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이야기

2018년 2월 28일 수요일

폭스트롯(Foxtrot)


이스라엘 군인이 라이플을 안고 폭스트롯을 추고 있다.

이스라엘군이 처한 비극적 현실, 초현실적으로 담아


척박하도록 사실적인 현실감과 저 세상 얘기처럼 초현실적인 분위기를 절묘하게 조화해 이스라엘의 병역의무제도를 신랄하고 대담하며 또 분노에 차 비판한 이스라엘 영화다. 
이스라엘군이 철딱서니 없는 젊은 사람들을 정치적 목표를 위해 사용해 일어나는 터무니없는 비극과 함께 이로 인한 이스라엘 민간인들이 감당해야 하는 슬픔과 고통과 심리적 손상과 함께 팔레스타인 측 사람들이 겪어야 하는 차별과 수모를 그리면서 이스라엘의 대 팔레스타인 정책까지 싸잡아 비판하고 있다. 그런 점에서 대단히 용감한 작품이라고 하겠다.
이런 슬픔과 고통은 감독의 초현실적 솜씨 탓에 희극적 느낌이 강하게 느껴지는데 비극과 희극이 거의 황당무계할 정도로 얄궂게 폭스트롯 댄스를 추고 있다. 이 영화를 만든 감독은 지난 2009년 순찰하는 탱크 속의 4명의 이스라엘 군인들의 협소감 가득한 드라마 ‘레바논’을 만들어 베니스영화제 대상인 황금사자상을 탄 새뮤얼 마오즈. 이 영화가 그의 두 번째 작품이다.
제목은 춤의 이름이자 변경 초소를 지키는 이스라엘 군의 암호. 영화는 세 부분으로 나뉘어 전개된다. 
먼저 최신식 아파트에 사는 건축가 마이클 펠드만(리오르 아쉬케나지)과 그의 젊은 부인 다프나(새라 애들러)에게 이스라엘 군인들이 찾아와 둘의 아들로 황량한 사막 한 가운데 있는 초소에서 근무 중이던 아들 조나산(요나탄 쉬레이)이 사망했다고 통보한다. 
다프나는 기절하고 마이클은 충격과 고통과 슬픔을 어쩌지 못해 우리 안의 짐승처럼 집안을 헤맨다. 그러다 자기가 기르는 개를 발로 걷어찬 뒤 화장실 안으로 들어가 바닥에 주저앉는다. 그리고 군이 아들의 죽음에 대해 뭔가 숨기고 있다고 의심한다. 
이어 장면은 마이클과 다른 3명이 지키는 변경 초소로 전이된다. 이 부분이 매우 초현실적이다. 이들은 지루해서 죽을 지경인데 낙타 한 마리가 지나갈 땐 순순히 차단기를 올려주다가도 팔레스타인 사람들이 지나갈 땐 야유를 한다. 그러나 이들이 악한 사람들은 아니다. 여기서 이들의 정체와 과거와 주위환경 그리고 이들이 무엇을 위해 싸우는가 하는 것들이 조명된다. 
한 군인이 라이플을 마치 자기 애인이나 되는 것처럼 두 팔로 꼭 끌어안고 폭스트롯은 이렇게 추는 것이라며 시범을 보여주는 장면에서 이들의 권태와 무료가 화면 밖의 보는 사람들에게까지 감염된다. 그리고 터무니없는 사건이 일어나면서 군 고급장교가 이들을 방문, 그런 일은 변경서 얼마든지 일어날 수 있는 일이라며 얼버무린다. 
마지막은 다시 펠드만의 집. 집 안은 처음과 달리 더럽고 난장판으로 집 안에서 무슨 일이 일어났다는 생각을 하게 만든다. 그리고 마이클과 다프나가 치열하게 싸우는데 처음과 달리 이번에는 다프나가 주도권을 쥐고 남편과 숨 막히는 신경전을 벌인다. 슬픔에 절은 부모의 고통을 통해 터무니없는 전쟁의 직접적인 결과를 사실적이면서도 희화적으로 그린 훌륭한 작품이다. 연기와 함께 이스라엘군의 초소가 있는 황량한 사막지대를 때로 밝고 때론 우중충하게 찍은 촬영이 좋다. ★★★★ (5개 만점) 
                                                                <한국일보 박흥진 편집위원/ hjpark1230@gmail.com>


아마데우스(Amadeus)


모차르트가 체코 프라하에서 초연되는 자신의 오페라를 지휘하고 있다.

