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이야기

2017년 8월 28일 월요일

악녀(The Villainess)


숙희가 자기 딸을 죽인 자가 타고 달리는  버스에 매달려 있다.


 ‘킬러 김옥빈’복수의 화신 열연... 피비린내 진동하는 살육 액션


가녀린 몸매에 예쁘장하게 생긴 김옥빈이 총과 칼과 도끼와 함께 손과 발 등 온 육신을 사용해 닥치는 대로 적을 살해하는 피바다 액션 스릴러로 그에 의해 황천으로 가는 남자들이 족히 백 명은 된다. 피가 끓는 살육과 복수의 영화로 장르 팬들이 박수갈채를 보낼만한데 손으로 들고 찍은 촬영과 쏜살같은 편집으로 인해 보면서 머리가 다 어질어질하다. 
선혈과 총격과 칼부림 그리고 격투를 잘 다루는 한국 액션영화의 특징을 그대로 갖추었고 지나치게 잔인한 또 다른 한국영화의 특성을 과시한 작품으로 한국영화의 결점인 상영시간이 2시간이 훨씬 넘는다. 그러나 플롯이 배배 꼬인 내용과 함께 기술적인 면과 연기 및 인물들의 개발이 잘 된 흥미진진한 영화로 김옥빈의 가공할 액션연기가 장관이다. 올 칸영화제 ‘미드나잇 스크리닝’ 출품작.
고도로 훈련된 킬러 숙희(옥빈)가 라이벌 갱의 본부를 침입해 좁은 복도를 따라가면서 갱 두목의 졸개들을 권총으로 사살하는 첫 장면부터 피비린내가 진동한다. ‘올드 보이’의 최민식의 살육을 연상케 하는 이 장면은 순전히 카메라의 눈으로 앞으로 이동하면서 찍었는데 아찔하다. 이어 숙희가 갱두목과 그의 보디가드들과 대결하는 장면에서 얼굴에 선혈이 잔뜩 묻은 숙희의 얼굴이 드러난다. 그리고 숙희는 경찰에 체포된다. 
숙희는 연변출신으로 어릴 때 자기가 보는 앞에서 아버지가 살해된 뒤 갱에 의해 키워지는데 그를 키워 일류 투사와 무자비한 킬러로 만든 사람은 갱 두목 중상(신하균). 그리고 숙희는 중상과 결혼을 하는데 중상이 신혼여행에서 살해되면서 숙희는 복수의 화신이 된다. 
한국의 정보부에 의해 자기도 모르게 성형수술을 당한 숙희는 인정사정없는 팀장 권숙(김서형)에 의해 자신이 임신했다는 것을 알게 되고 정보부를 위해 10년간만 일하면 자유의 몸으로 놓아주겠다는 제안을 받는다. 
그리고 킬러의 기술과 함께 연기를 공부한 숙희는 연수라는 가명으로 어린 딸 은혜와 함께 작은 아파트에 살면서 정보부의 행동지시를 기다린다. 연수의 이웃에 젊고 건장한 미남 현수(성준)가 사는데 숙희와 현수는 서로 마음이 이끌려 데이트를 시작한다. 그런데 현수는 숙희의 감시자.  
느닷없이 죽은 줄 알았던 중상이 숙희의 앞에 나타나면서 숙희는 극심한 혼란에 빠진다. 이어 숙희의 아파트에서 은혜를 돌보던 현수와 은혜가 누군가가 설치한 폭탄에 아파트가 폭파되면서 모두 죽자 숙희는 완전히 혈안이 되어 자기가 사랑하던 두 사람을 살해한 범인을 찾아 나선다.
마지막 절정은 숙희가 자신의 철천지 원수가 타고 질주하는 버스에 매달려 버스 안으로 들어가려고 무기로 버스를 찍어내는 장면. 숙희가 이를 악물고 달리는 버스에서 사투를 벌이는 이 장면은 실로 몸 안의 아드레날린을 요동치게 하는 압권이다. 김옥빈 화이팅! 
정병길 감독. ★★★½ (5개 만점) 
                                                               <한국일보 박흥진 편집위원/ hjpark1230@gmail.com>

서든 피어(Sudden Fear)


마이라는 자기 남편이 자기를 죽이려고 한다는 것을 깨닫는다.

