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이야기

2016년 3월 22일 화요일

TV인터뷰 통해 트랜스젠더 공개 전직 육상선수 케이틀린 제너




“여성이 된다는 것 자신에게 진실하다는 뜻”


1976년 몬트리올 올림픽 10종 경기에서 세계기록을 경신하며‘세계 최고의 육상선수’로 치하를 받았던 브루스 제너는 지난해 4월 ABC-TV의‘20/20’에 출연, 다이앤 소이어와의 인터뷰에서 자신이 여성으로 성전환한 케이틀린 제너라는 사실을 고백해 세계적인 화제가 됐었다. 그 후 케이트(66)는 케이블 TV E! 엔터테인먼트의‘나는 케이트’(I Am Cait)라는 프로를 제작하고 같은 성전환 여성들과 함께 출연, 성전환자들에 대한 세상의 편견을 고치는데 노력하고 있다. 케이트와의 인터뷰가 지난 15일 베벌리힐스의 포시즌스 호텔에서 있었다. 긴 갈색머리에 흰 재킷 그리고 베이지색 스커트에 역시 베이지색 하이힐을 신은 케이트는 큰 귀고리에 빨간 립스틱을 비롯해 얼굴에 화장을 하고 손에 매니큐어를 칠하고 여성 차림을 했지만 큰 키와 우람한 체격 그리고 굵고 큰 손이나 얼굴은 남성 같았는데 스커트 아래 드러난 맨살 다리는 매우 가늘었다. 케이트는 굵은 남자 음성으로 유머와 위트를 섞어가면서 진지하고 솔직하게 질문에 대답했는데 매우 명랑하고 씩씩한 여자였다. 그의 솔직함과 함께 비로소 행복하다는 말을 들으면서 감동하지 않을 수가 없었다. 인터뷰에는 케이트와 함께 다른 성전환 여성 3명이 동석했는데 다음은 케이트의 발언만 기록한 것이다.             

-당신에게 여성이 된다는 것은 어떤 의미가 있는가.
“그것은 내게 있어 자신에게 진실하다는 것을 뜻한다. 나는 지금 여성적인 것에 대해 많은 것을 배우고 있는데 그것들은 삶의 작은 것들이다. 성이란 모든 사람에게 있어 하나의 여정이라고 생각한다. 우리는 모두 자신의 성과 함께 인간으로서 우리가 누구인가를 배우고 있다. 난 평생을 이 여자를 내 안에 더불어 살아왔다. 이제야 말로 이 여자가 밖으로 나와 살 때이고 작은 브루스는 안으로 들어가 살 때이다. 나는 아주 많은 점에서 아직도 같은 사람이다.”

-여성으로 된 이후 세상의 편견에 대해 어떻게 대처하는가.
“내가 내 쇼를 만든 이유는 내 평생 함께 살아온 이 여자를 있는 그대로 정확하게 보여주기 위해서다. 난 이제 아이들도 다 크고(세 번 결혼에 10남매) 내 삶도 질서정연하며 그리고 내 정체에 대해 하나님과도 평화로운 관계를 유지하고 있는 지점에 이르렀기 때문에 이제야 말로 내 삶을 솔직하게 살고 또 과거와 다르다는 것을 보여주고 싶었다. 성전환자들과 동성애자들 그리고 양성애자들(LGBT)에 대한 심각한 문제는 너무나 많다. 이 때문에 사람들이 자살하고 또 살해를 당한다. 이 문제는 운동경기를 비롯해 내가 지금까지 한 다른 일들보다 훨씬 더 큰 것이다. 성전환 이후 참으로 많은 도전을 받았는데 그것에 대해 바른 대응을 하기 위해 최선을 다하고 있다. 내가 모든 성전환자들을 위해 옳은 일을 할 수는 없지만 최선을 다하려고 한다. 나와 함께 쇼에 나오는 여자들은 다 참으로 훌륭한 사람들인데 난 사람들에게 그들이 정상적인 사람들이라는 것을 보여주려고 한다. 도전임에는 분명하나 나는 앞으로도 많은 것을 배워야 한다는 것을 알고 있고 또 LGBT 사회로부터도 많은 것을 배웠다.”    
-브루스에 대해 그리운 점은 무엇인가.
“그는 아직도 내 안에 있다. 세상을 보는 관점도 마찬가지요 또 대인관계도 같다. 나는 아직도 그처럼 비행기를 조종하고 자동차 경주에도 나간다. 난 또 그처럼 모든 재미있는 일들도 즐길 줄 안다. 여자라고 그처럼 못하란 법 없지 않은가. 솔직히 말해 이름과 성을 바꾸는 과정은 슬펐다. 그러나 이제 브루스는 갔다. 그가 참 좋은 사람이었기에 그 같은 사실은 상당히 충격적이었다. 그러나 지금이 훨씬 더 편안하다. 그리고 나는 나의 정체성을 찾음으로써 세상에 다른 점을 보여주고 싶었다.”

