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이야기

2015년 9월 28일 월요일

‘운전교습' (Learning to Drive)의 벤 킹슬리




“가르친다는 것은 남의 말을 경청하는 것”


 ‘상대방을 멋있게 보이게 하라’가 내 연기철학 중 하나
  가족이나 자기 문화 테두리 벗어나야 다른 문화 배워


소품 코미디 드라마‘운전교습’(Learning to Drive)에서 남편에게서 버림받은 맨해턴의 중년 부인 웬디(패트리샤 클락슨)에게 운전을 가르쳐주는 시크교도로 정치망명한 인도계 미국인 선생 다완으로 나오는 벤 킹슬리(71)와의 인터뷰가 베벌리힐스의 포시즌스 호텔서 있었다. 민둥머리에 액센트가 있는 굵은 음성의 킹슬리는 나이보다 젊어 보였는데 인터뷰에 만반의 준비라도 하고 나온 듯이 모든 질문에 즉각적으로 매우 진지하게 대답했다. 날카로운 눈매를 한 그는 에너지로 가득 찼는데 유머와 함께 강한 설득력을 구사하면서 마치 선생이 강의를 하듯이 물음에 답했다.                                      

―당신과 자동차와의 관계는 어떤지.
“아주 좋다. 난 영국의 시골에 살기 때문에 스틱십 자동차를 몬다. 그런데 난 점차 상품화하면서 운전사가 날 태우고 다니는 경우가 많다. 그러나 집에 있을 땐 큰 랜드로버 디펜더를 운전한다. 그 걸 타고 시골길을 운전하는 것은 아주 즐겁다. 시골이긴 하나 매우 분주한 농촌이어서 좁은 길에서 다른 차에게 양보를 할 줄 아는 미덕이 필요하다.”

―이 영화는 관계와 사랑의 얘기인데 당신의 삶은 당신에게 그것들에 대해 무엇을 가르쳐 주었는가.
“배우로서 관계에 대해 배운 것은 상상이 아닌 실제와 상대하라는 것이다. 내 상대 역과 환상적인 인물로서가 아니라 실제 인물로서 관계를 맺자는 것이다. 연기는 내게 항상 진짜로 거기에 있는 진짜 사람과 함께 하라는 것을 가르쳐 주었다. 시인 릴케는 이런 말을 했다. ‘사랑은 두 사람이 서로 만나고 인사하고 반기는 것이다.’ 이 영화도 바로 그런 내용이다.”

―당신의 개인으로서의 삶과 배우로서의 생애를 되돌아볼 때 무언가 고치고 싶은 것이라도 있는지.
“과거로 돌아가 무언가를 고친다는 것은 끔찍한 결과를 가져오게 된다고 생각한다. 과거에 일어난 일들 때문에 내가 바로 지금 이 자리에 있는 것이다. 과거에 실망스런 감독들과 일도 했고 또 옳지 못한 이유로 관계도 맺어 봤지만 과거를 고친다는 것은 내게 있어 거짓 변명에 지나지 않는다. 내게 있어 매일은 다르고 또 멋있는 도전이다.”

―당신은 다양한 역을 연기했는데 그 중 어느 인물이 가장 하기 힘들었나.
“난 늘 나와 내가 맡은 인물을 가로지르는 직선을 찾아내기 때문에 해 내기가 굉장히 힘든 역이 없었다고 해도 되겠다. 가장 막중한 책임을 느낀 것은 ‘쉰들러 리스트’의 유대인 역이다. 그러나 그 역은 책임감만큼이나 기쁨도 컸다. 연기를 할 때면 매일 보상과 함께 기쁨을 누리기에 아무리 힘들어도 힘든 줄을 모른다고 할 수 있다.”

―가장 좋아하는 영화는 무엇인가.
다완(왼쪽)이 웬디(패트리샤 클락슨)에게 운전교습을 하고 있다.
“그 질문에 대답하기 전에 보다 많은 영화를 더 봐야 하겠지만 지금 당장 머리에 떠오르는 영화는 빔 벤더스 감독의 ‘욕망의 날개’(Wings of Desire)다. 베를린 장벽의 붕괴와 분리 그리고 천사와 죽을 수밖에 없는 인간에 관한 아름다운 시적 영화다.”

