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이야기

2016년 11월 15일 화요일

도착 (Arrival)


루이즈 박사가 외계인들과의 대화를 시도하고 있다.

외계인 정체와 언어를 파악하려고 애쓰는 언어학자


스필버그의 ‘제3 세계와의 조우’를 연상케 하는 엄숙하고 아름다운 외계인 지구 도착에 관한 공상과학 영화로 시간과 공간을 넘나들면서 얘기가 서술되고 내용이 무척 심각해 정신을 집중하고 봐야 한다. 쉬운 팝콘용 오락영화는 아니지만 마음을 비운 채 얘기에 함몰할 용의가 있다면 끝에 가서 정신적으로 희열감을 느낄 수 있는 작품이다. 
외계인의 정체와 언어를 파악하려고 애쓰는 언어학자를 통해 결국 우리 자신의 삶에 대한 문제를 묻고 있는 방대하고 심미적이자 숙연하고 철학적이며 또 거룩한 우화다. 캐나다 감독 드니 비앙뇌브(‘사카리오’)의 절제되고 대담 하면서도 정밀한 연출력이 뛰어난데 연기와 음향디자인과 음악 그리고 시각적 특수효과도 매우 훌륭하다. 
지구에 12개의 검은 회색의 거대한 콘택렌즈 모양의 우주선이 각기 다른 장소에 도착한다. 공중에 떠 있는 우주선이 잘 다듬은 자갈처럼 매끈하다. 이에 미군이 외계인들의 언어를 파악하기 위해 언어학자 루이즈 뱅스 박사(에이미 애담스)를 초청한다. 영화는 처음에 루이즈가 겪은 심각한 개인적 고통을 보여주면서 마치 수수께끼 풀듯이 이어진다.
영리하고 사실적이며 주도면밀한 루이즈는 이 때부터 거대한 머리와 7개의 다리를 가진 주름투성이의 외계인들이 내뱉는 신음소리와도 같은 언어를 이해하려고 필사적인 노력을 한다. 루이즈를 돕는 사람이 이론물리학자 이안 다넬리(제레미 레너).
외계인들의 글은 마치 먹물을 뿌려 쓴 것 같은 글자들이 원형을 이루고 있는데 루이즈가 이들의 뜻을 알아내려고 애를 쓰는 동안 우주선이 도착한 나라들에서는 나름대로 이에 대처할 방안을 강구하느라 난리법석들을 떤다. 중국은 우주선들을 공격할 태세를 취하고 미국도 그럴 생각이다.
시간이 촉박한 중에 루이즈와 이안은 오렌지색 우주복을 입고 우주선 입구로 다가가 우주인들과 대화를 나누려고 안간힘을 쓴다. 그리고 이안은 루이즈에게 자꾸 마음이 간다. 이 인간과 외계인의 조우 장면이 신비로울 정도로 아름답고 신성하다. 영화는 마치 윤회설처럼 커다란 원을 그리면서 맴을 도는데 감독이 너무 지고한 아이디어를 지녀 얘기가 때로 하늘에 닿아 있는 것 같은 것이 흠이라면 흠.
야무지고 똘똘하게 생긴 애담스가 탄탄한 연기로 초현실적인 것같은 얘기를 땅에 매어 잡아놓고 있다. 애담스는 무슨 역을 맡아도 다 잘 해내는 믿음직한 배우다. 보고 영적 의문과 흥분을 함께 경험토록 권한다. PG-13. Paramount. ★★★★ (5개 만점)
                                                              <한국일보 박흥진 편집위원/ hjpark1230@gmail.com>


빌리 린의 긴 해프타임 행진(Billy Lynn’s Long Halftime Walk)


달라스 카우보이즈 풋볼 스테디엄에서 전우들과 함께 선 빌리 린.

