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이야기

2017년 12월 29일 금요일

세상의 모든 돈(All the Money in the World)


게일(중간 왼쪽)이 보도진의 질문 공세를 받고 있다. 옆은 해결사 플레처.

석유재벌 게티의 손자 납치 다룬 스릴러 드라마


LA의 게티뮤지엄을 세운 석유재벌 J. 폴 게티의 손자 존 폴 게티 III의 납치사건을 다룬 스릴러 드라마로 솜씨 좋은 감독 리들리 스캇의 것치고는 중간 수준에 지나지 않는다. 보고 즐길 만은 하나 영화가 너무 기계적이고 안전 위주로 만들어져 납치 스릴러가 줘야 할 긴장감이나 아슬아슬한 기운을 느낄 수가 없다.
이 영화는 영화 내용보다도 개봉 한 달여를 앞두고 스캇이 게티 역의 케빈 스페이시가 나온 장면을 모두 제거하고 대신 크리스토퍼 플러머를 기용해 재촬영, 큰 화제가 됐었다. 이유는 스페이시가 섹스 스캔들로 물의를 빚었기 때문이다.
1975년 로마의 밤거리를 배회하던 폴(찰리 플러머-크리스토퍼와 관계 없음)이 괴한들에게 납치된다(괴한들의 두목으로 프랑스의 유명한 배우 로맹 뒤리가 나온다). 그리고 이들은 폴의 어머니 게일(미셸 윌리엄스)에게 전화를 걸어 몸값으로 1,700만 달러를 요구한다.
게티가 버리다 시피한 아들 폴 II의 전처인 게일은 납치된 아들의 조부인 게티(플러머)에게 도움을 요청한다. 그러나 수전노인 게티는 이를 완강히 거부한다. 게티가 얼마나 짠가 하면 그는 세탁비를 아끼기 위해 자기 내복을 손수 욕실에서 빨 정도다. 그런 게티가 1,700만 달러를 납치범들에게 선선히 줄 리가 없다. 게티가 한다는 소리가 자기는 손자가 14명인데 폴의 몸값을 냈다가 다른 손자들도 납치되면 재산 탕진하게 된다는 것이다.
다급해진 납치범들은 폴의 한쪽 귀를 잘라 게일에게 보내자 게일이 게티에게 아들을 살려 달라고 애걸복걸하나 게티는 이에 마이동풍 식이다. 그리고 게티는 문제 해결을 위해 전직 CIA요원인 플레처 체이스(마크 왈버그)를 고용한다.
이어 중간 부분이 장시간 납치범들과 게일(이 영화는 어떻게 보면 게일의 영화라고 하겠다) 간의 몸값을 위한 거래로 진행되는데 양측은 마치 물건을 놓고 값을 흥정하듯 몸값을 흥정한다. 이 흥정으로 몸값이 점점 내려간다. 이 중간 부분이 너무 장황해 지루하다. 게티는 마지막에 상당히 할인된 몸값을 지불하기로 결정하는데 그것도 대부금 형식으로 내기로 한다.
이런 게티는 희귀 고가 미술품에 대해서는 후한데 납치극 와중에도 손자의 몸값 지불은 거절하면서도 마돈나와 아기 예수의 그림을 150만 달러에 살 정도로 미술품 수집에 열성이다. 그래서 지금 게티뮤지엄도 생긴 것이다.
끝부분 경찰의 폴 구출 작전이 있기 전까지 긴장감과 스릴이 부족한 이유 중의 하나가 납치된 폴의 상황에서 그의 귀를 자르는 장면을 빼곤 전연 물리적 위험을 느낄 수가 없는 것. 그리고 찰리 플러머와 마크 왈버그는 미스 캐스팅이다. 둘 다 전연 기력이 없는 연기를 해 영화의 김을 빼는 식.
이에 반해 플러머의 간교하게 매력적이고 위엄과 살기가 도는 연기가 눈부시다. 윌리엄스도 맹렬한 연기를 보여준다. 골든글로브 감독, 여우주연(드라마 부문) 및 남우조연(크리스토퍼 플러머)상 후보. 상영시간 132분. R등급. ★★★ (5개 만점)
                                                               <한국일보 박흥진 편집위원/ hjpark1230@gmail.com>


영화배우는 리버풀에서 죽지 않는다(Film Stars Don‘t Die in Liverpool)


글로리아 그램(왼쪽)과 그의 연하의 애인 피터 터너 역을 맡은 아넷 베닝과 제이미 벨.

50년대 스타 여배우 글로리아 그램, 28세 연하남과의 불꽃 같은 로맨스


1950년대 초 인기 정상에 올랐던 할리웃의 요부형 조연 스타로 ‘악인과 미녀’(The Bad and  the Beautiful·1952)로 오스카 조연상을 탄 글로리아 그램(작은 사진)의 생애 마지막 2년간 영국에서의 연하의 애인 피터 터너와의 관계를 그린 가슴 저미는 로맨스 드라마다. 
그램은 배우로서 완전히 한물간 1979년 연극으로 재기하려고 런던에 갔다가 28세 연하인 터너를 만나 둘이 뜨거운 사랑을 나누나 그로부터 2년 후 유방암으로 57세에 사망했다.
소녀 같은 얼굴에 뾰로통한 표정을 지녔던 그램은 순진으로 위장한 치명적 매력을 지닌 남자 잡는 여자로 잘 나왔다. 그의 대표작들로는 ‘고독한 곳에서’(In a Lonely Place·1950) ‘갑작스런 공포’(Sudden Fear·1952) ‘지상 최대의 쇼’ 및 ‘빅 히트’(The Big Heat·1953) 등이 있다. 몇 차례 결혼 경력이 있는 그램의 남편 중 하나가 ‘이유 없는 반항’을 감독한 니콜라스 레이. 그런데 그램은 레이의 전처에서 본 10대 아들과 잠자리를 같이 하다 레이에게 들켜 이혼을 당한 후 이 아들이 성장했을 때 결혼해 센세이션을 일으켰었다. 
유방암이 휴지기에 접어들었을 때 그램(아넷 베닝-워렌 베이티의 아내)은 시들어버린 인기를 연극으로 재기하려고 런던에 간다. 사람들은 당시 그램을 ‘흑백영화의 빅스타였다’고 기억할 때다. 그램의 어머니는 영국인으로 영화에서 베테런 바네사 그레이브가 어머니로 나온다.
그램은 런던서 리버풀이 고향인 젊은 배우 터너(제이미 벨)를 만나 둘은 나이 차이에도 불구하고 깊은 사랑에 빠진다. 그러나 그램의 유방암이 재발하면서 그램은 터너와 함께 리버풀의 터너의 집으로 거처를 옮긴다. 둘은 그램이 죽음에 이르러 가족과 함께 있기 위해 1981년 뉴욕으로 이동하자마자 사망하기 직전까지 지극한 사랑을 나눈다. 
볼만한 것은 베닝의 민감하면서도 정열적이요 또 재능이 번득이는 연기다. 그램의 흉내를 내지 않고 그의 분위기를 기막히게 잘 표현해 감동적이다. 이와 함께 사랑의 희열과 연인의 죽음을 지켜보는 고통과 이별의 슬픔을 강렬하게 보여준 아역배우(‘빌리 엘리옷’) 출신의 벨의 연기도 출중하다. 
또 터너의 어머니와 아버지로 나온 줄리 월터스와 케네스 크래냄의 연기도 좋다. 필자는 얼마 전 런던에서 터너를 만났는데 얼굴이 벨과 많이 닮았다. 부드럽고 가슴을 파고드는 감정적 힘이 가득한 드라마다. 폴 맥기간 감독. R등급. ★★★★(5개 만점)
                                                                <한국일보 박흥진 편집위원/ hjpark1230@gmail.com>


포스트(The Post)


브래들리 편집국장이 그램 사장(왼쪽) 집을 방문, 비밀문서 보도에 관해 논의하고 있다.