-당신의 성전환에 대한 미디어의 태도에 대해 어떻게 보는가.
“미디어는 잔인할 수 있다. 나는 다이앤 소이어에게 고백하기 전까지 2년 이상을 낌새를 알아챈 태블로이드에 매주 시달려야 했다. 늘 대여섯 대의 파파라치 차들이 마켓을 비롯해 내가 가는 곳마다 따라다녔다. 그래서 그들이 팔아먹지 못하도록 매일 같은 옷을 입고 다녔다. 정말 끔찍했다. 나만이 아니라 내 자식들과 어머니와 온 가족에게까지 잔혹한 일이었다. 그러나 나는 미디어가 아니라 내 자신이 진실을 밝히고 싶었다. 우리들은 정당한 대접을 받을 자격이 있다.”   
몬트리올 올림픽 금메달리스트 브루스 제너(왼쪽)와 배니티 페어표지모델 케이틀린 제너.

-사회는 아직도 여자를 2류 계급으로 취급하는 남성위주의 사회다. 여자가 된 이래 그런 취급을 받아 봤는가.
“내 얘기가 배니티 페어지에 나면서 나는 그 즉시 사람들로부터 케이틀린으로 취급됐다. 참으로 극적인 변화였다. 이제 난 더 이상 브루스로 세상에 나설 생각조차 할 수 없게 됐다. 부정적인 면도 없는 것은 아니나 긍정적인 면이 그것을 압도하고 있다. 아침에 일어나면 그저 행복할 뿐이다. 사람들은 왜 남성의 세력 있는 역을 바꾸려고 하는가 라고 물을 수도 있겠지만 내가 이에 할 말은 그것은 내가 아니다 라는 것이다. 많은 여성들이 모르고 있는 것은 여성적인 것이 갖고 있는 힘이다. 난 늘 강한 여자들과 함께 있어 왔는데 그들은 여성적인 게임을 할 줄 아는 사람들이다. 모든 여성들은 이를 배워야 할 것이 다.”

-당신의 새 인생에서 성취하고자 하는 목표는 무엇인가.
“난 이미 만족과 행복이라는 목표를 이뤘다. 다음은 우리 같은 다음 세대들을 보다 좋은 위치에 올려놓는 일이다. 그 과정은 내 생애에서 채 다 이루지 못할 긴 여정이 될 것이다. 이제 우리들의 얘기는 더 이상 감춰진 것이 아니다. 그것만 해도 큰 시작이다. 이것은 인간적인 문제로 이것은 세계적인 문제다.”

-성전환에 대한 당신 아이들의 반응은 어땠는가.
“모두 훌륭한 아이들이다. 내 아들은 내게 ‘아버지 난 늘 아버지의 아들인 것을 자랑스럽게 여겨 왔지만 지금보다 더 자랑스러운 때가 없어요’라고 말했다. 그런데 어린 딸들은 처음에 모두 대경실색을 했다. 그러나 내 얘기가 TV로 나가면서 레이디 가가와 엘튼 존 및 제니퍼 로페스 같은 유명 인사들로부터 축하한다는 문자 메시지가 빗발치듯 날아들자 딸들은 그 때야 비로소 내가 할 일을 했다는 것을 깨닫고 괜찮겠구나 하고 생각한 것 같다.”