미국의 과도한 애국심·자본주의를 풍자한 영화


‘와호장룡’과 ‘브로크백 마운틴’을 만든 대만 태생의 앙리 감독의 야심작인데 결과가 미숙한 작품이 되고 말았다. 입체영화이자 초당 프레임 회전속도가 120프레임으로 찍어 극사실적 감을 시도했는데 기술이 인물들의 개발이나 내용을 앞서가는 우를 저지르고 있다.
화면이 지극히 맑고 세밀한 부분까지 정밀하게 보이긴 하지만 왜 극영화에 이런 기술을 도입했는지 의아할 뿐이다. 마치 앙리의 새 기술 실험용 영화 같아서 감정적으로 접근하기가 힘들 뿐 아니라 영화에 인간적 온기가 부족해 주인공을 비롯한 인물들과도 유대감을 가지게 되지 않는다. 
미국의 과도한 애국심을 풍자한 영화로 이와 함께 모든 것을 장사의 대상으로 여기는 미국의 자본주의 정신을 싸잡아 비판하고 있다. 
주인공은 19세의 텍사스 태생의 육군 졸병 빌리 린(영국인 신인배우 조 올윈). 빌리가 이라크전에서 혁혁한 무공을 세우면서 빌리는 자기 소속 브라보 분대원들과 함께 귀국해 전국순회 승전 투어에 참석한다. 육군이 마련한 이 전쟁고무 투어는 추수감사절 달라스 카우보이즈의 경기 중간 휴게시간에 스테디엄에 치어리더들과 데스트니즈 차일드가 동석한 가운데 끝나게 된다. 
한편 할리웃 제작자(크리스 터커)는 빌리의 무공을 영화로 만들 구상을 하면서 카우보이즈의 주인 노만(스티브 마틴)을 물주로 끌어들인다. 그리고 빌리는 치어리더 중 한 명(매켄지 리)과 짧은 로맨스를 나눈다.   
빌리가 전국을 돌고 달라스에 도착해 마지막 화려한 퍼레이드를 위해 준비를 하는 동안 회상으로 그의 용감한 투혼과 전우애 그리고 치열한 이라크 전투가 묘사된다. 여기서 빌리의 리더인 쉬룸 상사로 빈 디즐이 나온다. 그러나 새 기술로 찍은 이 전투장면은 여느 전쟁영화의 그것과 크게 다를 바가 없다. 
내용이 특별히 관심을 끌거나 재미가 있는 영화가 아닌데 그런 중에 가장 인간적인 것은 회상으로 그려지는 빌리와 빌리의 참전을 반대하는 그의 누나 캐스린(크리스튼 스튜어트)과의 관계와 대화. 올윈이 연기를 잘 하는데 특히 스튜어트가 감동적인 연기를 한다. 기술 때문에 인물들이 희생된 설익은 영화다. R. Sony. ★★★(5개 만점) 
                                                              <한국일보 박흥진 편집위원/ hjpark1230@gmail.com>


‘시카고, 마이 카인드 오브 타운’