워싱턴 포스트의‘베트남전 기밀 폭로’스릴있게 그려


지난 1971년 미 국방부의 베트남전에 관한 비밀문서를 폭로한 워싱턴 포스트의 내막을 서스펜스와 스릴을 갖춰 속도감 있게 그린 스티븐 스필버그의 흥미진진한 드라마다. 모양새 좋고 말끔하고 또 막힘없는 서술형태 등 스필버그의 특징이 그대로 드러난 영화다.
미디어 스릴러인 이 영화는 자연 후에 역시 포스트에 의해 폭로된 워터게이트 사건을 다룬 ‘모두가 대통령의 사람들’과 비교가 되는데 ‘대통령의 사람들’이 ‘포스트’보다는 한결 품위와 깊이와 무게를 지녔다. 너무 단정한 것이 탈이긴 하나 ‘포스트’는 강건하고 박력 있으며 연기 좋고 또 시종일관 보는 사람의 관심을 잡아당기는 준수한 작품이다. 작품과 감독 그리고 남녀 주연 등 모두 6개 부문에서 골든 글로브상 후보에 올랐다.
닉슨 대통령 당시 로버트 맥나마라 미 국방장관(브루스 그린우드)이 사설연구단체 랜드사에 분석을 위해 맡긴 ‘펜타곤 페이퍼’를 빼낸 사람은 랜드사 직원인 대니얼 엘스버그(매튜 리스)였다. 엘스버그는 문서를 뉴욕 타임즈에 누출해 신문에 보도가 되자 백악관은 더 이상의 보도를 법적으로 막는다.
이에 엘스버그는 포스트의 편집부국장 벤 백티키안(밥 오덴커크)에게 문서를 제공하겠다고 제의한다. 타임즈에게 세계적 특종을 뺏겨 분위기가 안 좋은 포스트의 편집국장 벤 브래들리(탐 행스)는 실추된 명예를 회복할 호재에 들뜬다. 그리고 이런 사실을 포스트의 여사장 캐사린 그램(메릴 스트립)에게 알린다.
그러나 문제는 당시 포스트가 주식을 공개하기 직전이어서 문서를 공개해 정부의 비위를 건드렸다간 이 일에 차질이 생길 것은 물론이요 사장과 편집국장을 비롯해 보도한 기자까지 감옥에 갈 우려가 있다는 점. 당시만 해도 포스트는 지역신문으로 그램은 맥나마라와 친구요 신문도 정부의 비위를 건드리는 일은 삼갔을 때다.
그래서 사장과 편집국장을 비롯해 주식공개 후의 대주주들 간에 문서 보도를 놓고 갑론을박이 벌어진다. 포스트가 문서를 취득하는 과정과 보도를 놓고 관계자들 간에 벌어지는 논쟁이 스릴이 있고 긴장감 가득하다. 특히 이 문제를 놓고 심각하게 논의하는 두 사람이 그램과 브래들리. 브래들리는 보도를 주장하나 남편이 자살하면서 엉겁결에 사장이 된 그램은 회사의 존폐가 달린 이 문제를 놓고 결정을 쉽게 못 내린다. 그러나 최종 결정은 그램의 손에 달렸다. 그램이 과감하게 보도를 결정하면서 1950년대 초부터 마련된 베트남전의 미 정부 정책이 폭로되는데 존슨과 닉슨 등은 국민에게 이 전쟁의 현지 정책을 비롯해 전쟁의 승리 가능성에 대해서도 완전히 거짓말을 했다는 것이 드러난다.
이로 인해 베트남전이 보다 빨리  끝나게 되는 계기가 마련됐고 포스트는 지역신문의 틀을 벗게 되며 그램은 신문을 경영할 정식 자격을 얻는 셈이 된다. 영화는 워터게이트 사건의 시초를 보여주면서 끝난다. 행스와 스트립이 차분하고 중후한 연기를 하는데 특히 스트립의 연기가 좋다. ‘대통령의 사람들’에서 브래들리 역은 제이슨 로바즈가 맡아 오스카 조연상을 탔는데 그의 연기가 행스의 그 것보다는 위엄과 무게가 있다. PG-13. Fox. ★★★★½ (5개 만점)
                                                              <한국일보 박흥진 편집위원/ hjpark1230@gmail.com>


다운사이징(Downsizing)


폴과 오드리(왼쪽)가 축소인간과 만나고 있다.

축소인간 마을에서의 삶과 로맨스 유머 넘쳐


상냥하고 인간적이요 가슴을 파고드는 영화를 잘 만드는 재주꾼 알렉산더 페인(‘사이드웨이즈’ ‘네브라스카’)의 독창적인 아이디어가 돋보이는 공상과학 풍자영화이자 감상적인 인간 코미디다. 날카로운 풍자와 뒤늦게 억지 춘향 식으로 로맨스를 섞는 바람에 영화가 끝에 가서 맥이 빠지면서 지나치게 감상적이 되지만 위트와 유머를 갖춘 재미있고 또 의미도 갖춘 작품이다. 특히 작품 구조가 여러 갈래로 나뉘어져 얘기가 어디로 갈지 알쏭달쏭하게 만들었다.         
노르웨이 박사가 인간을 손가락만 하게 축소시키는 기술을 발명해 노르웨이에 자원해 축소된 사람들로 구성된 마을을 만든다. 지구 환경은 갈수록 악화되고 천연자원은 고갈되고 인구분포는 과밀해지며 경제상황은 하향 길로 접어드는 세상에 모든 것이 현재의 극히 적은 부분만으로도 살 수 있는 복지세상이 만들어진 것이다.  
이로부터 10년 후. 네브라스카 주 오마하에서 소비성향이 강한 아내 오드리(크리스튼 윅)와 사는 육류가공업체 직장건강 담당자인 보통 사람 폴(맷 데이먼)은 장래가 안 보이는 현실을 피해 보다 나은 삶을 찾아 아내와 함께 몸을 축소해 작은 사람들의 부촌인 리저랜드에서 살기로 한다. 비용은 전 재산을 팔아 마련한다. 그런데 뒤 늦게 오드리가 오리발을 내미는 바람에 폴은 혼자서 리저랜드에 도착한다. 
과거에 들던 비용의 극히 적은 부분만으로도 대궐 같은 저택에 골프나 치면서 살면 되니 이야말로 지상천국이다. 폴의 위층에 사는 유럽인 밀수꾼 두산으로 크리스토프 월츠가 나와 야단스럽게 재미있는 연기를 한다. 폴은 두산의 집에서 베트남에서 미국으로 밀입국한 한 쪽 다리가 의족인 여자 청소부 곡 란(홍 차우-골든 글로브 조연상 후보)을 만난다. 란은 직선적이요 생활력이 강하다. 
그리고 폴은 자기들이 사는 지역 울타리 밖에 란 등 빈민들이 사는 동네가 있는 것을 발견한다. 폴은 가난하고 병약한 사람들을 돕는 천사와도 같은 란을 따라다니면서 자기보다 불행한 사람들의 삶을 깨닫게 되고 아울러 란을 사랑하게 된다. 이어 폴과 란은 두산의 도움을 받아 노르웨이의 축소인간들이 사는 피요르드 인근 마을을 찾아 항해를 한다. 
잘 나가던 영화가 폴과 란의 걸맞지 않는 로맨스와 마지막 노르웨이 마을에서의 장시간 이어지는 과다한 감상적 부분으로 인해 용두사미 식이 되고 말았는데 내용이 좀 훈계조다. 보통 사람 역을 잘 하는 데이먼과 차우의 연기가 일품이다. 여러 분도 다운사이징 하시렵니까. R. 상영시간 2시간 15분은 좀 길다. Paramount. ★★★1/2★★★1/2(5개 만점)         
                                                            <한국일보 박흥진 편집위원/ hjpark1230@gmail.com>


에셀과 어네스트(Ethel & Ernest)


레이몬드를 안고 신문을 읽는 어네스트 앞에서 에셀이 차를 따르고 있다.