-성전환 여성으로서 사람들로부터 제대로 인식을 받는 것이 얼마나 중요하다고 생각하는가.
“통계에 의하면 성전환자를 알고 있는 사람은 전체의 8%에 지나지 않는다. 우린 이 수치를 높이고 싶은 것이다. 내 쇼에 나오는 여자들은 다 지적이요 멋있고 영리하며 우습고 근면하고 또 세상에 변화를 일으키고자 하는 사람들이다. 난 세상이 이들을 제대로 보게 하려고 쇼를 만든 것이다.”

-몬트리올 올림픽에서 금메달을 땄을 때 느낀 심정이 기억나는가.
“난 어려서부터 성의 정체성에 대해 고민했었다. 그리고 난 학생 때 난독증자로 열등감에 빠졌었는데 스포츠에 능해 그것으로 열등감을 해소하고 나에 대한 가치관을 얻었었다. 올림픽 선수가 될 줄은 몰랐다. 몬트리올에서 세계기록을 깨고 금메달을 탄 다음 날 나체로 금메달을 목에 건채 거울을 보면서 ‘자 이제 다음 할 일은 무엇이지’하고 생각했었다. 난 늘 일에 매달리면서 내 성적인 문제에서 벗어나려고 했다. 그러다가 1980년대 들어 성전환을 하려고 결심했으나 하지 못했다. 그 때부터 소문이 나돌기 시작했다. 그리고 작년에 비로소 나이 65세에 그 문제에 심각하게 맞부딪치면서 내 정체를 찾기로 한 것이다.”

-데이트에 대해 생각해 봤는가.
“난 이미 가족이 있고 또 아이들이 있어서 내 중요한 일은 아이들 돌보는 것이다. 그래서 데이트는 내게 별로 중요한 사안이 아니다. 그러나 우리 같은 사람들에게 있어 데이트는 쉬운 일은 아닌 것도 사실이다.”

-요리 잘 하는가.
“어느 정도 하지만 잘 하진 못한다.”
                                            <한국일보 박흥진 편집위원/ hjpark1230@gmail.com>
       
     

나의 황금시절(My Golden Days)


폴(왼쪽)이 여고생 에스테르에게 다가가 구애하고 있다.

