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이야기

2016년 8월 16일 화요일

플로렌스 포스터 젠킨스(Florence Foster Jenkins)


젠킨스 부인이 카네기홀에서 노래를 부르고 있다.

재능 없지만 오페라 가수 꿈꾸는 젠킨스의 실화영화


보지 않고는 믿을 수가 없는 실화로 1940년대 음치에 가까운 맨해턴 사교계 여자 플로렌스 포스터 젠킨스가 자신이 오페라 가수의 실력이 있다고 착각하고 카네기홀에서 리사이틀을 가진 뮤지컬 소극이다. 상냥하고 우습고 재미있고 기이한 내용과 함께 배우들의 연기도 좋은 즐길 만한 영화이나 다소 같은 소리를 반복하는 경향이 있어 심심하기까지 하다.         
헬렌 미렌이 오스카 주연상을 탄 ‘여왕’을 만든 영국의 스티븐 프리어스 감독의 작품으로 영국에서 찍었는데 영화가 양념이 덜 된 무공해 식품처럼 맵고 짜고 신 맛이 없어 자극성을 못 느끼겠다. 이 내용은 카트린 프로를 주연으로 지난 2015년 시간과 장소를 1920년대 파리로 옮겨 ‘마게리트’라는 이름의 프랑스 영화로 만들어졌는데 프랑스제가 영국제보다 감칠맛이 더 난다. 
부잣집 상속녀로 오페라광인 젠킨스 부인(메릴 스트립)은 자신이 직접 ‘베르디클럽’이라는 음악 사교모임을 만들어 회원들 앞에서 노래 부르기를 좋아하는데 문제는 박자와 음정이 맞지 않는데다가 노래 소리가 비명처럼 찢어지는 듯해 듣기가 고통스러울 정도라는 것. 제스처도 아주 어색하고 서투르다. 그러나 회원들은 박수를 친다. 일종의 희귀성에 대한 찬양이다. 
모차르트, 베르디, 브람스 등의 노래를 마치 군인이 적을 공격하듯이 무찌르고 들어가는데 젠킨스를 철저히 보호하고 극진히 돌보는 사람이 그녀의 두 번째 남편으로 실패한 영국인 배우 세인트 클레어 베이필드(휴 그랜트). 그러나 둘은 동거를 하지 않는 형식상의 부부로 베이필드에겐 따로 애인 캐슬린(레베카 퍼거슨)이 있다.
천사의 깃털 날개와 함께 머리를 티아라로 장식하길 좋아하는 천진난만한 젠킨스는 소규모의 클럽회원들 앞에서만 노래를 부르다가 자신의 원대한 꿈인 카네기홀 무대에 서기로 결심한다. 그래서 맹훈련에 들어가면서 피아노 반주자를 고른다. 많은 후보 중에 낙점된 사람이 본격적인 콘서트 피아니스트가 되는 것이 목적인 젊은 코스메 맥문(사이먼 헬버그). 
맥문은 젠킨스의 노래를 듣고 아연실색하는데 보수가 후해 울며 겨자 먹기로 반주자 노릇을 한다. 그러면서도 그는 피아니스트로서의 자신의 명성이 구겨질까봐 안절부절 못한다. 이래서 젠킨스와 베이필드와 맥문 등 셋의 젠킨스 카네기홀 무대진출 작전이 본격적으로 진행된다.
마침내 1944년 카네기홀 리사이틀이 결정됐다. 많은 표가 2차 대전에서 귀향한 군인들에게 제공됐지만 소프라노 릴리 폰스 등 프로 음악가들과 평론가들도 참석한다. 젠킨스의 비명소리에 많은 군인들은 야유를 보내나 일부는 격려의 박수를 친다. 그러나 이튿날 평론은 가혹하기 짝이 없고 그 때까지 자기 노래 실력을 제대로 몰랐던 젠킨스는 크게 낙망하고 좌절감에 빠진다. 젠킨스는 리사이틀 후 1달만에 사망했다. 
그런데 젠킨스는 첫 남편으로부터 전염된 매독 때문에 평생을 고생했다. 이 병이 그녀의 정신상태에 영향을 미쳤을지도 모른다는 설이 있다. 자신이 좋아하는 것에 집념하는 순수한 사람의 꿈의 좌절을 그린 작품이기도 한데 스트립이야 무슨 역을 맡아도 잘 하고 오래간만에 보는 그랜트도 매력이 있다. 그러나 상감은 맥문의 연기. 그가 말 대신 얼굴로 표현하는 젠킨스의 노래에 대한 반응이 일품이다. 코미디치곤 농담이 신선치 못하다. PG-13. Paramount. ★★★ (5개 만점)  
                                                        <한국일보 박흥진 편집위원/ hjpark1230@gmail.com>


헬 오어 하이 워터(Hell or High Water)


