커크 더글라스와 부인 앤. |
1950년~1960년대 흥행보증 수퍼스타로 군림
아내 앤과 함께 수천만 달러 기부 한 자선가
열화와 같은 사나이 커크 더글라스가 지난 9일로 100세가 되었다. 각이 진 얼굴에 옴폭 패인 턱이 트레이드마크인 더글러스하면 떠오르는 단어가 생명력과 에너지와 분기와 강인함 그리고 정열과 끈기이다.
더글라스를 대뜸 세계적 스타로 만들어준 권투영화로 그의 첫 오스카 주연상 후보작인 ‘챔피언’(Champion^1949)과 신랄한 뉴욕형사로 나온 윌리엄 와일러 감독의 ‘형사 이야기’(The Detective Story^1951) 그리고 반 고흐로 열연한 ‘삶의 열망’(Lust for Life^1956) 및 ‘스파르타커스’(Spartacus^1960) 등은 다 그의 이런 특성을 잘 보여주는 영화들이다.
배우요 제작자요 감독(그의 여러 일 중 가장 약하다)이자 작가요(10권의 저서) 박애주의자인 더글라스의 인생역정은 ‘빈자에서 부자’로라는 말을 그대로 답습한 것이다. 제정러시아 때 뉴욕으로 이민 온 유대인 부모 밑에서 6자매와 함께 자란 더글라스는 고물장수인 아버지를 도와 생계를 꾸리느라 어릴 때부터 길에서 물건을 팔았다. 학생 땐 카니발에서 레슬링을 해 돈을 벌기도 했다. 그의 강인성과 근면은 이런 성장과정에서 기인한다.
더글라스의 스크린 데뷔작은 바바라 스탠윅과 공연한 멜로물 ‘마사 아이버스의 이상한 사랑’(The Strange Love of Martha Ivers^1946). 이 영화에서의 연약한 남자 노릇을 끝으로 더글라스는 생애 출연한 90여 편의 영화에서 거의 다 강하고 터프한 모습을 보여주었다.
더글라스는 1950년대와 1960년대 흥행보증 수퍼스타로 군림하면서 진지한 드라마와 웨스턴 및 전쟁영화에 많이 나왔다. 1950년 더글라스의 연기학교 동창이자 오랜 친구였던 로렌 바콜(험프리 보가트의 아내로 2014년 사망)과 공연한 ‘혼을 든 젊은 남자’(Young Man with a Horn)는 재즈 혼 연주자 빅스 바이더베키의 실화로 호평을 받았다.
이어 특종에 눈이 먼 기자로 나온 빌리 와일더 감독의 ‘에이스 인 더 호울’(Ace in the Hole?1951)에서 뜨거운 연기를 하고 다음 해 라나 터너와 공연한 빈센트 미넬리 감독의 ‘악인과 미녀’(The Bad nad the Beautiful)에서 무자비한 할리웃의 제작자로 나와 두 번째 오스카 주연상 후보에 올랐다.
이 영화와 함께 더글라스의 세 번째 오스카 주연상 후보작으로 반 고흐 전기인 ‘삶의 열망’도 미넬리가 감독했다. 생긴 것도 고흐처럼 생긴 더글라스는 ‘삶의 열망’에서 생애 최고의 것이라 해도 될 만큼 열광적인 연기를 해 오스카상은 놓쳤으나 골든 글로브 주연상(드라마)을 탔다.액션 터프 가이로 잘 알려진 더글라스는 코미디에도 능한 재주꾼. 쥘 베른의 소설이 원작인 ‘해저 20,000리’(20,000 Leagues under the Sea^1954)에서 유크렐레를 켜며 경쾌한 연기를 했다.
더글라스는 1955년 자기 어머니 이름을 딴 브라이나 제작사를 설립, 그 후 많은 영화에서 제작과 주연을 겸했다. 양질의 영화들을 만들었는데 그 대표작이 반전영화 ‘영광의 길’(Paths of Glory^1957). 스탠리 쿠브릭이 감독한 이 영화에서 더글라스는 제1차 대전 때 반역죄의 누명을 쓰고 군재에 회부된 부하들을 변호하는 변호사로 나와 맹렬한 연기를 보여줬다.
이어 토니 커티스, 어네스트 보그나인 및 재넷 리 등 올스타 캐스트의 오락액션물 ‘바이킹’(The Vikings^1958)에서 외눈 바이킹으로 나왔다. 더글라스의 대명사와도 같은 영화가 1960년에 제작하고 주연한 ‘스파르타커스’. 쿠브릭이 감독한 영화에서 더글라스는 로마제국에 반기를 든 노예반군의 지도자로 나왔다.
이 영화는 정의파인 더글라스가 1950년대 할리웃에 존재했던 좌경영화인들에 대한 블랙리스트를 깬 역사적인 작품이다. 더글라스는 영화의 각본을 당시 블랙리스트에 올라 있던 달턴 트럼보에게 맡긴 뒤 그 때까지 가명으로 글을 썼던 트럼보의 이름을 처음으로 크레딧에 올렸다. 이를 계기로 할리웃의 블랙리스트는 흐지부지 소멸됐다. 더글라스는 당시 경험을 ‘나는 스파르타커스다!’(I Am Spartacus!)라는 책으로 써냈다.
