미안하오. 당신을 만난 것이 미안하오. 그리고 당신을 비참하게 만든 것이 미안하오.” 이 대사처럼 영화에는 가슴을 헤집고 들어오는 아름답고 진실한 대사들이 많다. 
그리고 마침내 둘은 둘이 처음 만난 카페에서 이별의 준비를 시작한다. 알렉이 로라에게 “이것이 우리 둘의 끝의 시작이라는 것을 나는 아오. 그러나 아직은 채 아니 되오. 우리 서로 준비합시다. 갑작스런 이별은 우리에게 너무나 잔인하오”라고 당부하자 로라는 숨고만 싶은 얇은 미소를 지으며 “아직은 채 아니에요”라고 답한다.                
로라와 알렉의 시랑은 우리 모두에게 얼마든지 일어날 수 있는 것으로 이런 사실성은 존슨과 하워드(‘제3의 사나이’)의 평범한 모습 때문에 더욱 절실한데 둘의 조용하고 절제된 연기가 한 치의 가식도 없어 우리는 두 사람과 함께 기뻐하고 웃다가 또 탄식하고 절망하게 된다. 
로라와 알렉의 만남과 이별은 모두 기차역에서 일어난다. 린은 늘 이별이 머무적대는 안개가 자욱한 기차역과 함께 달리는 기차와 기적소리 그리고 엔진과 율동적인 바퀴소리를 절묘하게 효과적으로 사용, 로맨틱한 ‘기차역 영화’를 만들어냈다. 이와 함께 영화 내내 흐르는 라흐마니노프의 밀려오는 파도의 무게처럼 서글픈 멜로디가 두 사람의 못 이룰 사랑을 애처롭게 동반하고 있다.
결혼한 사람들이 뒤늦게 찾은 참 사랑과 행복과 기쁨 그리고 그들이 행하고 견디어내야 하는 거짓과 죄의식과 수치와 비참함을 아름답고 고요하면서도 가슴이 아프도록 통절하게 묘사한 황홀한 작품이다. 이 영화의 Blu-Ray와 DVD가 크라이티리언(Criterion)에 의해 오는 26일에  출시된다. 상영시간 86분. 
                                                             <한국일보 박흥진 편집위원/ hjpark1230@gmail.com>


브람스 교향곡 제3번 제3악장




지난 일요일 베토벤의 ‘스프링’ 소나타를 들어야 할 계절에 LA 필이 연주하는 가을 기운에 흥건히 적셔진 브람스의 교향곡 제3번을 들으러 디즈니 콘서트홀에 갔다. 제3번의 제3악장 포코 알레그레토를 들으러 갔다고 해도 되겠다.
내가 이 곱고 우울한 멜로디를 지닌 교향곡에 연애적 감정을 갖게 된 것은 중년 남녀와 청년의 삼각관계를 그린 로맨스영화 ‘이수’(Goddbye Again·1961) 탓이다. 클래시컬 뮤직이 영화 속 계절과 장소 그리고 분위기와 이렇게 잘 어울리는 경우도 흔치 않을 것이다. 아나톨 리트박이 감독한 ‘이수’는 프랑솨즈 사강의 소설 ‘당신은 브람스를 좋아하세요’가 원작.
가을 파리. 흑백 화면에 비가 내리고 주인공들이 코트를 입어 브람스의 멜랑콜리 무드가 뭉클하다. 40세의 우아한 실내장식가 폴라(잉그릿 버그만)에게는 멋쟁이 사업가 애인 로제(이브 몽탕)가 있지만 로제는 타고난 바람둥이여서 폴라는 소외감과 미래에 대한 불안감에 시달린다. 이런 폴라 앞에 폴라의 미국인 고객의 25세난 아들 필립(앤소니 퍼킨스·사진)이 나타나 폴라에게 적극적으로 구애하면서 둘은 동거에 들어간다. 그러나 폴라는 자신이 필립을 사랑과 필요성의 도구로 이용하고 있음을 깨닫고 로제에게 돌아간다.
영화에서 필립은 폴라에게 “당신은 브람스를 좋아하세요”라고 물은 뒤 폴라를 브람스 교향곡 제3번 연주에 초청한다. 이 교향곡 제3악장의 아름답고 깊은 한숨과도 같은 멜로디가 영화 내내 갈 곳을 잃은 주인공들의 사랑을 시름시름 앓아 속병 걸리겠다. 이 악장의 주제는 실의에 빠진 필립이 들러 위스키를 마시는 재즈 바의 흑인 여가수(다이앤 캐롤)에 의해 노래로 불려지는데 동경과 체념이 잠긴 멜로디가 풍성한 하모니에 싸여 “라라라, 라라라” 하면서 만보를 하니 우울하다.
특히 제3악장은 시작한지 조금 있다 혼이 연주하는 주제의 첫 소절이 아름답다. 이 날 지휘는 제임스 개피간이 했는데 음악을 리드한다기보다 끌려가는 듯했다. 그의 지휘는 브람스에 어울리지가 않았다.
영화 때문에 세간에 잘 알려진 또 다른 클래시컬 뮤직은 두 중년 기혼 남녀의 못 이룰 사랑을 그린 ‘짧은 만남’(Brief Encounter)에 사용된 로맨틱하고 서러운 라흐마니노프의 피아노협주곡 제2번이다(‘위크엔드’판 ‘엔터테인먼트’면 참조).
라흐마니노프의 음악은 감상적일 정도로 로맨틱해 로맨스 영화에 잘 쓰여졌다. 작고한 ‘수퍼맨’ 크리스토퍼 리브와 제인 시모어가 나온 시공을 초월한 상사병의 극치영화 ‘시간 너머 어느 곳에’(Somewhere in Time)서는 그의 ‘파가니니 주제에 의한 라프소디’가 나오면서 애간장을 태운다.
음악이 영화 때문에 영화제목의 별명이 붙여진 것이 모차르트의 피아노협주곡 제21번. 스웨덴의 줄 타는 여자와 유부남 장교의 비극적 사랑의 실화를 그린 ‘엘비라 마디간’(Elvira Madigan)에서 이 협주곡의 안단테가 달콤하니 흘러 이 곡에 ‘엘비라 마디간’ 협주곡이라는 별명이 붙었다.
말러의 음악도 영화에 종종 쓰여진다. 그 중에서도 유명한 것이 토마스 만의 소설이 원작인 ‘베니스에서의 죽음’(Death in Venice). 말러의 교향곡 제5번의 곱기도 한 아다지에토가 영화 전편을 통해 흐르면서 작가 아센바하(더크 보가드)의 미에 대한 동경을 호소한다.
두 슈트라우스의 음악이 절묘하게 이어지는 영화가 스탠리 큐브릭의 ‘2001: 스페이스 오디세이’(2001: Space Odyssey)다. 영화 처음에 우리의 조상인 원숭이가 무기로 삼은 동물의 뼈를 포효와 함께 공중 높이 내던지면서 리햐르트 슈트라우스의 교향시 ‘자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가 나오고 이어 이 뼈가 우주를 슬로모션으로 비행하는 우주선으로 모양을 바꾸면서 요한 슈트라우스의 ‘푸른 다뉴브’가 월츠를 춘다. 큐브릭은 영화에 클래시컬 뮤직을 많이 썼는데 ‘클라크워크 오렌지’(Colckwork Orange)에서는 인류애를 찬양한 베토벤의 교향곡 제9번의 ‘환희의 송가’를 살인과 파괴를 즐기는 알렉스(말콤 맥도웰)의 폭력성 치료제로 쓴다.
바그너의 음악도 영화에 종종 이용되는데 그 중에서도 가장 잘 알려진 것은 코폴라의 ‘지옥의 묵시록’(Apocalypse Now)에 나오는 ‘발키리의 기행’. “나는 아침의 네이팜 냄새를 좋아한다”는 미군 중령 킬고어(로버트 두발)가 베트콩을 살육하기 위해 공격용 헬기를 타고 날면서 천지가 진동하도록 틀어대는 것이 바그너의 ‘링’사이클 중 ‘발키리’에 나오는 이 음악이다. 바그너의 오페라 ‘트리스탄과 이졸데’의 전주곡은 ‘멜랑콜리아’에 나온다.  
이 밖에도 바흐의 ‘오르간을 위한 판타지와 퓨그 인 G’는 영화 ‘페드라’, 거쉬인의 ‘라프소디 인 블루’는 ‘맨해턴’, 바버의 ‘현을 위한 아다지오’는 ‘플래툰’ 그리고 마스카니의 오페라 ‘카발레리아 루스티카나’의 간주곡은 ‘성난 황소’에서 효과적으로 쓰여졌다.      
                                                              <한국일보 박흥진 편집위원/ hjpark1230@gmail.com>     

