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이야기

2017년 6월 5일 월요일

원더 우먼(Wonder Woman)


원더 우먼이 1차대전 전선에서 독일군을 무찌르고 있다.

1차 대전에 간 여전사 ‘원더 우먼’ 액션장면 장관


DC 코믹스 만화의 여전사 원더 워먼의 액션과 모험을 그린 환상영화로 경쾌하고 단순한 옛날 영화 스타일의 작품이다. 
원더 우먼의 얘기는 지난 1970년대 미스 월드 아메리카인 린다 카터를 주인공으로 한 TV시리즈로 만들어져 빅 히트했었다. 남자 영웅 대신 여자 영웅이 맹활약하는 이 영화는 전쟁액션영화요 로맨틱 코미디이자 여자 영웅의 성장기로 액션이 볼만하고 유머도 충분해 오락영화로 안성맞춤이다. 순진한 영화로 상영시간이 2시간20분이나 돼 후반부에 가서 얘기가 지지부진한 감이 있다.
원더 우먼 역은 미스 이스라엘 출신의 갤 개돗이 맡았는데 개돗은 지난 해 ‘배트맨 대 수퍼맨: 정의의 새벽’에서 이미 이 역을 맡았었다. 그런데 개돗의 표정 연기가 지극히 단순하다. 
영화는 여전사들인 아마존들이 사는 저 세상 낙원의 섬에서 시작된다. 여왕 히폴리타(카니 닐슨)의 딸인 어린 다이애나는 이모 앤티오피(로빈 라이트)에 의해 싸움 잘 하는 여전사로 성장한다. 
이 섬에 1차 대전에서 영국정보부를 도와 활약하는 미국인 스티브 트레버(크리스 파인)가 탄 비행기가 불시착하면서 다이애나는 처음으로 인간 남자를 만난다. 그리고 스티브를 추격해온 총을 든 독일군들이 섬에 도착하면서 활을 쏘는 아마존들과 격전을 벌인다. 
다이애나는 스티브로부터 처참한 1차 대전의 얘기를 듣고 인간을 전쟁에서 구하기 위해 스티브와 함께 런던으로 간다. 원더 우먼은 인간이 선하다고 믿는 열린 마음을 지닌 낙천적인 여자 영웅이다. 다이애나 프린스라는 이름을 한 원더 우먼이 처음 보는 세상 구경에 얼떨떨해 하는 모습이 우습다. 
이어 원더 우먼은 스티브와 세 명의 용병들을 이끌고 유럽의 전장으로 진출한다. 원더 우먼의 적은 독일군 장성(대니 휴스턴이 만화 속 인물처럼 그려졌다)과 인간을 증오하는 독성 화학물질의 발명자인 이사벨 마루(엘레나 아나야).                
방패와 긴 칼 그리고 진실의 올가미를 무기로 원더 우먼이 스티브와 함께 독일군들을 무찌르는 액션장면이 박진감 있다. 이 영화의 액션 장면들은 정말로 장관이다. 원더 우먼과 스티브는 함께 적을 무찌르다가 로맨스마저 꽃 피운다. 속편이 반드시 나올 영화다. 
여류 패티 젠킨스  감독. PG-13. WB. 전지역. ★★★½ (5개 만점)
                                                            <한국일보 박흥진 편집위원/ hjpark1230@gmail.com>

과거의 삶(Past Life)


세피(왼쪽)와 나나는 홀로코스트 생존자인 아버지의 과거를 캐들어간다.