―다완은 웬디에게 중매결혼이 연애결혼보다 오래 간다고 말하는데 당신도 그렇게 생각하나.
“난 몇 번 결혼을 했지만 한 번도 중매결혼은 아니었다. 영화에서 웬디는 여동생이 주선한 데이트 상대와 그 날 밤으로 섹스를 하고 그 관계도 끝나지만 다완은 중매결혼을 하고도 선뜻 침대에 들지를 않는다. 두 남녀의 관계는 서서히 알고 이해하고 또 사랑하려고 노력하는 과정에서 더 아름답게 영글게 된다고 본다.”

―당신도 다완처럼 인내심이 있는 좋은 선생이 될 수 있다고 생각하나.
“나는 미국과 유럽과 영국의 대학에서 매스터 클래스를 지도한 경험이 있다. 영문학과 연극을 가르쳤는데 연극반 학생들의 연기를 보고 비판하지를 않았다. 단지 ‘잘 했다. 자 이제 다음 단계로 가자’라고 말했다. 가르친다는 것은 그런 의미에서 남의 말에 경청한다는 것이라고도 하겠다.”

―당신은 나이가 훨씬 어린 아름다운 브라질 여인을 아내(31세 연하의 배우 다니엘라 바르보사 데 카르네이로)로 두었고 3남1녀가 있는 아버지로서 계속해 많은 작품에 출연하고 있는데  도대체 그 에너지가 어디서 오는 것인가.
“아내 때문에 에너지를 잃는다. 세트에 도착하면 매일이 다르다. 나는 얘기꾼인 셈인데 그 일이 내게는 매우 스릴 있고 흥분되며 또 만족스럽다. 자기가 맡은 일을 충실히 하면서 젊게 느끼면 된다. 내가 맡아 하는 한 인물을 수많은 사람들이 알게 된다는 것은 참으로 흥분되는 일이다. 난 늘 사람들이 만나고 싶어 하는 인물을 창조하기를 원한다.”

―영화 출연과 가정생활과의 균형을 어떻게 맞추는지.
“우리 가족은 시골에서의 단순한 삶을 살면서 자신들을 살찌운다. 정원을 가꾸고 음식을 만들고 하는 상냥한 가정생활을 우리는 사랑하고 즐긴다. 난 연기가 실제 삶으로부터 자양분을 공급 받는다고 믿는다. 장을 보는 것을 비롯해 일상의 여러 가지 일들이 내게 연기를 가르쳐 준다고 생각한다.”  

―당신이 사는 작은 마을의 주민들과는 어떻게 지내는지.
“그 관계는 아주 아름답다. 한 번은 마을 공회당을 위한 자금이 필요한 경우가 있었는데 그래서 난 자금 마련을 위해 공회당에 촛불을 잔뜩 켜 놓고 D.H. 로렌스를 비롯한 작가들의 시와 편지들을 낭독했다. 수천 파운드를 거뒀다. 근면한 사람들이 사는 아름다운 마을에 사는 것에 대한 내 갚음이었다.”

―돈과 명성은 당신에게 어떤 의미가 있나.
“그것은 친절하고 현명하게 써야 되는 것이다. 명성의 특혜 중 하나는 내가 여러분들과 인터뷰한 내용을 젊은 배우들이 읽고 ‘옳구나 그 말이 맞아’라고 동의하도록 할 수 있다는 것이다. 명성에는 큰 책임이 따르는데 난 언제나 그것을 이용해 젊은 배우들의 귀감이 되고자 노력한다. 돈으로 말하자면 난 일가친척이 너무 많아 그들을 보살피는데 쓴다.”

―당신은 큰 역과 작은 역을 막론하고 다 잘 해내는데 그 비결은 무엇인가
“스펜서 트레이시가 이런 말을 했다. ‘한 장면을 찍을 때 상대방이 멋있게 보이도록 노력하라.’ 그 말이야 말로 훌륭한 연기 철학의 한 부분이라고 하겠다. 상대방을 보기 좋게 함으로써 나의 연기도 향상되는 것으로 연기란 항상 양방통행이라고 본다. 이 영화에서도 패트리샤와 나는 이 가르침을 따라 했다. 이 영화가 드라마이자 코미디로서 보기 좋은 것도 거기서 연유한다.”

