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이야기

2017년 1월 3일 화요일

할리웃 배우‘커크 더글라스’100세 생일 맞아


커크 더글라스와 부인 앤. 


1950년~1960년대 흥행보증 수퍼스타로 군림
아내 앤과 함께 수천만 달러 기부 한 자선가


열화와 같은 사나이 커크 더글라스가 지난 9일로 100세가 되었다. 각이 진 얼굴에 옴폭 패인 턱이 트레이드마크인 더글러스하면 떠오르는 단어가 생명력과 에너지와 분기와 강인함 그리고 정열과 끈기이다.
더글라스를 대뜸 세계적 스타로 만들어준 권투영화로 그의 첫 오스카 주연상 후보작인 ‘챔피언’(Champion^1949)과 신랄한 뉴욕형사로 나온 윌리엄 와일러 감독의 ‘형사 이야기’(The Detective Story^1951) 그리고 반 고흐로 열연한 ‘삶의 열망’(Lust for Life^1956) 및 ‘스파르타커스’(Spartacus^1960) 등은 다 그의 이런 특성을 잘 보여주는 영화들이다.
배우요 제작자요 감독(그의 여러 일 중 가장 약하다)이자 작가요(10권의 저서) 박애주의자인 더글라스의 인생역정은 ‘빈자에서 부자’로라는 말을 그대로 답습한 것이다. 제정러시아 때  뉴욕으로 이민 온 유대인 부모 밑에서 6자매와 함께 자란 더글라스는 고물장수인 아버지를 도와 생계를 꾸리느라 어릴 때부터 길에서 물건을 팔았다. 학생 땐 카니발에서 레슬링을 해 돈을 벌기도 했다. 그의 강인성과 근면은 이런 성장과정에서 기인한다.
더글라스의 스크린 데뷔작은 바바라 스탠윅과 공연한 멜로물 ‘마사 아이버스의 이상한 사랑’(The Strange Love of Martha Ivers^1946). 이 영화에서의 연약한 남자 노릇을 끝으로 더글라스는 생애 출연한 90여 편의 영화에서 거의 다 강하고 터프한 모습을 보여주었다.
더글라스는 1950년대와 1960년대 흥행보증 수퍼스타로 군림하면서 진지한 드라마와 웨스턴 및 전쟁영화에 많이 나왔다. 1950년 더글라스의 연기학교 동창이자 오랜 친구였던 로렌 바콜(험프리 보가트의 아내로 2014년 사망)과 공연한 ‘혼을 든 젊은 남자’(Young Man with a Horn)는 재즈 혼 연주자 빅스 바이더베키의 실화로 호평을 받았다. 
이어 특종에 눈이 먼 기자로 나온 빌리 와일더 감독의 ‘에이스 인 더 호울’(Ace in the Hole?1951)에서 뜨거운 연기를 하고 다음 해 라나 터너와 공연한 빈센트 미넬리 감독의 ‘악인과 미녀’(The Bad nad the Beautiful)에서 무자비한 할리웃의 제작자로 나와 두 번째 오스카 주연상 후보에 올랐다. 
이 영화와 함께 더글라스의 세 번째 오스카 주연상 후보작으로 반 고흐 전기인 ‘삶의 열망’도 미넬리가 감독했다. 생긴 것도 고흐처럼 생긴 더글라스는 ‘삶의 열망’에서 생애 최고의 것이라 해도 될 만큼 열광적인 연기를 해 오스카상은 놓쳤으나 골든 글로브 주연상(드라마)을 탔다.액션 터프 가이로 잘 알려진 더글라스는 코미디에도 능한 재주꾼. 쥘 베른의 소설이 원작인 ‘해저 20,000리’(20,000 Leagues under the Sea^1954)에서 유크렐레를 켜며 경쾌한 연기를 했다. 