형제인 토비(오른쪽)와 태너는 은행빚을 갚기 위해 은행을 턴다

현대판 웨스턴 은행강도 스릴러 액션 드라마


액션과 인물 개발, 광활하고 쓸쓸한 모습의 자연풍경 그리고 비가조의 음악과 뛰어난 연기와 탄탄이 조여진 연출로 만들어진 현대판 웨스턴 은행강도 스릴러로 오래간만에 보는 준수한 액션 드라마다. 
그나마 남아 있다가 은행 개발과 같은 현대의 병해로 인해 멸종되어 가는 옛 서부시대의 정취를 그리워하고 비탄해 하는 만가이기도 한데 급작스럽고 작열하는 액션과 게으름을 피우다시피 하는 인물 간의 유머와 조롱기가 섞인 대사와 관계 그리고 형제애가 절묘한 조화를 이룬 역작이다.
사회적 비판을 담고 있는 영화로 강도질을 할 수밖에 없게 된 형제와 은행 빚에 쪼들리다 못해 차압위기에 놓인 쓸모없이 된 목장 그리고 형제를 쫓는 법집행자들 모두에 대해 연민과 이해심이 가득한 심정으로 관조하고 있다. 
텍사스 서부의 황무지가 되다시피 한 목장을 소유한 토비(크리스 파인)와 태너(벤 포스터)는 형제. 이혼한 두 아들의 아버지 토비는 침착하고 원리원칙을 지키는 사람인 반면 1년 전에 출옥한 태너는 무모하고 폭력적이요 불같은 성격을 지녔다. 이들의 목장은 차압위기에 놓였는데 영화는 은행을 서민들의 피를 빨아먹는 괴물로 그렸다.
토비는 목장에서 석유가 나올 가능성이 있다는 것을 알고 은행빚을 갚기 위해 태너와 함께 은행강도를 시작한다. 이른 아침 작은 마을의 은행을 터는데 현찰도 단위가 작은 것만 가져간다. 은행 문이 채 안 열려 기다렸다가 강도질을 하는 것을 비롯해 폭력적인 범죄에 유머를 덧칠했다. 이들은 여러 탕 강도질을 한 뒤 돈세탁을 위해 오클라호마의 아메리칸 인디언 카지노에 들러 일단 돈을 칩으로 바꿨다가 이를 다시 현찰로 교환한다. 
둘을 쫓는 것이 은퇴를 앞둔 나이 먹은 텍사스 레인저 마커스(제프 브리지스)와 아메리칸 인디언과 멕시칸 피가 섞인 마커스의 부하 알베르토(길 버밍햄). 강도질과 도주와 추격과 총격전이 생동감과 함께 신선하고 박력 있다.
이런 폭력 속에 토비와 태너 그리고 마커스와 알베르토의 인간관계와 대사가 진지하고 심도 있게 묘사되고 얘기되는데 유머 또한 넉넉하다. 특히 마커스가 알베르토를 상대로 하는 말 속에 아메리칸 원주민에 대한 조롱과 농담이 섞여 있는데 악의적이라기보다 사라져버린 서부와 용맹한 인디언을 그리워하고 있는 여운이 담겨 있다. 강도질도 마치 제시 제임스의 그것처럼 거의 미화하다시피 했다. 
폐허가 된 서부 광야와 목장과 사람들이 버린 집들이 즐비한 동네의 모습을 넓은 각도로 찍은 촬영이 보기 좋다. 뛰어난 것은 연기들이다. 파인의 차분한 연기와 꽉 조였다가 폭죽 터지는 것 같은 포스터의 연기와 콤비가 나무랄 데 없이 좋고 특히 노련한 브리지스의 체념과 예지와 고독이 가득한 모습과 나태한 태도가 그가 몸 담은 사라져가는 서부를 대변하는 것처럼 향수감이 가득하다. 데이빗 맥켄지 감독. R. CBS Films. ★★★★½(5개 만점)
                                                        <한국일보 박흥진 편집위원/ hjpark1230@gmail.com>      