순수한 청춘의 사랑이 보내는 추억의 편지


청춘의 사랑은 아름답고 달콤하고 황금빛으로 빛나며 또 그 이별은 쓰라리고 슬프다. 내용과 외양 그리고 젊은 두 주인공의 절묘한 화학작용과 연기를 비롯해 모든 것이 황금빛으로 물결치는 이 영화는 청춘의 사랑에 열병을 앓았던 모든 사람들에게 보내는 추억의 편지와도 같다.
로맨틱하면서도 사실적이요 진지하며 또 아주 밀접하고 내밀한데 회상식으로 서술되는 지나간 뜨거운 사랑에 관한 이야기여서 노스탤지어와 우수와 옅은 회한이 가득하다. 청춘의 사랑이란 맹목적이요 영육을 불사르는 것이어서 그런 사랑을 나누는 아름다운 폴과 에스테르를 보면서 몸과 마음이 모두 달아오른다.
그리고 그들의 이별마저 미몽과 같은 아쉬움 속에서 아름답게 받아들이게 된다. 미치도록 사랑했으니 헤어짐마저 당연한 것처럼 말이다. 이런 풍성한 사랑의 얘기는 신인인 두 젊은 배우 캉탕 돌메어와 루 로이-르콜리네의 완벽한 콤비에 의해 화폭을 가득하니 메운다. 과연 청춘은 이름답다.
사랑뿐만이 아니라 정치와 시대의 변화 그리고 정체성에 관한 이야기도한 이 영화는 ‘어린 시절’과 ‘러시아’ 그리고 ‘에스테르’ 등 3부 형식으로 전개되는데 회상되는 ‘에스테르’ 부분이 90분으로 가장 길다. 성장한 인류학자 폴(마티외 아말릭)이 오랜 외유 끝에 타지키스탄에서 관리직을 맡기 위해 파리로 돌아오는 장면으로 시작된다.
‘러시아’ 부분은 마치 냉전시대 스파이영화 스타일로 진행된다. 학창시절의 폴(돌메어)이 필드트립 차 소련에 가면서 소련을 탈출하려는 자기 또래의 유대인에게 자기 여권을 주면서 폴은 무국적자가 된다. 이 사건은 폴의 그 후의 삶에까지 오래도록 잔영을 드리우게 된다.
영화의 가장 핵심은 회상되는 ‘에스테르’ 부분. 10대의 내성적이요 내면에 더러 빈 곳이 있는 폴이 작은 마을 고향 루베의 고교생인 탐스럽게 익은 아름다운 에스테르(로이-르콜리네)에게 다가가 조심스럽게 자기감정을 드러낸다. 도도하고 자신만만한 에스테르는 구애하는 남자들이 많고 또 그렇게 호락호락할 여자는 아니지만 폴의 순수함에 이끌려 둘은 관계를 시작한다. 둘의 첫 대면이 가슴의 희롱처럼 아질아질하니 마음에 다가온다.
그런데 폴이 공부를 위해 파리로 떠나면서 둘은 이별을 하게 되는데 때는 인터넷 이전의 시대여서 둘은 전화와 편지로 그리움을 보내고 받는다. 때로 그들이 카메라를 보고 읽는 사랑의 글들이 구구절절이 시인데 둘이 서로 그리워 애를 태우고 호소하고 만나서 희열하고 다시 헤어지면서 아파하고 슬퍼하는 모습에서 사랑의 노골적인 얼굴을 읽게 된다. 이러기를 10년. 그동안 둘 사이에는 수많은 편지가 오고 간다. 사랑의 현실이 심금을 울린다.
둘 다 아름답고 백지처럼 순수한 모습의 돌메어와 로이-르콜리네가 사랑하는 청춘의 불안과 초조, 그리움과 고통과 희열 그리고 흥분과 철부지 같은 순진성을 참으로 자연스럽게 묘사하는데 이들의 이런 연기와 잘 배합된 화학작용이 영화에 서술적 긴장감을 고조시키고 있다. 둘 외에도 그들을 둘러싼 주변 젊은이들도 다 연기를 잘 한다. 촬영도 황금빛처럼 아름답고 풍성하니 향수를 불러일으킨다. 아르노 데스플르샹(‘크리스마스 이야기’ ‘왕들과 여왕’) 감독. 성인용. 랜드마크(피코와 웨스트우드). ★★★★½(5개 만점)
                                                                <한국일보 박흥진 편집위원/ hjpark1230@gmail.com>


길다(Gilda)


요염한 길다가 선정적인 동작으로 춤을 추고 있다.