수채화처럼 아름다운 부모님의 사랑에 바치는 헌시


영국의 유명 작가요 미술가인 레이몬드 브릭스가 40여년을 서로 극진히 사랑하며 살았던 부모 어네스트와 에셀을 그리워하며 삽화와 함께 쓴 책을 바탕으로 만든 만화영화로 참으로 감동적이요 아름답고 수수하다. 
보통 사람들인 어네스트(짐 브로드벤트 음성)와 에셀(브렌다 블레딘 음성)간의 부부애와 함께 이들의 눈으로 본 파란만장한 역사를 솔직하고 담백하며 또 조용히 얘기한 작품이다. 손으로 그린 그림이 부드럽고 살아 숨 쉬는데 두 베테런 배우 브로드벤트와 블레딘의 음성 연기가 두 부부를 생명감으로 넘쳐흐르게 한다. 
1928년부터 시작해 에셀과 어네스트가 사망한 1970년대 초까지 둘의 결혼과 외아들 레이몬드의 출생과 함께 히틀러의 득세와 나치의 런던 공습 그리고 전후 복지국가 건설 등 국내외 역사적 사건들을 질서정연하고 재미있게 서술했다. 
젊은 어네스트는 매일 아침 자전거를 타고 하녀 에셀이 일하는 집 앞을 지나가면서 에셀에게 인사를 보낸다. 그리고 어네스트는 어느 날 느닷없이 꽃을 들고 에셀을 찾아와 데이트를 신청한다. 둘 다 친절하고 겸손한 사람들로 곧 사랑에 빠져 결혼한다. 어네스트 보다 5세 연상인 에셀은 이 때 이미 30세가 넘었다. 
런던 남부 교외에 집을 마련한 둘은 처음으로 소유하는 집이 좋아 어쩔 줄을 모른다. 어네스트는 우유배달부로 취직하고 에셀은 가사를 돌보는데 이어 아들 레이몬드를 낳는다. 의사는 산모의 건강 문제로 더 이상의 출산을 금한다. 어네스트는 우유배달을 자랑스럽게 평생 직업으로 삼는다. 
다른 부부와 마찬가지로 둘도 기쁨과 갈등 그리고 실망과 작은 분쟁을 겪는데 어네스트는 보수파이고 에셀은 진보파라서 종종 정치 다툼을 벌인다. 그러나 둘은 모든 분쟁을 가득한 사랑으로 치유한다. 이어 전쟁이 나고 어네스트와 에셀이 나치의 공습으로 인한 피해에 시달리면서 당시의 참상이 자세히 묘사된다.  
레이몬드(루크 트레다웨이 음성)는 1960년대 히피가 되고 장발을 해 에셀의 권유에도 불구하고 빗으로 머리 빗기를 거절한다. 그러나 어네스트와 에셀은 이런 모든 작고 큰 문제들을 인내와 예지로 극복한다. 그리고 에셀이 알츠하이머에 걸려 기억력과 건강이 쇠약해지면서 병상에 눕는다. 영화를 보는 사람들도 에셀의 가족과 함께 슬픔에 젖게 된다. 잔잔한 감동과 기쁨과 만족감을 느끼게 만드는 고상하고 품위 있는 영화다. ★★★★½ (5개 만점) 
                                                            <한국일보 박흥진 편집위원/ hjpark1230@gmail.com>



리저 시커(The Leisure Seeker)


존(왼쪽)과 엘라가 캠퍼를 몰고 가다 쉬면서 환담하고 있다.

암 걸린 아내와 치매 남편의 마지막 황금여행


암에 걸린 아내와 치매를 앓는 남편의 생애 마지막 황금여행 로드 무비로 ‘노인의, 노인에 의한 그리고 노인을 위한’ 영화다. 내용 탓에 매우 감상적이지만 나이 먹은 사람들은 충분히 즐길만한 희극적 비극이다. 
이런 얘기는 새로운 것은 아니나 두 베테런 배우 헬렌 미렌과 도널드 서덜랜드의 잘 어울리는 조화와 함께 노련한 연기 탓에 묵은 포도주를 맛보는 것 같다. 
이탈리아 감독 파올로 비르지의 연출 솜씨가 능숙하고 효과적인데 올 해 나온 로버트 레드포드와 제인 폰다의 노인들의 고독과 다가오는 죽음을 그린 ‘밤의 우리들의 영혼’(Our Souls at Night)을 연상케 한다. 
매사추세츠 주의 한적한 마을 웰슬리에 사는 노부부 엘라(미렌)와 존(서덜랜드) 스펜서는 어느 날 집에 있는 오래된 캠퍼 ‘리저 시커’를 몰고 플로리다 주의 키웨스트에 있는 헤밍웨이 집을 방문하기 위해 남부로 대장정을 떠난다. 거기 가는 이유는 존이 은퇴한 20세기 영문학 교수이기 때문. 부모가 사라진 것을 뒤늦게 발견한 스펜서네 중년의 자식들은 불난리가 났다. 
급할 것 없으니 존은 시속 50마일로 서행하면서 아내와 함께 사운드트랙으로 밥 딜란과 재니스 조플린의 노래를 즐긴다. 엘렌은 남부 출신으로 상냥하고 쾌활하며 씩씩한 여자이고 존은 학자다운 젠틀맨으로 가사의 주도권은 엘렌이 쥐고 있다. 둘은 서로를 극진히 사랑하는데 이번 여행도 엘렌이 제안했다.
때는 대통령 선거를 위한 유세가 한창일 때로 둘은 여행을 하면서 온갖 경험과 사건과 함께 해프닝을 겪는다. 가다가 건달들을 만나자 엘렌은 갖고 온 총으로 이들을 물리치는데 존은 학자답게 이들에게 “야간대학에 가서 공부해 새 삶을 살라”고 충고한다. 그리고 존은 식당에 들를 때마다 웨이트리스에게 문학 강의를 한다. 그런데 이들은 왜 총을 갖고 왔을까.
둘이 사랑하긴 하지만 역시 부부인지라 다투기도 하고 또 자신들의 사랑에 대해 의심도 하며 그 동안 감추어 놓았던 비밀이 밝혀지기도 한다. 그러나 늘 둘은 자신들의 서로에 대한 사랑을 재발견한다. 끝에 가서 눈시울이 붉어지고 가슴이 뭉클해진다. 
미렌(72)과 서덜랜드(82)는 둘 다 베테런이어서 연기를 아주 쉽고 편안하게 잘 하는데 특히 미렌의 연기가 훌륭하다. 서덜랜드는 2017년도 아카데미 ‘거버너스 어워드’ 수상자로 선정됐고 미렌은 지난 11일에 2017년도 골든글로브 여우주연상(뮤지컬/코미디 부문) 후보로 선정됐다. 오스카 수상 후보에 오르는 자격 조건을 위해 21일까지 일부극장에서 상영된 뒤 극장서 철수했다가 2018년 1월에 본격적으로 개봉된다. ★★★(5개만점)
                                                          <한국일보 박흥진 편집위원/ hjpark1230@gmail.com>



