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이야기

2016년 1월 11일 월요일

컨커션(Concussion)


오말루 의사는 풋볼선수들의 조기사망과 뇌진탕과의 관계를 규명한다.


풋볼선수들의 어두운 이면 추적


미 프로풋볼 선수들의 비정상적인 죽음과 뇌진탕과의 관계를 규명한 나이지리아 태생의 병리학자 베넷 오말루의 실화로 약간 스릴러 분위기마저 지닌 튼튼한 드라마다. 특히 이 영화는 의사 오말루 역의 윌 스미스가 액센트와 함께 조용하면서도 안으로 강한 힘을 발산하는 연기를 하는데 그 외에도 조연진들의 연기도 아주 좋다.
스미스는 영화를 혼자 짊어지다시피 하고 있는데 잘 나가던 내용이 오말루의 애정과 가정문제를 묘사하면서 영화의 중심 내용으로부터 벗어나는 바람에 김이 빠진다. 그러나 미국인들의 사랑을 한 몸에 받고 있는 풋볼선수들의 어두운 이면을 밝혀낸 드라마여서 좋은 연기와 함께 볼만하다.
영화를 보고 나서 운동경기 중 받은 뇌에 가해진 강한 충격 때문에 선수들이 늙기도 전에 비정상적인 죽음을 맞는다는 사실이 입증됐는데도 여전히 이 경기가 인기리에 열리고 있다는  사실에 대해 경악을 금치 못하게 된다.
때는 2002년. 장소는 피츠버그. 영화는 처음에 팬들의 큰 사랑을 받던 피츠버그 스틸러스의 은퇴한 라인맨 마이크 웹스터(데이빗 모스)가 상거지가 돼 정신장애에 시달리다가 트럭에서 자살하는 장면으로 시작된다. 
웹스터의 사체를 부검하던 오말루(스미스)는 웹스터의 뇌에서 50세의 나이에 있을 수 없는 이상한 흔적을 발견한다. 오말루는 사체에 대한 부검 전에 사체와 친숙해지기 위해 사체에다 대고 말을 하는데 그의 이런 죽은 자에 대한 존경에 감동을 느끼게 된다. 
그런데 웹스터 외에도 은퇴한 풋볼선수들이 마약과 술에 절어 포악해지고 심한 우울증에 빠지거나 나이에 걸맞지 않는 또 다른 이상한 증세를 보이면서 자살을 하는 경우가 발생한다. 이들을 부검한 오말루는 모두에게서 웹스터의 뇌에 생긴 특이한 흔적을 발견하고 이를 경기 중 뇌에 입은 충격의 후유증이라고 발표한다.
오말루의 발표가 의학계에 관심을 모으자 전미 프로풋볼리그(NFL)는 오말루의 발표를 묵살하려고 온갖 수단을 동원한다. 이야말로 다윗 대 골리앗의 싸움으로 그의 상사인 시릴(알버트 브룩스가 호연한다)은 오말루에게 “NFL은 예전에 교회가 소유했던 1주의 하루를 소유하고 있는 막강한 세력”이라면서 NFL과의 싸움에 승산이 없다고 경고한다. 
그러나 오말루는 시릴을 비롯해 다른 의사들인 줄리안(알렉 볼드윈)과 스티븐(에디 마산) 등의 지원을 받으면서 끈질기게 자신의 부검결과를 세인에게 알리기 위해 노력한다. 이런 오말루의 활약과 함께 그와 역시 아프리카에서 온 아름답고 총명한 여인 프레마(구구 엠바타-러)와의 로맨스가 곁들여져 묘사되나 이는 이야기의 핵심을 흐리게 만들고 있다. 
영화는 풋볼경기 중 입은 뇌에 대한 손상이 선수들의 비정상적인 죽음과 관련이 있음을 알려주고 아울러 NFL을 음모집단으로 묘사하긴 했지만 풋볼 자체를 부정적으로 그리진 않았다.   
오말루는 공적이 인정돼 정부로부터 고위 공직자의 자리를 제공 받았으나 이를 사양했다. 피터 란데스만 감독. PG-13. Columbia. 전지역. ★★★(5개 만점)   
                                                            <한국일보 박흥진 편집위원/ hjpark1230@gmail.com>


아노말리사(Anomalisa)


마이클(왼쪽)과 리사는 서로가 영혼의 반려자임을 느낀다.