더글라스는 1955년 자기 어머니 이름을 딴 브라이나 제작사를 설립, 그 후 많은 영화에서 제작과 주연을 겸했다. 양질의 영화들을 만들었는데 그 대표작이 반전영화 ‘영광의 길’(Paths of Glory^1957). 스탠리 쿠브릭이 감독한 이 영화에서 더글라스는 제1차 대전 때 반역죄의 누명을 쓰고 군재에 회부된 부하들을 변호하는 변호사로 나와 맹렬한 연기를 보여줬다. 
이어 토니 커티스, 어네스트 보그나인 및 재넷 리 등 올스타 캐스트의 오락액션물 ‘바이킹’(The Vikings^1958)에서 외눈 바이킹으로 나왔다. 더글라스의 대명사와도 같은 영화가 1960년에 제작하고 주연한 ‘스파르타커스’. 쿠브릭이 감독한 영화에서 더글라스는 로마제국에 반기를 든 노예반군의 지도자로 나왔다.
이 영화는 정의파인 더글라스가 1950년대 할리웃에 존재했던 좌경영화인들에 대한 블랙리스트를 깬 역사적인 작품이다. 더글라스는 영화의 각본을 당시 블랙리스트에 올라 있던 달턴 트럼보에게 맡긴 뒤 그 때까지 가명으로 글을 썼던 트럼보의 이름을 처음으로 크레딧에 올렸다. 이를 계기로 할리웃의 블랙리스트는 흐지부지 소멸됐다. 더글라스는 당시 경험을 ‘나는 스파르타커스다!’(I Am Spartacus!)라는 책으로 써냈다.
이어 만든 영화가 컬트 웨스턴 ‘용감한 자는 고독하다’(Lonely Are the Brave^1962). 역시 트럼보가 각본을 쓴 영화로 더글라스는 탈옥한 카우보이로 나와 현대문명의 이기를 사용하는 경찰 추격을 받는다. 사라져가는 서부에 대한 향수가 가득한 흑백명화다. 
1964년 더글라스의 친구이자 동료인 버트 랭카스터와 공연한 영화가 ‘5월의 7일간’(Seven Days in May). 랭카스터는 미 대통령에 반기를 들고 쿠데타를 음모하는 공군장성으로 더글라스는 이를 저지하려는 해병대령으로 나와 서로 팽팽하게 맞선다. 둘은 이 영화 외에도 생애 모두 6편의 영화에서 공연했다.
그 첫 영화가 ‘나는 홀로 걷는다’(I Walk Alone^1948). 이어 ‘O.K.목장의 결투’(Gunfight at the O.K. Corral^1957)에서 더글라스는 폐병을 앓는 전직 치과의사 건맨으로 랭카스터는 애리조나주의 작은 무법마을 툼스톤의 명보안관 와이엇 어프로 각기 나왔다.
또 다른 둘의 공연영화로는 버나드 쇼의 희곡이 원작인 ‘악마의 제자’(The Devil‘s Disciple^1959), ‘에이드리안 메신저 리스트’(The List of Adrian Messenger^1963), ‘엔테베의 승리’(Victory of Entebbe^1976) 및 둘이 나이 먹은 열차강도로 나온 ‘터프 가이즈’(Tough Guys^1986) 등이 있다.