나의 2017년 베스트 텐


할리웃의 메이저들이 어른들을 위한 진지한 영화들을 만들기를 꺼려하는 것은 비단 어제 오늘의 일이 아니다. 메이저들은 올 해도 신선한 아이디어 대신 그들의 주요 상품인 속편과 조야한 코미디 그리고 만화의 수퍼 히로들을 주인공으로 한 영화들을 양산했다. 내가 메이저영화들 보다 외국어영화를 더 좋아하는 이유도 이 때문이다.
통계에 의하면 올 한 해 미국과 캐나다의 극장들이 판 총 입장권의 수가 지난 22년 만에 최저를 기록했다. 전문가들은 그 이유 중의 하나가 어른들이 참신함이 없는 구태의연한 메이저영화에 식상했기 때문이라고 분석했다.
이런 가운데 한국계 영화인들이 만들고 주연한 소품 ‘콜럼버스’(Columbus)가 비평가들의 격찬을 받은 것은 괄목할만한 일이다. 한국계 미국인 코고나다가 감독하고 역시 한국계인 존 조가 주연한 영화는 현대건축으로 유명한 인디애나주 콜럼버스를 방문한 한국인 청년과 마을 도서관에서 일하는 젊은 미국여자가 마을 건물을 둘러보면서 대화와 감정을 나누는 아름다운 드라마다. 이와 함께 봉준호가 감독한 강원도 산골 소녀와 유전자 조작으로 만든 돼지가 주인공인 ‘옥자’(Okja)도 호평을 받았다. 그러나 한국영화의 질이 날로 좋아지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올 해도 오스카 외국어 영화상 후보로 내놓은 ‘택시 운전사’는 후보로 오르는데 실패했다
나의 올 해 베스트 텐을 탑 원을 제외하고 알파벳순으로 적는다.
넘버 1은 마틴 맥도나가 감독한 ‘미주리주 에빙 밖의 3개의 광고’(Three Billboards Outside Ebbing, Missouri-사진)다. 강간 살해된 딸로 인해 분노와 슬픔에 젖은 어머니(프랜시스 맥도만드)가 마을 입구 3개의 광고판에 범인을 못 잡는 경찰서장을 질타하는 내용을 쓰면서 일어나는 이 어머니와 경찰서장 등 마을 사람들 간의 후유증을 그린 강력한 드라마다.
*‘빅 식’(The Big Sick)-파키스탄계 미국인 코미디언과 백인 여인간의 인종과 문화 차이를 너머선 러브 스토리로 실화의 주인공인 쿠마일 난지아니 주연.
*‘네 이름으로 날 불러다오’(Call Me by Your Name)-한 여름 이탈리아의 고대문화 전문 교수 집을 방문한 미국인 대학원 인턴(아미 해머)과 교수의 17세난 아들(티모데 샬라메) 간의 동성애 사랑. 이탈리아인 루카 과다니뇨 감독.
*‘다키스트 아우어‘(Darkest Hour)-2차대전 발발과 거의 동시에 영국 수상으로 선출된 윈스턴 처칠(게리 올드맨)의 대 나치 결사항전 의지를 웅변적으로 담았다.
*‘디트로이트’(Detroit)-1967년 디트로이트에서 일어난 흑인폭동을 기록영화 식으로 다룬 긴장감 가득한 인종차별에 관한 드라마. 여류 캐스린 비글로 감독.
*‘디재스터 아티스트’(The Disaster Artist)-할리웃 사상 최악의 영화로 낙인이 찍힌 ‘룸’(The Room)을 자비를 들여 제작하고 감독하고 주연도 한 타미 와이조의 영화 제작과정을 그린 포복절도할 코미디. 제임스 프랭코가 제작^감독^주연하고 각본도 썼다.     
*‘레이디 버드’(Lady Bird)-가족과 사는 동네를 떠나 자유롭게 날아가고파 안달이 난 새크라멘토의 여고 3년생(서샤 로난)의 사실적이요 상큼한 드라마. 30대 초반의 여배우 그레타 거윅의 감독 데뷔작.
*‘포스트’(The Post)-1971년 미 국방부의 베트남전 비밀문서 보도 여부를 둘러싸고 워싱턴 포스트의 편집국장 벤 브래들리(탐 행스)와 여사장 캐사린 그램(메릴 스트립)이 치열한 논쟁을 벌인다. 스티븐 스필버그 감독.
*‘물의 모양’(The Shape of Water)-미 정부기관의 비밀실험소의 실험대상인 물고기인간과 실험소 여청소부(샐리 호킨스)간의 환상적인 러브 스토리. 멕시칸 감독 기예르모 델 토로 작품.
외국어영화 베스트 텐은 다음과 같다(알파벳 순).
*‘아 치암브라’(A Ciambra-이탈리아)-이탈리아 칼라브리아 지역의 루마니아 커뮤니티에 사는 14세 소년의 눈으로 본 인종 관계와 성장기. *태풍 후‘(After the Storm^일본)-흥신소 직원이 어린 아들의 양육비 마련과 함께 전처와의 재결합을 위해 고군분투 한다. *‘BPM’(프랑스)-1990년대 초 파리의 동성애자들의 정부의 AIDS 대책 촉구와 사랑과 우정. *‘끝없는 시’(Endless Poetry^칠레)-칠레의 초현실적 영화인 알레한드로 조도로우스키의 젊은 시절 자화상. *‘팬태스틱 우먼’(A Fantastic Woman^칠레)-밤에 나이트클럽 가수로 일하는 여성으로 성전환한 웨이트리스가 연상의 애인의 갑작스런 죽음을 맞아 삶의 새 전기를 맞는다. *‘펠리시테’(Felicite^세네갈)-골목 카페의 여가수가 아들이 교통사고를 당하자 치료비를 마련하려고 동분서주한다. *‘폭스트롯’(Foxtrot^이스라엘)-이스라엘 변경의 초소에서 근무하다 사망한 아들로 인해 고뇌와 갈등에 시달리는 부모. *‘아이스 마더’(Ice Mother^체코)-겨울 강물 수영대회에서 만난 노년의 남녀가 사랑에 빠진다. *‘모욕’(The Insult^레바논)-기독교신자인 레바논인과 팔레스타인 난민이 모욕적인 언사를 이유로 소송을 하면서 매스컴을 탄다. *‘육과 영’(On Body and Soul^헝가리)-도살장에서 일하는 두 남녀가 같은 꿈을 꾼다는 것을 알고 꿈을 현실화하기로 한다.
                                                            <한국일보 박흥진 편집위원/ hjpark1230@gmail.com>     
 

