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이야기

2014년 6월 30일 월요일

‘멀레피선트' 앤젤리나 졸리

“악에 맞서 싸워야… 아이들이 그걸 배우길”




현재 빅히트하며(23일 현재 흥행수입 1억8,600만달러) 상영 중인 프랑스 동화‘잠자는 숲속의 미녀’를 원작으로 만든 디즈니의‘멀레피선트’(Maleficent)에서 마녀로 나온 앤젤리나 졸리(38)와의 인터뷰가 5월 베벌리힐스의 포시즌스 호텔에서 있었다.‘잠자는 숲 속의 미녀’는 차이코프스키가 발레곡으로도 작곡했고 1959년에 디즈니에 의해 만화영화로도 만들어진 동화로 멀레피선트(나쁘다는 뜻)는 작품 속의 공주 오로라를 영원한 잠에 빠지도록 저주한 마녀다. 이번 영화는 원작을 새로 해석, 차가운 마음을 지닌 멀레피선트가 주인공이다. 갈색 긴 머리에 가슴 윗부분이 들여다보이는 검은 망사 발렌티노 드레스를 입은 졸리는 갈비씨였지만 두툼한 입술과 큰 눈 그리고 윤곽이 뚜렷한 마스크 때문에 카리스마가 있어 보였다. 단정히 앉아 가끔 유머도 섞어가며 진지하면서도 명확하게 질문에 대답을 했는데 심사숙고 형이다.  

*우리는 살면서 멀레피슨트처럼 겉보기엔 악한 사람 같아도 자세히 알고 보면 결코 나쁜 사람이 아니라는 사실을 깨닫게 되는 경우가 종종 있는데 이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는가.
-멀레피슨트가 오로라에게 한 일은 가공스럽고 악한 짓이다. 영화의 요점은 그런 그를 용서하자는 것이 아니다. 단지 어떻게 해서 멀레피슨트가 그런 사람이 되었는가를 이해하려고 했다. 우리는 살면서 누구나 어둡고 악해질 수 있는 경우를 만나지만 그것을 극복하고 저항하는 것은 우리의 선택에 달려 있다. 아이들이 영화에서 그런 메시지를 깨달을 수 있기를 바란다. 악이 자신을 점령하는 것을 허락한다는 것은 잘못이라는 사실을.

*주위에서 악을 목격한 적이 있는가.
-물론이다. 난 유엔을 위해 일하기 때문에 자기 집이 불에 타고 개스공격을 받고 손톱이 뽑혀진 어머니들이 다친 아이들을 데리고 피난 다니는 것을 많이 본다. 분명히 이 세상엔 악이 있다. 그러나 우리는 그것의 근원을 이해하려고 노력해야 한다. 그리고 그것에 진실로 대항할 길이 있는가를 찾아 봐야 한다. 그 방법이란 정의와 교육이다. 좋은 에너지를 가진 사람들의 힘을 모아 악에 대항해 싸워야 한다.”   

*당신은 배우이자 감독이며 또 인본주의 운동가인데 셋 중 어느 하나만을 고르라면 어느 것을 선택하겠는가. 
-인본주의적이요 정치적인 일이 먼저다. 그러나 나는 이 세 가지 일에 모두 애착을 느낀다. 감독은 내가 스스로 역과 소재를 고를 수가 있어 좋다. 나는 늘 역사적으로 교훈이 될 수 있는 소재를 좋아한다. 메시지 영화다. 

*당신은 아이가 여섯인데 그 중에 배우가 되고 싶어 하는 아이가 있는가. 
-아이들이 연기에 관심이 있는 것 같진 않다. 만약에 관심이 있다면 난 적극 후원할 것이다. 우리의 뜻은 아이들에게 영화에 대해 관심을 갖게 하면서 또한 영화 외에 다른 것도 있다는 것을 가르쳐주는 것이다. 그래서 아이들이 다양한 사람들이 되도록 하고 싶다. 그러나 우리는 단지 아이들의 길잡이일 뿐이지 그들이 어떤 사람이 되는지는 각자에게 맡길 것이다. 

*당신은 인본주의자로서 세계 각지를 다니는데 아이들을 데리고 가는가.
-아이들에게 세상을 알려주려고 가능하면 그들을 데리고 다니려고 한다. 얼마 전 요르단에 갔을 때도 아들을 데리고 갔다. 그러나 아프가니스탄처럼 위험한 곳에는 혼자 간다. 그럴 땐 아이들이 학교에서 선생님과 함께 지도로 내가 간 곳을 찾아 왜 엄마가 사람들을 돕는지 그리고 세상에서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지에 대해 얘기한다. 어떤 땐 아이들이 내가 여행을 떠나기 전에 가난한 곳에 사는 아이들에게 주라고 적은 돈과 물건을 주기도 한다. 

*여름에 프랑스에서 브래드와 결혼식을 올린다는 얘기가 있는데 사실인가. 그리고 당신이 프랑스에서 포도주를 양조하는 것으로 알고 있는데.
-결혼 계획 전연 없다. 프랑스제 포도주를 만들고 있으며 포도주에 대해 배우는 일은 아주 재미있는 일이었다. 브래드와 나는 포도주 마시기를 좋아한다.

*당신에게 있어 진정한 사랑의 의미는 무엇인가.
-아이들을 가지기 전까지는 그 뜻을 잘 몰랐다. 그런데 고아원에서 매독스(2002년 캄보디아 고아원에서 7개월 됐을 때 입양)의 눈을 보는 순간 내 세상은 완전히 바뀌었다. 그것이 나의 진정한 사랑의 첫 경험이다. 그를 보는 순간 나는 내가 더 이상 내 세상의 중심이 아니란 것을 깨달았다. 타인이게 자신을 주고 그들이 나의 행복이 되는 것 그리고 그들에게 일어날지도 모르는 위험한 일이 내게 일어나게 해 줄 것을 바라는 것 바로 그것이 진정한 사랑이라고 본다.

*유방 절제수술을 받은 후의 건강상태는 어떤가.
멀레피선트(왼쪽)와 어린 오로라.
-아주 좋다. 난 그 같은 결정을 내린 것을 아주 잘 했다고 생각한다. 내가 나의 건강문제를 공개한 것은 다른 여자들에 대한 의무감 때문이었다. 나의 건강문제를 공개한 뒤로 많은 다른 사람들과 연결이 되었다. 

*당신과 브래드가 함께 영화를 만든다는 소문이 있는데 사실인가.
-그렇다. 4년 전에 내가 쓴 것이 있다. 그것을 바탕으로 불원 독립적이요 실험적인 영화를 만들까 한다. 내가 감독을 할지도 모른다.

*당신은 많은 여자들의 귀감과도 같다. 당신의 대 여성관계는 어떤 것인가.
-내가 아는 가장 강한 첫 여자는 나의 어머니다. 내가 만난 진정한 첫 여자 친구는 내가 20대 때 유엔을 위해 캄보디아에서 일할 때 만난 여자들이다. 할리웃에서 성장한 나로선 그들이 자기 대신 남을 위해 헌신하는 것을 목격하는 것은 하나의 영감이었다. 어머니가 되고 나이를 먹을수록 더욱 강해지게 마련이다. 내게 가장 많은 것을 가르쳐준 여자들은 그 누구보다 내 딸들이다. 나는 그들에게서 아름다운 희망과 힘과 확신과 독립 그리고 사랑하는 본질을 본다. 

*브래드와 아이들의 관계는 어떠며 그와 당신의 사랑은 여전한가.
-브래드는 딸의 말이라면 뭐든지 들어준다. 그러나 아들들과도 남자만의 시간을 즐긴다. 그와 나는 아이들 앞에서 서로를 돌보고 아끼고 존경하는 모습을 보여주려고 한다. 브래드는 아들들에게 여자와 어머니를 존경하는 길을 가르쳐 준다. 브래드와 나의 삶은 가족이 중심이다. 처음에 만났을 때는 서로 사랑에 빠져 흥분했지만 지금은 그와 다른 가족적인 사랑이라고 불러야 좋을 것 같다. 단순히 파트너요 연인 간의 사랑이 아닌 하나의 가족이라는 말이다.

*당신에 대한 오해를 경험한 적이 있는가.
-난 나에 대해 쓴 글들을 읽지 않아 그에 대해 잘 모르겠다. 중요한 것은 그런 것에 신경을 안 쓴다는 것이다. 이 동네에서 어떻게 오해가 없을 수 있겠는가. 그저 꾸준히 자기 길을 간다면 결국은 이해 받게 마련이다. 오해하는 사람은 무시하면 된다.

*당신의 패션은 어떤 것인가.
-중요한 것은 최신 유행을 따를 것이 아니라 자기가 좋아하는 것을 선택하는 것이다. 물론 실수가 있을 수도 있지만 자신이 고른 것인 만큼 밖에 나갈 때면 난 언제나 나 자신을 느끼곤 한다. 

*난소암 수술도 받는다고 알려졌는데 사실인가.
-사실이다. 그러나 수술문제는 내 사적인 일로 수술이 끝난 후 그 문제에 대해 공개적으로 논의할 예정이다. 

*도대체 어떻게 한 사람이 어머니와 아내와 감독과 배우와 제작자와 각본가 그리고 인본주의 운동가의 일들을 해낼 수가 있단 말인가.
-나는 스케줄에 집착하는 사람이다. 나는 내 일을 사랑하고 내 아이들을 사랑한다. 브래드 같은 파트너를 둔 것이 큰 행운이다. 나는 일할 때 아이들을 데리고 올 수도 있고 또 삶의 여러 가지 일들을 하기 위해 비교적 자유롭게 내 시간을 낼 수가 있다. 내가 받은 것을 돌려주지 못하고 남에게 유용한 사람이 되지 못한다면 난 내게 주어진 삶을 누릴 자격이 없다고 본다. 그것이 내가 최소한 할 수 있는 일이며 또 내 기쁨이다.    

*난민 구호활동에 관해 말해 달라.
-먼저 목적지에 도착하면 내가 할 일에 대해 알기 위해 브리핑을 받고 현장에서 일하는 사람들과 많은 시간을 보낸다. 나는 현장에 가면 곧 바로 난민들을 직접 만나 땅바닥에 주저앉아 그들의 고충을 듣곤 한다. 그리고 그들의 애로사항과 메시지를 전파하려고 노력한다. 내가 난민들을 찾는 것은 세상 사람들에게 자기 일상의 일을 떠나 고통에 빠진 사람들을 염려하고 돌보는 일을 하는 사람이 있다는 것을 보여주기 위해서다. 그런데 난 유엔 친선대사가 된 이래 각국의 대통령과 수상 및 정치인들을 만나 난민문제를 상의하느라 다소 정치적이 됐다. 
                                                    <한국일보  편집위원/hjpark1230@gmail.com>


설국열차(Snowpiercer)

눈과 얼음뿐인 지구, 살아남아야 한다


보안 시스템 전문가 남궁민수(송강호)가 딸(고아성)을 안고 부유층의 객실 쪽으로 가고 있다.