더글라스는 연극배우로도 활동했다. 1963년 브로드웨이 연극 ‘뻐꾸기 둥지 위로 날아간 새’(One Flew over the Cuckoo’s Nest)에 주연했다. 그는 이 연극의 원작인 켄 케이시의 소설의 영화화 판권을 사 후에 자기 아들이자 제작자요 배우인 마이클 더글라스에게 줘 마이클이 오스카 작품상을 탄 영화로 만들었다. 
더글라스는 1970년부터 2008년까지 40편에 가까운 영화에 나오긴 했으나 작품의 질은 전성기 때만 못하다. 그가 감독으로 데뷔하고 주연한 ‘보물섬’의 서부판 ‘무뢰한’(Scalawag^1973)은 졸작이나 두 번째로 감독하고 주연한 웨스턴 ‘파시’(Posse^1975)는 볼만하다. 
헨리 폰다와 공연한 웨스턴 코미디 ‘사악한 자가 있었으니...’(There was a Crooked Man...^1970)는 재미있지만 브라이안 드 팔마가 감독한 ‘분노’(Fury^1978)와 시간여행을 하는 항공모함의 드라마 ‘마지막 카운트다운’(The Final Countdown^1980) 등은 타작. 1980년대 더글러스가 나온 영화 중 가장 훌륭한 것이 ‘매드 맥스’를 만든 호주 감독 조지 밀러가 연출한 ‘눈 내린 강에서 온 남자’(The Man from Snowy River^1982). 경치와 내용이 준수한 서사웨스턴이다.
더글라스가 얼마나 강인한 사람인지 보여주는 일례가 영화 ‘다이아몬드’(Diamonds^1999)다. 그는 1996년 뇌졸중으로 쓰려져 거동과 말이 불편한데도 끈질기게 발성치료를 받은 뒤 이 영화에 나왔다. 여기서 그는 뇌졸중에서 회복하는 권투선수로 나온다. 그리고 2003년에는 마이클과 또 다른 아들 조엘 더글라스가 제작하고 온 가족이 출연 하다시피 한 ‘혈통 탓이야’(It Runs in the Family)에 나왔다. 그의 마지막 무대 출연은 지난 2009년 LA 인근 컬버시티에 있는 커크 더글라스극장에서의 자전적 1인 쇼 ‘잊기 전에’(Before I Forget).     
더글라스는 뇌졸중 이후 신을 찾기 시작, 현재 유대교 율법사와 함께 매주 1회씩 성경공부를 하면서 마음의 평화를 누리고 있다고 한다. 오스카 생애업적상 수상자인 더글라스는 또 지난 60년간을 함께 살아온 두 번째 아내 앤과 함께 수천만 달러 상당의 기부를 한 자선가이다. 
수년 전 그는 자기 소장 미술품을 팔아 캘리포니아의 400여 학교에 운동장을 만들어 주었다. 필자가 속한 할리웃 외신기자협회(HFPA)는 최근 더글라스의 100세 생일을 기리는 뜻에서 그의 자선단체에 100,000 달러를 기부했다. 그리고 더글라스와 앤은 이 기부에 감사하는 비디오 메시지를 우리에게 보내왔다. 해피 버스데이 앤 롱 리브 미스터 더글라스!  
                                                             <한국일보 박흥진 편집위원/ hjpark1230@gmail.com>