            

2016년 4월 12일 화요일

루마니아 체조요정 나디아 코마네치




“고된 훈련 불평한 적 없어… 자기 일에 정열 있어야”


1976년 몬트리올 올림픽 체조경기 7번 10점 만점
아들 하루하루 돌보는 일, 내 인생의 금메달 꿈


14세 때 1976년 몬트리올 올림픽 체조경기에서 7차례나 10점 만점을 받으면서 금메달 3개와 은메달 1개 그리고 동메달 1개를 탄 루마니아의 체조요정 나디아 코마네치(54)와의 인터뷰가 지난달 15일 베벌리힐스의 포시즌스 호텔에서 있었다. ‘나디아’로 불리며 전 세계적으로 사랑을 받은 코마네치는 이어 1980년 모스크바 올림픽에서도 2개의 금메달과 2개의 은메달을 땄다. 코마네치는 지난 1996년 미국 올림픽 체조챔피언 바트 카너와 결혼, 9세난 아들을 두고 있다. 두 사람은 현재 오클라호마에서 살면서 바트 카너 체조아카데미를 경영하고 있으며 체조잡지 발행과 함께 TV 제작사 및 체조용구 공급사를 운영하고 있다. 단발에 나이답지 않게 젊어 보이는 코마네치는 처음에는 다소 굳은 표정을 지었으나 시간이 가면서 긴장이 풀렸는지 액센트 있는 영어로 더러 유머도 섞어가면서 침착하고 진지하게 질문에 대답했다. 홍조를 띨 때는 예쁜 소녀 같았다. 코마네치는 인터뷰 후 하이힐을 신은 채 물구나무를 서면서 자신의 건재를 과시했다.

-선수 때 고도의 힘든 훈련을 받았을 텐데 무슨 후유증이라도 있는가.
“없다. 난 훈련을 잘 견디어낸 편이다. 난 6세반 때부터 체조를 시작했다. 그리고 1984년에 은퇴했다. 몸 여기저기에 약간의 통증이 있고 발목을 삐기도 했지만 큰 부상은 없었다. 내 몸을 잘 조절했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요즘 운동선수들은 약물복용으로 문제가 많은데 그것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는가.
“법을 어기면 책임을 져야 한다. 난 어렸을 때 무작위로 여러 가지 약물 테스트를 받았지만 그 땐 너무 어려서 약물이 무엇인지도 몰랐다.”