영혼의 반려자를 찾는 로맨스


‘결점 없는 마음의 영원한 햇빛’과 ‘어답테이션’과 같은 가슴과 두뇌 모두를 자극하는 지적이면서도 야릇하게 마음으로 파고드는 정감 있는 영화를 쓰고 만드는 찰리 커프만(각본을 쓰고 감독은 듀크 잔슨과 같이 했다)의 스탑 모션 인형극 만화영화로 이상하면서도 심금을 울린다.  
상당히 심오하고 전체적으로 고독이 배인 성인용 고급영화로 삶의 여러 가지 복잡한 문제들을 묻고 있는데 궁극적으로 자신의 영혼의 반려자를 찾는 로맨스 얘기다. 희한한 것은 내용이 우리들의 절실한 문제들을 진지하게 다루고 있어 처음에는 인형으로 보이던 주인공들이 시간이 지나면서 진짜 사람처럼 보인다는 점이다. 이런 데는 배우들의 구구절절한 대사 낭독이 큰 역할을 한다.   
영국의 동기유발 전문가인 중년의 고독한 남자 마이클 스톤(데이빗 튤리스)이 고객서비스 부문에 일하는 사람들을 위한 강연 차 신시내티에 온다. 그는 호텔에 여장을 풀고 집의 아내에게 전화를 걸고 이어 룸서비스를 시킨 뒤 옛날 애인을 만나려고 시도했다가 낭패를 본다. 
그런데 이상한 것은 호텔서 마이클이 만나는 사람들이 남녀를 불문하고 한결 같이 억양 없는 어투로 단조롭게 말을 하는 것(모두 탐 누낸의 음성에 삶의 반복성과 지리함이 덕지덕지 묻어 있다). 이런 중에 유일하게 자기만의 소리를 내는 여자가 마이클의 팬으로 자기의 외모와 내면 모두에 대해 자신이 없는 리사(제니퍼 제이슨 리-현재 상영 중인 쿠엔틴 타란티노 감독의 ‘헤이트풀 에잇’ 유일한 여자 주인공)다.
마이클은 이런 리사에게 마음이 깊이 끌리면서 리사야 말로 자신의 영혼의 배필임을 깨닫는다. 리사도 마찬가지로 둘은 호텔 방에서 뜨거운 정사를 나누는데 대단히 자극적이다. 그리고 마이클은 리사에게 아노말리사(변칙적이요 이상하다는 뜻의 아노말리와 리사의 합성어)라는 별명을 붙여주고 리사와 남은 삶을 함께 하리라고 마음먹는다. 
대단히 창조적인 작품으로 처음에는 다소 생경하나 시간이 가면서 서서히 가슴에 어필해 오는  혼이 있는 작품으로 우리의 고독과 소외감 그리고 관계의 어려움과 삶의 무료와 권태 및 사랑과 행복 같은 문제들을 연민의 가슴으로 다룬 별난 영화다. 보는 사람의 지능에 도전하는 철학적 작품이기도 하다. R. Paramount. 일부지역. ★★★★(5개만점).
                                                                <한국일보 박흥진 편집위원/ hjpark1230@gmail.com>