프로이라인 킴치




얼마 전 지금 독일에서 여름을 보내고 있는 할리웃 외신기자협회(HFPA)의 독일인 동료 엘마 비블로부터 e-메일이 날아왔다. 지금 베를린에서는 김치의 인기가 날이 갈수록 열기를 더해 가고 있는데 네 칼럼에 그 얘기를 쓰면 어떻겠느냐면서 자기가 한국식당 ‘프로이라인 킴치’(Fraulein Kimchi·사진) 앞에서 목격한 경험담과 함께 자기가 찍은 사진을 보내왔다.
한 독일인 노부부가 ‘프로이라인 킴치’ 앞에서 나누는 얘기를 들었는데 부인이 한다는 소리가 “저것 봐요. 저 여자 이름이 킴치네. 참 예쁜 이름이기도 하지”라고 하더라는 것. 물론 이 부부는 김치가 무엇인지 모르는 것이 분명한데 이 말을 옆에서 들은 다른 독일인 부부가 이 노부부에게 김치에 대해 자상히 설명해 주면서 ‘코리안 자우어크라우트’인 김치가 독일에서 날이 갈수록 인기가 치솟고 있다고 알려주더라는 것이다.
그리고 엘마는 독일에서 ‘킴칠리셔스’(김치와 영어로 맛있다는 뜻의 딜리셔스의 합성어)라는 말까지 생겼다면서 자기도 김치 팬이라고 부언했다. 물론이다. 내가 엘마를 데리고 코리아타운의 한국식당에 데려가 갈비와 함께 김치를 먹였으니까.
그래서 엘마가 가르쳐준 대로 컴퓨터로 자료를 찾아보니 베를린 김치열풍의 주인공은 한국인 로렌 리씨. 한국에서 태어나 토론토와 LA에서 성장, 지난 2007년 베를린으로 이주한 로렌씨는 8세 때부터 요리하기를 시작했는데 이모에게서 배웠다고 한다.
지금 로렌씨는 베를린에서 가장 뜨거운 각광을 받고 있는 새 셰프 중 하나로 김치뿐만 아니라 한국과 독일과 캘리포니아 요리를 혼합한 음식으로 베를린 시민들의 큰 인기를 모으고 있다. 로렌씨가 운영하고 있는 식당이 한국어로 번역을 하면 ‘김치 아가씨’인 ‘프로이라인 킴치’로 로렌씨는 식당 경영 외에도 김치요리 강좌에 케이터링 서비스까지 하면서 독일에 김치 맛을 전파하고 있다. 그리고 TV와 신문 등 언론매체에서도 로렌씨가 만든 ‘킴치 라멘버거’를 비롯해 그녀의 김치요리를 보도하면서 김치는 맛이 있을 뿐만 아니라 건강식이어서 더 좋다고 칭찬하고 있다.
나는 이 글을 쓰기 위해 전 세계 외국인들로 구성된 HFPA의 동료기자들에게 김치에 대한 소감을 물어봤다.
‘난 전에 코리아타운에 살아서 김치를 꽤나 많이 먹어 봤다. 처음 먹었을 때 느낀 새콤한 맛이 좋아서 이젠 코리아타운에 가기만 하면 김치를 찾게 된다. 한국하면 김치부터 생각난다.’(티나 크리스튼슨-덴마크)
‘난 한국 김치를 사랑한다! 내게 매운 김치를 제공하던 한국인 이웃이 최근에 이사를 해 이젠 내가 김치 만드는 방법을 배워야겠다. 김치는 내가 가장 좋아하는 발효식품으로 타운 어디서 살 수 있는지 가르쳐주세요.’(오드 모리스-노르웨이)
‘김치는 오랫동안 내 일상의 한 부분이 되어 왔다. 쌀밥 위에 김치만 있으면 다른 음식 필요 없지.’(유끼꼬 나까지마-일본).
‘난 김치를 사랑해. 먹을수록 자꾸 더 먹고 싶게 만들어요.’(재넷 네팔레스-필리핀)
‘난 부산영화제에 갔을 때 김치를 맛본 좋은 경험이 있다. 비록 한국인들과 다른 입맛을 지녔지만 김치는 다른 음식과 함께 먹으면 기운을 넘치게 만드는 한국 음식만의 특성을 지닌 맛 좋은 요리다.’(세르게이 라클린-러시아).
‘난 코리안 바비큐를 좋아하는데 김치 없인 먹을 수가 없지.’(메헤르 타트나-인도)
‘난 김치를 존경한다. 그것이야말로 전 세계가 알아야 할 음식이다. 맛있고 채소로 만든 부드러운 건강식으로 무슨 음식과 같이 먹어도 잘 어울린다. 불고기와 김치는 나의 새 집념으로 절대로 놓치지 않을 것이다.’(루이 코임브라-포르투갈).
그런데 팔레스타인계 유대인인 샘 아시는 내게 “김치가 뭐지”라고 되물어왔다. 무식한 친구 같으니라구.              
김치를 좋아하는 외국인들은 HFPA 동료기자들뿐만이 아니다. 얼마 전에 서울에 갔다 온 맷 데이먼도 기자회견에서 내게 “서울에서 김치 잘 먹었다”고 말했고 최근 한국인 부인과 이혼하기 전까지만 해도 니콜라스 케이지도 “엄마”(장모)가 해주는 김치를 좋아한다고 자랑스럽게 알려줬었다. 그런데 한국사람 하고 살면서도 김치를 안 먹는 사람이 우디 알렌이다. 우디는 기자회견서 내게 “난 김치가 너무 매워 안 먹는다. 그러나 내 아내 순이와 아이들은 김치를 아주 좋아한다”고 말한 바 있다.
김치는 종류도 많다. 배추김치, 무김치, 총각김치, 파김치, 나박김치, 백김치, 오이김치, 갓김치, 보쌈김치, 부추김치, 동치미, 고들빼기 등 외에도 수십가지에 이른다. 내가 가장 좋아하는 김치는 옛날에 어머니와 할머니가 김장을 담그면서 만들어주던 김장 속을 담은 소금에 절인 배추다. 입안이 얼얼해지도록 맵고 얼큰한 그 맛이야말로 지금도 생각하면 입안에서 군침이 절로 흐른다.
피코 블러버드에 있는 추어탕집에 들어가니 벽에 ‘김치는 한국인의 자존심’이라고 써 붙여져 있다. 그렇다. 김치는 한국인의 자존심이다. 모두들 많이 먹고 건강하자.          
                                                            <한국일보 박흥진 편집위원/ hjpark1230@gmai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