-힘든 훈련을 받으면서 트레이너를 증오하기라도 했는가.
“아니다. 난 한 번도 고된 훈련에 불평한 적이 없다. 성공하려면 불편하나 아침 5시에 일어나 고된 훈련을 감수해야 한다. 그리고 자기가 하는 일에 정열이 있어야 한다. 난 사실 어떤 땐 충분히 연습하지 못했다고 생각할 때가 많았다. 더 잘할 수 있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루마니아의 독재자 차우세스쿠의 이름을 들으면 어떤 생각이 나는가.
“그는 내가 자랄 때 우리 나라의 대통령이었다. 정부는 스포츠를 적극적으로 후원했다. 따라서 내 승리도 가능했던 것이다. 내가 조국을 떠난 것은 무언가 내 인생에 있어 더 많은 일을 하고 싶었기 때문이다. 난 지금도 매년 대여섯 차례 루마니아에 간다. 가족도 있고 또 재단도 있기 때문이다. 

-무슨 재단인가.
“스포츠를 할 능력이 있는데도 사정이 허락지 않아 못하는 아이들을 돕는 일이다. 그 일에 행복감을 느낀다.” 

-지금의 당신에게 10점 만점은 무엇인가.
“그것은 나의 스포츠와 나의 조국과 연결된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것은 내 인생을 바꾼 것이다. 난 14세 때 그것을 몰랐다. 내가 경기장에 나섰을 때 난 역사를 만들기 위해 경기에 임한 것이라고 생각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10점을 기대하지도 않았다. 그로 인해 지금까지도 내겐 많은 기회가 주어지고 있다.” 
14세의 나디아 코마네치가 몬트리올 올림픽 경기에서 체조 묘기를 보이고 있다.

-당신의 루마니아에서의 결혼식은 하나의 국가적 행사처럼 화려했는데 그에 대해 말해 달라.
“매우 감동적이었다. 내 나라와 함께 내 삶의 한 순간을 나누고 싶어 조국에서 결혼했다. 정부가 내 결혼식 날을 공휴일로 선포해 많은 사람들이 직장에 안 가고 날 축하해 주었다. 내 결혼은 10점 만점이라고 생각한다.”

-당신에 관한 기록영화를 케이트 홈즈가 만들었는데 그 과정에 대해 말해 달라.
“어느 날 홈즈(탐 크루즈의 전처)가 내게 전화를 걸어와 나에 관한 30분짜리 기록영화를 만들겠다고 제안했다. 난 할리웃 사람이 나에 관한 영화를 만든다는 것이 신기해 응낙했다. 그래서 홈즈가 오클라호마에 와 사흘간 찍었는데 우린 그 때 즐거운 시간을 함께 보냈다. 영화 제목은 ‘영원한 공주’로 홈즈가 선정했는데 좋은 영화라고 본다.     

-왜 오클라호마에서 사는가.
“내 남편은 젊었을 때 시카고에서 오클라호마의 코치에게 체조를 사사하려고 갔다. 그도 1976년 게임에 출전했는데 1984년 게임에서 2개의 금메달을 땄다. 그리고는 오클라호마의 대학촌인 노만에 정착했다. 남편은 은퇴 후 자신의 코치와 함께 체조아카데미를 설립해 운영하고 있다. 그래서 나도 거기 살게 된 것이다. 우린 LA 인근 베니스비치에도 집이 있지만 그것은 휴가용이다.”

-체조 외에 당신 인생에 있어 금메달 꿈은 무엇인가.
“아들의 하루하루를 돌보는 것이다. 아들은 지금 여러 가지 스포츠를 하고 있다. 우린 아들이 네 살 때까지 우리의 얘기를 안 해줬는데 어느 날 아들이 유치원에 갔다 오더니 ”엄마, 아빠 둘이 다 유명한 줄 아세요“라고 물었다. 그리고나서 아들은 체조를 시작했다. 아들은 그밖에도 축구와 테니스도 즐긴다.”

-당신에게 승리란 무엇을 뜻하는가.
“난 매우 경쟁적이긴 하나 이기기 위해서 일을 하진 않았다. 내 첫 승리는 5세 때 유치원의 세발자전거 경주에서였다. 그 때부터 남보다 잘 하겠다는 야심이 있었던 것 같다. 승리란 매일 누군가에 의해 격려를 받고 목적을 이루는 것이다. 나는 내 가족과 팀메이트들로부터 고무를 받는다.”

-어떻게 해서 체조를 시작했는가.
“6세 때 난 에너지가 넘쳐흘러 끊임없이 뛰고 움직였는데 내 어머니가 그런 나의 에너지를 발산하라고 체육관엘 데려갔다. 체조선수가 되라는 것이 아니라 트램폴린 위에서 실컷 뛰면서 집안의 가구를 부수지 말라는 뜻에서였다. 그 때 코치가 후에도 날 지도했다.”

-아들에게서도 당신의 재질을 보는가.
“그렇다. 또 아들은 나 같이 고집불통이고 경쟁심이 강하다.”

-선수 때 식사조절은 어떻게 했는가.
“영양사가 있어 고기와 샐러드와 과일을 기본으로 한 식단을 마련해 주었다.”

-아직도 그런 식으로 먹는가.
“그렇다. 그리고 난 매일 30분씩 운동을 한다. 15분간 달리고 역기를 들고 몸을 푼다. 몸에 맞게 하지 무리하진 않는다.”

-어렸을 때부터 체조선수가 당신의 평생의 직업이 될 것이라고 생각했는가.
“내가 좋아 체조를 했는데 한 때는 어른이 되면 외과의사가 될 생각이 있었다.”