아버지의 미스터리한 과거 파헤치는 두 자매


홀로코스트 생존자의 두 자매가 과거 폴란드에서의 아버지의 삶을 캐들어 가면서 처참한 과거와 직면한 뒤 이 과거의 족쇄로부터 자신들 뿐 아니라 부모까지 해방시키고 아울러 화해와 용서를 찾는 실팍한 성격 드라마로 이스라엘 영화다. 실화에 바탕을 뒀다.  
과거를 함구하는 아버지의 삶을 파헤치는 과정에서 서스펜스와 긴장감 팽팽하게 감도는데 플롯이 이중삼중으로 얽혀들면서 호기심과 궁금증을 자극한다. 특히 영화를 위해 작곡한 합창곡이 아름답고 두 자매로 나오는 배우들의 연기가 출중하다.    
1977년 예루살렘. 이 해는 이집트의 사다트 대통령이 이스라엘을 방문, 이스라엘과의 평화 관계를 맺으려고 시도했던 해다. 주인공들인 두 딸 중 언니 나나(넬리 타가르)는 저널리스트로 사사건건 대결하는 스타일. 나나의 동생은 천상의 음성을 지닌 음악학도 세피(조이 리거)로 작곡가 지망생. 이들의 아버지 바룩 밀히(도론 타보리)는 엄격한 산부인과 의사로 결혼한 나나와 만나면 언쟁이 잦다. 둘의 어머니(에브게니아 도디나)는 상냥한 전형적 모범주부.
콘서트 출연 차 서베를린에 갔던 세피는 공연 후 리셉션 장에서 갑자기 나이 먹은 폴란드여인(카타르지나 그니브코우스카)로 부터 공격을 받으면서 “네 아버지는 살인자야”라는 말을 듣는다. 이를 말리는 남자가 이 여인의 독일인 아들로 작곡가인 토마스 질린스키(라파엘 스타초비악).
세피가 이런 사실을 귀국해 언니에게 알리자 나나는 아버지에 대한 반감과 함께 진실을 밝히려는 기자정신을 동원해 마다하는 세피를 부추겨 아버지의 과거를 캐들어 간다. 그러나 이 노력이 뜻대로 결실을 맺지 못하면서 나나는 이번에는 아버지에게 단도직입적으로 과거를 이실직고하라고 도전한다.
이에 바룩은 자신의 나치 점령 하 폴란드에서 행적을 상세히 기록해 낭독하나 나나는 여전히 이를 믿지 않는다. 그래서 나나와 세피는 폴란드까지 찾아가 아버지의 행적을 탐문한다. 플롯이 배배 꼬이면서 바룩의 과거가 서서히 드러난다. 세피의 음성과 함께 개인적 매력에 이끌린 토마스가 매스터 클래스 차 이스라엘을 방문, 세피에게 과거와의 직면을 독려하면서 세피의 부모의 미스터리가 밝혀진다. 
마지막 폴란드에서의 합창곡 연주회 장면에서 모든 것이 용서되고 눈물과 함께 평화와 화해가 영그는데 매우 감동적이다. 타가르와 리거가 대조적인 연기를 잘 하는데 특히 타가르의 맹렬한 연기가 훌륭하다. 
홀로코스트 생존자의 아들인 아비 네쉐르 감독(각본 겸). 일부 극장. ★★★½(5개 만점)
                                                           <한국일보 박흥진 편집위원/ hjpark1230@gmail.com>

워 머신(War Machine)


글렌 맥매언 장군(브래드 핏)이 아프가니스탄 전선을 시찰하고 있다.