‘섹스의 여신’리타 헤이워드 스타로 만든 영화


 ‘섹스의 여신’이라 불린 리타 헤이워드를 수퍼스타로 만들어준 1946년 작 흑백 필름느와르로 ‘최고급의 쓰레기’ 같은 영화라는 평을 들었었다. 어깨가 훤히 드러난 이브닝가운을 입은 클럽 여가수 길다(헤이워드)가 긴 금발을 늘어뜨리고 풍만한 허벅지를 노출한 채 어깨까지 오는 긴 장갑을 천천히 벗어던지며 느린 템포의 음악에 맞춰 온 몸을 뒤틀면서 ‘풋 더 블레임 온 메임’이라고 노래 부르는 장면 하나로 할리웃 영화사에 하나의 이정표를 세운 작품이다.
삼각관계와 범죄와 살인 그리고 뜨거운 정열이 이야기의 골격을 이루고 있다. 아르헨티나의 부에노스아이레스. 떠돌이 도박꾼 자니(글렌 포드)는 카지노 클럽 주인 밸린(조지 매크레디)에게 고용돼 클럽의 매니저가 되고 아울러 그의 심복이자 친구가 된다. 
여행을 떠났던 밸린은 관능적인 길다를 데리고 돌아오는데 운명의 장난이랄까 길다는 과거 자니의 애인. 아직도 서로를 잊지 못하는 자니와 길다는 간절한 눈길을 나누는데 밸린은 자니를 자기 아내가 된 길다의 바디가드로 만든다. 
나치가 조종하는 범죄조직과 연루된 밸린은 조직을 위해 살인을 저지르고 경비행기를 타고 도주하다가 바다에 추락한다. 의리의 사나이 자니는 자기를 떠났던 길다가 다시 사랑의 불길을 점화시키려고 접근하는 것을 거부하는데 이 때 죽은 줄 알았던 밸린이 나타나 배신녀 길다와 자니를 처치하려고 달려든다.
이 영화는 헤이워드를 위해 만든 영화로 그는 이 영화로 인해 세상의 뭇 남자들로부터 ‘요부 길다’로 여겨지면서 욕망의 대상이 되었다. 당시 리타는 중동의 왕족 알리 칸의 아내였는데 결국 이들의 관계도 아내에게서 길다를 찾는 남편 때문에 파국에 이르고 말았다. 컬럼비아사 작품으로 감독은 찰스 비더. 22일 하오 1시 LA카운티 뮤지엄(윌셔와 페어펙스) 내 빙극장. 
한편 29일 하오 1시에는 역시 헤이워드가 당시 남편이었던 오손 웰즈(감독 겸)와 공연한 흑백영화 ‘상하이에서 온 여자’(The Lady from Shanghai·1948-★★★★)가 빙극장에서 상영된다. 아일랜드 태생의 항해자요 모험가인 마이클(웰즈)이 나이 먹은 백만장자 배니스터(에버렛 슬로에인)와 그의 탐스러운 아내(헤이워드)와 함께 배니스터의 태평양 요트(할리웃 황금기의 수퍼스타 에롤 플린의 요트 ‘자카’) 항해에 동행하면서 복잡하고 괴이한 살인사건에 휘말려든다. 촬영이 눈부신 특이한 스릴러로 영화로 클라이맥스의 ‘거울의 방’에서의 총격장면이 아찔하다. ★★★★(5개 만점).  
                                                                <한국일보 박흥진 편집위원/ hjpark1230@gmail.com>


‘교사형’