이어 만든 영화가 컬트 웨스턴 ‘용감한 자는 고독하다’(Lonely Are the Brave^1962). 역시 트럼보가 각본을 쓴 영화로 더글라스는 탈옥한 카우보이로 나와 현대문명의 이기를 사용하는 경찰 추격을 받는다. 사라져가는 서부에 대한 향수가 가득한 흑백명화다.
1964년 더글라스의 친구이자 동료인 버트 랭카스터와 공연한 영화가 ‘5월의 7일간’(Seven Days in May). 랭카스터는 미 대통령에 반기를 들고 쿠데타를 음모하는 공군장성으로 더글라스는 이를 저지하려는 해병대령으로 나와 서로 팽팽하게 맞선다. 둘은 이 영화 외에도 생애 모두 6편의 영화에서 공연했다.
그 첫 영화가 ‘나는 홀로 걷는다’(I Walk Alone^1948). 이어 ‘O.K.목장의 결투’(Gunfight at the O.K. Corral^1957)에서 더글라스는 폐병을 앓는 전직 치과의사 건맨으로 랭카스터는 애리조나주의 작은 무법마을 툼스톤의 명보안관 와이엇 어프로 각기 나왔다.
또 다른 둘의 공연영화로는 버나드 쇼의 희곡이 원작인 ‘악마의 제자’(The Devil‘s Disciple^1959), ‘에이드리안 메신저 리스트’(The List of Adrian Messenger^1963), ‘엔테베의 승리’(Victory of Entebbe^1976) 및 둘이 나이 먹은 열차강도로 나온 ‘터프 가이즈’(Tough Guys^1986) 등이 있다.
더글라스는 연극배우로도 활동했다. 1963년 브로드웨이 연극 ‘뻐꾸기 둥지 위로 날아간 새’(One Flew over the Cuckoo’s Nest)에 주연했다. 그는 이 연극의 원작인 켄 케이시의 소설의 영화화 판권을 사 후에 자기 아들이자 제작자요 배우인 마이클 더글라스에게 줘 마이클이 오스카 작품상을 탄 영화로 만들었다.
더글라스는 1970년부터 2008년까지 40편에 가까운 영화에 나오긴 했으나 작품의 질은 전성기 때만 못하다. 그가 감독으로 데뷔하고 주연한 ‘보물섬’의 서부판 ‘무뢰한’(Scalawag^1973)은 졸작이나 두 번째로 감독하고 주연한 웨스턴 ‘파시’(Posse^1975)는 볼만하다.
헨리 폰다와 공연한 웨스턴 코미디 ‘사악한 자가 있었으니...’(There was a Crooked Man...^1970)는 재미있지만 브라이안 드 팔마가 감독한 ‘분노’(Fury^1978)와 시간여행을 하는 항공모함의 드라마 ‘마지막 카운트다운’(The Final Countdown^1980) 등은 타작. 1980년대 더글러스가 나온 영화 중 가장 훌륭한 것이 ‘매드 맥스’를 만든 호주 감독 조지 밀러가 연출한 ‘눈 내린 강에서 온 남자’(The Man from Snowy River^1982). 경치와 내용이 준수한 서사웨스턴이다.
더글라스가 얼마나 강인한 사람인지 보여주는 일례가 영화 ‘다이아몬드’(Diamonds^1999)다. 그는 1996년 뇌졸중으로 쓰려져 거동과 말이 불편한데도 끈질기게 발성치료를 받은 뒤 이 영화에 나왔다. 여기서 그는 뇌졸중에서 회복하는 권투선수로 나온다. 그리고 2003년에는 마이클과 또 다른 아들 조엘 더글라스가 제작하고 온 가족이 출연 하다시피 한 ‘혈통 탓이야’(It Runs in the Family)에 나왔다. 그의 마지막 무대 출연은 지난 2009년 LA 인근 컬버시티에 있는 커크 더글라스극장에서의 자전적 1인 쇼 ‘잊기 전에’(Before I Forget).
더글라스는 뇌졸중 이후 신을 찾기 시작, 현재 유대교 율법사와 함께 매주 1회씩 성경공부를 하면서 마음의 평화를 누리고 있다고 한다. 오스카 생애업적상 수상자인 더글라스는 또 지난 60년간을 함께 살아온 두 번째 아내 앤과 함께 수천만 달러 상당의 기부를 한 자선가이다.
수년 전 그는 자기 소장 미술품을 팔아 캘리포니아의 400여 학교에 운동장을 만들어 주었다. 필자가 속한 할리웃 외신기자협회(HFPA)는 최근 더글라스의 100세 생일을 기리는 뜻에서 그의 자선단체에 100,000 달러를 기부했다. 그리고 더글라스와 앤은 이 기부에 감사하는 비디오 메시지를 우리에게 보내왔다. 해피 버스데이 앤 롱 리브 미스터 더글라스!
<한국일보 박흥진 편집위원/ hjpark1230@gmai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