김지운과 박찬욱(이 영화의 제작자)에 이어 할리웃에 진출하는 봉준호 감독의 대하 공상과학 액션 스릴러로 유혈폭력 속에 지구의 환경파괴와 경제적 불평등 그리고 인간성과 도덕의 타락 등 매우 진지하고 심각하며 철학적인 명제들을 다룬 상징이 많은 현대판 우화다. 
지구 종말 후 끊임없이 달리는 열차에 탄 경제적 하류층의 부유층에 대한 불만을 폭력으로 해결하는 내용은 마치 공산주의 혁명을 연상시키는데 이와 함께 구제불능의 인간성에 대한 신랄한 비판을 가하면서 과연 인간은 구제받을 가치가 있는가 하고 묻고 있다.
빈곤층과 격리된 열차의 객실에 탄 부유층과 그들의 리더가 마치 나치나 북한(생체실험과 세뇌교육 등)의 실상처럼 묘사됐는데 이와 함께 이들을 태우고 달리는 열차의 신성한 엔진에 대한 절대적 숭배는 프리츠 랭의 ‘메트로폴리스’를 생각나게 한다.
지적이요 야심적이며 총명한 연출력이 돋보이긴 하나 너무나 교훈적인 것이 탈이다. 깃발을 흔들며 구호를 외치듯이 현 세상의 사회적ㆍ경제적 불평등과 인간성ㆍ도덕성의 몰락과 함께 환경문제와 인구문제 등 너무나 잡다한 메시지를 내세워 체하겠다. 다소 절제가 필요한데 이로 인해 오히려 영화의 재미와 함께 감동이 감소되고 말았다. 원작은 프랑스 그래픽노블.
2031년. 17년 전 지구온난화를 막기 위한 실험이 실패하면서 지구는 생명체가 살 수 없는 눈과 얼음의 나라가 됐다. 여기서 살아남은 사람들은 지구를 끊임없이 순환하며 달리는 기차에 탔다. 기차는 축소판 세상으로 거지꼴을 한 가난한 사람들은 기차 뒤 칸에 부유한 특권층 사람들은 앞 칸에 탄 채 두 사회는 여러 개의 강철문으로 차단이 됐다.
기차의 주인은 영화 끝에 나오는 윌포드(에드 해리스)로 그는 자신의 하수인인 틀니를 한 메이슨(틸다 스윈튼이 해괴한 차림으로 코믹한 연기를 한다)을 비롯해 부유층의 신과도 같은 존재다. 윌포드는 기차 내 질서를 유지하고 한심한 인간들을 통제하는 독재자로 히틀러나 김정은과 다를 바가 없다.
부유층의 횡포와 호사에 이를 가는 빈곤층(바퀴벌레로 만든 바를 음식으로 먹는다)은 젊은 커티스(크리스 에반스)와 그의 2인자 에드가(제이미 벨)를 리더로 부유층의 객실을 점령하고 엔진을 확보하기 위해 공격을 시작한다. 유혈폭력 속에 이들은 객실을 하나씩 점령하는데 객실과 객실을 차단한 강철 문을 여는 사람이 기차의 보안 시스템을 고안한 남궁민수(송강호). 민수에겐 ‘기차 베이비’인 17세난 딸 요나(고아성)가 있다.
총궐기한 빈곤층과 부유층의 군대 간의 피가 튀는 전투 끝에 커티스 일행은 마침내 부유층의 객실로 침투한다. 여기서 여태까지 어두컴컴하고 사색을 띠던 색깔이 알록달록한 총천연색으로 바뀌면서 부유충의 호사방탕한 생활상이 초현실적인 만화경처럼 묘사된다. 마약과 술과 디스코텍 그리고 수영장과 병원과 양복점 등이 있는 초호화 지상낙원이다. 이어 인류의 운명을 바꿔놓을 희생이 감행된다. 
촬영과 프로덕션이 훌륭한 반면 컴퓨터 특수효과는 수준 이하. 빈곤층의 정신적 지도자 길리엄(존 허크)과 옥타비아 스펜서를 비롯한 호화 캐스트의 연기는 무난하다. R. Radius-TWC. CGV(213-388-9000), 선댄스 선셋(323-654-2217).  ★★★(5개 만점) 
                                                        <한국일보  편집위원/hjpark1230@gmail.com>


새 출발(Begin Again)

음악으로 재결합하려는 사람들


댄(마크 러팔로·왼쪽)과 그레타(키라 나이틀리)가 음반제작에 관해 대화중이다.
        
오스카 주제가상을 받은 영화 ‘원스’의 각본을 쓰고 감독한 아일랜드의 존 카니의 작품으로 음악과 깨어진 관계를 재 연결시키려는 사람들의 노력을 다룬 아름답고 가슴에 와 닿는 영화다. 
감정적으로 솔직하고 깨끗한 영화로 음악의 치유 효과와 순수성을 강조하고 있는데 여러 곡의 발라드풍의 노래가 참 듣기 좋고 편안하다. 이 중 몇 곡은 주연한 키라 나이틀리가 직접 부른다.
로맨스도 있지만 그것은 노골적으로 표현된다기보다 가슴 안에서 맴돌고 있는데 버림받고 헤어진 사람들의 얘기인데도 조금도 냉소적이지 않아 마음에 든다. 쾌적한 기쁨을 맛볼 수 있는 작은 보석과도 같은 영화로 뉴욕 현지촬영도 좋다.            
맨해턴의 바에서 최근 영국에서 온 싱어 송라이터인 그레타(나이틀리)가 동향인 스티브(제임스 코든)에 의해 반강제적으로 무대에 올라 노래를 부르는 장면으로 시작된다. 손님들의 반응은 시큰둥한데 혼자 박수를 치는 사람이 독불장군식 음반제작자 댄(마크 러팔로).
여기서 영화는 두 차례 과거로 돌아가 그레타와 댄의 배경을 설명한다. 그레타는 영국에서 역시 작곡자인 애인 데이브(애담 르바인)와 함께 뉴욕에 왔는데 데이브가 부른 영화 주제가가 빅히트를 하면서 그레타를 버리고 새 애인에게로 간다.
댄은 음악기자인 아내 미리암(캐서린 키너)과 별거 중으로 10대의 딸 바이올릿(헤일리 스타인펠드)과의 관계를 돈독히 하려고 애를 쓴다. 그는 아직도 미리암을 사랑하고 있다. 댄은 디지털시대 감각이 없는 사람으로 순수음악을 강조하는 데다 최근 실적이 부진, 자신이 물주인 솔(모스 데프)과 함께 세운 음반사로부터 쫓겨났다.
그레타의 노래를 들은 댄은 히트송의 가능성을 직감하고 고향으로 돌아가려는 그레타에게 함께 데모음반을 제작하자고 제의한다. 이 음반제작 과정이 아주 기발 나고 다채롭고 에너지가 넘친다. 댄은 밴드를 급조한 뒤 스튜디오 안에서의 취입 대신 도시의 골목과 지붕 위 그리고 공원과 지하철 구내에서 음반을 만든다. 뉴욕이라는 도시의 생생한 배경이 음악의 효과를 십분 살려주고 있다.     
이런 음악 얘기와 함께 댄과 미리암과 바이올렛과 솔 그리고 그레타와의 인간적 얘기가 충실히 그려지는데 댄과 그레타는 서로에게 깊은 매력을 느끼면서도 이를 밖으로 드러내지 않는다. 할리웃 영화 같지 않게 끝이 나는데(그래서 더 마음에 든다) 나이틀리와 러팔로의 화학작용이 절묘하다. 사운드 트랙을 하나씩 사서 들으시기를 권한다. 대부분의 노래는 뉴 래디칼스의 프론트맨 그렉 알렉잰더가 작곡했다.
R. TWC. 랜드마크(310-470-0492), 아크라이트(323-464-4226), 센추리15(888-AMC-4FUN).  ★★★★½(5개 만점)  <한국일보  편집위원/hjpark1230@gmail.com>