모차르트 천재성에 질투의 눈 먼 궁정작곡가


체코 태생의 감독 밀로쉬 포만이 연출한 1984년 작으로 모차르트와 그의 라이벌로 오스트리아의 궁정 작곡가였던 이탈리아 태생의 안토니오 살리에리 간의 경쟁의식을 허구화한 걸작 드라마다. 원작은 피터 쉐이퍼의 연극 ‘아마데우스’로 쉐이퍼가 각색했다.
아카데미 작품, 감독, 각색, 남우주연(살리에리 역의 F. 머리 에이브래햄), 분장, 미술, 음향 및 의상상 등 총 8개 부문 수상작이다. 모차르트 역의 탐 헐스도 주연상 후보에 올랐으나 수상에 실패했다.
오페라 ‘마적’ ‘돈 지오반니’ ‘후궁으로부터의 도주’ 그리고 여러 편의 교향곡과 피아노 협주곡을 비롯해 ‘진혼곡’ 등 모차르트의 주옥같은 음악들이 전편을 통해 계속해 흐른다. 네빌 매리너 경이 지휘하는 아카데미 오브 세인트 마틴 인 더 필드 오케스트라가 연주했다.
이 영화의 주제는 모차르트가 대표하는 비범과 살리에리가 대표하는 평범함의 치열한 대결이다. 그러니까 이류의 일류에 대한 경쟁의식이다. 영화는 늙은 살리에리가 과거를 회상하며 자기가 모차르트를 죽였다고 고백하는 형식으로 전개된다.
18세가 후반 오스트리아 비엔나. 요젭 2세 황제(제프리 존스)의 궁정 작곡가 살리에리가 뒤늦게 도착한 모차르트의 천재적 음악성에 경탄하면서도 질시에 눈이 멀어 모차르트를 죽이고 모차르트가 작곡한 ‘진혼곡’을 자기 것으로 발표하려고 음모를 꾸미는 것이 중심 내용이다.
영화에서 모차르트는 아주 조야하고 상스럽고 철이 덜든 망나니로 묘사되는데 이런 모차르트를 처음 본 살리에리는 어떻게 신이 자기처럼 신심이 깊은 자를 외면하고 저런 상스러운 자에게 천재적 재능을 주었는가하고 실망과 분노에 떤다.
이어 모차르트의 오페라 ‘후궁으로부터의 도주’와 ‘피가로의 결혼’ 및 ‘돈 지오반니’와 ‘마적’ 등의 작곡 과정이 묘사되고 이와 함께 모차르트와 그의 아내 콘스탄제(엘리자베스 베리지)와의 관계가 이어진다.
모차르트가 ‘마적’ 작곡 중 쓰러져 병상에 눕자 살리에리는 모차르트가 ‘진혼곡’을 작곡하는 것을 도와준다. 모차르트가 음을 말하면 살리에리가 이를 악보에 옮겨 적는 식이다. 살리에리는 모차르트를 서서히 독살한 뒤 ‘진혼곡’을 자기 것으로 발표할 계획이다. 가난에 쪼달리던 모차르트는 죽고 묘비도 없이 공동묘지에 묻힌다. 마지막에 윌체어를 탄 살리에리를 에워싸고 모차르트의 하이에나의 울음소리 같은 웃음소리가 들린다. ★★★★★(5개 만점)
                                                              <한국일보 박흥진 편집위원/ hjpark1230@gmail.com>


러브리스(Loveless)


사랑이 없는 부모를 둔 알로샤가 실종되면서  부모는 심각한 후유증에 시달린다.