유산 둘러싼 아내 살해음모... 개봉 65주년 맞아 특별상영


할리웃 황금기 수퍼스타 중의 하나였던 연기파 조운 크로포드가 죽음의 공포에 시달리는 돈 많고 아름다우나 고독한 여자로 나오는 1952년 작 걸작 필름 느와르로 로맨틱 멜로드라마이자 서스펜스 스릴러다. 크로포드가 오스카 주연상 후보에 올랐고 그의 남편 역의 잭 팰랜스가 조연상 그리고 찰스 랭이 찍은 음산한 분위기의 흑백 촬영 역시 오스카상 후보에 올랐다. 
원작은 에드나 쉐리의 동명소설.
마이라 허드슨(크로포드)은 브로드웨이의 성공한 극작가. 그는 자기가 쓴 작품의 남자 주인공 선발 오디션에 참가한 젊은 배우 지망생 레스터 블레인(팰랜스)을 로맨틱하지 못하다고 퇴짜를 놓는다. 그런데 마이라가 샌프란시스코의 집으로 돌아가는 기차에서 레스터를 다시 만난 뒤 그의 매력에 끌려 짧은 데이트 끝에 결혼한다.
한편 레스터는 마이라가 유언장을 쓰면서 대부분의 재산을 자선단체에 기부하기로 결정한 것을 발견하고 자기의 숨겨둔 옛 애인 아이린 네베스(글로리아 그래암)와 함께 마이라를 살해할 계획을 짠다.     
그러나 마이라가 레스터와 아이린의 음모를 눈치 채고 자기가 이 둘을 살해한 뒤 그 혐의를 아이린에게 뒤집어씌울 계획을 세밀히 짜나 차마 이를 실행에 옮기지 못한다. 그리고 이번에는 레스터가 마이라의 자기 살해 의도를 깨닫고 마이라를 죽이기로 결심한다. 레스터가 차를 몰아 샌프란시스코 거리를 걷는 마이라를 찾아 추적하자 마이라가 이를 눈치 채고 피하나 레스터가 역시 길을 걷던 아이린을 마이라로 오인하고 차를 그쪽으로 몬다. 
이를 본 마이라가 멈추라고 소리를 지르나 때가 이미 늦어 레스터가 모는 차가 아이린을 치고 충돌하면서 두 간부가 함께 죽는다. “둘 다 죽었어”라는 말을 귓전으로 들은 마이라가 샌프란시스코의 밤 속으로 걸어 들어가면서 긴 안도의 숨을 쉰다.
스타일 멋있고 세련된 전형적인 ‘궁지에 몰린 여인’에 관한 느와르로 플롯이 산뜻하면서도 배배 꼬여 재미가 만점이다. 데이빗 밀러 감독. 영화개봉 65주년을 맞아 29일 오후 7시30분에 화인 아츠극장(8556 Wilshire Blvd.)에서 상영한다. 상영 전에 영화학자 제레미 아놀드의 소개가 있다. ★★★★ (5개 만점) 
                                                              <한국일보 박흥진 편집위원/ hjpark1230@gmail.com>

‘수인’


작가 황석영.


나는 작가 황석영(사진)의 파란만장한 삶의 구석구석을 최근에 읽은 그의 두 권짜리 자전 ‘수인’을 읽고서야 알았다. 그의 다사다난한 인생에 관해서 대충 알고는 있었지만 책을 통해서야 그것의 편린들을 통증마저 느끼면서 자세히 들여다 볼 수 있었다.
석영이와 나는 중고등 학생 때 친구로 그의 당시 이름은 수영이었다. 중학생 때부터 수업시간에 공부는 안 하고 노트에 잉크 찍은 펜으로 소설을 썼던 석영이는 경험론자요 행동론자요 투사다. 삶을 실제로 철저히 겪으면서 거기서 얻은 경험을 글로 썼다.
조선일보 신춘문예 당선작인 ‘탑’은 그가 월남전에 파병돼 순찰조로서 겪은 경험이고 후에 영화로도 만들어진 ‘삼포 가는 길’은 그가 노동자의 척박한 삶을 배우기 위해 막노동판에서 일한 경험이다.
재간둥이요 기인인 석영이의 문단(?) 데뷔는 중학생 때 교내 문학콩쿠르에서 그가 쓴 ‘부활이전’이 장원을 하면서다. 그는 여기서 예수를 배신한 유다를 동정의 눈으로 보면서 왜 유다가 그럴 수밖에 없었는지를 풀이하고 있다. 나는 그 때 이 글을 읽으면서 그의 비상한 문재와 함께 소외되고 배척당한 사람의 입장을 옹호하려는 그의 반골정신에 크게 감복했었다. 그는 타고난 앤타이다.
석영이와 나는 비슷한 점이 더러 있다. 그의 어머니와 나의 어머니는 다 이북 태생인 독실한 기독교 신자들로 두 사람이 모두 혼자서 외아들을 키웠다. 그리고 중국의 장춘과 청도에서 각기 태어난 석영이와 나는 학생시절 영화광으로 학교생활에 염증을 느껴 자주 땡땡이를 깠는데 그래서 두 모친이 툭하면 학교로 호출을 당하곤 했다. 석영이에 따르면 호출 당해 교무실에서 만난 두 모친은 “기도부터 합시다”라고 자식들의 죄의 용서를 빌었다고 한다. 그리고 우린 둘 다 중학생 때부터 문학도였다.
석영이의 반골기질이 여실히 드러난 글이 대하 역사소설 ‘장길산’이다. 이 소설은 내가 서울의 한국일보 사회부기자였을 때 석영이가 한국일보에 연재했다. 그런데 바람처럼 살던 석영이가 전남 해남에서 이 글을 쓰면서 툭하면 원고를 안 보내 문화부 담당 선배기자의 속을 무던히도 썩였었다. 석영이는 그러고도 가끔 고료를 받으러 신문사에 나타나곤 했는데 그날이면 난 그로부터 술을 톡톡히 얻어 마시곤 했다.
‘수인’은 그가 군인과 노동자 그리고 이북을 방문해 김일성을 여러 차례 만난 이후 망명자로 이어 귀국해 수인으로서 그리고 작가와 아버지와 아들과 남편으로서 겪은 삶의 희로애락을 학생 시절의 아름다운 추억과 함께 적었다. 친구로서 그를 잘 알던 나여서 반쯤은 내 얘기 같은 과거가 활동사진처럼 눈앞에서 파노라마쳤다.
월남에 가서 죽을 고비를 여러 차례 넘겼고 노동판에서 뼈마디가 쑤시는 노동을 했고 오랜 타국살이 끝에 귀국해 5년간 옥살이를 한 일들을 현미경으로 보듯이 자세히 적었는데 그의 뛰어난 기억력에 혀를 찼다. 석영이가 죽을 고비를 여러 번 넘기고 지금까지 살아있는 것은 오직 그의 어머니의 기도 탓이리라.
특히 수인으로서의 옥중 생활 얘기가 흥미진진하다. 유명 작가와 정치범으로서 단식과 투쟁을 하면서도 교도관들로부터 대접을 받았는데 교도관들과 함께 이웃 죄수들과의 관계가 마치 교도소영화 보듯이 생생하다. 석영이의 어머니와 아내 그리고 자식들까지도 마음과 몸 고생 많이 했겠다. 석영이도 그래서 글에서 가족에게 미안하다는 말을 남겼다. 일종의 반성문이다.
나는 석영이가 미국서 망명 생활할 때 LA에서 그를 한 두 차례 만난 적이 있다. 만나면 술집을 전전하며 옛 우정을 되새기곤 했는데 석영이는 늘 생명감이 넘치고 아이처럼 짓궂었다. 석영이는 천진난만하고 솔직하고 또 작가답게 날카로운 위트가 있어 좋다. 그리고 이번에 새삼스럽게 깨달은 것은 그가 세계적으로 유명한 작가라는 사실. 난 그가 그렇게 유명한 줄은 예전에 미처 몰랐다.
그런데 글에 몇 군데 내 기억과 다른 곳이 있다. 우리가 어렸을 때 본 영화 ‘오케스트라의 소녀’에 관해 석영이는 미지막 장면에서 지휘자 스토코우스키가 지휘봉을 들고 열심히 흔들었다고 했는데 스토코우스키는 지휘봉을 쓰지 않는다.
그리고 월남에서 한국산 K레이션의 김치와 꽁치 그리고 미제 레이션의 햄과 소시지를 섞어 끓인 것을 ‘부대찌개’의 원조라고 적었다. 그러나 ‘부대찌개’의 원조는 6.25 때 내가 부산 피난시절에 맛있게 먹은 미군부대에서 먹다 버린 온갖 음식 찌꺼기를 섞어 끓인 ‘끌꿀이죽’인 것으로 알고 있다. 또 명동에 있던 학생시절 내 단골 음악감상실 ‘돌체’는 드문드문 클래식을 틀기는 했지만 고전음악감상실은 아니고  팝송감상실이었다.                
석영이는 후기에서 책의 제목에 관해 이렇게 썼다. ‘시간의 감옥, 언어의 감옥, 냉전의 박물관과도 같은 분단된 한반도라는 감옥에서 작가로서 갈망해온 자유란 얼마나 위태로운 것이었던가. 이 책의 제목이 ’수인‘이 된 이유가 그것이다.’ 그의 작가로서의 지금까지의 행적은 바로 이 자유에 대한 사랑의 궤적이리라. “석영아, 잘 있지. 보고 싶구나.”      
                                                             <한국일보 박흥진 편집위원/ hjpark1230@gmail.com>