예루살렘, 예루살렘


예수가 십자가를 지고 골고다 언덕을 향해 걷던 ‘고통의 길’은 좁은 길 양쪽으로 빼곡히 들어선 상점에서 외치는 상인들의 호객소리와 관광객들로 북새통을 이루고 있었다. 한 가게는 자기 전생활비인 동전 두 닢을 연보한 과부를 칭찬한 예수의 말을 적은 입간판(사진)을 세워놓고 기념동전을 팔고 있었다.
2,000년 전 예수는 성전에서 매매하는 자들을 내쫓으며 “기도하는 집을 강도의 굴혈로 만든다”고 질책했었다. 2,000년이 지나도록 거룩하고 성스러운 것을 상품화해 팔아먹는 아이러니는 여전했다.
텔아비브에서 각기 찍는 USA와 FX-TV의 ‘딕’(Dig)과 ‘독재자’(Tyrant) 세트 방문차 이스라엘에 다녀왔다. 지중해변의 숙소인 데이빗 인터콘티넨탈 호텔 이름에서 알 수 있듯이 모든 것이 구약성서로부터 기인하는 이 ‘성지’에 발을 딛는 순간 마치 신과 접촉이나 한 듯한 흥분감을 느꼈다.
비록 유대인과 팔레스타인인들이 공존하고 있지만 이스라엘은 끊임없는 분쟁의 땅이다. 할리웃 외신기자협회원들이 이스라엘에 도착하기 며칠 전 이스라엘 점령지인 웨스트뱅크에서 3명의 10대 유대인 소년들이 납치돼 이스라엘은 초비상사태였다.
우리는 이런 긴장상태에도 불구하고 예루살렘의 올드시티를 찾아갔다. ‘성의’와 ‘벤-허’ 등 많은 성경영화에서 본 돌로 깐 보도와 굽어진 골목들이 낯설지 않다. 시온 문을 지나 2,000년 전의 장터를 거쳐 ‘통곡의 벽’으로 가는 길에 야물케를 쓰고 검은 정장을 한 걸인들이 땀을 뻘뻘 흘리면서 구걸을 한다.
나는 1회용 흰색 야물케를 머리에 쓰고 두 손으로 벽을 짚었다. 다윗이 통곡으로 속죄하며 십계명이 든 성궤에 두 손을 짚는 모습이 그려졌다. 종이에 ‘나의 가족을 축복해 달라’는 글을 적어 벽 틈에 꽂고 기도했다. 특히 목사인 아들을 부탁했다.
벽 바로 뒤에 황금돔을 머리에 인 회교성전이 보인다. 벽을 사이에 두고 유대교와 회교가 공존하고 있지만 그 공존은 언제든지 갈등으로 갈 수 있는 불안한 것이다. 예루살렘은 종교가 불러일으킨 많은 전쟁의 역설의 땅이자 영혼의 집결지요 또 인류 역사의 개요의 현장이다.
엄격한 마음으로 ‘고통의 길’로 들어섰다. 언덕길을 가득 메운 인파와 소음 속에서 예수가 십자가를 지고 이 길을 걸었을 때 사람들이 그의 고통에 통곡하는 소리와 함께 그를 야유하던 소리가 들려오는 듯했다. 예수가 힘에 겨워 처음으로 쓰러진 곳과 그가 잠시 쉬려고 벽을 짚은 손자국 자리를 지나 골고다 언덕 위의 성묘교회에 들어섰다. 예수가 십자가에 못 박혀 죽은 곳과 그의 매장을 준비한 자리 그리고 무덤이 다 이 교회 안에 있다.
순례객들과 관광객들이 사진을 찍느라고 분주하다. 나도 사진을 찍으면서도 자신의 행동에 자괴감을 느꼈다. 예수의 무덤에서 기도를 하면서도 나를 비롯한 사람들이 자아내는 디즈니랜드 같은 분위기에 죄책감을 느꼈다. 이런 난장판 관광지 기운 탓에 거룩하고 성스러워야할 가슴이 피해를 입는 기분이었다.
예수가 제자들과 최후의 만찬을 한 방과 다윗의 무덤(진짜는 어딘지 모른다)을 둘러보고 호텔로 돌아왔다. 이 모든 장소에 대해선 이설이 있다. 그러나 중요한 것은 실제 장소라기보다 믿는 마음이다. 자기 마음이 교회일 테니. 뜨거운 태양 아래 하루 성경체험을 하면서 예수는 어떻게 40일간 광야에서 이 뜨거움을 견뎌냈을까 하고 궁금해 했다.
돌아오는 길에 저 멀리 팔레스타인인들의 주거지 한복판을 갈라놓은 ‘벽’이 보인다. 안내원이 “벽에 대한 비판도 있지만 그 덕분에 자살폭탄 차량이 없어졌다”고 자랑한다. 남의 집과 정원을 한 가운데서 갈라놓은 횡포의 물증을 보면서 남북한 간의 분단의 벽을 비롯한 모든 분리의 상징인 벽의 존재가 미웠다. 벽들은 허물어져야 한다.      
귀국 전날 예수도 먹었을 마른 빵과 양고기와 포도주를 먹는 자리에서 하이파에서 대학을 다니면서 한국 정치를 선택과목으로 공부했다는 팔레스타인계 이스라엘 시민 청년과 얘기를 나눴다. 내가 그에게 “너는 팔레스타인의 국가 설립을 원치 않느냐”고 묻자 그는 “이 자리에 혹시 유대인이 없느냐”고 속삭이며 대답을 회피했다. 이스라엘인 친구가 많다고 자랑하던 청년의 이런 태도에서 속박 받는 사람들의 피해의식을 봤다.
그런데 이스라엘은 입국은 쉬운데 오히려 출국심사가 매우 까다로웠다. 그리고 여권에 입국허가 도장을 찍는 대신 체류허가증을 주었다. 일생에 한 번 있을 영적 경험을 마치고 귀국행 비행기에 오르면서 “예루살렘, 예루살렘”을 속으로 되뇌었다.
                                       <한국일보  편집위원/hjpark1230@gmail.com>


2014년 6월 24일 화요일

보그만 (Borgman)

외딴 집 문 두드리는 소리…“목욕 좀 합시다”


보그만이 리처드네 목욕탕에서 포도주와 음식을 먹으며 목욕하고 있다.

고약하고 사악하고 기분 나쁘고 삐딱하며 또 폭력적이요 잔인하며 황당무계할 정도로 허무한 새까만 코미디로 보는 사람의 마음을 매우 불안하게 만들어준다. 거의 초현실적 분위기마저 갖춘 시치미 뚝 떼고 사람 잡는 미스터리 심리 스릴러이자 코미디로 홀랜드 영화다.
일종의 부르주아의 무사안일에 대한 냉소적이요 가차 없는 비판이자 현대판 우화로 악의 본질을 탐구하고 있다. 
미gi엘 헤네케의 ‘퍼니 게임스’와 장 르놔르의 ‘익사에서 구해준 부뒤’의 내용과 분위기 그리고 모양을 연상시키는 작품으로 끝에 가서 다소 맥이 풀리지만 기차게 흡인력 강하고 독창적이다. 흥미진진한 영화로 인간의 사악이 저지르는 잔인무도한 행위에 몸서리를 치면서도 기가 차서 웃게 된다.
숲 속의 벙커에 사는 카밀 보그만(얀 비즈보트)이 자기를 수색하는 무장한 신부와 다른 두 남자로부터 도망가면서 역시 각기 땅굴 속에 사는 같은 패인 파스칼과 루드빅(이 영화의 감독 알렉스 반 바르머담)도 함께 달아난다.
꾀죄죄한 보그만은 이어 교외의 한적한 곳에 있는 상자 모양의 초현대적인 주택의 문을 두드린다. 그리고 TV 프로 제작자인 젊고 오만한 주인 리처드(예론 페르시발)에게 목욕 좀 하게 해 달라고 부탁한다. 이를 거절하는 리처드에게 보그만은 자기가 리처드의 아내를 안다고 엉뚱한 소리를 했다가 리처드에게 얻어맞아 나가떨어진다. 
리처드가 출근 후 양심에 가책을 받은 리처드의 아내 마리나(하데빅 미니스)가 보그만을 집안으로 받아들여 목욕하게 하고 먹을 것을 준 뒤 게스트 하우스에 묵게 한다. 물론 리처드는 이를 모른다. 
여기서부터 보그만의 인간 심리조작이 자행되면서 보그만은 마리나와 그의 어린 세 아이들 과 보모 그리고 궁극적으로는 리처드에 이르기까지 이 집안사람들의 마음을 점령하면서 서서히 집의 주인 행세를 하기 시작한다. 
여기에 파스칼과 루드빅도 동참하면서 홈리스들이 안방을 차지하고 드는데 완전히 보그만의 악마적 매력에 사로잡힌 마리나는 보그만이 떠나려고 하자 못 가게 말린다. 그리고 마리나는 보그만에게 자기 몸까지 주겠다고 옷을 벗어젖히나 간교한 보그만은 이를 거절한다.
마리나는 완전히 보그만의 꼭두각시가 되다시피 하는데 마리나와 함께 그의 천사처럼 생긴 막내딸 이졸데까지 보그만의 심리조작에 말려들어 보그만의 하수인이 된다. 그리고 악마의 제자가 된 둘은 보그만을 위해 자발적으로 끔찍한 일까지 수행한다.
재미있는 에피소드는 보그만 일당이 리처드의 정원을 새로 만들어주는 장면. 완전히 정원과 연못을 파 뒤집어놓는데 이들은 이를 위해 먼저 이 집의 정원 조경사 부부를 찾아가 눈 깜짝 하나 안 하고 둘을 해괴한 방법으로 살해한다. 이런 살인방법은 처음 본다.
마치 속편이라도 만들겠다는 듯이 끝나는데 상당히 다정한 가족나들이 영화처럼 마감한다. 볼만한 것은 얀 비즈보트의 간사한 연기. 치명적으로 매력적인 연기다. 이와 함께 생명이 있는 숲에 둘러싸인 마치 진공상태의 살균한 병실 분위기를 느끼게 하는 리처드의 집을 중심으로 주변 정경을 찍은 와이드 스크린 촬영도 훌륭하다. 성인용. 26일까지 뉴아트(310-473-8530)  ★★★½(5개 만점)
                                                             <한국일보 편집위원/hjpark1230@gmail.com>



마지막 문장 (The Last Sentence)

스웨덴의 저명한 언론인의 삶 그려


마야와 토르니(앞)가 사랑의 무드에 젖어있다.

2차 대전 직전과 나치의 유럽 점령 때에 이르기까지 히틀러와 나치에 대해 강력한 비판 칼럼을 쓴 스웨덴의 저명한 언론인 토르니 세거스텟의 개인적 삶과 언론인으로서의 삶을 그린 전기영화로 켄네 판트가 쓴 책이 원작.
스웨덴의 명장 얀 트뢸이 감독했는데 판트의 제의를 받고 영화를 만들었다. 흑백영화로 감정보다 지성에 어필할 영화로 토르니의 복잡한 여자관계에 상당한 무게를 두고 있는 데도 영화가 안팎으로 매우 냉정하다. 
토르니의 삶을 1933부터 그가 사망한 1945년까지 다루고 있다. 스웨덴 고텐부르크의 유력 일간지 편집국장인 토르니(덴마크 배우 예스퍼 크리스튼센-처음에 스웨덴 명우 막스 본 시도가 고려됐었다)는 나치가 집권하기 시작할 때부터 칼럼을 통해 히틀러를 맹렬히 공격한다. 신문사 사주는 토르니의 친구인 악셀(뵤른 그라나드).
노르웨이 태생의 자기 아내 푸스테(울라 스콕)보다 세 마리의 애견을 더 사랑하는 토르니의 정부는 악셀의 유대인 아내 마야(페르닐라 아우구스트)로 신문사의 실제 주인은 마야다. 토르니와 마야의 관계는 공공연한 비밀.
영화는 사랑 없는 결혼에 시달리는 푸스테와 토르니를 지극히 사랑하는 마야 및 검은 베일을 쓰고 나타나는 토르니가 어릴 때 사망한 어머니의 귀신 그리고 토르니의 여비서 에스트리드 앙커(비르테 헤리베르트손) 등 토르니와 여러 여자들과의 관계를 집중적으로 묘사하고 있다.
이런 토르니의 사생활과 함께 그의 히틀러에 대한 집요한 공격과 중립국의 입장에서 나치에게 밉보이지 않으려고 토르니에게 논조의 강도를 낮춰 줄 것을 설득하는 악셀과 외무장관 그리고 국왕과 토르니의 공적인 삶을 병행 묘사하고 있는데 그의 공적인 면보다 사적인 면이 더 중요하게 다뤄지고 있다.
그러나 토르니는 어떤 회유와 설득에도 굴복하지 않고 히틀러를 맹공하고 또 중립국으로서 히틀러를 수용한 정부에 대해서도 서슴없이 공격의 펜을 휘두른다. 독재와 정치적 압력 앞에서도 소신을 굽히지 않는 토르니의 용기가 가상한데 영화는 그의 이런 십자군적 행동과 함께 개인적 결함도 보여준다.
토르니는 굉장히 이기적이요 거의 괴물처럼 독선적인데 그가 이렇게 된 데는 종교학자로 실패한 자신에 대한 과대한 보상심리가 뒷받침한 것처럼 설명하고 있다. 매우 엄격하고 진도가 느린 역사적 드라마로 예스퍼 크리스텐센의 카리스마가 있는 연기 때문에 쉽지 않은 내용을 끝까지 따라가게 된다. 스웨덴의 베테런 배우 페르닐라 아우구스트도 훌륭하다. 볼만한 지식인용 영화다.
성인용. 일부극장.★★★(5개 만점)  <한국일보 편집위원/hjpark1230@gmail.com>