사랑없는 부모… 실종된 아들
수색과정서 드러나는 민낯들


사랑 없는 결혼을 끝내가는 부모의 갈등에 충격을 받아 집에서 사라진 아들을 찾으면서 겪는 부모의 후유증과 실종사건을 수사하는 경찰 그리고 수색에 나선 자원봉사대의 긴 수색과정을 통해 인간 영혼의 부식과 도덕적 무감각과 함께 현대 러시아 사회를 냉소적으로 비판한 엄청나게 심각하고 무게가 있는 러시아 영화다.
러시아 사회의 부패와 관료체제를 성경 속의 욥의 이야기를 빌려 우회적으로 비판한 걸작 ‘해수’(Leviathan)를 연출한 안드레이 즈비야긴체프의 작품으로 고통스럽도록 느리고 진지하다. 작년 칸영화제 심사위원상을 받았고 오는 3월 4일에 있을 오스카 시상식의 외국어 영화상 후보작이다. 
2012년 늦가을로 우중충한 잿빛 날씨가 을씨년스럽다. 두 사람의 사랑 부재에 한기가 느껴지는 부부 제니아(마리아나 스피박)와 보리스(알렉세이 로진)는 이혼 직전의 사이로 둘은 완전히 서로를 무시하고 미워하는 사이다. 제니아는 미장원 주인이고 보리스는 회사원으로 제니아에게는 부유한 사업가 애인 안톤(안드리스 케이쉬스)이 있고 보리스는 이미 임신을 한 애인 마샤(마리나 바실리에바)와 마샤의 어머니가 함께 사는 아파트에서 살고 있다. . 
부부는 살고 있던 모스크바 교외의 아파트를 매물로 내놓았는데 아파트가 팔리면 자신들의 12세난 아들 알료샤(마트베이 노비코프)를 누가 양육하느냐는 문제를 놓고 논쟁을 벌이는데 서로 안 맡으려고 한다. 이 때 제니아가 자기는 알로샤도 또 보리스도 사랑하지 않았다는 말을 하는데 이 말을 자기 방에서 들은 알로샤가 소리 없이 운다.
그리고 알로샤가 실종된다. 제니아는 아들이 실종된 것도 학교로부터 아이가 이틀이나 결석했다는 통보를 받고서야 안다. 이를 경찰에 신고하나 담당형사는 인력부족이라며 실종자 수색을 하는 자원봉사대에게 부탁해보라고 건의한다. 
이어 자원봉사대의 길고 긴 수색이 진행되는데 아파트 인근 숲과 버려진 건물 등을 샅샅이 뒤지나 별무효과다. 황량한 숲과 유리창이 깨지고 물이 고인 폐건물의 모습이 엄청나게 비관적인 영화 내용을 잘 뒷받침해주고 있다. 
부부는 혹시나 아들이 시골에서 혼자 사는 제니아의 어머니를 방문했을까 하고 찾아가는데 여기서 제니아의 찌든 과거의 현장이 노출되면서 안톤이 상징하는 부에 대한 제니아의 동경의 근원을 알게 된다. 부부는 비슷한 아이를 찾았다는 병원의 통보를 받고 갔지만 아들이 아니고 아들 또래의 사체도 역시 알로샤의 것이 아니다. 영화는 이와 함께 러시아와 우크라이나의 전쟁을 비롯해 러시아 시민들의 부에 대한 집착 등 러시아의 사회정치적 제반문제 등에 대해서도 비판하고 있다.            
영화는 알로샤의 실종 1년 여 후에 끝나는데 아들의 실종으로 인한 후유증을 앓는 보리스와 제니아의 모습을 보여주는 라스트신이 충격적이다. 사랑 없이는 그 누구도 살 수 없다는 것을 말해주는 슬프고 비관적으로 아름다운 작품으로 부부로 나온 배우의 연기가 좋은데 특히 영화에 잠깐 나오는 알로샤 역의 노비코프의 말 없는 표정 연기가 뛰어나다. 그리고 촬영과 형식미도 훌륭하다. ★★★★ (5개 만점) 
                                                            <한국일보 박흥진 편집위원/ hjpark1230@gmail.com>



초기 인간(Early Man)


덕(가운데)과 석기시대 인간들이 화이팅을 외치고 있다.

석기 vs 청동기 시대 원시인
액션, 유머 넘치는 축구 대결


옛날 스타일의 스톱 모션 만화영화를 만드는 영국의 아드만 스튜디오의 새 스톱 모션 만화영화로 이 스튜디오의 스타 감독 닉 파크가 만들었다. 파크 감독은 아드만의 인기 만화영화 ‘월래스와 그로밋’과 ‘션, 양의 영화’를 만들어 세계적으로 히트했는데 이번 영화도 온 가족이 즐길 만하다.
원시인들의 액션과 모험과 유머 그리고 영국 국민들이 광적으로 즐기는 축구가 있는 따스하고 향수가 배인 영화로 축구에 대한 찬양과 함께 인류공존의 평화 메시지마저 갖춘 작품이다. 농담도 즐겁고 유명 배우들이 맡은 음성연기도 좋다. 그러나 이 영화는 파크 감독의 전 영화들보다는 다소 재미가 떨어진다.
동굴에 사는 석기시대 인간들과 공룡들이 평화롭게 사는 지구에 거대한 별똥이 떨어진다. 그리고 원시인들이 뜨거운 별똥 조각을 공으로 사용해 발로 차면서 축구가 발명된 것이다. 그로로부터 수천 년 후 푸른 숲의 계곡이 삶의 터전인 인간들은 늙은 지도자 보브나(티모시 스팔) 밑에서 토끼 사냥을 하면서 평화롭게 사는데(그러나 꽤 많은 토끼를 매번 놓친다) 이 중에 젊고 야심만만한 덕(에디 레드메인)은 들소나 맘모스 같은 큰 짐승들을 사냥하자고 제의하나 먹혀들지 않는다. 덕의 친구는 호기심 많은 멧돼지 호그놉(닉 파크).
이 때 청동 갑옷을 입은 청동기시대 인간인 누스 경(톰 히들스톤)이 부하들을 이끌고 나타나 석기인간들이 사는 계곡을 점령하고 이들을 계곡으로부터 몰아낸다. 청동기시대 인간들이 계곡을 점령한 이유는 거기서 구리를 캐내기 위해서다. 한편 청동기시대 인간들은 대형 경기장에서 검투사 결투 스타일의 축구를 즐기는데 덕이 이 출입금지 지역에 몰래 잠입했다가 붙잡히면서 청동기시대  인간들로부터 석기시대 인간들과의 축구경기 도전을 받는다.
덕을 도와주는 청동기시대 처녀가 축구가 하고파도 여자여서 못 해 속이 상한 구나(메이지 윌리엄스). 일단 자기 마을로 돌아간 덕은 주민들에게 자초지종을 말하나 축구라곤 해본 적이 없는 이들은 고개를 내젓는다. 그러나 우리 조상들이 축구를 했다는 덕의 강력한 설득과 구나의 격려에 감동한 석기시대 인간들은 맹훈련에 들어간다. 과연 누가 이길까요. 내용과 대사 그리고 인물들의 움직임 등이 다 귀염성이 있다. ★★★(5개 만점)
                                                                  <한국일보 박흥진 편집위원/ hjpark1230@gmail.com>