2017년 8월 21일 월요일

국(Gook)


일라이는 폭도로부터 신발가게를 지키려고 필사의 노력을 한다. 오른쪽이 카밀라.

“폭동서 가게 지켜라”한인형제-흑인 갈등 사실적 묘사


1992년 LA폭동이 나기 직전과 직후를 시간대로 흑인 거주지 캄튼의 인접지역 패라마운트에서 신발가게를 운영하는 한국인 형제와 인근 흑인 주민들과의 관계를 그린 사실적이요 코믹한 기운이 배어있는 드라마다. ‘국’은 동양인을 멸시해 부르는 말.
한국계 배우 저스틴 전(‘트와일라이트 사가’)이 감독하고 각본을 쓰고 주연도 했는데 그의 피와 땀으로 맺어진 열정과 신념의 작품이다. 꾸밈없이 솔직하고 거칠도록 생생하며 감동적인 영화로 올 선댄스영화제 ‘넥스트 섹션’ 부문에서 관객상을 탔다.
가족과 인종문제 그리고 커뮤니티와의 관계 등을 힘 있고 강력하게 고찰하고 있는데 급박하고 폭력적인 상황 속에서도 유머와 여유 그리고 감상성을 잃지 않고 차분하고 정감 있게 작품을 이끌어 가고 있다. 전 감독의 앞날이 밝아 보인다.
밤하늘에 타오르는 불길을 배경으로 흰 셔츠를 입은 소녀가 춤을 추는 장면으로 시작된다. 영화에서는 후에 두 형제와 이 소녀가 함께 춤을 추는 장면이 나오는데 인종의 벽을 넘어선 아름다운 가족애를 느끼게 된다.
한국계로 책임감이 강한 일라이(저스틴 전)와 그의 ‘인생은 즐기는 것’이라는 생활 태도를 갖고 있는 래퍼 지망생인 동생 대니얼(데이빗 소)은 패라마운트에서 아버지가 세운 여자용 신발가게를 운영한다. 손님은 대부분 흑인. 일라이는 동네 흑인 청년들과 대립관계를 유지하면서 공존하는데 늘 이들의 협박과 폭력의 기운 속에 살고 있다. 누군가가 일라이의 흰 차 본넷에 ‘Gook’이라고 낙서를 한 것이 그 실례다.
 이 가게에 상주하다시피 하는 것이 11세 난 흑인 소녀 카밀라(시몬 베이커). 카밀라는 오빠 키스(커티스 쿡 주니어)의 말을 안 듣고 학교를 땡땡이 치고 가게에 와서 심부름을 하는데 특히 일라이와 가깝다. 일라이와 대니얼과 카밀라는 피부 색깔이 다른 한 가족이다. 그런데 키스는 일라이의 신발가게에 개인적 원한이 있다. 그 이유는 나중에 밝혀진다.
신발가게 건너편에서는 해병대 출신의 김씨(저스틴의 친아버지 상 김으로 김씨는 실제로 4.29폭동 당시 사우스 LA에서 경영하던 가게를 약탈당했다)가 리커스토어를 운영하고 있다. 흑인에 대한 불신에 사로잡힌 김씨는 가게에 카밀라가 나타나면 물건을 훔쳐 갈까봐 신경이 곤두서는데 그래서 둘 사이에 F자 상소리가 난무한다. 그리고 이로 인해 카밀라의 친 오빠와도 같은 일라이와 김씨 사이에도 F자 설전이 벌어진다. 후에 김씨와 일라이가 담배를 태우면서 화해를 하는 모습이 가슴 싸하니 감동적이다.  
TV를 통해 로드니 킹에 대한 백인경찰들의 구타장면이 계속해 나오고 이어 열린 재판에서 기소된 경찰들에 대해 무죄평결이 나면서 폭동이 일어난다. 폭동의 기운이 서서히 패라마운트로 이동하면서 키스는 동료들과 함께 신발가게에 대한 약탈을 시도한다. 이를 결사적으로 막으려고 하는 일라이와 대니얼과 카밀라. 연기들이 모두 뛰어난데 특히 신인 베이커가 당찬 연기를 한다. 흑백 촬영도 아름답다. ★★★★ (5개 만점) 
                                                             <한국일보 박흥진 편집위원/ hjpark1230@gmail.com>