‘그들 일생일대의 경기’


브라질에서 열리고 있는 월드컵 열기가 화끈하게 달아오르고 있다. 스포츠는 궁극적으로 인간관계와 투쟁 그리고 영혼에 관한 얘기로 그것은 이런 극적 요소를 지니고 있어 영화의 좋은 소재가 되고 있다.
할리웃의 스포츠 영화는 당연히 미국인들의 기호에 맞춰 야구, 농구, 아메리칸 풋볼 등에 관한 것이 많다. 또 액션이 치열한 권투도 즐겨 선택되는 경기다. 이 밖에도 골프, 자동차와 자전거 경주, 스키, 승마 및 서핑마저 소재로 다뤄지고 있다.
그러나 여러 스포츠 중에서도 유독 서자 취급받는 것이 전 세계서 가장 인기 있는 스포츠인 축구로 이에 관한 할리웃 영화는 눈을 비비고 찾아보려야 볼 수가 없을 정도다. 황소 눈알의 코미디언 로드니 데인저필드가 소녀 사커(미국에서는 풋볼이 아니라 이렇게 부른다)팀 코치로 나온 ‘레이디 벅스’는 졸작. 키라 나이틀리가 스타가 되는데 디딤돌 역할을 한 ‘베컴처럼 차라’는 영미 합작이긴 하나 사실 영국 영화다.
이밖에 세인트루이스의 이탈리안 아메리칸 선수들이 주축이 된 미 대표팀이 1950년 브라질 월드컵 경기에 출전, 선전한 언더독 실화 ‘그들 일생일대의 경기’가 있지만 이것 역시 타작이다.
거장 존 휴스턴이 감독하고 실베스터 스탤론이 주연한 ‘빅토리’는 펠레를 비롯한 왕년의 전 세계 A급 축구선수들이 나온 B급 정도의 영화다. 전쟁포로 얘기를 스포츠 시각에서 다룬 일종의 ‘축구전쟁’ 드라마다.
1943년 독일의 연합군 포로수용소 신임 소장(맥스 본 시도)은 왕년의 축구선수로 영국군 포로이자 역시 축구선수였던 존 콜비대위(마이클 케인)에게 축구경기를 제의한다. 이에 케인은 전 세계 전직 축구선수들로 팀을 구성, 독일 대표팀과의 일전을 준비한다. 한편 연합군 사령부는 이를 기회로 포로선수들의 탈출계획을 마련한다.    
파리의 콜롱브 경기장. 5만 관중이 운집한 가운데 적간의 올스타게임이 벌어지고 독일팀이 전반을 4대1로 리드한다. 해프타임을 이용해 탈출키로 했던 포로팀은 자유를 포기하고 후반전에 들어간다. 과연 누가 이기겠는가.
화면을 가득 채우는 빌 콘티(‘로키’의 음악)의 승천감 드는 음악을 깔고 슬로모션으로 보여주는 펠레의 마이너스킥 등 경기장면이 박력 있고 멋있다. 그러나 이 영화는 손에 땀을 쥐게 하는 마지막 20분간의 경기장면을 빼고는 명장 휴스턴의 영화치곤 시종일관 힘이 없고 내용도 엉성하다.
펠레 외에도 바비 모어(영국), 오스발도 아딜레스(아르헨티나), 파울 반 힘스트(벨기에) 등 일류 선수들이 나와 묘기를 선보인다. 그러나 스탤론이 아무리 수퍼스타라고는 하지만 축구 문외한이 짧은 연습 후 신기의 골키퍼로 맹활약하는 것은 믿지 못하겠다.
내가 경이의 눈으로 뜨거운 감동을 느끼며 본 축구영화는 미국 영화와 제목이 같은 기록영화 ‘그들 일생일대의 경기’(The Game of Their Livesㆍ2002ㆍ사진)다. 영국의 댄 고든이 감독한 영화는 1966년 영국에서 열린 월드컵 경기에서 북한의 천리마 축구팀이 이탈리아를 1대0으로 물리친 사실을 담은 것이다.
당시 북한이 이탈리아를 이길 확률은 1,000대1로 이런 확률을 뒤엎고 북한이 승리, 이 경기는 ‘월드컵 사상 최대의 충격’으로 불리고 있다. 고든은 북한에 들어가 코치 등 당시 경기에 참가했던 7명의 선수들을 인터뷰하고 이들을 경기가 열렸던 영국의 미들스브로로 초청, 과거 북한 선수들에게 숙식을 제공하고 그들을 자기 팀처럼 응원했던 마을 주민들과의 감격적인 재회의 장면들을 담고 있다. 이와 함께 당시 북한 카메라 팀이 찍은 컬러 경기장면도 흥미진진하다.
이탈리아전에서 득점한 선수는 배번 7번의 박두익으로 그는 “영국인들은 우리를 그들의 가슴으로 맞아주었고 우리도 그랬다. 나는 축구가 이기는 것만이 전부가 아니라는 것을 배웠다”고 추억했다. 
팀웍과 개인기가 그림처럼 아름다운 축구가 할리웃의 괄시를 받고 있는 이유를 전문가들은 먼저 이 경기가 미국의 토착경기가 아니라는 데서 찾고 있다. 그리고 축구는 순간 경기이며 득점수가 적고 아메리칸 풋볼과 야구와 농구가 전략 등을 논의하기 위해 쉬는 시간이 많은 반면 축구는 90분간을 거의 쉬지 않고 진행되는 것도 그 이유로 든다. 또 배우들이 효과적으로 경기를 진짜 선수들이 하는 것처럼 눈속임을 하기가 어렵다는 점도 있다.
그러나 할리웃이 축구를 포용하지 않는 이유는 명 영화제작자요 미 프로축구팀 시애틀 사운더스의 공동 소유주인 조 로스가 가장 분명하게 설명하고 있다. 그는 LA타임스와의 인터뷰에서 “미국인들은 외국 기피증자들로 자기 나라 밖에서 일어나는 일들을 제대로 보려하지 않는다”고 말했다.  
                                                    <한국일보 편집위원/hjpark1230@gmail.com>

2014년 6월 17일 화요일

경찰 (Policeman)

이스라엘 사실적으로 그린 사회정치영화


쉬라(앞)와 동료들이 결혼식장 하객들을 납치하고 있다.

간장에서 쓴물이 나오도록 에누리 없이 사실적이요 살벌한 이스라엘 사회정치 영화로 전연 다른 두 개의 얘기를 마지막 클라이맥스에 가서 격렬하게 충돌시키는 독특한 서술방식을 갖췄다. 밖으로 폭발하지 않고 안에서 격렬하게 들끓고 있는 감정적 압축감에 부담이 갈 정도로 절제와 방관자적 거리를 느끼게 되는데 내용과 형식적인 면이 다 로베르 브레송이나 미켈란젤로 안토니오니의 영화를 연상케 한다.
테러진압 경찰과 폭력을 앞으로 내세워 이스라엘 시민의 계급과 신분 차이 그리고 그들의 빈부차이를 제3자적 입장에서 냉철하게 묘사한 이색적인 영화로 인내심을 요구한다. 각본을 쓰고 감독으로 데뷔한 나다브 라피드의 솜씨가 뛰어나다.
영화는 정예 테러진압 요원 아론(이프타치 클라인)과 그의 임신한 아내 그리고 그의 동료들 간의 관계를 40분 정도 그리다가 돌연 젊은 이스라엘 무정부주의자들의 테러행위로 뛰어넘는다. 이 둘의 얘기는 마지막 클라이맥스에 가서 강렬한 펀치를 휘두르듯이 부닥치는데 끝이 끝 같지가 않다.
아론은 집에서는 만삭의 아내를 극진히 돌보고 밖에서는 동료들의 우두머리 노릇을 하는 애국자. 진압요원들은 공동체 의식에 매달려 사는 마초들로 최근에 치른 한 작전에서 큰 실수를 저질러 그 후유증에 시달리고 있다. 이들의 가족 간의 관계와 우정 그리고 집단의식이 아론을 중심으로 다양하게 이야기 된다.
이어 내용은 사회 환경에 불만을 품은 정열적이요 이상적이며 또 정치적으로 극단적인 몇 명의 청춘남녀들의 얘기로 급전환한다. 부잣집 딸 쉬라(야라 펠직)를 비롯한 이들은 이스라엘 사회의 경제적 격차와 계급 차이에 반발, 자신들의 삐딱한 이상을 현실화하기로 한다. 
자신들을 혁명전사요 로빈 후드라고 생각하는 이들은 백만장자의 딸의 결혼식장을 덮친 뒤 결혼식 당사자들과 하객들을 지하실에 인질로 붙잡아놓고 경찰과 대치한다. 그리고 그동안 팔레스타인 테러리스트 진압에 멸사봉공해 왔던 아론과 그의 동료들은 자기와 같은 시민들에게 총을 들이대야 하는 난처한 입장에 빠진다.            
촬영도 엄격하게 아름답고 배우들의 연기도 좋은데 무엇보다 라피드 감독의 냉정한 연출솜씨가 돋보인다. 성인용. 일부 지역. ★★★½(5개 만점) 
                                                              <한국일보 편집위원/hjpark1230@gmail.com>


용 길들이기 2 (How to Train Your Dragon 2)

불 내뿜는 용을 타고 대결전


히컵이 투스리스를 타고 신나게 공중비상을 즐기고 있다.

