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이야기

2018년 2월 9일 금요일

파리행 오후 3시15분 열차(The 15:17 to Paris)


스칼라토스와 새들러 그리고 스톤(왼쪽부터)이 파리행 고속열차에서 대화를 나누고 있다.

열차 속 테러범 맨손으로 잡은 세 청년의 영웅담


보통 사람들이 절대 절명의 위기의 순간에 처했을 때 보여준 영웅적 행동에 관한 실화로 클린트 이스트우드(87)가 감독했다. 영화를 잘 만드는 이스트우드의 영화로선 타작인데 도무지 양념이 빠진 음식처럼 심심하기 짝이 없다.
지난 2015년 달리는 암스테르담 발 파리 행 고속열차에서 테러를 자행하려던 테러리스트를 맨 손으로 때려잡은 3명의 미국 청년들의 얘기인데 실제로 2분 만에 끝난 액션을 2시간짜리 영화로 만들자니 소재가 부족해 친구들인 청년들의 유년과 소년시절 그리고 이들이 유럽여행을 하면서 구경하고 먹고 마시고 춤추는 얘기를 장황하게 늘어놓았다. 도대체 누가 그들의 성장기를 보고파 할지 궁금하다.
특이한 점은 주인공들로 배우를 안 쓰고 본인들이 실제로 연기한 것. 연기 경력이 전무한 세 청년들의 연기는 그만하면 무던하다. 
영화에서 배우 대신 실제 인물을 쓴 또 다른 대표적 영화는 2차대전의 영웅 오디 머피가 주연한 ‘지옥의 전선’(1955)이 있는데 예쁘장하게 생긴 머피는 그 후로 배우가 돼 많은 영화에 출연했다. 
2015년 8월 21일 오후 3시17분 암스테르담 발 파리 행 고속열차에 탄 백 팩을 진 유럽 여행자들인 스펜서 스톤과 알렉 스칼라토스 그리고 앤소니 새들러는 캘리포니아 주 새크라멘토에서 자란 어릴 적부터의 친구들. 현재 이들은 모두 25세 동갑이다.
기차가 한창 달리고 있는데 AK 라이플과 권총으로 무장한 모로코 태생의 테러리스트 아유브 엘 카자니가 승객들을 향해 무차별 난사를 하려는 순간 스톤이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엘 카자니를 향해 달려가 그를 덮친다. 이어 둘 사이에 격투가 일어나는데 스펜서를 도와 엘 카자니를 제압한 것이 스칼라토스와 새들러. 여기에 다른 승객 몇 명이 합세한다. 
여기서 스톤은 테러리스트가 휘두른 박스 커터에 의해 스톤은 목과 손에 자상을 입는다. 만약 이 때 세 청년이 엘 카자니를 막지 않았더라면 승객 500여명을 태운 열차 안에서 대형 참사가 일어났을 것이다. 
그런데 당시 스톤은 공군 의료원이었고 스칼라토스는 육군 주 방위군으로 그들이 군에서 배운 무술과 총에 대한 지식 때문에 테러리스트를 제압하는데 큰 도움이 됐던 것 같다. 새들러는 칼스테이트 새크라멘토 대학생이었다. 이스트우드는 실제 인물들을 썼을 뿐 아니라(옷도 사건 당시 입었던 것을 입게 했다) 현지 촬영을 했고 또 열차도 당시 달린 열차와 같은 열차를 구해 촬영을 했다. 
영화는 본격적인 액션이 있기 전에 세 친구들의 과거로 돌아간다. 둘 다 홀어머니 밑에서 자란 스톤과 스칼라토스는 이웃에 사는 어릴 적부터의 친구이고 새들러와는 중학생 때 만나 친구가 됐는데 셋 다 자주 교장실에 불려가는 말썽꾸러기들이었다. 이들의 학교생활과 방과 후의 전쟁놀이 등이 묘사되는데 지루하다.
셋은 커서도 돈독한 사이를 유지하는데 여름을 맞아 유럽여행을 가기로 한다. 먼저 베를린으로부터 시작해 로마와 베니스와 암스테르담에서의 이들의 관광유람을 보여주는데 전연 관심이 없다. 영화는 세 청년이 파리의 엘리제궁에서 당시 프랑스 대통령이었던 프랑솨 올랑드로부터 명예훈장을 받는 장면으로 끝난다. 긴장감이나 흥분 그리고 스릴이 전연 안 느껴지는 영웅담으로 세 청년은 앞으로 전문 배우가 되겠다고 한다. 글쎄요. PG-13. ★★½ (5개 만점)
                                                           <한국일보 박흥진 편집위원/ hjpark1230@gmail.com>



피터 래빗(Peter Rabbit)

피터가 가족과 동지들을 데리고 맥그레고씨의 채소밭을 휘젓고 다니고 있다.