전쟁 미치광이 장군 통해 아프간전 풍자


전쟁과 전쟁을 이끄는 군 장성을 비롯한 막강한 권력을 쥔 계급에 대한 새카만 풍자영화로 황당무계할 정도로 터무니없고 우습다. 현재 싸우고 있는 아프가니스탄 전쟁을 비롯해 끊임없이 전쟁을 하는 미국과 전쟁이 직업인 군인들에 대한 인정사정 없는 공격으로 코미디이자 전쟁의 현실을 폭력적이요 사실적으로 묘사했다. 톤이 다소 고르진 못하나 흥미진진한 작품이다. 
반전 풍자영화들인 ‘닥터 스트레인지러브’ ‘캐치-22’ ‘매쉬’ 및 ‘3명의 왕들’을 연상케 하는데 결코 이길 수 없는 전쟁을 이기겠다고 호언장담하는 주인공 장군이 마치 전쟁놀이를 즐기는 아이 같아서 실소가 터져 나온다. 이런 구세주적 망상에 빠진 장군으로 브래드 핏(제작 겸)이 나오는데 과장됐을 정도로 으스대는 동작과 표정이 장군모를 쓴 아이 같아 혀를 차게 된다. 마치 꼭두각시가 살아 움직이는 것처럼 어색한데 그것이 풍자영화에 더 잘 어울린다. 
영화는 2009~2010년 아프가니스탄 주둔 연합군 총사령관을 지내다 오바마 대통령과 조 바이든 부통령 등을 비롯해 정부 고위인사들을 싸잡아 비난해 해고당한 스탠리 A. 맥크리스탈 장군의 얘기를 바탕으로 만들었다.    
처음에 글렌 맥매언 장군(핏)이 부관들을 이끌고 으스대면서 아프가니스탄에 도착하는 장면으로 시작된다. 맥매언은 “우린 이 전쟁에 이길 거야”라며 부하들의 사기를 북돋운다. 이에 예스 맨들인 부하들은 “옛 서”하며 동의한다. 이들도 우스꽝스런 전쟁 미치광이들로 묘사됐다. 
맥매언은 매일 새벽에 일어나 내복바람으로 7마일을 뛰고 잠도 잘 안자는 골수분자 군인으로 아프간전쟁은 미국의 화력이 아니라 건드리지 못할 막강한 이상 때문에 이긴다고 믿는 사람. 그리고 오바마가 더 이상 아프간에 군대를 투입하지 않는다고 했는데도 4만 명의 병력 증강을 요청한다. 배짱 하나 큰 친구다. 
맥매언은 첫 공격지로 탈레반의 요충이나 반군들이 없는 헬만드를 선정한다. 맥매언은 공격하기 전에 형식적으로 카르자이 대통령(벤 킹슬리가 지나치게 만화적으로 묘사된 것은 흠이다)을 방문한다. 이어 그는 유럽 국가들의 병력지원을 얻어내려고 프랑스와 독일 등을 방문한다. 맥매언은 독일의 기자회견에서 여기자(틸다 스윈튼)로부터 날카로운 질문 공격을 받는다. 
맥매언이 이끄는 부대가 헬만드를 공격하면서 코미디의 톤이 전쟁 액션의 사납고 튼튼한 근육질로 변한다. 매우 긴장감 있고 조마조마한 처리다. 맥매언의 몰락은 그가 롤링스톤 잡지의 부대 취재를 허락하면서 초래된다. 그가 자기 속에 있는 워싱턴에 대한 불만과 비판을 마구 내뱉은 것이 그대로 집지에 실리면서 그는 오바마로부터 소환 당한다. 
감독은 호주 태생의 데이빗 미초드(‘애니멀 킹덤’). R등급. Netflix 작품으로 일부 극장 상영과 함께 TV로 스트리밍 된다. ★★★½ (5개 만점)