전편보다 나은 속편은 ‘대부’ 제2편 등 몇 편에 불과한데 이 입체 만화영화는 전편보다 얘기와 눈부신 애니메이션 그리고 인물 개발과 작품의 무대 및 감정 등 여러 면에서 훨씬 더 확대됐고 또 훌륭하다. 어른들도 충분히 즐길 수 있는 웬만한 라이브액션 영화보다 월등한 만화영화로 오히려 아주 어린 아이들이 충분히 소화하기엔 다소 내용이 복잡하고 어둡다. 
드림웍스의 대하 스펙터클 액션 모험극인데 굉장한 액션 외에도 가족관계와 개척과 모험정신 그리고 청년의 성장기 및 우정과 로맨스까지 다양한 내용을 화려하고 장엄한 화면 속에 일사분란하게 그렸다. 크레시다 카웰의 영 어덜트를 위한 동명소설 시리즈를 바탕으로 각본을 쓰고 또 연출한 딘 드블로이스 감독의 솜씨가 가히 거장급이다.
2010년에 나온 전편에서 5년쯤 지났다. 외딴 바이킹 마을 버크 주민들은 이제 입에서 불을 내뿜는 용들과 평화공존하며 산다. 청년이 된 모험심 강한 용감한 개척자 히컵(제이 바루켈 음성연기)이 자기가 사랑하는 까만 색깔의 용 투스리스를 타고 역시 용을 탄 자기 애인으로 톰보이인 애스트리드(아메리카 훼라라) 및 다른 친구들과 함께 공중비상 용 달리기 시합을 하는 장면으로 시작된다. 이 장면은 ‘해리 포터’ 시리즈의 퀴디치 경기를 연상시킨다.
마을 지도자로 히컵의 아버지인 스토익(제라드 버틀러)은 아들이 자기 대를 이어줄 것을 바라나 모험심 강한 히컵은 그런 책임을 지기보다는 버크의 경계를 넘어 있을 다른 나라에 대한 탐험에 더 관심이 있다.
히컵과 애스트리드는 어느 날 나들이를 나갔다가 노예로 삼기 위해 용들을 잡는 해적 에렛(킷 해링턴)과 그의 졸개들에 붙잡힌다. 에렛은 세상을 지배할 권력에 눈이 먼 사악한 용 사냥꾼 드래고 블러드비스트(자이먼 훈수)의 하수인. 히컵은 여기서 드래고의 흉악한 계획을 막기 위해 애쓰는 자기들 외에 또 다른 용을 타고 비상하는 사람들이 있다는 것을 안다. 그리고 히컵과 애스트리드는 투스리스의 막강한 불의 힘을 빌려 여기서 탈출한다.
이어 히컵은 들은 대로 자기와 같은 마음을 지닌 이 사람들을 만나기 위해 마을을 떠나 곧 이어 아름다운 얼음으로 둘러싸인 나라에서 용들과 다른 비상하는 온갖 파충류(다채로운 색깔과 모습을 한 용들의 애니메이션이 진풍경이다)들과 20년간을 살아온 여인 발카(케이트 블랜쳇)를 만난다. 이 얼음나라는 ‘용 중의 용’이라 불리는 비윌더비스트가 지배하고 있다. 
그리고 히컵은 뒤늦게 자기를 찾으러 온 아버지와 애스트리드와 함께 발카로부터 자신의 과거를 배우고 아울러 자신의 앞날의 운명에 대해서도 깨닫게 된다. 이어 지고한 희생이 일어나고 히컵은 마을 사람들과 함께 버크를 침공해 온 드래고 일당을 맞아 대결전을 벌이는데 이 전투장면이 전쟁 극영화를 방불케 한다.
액션과 감정적인 부분을 균형을 맞춰 분배하고 있는데 무엇보다 플롯이 매우 다단하게 이어져 흥미진진한 옛날 얘기를 듣는 것 같다. 색깔이 눈이 따갑도록 알록달록하고 음악이 흥겹다. 제3편이 나오도록 얘기가 끝난다. PG. 전지역. ★★★★(5개 만점)
                                                      <한국일보 편집위원/hjpark1230@gmail.com>



‘남 남쪽 섬의 나라’



40여년 전 월남전이 막바지에 이르렀을 때였다. 뒤늦게 군에 가 동해안 야간보초를 서고 있는데 분초에서 즉시 들어오라는 지시가 내렸다. 월남 파병령이 떨어졌으니 더플백을 싸놓고 휴식을 취하라는 것이었다. 전쟁에 나가게 됐구나 하고 취침에 들어갔다.
그런데 이튿날 아침 돌연 이 명령이 취소됐다는 연락이 왔다. 난 다시 M16 소총을 메고 허리에 수류탄을 매달고 해안으로 보초를 서러 나갔다. 그 때 내가 월남전에 갔더라면 난 아마 죽었을지도 모른다.  
우리가 미국에 진 빚을 갚기 위해 대리전을 치른 베트남에 갔다 왔다. 윤일로가 ‘남 남쪽 섬의 나라 월남의 달밤’이라며 지리학상으로 틀린 노래를 부른 베트남의 항구도시 다낭에서 열린 대한항공의 조현아 부사장이 마련한 기내식과 영화 관계자들의 모임에 초청을 받았다.
베트남하면 ‘디어 헌터’와 ‘지옥의 묵시록’을 통해 본 살육의 땅이라는 선입견부터 떠오른다. 둘 다 내 중ㆍ고등학교 친구들인 황석영이가 글을 쓰기 위해 자진 입대해 전쟁을 겪었고 육사를 졸업하고 소위로 임관한 신양호가 소대를 이끌고 치열한 전투 끝에 부상을 입었던 전쟁터로 기억되는 것이 베트남이다.
그러나 우리나라 젊은이들이 6.25를 모르듯이 베트남 젊은이들도 그들의 전쟁에 무심했다. 내가 묵은 올라라니 호텔의 청년 직원에게 “한국이 월남전 때 너의 나라 사람들을 상대로 싸운 것을 아느냐”고 물으니 그는 토끼처럼 눈을 동그랗게 뜨고 모른다고 고개를 내저었다.
공산국가였던 적의 나라에 관광객으로 찾아와 한국 주인의 해변식당에서 해산물과 함께 소주를 마시고 청춘 남녀들이 요란한 음악에 맞춰 광란의 춤을 추는 클럽 인파 속에 서 있던 나는 역사의 역설을 생각지 않을 수가 없었다.
이젠 사회주의 국가가 돼 시장이 개방되면서 국민들이 돈벌이에 치열하다는 것이 오랜 역사를 지닌 무역항 도시 호이안으로 가는 관광버스 안내원의 말이다. 그는 “모두 돈과 집과 차가 있는 보다 나은 삶을 위해 열심이다”고 알려줬다. 호이안의 노점에서 국가의 영웅인 호치민의 얼굴이 새겨진 매그닛을 사면서 새삼 자본주의의 위력을 실감했다.
호이안은 ‘귀신 잡는 해병’ 청룡부대가 주둔했던 곳. 다낭에는 아직도 미 해병이 썼던 거대한 콘크리트 구조물이 남아 있다. 전쟁이 남기고 간 오물처럼 보인다.
그런데 요즘 베트남 사람들은 한국을 매우 동경하고 있다고 현지 한국인이 알려줬다. 한류바람 외에도 전쟁을 겪고도 잘 사는 한국의 발전을 모델로 삼고 있다는 것. “안녕하세요” “감사합니다”는 말은 어디서나 들을 수 있다.
조반으로 매일 맛있는 쌀국수만 먹은 숙소의 아오자이를 입은 리셉셔니스트는 “A급 리조트호텔에 취업하기 위해 한국어를 공부하고 있다”며 미소를 지었다. 호텔 식당에서는 ‘언체인드 멜로디’와 ‘리듬 오브 더 레인’ 같은 옛날 미국 팝송을 계속해 틀어댔다.  
그런데 객실이 300여개나 되는 호텔이 텅텅 비어 이유를 물었더니 최근 중국과의 영토분쟁으로 중국 관광객들과 안전을 우려한 다른 외국인들이 예약을 취소했기 때문이라고 한다.
숙소에서 한강(서울의 한강과 이름이 같다)을 건너 다운타운에 가는 길에 오토바이가 넘쳐흐른다. 아빠 엄마 아이가 탄 가족용 자가용인데 거리에 신호등이 많지가 않다. 베트남 제3의 도시 다낭은 사방에서 공사가 진행 중인 붐타운으로 한국의 1960년대를 연상시킨다.
다낭보다는 유서 깊은 호이안이 진짜 구경거리다. 호이안 올드시티는 1999년 유네스코에 의해 세계문화유산으로 지명된 후 관광으로 먹고 사는데 작은 도시에 호텔만 줄잡아 70여개요 연중 관광객이 300여만명에 이른다고. 관광객들로 거리가 바글바글 댄다.
전쟁에도 파괴 안 된 옛 모습 그대로로 시장바닥에 들어서는데 삿갓을 쓰고 베트남 지게에 바나나 등 과일을 담아 파는 아주머니들이(사진) 사달라는 미소를 보낸다. 기념품을 파는 노점에서 영어를 기차게 잘 하는 허슬러 같은 젊은 주인으로부터 매그닛과 기념품을 사고 값은 달러로 냈다. 1달러가 2만동으로 어디서나 달러가 통용됐다. 달러벌이를 적극 권장하고 있음에 분명했다.
낮이고 밤이고 덥고 끈끈하다. 걷는데 온몸에서 땀이 주룩주룩 흘러내린다. 옛날에 에어컨 없던 서울의 여름밤 더위와 습기에 지쳐 후줄근하니 가사상태에 빠졌던 무기력감이 사로잡는다.  
다낭에 도착한 이튿날 새벽 바다로 면한 호텔방 창문이 노랗게 달아오른다. 커튼을 여니 바다 아래서 불뚝불뚝 치솟아 오르는 태양이 자기 몸을 붉게 태우다 못해 백열을 내뿜으며 치를 떤다. 문득 강원도 해안 보초 생각이 났다. 그 때 난 매일 아침 저 불덩어리를 봤다. 베트남은 정말로 덥고 끈적끈적했다.  <한국일보 편집위원/hjpark1230@gmail.com>


2014년 6월 10일 화요일

우리가 최고야! (We Are the Best!)

음악 통해 우정 맺고 삶의 방향 찾는 10대들


13세 난 펑크밴드의 소녀 멤버들인 헤드빅(왼쪽부터)과 보보와 클라라.

비틀즈에 미친 두 10대 소녀의 향수감 가득한 덴마크 영화 ‘트위스트 앤 샤웃’을 연상시키는 스윗하고 따스한 스웨덴 영화로 영화 속의 로큰롤에 심취한 반항적인 세 10대 초반의 소녀들처럼 약간 과격하고 야단스러우면서도 앙증맞고 귀엽다. 따분한 일상과 가정환경에 신물이 난 소녀들이 서로 성격은 다르면서도 음악을 통해 우정을 맺고 즐거움과 삶의 방향을 찾는다는 10대용 영화이지만 남녀노소가 모두 즐길 수 있는 즐겁고 경쾌하고 정신적으로도 고무적인 영화다.
펑크음악이 있는 소녀들의 성장기인 영화의 시간대와 장소는 1982년의 스톡홀름. 안경을 낀 13세난 중학생 보보(미라 바르카머)는 조숙하고 똑똑한 소녀로 일상적인 것에 반항하는 톰보이. 언뜻 보면 남자인지 여자인지를 분간 못할 헤어스타일에 복장차림이다. 보보와 동갑인 친구 클라라(미라 그로쉰)도 역시 조숙한 반항아로 모호크 헤어스타일을 한 남녀동성체 같은 모습의 아이. 
오히려 홀 엄마를 돌봐야 하는 보보는 클라라보다 똑똑하긴 하나 말발 세긴 클라라에게 못 따라간다. 클라라는 자기가 주인 노릇 못하면 견디지를 못하는 소녀다. 이 둘의 잡다한 우정의 모습이 에피소드식으로 묘사된다. 영화 전체가 일관성 있는 얘기로 진행된다기보다 에피소드식이다.
보보와 클라라는 다 특별한 음악적 재능이 없는데도 그냥 속풀이 겸 화풀이의 수단으로 차고에서 2인조 밴드를 결성하고 클라라가 리드싱어 노릇을 자처한다. 둘은 아무래도 음악적 소질이 있는 동지가 필요하다는 것을 절감하고 클래시컬 기타에 재능이 있는 동갑내기로 하늘하늘한 헤드빅(리브 리모인)을 새 멤버로 초청한다. 헤드빅 역시 경직된 독실한 기독교 신자인 부모 밑에서 자라 숨이 막힌다. 
셋이 펑크밴드를 구성하고 신나게 노래하고 연주를 하는데 그 중에서도 걸작은 ‘브레즈네프 앤 레이건 퍼크 오프!’라는 노래. 별 볼일 없던 밴드가 음악적으로 진보하면서 학교 음악선생님의 눈에 띄어 커뮤니티센터의 크리스마스 콘서트 무대에 오른다. 셋은 청중들의 열화와도 같은 박수갈채를 받는다. 그런데 이 셋이 청년들로 구성된 펑크밴드 멤버들을 만나게 되면서 세 소녀 간의 감정적 성숙도의 틈새가 벌어진다.                       
세 소녀 역의 배우들의 연기가 기차게 좋고 성숙됐다. 셋의 콤비네이션도 100%다. 부모님들은 딸뿐만 아니라 아들도 함께 데리고 가서 즐거운 시간을 가지기를 적극 권한다.  이 영화는 감독 루카스 모디손의 아내 코코의 반자전적 그래픽 소설이 원작이다. 
LA 지역 일부극장. New York(안젤리카 필름센터, 엘리노 부닌 필름센터). ★★★★(5개 만점)  
                                                            <한국일보 편집위원 / hjpark1230@gmail.com>