-남편과 어떻게 만났는가.
“우리 둘이 다 1976년 3월28일 뉴욕의 매디슨 스퀘어가든에서 열린 아메리칸컵 대회에 나갔을 때 만났다. 난 14세 바트는 18세로 우리 둘이 다 승리했다. 그리고 우리 둘이 상을 받으러 단에 올라갔을 때 바트가 내 볼에 키스를 했는데 그것은 뉴욕타임스의 기자가 시켜서 한 일이다. 그 때 찍은 사진은 그 후 유명해졌다. 그리고 나와 바트는 모두 몬트리올 올림픽에 출전했다. 그러나 그 때까지 그와의 만남은 순전히 체조경기를 통해서였다. 그로부터 수년 후 내가 루마니아를 떠나 미국에 왔을 때 한 TV쇼에 나갔는데 그 때 바트가 게스트로 출연했다. 그것이 우리 결합의 결정적 계기가 된 것 같다.”

-메달들은 어디에 보관하고 있는가.
“올림픽과 세계대회의 메달들은 오클라호마에 있고 그 밖의 메달들은 루마니아에 있다.”

-팬들이 당신을 만났을 때 어떤 반응을 보이는가.
“대부분 운다.”
                                             <한국일보 박흥진 편집위원/ hjpark1230@gmail.com>

파괴(Demolition)


데이비스가 정장을 한 채 도구로 주택을 파괴하고 있다.

부인을 잃은 상실감 어떻게 치유하는지에 관한 영화


교통사고로 부인을 잃은 남자가 슬픔과 상실감을 달래기 위해 마음에 안 드는 것을 닥치는 대로 때려 부수는 별난 영화로 부분이 전체보다 낫지만 희한한 흥미를 유발시키는 에너지 가득한 작품이다. ‘딜라스 바이어즈 클럽’과 ‘와일드’를 감독한 캐나다 퀘백 출신의 장-마크 발레가 연출하고 최근 잇달아 영육을 크게 소모시키는 영화에 나온 제이크 질렌할이 주연하는데 보편적인 영화는 아니다.
그러나 질렌할의 전력투구의 연기와 함께 매우 기이한 방법으로 상심과 생존과 치유의 문제를 해결하려 드는 주인공의 소란하고 파괴적이나 결국은 공허한 행동에 눈이 간다. 매우 특이한 영화로 묻지 마식의 파괴에서 혐오감보다 오히려 활력이 솟아나는 블랙 코미디다.        
잘 나가는 젊은 투자전문가 데이비스(질렌할)가 교통사고로 아내 줄리아(헤더 린드)를 잃고 정신이 나간 채 병원의 벤딩머신에서 M&M을 사려고 돈을 기계 속에 넣었으나 기계는 돈만 먹고 M&M은 안 준다. 영화는 이렇게 시작한다.  
집에 돌아온 데이비스는 책상 앞에 단정히 앉아 벤딩머신사에 자신의 불상사와 함께 기계문제를 편지로 쓴다. 그는 편지를 잇달아 써 보내면서 이와 함께 장인(크리스 쿠퍼)의 “네 삶을 조각조각 뜯어낸 뒤 재조립하라”는 조언을 듣고 문자 그대로 뜯어내는 작업에 들어간다. 집의 연장통에서 도구를 꺼낸 뒤 먼저 새는 냉장고부터 분해한다. 이어 회사에 가서 삐걱대는 변소 문을 뜯어내고 툭하면 얼어붙는 컴퓨터도 박살낸다.
파괴증세는 갈수록 심해지면서 데이비스는 집의 고급가구를 비롯해 벽까지 뜯어내면서 상실과 아픔과 공허를 해소하는데 이런 파괴행위는 데이비스의 잔인하도록 솔직한 성질에 아주 잘 어울린다. 그런데 데이비스의 이런 파괴행위 뒤에는 그가 아내를 사랑하지 않았다는 죄책감이 도사리고 있다.    
한편 데이비스는 자기 편지를 접수한 벤딩머신사의 여직원 캐런(네이오미 와츠가 덜 쓰여졌다)과의 전화통화에 이어 직접 만나면서 둘이 관계를 맺는다. 캐런은 12세난 괴팍하고 조숙한 아들 크리스(신인 주다 루이스가 뛰어난 연기를 한다)를 둔 외로운 여자. 두 고독한 사람끼리여서 관계가 급속히 진전한다. 그러나 캐런을 알고도 데이비스의 파괴행위는 계속되는데 그는 심지어 주택철거 현장에 가서 신사복을 입은 채 무료로 철거작업을 돕는다. 그리고 데이비스의 최신 고급주택은 완전히 넝마가 되어버린다.    
데이비스와 캐런의 관계보다 더 마음에 다가오는 것이 데이비스와 그의 파괴행위의 단짝이 된 크리스와의 관계인데 둘이 나누는 동성애에 관한 대화와 방탄조끼와 실탄실험 장면이 고약하게 우스우면서도 가슴을 찡하게 울린다. 한 남자의 자기 구제와 정화의 건설과정을 파괴로 이룩한 역설적인 내용으로 끝을 전체적인 톤과 달리 미국식으로 말끔히 맺은 것이 마음에 안 든다. R. Fox Searchlight. 전지역. ★★★(5개 만점)
                                                            <한국일보 박흥진 편집위원/ hjpark1230@gmail.com>


보스(The Boss)


미셸이 은밀한 부분에 향료를 뿌리고 있다.


