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화 불통 부부 메리와 마이클(오른쪽)이 소파에 앉아 포도주를 마시고 있다. |
소통 부재로 나태하고 무기력해진 중년의 부부
인간간의 관계란 끊임없이 흐르지 않으면 고여 부패하게 마련으로 부부관계도 마찬가지다. 이 영화는 소통 부재와 감정의 소진으로 인한 나태하고 무기력해진 중년의 부부관계에 관한 희비극이다.
조용하고 차분하게 이미 사이가 현격히 벌어진 부부가 겪어야하는 갈등과 체념과 함께 질식할 것 같은 분위기 속에서 탈출하려고 몸부림치는 두 사람의 심정과 탈선을 때로 유머를 섞어가면서 사실적이요 자세하게 묘사했다. 보고 있자니 가슴이 저려온다.
오래간만에 왕년의 빅스타 데브라 윙거(‘어반 카우보이’ ‘사관과 신사’)가 나와 침착하고 담담하면서도 야무지게 관계의 위기를 맞고 갈팡질팡하는 아내의 모습을 절실하게 보여준다. 61세의 나이에도 여전히 아름답다.
캘리포니아 주 산타 클라리타. 영화는 처음에 평범한 회사원인 마이클(트레이시 레츠)이 침대에 쓰러져 우는 애인 루시(멜로라 월터즈)를 서서 내려다보면서 “제발 울지 마, 루시”라고 말하는 장면으로 시작된다. 마이클의 얼굴 표정이 약간 경멸에 차 있다. 루시는 발레 선생.
마이클의 아내 메리(윙거)도 회사원으로 그 역시 작가인 애인 로버트(에이단 길렌)을 두고 있다. 메리는 점심시간을 이용해 로버트를 찾아가 섹스를 즐긴다. 영화는 육체적 근접을 자주 보여주면서 정신과 감정적 거리감을 대체하다시피하고 있다.
마이클과 메리가 집에서 나누는 대화는 고작해야 “치약이 떨어졌네”라는 것 정도다. 둘은 함께 침대에 누워 자면서도 대화 불통으로 툭하면 회사에서 늦게 일한다고 핑계를 대고 서로 애인과 시간을 보낸다. 둘은 서로 상대방이 바람을 피우고 있다는 것을 아는 것 같은데도 이를 따지려고 들지도 않는다.
그런데 어느 날 갑자기 마이클과 메리가 아직도 서로를 육체적으로 강하게 요구하고 있다는 것을 느끼면서 둘은 매일 같이 섹스를 한다. 마치 불이 다 까진 둘의 관계를 섹스로 되 살려나 보겠다는 듯이 둘은 결사적으로 섹스를 한다.
그리고 이번에는 과거에 서로가 서로를 속였듯이 마이클과 메리는 각기 자신들의 애인에게 거짓말을 한다. 루시와 로버트는 각기 마이클과 메리를 깊이 사랑해 함께 살자고 애걸복걸하는데 과연 마이클과 메리는 어디로 가야하나.
매우 심각한 내용을 큰 소리 내지 않고 과장 없이 진지하게 얘기하고 있는데 전체적으로 분위기가 울적하다. 마이클과 메리가 리빙룸 소파에 앉아 오래간만에 같이 와인을 마시면서도 대화를 안(못)하는 모습을 보고 있으니 가슴이 답답해 한숨이 절로 나온다.
부부관계란 끊임없는 타협과 양보를 행사해야하는 모험인데 마이클과 메리를 보면서 과연 저들이 양보와 타협을 한다고 해서 관계를 회복할 수 있을까 하고 묻게 된다. 차라리 헤어지는 것이 현명한 선택일지도 모르겠다. 아자젤 제이캅스 감독(각본 겸). 성인용. A42. 일부극장.
<한국일보 박흥진 편집위원/ hjpark1230@gmai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