―당신은 배우로서 대뜸 정상에서 시작했는데 그 자리를 지키기가 얼마나 힘든가.
“‘간디’를 말하는가본데 난 이미 그 전에 15년간 무대에서 연기를 했다. 셰익스피어의 27편의 작품 중 17편에 나왔다. 그 같은 경험이 내게 스태미나를 주고 또 얘기꾼으로서의 기쁨도 준다. 그러나 사실 ‘간디’가 아니었더라면 난 지금 이 자리에 있지 않을 것이다. 정말로 아름다운 기회였다.”

―다완은 터번을 쓴데다가 피부색 때문에 “오사마”라고 조롱을 당했는데 당신도 실제로 인종차별을 당해 본 적이 있는가.
“내가 인종차별에 관해 배운 가장 중요한 계기는 유대인 인종차별 반대운동의 태두라 할 수 있는 사이먼 위젠탈의 기관을 위해 영화를 만들면서였다. 그 때 난 소위 개화된 인간이 다른 인간에게 행할 수 있는 끔찍한 만행에 대해 배우면서 치를 떨었다. 그런 행위가 더 없게 하려면 지혜가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당신은 세월과 함께 스스로가 보다 현명해졌다고 생각하나.
“그랬으면 하는 것이 내 바람이다. 연기란 것은 남의 말을 경청하고 상대를 믿으며 또 외교적인 일이기도 해서 난 그 같은 경험을 통해 내 삶이 상당히 풍족해졌다고 생각한다.”

―이 영화는 서로 다른 문화의 만남의 얘기인데 그런 만남에 대한 당신의 의견은 어떤지.
“영화가 얘기하고자 하는 점은 한 사람이 자기와 다른 문화에 관해 배울 수 있는 유일한 길은  자기 가족이나 문화의 테두리 밖으로 나와야 한다는 것이다. 따라서 난 이 영화를 본 사람들이 이 같은 사실을 깨닫기를 진정으로 바란다. 그러면 그들이 다음에 택시를 탔을 때 머리에 터번을 두른 운전사를 보면 ‘안녕하세요’라고 인사를 할 수도 있을 것이다.”              
                                                                  
                                                                <한국일보 박흥진 편집위원/ hjpark1230@gmail.com>


인턴(The Intern)


70세의 벤(로버트 드 니로)은 딸같은 사장 줄스(앤 해사웨이)의 인턴으로 취직한다.