폴트 인 아우어 스타즈(The Fault in Our Stars)

암에 걸린 10대 남녀의 가슴아픈 사랑


헤이즐(셰일린 우들리·왼쪽)과 거스(앤셀 엘고트)가 서로 얼굴을 맞대고 사랑에 취해 있다.

둘 다 암을 앓는 10대 남녀의 청순가련하고 순진한 첫 사랑을 곱게 그린 몹시 센티멘털한 멜로드라마로 가끔 다소 들쩍지근하긴 하지만 두 주인공과 작품의 모양과 심성이 아름다워 두 사람과 함께 가슴 깊이 앓이를 하게 된다. 약간 ‘러브스토리’ 분위기가 난다.  
존 그린의 영 어덜트를 위한 동명의 베스트셀러가 원작으로 제목은 셰익스피어의 연극 ‘줄리어스 시저’에 나오는 대사. 의역을 하면 ‘우리의 운명은 우리 탓이 아니다. 우리는 그것을 마음대로 다룰 수가 없다’는 뜻.
삶과 죽음이라는 대명제 하에 10대의 순진하고 가슴 떨리는 첫 사랑과 희열과 아픔과 슬픔  그리고 상실에 대한 두려움과 희망 및 궁극적인 운명의 수용을 주도면밀하고 차분하게 서술하고 있는데 특히 이들 복잡다단한 감정의 내밀한 모습을 정성껏 꾸밈없이 표현한 두 주인공의 호흡이 참 잘 맞는다. 그야말로 찰떡궁합인데 헤이즐 역의 연기파 셰일린 우들리와 거스 역의 앤셀 엘고트는 ‘다이버전트’에서 오빠와 여동생으로 공연한 바 있다.           
울지 않으려고 안간힘을 썼는데도 눈물이 줄줄 흘러내리는 최루영화로 클리넥스 작은 통 하나씩 들고 가 관람하기를 조언한다. 
생에 대해 정면 돌파형으로 운명을 받아들이는 헤이즐 그레이스 랭캐스터(우들리)는 암환자로 늘 산소통을 끌고 다닌다. 백만달러짜리 미소를 짓는 다소 독선적으로 자신만만한 어거스터스 워터스(엘고트)는 망각되기를 두려워하는 아이로 암으로 다리 하나를 잘라냈다.
둘은 암환자들의 모임에서 만나는데 서로 첫 눈에 반하지만 서서히 관계를 맺으면서 한참을 친구처럼 지낸다. 이들 외에 중요한 역을 하는 사람들이 헤이즐의 건강에 온 신경을 쓰는 어머니(로라 던)와 거스(어거스터스의 애칭)의 낙천적인 성격의 친구로 역시 암을 앓는 아이잭(냇 울프).
헤이즐과 거스는 서로의 꿈과 생각을 나누면서 친구로부터 연인 관계가 되는데 사랑의 기쁨에 희열하면서 웃다가도 시한부 삶이란 운명 앞에서 불안과 고뇌로 울고 아파한다. 그러나 둘은 결코 절망하지 않고 늘 ‘언제나’라는 말로 다시 마음을 곧추 세운다. 그것이 바로 사랑의 힘이다. 
영화의 하이라이트는 헤이즐이 자신에게 큰 영향을 준 소설의 작가 페터 밴 후텐(윌렘 다포)이 살고 있는 암스테르담에 거스와 어머니와 함께 방문하는 장면. 그림엽서처럼 아름다운 도시를 배경으로 헤이즐과 거스는 후텐을 방문하고 앤 프랭크가 숨어 지내던 다락방에 올라가 시시각각으로 다가오는 죽음의 촉수 앞에서도 결코 인간의 선을 포기하지 않았던 앤의 마음에 감동, 뜨거운 포옹을 나눈다. 헤이즐과 거스의 사랑은 무르익고 둘은 여기서 처음으로 서로의 몸을 나눈다. 그 정경이 아름답다.
우들리와 엘고트가 다 연기를 아주 잘 하는데 특히 감탄을 금치 못할 것은 우들리의 연기다. 무슨 역을 맡아도 잘 하는데 여기서도 다소 다 큰 소년 같은 엘고트에 비해 심지가 단단한 연기를 하면서 영화의 기둥 노릇을 한다. 대성할 배우다. 영화의 결점이라면 암과 죽음의 영화치곤 작품이 다소 온화한 동화적으로 처리된 것. 그러나 보면서 실컷 울게 되는 모든 청춘의 영화다. 조쉬 분 감독. 
PG-13. Fox. 일부지역. ★★★★(5개 만점)   <한국일보 편집위원 / hjpark1230@gmail.com>

‘다른 여자' 캐메론 디애즈


“남자가 날 배신해도 난 보복할 배짱 없어”


현재 히트하며 상영 중인 뉴욕의 여변호사가 뒤늦게 자기 애인이 유부남인 것을 발견한 뒤 남자의 부인과 남자의 또 다른 젊은 애인과 함께 동지가 돼 남자에게 복수를 하는 여성용 코미디‘다른 여자’(The Other Woman)에서 여변호사로 나온 섹시 스타 캐메론 디애즈(41)와의 인터뷰가 4월 베벌리힐스의 포시즌스 호텔에서 있었다. 이국적 마스크(아버지가 쿠바계)의 늘씬한 금발미녀인 디애즈는 질문에 커다란 제스처와 함께 새빨간 루지를 칠한 입을 크게 벌리고 “흐 흐 흐 흐”하고 웃어대면서 유머와 위트를 섞어 거침없이 대답했다. 에너지 덩어리인 디애즈는 솔직하고 지혜로운 여자라는 인상을 받았는데 대답하기 싫은 질문에는 딱 잘라 거절했지만 상냥함을 잃지 않고 질문에 응했다. 기자가 그에게“당신은 유부남을 사랑할 수 있는가”라고 묻자 디애즈는“노”라고 대답하면서“당신 지금 내게 구애하는 거예요”고 농담을 건넸다. 이에 기자는“난 당신 애인되기엔 키가 너무 작다”고 말하자 디애즈는 깔깔대며 웃었다. 인터뷰 후 디애즈와 사진을 찍을 때 기자가 다시“난 너무 작아”라고 말하자 디애즈는“아니야, 내가 하이힐을 신어서 그래요. 유 아 스위트”라며 기자를 위로했다.

*당신은 너무 예뻐 남자로부터 배신을 당해 본 적이 없겠지만 만약에 남자에게 배신을 당한다면 어떤 복수를 하겠는가.
- 난 보복할 만한 배짱이 없다. 가장 좋은 보복은 배신한 사람으로부터 돌아서 그저 가버리는 것이다. 그게 남자의 가슴에 비수를 찌르는 것이다.

*남자의 어떤 면이 여자에게 큰 매력을 준다고 보는가. 그리고 남자는 또 여자의 어떤 점에서 매력을 느낄까.
- 남녀가 서로에게 끌리는 가장 큰 매력은 진정성이라고 생각한다. 스스로 진짜 자신이 누구인지를 깨닫고 그런 진정성으로서 상대에게 접근한다면 매력 만점이라고 본다. 내가 매력을 느끼는 남자도 이런 사람이다.

*당신은 또래의 스타들과 사이가 좋고 경쟁이나 우열의 비교를 안 하면서 잘 지내는 것으로 알려졌는데 어디서 그런 것을 배웠는가.
- 부모님에게서다. 난 16세 때부터 모델을 했는데 같은 모델 친구들과 함께 모델 자리 얻으러 가곤 했다. 누구는 선발되고 또 누구는 빈손으로 돌아오곤 했다. 이 때 부모님은 내게 남이 가지고 있는 것은 네 것이 아니니 탐내지 말라고 가르쳐 주었다. 남들이 가진 것을 축하해 주라면서 네가 가진 것과 네가 남에게 줄 수 있는 것을 귀하게 여기라고 말했다. 그저 최선을 다하면 된다고 격려했다. 그래서 난 어려서부터 남과 경쟁을 하지 않게 됐다. 나의 경쟁상대는 나다. 

*남의 거짓말에 속거나 배신당해 본 적이 있으며 그렇다면 당신은 거기에 어떻게 반응했나. 
- 거짓은 배신이다. 난 거짓이나 배신을 당하지 않기 위해 그럴 만한 상황을 피해 다닌다. 서로 명확히 자기의 뜻을 전달할 수 있는 사람들과만 관계를 가지려고 한다. 물론 나도 거짓에 속고 배신도 당해 봤지만 그 내용을 여기서 밝히고 싶지는 않다.

*당신도 이 영화에서처럼 당신과 매우 다른 성격의 여자 친구가 있는가. 여자 친구란 당신에게 얼마나 중요한가.
- 내게 있어 여자 친구란 모든 것이다. 나도 나와 아주 판이한 여자 친구들이 있다. 여자 친구는 내 삶에 있어 큰 부분을 차지하는데 특히 영화계의 친구들이 내겐 매우 중요하다. 우린 함께 자주 움직이곤 하는데 이렇게 공동생활을 하면서 서로 삶을 최대한으로 즐기고 또 함께 성장한다. 그래서 난 이 직업을 사랑한다.