                                                             <한국일보 박흥진 편집위원/ hjpark1230@gmail.com>

베를린 신드롬(Berlin Syndrome)


안디(오른쪽)가 자기의 포로인 클레어의 몸을 닦아주고 있다.

납치된 여성과 가둔 자의 심리대결


윌리엄 와일러가 감독한 여자를 수집하는 사이코의 아름답게 충격적인 드라마 ‘콜렉터’를 연상시키는 심리 스릴러이자 공포영화로 가둔 자와 갇힌 자의 육체적 심리적 폭력과 상처 그리고 심리전을 재치 있게 그린 작품이다. 
호주의 여류 감독 케이트 쇼트랜드의 기민하고 질서 정연한 연출력이 돋보이는 긴장감 감도는 영화로 시종일관 협소한 공간에서 얘기가 진행돼 심신으로 느끼는 서스펜스의 강도가 압도적이다. 그리고 감독은 제목에서 알 수 있듯이 피랍자의 심리상태를 애매모호하게 설정해 과연 이 사람이 베를린판 스톡홀름 신드롬의 희생자가 된 것이나 아닐까 하는 궁금증을 일으키게 한다.
호주서 배낭 하나 등에 지고 베를린으로 휴가 겸 구 동독 건물들의 사진을 찍으러 온 사진사 클레어(테레사 팔머)는 길에서 만난 핸섬하고 상냥한 영어선생 안디(막스 리멜트)에게 호감을 갖는다. 
여행자의 방탕기와 자유가 발동해 클레어는 첫 대면 후 다시 안디를 찾아 간다. 둘은 정례적인 데이트 과정을 거쳐 안디의 아파트로 들어간다. 안디는 폐건물과도 같은 아파트단지에서 혼자 사는데 여기서 그와 클레어는 격렬한 섹스를 치른다. 
이튿날 클레어가 잠에서 깨어나니 안디는 출근했는데 아파트에서 나가려고 해도 문과 창문이 모두 굳게 잠겨 있다. 안디가 돌아오자 클레어가 따지니 안디는 키를 두고 나간 줄 알았다고 둘러댄다.
다시 이튿날이 되어도 문이 잠겨있자 그제야 클레어는 자기가 안디의 포로가 된 것을 안다. 그리고 안디도 본격적으로 납치자의 근성을 드러내 냉혹하고 폭력적이 되면서 클레어의 악몽이 시작된다. 그런데 안디는 아버지와 자기를 버린 어머니에 대해 증오하고 있다. 마더 신드롬이다. 
안디에게 폭력을 행사한 뒤 탈출하려던 것이 실패하면서 클레어는 자신의 감금 상태를 받아들인다는 식으로 평화작전을 쓰기도 하고 또 안디에게 아양을 떨면서 섹스작전마저 사용한다. 과연 클레어는 정말로 안디에게 정을 느끼는 것일까 또는 연극을 하는 것일까 아니면 클레어는 이 두 개의 마음을 모두 갖고 있는 것일까. 
영화가 이론적으로 너무 비약하는 점이 있긴 하나 팔머의 가라앉은 연기와 촬영과 음악 등이 다 좋은 즐길만한 영화다. R등급. 일부지역. ★★★(5개 만점)
                                                                <한국일보 박흥진 편집위원/ hjpark1230@gmail.com>