2018년 2월 9일 금요일

파리행 오후 3시15분 열차(The 15:17 to Paris)


스칼라토스와 새들러 그리고 스톤(왼쪽부터)이 파리행 고속열차에서 대화를 나누고 있다.

열차 속 테러범 맨손으로 잡은 세 청년의 영웅담


보통 사람들이 절대 절명의 위기의 순간에 처했을 때 보여준 영웅적 행동에 관한 실화로 클린트 이스트우드(87)가 감독했다. 영화를 잘 만드는 이스트우드의 영화로선 타작인데 도무지 양념이 빠진 음식처럼 심심하기 짝이 없다.
지난 2015년 달리는 암스테르담 발 파리 행 고속열차에서 테러를 자행하려던 테러리스트를 맨 손으로 때려잡은 3명의 미국 청년들의 얘기인데 실제로 2분 만에 끝난 액션을 2시간짜리 영화로 만들자니 소재가 부족해 친구들인 청년들의 유년과 소년시절 그리고 이들이 유럽여행을 하면서 구경하고 먹고 마시고 춤추는 얘기를 장황하게 늘어놓았다. 도대체 누가 그들의 성장기를 보고파 할지 궁금하다.
특이한 점은 주인공들로 배우를 안 쓰고 본인들이 실제로 연기한 것. 연기 경력이 전무한 세 청년들의 연기는 그만하면 무던하다. 
영화에서 배우 대신 실제 인물을 쓴 또 다른 대표적 영화는 2차대전의 영웅 오디 머피가 주연한 ‘지옥의 전선’(1955)이 있는데 예쁘장하게 생긴 머피는 그 후로 배우가 돼 많은 영화에 출연했다. 
2015년 8월 21일 오후 3시17분 암스테르담 발 파리 행 고속열차에 탄 백 팩을 진 유럽 여행자들인 스펜서 스톤과 알렉 스칼라토스 그리고 앤소니 새들러는 캘리포니아 주 새크라멘토에서 자란 어릴 적부터의 친구들. 현재 이들은 모두 25세 동갑이다.
기차가 한창 달리고 있는데 AK 라이플과 권총으로 무장한 모로코 태생의 테러리스트 아유브 엘 카자니가 승객들을 향해 무차별 난사를 하려는 순간 스톤이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엘 카자니를 향해 달려가 그를 덮친다. 이어 둘 사이에 격투가 일어나는데 스펜서를 도와 엘 카자니를 제압한 것이 스칼라토스와 새들러. 여기에 다른 승객 몇 명이 합세한다. 
여기서 스톤은 테러리스트가 휘두른 박스 커터에 의해 스톤은 목과 손에 자상을 입는다. 만약 이 때 세 청년이 엘 카자니를 막지 않았더라면 승객 500여명을 태운 열차 안에서 대형 참사가 일어났을 것이다. 
그런데 당시 스톤은 공군 의료원이었고 스칼라토스는 육군 주 방위군으로 그들이 군에서 배운 무술과 총에 대한 지식 때문에 테러리스트를 제압하는데 큰 도움이 됐던 것 같다. 새들러는 칼스테이트 새크라멘토 대학생이었다. 이스트우드는 실제 인물들을 썼을 뿐 아니라(옷도 사건 당시 입었던 것을 입게 했다) 현지 촬영을 했고 또 열차도 당시 달린 열차와 같은 열차를 구해 촬영을 했다. 
영화는 본격적인 액션이 있기 전에 세 친구들의 과거로 돌아간다. 둘 다 홀어머니 밑에서 자란 스톤과 스칼라토스는 이웃에 사는 어릴 적부터의 친구이고 새들러와는 중학생 때 만나 친구가 됐는데 셋 다 자주 교장실에 불려가는 말썽꾸러기들이었다. 이들의 학교생활과 방과 후의 전쟁놀이 등이 묘사되는데 지루하다.
셋은 커서도 돈독한 사이를 유지하는데 여름을 맞아 유럽여행을 가기로 한다. 먼저 베를린으로부터 시작해 로마와 베니스와 암스테르담에서의 이들의 관광유람을 보여주는데 전연 관심이 없다. 영화는 세 청년이 파리의 엘리제궁에서 당시 프랑스 대통령이었던 프랑솨 올랑드로부터 명예훈장을 받는 장면으로 끝난다. 긴장감이나 흥분 그리고 스릴이 전연 안 느껴지는 영웅담으로 세 청년은 앞으로 전문 배우가 되겠다고 한다. 글쎄요. PG-13. ★★½ (5개 만점)
                                                           <한국일보 박흥진 편집위원/ hjpark1230@gmail.com>



