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이야기

2014년 2월 26일 수요일

앤 프랭크 사망 70주년 기념 `시끌'

실제의 앤 프랭크

 TV 미니시리즈 제작 계획에
“학살된 가족에 대한 불경”
 앤 프랭크 재단서 철회 요구
 극영화 두 편은 정상 제작

영화‘앤 프랭크의 일기’에서 앤 역을 맡은 밀리 퍼킨스.

2015년은 나치의 유대인 수용소에서 죽음을 맞은 앤 프랭크의 사망 70주년이 되는 해다. 이를 계기로 앤에 대한 관심이 새삼 고조되면서 앤의 유명한 일기를 바탕으로 한 앤의 삶을 다룰 3편의 영화와 TV 시리즈가 만들어질 예정이다. 2편은 극영화(라이브-액션 1편과 만화영화 1편)이고 나머지는 TV 미니 시리즈인데 제일 먼저 올 여름부터 제작에 들어갈 작품은 독일의 두 영화사 콘스탄틴 필름과 무비 그리고 공영TV 방송인 ZDF가 합작으로 만들 독일어 TV 미니 시리즈다.
그런데 이 같은 계획이 최근에 발표되자 앤의 일기와 앤의 가족의 문헌의 판권을 소유하고 있는 스위스의 앤 프랭크 펀드는 시리즈
계획을 당장에 철회하라고 강력히 요구하고 나섰다.
이유는 시리즈 제작이 앤 프랭크 펀드의 참여 없이 진행되고 있기 때문이다. 이 펀드는 “펀드의 참여 없이 제작되는 시리즈는 홀로코스트에서 대량 학살된 프랭크 가족에 대한 불경”이라면서 “제작을 취소하지 않을 경우 법적조치도 마다하지 않겠다”고 밝혔다. 펀드는 이어 “앤의 유업이 갈수록 지나치게 상업화 하고 있으며 앤의 이름이 상표로 전락하고 말았다”고  개탄했다.
그러나 이에 대해 ZDF 측은 “우리는 모든 것을 앤 프랭크의 문헌에 충실하게 만들 것”이라면서 “시리즈를 앤 프랭크를 잘 모르는 젊은층에 어필하도록 만들 예정”이라고 말했다.
그런데 앤 프랭크의 라이벌로 앤과 그의 가족이 나치를 피해 숨어 살던 암스테르담의 집을 맡아 돌보는 앤 프랭크 파운데이션과 독일의 유대인 중앙위원회는 이 시리즈를 지원하고 있어 시리즈를 놓고 앤 프랭크의 두 비영리단체가 신경전을 벌이고 있다.
앤 프랭크 펀드는 시리즈와는 달리 두 편의 극영화에 대해서는 적극적인 지원을 다짐했다. 만화영화는 ‘바시르와 월츠’를 감독한 아리 폴만이 감독하고 독일어 라이브-액션영화는 오스카상 후보에 올랐던 독일영화 ‘소피 숄: 마지막 날들’의 각본을 쓴 프레드 브라이너스도르퍼가 각본을 쓰고 한스 슈타인비클러가 감독한다.
나치를 피해 암스테르담의 한 공장 다락방에 숨어 살다 종전 얼마 전 나치에게 체포돼 베르겐-벨젠 수용소로 이송된 뒤 거기서 사망한 앤이 다락방에서의 삶을 쓴 ‘디어 키티’로 시작하는 일기는 1947년 앤의 아버지 오토에 의해 처음 출판된 이래 전 세계 70개 국어로 번역돼 3,000만여권이 팔렸다.
일기는 연극으로도 만들어져 퓰리처상을 받았는데 이 연극과 일기를 바탕으로 조지 스티븐스 감독(‘셰인’ ‘젊은이의 양지’ ‘자이언트’)이 1959년에 만든 흑백영화가 ‘앤 프랭크의 일기’(The Diary of Anne Frank)다.
앤으로는 밀리 퍼킨스가 나왔고 앤과 같이 다락방에서 숨어 살면서 앤의 애인이 된 피터로는 ‘웨스트사이드 스토리’에서 나탈리 우드의 애인으로 나온 리처드 베이머가 나왔다. 영화의 내부 장면은 스튜디오 세트에서 찍었으나 앤이 숨어 살던 집의 외부촬영은 암스테르담 현지에서 찍었다.
그리고 이 영화에서 앤의 가족과 함께 다락방에 숨어 살면서 나치에게 체포될까 봐 늘 공포에 떠는 반 단 부인 역을 맡은 쉘리 윈터스가 오스카 조연상을 받았으며 이밖에도 촬영상과 미술상을 받았다.
앤의 얘기는 이밖에도 1980년에는 멜리사 길버트가 주연한 TV 영화로 만들어져 3개 부문에서 에미상 후보에 올랐고 2001년에는 ABC-TV의 미니 시리즈 ‘앤 프랭크: 모든 이야기’로 만들어져 에미상을 2개 받았다. <한국일보 편집위원 / hjpark1230@gmail.com>


오마르 (Omar)

팔레스타인 젊은이들의 좌절과 분노·폭력


오마르가 이스라엘군의 불심검문을 받고 있다.