벤 팰콘 감독과 멜리사 맥카시 부부 최악의 작품


추잡하고 음탕하고 시끄러운 넌센스 코미디로 저질의 바닥끝까지 갔는데 얼마 전에 나와 흥행서 참패한 사샤 배론 코엔의 저질 코미디 ‘그림스비 형제’를 연상케 만든다. ‘보스’는 ‘브라이즈메이즈’와 ‘스파이’ 등 재미있고 우스운 코미디를 만든 부부 콤비 벤 팰콘 감독과 뚱보 코미디언 멜리사 맥카시의 영화인데 이번에는 큰 실수를 했다. 그들의 오발탄으로는 ‘태미’와 ‘신원 도둑’ 등이 있다. 
일종의 스쿠리지의 개과천선의 상냥한 얘기에 음탕하고 폭력적인 요소를 가미했는데 이것이 조화가 잘 안 돼 서로 겉돌고 있다. 그리고 내용도 진부하기 짝이 없는데다가 F자 상소리가 난무하면서 진짜로 냄새나는 음탕한 장면들이 있어 역겹기 짝이 없다. 최근 잇달아 나온 올 해 최악의 영화들 중에 들 만한 ‘배트맨 대 수퍼맨: 정의의 새벽’과 ‘그림스비 형제’ 및 ‘마이 빅 팻 그릭 웨딩 2’의 대열에 동참할 영화다.
새빨간 가발에 야한 의상을 입은 백만장자 미셸 다넬(맥카시-도널드 트럼프의 여성판이다)은 내부자 거래로 영창을 살고 알거지가 되다시피 해 출소한다. 여기서부터 미셸은 과거의 부와 영광을 되찾기 위한 작전을 짠다. 
왕년의 자기 부하 클레어(크리스튼 벨)와 고교생인 클레어의 딸 레이철(엘라 앤더슨)을 중심으로 여자들로만 된 제과사를 만들어 브라우니를 제조해 팔기 시작하는데 그것이 빅히트를 한다. 터무니없는 플롯이다. 
얘기를 억지로 만들자고 미셸의 성공에 맞서는 사람들이 있으니 그 하나는 레이철의 라이벌 급우의 어머니 헬렌(애니 무몰로)이요 다른 하나는 미셸의 왕년의 연인 르노(피터 딩클리지가 정말로 서커스의 광대 같다). 이런 서툰 얘기들이(각본도 부부가 같이 썼다) 도대체 어떻게 해서 영화로 만들어질 수가 있는지 불가사의할 뿐이다.
그야 말로 꼴불견은 미셸이 욕조에서 뚱뚱한 한쪽 다리를 들어 올린 채 은밀한 곳에 향료를 살포하는 장면. 그리고 느닷없이 미셀의 부대와 헬렌의 부대가 백주에 슬로모션까지 동원해 가면서 거리에서 육박전을 벌이는 장면과 사무라이 칼을 든 르노와 미셸의 격투장면 등 내용과 별 상관도 없는 엉뚱한 장면들이 눈에 거슬린다. 연기도 언급할 것이 없는 지상 최대의 흉물 중 하나다. R. Universal. 전지역. ★½(5개 만점)
                                                             <한국일보 박흥진 편집위원/ hjpark1230@gmail.com>