LAFCA의 2017 베스트


필자가 속한 LA영화비평가협회(LAFCA)는 지난 3일 2017년도 최우수 영화로 사랑의 이야기 ‘네 이름으로 날 불러다오’(Call Me by Your Name)를 선정했다. 이 영화는 이탈리아의 뜨거운 여름을 배경으로 24세의 미 대학원 인턴(아미 해머)과 그가 묵은 대학교수 집의 17세난 아들간의 사랑과 이 사랑을 통한 소년의 성장을 그린 드라마다.
지적이요 감정적으로 아름답고 정열적인 작품으로 17세 소년 역의 티모데 샬라메(사진 오른 쪽)가 최우수 주연남우로 뽑혔다. 이 영화는 이 밖에도 감독 루카 과다니노가 최우수 감독으로 선정돼 3관왕이 됐다.
최우수 작품의 차점작은 플로리다 주 올랜도의 디즈니월드 인근에 있는 싸구려 모텔의 불우한 투숙객들과 이 모텔의 이해심 깊은 매니저의 관계를 그린 ‘플로리다 프로젝’(The Florida Project)이었다. 최우수 주연남우의 차점자는 코미디 ‘디재스터 아티스트’(The Disaster Artist)에서 사상 최악의 영화로 평가받은 ‘룸’(The Room·2003)을 제작·감독하고 또 각본을 쓰고 주연까지 한 실제 인물 타미 와이조로 나온 제임스 프랭코.
LAFCA에 의해 이 날 3관왕이 된 또 다른 영화는 역시 사랑의 이야기인 ‘물의 모양’(The Shape of Water). 미 정부의 비밀연구소의 실험 대상인 양서류 괴물과 연구소의 말 못하는 여자 청소부간의 사랑을 그린 어른을 위한 환상적인 동화다. 청소부로 나온 샐리 호킨스가 이날 최우수 주연여우로 뽑혔고 영화를 연출한 멕시코감독 기예르모 델 토로가 과다니노와 함께 최우수 감독으로 선정됐다. 이와 함께 이 영화는 최우수 촬영 작품으로 뽑혔다. 이 부문 차점작은 ‘블레이드 러너 2049’(Blade Runner 2049).
한편 최우수 주연여우의 차점자는 ‘미주리 주, 에빙 밖의 3개의 광고판’(Three Billboards Outside Ebbing, Missouri)에서 강간 살해된 딸로 인해 분노와 슬픔에 떠는 어머니로 나온 프랜시스 맥도만드.
최우수 조연남우로는 ‘플로리다 프로젝’의 매니저로 나온 윌렘 다포가 선정됐다. 이 부문 차점자는 ‘3개의 광고판’에서 인종차별 주의자 경찰 역을 한 샘 락웰이었다. 최우수 조연여우로는  ‘레이디 버드’(Lady Bird)에서 자유를 찾아 훨훨 날아가려는 고3 딸을 현실에 정착시키려고 애 쓰는 어머니로 나온 로리 메트캐프가 뽑혔다. 차점자는 전후 미 남부 농촌의 흑백 문제를 다룬 ‘머드바운드’(Mudbound)의 메리 J. 블라이지.
최우수 각본상은 공포물 ‘겟 아웃’(Get Out)을 쓴 조단 필(감독 겸)에게 돌아갔다. 이 영화는 부유한 백인 애인의 부모를 방문한 흑인 청년이 겪는 해괴망측한 경험을 다룬 스릴러이자 흑백문제에 관한 드라마다. 차점작은 ‘3개의 광고판’.         
최우수 만화영화로는 소품 ‘브레드위너’(The Breadwinner)를 뽑았다. 탈리반이 지배하던 아프가니스탄의 소녀가 가족의 생계를  위해 소년으로 위장하고 거리에 나가 장사를 하는 이야기다. 이 영화는 디즈니와 픽사가 만든 멕시코의 ‘죽은 자를 위한 날’을 주제로 한 대작 ‘코코’(Coco)를 제치고 베스트로 선정됐다.
LAFCA는 감독상 외에 외국어영화 부문에서도 2개의 영화 ‘BPM’과 ‘러브리스’(Loveless)를 함께 베스트로 뽑았다. 프랑스영화 ‘BPM’은 1990년대 파리의 동성애자들의 AIDS 퇴치 투쟁과 우정과 사랑을 그린 강렬한 드라마다. 러시아영화 ‘러브리스’는 관계에 회복할 수 없는 균열이 생긴 부부의 12세난 아들이 실종되면서 두 사람의 삶에 드리워진 지워지지 않는 후유증을 다룬 심각한 드라마.                   
뉴 제너레이션 부문 수상자로는 ‘레이디 버드’를 쓰고 감독한 배우 그레타 거윅이 선정됐다. 최우수 기록영화로는 프랑스의 베테런 여류감독 아녜스 바르다와 사진작가 J.R.이 공동으로 만든 일종의 로드 무비 ‘얼굴들 장소들’(Faces Places)을 뽑았다. 차점작은 침팬지 연구가 제인 구달에 관한 ‘제인’(Jane).
최우수 음악 작품으로는 폴 토마스 앤더슨이 감독하고 대니얼 데이-루이스가 1950년대 런던의 고급 패션 디자이너로 나온 ‘팬텀 스레드’(Phantom Thread-조니 그린우드 작곡)가 선정됐다. 차점작은 알렉상드르 데스플라가 작곡한 ‘물의 모양’.
편집 부문 최우수작은 2차대전시 던커크 철수작전을 그린 크리스토퍼 놀란 감독의 ‘던커크’(Dunkirk). 차점작은 미 피겨 스케이터 토냐 하딩의 라이벌 낸시 케리간에 대한 폭행 사건을 다룬 ‘아이, 토냐’(I, Tonya). 최우수 프로덕션 디자인 수상작으로는 ‘블레이드 러너 2049’이 선정됐다. 차점작은 ‘물의 모양’이다.
한편 생애업적상 수상자로는 ‘제7의 봉인’(The Seventh Seal), ‘겨울 빛’(Winter Light) 및 ‘치욕’(Shame)등 잉그마르 베리만의 여러 작품과 함께 ‘엑소시스트’(The Exorcist)에서 노 신부로 나온 스웨덴의 베테런 막스 본 시도를 선정했다. 제43회 LAFCA 시상만찬은 2018년 1월 13일 센추리시티의 인터칸티넨탈 호텔에서 열린다.
                                                             <한국일보 박흥진 편집위원/ hjpark1230@gmail.com>


2017년 12월 14일 목요일

‘물의 모양’(The Shape of Water)


엘리사와 물탱크 안의 괴물이 서로를 응시하고 있다.