이스라엘의 팔레스타인 점령지인 웨스트뱅크를 무대로 진행되는 정치적 드라마이자 스파이 스릴러이면서 아울러 사랑과 우정과 신뢰의 이야기로 팔레스타인 영화다. 올해 오스카 외국어 영화상 후보작.
비밀과 배신이 잠복해 있는 긴장감 가득한 영화로 거대한 감옥이나 다름없는 점령지에서 사는 팔레스타인 젊은이들의 좌절감과 분노 그리고 폭력과 함께 궁극적 구제를 필름 느와르 식으로 그린 의미심장하고 흥미 있는 영화다.
빵을 굽는 청년 오마르(아담 바크리)는 친구 타렉(에야드 후라니)의 여동생인 여고생으로 자기 애인인 나자(렘 루바니)를 만나기 위해 팔레스타인인들이 사는 동네를 가르는 거대한 벽을 밧줄로 타고 넘는다. 이스라엘군의 총격도 겁내지 않는 사랑의 행위다. 
오마르와 타렉과 농담꾼인 암자드(사메르 비스하라트-그를 통해 살벌하기까지 한 영화에    유머를 첨가한다)는 세 친구로 이들은 좌절감을 풀기 위해 이스라엘군을 쏴 죽이기로 한다. 암자드가 이스라엘군을 사살하면서 이스라엘 측의 보복과 범인 색출을 위한 대대적 수색이 벌어지고 여기서 오마르가 체포된다. 
오마르를 수사하는 라미(왈레드 F. 주아이터)가 오마르에게 풀어줄 테니 타렉의 소재지를 밀고하라면서 석방한다. 라미는 타렉을 사살범으로 알고 있다. 그러나 자기 친구를 고발할 생각이 없는 오마르는 타렉이 짠 이스라엘군에 대한 기습작전 계획에 참여한다. 그런데 누군가 이 기습작전을 이스라엘군에 고발하면서 오마르는 다시 체포된다. 
그리고 라미는 다시 타렉의 소재지를 밀고하라면서 오마르를 풀어준다. 오마르는 이 제의를 수락하는데 그 이유는 스스로 자신들 사이의 배신자를 색출하기 위해서다. 한편 오마르가 재차 이스라엘 수사기관으로부터 석방되자 나자를 비롯한 오마르의 주위 사람들이 오마르를 스파이로 간주한다.      
굴욕과 폭력의 환경 속에서 출구가 없는 팔레스타인 사람들의 절망적이요 자기 파괴적이자 또 비극적인 행동과 함께 이런 환경 안에서의 인간의 취약성을 매우 사실적이자 감정적으로 그린 훌륭한 작품이다. 대부분 신인들인 배우들의 연기와 함께 현지에서 찍은 촬영이 사실감을 극대화 하고 있다. 하니 아부-아사드 감독. 성인용. Adopt Films. 로열(310-478-3836), 선댄스 선셋(선셋과 크레센트하이츠), 플레이하우스7(626-844-6500), 타운센터5(818-981-9811) 등 일부지역. ★★★★
 <한국일보 편집위원 / hjpark1230@gmail.com>


바람이 분다 (The Wind Rises)