피터 래빗(Peter Rabbit)

피터가 가족과 동지들을 데리고 맥그레고씨의 채소밭을 휘젓고 다니고 있다.

채소밭 둘러싼 장난꾸러기 토끼의 모험과 액션


영국의 아동소설 작가 비애트릭스 포터가 쓴 글의 주인공으로 장난기가 심한 토끼 피터의 모험과 액션을 그린 만화영화와 라이브 액션을 혼성해 만든 아이들과 어른들이 함께 즐길 수 있는 가족용 영화다. 속도감과 액션과 유머 그리고 천방지축으로 날 뛰는 활기찬 슬랩스틱 코미디인데 컴퓨터로 그린 만화와 특수효과도 좋고 사운드트랙도 즐겁다. 실제 연기를 하는 배우들과 음성연기를 하는 배우들의 콤비도 그럴싸한데 유명 스타들이 동원됐다. 
런던 교외의 저택에서 채소밭을 가꾸며 사는 변덕스런 맥그레고(샘 닐)의 골칫거리는 자기 가족과 이웃 짐승들까지 동원해 채소밭의 채소들을 약탈(?)하는 토끼 피터(제임스 코든 음성). 피터는 장난기가 심할 뿐 아니라 천상천하 유아독존 식의 다소 오만한 악동. 피터의 아버지는 맥그레고가 잡아 파이를 해 먹어 둘 사이가 아주 안 좋다. 
어느 날 맥그레고가 다시 채소밭을 침략한 피터와 그의 일가족인 피터의 세 여동생 플롭시(마고 로비-‘아이, 토냐’로 오스카 주연상 후보)와 몹시(엘리자베스 드비츠키)와 카튼-테일(데이지 리들리) 그리고 피터의 봉인 사촌 벤자민(콜린 무디)을 쫓다가 심장마비로 급사를 한다. 
집을 물려받은 사람이 런던 시내 해로즈 백화점의 중간 간부로 병적으로 정리정돈에 집착하는 맥그레고의 젊은 친척 토마스(돔날 글리슨). 피터와 그의 가족 그리고 주위 동물들은 토마스가 집을 단장해 팔려고 한다는 것을 알고 피터의 리드로 집을 못 팔도록 사보타지 행위에 들어간다. 이로 인해 피터 일행과 토마스 간에 영토분쟁이 일어나는데 분쟁이 전면전으로 확대되면서 전류가 흐르는 울타리가 설치되고 폭탄까지 동원된다. 
이런 전쟁은 끝에 가서 양방간의 평화무드로 접어들게 되는데 그런 평화공존의 계기가 되는 사람이 토마스의 이웃에 사는 아름다운 화가 베아(로즈 번). 베아는 피터 일가족을 자기 가족처럼 사랑하면서 극진히 아끼는데 베아와 토마스가 가까워지자 베아를 자기 엄마처럼 여기던 피터가 발끈해 토마스를 아예 원수처럼 생각한다. 마치 한 여자를 둘러싼 두 남자의 삼각관계처럼 느껴진다. 베아와 토마스 그리고 베아와 피터 간에 서로 오해가 생기면서 관계에 파도가 치나 내용이 아동용이니 만큼 만사가 다 해피 엔딩! 윌 글럭 감독. ★★★½(5개 만점)
                                                                <한국일보 박흥진 편집위원/ hjpark1230@gmail.com>


육과 영(On Body and Soul)


같은 꿈을 꾸는 엔드레와 마리아가 침대에 함께 누워 있다.