괴물과 인간의 소통 ‘어른용 동화’


아름답고 감정적인 공포영화를 장인의 솜씨로 만들어내는 멕시코 감독 기예르모 델 토로(공동 각본)의 상상력 넘치는 어두운 기운을 지닌 상냥한 로맨틱 동화로 올 베니스 영화제 대상 수상작이다. 영혼이 깃든 ‘미녀와 야수’의 얘기로 괴물과 인간 여자의 상호 이해와 감정 이입 그리고 정신적 육체적 사랑을 유머를 섞어 시각적으로 또 감정적으로 황홀하게 그려낸 환상영화로 서스펜스 스릴러 분위기마저 지녔다.
연기와 초록과 푸른 색 위주의 촬영과 프로덕션 디자인을 비롯해 알렉상드르 데스플라의 고운 멜로디가 있는 음악까지 모든 것이 준수한 작품으로 옛 할리웃과 미국 팝문화에 대한 헌사까지 겸하고 있다. 감독은 영화에서 미국의 옛 스탠다드 노래들과 빅밴드음악을 비롯해 할리웃의 옛 뮤지컬과 성경영화 등을 찬미하고 있다. 특히 이 영화는 할리웃이 만든 ‘검은 초호의 괴물’(Creature from the Black Lagoon·1945)을 연상케 한다. 
어른들을 위한 환상적인 동화이면서 아울러 자기와 다른 것에 대한 관용을 호소하고 있는 영화는 볼티모어의 극장 위에 달린 아파트에 사는 직장에서 쫓겨난 게이 화가 가일즈(리처드 젠킨스)의 옛날 얘기를 들려주는 식의 독백으로 시작된다. 수중에 잠긴 채 가구들이 유영하는 아파트를 그린 첫 장면부터 신비롭게 아름답다. 
때는 미·소간 냉전이 한창이던 1960년대 초. 가일즈의 유일한 친구는 이웃 아파트에 사는 정부소속 우주항공기관의 야근 청소부 엘리사(샐리 호킨스)로 고독하나 밝고 생활력 강한 엘리사는 말을 못한다. 엘리사 대신 말이 많은 것이 그의 청소부 친구 젤다(옥타비아 스펜서). 
엘리사가 아마존 수로에서 건져내 이 비밀 연구소에서 실험대상으로 쓰는 지느러미가 달린 괴물(덕 존스)과 의사와 감정을 소통하면서 인간과 괴물의 아름다운 관계가 무르익는다. 자기를 무서워하지 않고 매료돼 호기심과 자비심으로 접근하는 엘리사와 그에게 자신의 혼과 감정으로 호응하는 괴물간의 관계가 마치 풋풋한 첫사랑처럼 곱다. 괴물의 아름다운 내면 탓에 그를 괴물이라고 부르기가 석연치 않다. 
연구소는 괴물의 폐 구조를 우주경쟁을 위해 사용하려고 연구하고 있는데 그 일을 담당한 과학자가 비밀을 지닌 로버트 호프스테틀러 박사(마이클 스툴바그)이고 괴물 관리의 총책임자는 잔인하고 고약한 정부관리 스트릭랜드(마이클 섀논). 스트릭랜드는 전기충격봉으로 괴물을 못 살게 굴다가 괴물에 의해 손가락을 물린다.  
괴물이 고통하는 것을 보다 못해 엘리사는 괴물을 연구소로부터 빼내기로 하고 가일즈와 젤다의 도움을 받아 괴물을 빼내 자기 아파트 욕조에 감춘다. 그리고 물로 가득 채운 배스룸에서 괴물과 엘리사간의 정열적이요 아름다운 정사가 벌어진다. 이어 스트릭랜드가 괴물을 찾아 수색에 나서고 엘리사가 괴물을 데리고 강가로 도주하면서 서스펜스가 영근다. 
표현력 풍부한 괴물 역의 존스를 비롯해 조연진의 연기가 출중한데 무엇보다 뛰어나게 아름다운 것은 호킨스의 연기. 진지하고 민감하며 또 섬세하면서도 폭이 넓은 연기다. 
LA영화비평가협회(LAFCA)에 의해 올 해 최우수 감독상(공동)과 촬영상 및 여우주연상 수상작으로 선정됐다. R등급. Fox Searchlight. ★★★★½ (5개 만점) 
                                                                <한국일보 박흥진 편집위원/ hjpark1230@gmail.com>


‘아이, 토냐’(I, Tonya)

하딩이 심판에게 스케이트에 이상이 있다고 설명하고 있다.

피겨 스케이팅 '이단아' 하딩의 성장과 파멸 다큐 형식으로 담아


미 스포츠 역사상 가장 악명 높은 사건인 미 챔피언 피겨 스케이터 토냐 하딩의 라이벌 낸시 케리간에 대한 폭행을 다룬 재미 만점의 드라마이자 블랙 코미디다. 감독 크레이그 길레스피는 하딩의 불우한 어린 시절로부터 시작해 그의 스케이팅 재능을 발견한 어머니에 의한 맹훈련과 첫사랑과 결혼 그리고 챔피언쉽 획득에 이어 케리간에 대한 폭력행사로 인한 불명예 은퇴를 주연과 여러 명의 조연배우들을 동원해 마치 기록영화 찍듯이 만들었다.
배우들이 가끔가다 카메라를 향해 얘기해 기록영화 스타일과 분위기가 더 짙은데 하딩의 불같은 성질과 스케이팅의 유연한 동작을 포착한 카메라가 처음부터 끝까지 분주하게 움직이면서 화면에 생기를 불어 넣는다. 주연인 마고 로비의 연기와 함께 조연진의 각기 개성 있는 연기가 볼만한 야하고 싱싱한 영화다.
하딩은 식당 웨이트리스로 골초에 폭력적이요 상소리를 밥 먹듯이 내뱉는 어머니 라보나 고든(앨리슨 재니가 무식한 여자의 연기를 겁나게 해낸다)에 의해 어릴 때부터 스케이팅 링에 선다. 딸의 재능을 안 라보나는 폭군이지만 딸을 챔피언으로 만들기 위해 고생해 번 돈을 아끼지 않고 딸의 훈련비로 쓴다. 하딩의 재능을 발견한 또 다른 사람이 코치 다이앤 롤린슨(줄리앤 니콜슨). 다이앤은 하딩이 자라서도 그의 뒷받침을 한다.
영화의 전반부는 하딩의 10대 시절과 스케이팅 훈련 그리고 하딩과 날건달 제프 길룰리(세바스찬 스탠)와의 사랑과 결혼으로 꾸며진다. 그런데 제프는 하딩을 사랑하면서도 툭하면 아내에게 폭력을 행사하고 아내의 유명세를 마음껏 누린다. 하딩은 불우한 성장과 남자 선택이 서툰 여자로 멸시 받고 두들겨 맞으면서도 의지와 재능으로 이를 극복하고 짧은 영광을 누렸던 어떻게 보면 불쌍한 여자다.
하딩이 유명해진 것은 1991년 미 챔피언쉽 경기에서 공중 3회전을 하면서인데 그 당시로서 이 기록은 미 여자 피겨스케이팅 사상 최초의 쾌거였다. 하딩은 성질이 고약할 정도로 불같아 심판들이 점수를 박하게 주면 상소리를 거침없이 내뱉는다. 단정하고 발레리나 같은 챔피언을 바라는 피겨스케이팅 세계에서 하딩은 미운 오리 새끼였다. 그리고 하딩은 올림픽에 출전한다.
라보나와 제프 및 다이앤 외에 중요한 조연은 하딩의 얼빠진 바디 가드 션 에카르트(폴 월터 하우저). 하딩의 라이벌 케리간에 대한 폭행은 1994년 1월 디트로이트에서 발생했는데 릴리해머에서 열릴 동계올림픽을 위한 연습 때. 하딩과 이혼한 제프가 고용한 스탠트가 케리간의 허벅지를 가격해 전 세계적인 화제가 됐는데 케리간은 부상이 회복돼 올림픽에 출전, 은메달을 탔고 하딩은 8위에 그쳤다.
하딩은 후에 케리간에 대한 폭력을 사전에 인지했다는 이유로 피겨 스키이팅계에서 쫓겨났다. 재니의 연기와 함께 볼만한 것은 로비의 연기다. 짙은 화장에 야한 싸구려 스케이팅 의상을 입고 역이 재미있다는 듯이 신이 나서 날뛰다시피 한다. 재니의 연기와 함께 상감이다. R. ★★★★ (5개 만점)
                                                                <한국일보 박흥진 편집위원/ hjpark1230@gmail.com>


2017년 12월 1일 금요일

‘원더 윌’ (Wonder Wheel)


지니(가운데)의 소개로 미키(왼쪽)와 캐롤라이나가 악수를 하고 있다.