침묵(Silence)


세바스티아오 로드리게스 신부(왼쪽)가 숨어서 예배보는 일본인 신도와 작별을 하고있다.

일본서 종교적 폭력과 박해를 받는 두 명의 예수회신부


가난과 핍박에 시달리는 기독교 신자들과 투옥돼 처형을 기다리는 예수회신부가 구원과 안내를 찾아 부르짖는 소리에 대해 신이여 당신은 왜 침묵하십니까. 이 같은 물음은 이 영화의 제목이자 영화를 감독한 마틴 스코르세지 개인의 물음이다. 
보면서 162분 상영시간 내내 고행의 길을 걷는 인고와 참담함 그리고 고통과 쓰라림을 겪게 되는 믿음과 회의의 영화로 마지막에 가서 그 동안 기다렸던 구원을 받는 희열에 빠지게 된다. 인내심이 크게 필요한 영화다. 
주인공의 행적이 예수의 그것을 많이 닮은 이 묵직한 주제를 가진 ‘종교영화’는 스코르세지가 26년간을 만들려고 벼르다 완성한 것으로 그의 신에 대한 심리상태를 반영하고 있다. 이탈리아계로 가톨릭 집안에서 자란 그는 어렸을 때 신부가 되려고 했으나 신앙이 이를 뒷받침 해주지 못해 포기했다. 
그 후 그는 평생을 신에 대한 믿음과 회의간의 갈등 그리고 자책감을 안고 살았는데 이 영화는 그의 신을 향한 구원과 속죄의 부르짖음이라고 하겠다. 영화를 보면 그의 이런 의도가 절실히 느껴진다. 스코르세지의 또 다른 종교영화 ‘그리스도의 마지막 유혹’도 어떻게 보면 그가 신에게 바친 번제와도 같다.  
슈사쿠 엔도의 소설이 원작. 1643년. 포르투갈의 두 젊은 예수회신부 세바스티아오 로드리게스(앤드루 가필드)와 프란시스코 가루페(애담 드라이버)는 자신들이 존경하는 크리스토바오 페레이라신부(리암 니슨)가 일본에서 종교 탄압에 못 견뎌 신을 부인하고 일본인으로 살고 있다는 소문을 확인하려고 일본으로 간다. 
일본(대만서 촬영) 해변에 도착한 둘은 숨어서 예배를 보는 일단의 일본사람들을 만나 그들과 합류한다. 여기서 둘은 일본인 통역사(타다노부 아사노)를 통해 일본의 기독교에 대한 탄압과 신자들의 상황 등에 대해 알게 된다. 그리고 이들은 신자들과 함께 기아와 추위에 시달리면서 신도들에게 믿음을 전파한다. 이어 로드리게스와 가루페는 서로 헤어진다.           
이와 함께 기독교인들에 대한 마을 관리들의 가혹한 고문과 처형이 묘사되는데(해안에 세운 십자가에 신자들을 매단 뒤 밀물에 잠기게 해 죽인다) 이런 육체적 고통보다 더 보기 힘든 것은 신도들에게 신을 부인하라면서 예수의 모습이 새겨진 동판을 발로 밟게 하는 장면.  
페레이라를 찾아 가던 로드리게스는 어촌의 기독교신자들을 만나 그들과 생활하는데 배신을 당해 체포돼 투옥된다. 로드리게스는 장기간의 옥고를 치르면서 마을 군수 이노우에(이세이 오카타가 간교하고 코믹한 연기를 잘 한다)로부터 신을 부인하라는 종용을 받는다. 그리고 페레이라가 나타나 로드리게스에게 역시 신을 부인하라고 설득한다. 
이 과정에서 로드리게스는 믿음과 회의와의 갈등 그리고 죽음에 대한 공포에 시달린다. 전반부는 다소 내용이 단조롭고 인물들의 묘사도 부족하나 후반 들어 영육으로 강력한 충격을 받게 된다. 연기 촬영 및 음악도 좋다. R. Paramount. ★★★★(5개 만점)
                                                               <한국일보 박흥진 편집위원/ hjpark1230@gmail.com>


히든 피겨즈(Hidden Figures)


존 글렌을 맞이하는 도로시, 캐서린 그리고 메리(왼쪽 세번째부터).