*당신이 참지 못할 것은 무엇인가.
바람둥이에게 농락당한 세 여자. 레즐리 맨(왼쪽부터), 캐메론 디애즈, 케이트 업턴.
- 다행히도 난 이제 어느 정도 나이를 먹어 경험에 의해 과거처럼 어리석은 선택을 하지 않기 때문에 참지 못할 것이 더 이상 없다고 해도 되겠다. 이젠 더 이상 과거처럼 가치 없고 쓸모없는 것들의 목록을 가지고 있지 않다. 난 다만 이젠 내가 있어야 할 곳의 나 자신을 계속해 찾고 싶다. 내 생활은 지금 완숙하고 난 그것에 대해 감사하고 있다.

*영화 처음에 선데이 러브에 관한 노래가 나오는데 당신의 일요일은 어떤 것인가.
- 받아들일 수 있는 것을 최대한으로 흡수하는 날이다. 영혼을 가득히 채우고 나를 행복하게 하는 것들로 내 주위를 감싼다.

*당신이 여자들의 몸에 관해 책을 쓰게 된 동기는 무엇인가.
- 내가 39세 때 썼는데 주위의 여자들이 자기 몸에 대해 무지하고 자기 몸을 증오하며 어떻게 해야 할지를 모르겠다는 말들을 하는 것을 듣고 쓰기로 결정했다. 40년 동안이나 자기가 살아온 몸에 대해 모른다니 말이 되는가. 그것은 교육 부족 때문이다. 자기 몸은 자기만이 건강하게 지키고 돌봐야 하는 각자의 책임이다. 나는 여자들이 적당한 식사방법과 육체적 활동 그리고 자기들의 몸이 과학적 수준에 의해 어떻게 작용하는지를 모른다는 것을 발견하고 글을 쓰기로 했다. 사람은 자기 몸의 가장 작은 부분만 알아도 자기 몸과의 관계가 바뀌게 된다. 그와 같은 이해와 지식은 당신으로 하여금 세상의 모든 것을 달리 보게 하고 과거와 달리 삶에 참여하게 하는 힘을 주게 된다. 

*당신은 유부남을 사랑할 수가 있는가.
- 그럴 수 없다. 그런 쪽으로는 전연 관심도 없다. 미안하지만 그 질문 나에 대한 데이트 요청인가.

*이 영화에 매력을 느껴 만들기로 한 이유가 무엇인가.
- 여자들 간의 우정이다. 난 복수엔 관심 없다. 그것은 단지 코미디를 위한 플롯일 뿐이다.  여자들의 관계에 대해 얘기를 한다는 것은 내게 매우 중요하다. 그리고 또 여자 관객들 특히 젊은 여자들이 보라고 만들었다. 스튜디오들은 10대 남자 아이들을 목표로 많은 영화를 만드는데 젊은 여자들도 화면에서 자신들의 얘기를 한다는 것을 알게 되면 극장으로 몰려든다. 사실 남자들보다 더 떼를 지어 구경한다.

*당신은 이 영화에서처럼 매우 민감한 것에 대해서도 그렇게 공개적이고 대담한가.
- 그런 것 같다. 난 수년 전에 영화 ‘메리에겐 뭔가 있어’에서는 남자의 정액을 머리칼에 묻히기도 했다. 따라서 난 그런 것들을 별로 두려워하질 않는가 보다. 난 늘 매우 직선적이었고 여러 가지에 대해서 별로 민감하지를 않다.

*여자가 직업과 어머니 노릇을 어떻게 서로 균형을 맞춰 할 수가 있다고 생각하는가.
- 난 어머니가 아니어서 내 경험을 말할 수는 없지만 회사 고위직에 있는 내 친구들의 경우를 들어 말하겠다. 회사 일을 잘 하는 여자가 엄마 노릇도 잘 하더라. 그러나 그러면서도 때로 두 가지 다 못하겠다고 포기하는 경우도 봤다. 둘 다 최고의 수준으로 할 수 있다고 말하는 사람을 난 믿을 수가 없다.

*당신도 조지 클루니처럼 결혼을 안 하는데 도대체 이유가 무엇인가.
- 사람들은 자기가 선택한 것을 남도 선택하기를 바란다. 그래야 자기가 한 선택이 옳고 또 그것에 대해 기분 좋게 느끼는 것 같다. 결혼한 사람이 미혼자 보고 결혼하라고 적극적으로 권유하는 것은 마치 자기가 먹는 스테이크가 맛있다고 채식주의자에게 고기를 강요하는 것이나 마찬가지다. 선택은 자신이 하는 것이다. 난 모든 가능성을 열어 놓고 있는 사람으로 특별히 선택을 하지 않는다. 난 결혼을 안 하겠다고 선언한 적도 없고 아기를 안 가지겠다고 선언한 적도 없다. 난 미리 계획을 세우지 않는다. 난 무얼 공언하는 사람이 아니다.

*당신은 현대 여성의 전형과도 같은 여자로 모든 것을 다 가진 것 같아 부러운데 이 점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는가.
- 내가 아이가 없어서 나만의 시간이 많아서 그렇다. 많은 내 친구들은 자신의 행복에 대해 생각할 시간은 없고 늘 남의 행복에 대해서 걱정을 하고 있다. 이렇게 자유롭다는 것은 축복이다. 난 늘 내 개인적 성장과 인간으로서의 진화를 생각하고 있다. 이를 위해 내가 살면서 배울 수 있는 것을 최대한으로 사용하고자 한다. 

*여름에 나올 당신의 다음 영화 ‘섹스 테입’에 대해 말해 달라.
- 그것은 내 진짜 섹스 테입은 아니다. 내 것은 오는 겨울에 나온다(이 농담을 하고 디애즈는 깔깔대고 웃었다). 아이들을 낳고 10여년 간 잘 살고 있는 모두 직장인인 부부가 서로 사랑은 하면서도 아이들 돌보고 직장 일로 피곤해 별로 섹스관계가 없다. 그러던 차에 내가 어느 날 밤 남편(제이슨 시겔)에게 온갖 자세로 섹스를 하면서 그것을 아이패드로 찍자고 제안을 한다. 그리고 신나게 섹스를 하고 나서 내가 남편에게 기록한 것을 지우라고 했는데 남편이 그것을 안 지워서 탈이 난다는 얘기다.
                                                                          <한국일보 편집위원 / hjpark1230@gmail.com>


서부에서 죽는 백만가지 방법 (A Million Ways to Die in the West)

지저분하게 웃기는 코미디 웨스턴물


안나(샬리즈 테론)가 알버트(세스 맥팔레인)에게 총 쏘는 법을 가르쳐주고 있다.

2012년에 나와 빅히트한 음탕하기 짝이 없는 장난감 곰 영화 ‘테드’를 제작하고 올해 오스카 쇼의 사회를 본 세스 맥팔레인(40)이 주연하고 감독하고 공동으로 제작과 각본도 쓴 로맨스를 곁들인 코미디 웨스턴이다. 
맥팔레인은 어디까지 가는지 보겠느냐는 식으로 말끝마다 미성년자 섹스 등 음탕한 대사와 이맛살을 찌푸리게 되는 소리를 동반한 체내 온갖 더러운 배설과 분비물에 오줌을 누는 양의????????????? 성기와 듣기에 거북한 인종차별적 발언을 코미디라는 명목 하에 만취한 자가 노상 방뇨하듯이 배설하고 있다.
보는 사람에 따라 완전히 의견이 갈릴 영화로 너무 음탕하고 더러워 웨스턴이라는 장르에 어울리지를 않는다. 원래 코미디 웨스턴은 흔치 않은데 멜 브룩스의 ‘불타는 안장’을 제외하곤 흥행서 성공한 경우도 드물다. 이 영화는 ‘불타는 안장’과 함께 오프닝 크레딧에 나오는 모뉴먼트 밸리에서 볼 수 있듯이 존 포드의 웨스턴을 경배하고 또 모방하고 있다.
볼만한 것은 유타와 뉴멕시코주에서 찍은 삭막하게 아름답고 광활한 서부 정경. 그러나 제목에서 알 수 있듯이 영화의 서부는 사람이 못 살 곳으로 나온다. 영화에서 가장 좋은 것은 조엘 맥닐리의 음악. 오프닝 크레딧과 함께 하늘 높이 치솟고 광야를 질주하는 듯한 음악은 고전 웨스턴의 음악을 연상시킨다. 이와 함께 콧수염 화장품 가게를 운영하는 포이와 그의 친구들이 헛간에서 춤추면서 부르는 ‘당신이 콧수염이 있다면’도 신난다.
1882년 애리조나주의 작은 마을 올드 스텀프. 목양업자인 알버트(맥팔레인)는 마을 건맨과의 결투에서 비겁하게 후퇴하는 바람에 눈이 큰 애인 루이즈(아만다 사이프리드)로부터 버림을 받는다. 그리고 루이즈는 콧수염 화장품 가게를 운영하는 포이(닐 패트릭 해리스)에게 간다.
이를 위로하는 사람이 알버트의 친구 에드워드(조반니 리비시)와 그의 직업창녀 루스(새라 실버맨). 그런데 에드워드와 루스는 독실한 기독교 신자여서 혼전 섹스를 안 한다. 
이 마을에 서부의 악명 높은 킬러 클린치(리암 니슨)의 아름답고 섹시하고 총 잘 쏘는 아내 안나(샬리즈 테론)가 도착하면서 비겁자로 낙인찍힌 알버트의 인생이 크게 방향전환을 하게 된다. 알버트의 어디가 좋아서 그런지 이해난감이나 안나는 알버트에게 상냥하게 굴면서 그에게 총 쏘는 법을 가르쳐 준다. 물론 둘 사이에 로맨스가 모락모락 피어오른다.
이어 마을에 클린치가 도착, “내 아내와 키스를 한 놈이 누구냐”면서 무고한 사람을 총으로 쏴 죽인다. 이에 겁이 난 알버트는 ‘걸음아 나 살려라’며 마을에서 도망을 가다가 인디언에게 붙잡힌다. 그러나 인디안 추장 코치즈(웨스 트루디)는 알버트의 자초지종을 듣고 그를 돕는다. 여기서 용기를 되찾은 알버트는 클린치와 맞서기 위해 마을로 돌아간다. 
말만큼이나 행동으로도 지저분하게 웃기는 코미디인데 너무 더럽고 냄새가 나 영화를 보고나서 샤워를 해야 할 것이다. 이 영화와 글렌 포드가 나온 고전 코미디 웨스턴 ‘쉽맨’(The Sheepman)을 비교해 보면 재미있을 것이다. R. Universal. 전지역. ★★★5개 만점)
                <한국일보 편집위원 / hjpark1230@gmail.com>


         

‘멀레피슨트’ (Maleficent)

‘잠자는 숲속의 미녀’ 라이브 액션 입체영화


무서운 요정 멀레피슨트(앤젤리나 졸리)가“수리수리 마수리”하면서 마법의 힘을
발휘하고 있다.