70대 인턴과 젊은 여사장의 티격태격


이 가짜나 다름없는 무미건조한 코미디 드라마는 세상이 온통 분홍빛이기만한 내용의 영화를 주로 만드는 여류 낸시 마이어즈(‘베이비 붐’ ‘이츠 캄플리케이티드’)가 각본을 쓰고 연출했다. 온갖 허무한 대사와 배우들의 억지 같은 연기로 관객에게 잘 보이려고 아부를 하는데 결과가 뻔한 얘기를 놓고 상영시간이 2시간이 넘도록 질질 끌고 가는 바람에 좀이 쑤신다.
진실성이라곤 찾아보기 힘든 겉만 달짝지근하고 번드르르한 전형적인 할리웃 메이저의 상품으로 상투적인 것으로 가득해 기시감과 함께 보기에 민망하다. 
각본이 약해 마치 가설극장의 연극 처럼 내용이 허술한데 특히 중간 부분이 공허하기 짝이 없다. 마이어즈는 이런 공백을 메우기 위해 쓸데없이 억지춘향격인 에피소드들을 엮어 엉뚱한 길로 들어서고 있다.
그러나 브루클린과 맨해턴 및 샌프란시스코 등지에서 찍은 촬영과 함께 세트나 의상 같은 것들은 볼만하고 기술적인 부분도 말끔하니 좋다. 눈요깃거리로 시간 죽이기 용으로는 적당하다.    
브루클린에 사는 70세난 은퇴 홀아비 벤(로버트 드 니로)은 따분한 나날이 싫어 어느 날 시니어 인턴을 모집한다는 전단을 보고 이에 응모한다. 회사는 잘 나가는 웹사이트 패션회사로 사장은 젊은 일벌레 줄스(앤 해사웨이). 줄스의 남편은 아내 대신 집에서 어린 딸을 돌보고 밥을 짓고 청소한다.
줄스는 처음에는 자기의 인턴인 벤을 못 마땅하게 여기나 그의 삶의 예지와 오랜 직장생활에서 얻은 사업경험 등에서 귀중한 것들을 배우면서 점점 벤에게 친근감을 느끼게 된다. 영화는 결국 이 두 사람의 관계의 얘기인데 이런 골격을 세워 놓고 이를 둘러싼 얘깃거리가 모자라 공연히 벤과 그의 젊은 직장 동료들과의 아이들 장난같은 에피소드를 비롯해 전연 영화 얘기와 무관한 삽화등 로 땜질을 하고 있다. 참신성이라곤 찾아볼 수 없는 영화다.
한편 벤은 직장 내 마사지사인 섹시하고 아름답고 무르익은 여자(르네 루소가 여전히 섹시하다)와 로맨스를 꽃 피우는데 둘의 관계가 흡족치 못하게 묘사된다.   
그리고 벤은 줄스의 운전사 겸 직장 내 고문이 되다시피 하면서 줄스의 신임을 받고 아울러 일에 지친 그녀의 휴식처 노릇마저 한다. 여기에 느닷없이 줄스의 집안문제가 플롯으로 개입하면서 얘기가 신파조로 내려간다. 그러나 모든 문제는 다 말끔히 해결되고 모두가 다 그 뒤로 내내 행복하게 살게 되었다는 결말이야 뻔한 사실.  
아주 나태한 영화로 유머도 신선하다기보다는 약간 상한 맛이 나는데 그나마 볼 만한 것은 드 니로의 코믹한 연기다. 해사웨이의 연기는 쥐어짜는 식이다. PG-13. WB. 전지역. ★★½(5개 만점)
                                                 <한국일보 박흥진 편집위원/ hjpark1230@gmail.com>

폴 뉴만의 ‘허드’·‘허슬러’

허드(폴 뉴만)는 도덕성을 상실한 인간 지스러기다.

서부건달로… 도박사로… 폴 뉴만 절정의 연기


★허드 (Hud·1963)
텍사스 목장주 날건달 아들의 도덕적 타락과 옛 서부가 지녔던 이상의 소멸을 우울하고 절망적이면서도 강렬하게 그린 이색 서부영화로 썩을 대로 썩은 허드 역을 신랄하고 오만방자하게 보여주는 폴 뉴만의 연기가 신기에 이른 작품이다. 원작은 웨스턴 작가 래리 맥머트리의 ‘말 탄 사람, 사라져 가다’. 벌거벗은 탐욕과 전통적 가치관의 충돌을 그린 이 작품에서 허드는 한 줌의 체면도 없는 인간 지스러기요 나쁜 놈인데도 매력적인 것은 오로지 뉴만의 연기 탓이다.
반면 허드의 아버지 호머(멜빈 더글러스-오스카 조연상 수상)는 예의와 체면을 존중하는 도덕적인 사람으로 허드를 인간 취급하질 않는다. 그런데 영화는 비도덕적인 허드 보다는 오히려 양심적인 호머를 시대착오적인 사람으로 그리고 있다.
허드와 호머 사이에 있는 것이 허드의 10대난 조카 론(브랜든 디 와일드-‘셰인’의 조이). 론은 허드를 영웅으로 숭배한다. 네 번째 인물이 허드의 동물적 흡인력에 말려든 이 집의 가정부 알마(패트리샤 닐-오스카 주연상 수상). 피곤한 모습이면서도 원시적인 성적 매력이 가득한 알마가 욕망이 가득한 눈길로 허드를 바라보는 모습이 체념적이다. 허드와 알마가 서로를 짐승처럼 원하면서도 감정적으로는 교류를 미룬 채 욕망의 줄다리기를 하는 모습이 긴장감 있다.
호머는 전염병에 걸린 소떼들을 몰살한 뒤 심장마비로 사망하고 허드의 잔인하고 냉정한 비인간성에 혐오감을 느낀 알마도 떠난다.
그리고 론도 허드에게 “너는 공연히 으스대기나 하는 지스러기 같은 인간”이라고 내뱉은 뒤 역시 집을 떠난다. 그러나 그 어느 것도 허드에게는 의미를 지니지 못한다. 손에 집어든 맥주깡통의 마개를 딴 허드가 세상을 비웃으며 덧문을 요란하게 닫으면서 집안으로 들어가는 것으로 끝난다.
뛰어난 흑백촬영으로 제임스 웡 하우가 오스카상을 받았다. 감독은 샐리 필드가 오스카 주연상을 탄 ‘노마 레이’를 연출한 마틴 릿.