같은 꿈 꾸는 차가운 남녀, 마음 문 여는 마법적 사랑


살육의 현장인 도살장에서 일하는 두 고독한 남녀의 서서히 영글어가는 사랑의 드라마로 마법적 사실주의의 분위기가 느껴지는 아름답고 환상적인 작품이다. 엉뚱하고 약간 과격하고 괴팍하며 시치미 뚝 떼는 유머와 엄격한 현실 그리고 피와 꿈이 뒤엉킨 어른을 위한 동화와도 같은 영화로 서서히 보는 사람의 가슴을 감동으로 젖게 만든다.
고독과 동경의 얘기로 스타일이 좋고 육감적이다. 두 남녀의 상대방에 대한 그리움과 접근을 꿈속의 수사슴과 암사슴의 접촉으로 묘사하면서 인간과 동물의 교접을 동일시하고 있는데 이와 함께 도살장으로 몰려가는 소들의 모습과 도살된 짐승의 모습을 보여주면서 육과 영의 관계를 묻고 있다.
사랑이 가는 순수한 작품으로 사랑과 육과 영의 문제를 절묘하게 엮어간 헝가리의 여류 감독 일디코 에니에디(각본 겸)의 마술사 같은 솜씨가 경탄스럽다. 작년 베를린 영화제 대상인 황금곰 상을 받은 빼어난 영화다. 제90회 오스카 외국어 영화상 후보작.
처음에 눈 덮인 숲속에서 수사슴과 암사슴이 서로를 응시하며 다가 가는 장면으로 시작된다. 이 장면은 영화 플롯이 이어지면서 중간 중간 반복돼 나오는데 그림엽서처럼 곱다. 이어 부다페스트 교외의 도살장의 경리부장으로 과묵하고 다소 무뚝뚝한 중년의 독신남 엔드레(게자 모르크사니)와 도살장 고기 품질검사관으로 얼음장처럼 차갑게 아름답고 병적으로 대인관계에 서툰 마리아(알렉산드라 보르벨리)가 각기 따로 소개된다.
둘은 구내식당에서 자주 마주치면서 엔드레가 마리아를 흠모하게 되지만 내성적인 엔드레는 마리아에게 자기 마음을 고백하지 못한다. 마리아도 엔드레에 호감을 갖는다. 물론 마리아도 자기 마음을 표시하지 못한다.
이렇게 독특한 성격의 두 사람은 매일 같이 만나면서도 관계에 진전이 없는데 둘이 서서히 가까워지는데 엄청난 시간이 소요된다. 이런 둘의 고요한 분위기를 도살장의 살육이 어지럽힌다. 두 사람이 가까워지게 되는 동기는 둘이 매일 밤 같은 꿈을 꾼다는 것을 알게 되면서다. 그 꿈이란 다름 아닌 암수 두 마리 사슴의 꿈.
이 같은 사실을 알게 된 두 사람은 함께 잠자리에 들어보자며 일종의 실험을 실시한다. 둘은 같은 침상에 눕지만 육체관계를 맺진 않는다. 이런 과정을 통해 엔드레와 마리아는 서서히 깊이 상대방에게 빠져드는데 사랑의 얘기이니 만큼 그 과정이 순조롭지만은 않다. 
두 사람의 연기가 아주 좋다. 모르크사니의 속에 유머가 깃든 무딘 사람 같은 덤덤한 연기도 좋지만 백설공주처럼 하얀 얼굴과 큰 눈을 한 보르벨리의 데스마스크를 쓴 것 같은 무표정한 연기가 뛰어나다. 수많은 표정을 지닌 무표정으로 카메라가 그의 아름다운 얼굴을 자주 클로스업 한다. 이와 함께 촬영도 매우 좋다. ★★★★½ (5개 만점)
                                                              <한국일보 박흥진 편집위원/ hjpark1230@gmail.com>

팬태스틱 우먼(A Fantastic Woman)


마리나는 갑자기 애인을 잃고 깊은 슬픔과 충격에 빠진다.