‘윈디 시티’와 ‘세컨드 시티’라는 별명을 가진 시카고의 2016년은 시 역사상 가장 명예로운
해이자 아울러 최악의 불명예의 해로 기록될 것이다. 자랑스러운 일은 시카고 시민들의 극진한 사랑을 받고 있는 시카고 컵스가 108년 만에 월드시리즈 챔피언이 된 것.
이와 반대로 시카고는 2016년 사상 초유의 살인사건이 많이 발생한 무법도시라는 오명을 뒤집어쓰게 됐다. 지난 10월 말 현재로 시카고에서 일어난 살인사건은 총 614건으로 이는 지난 2003년 한 해 발생한 600건의 살인사건을 훌쩍 초과한 숫자다. 경찰에 의하면 올 살인사건의 특징은 갱 범죄라기보다 닥치는대로 식의 살인이라는 것. 이런 이유와 함께 경찰과 살인사건이 많이 발생하는 사우스와 웨스트사이드의 흑인 주민들 간의 불신의 폭이 넓혀지면서 사건해결이 어려움을 겪고 있다고 한다.
꼭 이래서 만이 아니라 시카고 하면 선뜻 범죄도시로 생각하게 되는 까닭은 금주령 시대 이 도시를 말아먹었던 악명 높은 갱 두목 알 카폰(사진) 때문이다. 카폰은 금주령을 이용해 밀주제조와 판매 그리고 마약과 매춘으로 돈을 번 무자비한 자로 얼굴 왼쪽에 난 칼자국 때문에 ‘스카페이스’라는 별명이 붙었다.
카폰과 시카고 하면 가장 유명한 사건이 ‘세인트 밸런타인스 데이 살육’이다. 1929년 세인트 밸런타인스 데이에 카폰의 졸개들이 라이벌 갱 7명을 살해한 사건으로 이 얘기는 토니 커티스와 잭 레몬 및 마릴린 몬로가 나온 코미디 ‘뜨거운 것이 좋아’에서도 묘사됐다.
카폰은 하도 유명해 여러 편의 영화의 주인공이 됐다. 먼저 금주령 시대인 1932년에 폴 뮤니가 카폰으로 나온 ‘스카페이스’가 치열하게 박진감 있고 로드 스타이거가 주연한 ‘알 카폰’(1959)도 흥미있다. 또 제이슨 로바즈가 나온 ‘세인트 밸런타인스 데이 매사커’(1967)도 야한 재미가 있다. 그러나 알 파치노가 나온 ‘스카페이스’는 카폰 얘기가 아닌 쿠바 난민 갱스터 스릴러다.    
비교적 최근 것으로 잘 만든 카폰 영화가 브라이언 드 팔마가 감독하고 로버트 드 니로가 카폰으로 나온 ‘언터처블즈’(1987). 엔니오 모리코네(‘황야의 무법자’ 음악)의 음악이 인상적인 영화에서 카폰을 잡으려고 혈안이 된 형사 엘리옷 네스로 케빈 코스너가 나오고 순찰경관으로 나온 션 코너리가 오스카 조연상을 탔다.
체중을 늘린 드 니로가 야구방망이로 자기 졸개를 때려죽이는 무시무시하고 변화무쌍한 연기를 한다. 제목은 실제 인물이었던 미 재무부 소속 금주령 위반 단속전담반 형사 네스와 그의 부하들을 일컫는 말로 ‘결코 부패하지 않는 사람들’을 뜻한다.
‘언터처블즈’의 활약은 로버트 스택이 네스로 나온 동명의 ABC-TV 시리즈로 잘 알려져 있는데 이 시리즈는 1959년부터 1963년까지 인기리에 방영됐었다. 나도 한국에 있을 때 주한 미군 TV방송 AFKN을 통해 이 프로를 즐겨 봤다.
그런데 카폰은 부패한 시카고 경찰들에게 뇌물을 먹여 한동안 태평성대를 누리다가 경찰이 아니라 국세청에 의해 세금포탈죄로 체포돼 유죄판결을 받고 샌프란시스코의 알카트라즈 감옥으로 거주지를 옮겼다. 금주령 시대 시카고의 이런 범죄와 부패와 타락상은 오스카 작품상을 탄 뮤지컬 ‘시카고’에서도 잘 그려진 바 있다.  
나도 시카고를 몇 번 방문한 적이 있는데 이 도시의 특징은 디자인과 생김새가 멋있는 건물이다. 다양한 건축양식의 전시장과도 같은 도시로 많은 건물들이 1871년에 발생, 시카고를 폐허로 만들어놓은 대화재 후에 지은 것들이다. 마천루들이 도시에 깊은 계곡을 이루면서 서 있는데 길을 걷노라면 건물들의 큰 품에 안기는 듯한 느낌을 갖게 된다.
그래서 시카고는 ‘배트맨’이 사는 중후하고 어두운 분위기의 고댐시티로 안성맞춤이다. 크리스천 베일이 ‘배트맨’으로 그리고 사망한 히스 레저가 조커로 나온 ‘다크 나잇’도 여기서 찍었다. 나는 지난 2007년 이 영화 촬영 취재차 시카고에 갔었는데 그 때 관광을 하면서 지나친 건물 중에 카폰의 ‘스피크이지’(밀주판매 술집)도 있었다. 또 6.25 때 G.I.들이 던져주던 리글리검을 만드는 리글리빌딩도 남 다른 감회로 구경했었다.
시카고 하면 또 다른 명물이 재즈다. 남부의 흑인들이 인종차별을 피해 북상해 시카고에 정착하면서 재즈도 번성하게 되었다. 곳곳에 재즈바가 있는데 나도 시카고에 갔을 때 ‘백룸’이라는 재즈바에 들러 스카치와 재즈에 취했던 기억이 난다.
시카고안들도 뉴요커들처럼 앤젤리노들 알기를 우습게 알긴 하지만 시카고는 매력적인 도시임에 분명하다. 그래서 시내트라도 “시카고는 나 같은 사람의 도시”라고 이 도시를 찬양했다. “시카고는 나 같은 사람의 도시지. 사람들도 마찬가지야/시카고를 걷노라면 시카고는 내 집이나 마찬가지지 그리고 시카고는 온통 재즈야/매번 내가 시카고를 떠나려면 시카고는 내 팔소매를 잡아당기지/시카고는 리글리빌딩이야. 시카고는 나 같은 사람의 도시지.”
                                                         <한국일보 박흥진 편집위원/ hjpark1230@gmai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