1960년대 NASA에서 차별 받던 흑인 여성이 최고가 되기까지 이야기


남녀노소 할 것 없이 만백성이 보고 즐기고 박수 칠 영화로 이런 믿지 못할 얘기가 왜 이제야 영화로 만들어졌는지 알다가도 모를 일. 1960년대 초 존 글렌의 지구궤도 선회를 성공시키는데 일등공신 노릇을 한 세 명의 여자 수학자들의 실화로 기분 좋고 감동적이다. 
흑백문제와 여성차별 그리고 미?소간 우주경쟁과 불의에 저항하는 투혼을 지닌 인간승리의 드라마로 앙상블 캐스트의 연기가 좋은 코미디이요 드라마이며 스릴과 긴장감까지 갖춘 흥미진진한 영화다.
미?소간 우주경쟁이고조에 이르렀던 1960년대 초. 캐서린 고블(타라지 P. 헨슨)은 수학의 천재로 NASA의 랭리과학센터에서 일하고 있으나 그의 실력을 아무도 알아주지 않는다. 흑인을 이물질 보듯 하는 백인남자들 틈에 끼어서 별 볼일 없는 일을 하는 그의 실력을 알고 중요한 일을 맡기는 사람이 무뚝뚝하나 정의파인 실장 알 해리슨(케빈 코스너). 
인종차별을 보여주는 우스운 장면이 캐서린의 화장실 이용 장면. 자기가 일하는 건물의 백인전용 화장실을 못 써 건물 밖에 한참 떨어진 화장실까지 왕복으로 달리느라 고생이 많다. 캐서린의 달리기를 파렐 윌리엄스가 작곡한 주제가 ‘러닌’이 재미있게 반주한다. 
셋 중 제일 젊은 여자가 NASA에서도 알아주는 뛰어난 과학자 메리 잭슨(그래미상을 받은 가수 자넬 모나에가 발군의 연기력을 발휘한다). 그러나 메리는 버지니아주의 대학을 다니기 위해 법원에 청원서를 내서야 야간학교에 나간다. 판사에게 자신의 청원을 허락해 달라고 요청하는 메리의 모습이 당차다.
셋 중 맏언니 격인 여자가 역시 같은 곳에서 일하는 수퍼바이저 도로시 본(옥타비아 스펜서). 그러나 도로시는 책임만 많지 봉급은 백인여자에 훨씬 못 미친다. 
이들 세여자의 인종차별 속에서도 꿋꿋이 자신을 지키면서 자신의 가치를 입증하는 얘기가 아기자기하게 전개되는데 셋이 함께 있을 때가 각자 따로 있을 때보다 더 재미있다. 세 여자배우와 코스너의 연기가 좋다. 디오도어 멜피 간독. PG. Fox. ★★★★(5개 만점)
                                                               <한국일보 박흥진 편집위원/ hjpark1230@gmail.com>


‘애수’