로간 럭키(Logan Lucky)


지미(왼쪽)와  클라이드가 수감 중인 조(대니얼 크레이그)를 찾아가 범죄에 동참할 것을 부탁한다.

자동차 경주장 현찰보관소 터는 황당 스토리


라스베가스 카지노 털이 영화 ‘오션 11’을 만든 스티븐 소더버그가 이번에는 자동차 경주장의 현찰 보관소를 턴다. 앙상블 캐스트가 제 멋에 겨워 신이 나서 연기를 하는 가벼운 오락영화로 보고 즐기기에는 안성맞춤이나 얘기가 너무 터무니 없어 고개를 갸우뚱하게 만든다. 스탠리 쿠브릭이 감독하고 스털링 헤이든이 주연한 거칠고 사납고 사실적인 경마장 현찰 보관소를 터는 영화 ‘킬링’을 연상케도 하나 이 영화는 ‘킬링’의 아류급으로 훅 불면 날아갈 것처럼 경량급이다.
타고난 패배자들인 시골사람들의 털이영화라고 하겠는데 황당무계한 플롯을 이리저리 꼬아대다가 마지막에 깜짝 놀랄 급반전을 하기까지 미리 짜 놓은 공식에 맞도록 끼어놓아 도무지 얘기가 자연스럽지가 않다. 그러나 범죄가 직업인 자로 나와 수감 중인 007 대니얼 크레이그의 반-스타적인 코믹한 연기 하나만으로도 즐길만한 영화다. 
웨스트 버지니아 주. 한쪽 다리를 저는 중장비 운전사 지미 로간(채닝 테이텀)이 해고당하는 장면으로 시작된다. 존 덴버의 ‘테이크 미 홈, 컨트리 로드’를 애청하는 지미는 이혼했는데 어린 딸은 전처 바비(케이티 홈즈)가 키운다. 
따분한 지미는 이라크전에서 왼팔을 잃은 동생 클라이드(애담 드라이버)가 일하는 바에 가서 함께 술을 마시면서 자기가 지하공사를 하던 샬롯 모터 스피드웨이에서 메모리얼데이 연휴에 열리는 코카-콜라 600 자동차 경주 동안 이 경주장의 현찰 보관소를 털자고 제안한다. 현찰은 스테디엄 지하에 설치된 정교한 튜브시스템을 통해 보관소로 이동된다. 
그리고 둘은 수감 중인 금고폭파범 조 뱅(죄수복을 입은 짧은 백발의 크레이그가 코믹한 연기를 재미있게 한다)을 면회, 협조를 구한다. 조는 자기는 얼마든지 감옥을 들락날락 할 수 있다며 범죄에 참가하기로 한다. 조 외에도 지미의 섹시한 여동생(라일리 키오) 등 몇 명이 공범으로 참여한다.
그리고 물론 범죄를 계획하고 준비하는 과정에서 몇 차례 실수와 불상사가 일어나면서 플롯을 뒤집다가 마침내 장시간 진행되는 치밀한 현찰털이가 벌어진다. 액수 미상의 거액이 털린 이 사건을 2명의 FBI 수사관이 수사하는데 그 중 한명이 오스카상을 탄 힐라리 스왱크. 스왱크는 뒤늦게 출연해 좋은 연기를 보여준다. 그리고 마지막에 플롯에 두 번의 깜짝 놀랄 반전이 일어난다. 뻥을 쳐도 너무 심하게 쳐 무슨 환상적인 얘기를 보는 느낌이다. ★★★(5개 만점)
                                                           <한국일보 박흥진 편집위원/ hjpark1230@gmail.com>


2017년 8월 16일 수요일

택시 운전사(A Taxi Driver)

만섭(송강호)이 경계중인 군인과 대화하는 것을 독일 기자 페터가 바라보고 있다.