채소밭 둘러싼 장난꾸러기 토끼의 모험과 액션


영국의 아동소설 작가 비애트릭스 포터가 쓴 글의 주인공으로 장난기가 심한 토끼 피터의 모험과 액션을 그린 만화영화와 라이브 액션을 혼성해 만든 아이들과 어른들이 함께 즐길 수 있는 가족용 영화다. 속도감과 액션과 유머 그리고 천방지축으로 날 뛰는 활기찬 슬랩스틱 코미디인데 컴퓨터로 그린 만화와 특수효과도 좋고 사운드트랙도 즐겁다. 실제 연기를 하는 배우들과 음성연기를 하는 배우들의 콤비도 그럴싸한데 유명 스타들이 동원됐다. 
런던 교외의 저택에서 채소밭을 가꾸며 사는 변덕스런 맥그레고(샘 닐)의 골칫거리는 자기 가족과 이웃 짐승들까지 동원해 채소밭의 채소들을 약탈(?)하는 토끼 피터(제임스 코든 음성). 피터는 장난기가 심할 뿐 아니라 천상천하 유아독존 식의 다소 오만한 악동. 피터의 아버지는 맥그레고가 잡아 파이를 해 먹어 둘 사이가 아주 안 좋다. 
어느 날 맥그레고가 다시 채소밭을 침략한 피터와 그의 일가족인 피터의 세 여동생 플롭시(마고 로비-‘아이, 토냐’로 오스카 주연상 후보)와 몹시(엘리자베스 드비츠키)와 카튼-테일(데이지 리들리) 그리고 피터의 봉인 사촌 벤자민(콜린 무디)을 쫓다가 심장마비로 급사를 한다. 
집을 물려받은 사람이 런던 시내 해로즈 백화점의 중간 간부로 병적으로 정리정돈에 집착하는 맥그레고의 젊은 친척 토마스(돔날 글리슨). 피터와 그의 가족 그리고 주위 동물들은 토마스가 집을 단장해 팔려고 한다는 것을 알고 피터의 리드로 집을 못 팔도록 사보타지 행위에 들어간다. 이로 인해 피터 일행과 토마스 간에 영토분쟁이 일어나는데 분쟁이 전면전으로 확대되면서 전류가 흐르는 울타리가 설치되고 폭탄까지 동원된다. 
이런 전쟁은 끝에 가서 양방간의 평화무드로 접어들게 되는데 그런 평화공존의 계기가 되는 사람이 토마스의 이웃에 사는 아름다운 화가 베아(로즈 번). 베아는 피터 일가족을 자기 가족처럼 사랑하면서 극진히 아끼는데 베아와 토마스가 가까워지자 베아를 자기 엄마처럼 여기던 피터가 발끈해 토마스를 아예 원수처럼 생각한다. 마치 한 여자를 둘러싼 두 남자의 삼각관계처럼 느껴진다. 베아와 토마스 그리고 베아와 피터 간에 서로 오해가 생기면서 관계에 파도가 치나 내용이 아동용이니 만큼 만사가 다 해피 엔딩! 윌 글럭 감독. ★★★½(5개 만점)
                                                                <한국일보 박흥진 편집위원/ hjpark1230@gmail.com>


육과 영(On Body and Soul)


같은 꿈을 꾸는 엔드레와 마리아가 침대에 함께 누워 있다.