007 로저 모어



쉐이큰한 보드카 마티니와 여색을 즐기며 월터 PPK를 뽑아들고 악인들을 처치하는 불사신과도 같은 제임스 본드도 세월 앞에서는 무기력하다. 스크린에서 세 번째로 살인면허 더블O를 소지한 영국 첩보부 MI6의 스파이 본드로 나왔던 로저 모어가 지난 23일 89세로 타계했다. 지금까지 본드로 나왔던 6명의 배우 중 제일 먼저 별세했다.
모어는 제1대와 제2대 본드역의 션 코너리와 조지 레이젠비에 이어 ‘리브 앤 렛 다이’(1973)에서 본드로 나온 이후 무려 12년간 총 7편의 007시리즈에 나왔다. 첫 영화에 이어 ‘맨 위드 더 골든 건’ ‘스파이 후 러브드 미’ ‘문레이커’ ‘포 유어 아이즈 온리’ ‘옥토푸시’ 및 ‘뷰 투 어 킬’ 등에 나온 뒤 지난 1985년 58세로 본드 역에서 퇴역했다. 본드 역을 가장 많이 한 배우다. 모어의 뒤를 이어 티모시 달턴과 피어스 브로스난을 거쳐 현재는 대니얼 크레이그가 본드다.
모어의 007시리즈 중 가장 훌륭한 것이 ‘스파이 후 러브드 미’(사진)다. 영화에서 본드 걸로는 바바라 박(비틀즈 멤버 링고 스타의 아내)이 본드의 악인으로는 독일배우 쿠르트 유르겐스가 각기 나왔다. 유르겐스의 하수인으로 금속이빨로 사람을 물어 죽여 ‘조스’라 불리는 거인으로는 리처드 킬이 나왔다. 난 언젠가 런던을 방문했을때 윌체어에 앉은 그를 만난 적이 있다. 본드를 혼 내주던 그가 윌체어에 앉은 모습을 보면서 세월무상을 느꼈었다.
역대 본드 중 내가 가장 좋아하는 배우는 사납고 냉정하고 폭력적인 션 코너리다. 평소 농담 잘하던 모어도 “나를 빼곤 션이 가장 좋은 본드”라고 말했다. 코너리가 어둡고 거칠고 가차 없는 본드였다면 모어는 가볍고 코믹한 터치로 본드를 표현했다. 내가 가장 좋아하는 본드 영화도 시리즈 두번째인 ‘007/위기일발’이다.
그런데 실제로 영국 스파이였던 이안 플레밍이 쓴 본드 소설에서 그려진 본드는 모어보다는 코너리가 더 본드의 성질에 걸 맞는다. 현 본드인 크레이그는 코너리에 이어 이런 본드의 근성을 가장 잘 표현한 배우로 평가 받고 있다.
눈썹을 올렸다 내렸다 하는 것이 특징인 모어는 연기파가 못 된다. 그도 자신을 배우로서 심각하게 생각하지 않았다. 난 오래 전에 유니버설 스튜디오에서 그를 본적이 있는데 그저 평범한 시민처럼 보였다.
그런데 모어는 실제로는 용감무쌍한 본드와는 전연 다른 성질을 지녔었다고 한다. 그는 지나치게 병을 의식했고 고지공포증자요 총을 싫어했다는 것. 그리고 본드가 즐겨 마시던 보드카 마티니도 입에 대지 않았다고.
그런데도 007시리즈 초대 제작자인 고 알버트 브로콜리는 첫 본드로 모어를 골랐었다. 그러나 그 때 모어가 영국의 인기 TV시리즈 ‘세인트’에 출연 중이어서 역을 맡지 못 했다. ‘세인트’에서 모어는 현대판 로빈 후드인 사이먼 템플라로 나오는데 이 시리즈는 1962년부터 무려 7년간 방영됐다.
런던에서 태어난 모어는 엑스트라 노릇을 하면서 왕립 극예술 아카데미에서 수련했다. 이 때 동급생 중 하나가 총 14편의 본드영화에서 본드의 상관인 M의 여비서 모니페니로 나온 로이스 맥스웰이다. 모니페니는 본드를 연모하나 본드는 늘 이를 가볍게 넘겨버리곤 했다.
‘세인트’의 인기로 모어는 MGM과 계약을 맺게 된다. 007 시리즈 외에 그의 영화들로는 엘리자베스 테일러가 나온 신파극 ‘내가 마지막 본 파리’와 리처드 버튼이 주연한 액션 스릴러 ‘와일드 기스’ 및 버트 레널즈가 나온 코미디 액션 영화 ‘캐논볼 런’ 등이 있다.
모어는 생애 후반기에 자기 친구였던 오드리 헵번이 생전에 맡았던 UN 국제아동비상기금의 친선대사로 활약했는데 이 공로로 영국왕실로부터 작위를 받아 ‘서’로 불렸다.
“마이 네임 이즈 본드, 제임스 본드”라고 자기를 소개하는 본드는 수많은 여자와 정사를 즐기면서도 “아이 러브 유”라는 말을 안 하는 철저한 플레이보이다. 그런 본드가 여인을 사랑해 결혼까지 한 영화가 ‘여왕폐하의 007’이다. 호주 배우 레이젠비의 유일한 본드 역으로 그는 이 영화에서 사랑하는 트레이시(다이애나 릭)와 결혼하나 결혼식 후 둘이 함께 애스턴 마틴을 몰고 가다 본드의 천적인 암살집단 스펙터의 두목 언스트 블로펠드(텔리 사발라스)가 쏜 총에 맞아 트레이시가 숨진다.
본드는 죽은 트레이시를 안고 눈물을 흘리는데 영화에서 터프 가이 본드가 흘린 첫 눈물이다. 이 사건 이후로 본드는 다시는 절대로 여자를 사랑하지 않기로 했다는 설이 있다.
다음 007시리즈에는 크레이그가 다시 나올 예정이다. 크레이그가 본드 역에서 은퇴하면 바톤을 이어 받을 배우들로 탐 하디와 마이클 화스벤더 및 이드리스 엘바 등이 거론되고 있다.                                            <한국일보 박흥진 편집위원/ hjpark1230@gmail.com>
   