소시민의 눈 통해 소환한 광주 민주화운동 참상

광주 민주화운동을 최초로 세계에 알린 독일 TV 방송기자와 그를 서울서 광주까지 태워다 주고 함께 다시 서울로 돌아온 택시 운전사의 실화를 바탕으로 한 영화다.
역사적 사실과 허구를 섞어 다시 한 번 조국의 민주화를 위한 희생을  되돌아보게 하는 뜻 있는 작품이다. 어둡고 무거운 사실을 재미있게 엮어낸 장훈 감독의 연출력이 돋보인다.
제3자의 눈으로 본 역사영화이자 버디 무비로 잔인한 폭력을 유머와 온기로 다독여주는데 감독은 가차 없는 현실과 폭력과 공포를 너그럽고 훈훈한 인간적 여유와 함께 고른 리듬으로 균형 있게 조화시켰다.          
연기파 송강호의 너그럽고 코믹한 연기가 돋보이는데 처음에는 데모에 반대하던 그가 광주의 참상을 목격하면서 행동인으로 변하는 각성의 이야기기도 하다. 그러나 영화의 마지막 부분에 나오는 택시들과 이들을 뒤쫓는 정보기관 차들 간의 도주와 추격의 액션은 거의 만화 같은 터무니없는 장면이다.
아쉬운 것은 역사적 내용을 보다 깊고 폭 넓게 다루지 못한 점인데 이로 인해 다소 주마간산 식의 작품이 되었고 한국영화의 고질인 상영시간(2시간 17분)이 긴 것도 문제다. 그러나 한국 사람들이라면 눈물을 흘리게 될 영화로 끔찍한 사실에 전율하고 충격을 받게 된다.
서울에서 개인택시를 운영하면서 11세 난 딸을 혼자 키우는 김만섭(송강호-실제 이름 김사복)은 동료운전사로부터 한 외국인이 광주까지 왕복해 태워다 주면 10만원을 주겠다는 말을 했다는 것을 듣고 이 손님을 자기가 가로챈다. 4개월 치 밀린 삭월세가 10만원이기 때문이다.  외국인은 도쿄주재 독일 공영방송 기자 페터(토마스 크레취만-실제 이름 위르겐 힌츠페터)로 광주사태를 취재하기 위해 선교사로 위장하고 서울에 왔다.
사우디에서 일한 경험으로 약간의 영어를 할 줄 아는 만섭은 페터를 차에 태우고 그와 서툰 영어와 제스처를 동원해(이 장면이 우습다) 광주로 내려간다. 그런데 만섭은 딸을 키우면서 먹고 사는데 급급해 시사뉴스나 정치엔 관심이 없다.
광주 초입에 도착하니 도로에 바리케이드가 처져 있고 총을 든 군인들이 지키고 있다. 만섭은 겁이 나지만 10만원 때문에 촌로에게 샛길을 물어 광주에 도착한다. 만섭은 폐허가 되다시피한 광주에서 그제서야 실상을 깨닫게 되고 페터는 시민들의 활동을 TV 카메라에 담는다.
그런데 정보부에서 페터가 광주에서 취재를 하고 있다는 것을 포착해 페터와 만섭을 잡기 위해 혈안이 되면서 스릴러 분위기를 갖추는데 이런 둘을 돕는 사람들이 현지 택시 운전사인 황태술(유해진)을 비롯한 그의 동료 운전사들과 대학생 구재식(류준열).
이 과정에서 만섭과 페터는 단단한 동지 의식으로 맺어지는데 군인들의 시민들에 대한 가혹한 행위를 보면서 서서히 자각하게 된 만섭은 혼자 서울로 가느냐 아니면 페터의 취재가 끝난 뒤 그와 함께 가느냐는 도덕적 딜레마에 빠진다.
크레취만이 침착하게 호연을 하는데 그 밖에도 조연진의 연기도 다 좋다. 영화는 독일의 자택에서 김사복을 다시 만날 수만 있다면 하시라도 서울로 날아가겠다는 ‘푸른 눈의 목격자’ 힌츠페터의 인터뷰 장면으로 끝난다. 둘은 그 후로도 재회를 못 했는데 2016년 79세로 사망한 힌츠페터의 손톱과 머리카락의 일부가 광주의 망월동 묘지에 안장되었다.★★★½ (5개 만점)
                                                               <한국일보 박흥진 편집위원/ hjpark1230@gmail.com>



온리 리빙 보이 인 뉴욕(The Only Living Boy in New York)


토마스가 아버지의 정부 조핸나를 미행하고 있다.