같은 꿈 꾸는 차가운 남녀, 마음 문 여는 마법적 사랑


살육의 현장인 도살장에서 일하는 두 고독한 남녀의 서서히 영글어가는 사랑의 드라마로 마법적 사실주의의 분위기가 느껴지는 아름답고 환상적인 작품이다. 엉뚱하고 약간 과격하고 괴팍하며 시치미 뚝 떼는 유머와 엄격한 현실 그리고 피와 꿈이 뒤엉킨 어른을 위한 동화와도 같은 영화로 서서히 보는 사람의 가슴을 감동으로 젖게 만든다.
고독과 동경의 얘기로 스타일이 좋고 육감적이다. 두 남녀의 상대방에 대한 그리움과 접근을 꿈속의 수사슴과 암사슴의 접촉으로 묘사하면서 인간과 동물의 교접을 동일시하고 있는데 이와 함께 도살장으로 몰려가는 소들의 모습과 도살된 짐승의 모습을 보여주면서 육과 영의 관계를 묻고 있다.
사랑이 가는 순수한 작품으로 사랑과 육과 영의 문제를 절묘하게 엮어간 헝가리의 여류 감독 일디코 에니에디(각본 겸)의 마술사 같은 솜씨가 경탄스럽다. 작년 베를린 영화제 대상인 황금곰 상을 받은 빼어난 영화다. 제90회 오스카 외국어 영화상 후보작.
처음에 눈 덮인 숲속에서 수사슴과 암사슴이 서로를 응시하며 다가 가는 장면으로 시작된다. 이 장면은 영화 플롯이 이어지면서 중간 중간 반복돼 나오는데 그림엽서처럼 곱다. 이어 부다페스트 교외의 도살장의 경리부장으로 과묵하고 다소 무뚝뚝한 중년의 독신남 엔드레(게자 모르크사니)와 도살장 고기 품질검사관으로 얼음장처럼 차갑게 아름답고 병적으로 대인관계에 서툰 마리아(알렉산드라 보르벨리)가 각기 따로 소개된다.
둘은 구내식당에서 자주 마주치면서 엔드레가 마리아를 흠모하게 되지만 내성적인 엔드레는 마리아에게 자기 마음을 고백하지 못한다. 마리아도 엔드레에 호감을 갖는다. 물론 마리아도 자기 마음을 표시하지 못한다.
이렇게 독특한 성격의 두 사람은 매일 같이 만나면서도 관계에 진전이 없는데 둘이 서서히 가까워지는데 엄청난 시간이 소요된다. 이런 둘의 고요한 분위기를 도살장의 살육이 어지럽힌다. 두 사람이 가까워지게 되는 동기는 둘이 매일 밤 같은 꿈을 꾼다는 것을 알게 되면서다. 그 꿈이란 다름 아닌 암수 두 마리 사슴의 꿈.
이 같은 사실을 알게 된 두 사람은 함께 잠자리에 들어보자며 일종의 실험을 실시한다. 둘은 같은 침상에 눕지만 육체관계를 맺진 않는다. 이런 과정을 통해 엔드레와 마리아는 서서히 깊이 상대방에게 빠져드는데 사랑의 얘기이니 만큼 그 과정이 순조롭지만은 않다. 
두 사람의 연기가 아주 좋다. 모르크사니의 속에 유머가 깃든 무딘 사람 같은 덤덤한 연기도 좋지만 백설공주처럼 하얀 얼굴과 큰 눈을 한 보르벨리의 데스마스크를 쓴 것 같은 무표정한 연기가 뛰어나다. 수많은 표정을 지닌 무표정으로 카메라가 그의 아름다운 얼굴을 자주 클로스업 한다. 이와 함께 촬영도 매우 좋다. ★★★★½ (5개 만점)
                                                              <한국일보 박흥진 편집위원/ hjpark1230@gmail.com>

팬태스틱 우먼(A Fantastic Woman)


마리나는 갑자기 애인을 잃고 깊은 슬픔과 충격에 빠진다.