하늘을 나는 비행의 꿈을 찾아서… 


지로가 꿈에서 전투기를 타고 비행하고 있다.
‘모노노케 공주’와 ‘포뇨’ 및 ‘하늘의 성’ 등 시각미와 얘기가 모두 다채롭고 풍성한 손으로 그림을 그리는 일본 만화영화 감독 하야오 미야자키의 11번째 작품(각본 겸)이자 그의 은퇴작이다. 그림이 눈부시게 아름답고 섬세하고 또 다채로운 데다가 전쟁과 로맨스와 비행의 꿈의 실현을 좇는 젊은이의 얘기도 흥미진진하게 서술해 경탄을 금치 못하게 한다.       
그런데 한국인들이 보기에 거슬리는 점은 영화가 일본이 진주만을 폭격하고 또 태평양 전쟁에 사용한 전투기 ‘제로’를 고안한 실존 인물인 지로 호리코시의 삶을 다뤘다는 것이다. 미야자키는 영화에서 자기는 전쟁을 옹호하는 것이 아니라 단지 비상의 꿈을 현실화 하려는 지로의 아름다운 꿈을 그리려고 했다는 점을 몇 차례 피력하고 있지만 일제의 오랜 피점령국이었던 우리로선 단순히 이름다운 영화로만 받아들이기가 쉽지 않다.
어쨌든 미야자키 영화중에선 가장 사실적이요 또 성인을 위한 작품이다. 제목은 프랑스 시인 폴 발레리의 시에서 따 왔다. 
얘기는 지로가 어렸을 때부터 시작된다. 시골에 사는 지로는 소년시절부터 비행기를 조종하는 것이 꿈이지만 근시안이어서 조종 대신 비행기 제작으로 자기 꿈을 바꾼다. 이를 위해 지로는 영어로 된 항공관계 잡지를 사전을 보면서 열심히 공부한다.
그리고 지로는 밤이면 이탈리아 항공계의 개척자인 지오반니 카프로니가 타고 하늘을 나는 날개 3개의 비행기 꿈을 꾸곤 한다.
이어 시간대는 1923년으로 옮겨진다. 도쿄에서 엔지니어링을 공부하는 지로가 고향을 방문하기 위해 기차를 타고 가는데 칸토 대지진이 일어나면서 기차가 탈선한다. 이 대지진과 그 후의 혼란을 그린 그림이 찬탄을 금치 못하게 한다. 그리고 지로는 역시 열차에 탔던 아름다운 나호코를 도와주면서 평생의 사랑을 만나게 된다.
학교를 나온 지로는 미쓰비시 중공업에 들어가 비행기 제작팀에 합류한다. 그리고 지로는 새 전투기 개발에서 뛰어난 창의력을 발휘해 탑 엔지니어로 승진한다. 여기서 지로는 독일을 방문해 독일의 전투기 디자이너들을 만난다. 1930년대 시작과 함께 지로는 ‘제로’(A6M) 전투기의 전신인 항공모함 탑재기인 A5M을 개발한다.
한편 지로는 휴가를 시골에서 보내면서 일본에 거주하는 독일인 카스토르프를 만난다. 카스토르프는 평화주의자로 지로에게 일본과 독일의 궁극적 패망을 경고한다. 이와 함께 지로는 나호코와 재회하는데 나호코는 폐병을 앓아 몸이 쇠약하다. 지로와 나호코의 아름다운 사랑이 옛 할리웃 영화의 비극적 로맨스처럼 묘시되는데 그림도 아주 곱다.     
그림이 감각적으로 아름답고 내용도 로맨틱 서사극처럼 도도하게 흐르는데 음악도 좋다. 올 오스카 만화영화상 후보작.
PG-13. Sony Classics. 랜드마크(310-470-0492), AMC 센추리15(888-AMC-4FUN), 글렌데일18(818-551-0218), 셔먼옥스 갤러리아(818-501-0753), 할리웃 엘 캐피탄(27일까지. 800-DISNEY6). ★★★★½(5개 만점)   <한국일보 편집위원 / hjpark1230@gmail.com>