연하 애인 향한 욕망·질투… 케이트 윈슬렛  불꽃 연기


재잘대는 우디 알렌의 영화치곤 마이너급에 속하지만 뒤늦게 찾은 연하의 애인에 대한 애정과 욕정과 질투에 어쩔 줄 몰라 하는 주인공 지니 역의 케이트 윈슬렛의 화끈한 연기가 볼만한 멜로드라마다. 
그 밖에도 조연진의 좋은 연기와 알록달록하고 빛과 어두움을 잘 조화시킨 촬영(알렌의 단골 촬영감독 비토리오 스토라로)과 1950년대를 보여주는 프로덕션 디자인(알렌의 단골 프로덕션 디자이너 산토 로콰스토) 등이 훌륭한 비극적 종말의 어두운 코미디 드라마다.
지니가 한물 간 왕년의 영화배우로서 자기가 했던 역을 재현하며 망상이나 다름없는 꿈에 시달리다 못해 거의 광기 같은 히스테리를 부리는 것이 마치 테네시 윌리엄스의 ‘욕망이라는 이름의 전차’에서의 블랜치 역을 상기시킨다. 그리고 근육질에 상스러운 지니 남편 험프티도 코왈스키를 연상케 한다. ‘욕망이라는 이름의 전차’의 주인공 코왈스키네 집처럼 이 영화도 서민층의 드라마다. 
영화는 알렌이 선배 연극인에게 바치는 헌사라고도 하겠다. 연극 같은 분위기가 나는 작품이다. 그의 자의식이 큰 몫을 차지한 영화로 브루클린 출신의 알렌이 1950년대와 브루클린과 코니 아일랜드를 그리워하며 만든 영화이기도 하다.  
코니 아일랜드의 라이프 가드 미키(저스틴 팀벌레이크)가 관객을 향해 자기소개를 하면서 시작된다. 한 여름 인파로 복작대는 코니 아일랜드 저편으로 거대한 페리스 윌이 보인다. 페리스 윌은 영화에 나오는 미몽에 매어달리는 인물들의 돌아가는 운명을 상징한다고 봐도 좋다. 
그리니치 빌리지에 사는 미키는 뉴욕대학원생인 작가 지망생으로 빤질빤질하게 생긴 언변 좋은 난봉꾼. 해변에서 미키를 만난 지니가 남자에게 반하면서 비극의 씨앗이 뿌려진다. 지니는 해변 대합조개 술집 웨이트리스로 과거 알코올 중독자였던 카루셀 오퍼레이터 험프티(짐 벨루시가 무지막지한 연기를 잘 한다)와 어린 아들 리치(잭 고어)와 함께 코니 아일랜드에 있는 집에서 산다. 그런데 방화광인 리치는 지니와 재즈 드러머였던 전 남편 사이에서 본 아들이다. 지니의 이혼 이유는 지니가 바람을 피웠기 때문. 
사랑도 장래도 없는 삶에 지칠 대로 지쳐 심한 만성 두통에 시달리는 지니는 미키에게 집요하게 매달리는데 미키는 이런 지니와 보드워크 아래 등지에서 뜨거운 정사를 나누면서 함께 보라 보라로 도망가자고 헛소리를 한다. 그러나 지니에겐 이 말이 진실로 들린다. 
그런데 지니 집에 5년 전에 갱스터에게 반해 가출한 험프티의 딸 캐롤라이나(주노 템플)가 돌아오면서 지니와 캐롤라이나가 미키를 놓고 삼각관계를 이루게 된다. 지니가 미키에게 캐롤라이나를 소개하면서 두 젊은 남녀가 사랑에 빠진 것. 그러나 지니와 미키의 관계를 모르는 캐롤라이나는 지니에게 미키와 자신의 관계에 대해 자문을 구하는데 미키를 놓지 않으려고 혈안이 된 지니가 캐롤라이나를 제거할 계획을 꾸미면서 영화 마지막 부분이 급격히 어두워진다. 자기를 극진히 사랑하는 아버지의 권유로 야간대학에 들어간 캐롤라이나가 남편을 버리고 도망 온 이유는 남편과의 사이가 멀어진 캐롤라이나가 갱의 비리를 FBI에 고자질했기 때문. 그래서 갱스터들이 캐롤라이나를 찾아 코니 아일랜드에 온다. R. ★★★ (5개 만점) 
                                                              <한국일보 박흥진 편집위원/ hjpark1230@gmail.com>



‘희망의 건너편’(The Other Side of Hope)


발데마르(앉은 사람 중 오른쪽)가 할레드에게 수프를 대접하고 있다. 뒤는 종업원들.


난민 소재 인간성·유머 조화 미니멀리즘의 극치


시치미 뚝 뗀 바싹 마른 블랙 코미디의 장인 핀란드의 아키 카리우스마키의 인간성 가득하고 배꼽 빠지게끔 우스운 영화로 연기와 표정과 세트를 비롯해 대사에 이르기까지 미니멀리즘의 극치를 이루고 있다.
감독은 현재 유럽의 큰 문제 중의 하나인 난민 문제를 진지하면서도 냉소적으로 해부하면서 아울러 드라이 아이스처럼 건조한 유머를 섞어 정치와 인간관계 코미디를 잘 조화시킨 재미 만점의 작품을 내놓았다. 
헬싱키의 우중충한 공업지대 항구에 도착한 석탄화물선에서 밀항자 시리아 난민 할레드(셰르완 하지)가 내린다. 그는 곧바로 경찰서에 찾아가 망명신청을 한다. 중년의 셔츠세일즈맨 발데마르 비크스트룀(사카리 쿠스마넨)은 알코올 중독자인 아내를 버리고 가출한 뒤 재고를 청산한 돈으로 거액의 불법 도박판에 가서 엄청난 돈을 딴다. 그리고 이 돈으로 망해가는 식당을 사고 거기에 딸린 세 명의 종업원도 고용한다. 
영화의 중심 내용은 할레드와 발데마르라는 생면부지의 두 사람이 만나 핀란드의 난민정책을 둘러싼 관료주의의 맹점을 짓궂게 폭로하면서 아울러 식당의 장사와 종업원들의 모습을 비롯해 식당에 관한 얘기를 킬킬대고 웃게끔 묘사하고 있다.
할레드는 망명신청이 거부되자 수용소를 탈출했다가 발데마르를 만나게 되는데 겉으로는 무뚝뚝하나 마음은 인자한 발데마르에 의해 식당 종업원으로 고용된다. 발데마르가 할레드를 보는 눈길이 하필이면 왜 핀란드 같이 못 사는 곳에 왔느냐고 힐난하는 것 같다. 
할레드는 인종차별주의자들인 깡패들로부터 얻어터지기도 하지만 어떻게 해서든지 피난길에 잃어버린 여동생을 찾아 핀란드에 데려오려고 모든 고생을 참는다. 이를 기꺼이 돕는 사람이 발데마르와 수용소의 여직원. 감독은 인간의 선한 마음을 요란 떨지 않고 아름답게 드러내 보여준다. 
기 차게 우스운 것은 전통 핀란드 식당 영업이 부진하자 종업원들이 모두 일본식 복장을 한 스시집으로 바꾸고 손님을 맞는 장면. 연어가 떨어지자 소금에 절인 통조림 청어로 일본인 단체 관광객을 접대하니 장사가 잘 될 리가 있겠는가. 
할레드와 발데마르와 함께 세 명의 종업원들의 시종일관 표정 없는 연기가 황당무계한 코미디를 확실하게 뒷받침해주고 있다. ★★★★ (5개 만점)
                                                             <한국일보 박흥진 편집위원/ hjpark1230@gmail.com>