디즈니의 만화영화와 차이코프스키의 발레곡으로도 잘 알려진 프랑스 동화 ‘잠자는 숲속의 미녀’(Sleeping Beauty)를 디즈니가 라이브 액션 입체영화로 만들었는데 아이들뿐 아니라 어른들도 즐겁게 볼 수 있는 가족용이다. 그런데 아주 꼬마는 보기가 좀 무섭겠다.
‘잠자는 숲속의 미녀’의 주인공은 나쁜 요정 멀레피슨트의 저주를 받아 영원한 잠에 빠진 오로라 공주인데 이 영화는 오로라 대신 멀레피슨트(앤젤리나 졸리니까 당연한데 멀레피슨트는 졸리가 가장 좋아하는 디즈니 만화영화 인물이다)를 주인공으로 내세워 왜 그가 사악한 요정이 되었으며 그는 과연 사랑에 의해 구원을 받을 수 있는가 하는 것을 묻고 있다.
영화에서 멀레피슨트와 오로라의 아버지인 국왕 스테판은 “참 사랑이란 없다”고 사랑을 부정하는데 이 영화는 여러 가지 얼굴을 한 진실한 사랑의 정체와 의미를 찾고 있기도 하다. 
‘잠자는 숲속의 미녀’를 독특하고 새롭게 해석한 작품으로 특수효과와 알록달록하고 화려한 시각미(촬영 딘 셈러)와 음악(제임스 뉴턴 하워드) 그리고 디자인과 의상 등이 다 좋은데 카리스마 가득한 것은 졸리의 무시무시한 모습과 연기다. 
검은 망토에 지팡이를 들고 거대한 날개와 황소 뿔을 등과 머리에 단 멀레피슨트는 화가 나면 초록빛 눈알에서 독기를 발산하면서 온갖 흉악한 마술을 부리고 새빨간 입술로 저주를 내뱉는다. 그렇지 않아도 윤곽이 뚜렷한 그의 얼굴의 광대뼈를 유난히 부각시켜 찔리면 크게 다치겠는데 갓난아이가 이를 보면 자다가 경기를 일으키겠다.
옛날 옛적 숲속 나라에 아름답고 착한 소녀 요정 멀레피슨트(엘라 퍼넬)가 살고 있었다. 소녀는 숲속의 기기괴괴한 동물들과 친구이자 그들의 일종의 지도자인데 그가 어느 날 인간의 나라에 사는 청년 스테판(잭슨 뷰스)을 만나면서 둘은 사랑에 빠진다.
그러나 멀레피슨트를 증오하는 노왕 헨리(케네스 크랜햄)가 멀레피슨트를 제거하는 자에게 왕위와 자기 딸을 주겠다고 공언하면서 권력욕에 눈이 먼 스테판이 멀레피슨트에게 접근해 그의 날개를 따간다. 그래서 과거의 연인이 서로 원수가 된다. 멀레피슨트의 스파이이자 심부름꾼 노릇을 하는 것이 까마귀 출신의 청년 디아발(샘 라일리).
왕이 된 스테판(샬토 코플리)이 딸 오로라(어린 오로라 역으로 졸리의 딸들이 나온다)를 낳고 성대한 세례식을 베풀면서 초대 받은 세 명의 요정 플리틀(레즐리 맨빌)과 크놋그래스(이멜다 스턴튼)와 티슬윗(주노 템플)이 날아와 오로라에게 축복을 한다.
그러나 이때 이 자리에 복수심에 불타는 초대 받지 못한 손님 멀레피슨트가 나타나 오로라에게 저주를 내린다. 오로라가 16세 되는 날 물레가시에 손을 찔려 영원한 잠에 빠지게 되는데 오직 참사랑의 키스만이 오로라를 잠에서 깨어나게 유예조건을 달아준다. 
이에 스테판은 왕국의 모든 물레를 압수해 불에 태우거나 지하에 감추고 세 요정으로 하여금 오로라를 먼 외딴 곳에 데려가 16세가 될 때까지 키우라고 명령한다. 오로라는 무럭무럭  자라면서 숲의 나라에까지 가 멀레피슨트와 만나고 멀레피슨트는 오로라의 착한 마음과 순수에 서서히 감동이 돼 굳어졌던 마음이 차차 녹게 된다. 그리고 오로라는 숲속에서 프린스 차밍 필립(브렌턴 트웨이티스)을 만나 서로 첫 눈에 반한다. 
오로라가 16세가 되는 날 멀레피슨트의 저주가 실현되면서 오로라는 영원한 잠에 빠진다. 과연 오로라를 이 잠에 깨울 사람은 누구인가. 환상적인 면을 사실성과 잘 접목시킨 영화다. ‘아바타’의 프로덕션 디자이너로 오스카상을 탄 로버트 스트롬버그의 감독 데뷔작이다. PG. 전지역.    ★★★½(5개 만점)  <한국일보 편집위원 / hjpark1230@gmail.com>



‘해방자’



올 여름 할리웃보울 프로그램 중 이색적인 것 중 하나가 LA필 상임지휘자 구스타보 두다멜이 작곡한 영화음악 ‘해방자’(The Liberator-7월31일 연주)다. 영화 ‘해방자’(8월22일 개봉)는 스페인으로부터 남미를 해방시킨 베네수엘라 태생의 국민영웅 시몬 볼리바(1783~1830년)의 삶을 그린 대하드라마다.
두다멜도 베네수엘라 태생으로 그는 조국의 시몬 볼리바 심포니 오케스트라의 지휘자이기도 하다. 두다멜은 4월에 할리웃보울에서 있은 시즌 프로 소개 때 “할리웃에 살면서 영화음악을 작곡하는 것은 있을 법한 일”이라면서도 “그러나 큰 기대는 하지 말아 달라”고 말했었다.
베네수엘라 배우 에드가 라미레스가 시몬 볼리바로 나온 ‘해방자’(사진)를 봤는데 영화나 음악이나 특별히 새로울 것이 없었다. 영화와 음악이 모두 전형적인 고전 로맨틱 대하 서사극의 틀을 답습하고 있어 기시감이 가득하다. 영화는 덩지는 크나 심지가 굳질 못했다. 음악이 영화가 서정적이요 로맨틱한 부분에서는 장면에 끌려가듯이 달콤 나긋하다가 장엄하고 박력 있는 액션 신에서는 너무 앞서 나갔다.
소위 예술적인 클래시컬 음악은 영화음악을 2류 상품으로 얕잡아 보는 것이 요즘 추세이지만 2차 대전 전만해도 뉴욕 필 등 미국의 저명한 교향악단들은 영화음악 작곡가들의 작품을 서슴없이 연주했다.
자료에 의하면 1940년대만 해도 뉴욕 필은 히치콕의 ‘사이코’ 음악을 작곡한 버나드 허만의 칸타타 ‘모비 딕’과 비엔나 태생으로 에롤 플린이 주연한 칼부림 영화들인 ‘로빈 후드의 모험’과 ‘시호크’의 음악을 작곡한 에리히 볼프강 콘골트와 ‘벤-허’의 음악을 작곡한 모리스 자르의 오케스트라 작품들을 연주했다.
그런데 2차 대전 후 독일 음악계의 영향을 받은 편견적인 이상주의가 대두하면서 영화음악을 마치 클래시컬 음악의 서자 취급하게 됐고 이런 생각이 아직까지 음악계에 팽배하고 있다고 전문가들은 말한다.
그러나 이런 편견에도 불구하고 많은 클래시컬 음악 작곡가들이 영화음악을 작곡했다. 벤자민 브리튼, 아론 코플랜드, 프로코피에프 및 쇼스타코비치 등이 그 대표적 인물들이다. 레너드 번스타인과 안드레 프레빈 및 토루 타케미추 등도 다 두 분야의 음악을 작곡했다.
특히 할리웃의 영화음악은 히틀러를 피해 LA로 도망 온 많은 유럽 클래시컬 음악 작곡가들에 의해 큰 영향을 받았다. 이들 중에서 영화 음악인으로 가장 성공한 사람이 콘골트로 ‘로빈 후드의 모험’의 음악은 하나의 장려한 교향곡이나 다름없다. 내가 가장 좋아하는 러브 송 ‘세프템버 송’을 작곡한 쿠르트 바일도 역시 망명 작곡가다.
이들 망명 음악가들은 영화음악을 하나의 장르로 성립시키면서 사람들로 하여금 영화음악을 대중음악으로 받아들이도록 하는데 지대한 공로를 남겼다.
두다멜에게 LA 필의 지휘봉을 넘겨준 살로넨도 한때 영화와 콘서트 간의 간격을 이어 보자는 뜻으로 ‘필름하모닉’이라는 시리즈를 시도했었다. 살로넨이 ‘영화와 오케스트라를 위한 콘체르토’라고 명명한 시리즈는 영화음악 작곡가와 그가 선택한 영화감독이 서로 협력해 작품을 만든 뒤 스크린의 영상과 함께 LA 필의 연주로 음악을 감상하게 꾸며졌었다.
시리즈 첫 작품은 데이빗 뉴만(‘차이나타운’)이 작곡하고 일본의 미술가 요시타가 아마노가 그린 초현실적 애니메이션으로 마이크 스미스가 감독한 ‘천일야화’였다. 그러나 유감스럽게도 이 시리즈는 첫 회를 끝으로 중단되고 말았다.
클래시컬 음악 작곡가들이 영화음악을 작곡했듯이 영화음악 작곡가들 중에서도 클래시컬 음악을 작곡한 사람들이 적지 않다. 5월 초 오렌지카운티의 퍼시픽 심포니 오케스트라의 상임지휘자 칼 세인트 클레어는 저명한 영화음악 작곡가들이 지은 클래시컬 음악을 연주했다.
존 윌리엄스(‘조스’)와 제임스 호너(‘타이태닉’) 그리고 하워드 쇼(‘반지의 제왕’) 및 엘리옷 골덴탈(‘프리다’)의 작품이 연주됐다. 이들은 다 클래시컬 음악으로 훈련된 작곡가들로 4명이 통틀어 받은 오스카상은 무려 11개에 달한다.
요즘처럼 영화가 단순한 오락상품으로 취급 받기 전 할리웃 황금기에는 영화음악가들은 감독 못지않은 독립을 누리고 또 존경을 받았었다. 1930~40년대만 해도 스튜디오들은 자체 오케스트라를 보유하고 또 작곡가들을 계약 고용해 주옥같은 음악들을 창조해 냈었다.
버나드 허만은 늘 “영화음악 작곡가와 오페라 작곡가라는 것은 따로 없다. 그들은 모두 작곡가들이다”라고 강조했었다. 골덴탈도 “영화음악 작곡가들에 대한 편견이 쉽게 없어지진 않겠지만 대중이 즐기는 한 결국 이런 편견은 서서히 무뎌지게 될 것이다”고 내다 봤다. 그렇다. 음악은 음악이다.    <한국일보 편집위원 / hjpark1230@gmail.com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