동거 이혼남 돌연사 후 닥친 슬픔과 주변 멸시 극복… 칠레 여인의 인간드라마


상실과 고통과 멸시를 극복하고 자존을 지키며 생의 길을 가기를 포기하지 않는 여인의 인간 드라마로 칠레영화다. 강력한 드라마로 제90회 오스카 외국어 영화상 후보작이다. 세바스티안 렐리오가 감독했는데 그의 이전 영화로 역시 여인의 자존과 독립을 이야기한 ‘글로리아’와 여러 면으로 닮은 데가 있다.
영화의 주인공은 여성으로 전환한 남자로 그가 영육으로 사랑하는 애인을 갑자기 잃고 겪는 슬픔과 그 슬픔으로부터 벗어나는 안팎의 모습을 강건하고 치열하며 또 감정적으로 격하게 다뤄 보는 사람을 걷잡을 수 없이 휘어잡는다. 대단히 힘차고 생생한 작품이다.
산티아고의 나이트클럽에서 노래를 부르며 웨이트리스로 일하는 20대 후반의 마리나 비달(실제로 성 전환한 다니엘라 베가)의 애인은 이혼한 50대 후반의 직물회사 사장 올란도(프란시스코 레이에스). 둘은 극진히 사랑하는 사이로 올란도의 아파트에서 동거한다.
그런데 올란도가 갑자기 쓰러져 병원으로 옮긴 뒤 사망한다. 갑자기 닥친 상실로 마리나는 깊은 충격과 슬픔에 젖는다. 그런데 올란도가 쓰러지면서 몸에 입은 상처 때문에 경찰이 개입해 마리나를 심문한다.
경찰은 마리나를 창녀나 강간범처럼 취급하면서 모욕적인 신체검사까지 한다. 경찰뿐만이 아니라 담당 의사도 마리나를 남자로 취급한다. 그리고 올란도의 전처와 아들 등도 마리나를 사갈시면서 올란도의 아파트로부터 나가라고 요구한다.
이런 멸시와 차별을 마리나는 입을 꽉 다물고 표면적으로 침착하게 대하나 안에서는 분노가 들끓는다. 카메라가 베가의 얼굴을 크게 잡으면서 마리나의 밖과 안이 다른 감정의 미묘한 변화를 자세히 보여주는데 감탄을 금치 못할 연기다.
자기 노래 실력을 제대로 깨닫지 못하는 마리나가 아버지 노릇을 하는 오페라 음성코치를 찾아가 노래에 관해 얘기하는 등(노래도 베가가 직접 부른다) 서브플롯이 있지만 중심 내용은 마리나가 슬픔과 멸시 그리고 고통을 견디어내면서 강한 삶의 의지를 추구하는 주체성 회복의 이야기다.
가슴에 못을 박는 것처럼 충격적인 베가의 연기가 돋보이는 영화로 전자음악과 촬영도 아주 좋다. 영화를 시작하는 이구아수 폭포를 찍은 첫 장면이 아름다운데 이구아수 폭포는 올란도가 마리나의 생일선물로 함께 여행하기로 한 곳이다. Sony Pictures Classics. ★★★★(5개 만점)
                                                               <한국일보 박흥진 편집위원/ hjpark1230@gmail.com>