팻 분


“아일 비 홈 마이 달링/플리즈 웨이트 포 미” 하면서 시작되는 ‘아일 비 홈’은 내가 가장 좋아하는 팻 분의 노래다. 약간 비음에 솜사탕처럼 달콤하고 조류가 막 왔다간 뒤의 백사장의 감촉과도 같이 부드러운 음성을 지닌 분은 83세라는 나이답지 않게 젊어 보이고 건강했다. 한창 감수성이 영글어가던 고등학생 때 분의 노래를 들으면서 성장한 내가 이제 인생의 황혼기에 깊숙이 들어서 그를 직접 만나(사진) 인터뷰를 하자니 만감이 교차했다. 분을 최근 할리웃 외신기자협회(HFPA) 사무실에서 만났다. 
분은 내가 한국 사람이라는 것을 알고 한국 여성 팬들의 열광을 회상했다. “한국을 너 댓 차례 방문해 공연했는데 여성 팬들이 무대에서 자기들을 향해 손을 내미는 나를 밑으로 끌어내리려고 했다”면서 “그들의 손힘이 매우 세더라“며 크게 웃었다.
그가 1956년에 불러 빅히트한 ‘아일 비 홈’도 한국과 인연이 있는 노래다. 분은 고향에 남겨두고 온 님을 그리워하는 이 노래가 당시 한국전 후 한국에 주둔했던 미군들과 그들 고국의 가족들 사이에서 크게 유행, 연 4년간 넘버 원 신청곡이었다고 알려 주었다.
젊었을 때 정통 올 아메리칸 보이의 이미지를 지녔던 분은 이런 이미지와 로맨틱한 음성 때문에 1950년대 백인 틴에이저들의 우상으로 사랑을 받았고 생애 총 42곡의 탑 40를 기록하면서 수천만장의 레코드가 팔려나갔다. 분은 이런 단정한 모습과 온순하고 고운 노래들 때문에 당시 골반을 마구 비틀어대며 ‘악마의 노래’인 로큰롤을 부른 엘비스 프레슬리를 혐오하던 틴에이저들의 부모들에게도 큰 인기를 누렸었다.
그런데 테네시주 내슈빌에서 자란 분은 역시 테네시의 멤피스에서 활동한 프레슬리와 친구이자 라이벌이었다. 분은 인터뷰에서도 프레슬리에 대해 자상히 회상하면서 자기가 그보다 탑 40히트곡이 딱 1곡 더 많다고 자랑했다.
분은 나이에 비해 강건할 뿐 아니라 컬럼비아 대를 우등으로 졸업한 사람답게 기억력도 비상했다. 무슨 노래를 몇 년도에 불렀다는 것을 또렷이 기억했다. 분은 이 같은 육체와 정신적 건강의 비결을 “우유를 많아 마시고 운동을 많이 하며 깨끗한 양심을 지는 것”이라고 말했다.자기를 “팻”이라고 부르라고 부탁하는 분은 친절하고 상냥하며 또 이웃집 아저씨처럼 편안했다. 그래서 첫 대면인데도 구면처럼 친근감이 갔다.
분은 수많은 히트 팝 뿐 아니라 가스펠, 록, 컨트리와 리듬 앤 블루스를 비롯해 심지어 헤비 메탈 장르까지 섭렵한 가수다. 그런데 뒤 늦게 시도해 빅히트한 헤비 메탈 앨범을 출반했다가 자기가 출연하던 기독교TV쇼에서 쫓겨났다고 한다. 그러나 분은 랩은 음악이 아니라고 딱 잘라 말했다. “그 건 음악이아니라 리듬에 붙인 폭언”이라고.
분은 이 날 자신의 가수로서의 생애 외에도 지난 63년간을 함께 해로한 아내 셜리와 히트곡  ‘유 라이트 업 마이 라이프’를 부른 딸 데비 및 정치와 신앙 등에 관해서도 길고 상세하게 얘기, 인터뷰는 근 2시간이나 진행됐다.
여러 펀의 영화에도 나온 분의 작품 중 잘 알려진 것이 자기가 주제가도 부른 ‘에이프릴 러브’(1957)와 빅히트한 공상과학 모험영화 ‘저니 투 더 센터 오브 디 어스’. 그런데 분은 ‘에이프릴 러브’에서 공연한 셜리 존스와 키스 한 번 못 했다며 크게 웃었다. 감독 헨리 레빈이 마지막 장면을 찍을 때 존스의 입에 키스를 하라고 지시했지만 분은 아내에게 허락을 받아야 한다며 사절했다는 것이다.
분은 당시 22세였는데 그 때부터 그는 매우 도덕적이었다고 한다. 그래서 마릴린 몬로와 공연할 영화도 그 내용 때문에 거절했다고 말했다. 그런데 분은 ‘에이프릴 러브’ 개봉 40주년 회고전 때야 비로소 무대에 함께 나온 존스의 입에 키스를 했는데 “가볍고 아름다운 키스였다”고 회상했다.
분은 자기가 가수가 되리라곤 생각하지도 못했다. 교사나 목사가 될 줄 알았다는 것. 둘 다 그의 이미지에 어울리는 직업인데 분은 독실한기독교 신자다. 철저한 보수파 공화당원인 분이 지난 선거에서 도널드 트럼프를 “마지못해 지원한” 까닭도 트럼프가 새로운 기독교신자라고 믿었기 때문이다.
분은 트럼프 지지운동을 해 트럼프로부터 고맙다는 전화를 받았다고 한다. 분은 통화에서 트럼프에게 “대통령 감답지 못한 짓이니 상대방을 욕하지 말라”고 조언했다고. 분은 이어 “트럼프가 비생산적인 트위팅을 중단하기를 바란다”면서 “그러나 나는 그를 지지하며 그를 위해 기도한다”고 강조했다.             
분의 많은 노래들 중 내가 즐겨 듣던 노래들은 ‘웬 아이 로스트 마이 베이비’ ‘무디 리버’ ‘프렌들리 퍼수에이전’(영화 ‘우정 있는 설복’ 주제가) ‘러브 레터즈 인 더 샌드’ ‘스피디 곤잘레스’ 및 영화 ‘엑소더스’의 주제가. “디스 랜드 이즈 마인”으로 시작되는 ‘엑소더스’의 주제가는 이스라엘의 제2의 국가로 여겨지면서 이스라엘 국민의 사랑을 받고 있다. 나는 지난 2005년 세리토스 공연센터에서 분의 공연을 관람했었다. 그 때 분은 71세로 여전히 스위트한  음성이었다. 세월은 가지만 분의 노래들은 내겐 지금도 청춘의 속삭임으로 남아 있다. 이 할러데이 시즌에 분의 크리스마스 캐롤을 들으면 축복 받는 기분이 날 것이다.           
                                                             <한국일보 박흥진 편집위원/ hjpark1230@gmai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