아버지에 대한 복수로 정부를 꼬시는데…


더스틴 호프만을 세계적 스타로 만들어준 ‘졸업’을 연상시키는 코미디 드라마로 대화가 상당히 많은 현학적일 정도로 지적인 영화다. 뉴욕에 바치는 헌사이자 청년의 성장기로 앙상블 캐스트가 좋은 연기를 보여주고 상호간 화학작용도 훌륭하다.
퍼즐을 푸는 듯한 플롯을 지녔는데 점점 사라져가는 책과 같은 개인적 기호와 중산층의 보장 그리고 영혼을 잃어버린 예술의 본향 뉴욕을 아쉬워하는 복고풍의 영화로 자신의 장래를 못 찾아 갈팡질팡 하는 청년의 이 사람 저 사람들과의 관계를 통해 서술된다. 
토마스 웹(영국 배우 캘럼 터너가 젊은 리처드 기어를 생각나게 한다)은 대학을 막 졸업한 청년으로 작가 지망생. 출판사 사장인 아버지 이산(피어스 브로스난)과 병약한 어머니(신시아 닉슨)가 사는 대저택을 떠나 로어 이스트 사이드의 후진 아파트에 산다. 그에겐 아름다우나 독설가인 여자 친구 미미(키어시 클레몬스)가 있는데 미미는 어디까지나 친구 관계를 주장한다.
토마스의 아파트 이웃으로 혼자 사는 철학적이요 유식한 술꾼 작가 W.F. 제럴드(제프 브리지스)가 청춘의 방황에 시달리는 토마스의 조언자요 멘토가 되기를 자원하면서 둘은 대화를 통해 사제지간이나 부자지간처럼 된다. 그런데 과연 이 다른 세상에서 온 것 같은 W.F.의 정체는 무엇인가. 
어느 날 토마스가 미미와 함께 클럽에 갔다가 자기 아버지가 외간 여자와 키스를 하는 것을 보고 토마스는 이 여자의 정체를 캐내기로 결심한다. 그리고 토마스는 여자 뒤를 마치 스토커처럼 따르는데 여자는 아버지 출판사의 프리랜스 에디터인 조핸나(케이트 베켄세일).
아름답고 총명한 조핸나에게 호기심을 갖게 된 토마스는 아버지에 대한 복수로 이 여자를 유혹해 결국 섹스를 하는 관계에 까지 이른다. 물론 조핸나도 토마스에게 호감을 갖고 있다. 한 여자가 부자와 모두 섹스를 한다는 불결한 플롯은 그러나 나중에 묘하게 세척된다.
마지막에 가서 W.F의 정체가 밝혀지는데 그 얘기가 다소 급작스럽고 조작적이어서 잘 믿어지지가 않는다. 그러나 이 영화는 터너를 비롯한 배우들의 좋은 연기가 있는 지적이요 문학적인 대사가 많은 아담한 소품으로 특히 브리지스의 현자 같은 연기가 볼만하다. 제목은 사이몬과 카펑클의 동명 제목 노래에서 따 왔다. 마크 웹 감독. R. ★★★ (5개 만점)  
                                                          <한국일보 박흥진 편집위원/ hjpark1230@gmail.com>


잔느 모로, 권태의 현신




공중전화 부스 안의 여인의 감은 눈을 클로스업 하던 카메라가 그의 헤픈 듯 두툼한 입술로 훑고 내려가면서 여인의 착 가라앉은 음성이 들린다(사진) “난 더 이상 못 참겠어요. 사랑해요. 해야 해요. 난 당신을 안 떠 날거에요. 쥘리앙.” 자기 정부에게 자기 남편을 어서 죽이라고 호소하는 이 간부가 콱 씹으면 다크 초콜릿 맛이 날 것 같은 잔느 모로다. 모로가 지난 달 31일 파리서 89세로 사망했다.
모로가 주연한 이 영화는 프랑스 누벨 바그의 기수 중 하나였던 루이 말르가 24세에 감독으로 데뷔한 범죄 느와르 ‘사형대의 엘리베이터’(Elevator to the Gallows^1958)다. 마일스 데이비스의 고독하고 우수에 가득 찬 트럼펫 소리가 자아내는 짙은 무드가 연무처럼 영화를 감싸고돈다.
나는 이 영화를 중학생 때 광화문에 있던 아카데미극장에서 봤는데 컬을 한 금발에 하이힐을 신은 모로가 투피스상의의 깃을 올린 채 밤새 비 내리는 샹젤리제거리를 쥘리앙을 찾아 헤매는 모습을 보면서 저런 여자를 갖기 위해 살인마저 저지르는 남자의 심정을 이해할 것만 같았다. 그리고 그 후로 난 모로의 열렬한 팬이 되었다.
양끝이 내려앉은 농염한 윗입술과 약간 거슬리는 듯한 나른한 음성 그리고 생존을 마다하는 것 같은 눈동자와 그늘진 얼굴을 했던 모로는 마치 세상을 다 산 여인처럼 나태해 보여 보는 사람을 녹작지근하게 만든다. 피곤이 지닌 육감을 현시한 프렌치 쿨의 전형이었다.
모로는 자기 애인이 된 말르와 다음해 ‘연인들’(The Lovers)을 만들었는데 권태로운 유부녀와 젊은 애인의 정사를 다룬 영화에서 모로가 오르가즘을 묘사해 오하이오주의 판사로부터 외설딱지를 받기도 했다.
무대배우로 시작한 모로를 국제적 스타로 만들어준 것이 프랑솨 트뤼포의 ‘쥘르와 짐’(Jules et Jim^1962)이다. 보헤미안적 삶을 사는 두 남자와 한 여인의 비극적 삼각관계를 그린 명화로 모로는 역시 자기 애인이 된 트뤼포의 복수스릴러 ‘흑의의 신부’(The Bride Wore Black^1968)에도 나왔다.
모로의 미국영화로 잘 알려진 것이 버트 랭카스터와 공연한 2차대전 액션영화 ‘기차’(The Train^1964)와 리 마빈과 공연한 ‘몬테 월쉬’(Monte Walsh^1970). ‘몬테 월쉬’에서 황금의 마음을 지닌 창녀로 나온 모로는 마빈과 연인 사이가 되었다. 모로의 또 다른 유명애인으로는 디자이너 피에르 카르댕이 있다. 모로는 두 번 결혼했는데 두 번째 남편이 ‘엑소시스트’를 감독한 윌리엄 프리드킨이다.
모로의 세상만사 다 귀찮다는 듯한 나태와 피곤이 십분 발산된 것이 미켈란젤로 안토니오니의 ‘밤’(La Notte^1961)이다. 모로는 마르첼로 마스트로이안니의 아내로 나와 가정주부의 권태를 천착했다. 입천장이 쩍쩍 말라붙도록 노곤한 영화다.
‘생각하는 남자들의 팜므 파탈’이라 불린 무엇엔가 홀린 듯한 모습의 모로는 겁 없는 도도한 여자였는데 그를 타임지는 일찍이 이렇게 찬양했다. “할리웃에는 그 만큼의 깊이와 폭을 가진 여배우가 없다. 그리고 긴 고문처럼 달려드는 카메라의 시선을 그처럼 이겨낼 개성도 없으며 단순히 자태 하나로 그렇게 다양한 분위기를 자아낼 여자도 없다. 모로의 사랑의 장면은 그 누구의 것보다 강렬하고 그의 고통은 번뇌스러울 만치 신랄하다. 그야말로 무한한 복합성과 신념의 스타다.”
파리에서 태어난 모로는 장 아누이의 연극 ‘안티고네’를 보고 배우가 되기로 했다. 모로는 이런 결심을 아버지에게 말했다가 뺨을 맞았다고 한다. 그러나 모로는 몇 년 후 유명한 코메디 프랑세즈 연극반의 최연소 단원이 되었다. ‘사형대의 엘리베이터’로 유명해지기 전까지는 연극과 범작 영화들에 나왔는데 말르가 모로를 이 영화에 기용한 것은 모로가 나온 테네시 윌리엄스의 연극 ‘뜨거운 양철지붕 위의 고양이’를 보고 나서였다.
모로의 또 다른 좋은 영화들로는 자크 데미의 ‘천사들의 만’(Bay of Angels^1963), 루이스 부누엘의 ‘하녀의 일기’(Diary of a Chambermaid^1964) 그리고 모두 오손 웰즈가 감독한 ‘심판’(The Trial^1962)과 ‘자정의 종소리’(Chimes at Midnight^1965) 및 ‘불멸의 이야기’(The Immortal Story^1968) 등이 있다. 모로는 1976년 자기가 각본을 쓰고 주연도 한 자전적영화 ‘뤼미에르’(Lumiere)로 감독으로 데뷔했는데 또 다른 연출작으로는 ‘사춘기’(L‘Adolescente^1979)가 있다.
내가 지난 2001년 9월 토론토영화제에 참가했을 때 9^11일 테러가 났다. 영화제측이 영화제 중단을 검토하자 영화제에 참석했던 모로가 이렇게 말했다. “어떤 사람들이 우리의 삶 안에 있는 에너지를 죽이려한다고 해서 왜 우리가 살기를 멈춰야 합니까.” 나는 그때 모로의 이 말을 듣고 그의 고매한 인간 혼에 깊이 감동했었다. 아디외 잔느!    
                                                           <한국일보 박흥진 편집위원/ hjpark1230@gmail.com>