내일 하루가 가면 2016년도 간다. 연말 분위기란 치열한 쾌감 뒤에 느끼는 공허와도 같다. 슬프고 착잡하고 어수선하고 어리둥절해 몸 둘 바를 모르겠다. 간다는 것은 안 됐고 슬프다. 이런 것을 미련이라고 하나보다.
나이를 먹으면서 과거와 현재와 미래의 개념이 희박해지고 그저 그들은 다 시간일 뿐이라고 여기게 된다. 그런데도 그 시간의 한 줌인 연말이 되면 과거가 아쉽다. 가슴은 천성이 센티멘탈한 것인가 보다.
이 과거의 감상성을 슬프면서도 달래주는 듯이 피력한 노래가 신년 전야 자정 직전에 부르며 새 해를 맞는 ‘올드 랭 자인’이다. ‘옛날 오래 전에 가버린 날들’을 뜻하는 ‘올드 랭 자인’은 스코틀랜드의 시에 민요의 멜로디를 붙여 지은 노래로 멜로디가 감미롭고 감상적이다.
“슈드 올 어퀘인턴스 비 포갓 앤드 네버 브럿 투 마인드? 슈드 올 어퀘인턴스 비 포갓 앤드 올 랭 자인?”으로 시작되는 노래는 지나간 날들을 회상하며 늘 기억하리라 다짐하면서 아울러 술 한 잔 차 한 잔을 서로 들고 나누는 인간의 친절을 기리고 있다.
이 안개가 자욱이 낀 듯한 곡은 지난 1929년 캐나다 태생의 지휘자 가이 롬바르도의 밴드 로열 커네이디언즈가 뉴욕의 신년 전야 파티에서 연주하면서 유명해졌는데 그 후 팝, 컨트리, 디스코 및 폴카로 편곡돼 널리 사랑을 받고 있다.
팝으로 히트한 것이 5중창단 G-클렙스가 부르는 ‘아이 언더스탠드’다. 떠난 님을 이해한다면서도 마음이 바뀌면 돌아오라고 호소하는 이 노래는 한국에서도 크게 유행해 다방과 음악감상실에서 자주 틀곤 했다.
‘올드 랭 자인’을 노래 부른 가수들도 많다. 바비 다린, 짐 리브스, 빙 크로스비 및 줄리 앤드루스 등이 불렀고 노래의 고향인 스코틀랜드의 스카티시 백파이프스 밴드의 여자의 고음 울음과도 같은 백파이프 연주도 좋다. 또 이 노래는 ‘천부여 의지 없어서 손들고 옵니다’로 시작되는 찬송가로도 불리고 있다.
‘올드 랭 자인’은 이런 내력을 지니고 있어 할러데이 시즌 영화에 즐겨 사용되고 있는데 특히 로맨틱하거나 감상적인 장면 그리고 마지막 장면에 많이 나온다. 이 노래가 가슴에 가장 강렬한 인상을 남겨주는 영화의 으뜸은 눈물 없이는 볼 수 없는 신파 멜로드라마의 결정판 ‘애수’(Waterloo Bridge^1940^사진)일 것이다. 멜로드라마를 잘 만들던 머빈 르로이 감독의 흑백영화로 MGM이 배급했다.
콧수염을 한 귀족집안의 영국군대령 로이(로버트 테일러)가 런던의 워털루 브리지에서 과거를 회상하면서 장면은 제1차 대전 때로 돌아간다. 공습경보에 지하대피소로 피하던 로이대위와 발레댄서 마이라(비비안 리)가 첫 눈에 사랑에 빠지면서 결혼을 약속한다.
전선에 나간 로이를 기다리던 마이라는 로이가 사망자 명단에 오른 것을 보고 자포자기해 워털루 역을 무대로 군인을 상대로 몸을 파는 여자가 된다. 그러나 전쟁포로가 됐던 로이가 귀국해 워털루 역에서 마이라와 재회, 둘은 사랑을 재확인하지만 죄책감에 못 견딘 마이라는 워털루 브리지에서 달려오는 트럭에 투신자살한다. 로이와 마이라의 댄스 장면을 비롯해 ‘올드 랭 자인’이 영화 내내 작품의 분위기를 애처롭게 감싸 안고 돌아 눈물깨나 쏟게 된다.      
나는 이 영화 때문에 런던에 세트방문이나 배우 인터뷰를 위해 갈 때마다 어느덧 워털루 브리지와 워털루 역을 찾아가는 버릇이 생겼다. 그러나 영화는 MGM 스튜디오에서 찍었다. 그런데 워털루 브리지는 실제로 전쟁 당시 창녀들이 런던을 거쳐 가는 군인들을 상대로 돈을 벌려고 모여들었던 곳이다.
‘올드 랭 자인’은 할러데이 시즌 단골영화 ‘멋진 인생’(It‘s a Wonderful Life^1946)에서도 콧등이 시큰해지도록 마지막 장면을 장식한다. 작은 마을 베드폴스에서 아내 메리(다나 리드)와 어린 자식들과 함께 행복하게 살고 있던 조지(제임스 스튜어트)가 사업에 실패, 강에 투신자살하려는 순간 조지의 수호천사 클래런스가 나타난다.
클래런스는 조지에게 그가 이 세상에 태어나지 않았더라면 베드폴스가 어떤 꼴이 되었겠는가를 보여준다. 이 세상이 얼마나 멋진 곳인가를 깨달은 조지와 메리와 둘의 아이들을 찾아온 동네 사람들이 ‘올드 랭 자인’을 부르고 집안의 크리스마스 트리 전구들이 깜빡이면서 노래를 따라 부른다.
이 밖에도 주디 갈랜드가 부르는 ‘해브 유어셀프 어 메리 리틀 크리스마스’가 나오는 뮤지컬 ‘세인트 루이스에서 만나요’와 빌리 와일더가 감독하고 잭 레몬과 셜리 매클레인이 나오는 ‘아파트먼트’ 그리고 ‘해리가 샐리를 만났을 때’와 ‘포사이던 어드벤처’ 및 내가 올 해 인상 깊게 보았던 스코틀랜드영화 ‘선셋 송’에도 ‘올드 랭 자인’이 나온다. 해피 뉴 이어!
                                                        <한국일보 박흥진 편집위원/ hjpark1230@gmai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