★허슬러 (The Hustler·1961)
떠돌이 당구 도박사 패스트 에디 펠슨(폴 뉴만)과 그가 도전하는 전설적인 당구 챔피언 미네소 타 패츠(재키 글리슨) 간의 긴장 가득한 대결을 그린 흑백영화. 침침한 당구장 안에서의 대결이 마치 서부시대 건맨들의 그것처럼 손에 땀을 쥐게 한다. 파이퍼 로리와 조지 C. 스캇 공연. 오스카 촬영상. 이 영화의 속편으로 마틴 스코르세지가 감독하고 뉴만과 탐 크루즈가 공연한 ‘돈의 색깔’(1986)로 뒤 늦게 뉴만이 오스카 주연상을 탔다. 25일과 26일. 뉴베벌리시네마(7165 Beverly Blvd. 323-938-4038) 동시상영.                         <한국일보 박흥진 편집위원/ hjpark1230@gmail.com>

희비 쌍곡선 오페라




현재 LA 다운타운의 뮤직센터에서는 희비 쌍곡선을 이루는 두 편의 음악극이 공연되고 있다. 둘 다 한 시간 남짓한 오페라로 영화로 말하자면 2본 동시상영이다. 서로가 완전히 다른 드라마로 음악과 내용이 재미있고 극적인 두 오페라는 모두 영화감독인 우디 알렌이 제작한 ‘지안니 스키키’(Gianni Schicchi)와 프랑코 제피렐리(‘로미오와 줄리엣’)가 제작한 ‘팔리아치’(Pagliacci·사진)로 수년 전에 공연한 것의 재공연이다.
두 오페라는 삼척동자도 아는 소프라노 아리아 ‘오 나의 사랑하는 나의 아버지’와 테너 아리아 ‘의상을 입어라’로 유명한데 이 번 공연은 노래나 연주나 다 고만고만한 것이지만 부담 없이 즐겁게 한두어 시간 보낼 수는 있다.  
LA 오페라의 총감독인 테너 플라시도 도밍고(74)가 처음에 공연되는 푸치니의 희극 ‘지안니 스키키’에서는 무대에 올라 바리톤으로 목소리를 낮춰 스키키 역을 노래하고 다음 작품인 레온카발로의 처연한 비극 ‘팔리아치’에서는 무대 아래로 내려가 오케스트라를 지휘한다. 바쁘다 바빠!
‘지안니 스키키’는 인간의 탐욕을 야유한 소극이다. 오페라는 시작되기 전 경쾌한 ‘후니쿨리 후니쿨라’에 맞춰 무대 위에 마련된 스크린에 마치 영화의 오프닝 크레딧처럼 오페라의 출연진과 제작진이 소개된다. 재미있는 발상이다.
단테의 ‘신곡’ 중 ‘지옥 편’의 내용을 따 만든 ‘지안니 스키키’는 사망한 플로렌스의 부자 부오조 도나티의 유산을 놓고 일가친척이 한 푼이라도 더 받으려고 난리법석을 떠는 얘기다. 그런데 오페라를 보면서 공연시간 52분간 내내 침대 위와 집 문 밖에서 부동자세로 꼼짝도 않고 있는 부오조역의 배우의 인내심에 감복치 않을 수가 없었다.
그와 함께 눈에 띄는 배우(?)가 부오조의 유산 중 하나인 당나귀로 이 당나귀는 훈련을 잘 받아 경쾌한 음악과 노래의 음들 속에서도 아주 침착한 연기를 했다. LA 매스터코랄의 총감독인 그랜트 거숀의 지휘에 맞춰 오케스트라는 매우 속도 빠른 음악을 탄력 있게 연주했다.