대그우드의 존댓말




부부님 여러분들은 서로 존댓말을 합니까? 또는 반말을 합니까? 아니면 남편은 반말을 하고 아내는 존댓말을 합니까? 우리 부부는 서로 반말을 하는데 내가 이런 질문을 하는 이유는 얼마 전까지만 해도 남편은 반말을 하고 아내는 존댓말을 쓰던 대그우드와 블론디의 말투가 달라졌기 때문이다. 느닷없이 대그우드가 낮에는 물론이요 잠자리에서 까지 블론디에게 존댓말을 쓰는 것으로 번역을 하는데 듣기에 매우 어색하다.
가끔 아내가 보는 한국 연속극을 곁눈질로 봐도 남편이 아내에게 존댓말을 하는 것을 본 경우는 거의 없다. 그래서 아내에게 대그우드의 블론디에 대한 존댓말을 어떻게 생각하느냐고 물어봤더니 “반말을 할 때가 더 다정한 것 같다”고 대답한다.
1930년 칙 영이 그리기 시작(지금은 칙의 아들 딘)한 이래 지금까지 전 세계 팬들의 사랑을 받으면서 한국일보에도 연재되고 있는 만화 ‘블론디’(Blondie)의 부부 대그우드와 블론디는 올해로 결혼 83년. 그런데도 대그우드는 지금도 출근과 귀가 때면 블론디를 꼭 끌어안고 “쪽” 소리가 나도록 키스를 하는 잉꼬부부다(사진).
둘은 지금은 매우 평화롭게 살고 있지만 그들의 결혼과정은 순탄치가 않았다. 블론디는 처녀시절 골드디거(돈 많은 남자 노리는 여자) ‘후라빠’(flapper)여서 백만장자 집 아들 대그우드가 블론디와 결혼하겠다고 하자 그의 아버지가 이를 결사반대 했었다.
이에 대그우드는 단식투쟁에 들어가 투쟁 28일 만에 아버지의 결혼 승낙을 받았으나 아버지는 대그우드를 유산상속에서 빼버렸다. 그래서 대그우드는 성질이 고약해(사실 마음은 착하다) 자기 사원들을 구타하는 디더스 사장의 건설회사에 월급쟁이로 들어가게 된 것이다.
실수 연발의 대그우드는 보통 사람 중의 보통 사람으로 잠보요 먹보요 게으름뱅이다. 툭하면 사무실 책상에 엎드려 졸고 있으니 디더스에게 얻어터지는 것이 당연한데 그러고도 해고를 안 당하는 것이 기적이다. 그런데 디더스의 부하 직원 구타는 어쩌면 공처가인 그가 아내 코라에게 우산으로 얻어맞는 것에 대한 엉뚱한 화풀이인지도 모른다.
대그우드가 블론디 다음으로 사랑하는 것이 아마도 샌드위치일 것이다. 수시로 배가 고픈 대그우드는 자다가도 허기가 지면 부엌으로 내려가 냉장고에 있는 먹다 남은 미트로프와 햄과 야채 등을 꺼내 몇 층짜리 샌드위치를 만들어 입을 크게 벌리고 먹는데 이 잡탕 샌드위치를  일컬어 ‘대그우드 샌드위치’라 부른다. 대그우드는 또 가끔 냉장고에 있는 닭다리도 꺼내 먹는데 나도 그로 인해 닭다리 밤참 버릇이 붙었다. 대그우드는 그렇게 먹어대는 데도 살이 안 찌니 알다가도 모를 일.
대그우드는 철이 덜난 어른 아이 같은데 그런 면에서 자주 대그우드 집에 들러 카우치에서 새우잠 자는 대그우드를 깨워 같이 놀자는 이웃집 꼬마 엘모가 더 어른 같다. 대그우드 하면 못 잊을 사람이 우체부 비즐리. 대그우드는 아침에 “5분만 더”하고 게으름을 피우다가 출근시간에 늦었다며 상의를 입으면서 문을 열고 쏜살 같이 뛰어나가는데 이 순간 집 앞에서 우편물을 배달하던 비즐리와 충돌사고를 내곤 한다. 오죽하면 비즐리가 대그우드 집에 올 때 헬멧을 썼을까.  
만년 아이 같은 대그우드의 가정을 받쳐주는 기둥 구실을 하는 사람은 사실 블론디다. 블론디는 예쁘고 지혜롭고 명랑할 뿐 아니라 건전하고 실제적인 생활인이다. 그래서 가계를 돕는다고 수년 전에 케이터링업을 시작해 대그우드는 먹을 복이 터졌다. 그리고 커브가 진 몸매에 컬을 한 금발의 블론디는 늘 짧은 치마에 하이힐을 신고 있어 섹시한데 블론디야말로 모든 남자가 바라는 섹시한 가정주부의 표본이다.
이젠 내 이웃 같이 친해진 대그우드와 블론디는 틴에이저가 된 두 남매 알렉산더와 쿠키 그리고 대그우드처럼 잠이 많은 애견 데이지와 함께 잘 살고 있다. 모범 부부요 가정이다.
나는 ‘블론디’와 아주 가까운 사연이 있다. 내가 1974년 서울의 한국일보에 입사, 처음에 외신부에서 근무했는데 그 때 조순환 외신부장(작고)이 종종 내게 신문에 연재하던 ‘블론디’의 번역을 시키곤 했다. 만화 번역은 기사와 달라 미국 서민들의 생활용어와 유머를 알아야 하고 또 말하는 식으로 자연스럽게 번역해야 해 쉬운 일이 아니었다. 그래서 나는 자주 만화를 들고 자매지인 영자지 코리아타임스의 미국인에게 찾아가 도움을 청하곤 했다.
그 때 물론 대그우드는 블론디에게 반말을 하고 블론디는 남편에게 존댓말을 했었다. 이 때문인지 구시대의 유물인 나는 요즘의 대그우드의 블론디에 대한 존댓말이 영 귀에 거슬린다. 이 것이 시쳇말로 ‘폴리티칼리 코렉트’ 때문인가. 그렇다면 영어로 말해 ‘기브 미 어 브레이크’다.
                                                             <한국일보 박흥진 편집위원/ hjpark1230@gmail.com>


2016년 4월 1일 금요일

마일스 어헤드(Miles Ahead)


마일스 데이비스(단 치들)가 트럼핏을 불고 있다.


전설적 재즈 음악가 마일스 데이비스의 전기영화


즉흥적인 연주로 재즈에 혁신을 일으킨 전설적인 재즈 음악가 마일스 데이비스(1926~1991)의 삶을 허구를 섞어 그의 음악처럼 즉흥적이요 자유롭게 묘사한 에너지 충만하고 흥겨운 전기영화다. 변덕이 심하고 종잡을 수 없으며 고질인 둔부의 통증과 약물과 술과 담배에 절어 살았던 마일스의 삶이 현재와 과거를 쏜살같이 오락가락 하면서 서술되는데 어둠과 고통 그리고 상실과 회한이 가득한 내용인데도 전체적으로 긍정적이요 정신을 고양시키는 기운을 지녔다. 무엇보다 재미있다.
경하할 만한 것은 영화를 감독하고 제작하고 각본을 쓰고 또 주연까지 한 단 치들의 열정과 정성. 그는 마일스라는 인물과 그의 음악을 깊이 존경하면서 경배하듯이 작품을 만들었는데 뛰어난 연기와 함께 그의 열의가 가슴에 전달된다. 마일스 데이비스는 파리에서 연주할 때 프랑스의 명장 루이 말르의 초청을 받고 말르의 데뷔작인 분위기 멋있는 필름느와르 ‘사형대의 엘리베이터’(Elevator to the Gallows·1958)의 음악을 즉흥적으로 작곡했다.
영화는 마일스가 1970년대 후반 5년간 뉴욕의 아파트에서 칩거생활을 하다가 컴백을 하면서 이를 취재하는 자칭 롤링스톤지의 기자 데이브 브래든(이완 맥그레거-데이브는 허구의 인물)과의 대화 장면으로 시작된다. 여기서 마일스는 재즈를 ‘소셜 뮤직’이라고 일컫는다. 얘기는 과거와 현재를 고속으로 왕복하는데 작품의 구조가 마치 마일스의 음악처럼 자유분방하다.
플롯의 골자는 마일스가 발표하지 않은 즉흥연주 테입. 이것을 탐욕적인 레코드 제작자 하퍼(마이클 스툴바그)와 그의 졸개가 훔치자 마일스와 데이브가 이를 회수하려고 하퍼를 찾아가면서 자동차 추격과 총격이 일어나는데 이런 액션은 빌려온 얘기처럼 엉뚱하다  
마일스의 과거가 회상되면서 그의 신체적 고통과 약물복용 그리고 음악세계가 묘사되는데 특히 마일스와 그의 아내이자 뮤즈였던 댄서 출신의 프랜시스 테일러(에메이야치 코린딜디)와의 애정과 갈등이 중첩된 삶이 중점적으로 다뤄진다. 프랜시스는 자기 직업까지 포기해 가면서 마일스의 곁을 지키나 마일스의 약물복용과 폭력과 부정 그리고 소유욕 때문에 결국 남편을 떠난다. 
데이브 외에 또 다른 허구의 인물은 재능 있는 트럼피터인 젊은 주니어(라키스 리 스탠필드). 주니어는 젊었을 때의 마일스를 대변하고 있다.  ‘스페인 스케치’ 등 마일스의 음악이 많이 사용되는데 마지막에 허비 핸콕과 웨인 쇼터 등 영화에 협조한 재즈음악가들의 연주 모습이 나온다. 극적으로 얘기가 다소 약하긴 하나 활기 넘치는데 술과 담배에 절어 쇳소리를 내는 음성과 함께 볶은 헤어스타일을 하고  마일스의 모습을 재연한 치들의 연기에서 불꽃이 튄다. R. Sony Classics. ★★★½(5개 만점) 
                                                               <한국일보 박흥진 편집위원/ hjpark1230@gmail.com>       