전쟁영화



제우스의 심술궂은 아들로 전쟁의 신인 에어리스가 인간의 마음에 폭력과 증오를 심어놓은 뒤로 인간은 지금까지 계속해 싸우고 있다. 구약은 피로 물든 전쟁사요 인간은 전쟁이 없으면 어떤 명분이라도 내걸고 전쟁을 한다.
전쟁은 무수한 젊은이들의 죽음을 요구한다. 살아있는 사람들은 젊은이들의 죽음을 조국을 위한 희생이라고 찬양하나 2차 대전 때 유럽전선에 참전해 혁혁한 무공을 세운 영화감독 샘 풀러는 이를 비웃는다. 그는 “군인들은 결코 그들의 목숨을 바치는 것이 아니다. 목숨을 빼앗기는 것일 뿐이다”고 말했다. 터프 가이 풀러는 자기 전투경험을 바탕으로 한 ‘빅 레드 원’과 함께 한국전을 다룬 ‘픽스트 베이어넷!’과 ‘철모’(사진) 등 여러 편의 좋은 전쟁영화를 만들었다.
오는 29일은 메모리얼 데이다. 그런데 살육이 목적인 전쟁의 희생자들을 기리는 메모리얼 데이와 함께 사람들이 태양을 즐기는 본격적인 여름철이 시작된다는 것이 역설적으로 느껴진다.
영화에서 한국전에 두 번이나 종군했다가 두 번 다 죽은 사람이 윌리엄 홀든이다. 주제가가 아름다운 ‘모정’은 홍콩주재 미국기자와 유라시언 여의사 제니퍼 존스와의 애처로운 사랑을 그렸다. 홀든은 한국전에 종군기자로 파견됐다가 순직한다.
홀든은 ‘도곡리의 다리’에서는 미 제트기 파일롯으로 나와 북한 땅에 불시착했다가 인민군의 총에 맞아 죽는다. 그의 아내로 그레이스 켈리가 나왔다. 홀든은 이 밖에도 오스카 주연상을 탄 ‘제17 포로수용소’와 ‘콰이강의 다리’ 같은 전쟁영화에 나왔다.
‘도곡리의 다리’에서처럼 한국전에 참전한 일본 주둔 미 제트기 파일롯들의 얘기를 그린 것으로 로버트 미첨과 로버트 왜그너가 나온 ‘헌터즈’와 말론 브랜도가 주연한 ‘사요나라’가 있다. 그런데 브랜도는 전투는 안 하고 일본의 예쁜 연예인과 연애를 한다. 이 밖에 알랜 래드와 시드니 퐈티에가 공연한 미군 내 흑백문제를 다룬 ‘올 더 영 멘’과 한국전에 영국군 졸병으로 참전했던 마이클 케인의 데뷔작 ‘헬 인 코리아’도 한국전 영화다.
풀러처럼 직접 2차대전에 참전, 큰 무공을 세운 뒤 할리웃 스타가 된 사람이 예쁘장하게 생긴 오디 머피다. 머피는 일반 병사로 유럽전선에서 보여준 영웅적 행위로 의회 명예훈장 등 무려 24개의 훈장을 받았는데 이는 한 개인이 받은 훈장으로는 미 역사상 최다의 것이다.
그는 제대 후 자기 경험을 다룬 액션이 박진한 ‘지옥의 전선’에 나왔다. 머피의 또 다른 훌륭한 전쟁영화로는 존 휴스턴이 감독한 남북전쟁 영화로 용기와 비겁의 뜻을 탐구한 ‘용기의 붉은 배지’가 있다.    
웨스턴과 전쟁영화로 미 국민의 영웅이 된 존 웨인은 계약사인 RKO가 손을 써 징집에서 제외됐다. 제임스 스튜어트와 클라크 게이블 등 많은 할리웃 스타들이 종군한 것을 생각하면 이유야 어쨌든지 큰 덩지에 어울리지 않는 처사다. 웨인이 실전에서 못 한 무공을 스크린에서 세운 영화가 그가 용감무쌍한 고참 해병상사로 나온 이오지마전투를 그린 ‘유황도의 모래’다.
웨인은 극 보수파로 베트남전이 한창일 때 호전적인 ‘그린 베레’를 감독하고 주연도해 논란이 됐었다. 특수부대 그린 베레를 찬양한 노래가 ‘그린 베레의 발라드’다. 베트남전에 그린 베레로 참전, 부상한 배리 새들러가 불러 빅 히트를 했는데 한국에서도 크게 유행 했었다. 내가  가장 좋아하는 베트남전 영화는 올리버 스톤이 자기 경험을 바탕으로 만든 ‘플래툰’이다. 이 영화에는 새뮤얼 바버의 ‘현을 위한 아다지오’가 비장하게 쓰여진다. 이에 비하면 역시 베트남전 영화인 ‘디어 헌터’는 약간 신파조다.
실전에 총 대신 카메라를 들고 참전한 5인의 명감독 존 포드, 존 휴스턴, 프랭크 캐프라, 조지 스티븐스 및 윌리엄 와일러가 전장에서 찍은 기록영화 ‘돌아온 5인’은 훌륭한 전쟁사다. 또 미 구축함과 독일 잠수함 간의 추격과 도주를 다룬 ‘상과 하’도 빼어난 전쟁영화다.
나의 올 타임 페이보릿인 ‘지상에서 영원으로’도 전쟁 드라마다. 내가 고집불통의 육군 졸병으로 나온 몬고메리 클리프트에게 반한 영화로 진주만 피습 직전과 직후의 하와이 주둔 군인들의 우정과 사랑을 그렸다. 클리프트는 2차대전을 다룬 ‘젊은 사자들’에서도 역시 고집이 센 육군졸병으로 나와 동료들부터 왕따를 당한다.
반전 풍자영화의 금자탑인 스탠리 쿠브릭의 ‘닥터 스트레인지러브’의 수준에는 못 미치나 26일 개봉된 ‘워 머신’(영화평 참조)도 시의에 맞는 재미있는 전쟁 풍자영화다. 영화에서 아프간전쟁에 투입된 한 미군이 “내가 여기서 왜 싸우고 있는지 모르겠다”며 회의하는 장면이 있다. 도대체 우리는 왜 싸우는가.      
                                                           <한국일보 박흥진 편집위원/ hjpark1230@gmai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