2015 베스트 텐




2015년도 할리웃은 새삼스런 일은 아니나 질보다 양이 앞서간 해였다. 이 해 북미의 총 흥행수입은 할리웃 사상 최고인 111억달러. 그러나 이런 기록은 순전히 메이저들의 대규모 예산을 투입한 ‘스타워즈: 깨어난 포스’와 ‘주라기 월드’ 같은 블락버스터 덕에 이뤄진 것이다.
블락버스터들이 기승을 떨면서 이들보다 규모가 작은 중간급 영화들과 인디 영화들이 점점 더 설 자리를 잃어가고 있다. 그런데 이런 현상은 한국 영화계에서도 마찬가지인 것 같다.
블락버스터들은 대부분 속편과 컴퓨터 만화영화이거나 만화와 장난감과 비디오게임을 바탕으로 만든 것들이 아니면 전에 빅히트한 영화들을 변용한 소위 ‘리부트’들이다. 따라서 이런 영화들은 오락적 재미는 있을지 몰라도 예술적 가치나 질 면에서는 빈약한 것이 사실이다.
2015년은 메이저들이 대목을 본 해이긴 했으나 이들이 대규모 예산을 투입한 영화들 중 흥행서 참패한 영화들도 꽤 있다. 그 중에서도 가장 치욕적인 수모를 받은 것이 앤젤리나 졸리가 감독하고 남편 브래드 핏과 공연한 ‘바닷가에서’다. 또 샌드라 불락이 주연한 ‘우리의 상표는 위기’와 론 하워드가 감독한 ‘바다의 심장 속에서’ 등도 본전도 못 건진 것들. 이 밖에도 ‘팬’ ‘투머로우랜드’ ‘팬태스틱 포’ ‘픽슬즈’ 및 ‘주피터 어센딩’ 등도 큰 손해를 봤다.
한편 영화 전문가들은 올해도 거액의 예산을 들인 속편 위주의 블락버스터 현상이 계속될 것으로 내다보고 있다.
나의 2015년도 베스트 텐 중 1위는 지난해 오스카상을 탄 알레한드로 G. 이나리투가 감독하고 레오나르도 디카프리오가 주연한 ‘레버넌트’다. 2위와 3위는 각기 ‘스팟라이트’와 ‘45년’이고 나머지는 알파벳 순서대로다.
*‘레버넌트’(The Revenant)-동료들에 의해 동토에 버려진 빈사상태의 모피사냥꾼이 기사회생, 복수를 위해 처절한 생존투쟁을 하면서 설원을 간다. 사실을 바탕으로 만든 위대한 영화제작의 표본과도 같은 작품으로 디카프리오가 골든 글로브상과 함께 네 번의 도전 끝에 오스카상을 탈 가능성이 점쳐지고 있다. (사진)
*‘스팟라이트’(Spotlight)-가톨릭 보스턴교구 내 성직자들의 아동 성추행을 폭로, 퓰리처상을 탄 보스턴 글로브의 특별취재팀의 활약. 골든 글로브와 오스카 작품상을 탈 확률이 높다.
*‘45년’(45 Years)-결혼 45주년을 맞은 부부(탐 코트니와 샬롯 램플링)가 남편에게 날아든 편지 한 통 때문에 심각한 내면의 갈등을 겪는다.    
*‘스파이들의 다리’(Bridge of Spies)-냉전시대 미국에 수감된 소련 스파이(마크 라일런스)와 소련에 수감된 미 스파이기 조종사의 교환을 성사시킨 미 변호사(탐 행스)의 실화. 스티븐 스필버그 감독.    
*‘브루클린’(Brooklyn)-혼자 아일랜드에서 미국으로 이민 온 젊은 여자(셔사 로난)가 정착해 결혼까지 하나 오래간만에 고향을 방문한 뒤 미국으로 돌아가는 것에 대해 회의한다.
*‘캐롤’(Carol)-1950년대 뉴욕주의 부유한 가정주부이자 어머니(케이트 블랜쳇)가 젊은 백화점 여직원(루니 마라)과 뜨거운 사랑에 빠진다.
*‘시-락’(Chi-Raq)-시카고의 라이벌 갱 간에 살육이 횡행하면서 이를 막으려고 갱스터들의 아내와 애인들이 섹스 스트라이크를 벌인다. 희랍연극 ‘라이시스트라타’를 원작으로 스파이크 리가 감독했다.
*‘희생 수’(Pawn Sacrifice)-소련의 세계 체스 챔피언 보리스 스파스키(리에브 슈라이버)와 미국의 체스 선수 바비 피셔(토비 맥과이어) 간의 세기의 대결.
*‘슬로 웨스트’(Slow West)-1800년대 스코틀랜드에서 미국의 콜로라도주로 애인을 찾으러 온 청년이 자신의 목적을 숨긴 바운티 헌터(마이클 화스벤더)를 바디가드로 고용한 뒤 목적지로 향한다. 총격적전이 환상적일 만큼 유혈폭력적이요 아름답다.
*‘청춘의 유언’(Testament of Youth)-1차 대전 때 옥스포드대 학업을 중단하고 간호사로 종군한 여자(알리시아 비칸더)가 전쟁의 참혹한 현실을 목격할 뿐 아니라 자기 애인과 오빠가 모두 전사하는 비극을 맞는다.
이 밖에도 ‘탠저린’ ‘청춘’ ‘트럼보’ ‘매드 맥스: 분노의 길’ ‘룸’ ‘트레인렉’ ‘나와 얼과 죽어가는 소녀’ ‘크리드’ 및 ‘미스트리스 아메리카’ 등이 기억에 남는다.
와국어 영화 중 가장 감동적이었던 것은 터키의 해변마을의 보수적인 가정에서 자라는 5자매의 생기발랄하면서도 가혹한 현실을 그린 프랑스 영화 ‘야생마’(Mustang)다. 벨기에 영화 ‘최신판 신약’(The Brand New Testament)은 배꼽 빠지게시리 우습다.
훌륭한 기록영화들로는 둘 다 여가수의 삶을 다룬 ‘에이미’(Amy)와 ‘미스 시몬에게 무슨 일이 일어났나?’(What Happened, Miss Simone?)와 사이언톨로지의 내막을 폭로한 ‘고잉 클리어’(Going Clear) 및 마약생산과 밀매문제를 다룬 ‘카르텔 랜드’(Cartel Land) 등이 있다. 지난해는 매우 우수한 기록영화들이 많이 나온 해였다.                          
                                                             <한국일보 박흥진 편집위원/ hjpark1230@gmail.com>