2017년 8월 8일 화요일

디트로이트(Detroit)


백인 경찰 필립(앞)이 흑인들과 백인 여자 2 명을 심문하고 있다.

1967년 디트로이트서 무슨 일이?‘미국 흑역사’고발


지난 1967년 여름 디트로이트에서 발생한 흑인 폭동을 가차 없이 사실적으로 다룬 기록영화 스타일의 강렬한 역작이다. ‘허트 락커’와 ‘제로 다크 서티’에서 미국의 소름끼치는 역사를 다룬 여류 캐스린 비글로가 감독하고 이 두 영화의 각본을 쓴 마크 보알이 다시 각본을 썼다.
흑인 폭동의 테두리 안에서 디트로이트 시내 흑인 동네의 허술한 모텔 알지에스에서 일어난 백인 경찰의 흑인 3명 살해 사건을 집중적으로 다루고 있다. 미국의 고질인 인종 차별과 통제가 없는 경찰을 비롯한 공권력의 남용과 횡포 그리고 흑인에 대한 사회적 법적 불평등 등을 고발한 담대하고 절실한 작품이다. 
거의 공포와 테러영화를 보는 것처럼 긴장감이 팽팽하고 영육을 쥐어짜는 듯한 압박감에 시달리게 되는데 뉴스필름과 허구를 섞은데다가 시네마 베리테 식으로 카메라를 들고 찍어 현장감과 사실감에 전율하게 된다. 그리고 배우들도 두 명을 제외하곤 낯선 배우나 신인을 써 이런 사실감을 더 부추기고 있다. 
디트로이트 경찰이 무허가 흑인클럽을 덮쳐 고객들을 밖으로 몰아내 연행하면서 흑인들의 폭동이 시작되고 이어 방화와 약탈이 자행되자 경찰을 돕기 위해 탱크를 몰고 주 방위군이 투입된다. LA의 4.29 폭동을 연상시킨다. 
영화의 주 인물은 인종차별주의자 백인 경찰 필립 크라우스(윌 풀터가 가공할 연기를 한다)와 젊은 모타운 가수 래리 리드(신인 앨지 스미스가 경탄할만한 연기를 보여준다) 그리고 동네 식품점 시큐리티 가드 멜빈 디스뮤크스(존 보이에가) 및 도시로 구직 차 온 베트남전 베테런 로버트 그린(앤소니 맥키).
폭동으로 공연이 취소돼 극장 밖으로 나온 래리와 그의 친구 프레드 템플(제이콥 래티모어)은 알지에스 모텔로 피신한다. 모텔에는 칼 쿠퍼(제이슨 미첼) 등 젊은 흑인 몇 명이 두 명의 젊은 백인 여자들(해나 머리와 케이틀린 디버)과 술을 마시고 음악을 들으면서 즐기고 있다. 
그런데 칼이 창문을 통해 장난감 딱총을 경찰에 쏘면서 필립과 함께 2명의 경찰이 모텔 안으로 들어와 안에 있는 사람들을 붙잡아 복도에 몰아 놓고 두 손을 벽에 대고 서 있게 한 뒤 심문을 시작한다. 필립이 주도하는 이 심문 과정이 40분 간 진행되는데 협박과 폭언과 폭력이 자행되는 긴 심문 동안 모텔은 완전히 공포의 도가니가 된다. 이를 지켜보는 멜빈은 역사의 목격자요 참관인 구실을 한다. 
필립은 로버트 등 흑인들과 두 명의 백인 여자 등 잡아놓은 사람들에 누가 총을 쐈으며 권총이 어디에 있는지를 집요하게 심문하는데 이 과정에서 ‘죽음의 게임’ 방법을 동원한다. 흑인을 방으로 데려가 허공에 총을 쏜 뒤 다시 밖으로 나와 그를 죽였다면서 겁을 주는 것이다. 그리고 흑인 3명이 이들의 손에 죽는다. 다소 길긴 하나 이 40분 간 영화를 보는 사람도 래리 일행과 또 같은 공포와 치욕감과 분노에 몸을 떨게 된다. 
폭동이 끝난 뒤 살인 혐의로 기소된 필립 등 3명의 경찰에 대한 재판이 열리나 전원 백인인 배심원들은 무죄를 평결한다. 디트로이트 폭동 후 반세기가 지났건만 과연 달라진 것이 무엇이냐는 물음을 하게 된다. R. ★★★★ (5개 만점)
                                                             <한국일보 박흥진 편집위원/ hjpark1230@gmail.com>