녹색의 방(Green Room)


다시(패트릭 스튜어트·가운데)와 그의 네오 나치졸개들.

펑크록 밴드의 폭력적인 생존투쟁 드라마


피가 튀고 살이 찢겨지는 잔인하고 폭력적인 펑크록 밴드의 생존투쟁 드라마로 액션과 서스펜스 그리고 충격을 잘 배합한 영화이나 너무 폭력이 끔찍해 모두가 즐길 것은 못 된다. 그러나 이런 찌르고 쏘고 자르고 베는 영화치곤 연기도 좋고 연출도 손색이 없다. 시종일관 긴장감과 함께 신경을 곤두세우게 만든다.
살인집단에 의해 막다른 골목에 몰린 젊은이들의 얘기는 한 두 번 본 것은 아니지만 그런 기시감 있는 내용은 감독 제레미 솔리에의 교활할 정도로 기민한 작품 구성과 서술 방식에 의해 거의 새롭게 느껴질 정도다. 특히 영화에는 영국의 베테런 연기자 패트릭 스튜어트가 악인으로 나와 이색적인 흥미를 제공한다.
버지니아 알링턴이 고향인 남녀 4인조 펑크록 밴드 ‘에인트 라이츠’의 멤버는 이상적인 베이스 주자 팻(안톤 옐친)과 성질 사나운 드러머 리스(조 코울) 그리고 여자 기타리스트 샘(알리아 셔캣) 및 리드싱어 타이거(캘럼 터너). 이들은 전국을 돌면서 후진 바에서 연주하며 푼돈을 버는데 돈도 떨어지고 장래도 별 볼일 없게 되자 고향으로 돌아가기로 한다.
이 때 이들의 연주장소를 알선하는 저널리스트 태드의 주선으로 밴드는 오리건 숲 속에 있는 허술한 창고 같은 무대에 서게 된다. 청중은 머리를 박박 깎고 몸에 나치문장을 한 백인우월주의자들. 밴드는 연주를 끝내고 짐을 싸는데 멤버 중 하나가 대기실인 ‘그린 룸’에 두고 온 셀폰을 찾으러 갔다가 한 여자가 살해된 것을 목격한다. 
그리고 살인사건의 목격자들이 된 멤버들은 ‘그린 룸’을 안에서 걸어 잠근 채 경찰이 오기를 기다린다. 4명 외에 방에 있는 사람들은 죽은 여자의 친구 앰버(이모젠 푸츠)와 멤버들이 제압한 덩지 큰 네오나치 한 명. 무대 매니저 게이브(메이콘 블레어)는 멤버들에게 “나오면 아무 탈 없이 돌아가게 해 주겠다”고 어르나 이들은 나갔다가는 죽을 것이 뻔해 문을 안 연다.
여기서부터 이들을 이 장소의 주인인 다시(스튜어트)와 그의 졸개들이 멤버들을 처치하기 위해 맹견과 온갖 무기를 동원해 공격을 시도하고 멤버들은 탈출하기 위해 나름대로 이에 응하면서 유혈폭력이 일어난다. 정글용 큰 칼과 개의 이빨과 칼과 총 등이 사용되면서 쌍방에 피해자가 속출한다. 끔찍해 못 보겠다. 펑크록이 요란하게 폭력을 반주한다. 액션 팬들이 좋아하겠다. R. A24. ★★★(5개 만점)            <한국일보 박흥진 편집위원/ hjpark1230@gmail.com>