동거 이혼남 돌연사 후 닥친 슬픔과 주변 멸시 극복… 칠레 여인의 인간드라마


상실과 고통과 멸시를 극복하고 자존을 지키며 생의 길을 가기를 포기하지 않는 여인의 인간 드라마로 칠레영화다. 강력한 드라마로 제90회 오스카 외국어 영화상 후보작이다. 세바스티안 렐리오가 감독했는데 그의 이전 영화로 역시 여인의 자존과 독립을 이야기한 ‘글로리아’와 여러 면으로 닮은 데가 있다.
영화의 주인공은 여성으로 전환한 남자로 그가 영육으로 사랑하는 애인을 갑자기 잃고 겪는 슬픔과 그 슬픔으로부터 벗어나는 안팎의 모습을 강건하고 치열하며 또 감정적으로 격하게 다뤄 보는 사람을 걷잡을 수 없이 휘어잡는다. 대단히 힘차고 생생한 작품이다.
산티아고의 나이트클럽에서 노래를 부르며 웨이트리스로 일하는 20대 후반의 마리나 비달(실제로 성 전환한 다니엘라 베가)의 애인은 이혼한 50대 후반의 직물회사 사장 올란도(프란시스코 레이에스). 둘은 극진히 사랑하는 사이로 올란도의 아파트에서 동거한다.
그런데 올란도가 갑자기 쓰러져 병원으로 옮긴 뒤 사망한다. 갑자기 닥친 상실로 마리나는 깊은 충격과 슬픔에 젖는다. 그런데 올란도가 쓰러지면서 몸에 입은 상처 때문에 경찰이 개입해 마리나를 심문한다.
경찰은 마리나를 창녀나 강간범처럼 취급하면서 모욕적인 신체검사까지 한다. 경찰뿐만이 아니라 담당 의사도 마리나를 남자로 취급한다. 그리고 올란도의 전처와 아들 등도 마리나를 사갈시면서 올란도의 아파트로부터 나가라고 요구한다.
이런 멸시와 차별을 마리나는 입을 꽉 다물고 표면적으로 침착하게 대하나 안에서는 분노가 들끓는다. 카메라가 베가의 얼굴을 크게 잡으면서 마리나의 밖과 안이 다른 감정의 미묘한 변화를 자세히 보여주는데 감탄을 금치 못할 연기다.
자기 노래 실력을 제대로 깨닫지 못하는 마리나가 아버지 노릇을 하는 오페라 음성코치를 찾아가 노래에 관해 얘기하는 등(노래도 베가가 직접 부른다) 서브플롯이 있지만 중심 내용은 마리나가 슬픔과 멸시 그리고 고통을 견디어내면서 강한 삶의 의지를 추구하는 주체성 회복의 이야기다.
가슴에 못을 박는 것처럼 충격적인 베가의 연기가 돋보이는 영화로 전자음악과 촬영도 아주 좋다. 영화를 시작하는 이구아수 폭포를 찍은 첫 장면이 아름다운데 이구아수 폭포는 올란도가 마리나의 생일선물로 함께 여행하기로 한 곳이다. Sony Pictures Classics. ★★★★(5개 만점)
                                                               <한국일보 박흥진 편집위원/ hjpark1230@gmail.com>