이 오페라에서 가장 유명한 것이 주인공으로 날사기꾼이자 ‘잭 오브 올 트레이즈’인 지안니 스키키의 딸 라우레타가 부르는 서정적 매력을 지닌 아리아 ‘오 나의 사랑하는 아버지’. 감칠 맛 나고 마음을 아이스크림 녹듯이 만들어주는 노래인데 라우레타 역의 아드리아드네 척만이  달콤하니 불렀다. 이 아리아는 역시 둘 다 푸치니의 오페라인 ‘나비부인’과 ‘라 보엠’의 아리아 ‘어떤 개인 날’과 ‘내 이름은 미미’와 함께 아름답기 짝이 없는 소프라노 아리아로 꼽히고 있다.
이 날 오페라 공연서 이색적이었던 것은 수십년간 테너로 노래 부른 도밍고가 바리톤으로 스키키 역을 노래한 것이다. 원래 도밍고는 바리톤으로 가수생활을 시작했다가 테너로 바꿨는데 요즘 들어 나이가 먹으면서 바리톤으로도 노래 부르고 있다. 이 날 그의 노래는 특별히 잘 날 것도 그렇다고 못 날 것도 없는 것이었다. 그뿐 아니라 이 날 노래 부른 가수들의 전반적인 수준도 그저 무난한 편으로 ‘야 정말 잘 부른다’라는 감동은 받지 못했다.
아리아보다는 오히려 앙상블이 듣기 좋았는데 도밍고는 지난 3월 뉴욕 메트에서 공연한 베르디의 ‘에르나니’에서도 바리톤으로 노래 불렀다가 비평가들의 부정적 평을 들은 바 있다. 다분히 반 가톨릭적 의미를 지닌 ‘지안니 스키키’에는 한국인 바리톤 윤기훈이 공증인으로 나온다.
이어 공연된 ‘팔리아치’는 어릿광대라는 뜻으로 이 오페라는 유랑극단의 단원들을 둘러싼 사랑과 욕정과 배신 그리고 살인이 뒤엉킨 실화를 바탕으로 한 격한 드라마다. 먼저 극단의 조연급 광대로 간교한 토니오가 커튼을 젖히고 무대에 나와 “이 오페라는 실화입니다”라고 소개하면서 시작되는 ‘팔리아치’는 한 여자를 둘러싸고 세 남자가 사랑과 욕망의 3중주를 연주하다 칼부림으로 끝나는 치정극으로 옛날에 한국에서 보던 가설극장의 연극 같은 내용이다.
유랑극단의 단장이자 광대인 카니오의 부정한 아내로 역시 배우인 네다를 탐하는 등에 혹이 난 이아고와도 같은 토니오와 네다의 정부 실비오의 삼각관계 얘기인데 도밍고가 매우 로맨틱하고 격정적인 음악을 탐스럽게 지휘했다.
이 오페라에서 듣는 사람의 심금을 울리는 것이 카니오가 아내의 부정을 알면서도 광대복을 입고 무대에 나서야 하는 신세를 탄식하는 아리아 ‘의상을 입어라’이다. 카니오 역의 마르코 베르티가 무난하게 노래했는데 이 서정적 비감을 지닌 감정적으로 또 극적으로 통절한 노래는 테너 아리아 중 가장 처절한 것이라고 해도 되겠다.
‘토스카’에서 총살당하기 직전의 카바라도시가 부르는 ‘별은 빛나건만’도 이 노래의 아픔을 따라오지 못한다. 힘과 유연성을 고루 지녀야 하는 노래로 듣고 있으면 눈물이 난다. 이 아리아는 특히 카루소의 것이 유명한데 그가 1902년에 취입한 음반은 사상 최초로 100만장이 팔렸다, 두 오페라 다 세트가 매우 정교하고 훌륭한데 이탈리아 풍경의 특징인 빨랫줄에 널린 빨래들이 한국의 옛 풍경을 생각나게 만든다. 두 오페라는 오는 10월3일까지 공연된다.
                                                               <한국일보 박흥진 편집위원/ hjpark1230@gmai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