모니카 필름센터




LA의 양질 영화의 요새라 불리는 렘리극장 체인의 하나였던 모니카 4-플렉스가 지난 2년간의 개보수공사 끝에 최근 6개의 극장과 비어와 와인 바를 갖춘 모니카 필름센터(1332 2nd St. ^사진)로 새 모습을 드러냈다. 품질 좋은 독립영화와 기록영화 및 외국어영화들 상영하면서 지난 44년간 샌타모니카 예술현장의 전당 구실을 해온 모니카 4-플렉스가 이번에 안팎을 새롭게 단장, 명실 공히 아트 하우스 시네마의 본산지로 재탄생한 것이다. 모니카 필름센터는 오는 연말에는 1층과 지붕 위에 식당도 마련해 영화 애호가들의 종합 휴식처로 만들 예정이다.
웨스트LA의 로열극장이 본부인 렘리체인은 현 체인의 주인인 그레고리 렘리가 엄선한 예술성이 강한 영화들을 상영하고 있는데 쾌적한 이웃 극장이자 아울러 최신 멀티플렉스 못지않은 고급 시설을 갖춘 LA의 유일한 아트 하우스 시네마다.
렘리극장의 창설자는 그레고리의 조부인 맥스 렘리. 독일 슈투트가르트에서 성장한 맥스의 아저씨는 ‘아저씨 칼’이라 불린 유니버설사의 창립자인 칼 렘리다. 맥스는 베를린과 파리의 유니버설 지사에서 영화배급과 극장 운영 등을 실무경험 한 뒤 2차 대전이 터지기 직전인 1938년에 LA로 이민, 곧 이어 렘리체인 설립에 들어갔다,
이 체인의 전진기지는 현재도 LA의 버몬트 길 북쪽에 있는 로스펠리즈 극장. 맥스는 영화가 끝날 때마다 관객들에게 영화에 대한 반응을 물어보곤 했다. 관객의 특성과 기호를 파악해 관객을 찾아다니며 관객층을 형성한다는 렘리체인의 기본 모토는 이 때부터 생겼다,
문화의 선봉자요 정열적인 예술가이자 또 뛰어난 사업가였던 맥스는 이런 방식으로 아트 하우스 관객 확보에 성공, 1950년대 미국을 휩쓴 TV의 인기에도 불구하고 주옥같은 외국어영화와 독립영화를 상영, 체인의 생명을 지켰다. 당시 렘리극장을 통해 미국에 선을 보인 외국인 감독들로는 쿠로사와 아키라, 자크 데미, 프랑솨 트뤼포, 아녜스 바르다 및 비토리오 데 시카 등이 있다.      
그동안 아버지 맥스 밑에서 수련한 로버트가 1960년대 들어 극장 운영에 합류했는데 당시 로스펠리즈에 있던 맥스의 집에서는 은퇴한 LA타임스의 영화평론가 케빈 토머스, 뉴요커지의 영화평론가 고 폴린 케이엘, 영화감독 프리츠 랭과 장 르놔르 등이 모여 매일 같이 영화와 예술토론을 벌였다고 한다.
1972년 렘리체인은 본부를 로열극장으로 옮겼고 1987년 로버트의 아들 그레고리가 체인 운영에 가담, 체인은 렘리 가문의 3대째가 운영하고 있는 가족극장이다. 이 극장은 특히 우수한 외국어영화 상영으로 블락버스터 위주의 할리웃 메이저 영화에 식상한 예술영화 팬들의 큰 사랑을 받고 있는데 나도 그 중 한 사람이다.
여기서 상영된 걸작 외국어영화들로는 ‘란’ ‘디바’ ‘시네마 파라디조’ ‘통곡과 속삭임’ ‘신이 미쳤나봐’ ‘광인들의 우리’ 및 ‘Z’ 등이 있는데 현재 로열극장에서 상영 중인 ‘산하고인’(Mountains May Depart)도 그 중 하나다.
나는 1990년대 중반 매주 목요일과 금요일 상오 10시에 로열극장에서 상영하는 영화를 구경하곤 했다. 렘리체인을 통해 상영하는 영화의 기자용 시사회로 모두 LA 영화비평가협회(LAFCA) 회원들인 케빈 토머스, 앤디 클라인, F/X 피니 및 내 ‘영화 대모’인 해리엣 로빈스 등 6~7명의 기자들과 함께 영화를 열심히 봤다.
그 이름조차 제대로 알지 못할 구 소련연방 소속국가들의 영화와 만든 지 반세기가 넘는 프랑스영화 및 극단적인 독립영화를 비롯해 온갖 희한한 실험영화 등을 봤다. 어떤 영화들은 너무 별나 아침부터 졸기도 했지만 대부분의 영화들이 LA에 살지 않으면 볼 수 없는 것들이어서 영화에 살고 영화에 죽는 나로선 큰 축복이었다. 내가 1990년대 후반 LAFCA 회원이 된 이유 중 하나도 나와 함께 영화를 본 LAFCA 회원들이 나의 영화에 대한 애정을 파악했기 때문이었다.
멀티플렉스가 곳곳에 들어서면서 LA의 예술영화 전용 독립극장은 전멸한 상태다. 한 때 영화계에서는 보수적인 사람들이 운영하는 가족극장인 렘리체인이 이들 멀티플렉스와의 경쟁에서 밀려날지도 모른다는 우려가 있었다. 그러나 렘리체인은 그 같은 경쟁을 물리치고 계속해 터전을 넓히고 있다. 2017년에는 글렌데일과 샌타클라리타에도 극장을 열 예정이다. 렘리체인은 로열과 모니카 필름센터 외에도 아리아 파인아츠와 뮤직홀 그리고 클레어몬트5와 플레이하우스7 및 타운센터5 등을 소유하고 있다. 렘리체인의 강한 생명력은 체인이 제공하는 예술성과 고전감각을 지닌 품위 있는 영화들을 사랑하는 팬들이 있기 때문이다.  

                                                              <한국일보 박흥진 편집위원/ hjpark1230@gmai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