도로시 말론: 바람위에 쓴 이름


투명한 붉은 나이트가운을 입은 도로시 말론이 맨발로 집안의 계단을 “우당탕 쿵쾅”소리를 내면서 뛰어 올라가더니 자기 방에 들어가 요란한 음악에 맞춰 온몸을 뒤틀고 흔들어대면서 춤을 추는 모습을 보면서 어린 학생이었던 나는 육신 안팎으로 충격에 가까운 전율을 느꼈었다. 농익은 성적매력에 압도당했던 기억이 난다.
이 장면은 말론이 오스카 조연 상을 받은 멜로드라마 ‘바람 위에 쓰다’(Written on the Wind^1956)의 한 장면으로 말론은 텍사스 석유재벌의 상속녀로 섹스에 굶주린 알코홀 중독자 메릴리 해들리로 나온다. 말론 자신도 말했듯이 말론은 이 영화 후로 본의 아니게 부정하고 섹스에 갈급한 술꾼으로 팬들의 기억에 남게 된다.
할리웃 황금기 스크린의 섹시 스타 중의 하나였던 도로시 말론(사진)이 지난 1월 19일 고향 달라스에서 93세로 사망했다. 금발에 커브가 진 몸매를 한 말론은 어딘가 다소 천박한 섹스 어필을 간직한데다가 표정이 소박맞은 여자 같아 남자들의 동물적 감각과 동정심을 동시에 자극한다. 나도 말론의 팬 중의 하나다.
50여년의 연기생활 동안 70여 편의 영화와 많은 TV작품에 나온 말론의 대표작 영화는 단연 ‘바람 위에 쓰다’이다. ‘이미테이션 오브 라이프’와 ‘매그니피슨트 옵세션’ 등 여러 편의 멜로드라마를 만든 더글러스 서크가 감독한 이 영화에서 말론은 자기 오빠(로버트 스택)의 친구 록 허드슨을 짝사랑하면서 자신은 물론이요 주위 사람까지 모두 파괴하는 욕정에 사로잡힌 여자로 나와 눈부신 연기를 보여준다.
시카고에서 태어났으나 달라스에서 자란 말론(본명 도로시 엘로이즈 말로니)은 자기가 다닌 남감리교 대학의 연극에 나갔다가 RKO사의 에이전트의 눈에 띄어 할리웃에 왔다. 그러나 처음에는 대사 없는 엑스트라 노릇만 하다가 워너 브라더스로 옮기면서 빛을 보게 된다.
여기서의 첫 영화가 범죄소설 작가 레이몬드 챈들러가 쓴 글을 원작으로 한 ‘빅 슬리프’(1946)로 서점 점원인 말론은 사립탐정 필립 말로로 나온 험프리 보가트를 은근짜로 유혹해 팬들의 눈길을 끌게 된다. 이어 프랭크 시내트라와 도리스 데이가 주연한 뮤지컬 ‘영 앳 하트’와 탭 헌터가 나온 전쟁영화 ‘배틀 크라이’ 및 딘 마틴과 제리 루이스 콤비가 공연한 코미디 ‘화가와 모델’ 등에 나왔지만 자기 경력에 큰 도움이 될 만한 것들은 아니었다.           
말론은 마침내 할리웃에서 여배우가 성공하려면 어딘가 부정한 데가 있는 섹스 어필하는 여자로 나와야 한다는 것을 깨닫고 유니버설 작인 ‘바람 위에 쓰다’의 출연에 응했다. 이로써 말론은 이 후 과거보다 양질의 영화에 나오게 된다.
무성영화의 수퍼 스타 론 체이니(제임스 캐그니)의 아내로 나온 ‘천의 얼굴을 한 남자’, 록 허드슨과 로버트 스택과 다시 공연한 ‘더럽혀진 천사’, 헨리 폰다와 앤소니 퀸과 리처드 위드마크가 나온 웨스턴 ‘왈록’ 그리고 커크 더글러스와 록 허드슨이 공연한 웨스턴 ‘마지막 황혼’ 등이 그 대표작들. 나는 어렸을 때 3명의 멋진 남자배우들이 나와 서로를 향해 총부리를 겨누는 ‘왈록’을 아주 재미있게 봤는데 여기서 말론이 자기가 사랑하는 마을 보안관 위드마크와 경련하듯 포옹을 하던 장면이 기억에 생생하다. 그러나 이들 영화의 역도 메릴리 해들리 역의 비중만은 못하다. 
예나 지금이나 마찬가지로 말론의 영화배우로서의 절정기는 그가 40이 되면서 시들기 시작했다. 이런 침체에서 벗어나 그가 재기한 작품이 ABC-TV 시리즈 ‘페이턴 플레이스’다. 당시만 해도 영화배우가 TV에 나오는 것은 직업상 자살행위나 마찬가지였지만 말론은 시리즈가 인기를 모으리라고 확신하고 출연에 응했다.
1964-1969년까지 방영된 ‘페이턴 플레이스’는 그림처럼 고운 뉴잉글랜드의 한 작은 마을 주민들의 어두운 비밀과 욕정과 욕망을 다룬 동명소설이 원작으로 1957년에 라나 터너 주연으로 먼저 영화로 만들어졌었다. 말론은 영화에서 터너가 맡았던 자기 딸(당시 19세였던 미아 패로)의 출생에 관한 비밀을 지닌 책방 주인으로 나온다. 시리즈는 미 TV사상 최초로 저녁 황금시간대에 방영된 소프 오페라로 주 3회 방영되면서 선풍적인 인기를 모았다. 이로써 말론은 영화보다 더 큰 인기를 얻고 연기자로서도 새로운 각광을 받게 되었다. 시리즈는 미국 뿐 아니라 전 세계적으로도 큰 인기를 얻었었는데 한국에서도 대단한 인기를 누렸었다.
이 시리즈로 말론의 배우로서의 전성기는 사실상 끝이 났고 그 후로는 ‘페이턴 플레이스의 살인’ 등 TV영화에 나왔다. 말론의 마지막 영화는 샤론 스톤이 나온 섹시 스릴러 ‘원초적 본능’으로 말론은 여기서 살인자로 나왔다. 독실한 기독교 신자였던 말론은 팬들에게 사인을 해줄 때에도 ‘언제나 하나님의 축복이 있기를!’이라는 글을 함께 적었다고 한다. 말론은 세 번 결혼했으나 모두 이혼으로 끝이 났는데 첫 남편과의 사이에 두 딸을 두었다. 자기 말대로 “남자 복이 없는 여자”였다. 굿 바이 도로시!           
                                                             <한국일보 박흥진 편집위원/ hjpark1230@gmai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