하야오 미야자키



21일 개봉되는 일본의 저명한 만화영화 감독 하야오 미야자키(73)의 최근작이자 그의 은퇴작인 ‘바람이 분다’(The Wind Rises-영화평 참조)가 일본의 침략전쟁을 미화했다는 구설수에 시달리고 있다.
3월2일에 열릴 올 오스카 시상식에서 만화영화 후보에 오른 이 영화는 일본이 진주만을 습격하는데 사용된 폭격기 ‘제로’를 고안한 미쓰비시중공업의 항공담당 공학자 지로 호리코시의 삶을 다룬 것으로 내용과 그림이 모두 뛰어난 작품이다.
그러나 일부에서는 “왜 하필이면 침략전쟁의 도구인 ‘제로’를 고안한 호리코시의 얘기를 다뤘는가”라면서 “영화가 아름답고 유연한 모양의 폭격기와 그것을 고안한 사람을 미화하고 있다”고 비판하고 있다.
영화에는 전쟁을 비판하는 대사와 함께 호리코시가 “나는 전쟁을 옹호하는 것이 아니라 단지 아름답고 성능 좋은 비행기를 고안하려는 것뿐”이라고 말하고 있지만 한국인인 내가 보기엔 그런 말이 그저 사탕발림처럼 느껴졌다.
더구나 요즘 정신 나간 아베 일본 수상의 군국주의적 사고방식과 발언 때문에 한일관계가 극도로 나빠지고 있는 시점이어서 영화가 뛰어나게 잘 만들었다고 감탄을 하면서도 뒷맛이 개운치가 않았다.
한편 미야자키는 이 같은 비판에 대해 “지로 호리코시는 평화주의자로 그가 폭격기를 만든 것은 어쩔 수 없는 시대상황 탓”이라고 말했다. 그는 이어 태평양전쟁 당시 ‘제로’의 방향타를 고안한 자기 아버지에 대해서도 “나는 그처럼 위험한 시대에 살아야 했던 나의 아버지가 나쁜 일을 했다고 비난할 수가 없다”고 덧붙였다.
그런데 공교롭게도 미야자키는 이 영화로 인해 일본의 극보수파들로부터는 ‘반 일본적 반역자’라고 욕을 얻어먹고 있다. 그 같은 이유는 영화에 나오는 “일본과 독일은 패망하고 말 것이다”라는 대사와 함께 묘사된 반전 메시지 때문이다. 그러니까 미야자키는 군국주의자들과 함께 일본의 침략근성을 비판하는 측 모두로부터 공격을 받고 있는 셈이다.
미야자키는 평소 평화주의자로 알려진 사람이다. 그는 아베의 전쟁을 금지한 일본 헌법 수정 의도와 전쟁 범죄행위 부정을 비판하면서 아울러 전쟁 위안부들에게 정당한 보상을 해야 한다는 성명을 내기도 했다.
그리고 2001년 자신의 영화 ‘센과 치히로의 행방불명’(Spirited Away)이 오스카 외국어 영화상을 받았을 때도 미국의 이라크 침공에 항의하는 뜻에서 시상식에 참석하지 않았다.
나는 미야자키를 2009년 영화 ‘포뇨’를 위한 인터뷰 차 만났는데(사진) 백발에 흰 구레나룻을 하고 얼굴 가득히 미소를 짓는 모습이 마치 마음 좋은 이웃집 아저씨 같았다.
그는 만화를 손으로 그리는 사람답게 “나는 컴퓨터도 안 쓰고 셀폰도 없다”면서 잔잔한 미소를 지었는데 사람이 아주 소박하고 털털한데다가 인자한 모습에서 진짜로 평화주의자 같은 인상을 받았다.
그래서 이번에 영화를 보면서 더 왜 저런 평화주의자가 하필이면 군국주의를 찬양하는 느낌마저 드는 소재를 골랐을까 하고 고개를 갸우뚱 거렸었다. 영화를 영화 자체로 보는 것이 아니라 거기에 어떤 정치적 의미를 부여하려는 의도는 다분히 내가 한국 사람이기 때문일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자신의 스튜디오 기블리를 통해 ‘하늘의 성’ ‘내 이웃 토토로’ ‘모노노케 공주’ 및 ‘하울의 움직이는 성’ 등 주옥같은 만화영화를 감독(각본 겸)한 미야자키는 작품에서 평화주의와 자연을 찬미하고 있다.
온 가족이 함께 즐겨볼 수 있는 영화들로 마법적 영역 안에서 마법사와 마녀와 요정들이 등장하는데 특히 여러 영화에서 개성과 독립심이 강한 소녀나 젊은 여자가 주인공으로 나온다. 미야자키는 페미니스트인데 ‘포뇨’에서 바그너의 ‘발키리의 기행’에 맞춰 파도를 타고 달리는 브륀힐데가 그 대표적 인물 중 하나다.
미야자키는 얼마 전 “이젠 늙어서 영화를 그만 만들겠다”고 은퇴를 선언했다. 그러나 만화는 계속해 그릴 예정인데 그는 현재 사무라이 시리즈를 그리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바람이 분다’를 둘러싼 논쟁을 보면서 또 한 번 생각나게 된 것이 예술작품을 순전한 예술적 안목으로만 볼 것이냐 또는 거기에 정치ㆍ사회적 의미를 부여할 것이냐 하는 점이다. 나는 순예술파이긴 하지만 이번에 미야자키 영화를 보면서 내내 기분이 언짢았던 것은 결국 내 혈관 안에서 흐르는 한국인이라는 피 때문이었을 것이다  
                             
                               <한국일보  편집위원 / hjpark1230@gmail.com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