콜럼버스(Columbus)


진과 케이시(왼쪽)는 만보와 대화를 나누며 우정이 깊어간다.

그림 같은 자연 속 따뜻한 대화… 한인 감독·주연의  수작


현대적 디자인의 아름다운 건물들로 유명한 인디애나주의 도시 콜럼버스(부통령 마이크 펜스의 고향)에서 우연히 만난 한국인 번역가와 이 도시에 사는 젊은 미국인 여자와의 대화를 통한 관계와 성격 탐구를 건물들을 조망하면서 만보하듯이 그린 온기와 인간성 가득한 한 폭의 그림과도 같은 작품이다. 야수지로 오주 영화의 기운을 느끼게 된다. 
건축은 치유의 능력을 지녔다는 여자의 말처럼 건물들이 생명체로서 살아 숨 쉬는데 보기에도 아름다울 뿐 아니라 심오하고 사색적이며 매우 지적인 작품이다. 영화 비평가이자 비디오 예술가인 서울 태생의 한국계 코고나다의 감독 데뷔작으로 그가 각본을 쓰고 편집도 했는데 주인공 남자는 한국계인 베테런 존 조가 맡아서 차분하고 감동적인 연기를 한다. 
연출 솜씨가 확실하고 작품의 분위기와 보조가 몽환적인데 지극히 간소하고 검소한 영화로 대화와 휴지가 절묘한 균형을 이루면서 작품을 천천히 이끌어간다. 고독감에 잠겨들면서도 끝에 가서 해방감에 고요한 희열을 느끼게 된다. 그러나 이 부드러운 작품을 충분히 수용하려면 인내심이 필요하다.   
미국에서 살다가 한국으로 돌아간 번역가인 진(존 조가 한국어를 잘 구사한다)은 콜럼버스에 강연 차 왔다가 갑자기 쓰러져 혼수상태에 빠진 건축학 교수인 아버지를 찾아 이 곳에 온다. 진은 그 동안 가족을 멀리한 죄책감에 빠져있다. 
진이 이 마을에서 약물 중독에서 회복한 서민층의 어머니와 함께 사는 20대 초반의 케이시(헤일리 루 리처드슨)와 우연히 만나 대화를 시작하면서 진은 건축에 관심이 있는 케이시의 안내를 받으며 마을의 건물들을 둘러보며 대화를 나눈다. 케이시는 도시로 나가 건축을 공부하고 싶으나 어머니와 고향에 대한 미련 때문에 단조로운 삶을 견디어낸다. 
이런 케이시의 단조로움을 덜어주는 사람이 박사 공부하는 냉소적인 남자 친구 개브리엘(로리 컬킨). 한편 진도 아버지를 찾아온 동료 여인(파커 포우지)을 어렸을 때부터 사모해 왔다. 
진과 케이시는 몇 날을 함께 만나 걷고 건물을 구경하면서 문화와 환경과 자라온 환경 그리고 세계관과 각자의 꿈에 관해 진지하게 대화를 나눈다. 이로 인해 둘은 짙은 우정을 맺게 되는데 그 감정이 사랑의 변두리에까지 이르는 듯한 느낌이 온다. 그리고 케이시는 이 관계 끝에 자신의 단조로운 삶으로부터 구출된다. 
조의 너그럽고 여유 있는 연기(본격적인 주연배우로서의 면모를 보여준다)와 리처드슨의 알찬 연기가 완벽한 조화를 이룬다. 엄격한 형식미와 함께 자연 속의 두 사람을 찍은 촬영이 극히 아름답고 드문드문 쓴 전자음악과 음향 효과도 매우 좋다. ★★★★ (5개 만점) 
                                                            <한국일보 박흥진 편집위원/ hjpark1230@gmai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