‘극동의 고다르’라 불린 일본 감독 오시마 나기사(1932~2013)는 유난히 차별 받는 재일 조선인에 대해 연민하고 관심이 많았던 사람이다. 오시마의 영화로 잘 알려진 것은 성(욕)의 본질을 집요하게 캐들어 간 ‘감각의 제국’과 데이빗 보위가 나온 전쟁포로 드라마 ‘메리 크리스마스, 미스터 로렌스’. 그러나 그가 1960년대 만든 재일동포와 한국인들에 관한 몇 편의 영화와 TV 작품은 한국인들에게 제대로 알려져 있지 않다.
오시마는 일본 제국주의의 만행과 죄책감 불감증에 걸린 일본을 비판하고 아울러 만행의 피해자인 재일동포 그리고 나아가서 일한관계에 깊은 관심을 보이면서 1960년대 한국을 방문, 3편의 TV 기록영화를 만들었다. 일본군으로 참전한 재일동포 부상군인들에 대한 정부의 부당한 대우를 고발한 ‘버려진 황군’과 ‘청춘의 비석’ 그리고 가난한 한국 소년들의 모습을 담은 ‘윤복이의 일기’.
오시마가 재일동포 위안부와 불우 청소년을 비롯해 전반적인 동포들의 문제를 다룬 두 극영화는 ‘일본 춘가고’와 ‘교사형’(Death by Hanging·1968). ‘교사형’(사진)은 1958년 일본에서 실제로 일어났던 한국인 고교생 이진우의 일본 여고생 강간 살인사건을 다룬 것으로 이진우는 유죄선고 후 교수형에 처해졌다. 그런데 이진우의 사후 그의 편지들이 책으로 발간돼 센세이션을 일으키면서 이진우는 청춘의 컬트우상이 되었다.
사형을 전쟁행위로 간주하면서 이의 폐지와 함께 일본 관료체제의 희극성 그리고 재일동포에 대한 부당대우와 차별을 신랄하게 비판한 ‘교사형’은 심각하고 진지한 드라마이자 황당무계한 블랙코미디로 마치 연극과 기록영화를 섞어 놓은 듯한 흑백작품이다.
내레이션으로 일본 법무성에 따르면 조사 대상자 중 71%가 사형제 폐지를 반대한다는 설명으로 시작된다. 이어 재일동포 사형수 R(윤융도 분)이 수감된 교도소의 안팎이 크기와 규모를 비롯해 자세하게 설명되고 카메라가 사형장 내로 들어가면서 R의 사형집행 전의 마지막 절차와 교수장비를 보여준 뒤 참관인들이 보는 가운데 R의 사형이 집행된다.
그런데 문제는 여기서부터 시작된다. R이 의식은 잃었으나 그의 심장은 여전히 뛰고 있기 때문이다. 이에 아연실색한 참관인들인 교도소장, 가톨릭 신부, 검사와 의사 및 교도소 고위 관리들이 R에 대한 처리를 놓고 갑론을박에 들어간다.
R을 소생시켜 사형을 재집행할 것인가, 한 번 죽인 사람을 어떻게 다시 죽일 수가 있는가, R의 영혼은 이미 그를 떠났으니 영혼 없는 자를 어떻게 죽일 수가 있는가를 놓고 법석들을 떨어댄다. 그리고 이들은 이 과정에서 자신들이 R의 범행을 재연하면서 광대극을 연출한다.
이어 이들은 R을 소생시킨 뒤 마치 딴 세상에서 온 사람처럼 목석같은 표정을 한 R에게 그의 기억을 되살리기 위해 범행 사실을 얘기하는데 이 과정에서 참관자들이 R과 함께 배우가 돼 R의 불우한 가정환경을 가설극장 연극식으로 보여준다.
‘조센징’이라는 말이 계속해 쏟아지면서 재일동포와 한국인의 생활습관과 태도 및 유교사상까지 닥치는 대로 조롱 받고 비하되는데 이런 희극 속에 아울러 영적, 정치적, 종교적 및 의학적 논제들이 토론된다. 이율배반적 양상을 갖추었다.
해저탄광의 노역자로 강제로 일본에 끌려온 R의 아버지를 비롯해 여러 식구가 신문지로 도배한 단칸방에서 찢어지게 가난하게 사는 모습이 신파극식으로 묘사되면서 ‘조센징’의 각박한 현실이 가차 없이 드러난다.
영화는 1시간 정도 교도소 안에서 진행되다가 그 후 잠시 R의 범행현장을 찾아 밖으로 나왔다가 R과 참관자들은 한복을 입은 할머니가 사는 아이스크림 가게에도 들른다. 이어 R 일행은 다시 교도소 내로 들어오면서 얘기는 클라이맥스로 치닫는다.
느닷없이 흰 한복을 곱게 차려 입은 여자(고야마 아끼꼬)가 나타나 R의 누나라며 일본의 재일동포에 대한 부당대우에 맹공을 가한다. 그러나 실제 R에겐 누나가 없는데 그럼 이 여자는 누구인가. R이 살해한 여고생인가 또는 일본에 의해 핍박받는 한민족인 재일동포의 대변자인가.  여기서 오시마는 유치환의 시를 읊고 그가 한국서 찍은 판자촌의 더럽고 가난한 아이들의 스틸사진을 보여주면서 한국의 길고 고통스런 500년 역사와 함께 36년간에 걸친 일제의 한국점령 그리고 일한관계와 남북한 통일문제까지 거론하고 있다.
이어 술 파티가 벌어지고 교도소장을 비롯한 참관자들은 큰 일장기를 덮고 누운 R과 그의 누나를 둘러싸고 앉아 주정을 겸한 대화를 나누면서 사형제 폐지와 일본의 제국주의적 근성 그리고 재일동포 차별 등이 얘기된다. 영화 끝 부분에 R의 누나가 R을 안고 있는 ‘피에타’ 장면이 나온다. 그런데 왜 R은 안 죽었을까. R은 갖은 핍박과 간난과 역경 속에서도 결코 멸하지 않는 한국인의 정신을 상징하고 있는가. 보통 영화의 형식을 파괴한 아방가르드식의 작품으로 지와 감성을 강력히 요구하는 ‘교사형’이 Criterion에 의해 DVD로 나왔다.      
                                               <한국일보 박흥진 편집위원/ hjpark1230@gmai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