도로시 말론: 바람위에 쓴 이름


투명한 붉은 나이트가운을 입은 도로시 말론이 맨발로 집안의 계단을 “우당탕 쿵쾅”소리를 내면서 뛰어 올라가더니 자기 방에 들어가 요란한 음악에 맞춰 온몸을 뒤틀고 흔들어대면서 춤을 추는 모습을 보면서 어린 학생이었던 나는 육신 안팎으로 충격에 가까운 전율을 느꼈었다. 농익은 성적매력에 압도당했던 기억이 난다.
이 장면은 말론이 오스카 조연 상을 받은 멜로드라마 ‘바람 위에 쓰다’(Written on the Wind^1956)의 한 장면으로 말론은 텍사스 석유재벌의 상속녀로 섹스에 굶주린 알코홀 중독자 메릴리 해들리로 나온다. 말론 자신도 말했듯이 말론은 이 영화 후로 본의 아니게 부정하고 섹스에 갈급한 술꾼으로 팬들의 기억에 남게 된다.
할리웃 황금기 스크린의 섹시 스타 중의 하나였던 도로시 말론(사진)이 지난 1월 19일 고향 달라스에서 93세로 사망했다. 금발에 커브가 진 몸매를 한 말론은 어딘가 다소 천박한 섹스 어필을 간직한데다가 표정이 소박맞은 여자 같아 남자들의 동물적 감각과 동정심을 동시에 자극한다. 나도 말론의 팬 중의 하나다.
50여년의 연기생활 동안 70여 편의 영화와 많은 TV작품에 나온 말론의 대표작 영화는 단연 ‘바람 위에 쓰다’이다. ‘이미테이션 오브 라이프’와 ‘매그니피슨트 옵세션’ 등 여러 편의 멜로드라마를 만든 더글러스 서크가 감독한 이 영화에서 말론은 자기 오빠(로버트 스택)의 친구 록 허드슨을 짝사랑하면서 자신은 물론이요 주위 사람까지 모두 파괴하는 욕정에 사로잡힌 여자로 나와 눈부신 연기를 보여준다.
시카고에서 태어났으나 달라스에서 자란 말론(본명 도로시 엘로이즈 말로니)은 자기가 다닌 남감리교 대학의 연극에 나갔다가 RKO사의 에이전트의 눈에 띄어 할리웃에 왔다. 그러나 처음에는 대사 없는 엑스트라 노릇만 하다가 워너 브라더스로 옮기면서 빛을 보게 된다.
여기서의 첫 영화가 범죄소설 작가 레이몬드 챈들러가 쓴 글을 원작으로 한 ‘빅 슬리프’(1946)로 서점 점원인 말론은 사립탐정 필립 말로로 나온 험프리 보가트를 은근짜로 유혹해 팬들의 눈길을 끌게 된다. 이어 프랭크 시내트라와 도리스 데이가 주연한 뮤지컬 ‘영 앳 하트’와 탭 헌터가 나온 전쟁영화 ‘배틀 크라이’ 및 딘 마틴과 제리 루이스 콤비가 공연한 코미디 ‘화가와 모델’ 등에 나왔지만 자기 경력에 큰 도움이 될 만한 것들은 아니었다.           
말론은 마침내 할리웃에서 여배우가 성공하려면 어딘가 부정한 데가 있는 섹스 어필하는 여자로 나와야 한다는 것을 깨닫고 유니버설 작인 ‘바람 위에 쓰다’의 출연에 응했다. 이로써 말론은 이 후 과거보다 양질의 영화에 나오게 된다.
무성영화의 수퍼 스타 론 체이니(제임스 캐그니)의 아내로 나온 ‘천의 얼굴을 한 남자’, 록 허드슨과 로버트 스택과 다시 공연한 ‘더럽혀진 천사’, 헨리 폰다와 앤소니 퀸과 리처드 위드마크가 나온 웨스턴 ‘왈록’ 그리고 커크 더글러스와 록 허드슨이 공연한 웨스턴 ‘마지막 황혼’ 등이 그 대표작들. 나는 어렸을 때 3명의 멋진 남자배우들이 나와 서로를 향해 총부리를 겨누는 ‘왈록’을 아주 재미있게 봤는데 여기서 말론이 자기가 사랑하는 마을 보안관 위드마크와 경련하듯 포옹을 하던 장면이 기억에 생생하다. 그러나 이들 영화의 역도 메릴리 해들리 역의 비중만은 못하다. 
예나 지금이나 마찬가지로 말론의 영화배우로서의 절정기는 그가 40이 되면서 시들기 시작했다. 이런 침체에서 벗어나 그가 재기한 작품이 ABC-TV 시리즈 ‘페이턴 플레이스’다. 당시만 해도 영화배우가 TV에 나오는 것은 직업상 자살행위나 마찬가지였지만 말론은 시리즈가 인기를 모으리라고 확신하고 출연에 응했다.
1964-1969년까지 방영된 ‘페이턴 플레이스’는 그림처럼 고운 뉴잉글랜드의 한 작은 마을 주민들의 어두운 비밀과 욕정과 욕망을 다룬 동명소설이 원작으로 1957년에 라나 터너 주연으로 먼저 영화로 만들어졌었다. 말론은 영화에서 터너가 맡았던 자기 딸(당시 19세였던 미아 패로)의 출생에 관한 비밀을 지닌 책방 주인으로 나온다. 시리즈는 미 TV사상 최초로 저녁 황금시간대에 방영된 소프 오페라로 주 3회 방영되면서 선풍적인 인기를 모았다. 이로써 말론은 영화보다 더 큰 인기를 얻고 연기자로서도 새로운 각광을 받게 되었다. 시리즈는 미국 뿐 아니라 전 세계적으로도 큰 인기를 얻었었는데 한국에서도 대단한 인기를 누렸었다.
이 시리즈로 말론의 배우로서의 전성기는 사실상 끝이 났고 그 후로는 ‘페이턴 플레이스의 살인’ 등 TV영화에 나왔다. 말론의 마지막 영화는 샤론 스톤이 나온 섹시 스릴러 ‘원초적 본능’으로 말론은 여기서 살인자로 나왔다. 독실한 기독교 신자였던 말론은 팬들에게 사인을 해줄 때에도 ‘언제나 하나님의 축복이 있기를!’이라는 글을 함께 적었다고 한다. 말론은 세 번 결혼했으나 모두 이혼으로 끝이 났는데 첫 남편과의 사이에 두 딸을 두었다. 자기 말대로 “남자 복이 없는 여자”였다. 굿 바이 도로시!           
                                                             <한국일보 박흥진 편집위원/ hjpark1230@gmai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